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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2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그들의 미소
정규호
《ㅎ》공장 지배인 형준의 착잡한 시선은 창밖을 향해 굳어져있었다. 밖에서는 초가을의 해볕이 무르녹고있었다. 따스한 볕을 함뿍 받은 수양버들이 졸음이 오는듯 뒤채임을 잊고 풍만한 아지를 잔뜩 늘어뜨리고있었다. 퍼그나 말쑥해진 하늘 저 멀리 가녁으로는 덩이를 여물쿠지 못한 흰구름이 한가로이 떠가고있었다. 하지만 형준의 마음은 불안의 구름장들이 무겁게 드리워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가?) 지금 책상우에는 성에서 내려온 긴급지령서가 그의 결재를 기다리고있었다. 생산과장이 좀전에 《긴급히》를 곱씹으며 놓고간 지령서였다. 지령서에는 《ㅅ》제강소에 긴급히 생산보장해야 할 종류와 수량들이 빼곡이 적혀있었다. 그것을 하나하나 훑어내려가던 그의 시선이 지령서의 맨밑에 씌여있는 글자앞에서 흠칫 굳어지고말았다. (페열보이라 대보수용?) 분명 여가로 써넣은듯 한 그 글자들이 별안간 커다랗게 확대되여 눈을 찌를듯이 올려다보고있었다. 가슴이 느닷없이 활랑거린다. 그 페열보이라로 말하면 한때 그의 자욱이 찍힌, 정확히 말하면 14년전 돌격대시절에 그가 건설한 창조물들중의 하나였다. 지금도 거기-주체철야금기지에 가면 아지랑이마냥 열을 뿜어올리는 우람진 회전로의 머리부분에 위병처럼 서있는 페열보이라의 믿음직한 보습을 볼수가 있다. 수백평방메터의 건평에 20여메터의 높이를 가진 건물안에 웅건히 앉아있는 보이라. 감회로운 추억속에 뚜렷한 한자리를 차지하고 얼마나 희열과 자부를 가슴그들먹이 안겨주던 로인가. 그때 형준은 온 건설장의 관심속에서 그 보이라의 축조전투에 참가했었다. 매 대대에서 한명씩 선발된 사기에 충만된 8명의 축조선수들중에서 형준은 조장으로 임명되였다. 길지 않은 축조전투의 나날과 날들에 가슴울렁이게 했던 영예와 자부심, 하지만 거기에는 오늘만이 아닌 래일까지 련결된 그 어떤 운명적인 기대와 소중한 념원까지도 깃들어있지 않았던가. 착잡한 안개속을 헤집고 다분히 재워져있던 추억의 한토막이 금시런듯 선명한 형체를 드러내며 형준의 눈앞에 펼쳐들었다. …철트라스에 데룽 매달린 촉수높은 전등이 만장을 누르지 않은 로체안을 내리비치고있었다. 3층높이를 이룬 웅장한 로벽, 그 사면벽에 계단처럼 매달린 나무발판들… 그 맨우의 발판을 축로공들이 타고있었다. 휴식참이라 혼합공들과 조력공들이 빠져나간 작업장은 조용했다. 《이거 오늘은 별로 출출한데… 밤참은 왜 늦어지는지…》 맞은편 발판우에서 3대대의 키큰 대원이 하는 말이였다. 그는 황새처럼 긴 목을 빼들고 저 아래 손바닥처럼 보이는 출입구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지금 한손으로 슬슬 배를 만져보는 그는 키가 1메터 80센치가 넘는다. 형준은 느닷없이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문득 이틀전 가두지원물자가 들어왔을 때의 일이 생각나서였다. 그날 후더분한 녀인들의 손에서 무득하게 말아진 국수그릇을 축내느라 남들이 신고할 때 그는 그 국수 두그릇을 게눈감추듯 했었다. 녀인들의 눈과 입이 항 커질 때 지금처럼 배를 슬슬 문지르며 그가 한다는 소리는 《한그릇을 더 먹어봐야 오늘 국수의 진맛을 아는건데…》였다. 지금 남들이 발판우에 걸터앉아 땀을 들이며 담배 한대씩 태우는 그 순간에도 아마 그는 먹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전번 날은 참 멋있었는데… 그때 한그릇 마저…》 《좀 조용하라구. 이건 도무지… 시상을 잡을수 있어야지.》하며 건너편 발판우에서 그 푸념을 잘라버리는 짜증섞인 목소리가 날아왔다. 축로공들속에서 《시인》으로 불리우는 《6대대》였다. 그는 지금 발판우에 놓인 벽돌더미에 앉아 벽체에 수첩을 맞대고 끙끙거리고있었다. 《어디 내가 좀 볼가.》 한 발판을 탄 대원이 《시인》의 곁으로 슬몃슬몃 다가들었다. 얼굴이 가뭇가뭇하고 눈이 가느스름한 《7대대》였다. 그가 맹수가 먹이를 덮치듯 수첩을 덥석 앗아들었다. 둘사이에 싱갱이가 벌어졌다. 《이건 공개합평이라는거야. 〈나의 량심〉이라…》 《7대대》가 성화를 먹이는 《시인》의 손을 뿌리치며 잔뜩 살군 메밀눈으로 수첩을 내리읽었다.
《땀흘려 다져넣은 콩크리트기초 보이지 않는 거리에 묻혀있는것인가 한장한장 내 쌓아올리는 보이라의 이 벽체에 깃들어있는가 나의 량심은 …
아니, 아직도 이 첫머리에서 헤매나? 언제부터 긁적거린다는게…》 《또 시비질이 시작되는군.》 누군가 옆에서 끼여들었다. 《흥, 시란게 쉽사리 지어지는줄 아는 모양이지. 그러지 말구 수첩을 이리 달라구.》 《동무, 나도 한땐 시공부를 하던 사람이야. 학생때 합창시를 가지고 중앙경연무대에까지 오른적있는… 그것도 주창역을 맡아가지고 말이야.》 허거픈 웃음이 형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변죽이다. 《도대체 뭘 말하자는거야?》 《시인》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수첩장에 눈길을 박고 자못 머리를 기웃대던 《7대대》의 손에서 수첩이 툭 채워져나갔다. 놓쳐버린 수첩에 《7대대》의 눈길이 그냥 매달려간다. 그러면서도 한마디 한다. 《시란게 한마디로 말해서 뭔고하니 시대정신으로 맥박치는 이 숨결이야. 그 량심이란게 뭐겠어? 한마디로 우리 삶이 아니겠어. 순간순간 이 벽체에 깃들어지는 우리의 삶… 왜 노래에도 있지 않아. 〈생이란 무엇인가 누가 물으면…〉하는…》 빨래줄처럼 길어지는 그 말을 되받기라도 하듯 왕청같은 곳에서 느리고 둔탁한 목청이 그 노래의 구절을 이어댄다. 좀전에 뭣하게 말문을 채웠던 키큰 《3대대》였다.
생이란 무엇인가 누가 물으면 우리는 대답하리라 …
갑자기 《모이시오.》하는 소리가 밑에서 들려왔다. 노래를 흥얼대는 순간까지도 눈길이 쏠려있는 출입구로 그가 안타까이 고대하는 취사원의 모습대신 노란 안전모를 쓴 시공과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다들 내려오시오! 내려와 모이시오!》 도면말이같은것을 쳐든 시공과장이 발판우에 대고 손짓했다. 《기다리는 딸은 안 오구 외통눈사위만 온다더니… 음ㅡ 자ㅡ 다들 내려가세.》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뛰여내리는 소리가 났다. 《저…조장동무.》 금방 내려선 웃켠 구석쪽에서 형준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달막하고 몸매 오동통한 처녀가 뛰여내리기를 서슴어하며 바재이고있었다. 축로공들중에서 유일한 녀성인 옥선을이였다. 웃을 때면 눈과 입은 물론 발깃한 귀뿌리까지도 따라웃는것 같은 생기발랄한 처녀가 지금은 잔뜩 겁에 질려 형준에게 구원을 청하고있었다. 《동문 뭐요? 오늘부터 아예 발판에 오르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이건 도대체…》 형준은 짐짓 성을 냈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꾸중이다. 형준이 자신이 자기가 한 말을 감감 잊었을뿐더러 설사 그런다고 물러설 처녀가 아니였기때문이다. 오죽 이악스러우면 자기 대대의 숱한 남자들을 물리치고 그가 여기에 선발되여 왔겠는가. 어쨌든 닭알바구니를 다루듯 그를 조심히 안아내려야 했다. 한데 그의 손길이 가닿기 전에 누군가의 길다란 손이 그를 밀쳐내며 처녀한테로 쑥 뻗쳐갔다. 《선을동무, 자, 나한테 안기우다.》 싱검둥이 《3대대》였다. 《어마나!》하는 외마디비명과 《동문 안돼!》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력기선수처럼 몸이 다부지게 생긴 《2대대》가 《3대대》의 두어깨를 끄당겨내리더니 그우에 넌떡 올라앉았다. 교예극장의 막간극을 방불케 하는 그 광경에서 가벼운 폭소가 일어났다. 목마를 탄 덕에 키가 껑충해진 《2대대》의 품에 안겨 처녀는 고스란히 밑발판에 내려섰다. 《저 친구 엉큼하군그래. 선을동물 꼭 자기의 소유물로 여긴단 말이야.》 《7대대》가 던지는 소리였다. 《여, 총각들이 손대는건 규정위반이야. 자칫하단…》 《저런, 이제 두고보자. 그러다 얌전한 색시한테 쫓겨나질 않나.》 《천만에. 그렇게는 안될걸. 우리한텐 부부의 정을 이어준 아이가 있거던. 미래를 련결시킨 아들이 있단 말일세.》 《아들》이라는 말은 입에서가 아니라 그의 눈빛에서 흘러나오는것 같았다. 으시대는 그 말은 사실이였다. 며칠전 아이가 태여난지 백날이 되는 날 그의 안해가 여기 전투현장을 찾아왔다. 차분하고 곱살하게 생긴 안해가 량손에 지원물자를 무겁게 들고 그 《자랑많은》 아들을 업고서 나타났다. 빙 둘러앉아 젊은 색시가 성의껏 차린 갖가지 음식들을 나누면서 그들은 아이의 래일을 축복했다. 그리고 토실토실한 살이 오른 달덩이같은 그 아들을 한가운데 놓고 이 거대한 페열보이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 시공과장의 부름소리가 거듭 울려서야 축로공들은 그한테로 모여들었다. 시공과장의 얼굴은 전례없이 심각해보였다. 그는 말아쥐였던 도면말이를 주르르 펼치였다. 도면의 웃쪽에 찍힌 《페열보이라 축로도》라는 굵은 활자가 눈에 안겨들었다. 《여기에 다들 수표해야겠소.》 자못 엄엄하게 울리는 시공과장의 목소리. 《수표요?》 《그렇소. 이를테면 자기가 한 일을 책임진다는 담보를 여기에 박아넣어야겠소. 매 사람이 한 작업구간이 여기에 표시되여있소.》 시공과장은 푸른 색연필로 이미 구획지은 부분들을 꾹꾹 내리짚었다. 《동무들이 쌓는 이 로벽의 수명은 30년이요. 30년!… 알겠소? 그 기간을 아무런 무리없이 살아숨쉬여야 한단 말이요. 만일 (그런 일은 없을테지만) 도중에서 그 어떤 상서롭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 그때에 가선…》 이제껏 로안에 물크러졌던 흥성흥성한 공기는 이미 어디론가 잦아버렸다. 한껏 긴장된 비장한 엄숙함이 굳어진 얼굴들에 하나같이 실렸다. 《30년…》, 《책임》, 《만일》… 시공과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말마디들이 위혁적인 울림을 가지고 눈앞에 펼쳐진 도면우에서 살아숨쉬고있었다. 예리한 아니, 둔중한 그 무엇이 서서히 흉벽에 와 부딪친다. (30년을 책임져야 한단 말이지.) 형준은 이제껏 자기가 건설하는 로에 대해 자신만만함을 부여해왔었다. 그만이 아닌 축로에 참가한 이들모두가 장담하지 않았는가. 한데 느닷없이 갈마드는 그 긴장은?… 사실 30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장래에 가서도 자기의 창조물이 손색없으리라 믿어의심치 않던 그들이였다. 하물며 주체시대의 오늘에 와서 새롭게 일떠서는 우리 식의 야금기지건설인데야. 누구나 뿌듯한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축로에 참가했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이렇게 망설인단 말인가. 자기를 지겹게 에워싼 침묵에 불쑥 화가 동한 형준은 시공과장의 손에서 축로도를 나꿔채듯이 했다. 《왜들 심각해서들 이러는거요? 우리가 뭐 로벽축조를 잘못하기라도 했소? 자, 4대대 호영동무부터.》 형준은 옆에 선 얼굴이 걀람한 대원에게 도면을 내밀었다. 한데 숨죽은듯 조용히 섰던 그가 무슨 폭발물이라도 제몸에 와닿은듯 흠칫하며 뒤로 한발 물러서는것이였다. 《가만, 난 아직… 다른 동무들부터…》 그는 전에없이 떠듬거렸다. 한순간 형준은 아연해졌다. 사실 이 8명의 축로공들속에서 그는 제일 일맵시가 깐지다고 보아온 사람이였다. 부디 결함이라고 꼭 짚는다면 깐진 일솜씨에 비해 속도가 좀 더딘것이였다. 어떤 땐 제가 한 작업구간을 안타까울 정도로 깐깐스레 여겨보는 그 습관때문에 《소심하다》는 가벼운 비난을 받을 때도 있었다. 《동문 아무리 영웅(강호영영웅)의 이름을 닮았어도 영웅이 되긴 굴렀어. 그렇게 행동거지가 굼뜨고선 영웅이 못돼. 영웅의 표징은 용맹하고 또 돌진적인데 있는거야.》 누군가 답답해서 그럴라치면 《영웅은 어떻게 영웅… 난 그저 마음이 안 놓여서 그래.》하는, 안존한 그 생김과 같이 조용한 목소리가 뒤따르군 했다. 어쨌든 형준은 매사에 심중한 그를 축로공들중에서 제일 실속있는 사람으로 대해오는터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취하는 그의 태도는? 이 순간 형준은 여직껏 그에게서 우점이라고 보아온 그것마저 그 어떤 비겁한 행동의 일면처럼 느껴지며 일종의 혐오감이 찾아드는것을 누를길 없었다. 《그럼 〈3대대〉.》 형준은 키큰 《3대대》에게 축로도를 내밀었다. 한데 늘 배포유하다고 보아온, 그래서 덥석 받아물리라고 생각한 그도 호영이처럼 엉거주춤 물러서며 도리질하는게 아닌가. 그렇게 《수다스럽던》 입이 지금 자물쇠에 물린것처럼 꾹 다물려있었다. 《?…》 따분한 침묵이 주위에 어색하게 감겨들었다. 누구든 선뜻 나서려는 기색이 아니였다. 마주치기를 저어하듯 좀전까지만 하여도 변죽을 부리던 《7대대》의 눈은 아예 로바닥에 얼어붙었다. 침묵, 괴롭게 가슴을 파고드는 침묵… 드디여 형준은 시공과장의 손에 들린 펜대를 앗아들었다. 내가, 조장인 나부터 수표를 하자. 무엇이 두려워 주저한단 말인가. 도면의 수표란에 막 이름을 써넣으려는데 누군가 그의 손에서 펜대를 앗아갔다. 《?…》 《내가 먼저 하겠네.》하며 나선 사람은 2대대의 그 다부진 대원이였다. 그는 축로도에서 자기의 구간을 더듬어찾았다. 그리고는 모여선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내 방금전에 뭘 생각했는가 하니 아니, 뭘 보았는고 하니 우리 아들을 보았어. 우리 복동이를 말일세. 그 말똥한 눈동자가 꼭 이앞에서 날 올려보더란 말이지. 실은 그래서 좀 좀자렸댔어. 생각이 많아지더란 말일세. 자,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손끝에서 《장일석》이라는 이름이 힘있게 그리고 활달하게 새겨졌다. 《!…》 순간 강렬한것이 뇌리를 치며 온몸이 쩌릿해들었다. 그래, 이들은 지금 괴롭게 침묵을 지킨것이 아니라 제나름의 깊은 생각에 잠겨있은것이다. 이 장일석이처럼 무언가 래일을 두고 그 어떤 마음속 대화를 나누고있었는지도 모른다. 《30년》이라는 먼 래일과 마주선 그 마음들이 어찌 순편할수가 있으며 또 성급할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다들 하자. 저 장일석이처럼 미래앞에 자기를 담보하는 수표를 하자.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위대한 뜻을 실현하고저 주체철야금기지건설장으로 용약 달려온 마음도 지향도 하나같은 청년돌격대원들이 아닌가. 깨끗한, 떳떳한 수표를 조국앞에 우리 새기자!… 장일석의 뒤를 이어 도화선에 불이 달리듯 너도나도 축로도에 달라붙었다. 《애아버지한테 선코를 떼웠는걸.》 이 마당에서도 《7대대》는 기어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있었다. 맨 마지막에 호영이가 나섰다. 그때까지도 펜을 든 그의 손은 떨리고있었다. 무엇인가 골몰하듯 좀자르던 그는 이윽고 《강…호영》이라고 새겨넣었다. … 《엄숙한 의식》이 끝나고 다시 침묵(이제 와선 다른 의미의)이 깃들었을 때 저으기 격정에 젖은 선을이의 조용히 읊조리듯 하는 목소리가 모두의 가슴을 적시며 파고들었다. 《야참! 30년후에 우리 조국의 모습은 또 얼마나 희한하게 달라질가요?!》… 그것은 14년전에 있은 일이였다.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짧지 않은, 줄기차게 흘러온 세월속에서 형준은 오늘 한개 기업소의 지배인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지금 별스레 짧게만 느껴지는 그 세월의 년륜이 형준의 가슴을 괴롭히며 마음의 안정을 앗아가는것이다. (30년을 담보했던 보이라가 어떻게 14년만에 대보수가 제기되였는가?…) 이것은 분명 사고다. 사고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이 생길수 있는가. 대보수? 사고? 서로 다른 개념의 병사가 같은 의미로 합쳐지기도 하고 또 서서히 갈라지기도 한다. 흐려드는 뇌리속에 언제인가 협동생산품때문에 왔던 그곳 자재일군이 하던 소리가 생각났다. 《이젠 전면적인 개조가 필요하지요.》 정보산업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야금기지의 요소요소를 개조할 일이 제기됐다던 언제인가의 그 소리가 찾아들며 미흡한 안도감을 가까스로 불러오는것이였다. (아니.) 형준은 이내 도리질을 했다. 그것은 너무도 거리가 먼 기대였다. 《대보수》라는 어마어마한 말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자재일군의 소리였다. (그러나…) 검질긴 위안은 다시 마음속에 비벼든다. (만일 대보수라 할지라도 우리가 쌓은 로벽과는 전혀 관계치 않은데서 생길수도 있지 않는가. …) 도저히 갈피를 잡을수 없는 속에서 문득 속수무책에 빠져있는 자신을 놀라듯 발견했다. 급기야 창가에서 떨어져 전화기에 손이 갔다. 사실여부를 알아봐야 했다. 허나 송수화기를 꾹 누른채 종시 들지는 못하였다. 뭔가 자기 처사가 온당치 못한듯 한 아니, 그앞서 어쩐지 두려운 생각이 갈마들어서였다. … 번거로운 마음을 눅잦히지 못한채 형준은 사무실문을 나섰다. 어쨌든 대보수가 진행되는 페열보이라현장을 제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불안한 심리에서 벗어날것 같지 못했다. 설사 더 큰 상실이 이제 보게 될 그앞에서 기다린다 할지라도… 복도에서 마주친 부원에게 한마디 하고는 대기차가 세워져있는 차고로 걸음을 놓았다. 반쯤 열려진 철문안에서 등을 돌려댄 고수머리 운전사가 꿇어앉아 무언가 역사질을 하고있었다. 기관실덮개가 들려있었다. 《아직 정비를 끝내자면 한시간은 걸려야 합니다.》 형준의 심정과는 달리 너무도 셈평스런 대답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할수없이 형준은 걷기로 결심했다. 《ㅅ》제강소까지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바다기슭을 따라 넓게 트인 길이 아득히 뻗어있었다. 형준은 숨가쁜 걸음을 놓았다. 정오의 찌는듯 한 볕이 내리쪼이는 고개길로 오르내리는 차들이 연방 엇갈리며 지나갔다. 흰 갈기가 쉼없이 굽을 치는 푸른 바다에서 비릿한 해풍이 날아들며 끈적거리는 뺨을 간지럽힌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가?) 끈질긴 의혹이 제강소를 가까이 할수록 점점 가슴에 옥죄여든다. 그 페열보이라로 말하면 무익하게 날려보내는 회전로의 열을 깡그리 되잡아쓰는 이를테면 하나의 발전소를 얻는것과도 같이 그 의의가 큰것이다. 이제 저 고개마루에 오르면 일망무제하게 펼쳐진 야금기지의 웅자속에 거연한 페열보이라의 모습이 바라보인다. 후더분한, 들먹이는 추억을 안고있는 그 정겨운 모습이… 《지배인동지가 아닙니까?》 뒤에서 달려오던 승용차가 몇걸음앞에서 뻑 멎어서더니 웬 풍채좋은 사람이 반색을 지으며 내렸다. 《?…》 《왜, 절 모르겠습니까? 함흥에서 우리 자주 만나지 않았습니까?》 퍽 호감을 주는 얼굴인데 인차 떠오르지 않았다. 몇달전 형준은 기업소의 기술개건문제로 함흥의 과학원분원과 룡성기계련합기업소에 몇번 다녀온적이 있었다. 그때 대상한 여러명의 일군들중의 한사람이라는 어설풋한 추측이 들뿐이다. 《무척 바쁜 걸음같은데 이 차에 타십시오. 저도 볼일이 있어 도당에 가는 길입니다.》 아무튼 고마운 일군이였다. 그의 호의에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며 차에 올랐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승용차의 앞시창우에 달린 거울에서 느슨한 눈길이 그의 얼굴을 지켜보고있었다. 《예, 여기 제강소의 페열보이라에 예상치 않은 일이 생겨서…》 형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무엇때문에 유쾌하지 못한 그 소리를 스스럼없이 터놓는것인가.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사람앞에서… 그러나 상대방의 시선은 집요하리만치 떼놓은 말꼭지를 물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형준의 침중한 어조에서 무엇인가 읽은듯 상대의 눈빛이 차츰 심각해졌다. 그 눈빛에서 자기의 표정을 보는듯 하여 형준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안개속을 헤집고 추억의 한토막이 기다렸던듯 밀려들었다. 아, 그때 우리의 마음속에 오늘과 같은 우려가 다문 한가닥이라도 있었던가?… …만장밑까지 올리쌓았던 벽체가 한돌기 또 한돌기 낮아지고있었다. 몰탈묻은 벽돌이 축로공들손에서 한장한장 들리우고있었다. 《다섯돌기는 뜯어봐야 할것 같애.》 벽돌에 게발린 몰탈을 긁어내며 호영이 심중해서 하는 말이였다. 좀전에 안전바를 띤 연공들이 만장을 덮을 《T》자형의 주철가름보를 태우는 작업이 있었는데 그중 한개가 그만 기우뚱거리며 벽체의 한귀를 살짝 다쳐놓았다. 가슴이 섬찍해드는 광경이였으나 다행히도 벽체에는 아무런 손상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뒤벽에 축조한 강도 약한 규소토벽돌에 무리가 갔을지 몰라. 아무래도 미타한게… 조장동무, 몇돌기 들어보지 않겠소?》 이렇게 되여 시작된 반복작업이였다. 사실 뒤벽에 붙인 규소토벽돌은 로의 보온을 위해 쌓은것이였다. 설사 실금이 몇장 갔기로서니 로벽의 안전과는 별반 상관이 없는것이였다. 호영이의 제의에 다들 가타부타 의견들이 없었다. 대중할수 없는 침묵만이 피로한 얼굴들에 실렸었다. 《시원스레 뜯어보는것도 나쁘지 않지. 미타한걸 덮어두고서야 선밥먹은 뒤처럼 어디 속이 편할라구.》 키 큰 《3대대》가 찬동인지 의견인지 가늠 못할 소리를 하며 제잡담 맨우의 벽돌을 뜯어냈다. 다들 그의 뒤를 따라 묵묵히 벽체를 허무는 일에 달라붙었다. 한돌기, 또 한돌기… 긴장된 눈들이 손에 들리우는 벽돌을 여겨살폈다. 세돌기, 네돌기, 다섯돌기를 들었으나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형준은 후ㅡ 숨이 나갔다. 결국 호영이의 지나친 우려가 공연한 일을 빚어낸것이였다. 누군가 발판우에 벽돌을 텅! 떨구는 소리가 별스레 아츠럽게 마쳐들었다. 그 무슨 터놓지 못한 불만인양. 호영이의 얼굴이 서서히 익어가고있었다. 형준은 미안쩍은 눈길로 사람들의 표정을 둘러보았다. 털썩털썩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그 얼굴들에 하나같이 식은땀이 내배고있었다. 마지막 결승선을 톺느라고 이미 땀을 흘리고난 그들이였다. 그제서야 형준은 자기도 다리가 매시시해들며 어지간히 지쳤음을 느끼였다. 호영이는 고개를 떨구고 서서 애꿎은 장갑만 주물럭대고있었다. 그 장갑의 가락마디에 붙은 고무덧판이 별스레 눈에 박혀들었다. 형준이 끼고있는 장갑에도 그것처럼 얄팍한 고무판이 매 가락마다에 붙어있다. 꺼실꺼실한 벽돌을 다루느라 하루가 멀다하게 판이 나 갈아대는것을 념려하여 어느 하루 옥선을이가 고안해내여 곱게 덧기워 나눠준 《새》 장갑이였다. 호영이의 몸을 감싸든 미안스러움이 그리고 느닷없이 형준에게까지 전파된 그 감정이 지금 그 장갑에서마저 내풍기는듯 했다. 한쪽에선 벌걱거리며 수첩장이 번져지는 소리가 났다. 지치지 않은 사람은 6대대의 《시인》뿐인듯싶다. 이런 때 그가 한마디 힘이 되는 소리를 했으면, 무거운 이 공기를 밀어내고 사기를 불러일으키는 말 한마디라도… 하나 눈빛이 점점 여물어갈뿐 그는 수첩에 묻힌 자기의 세계에서 헤여져나올줄 몰랐다. 이제 《7대대》의 성화가 곧 뒤따르리라는것도 감감 잊은듯… 《여기 유리솜이 성글게 들어간것 같지 않아?》 《7대대》의 《성화》는 왕청같은 곳에서 들려왔다. 그가 헐어낸 벽체우에 한발을 올려짚은채 머리를 기웃거리고있었다. 지금껏 그는 《시인》이 수첩을 뒤적거리는것도 아랑곳없이 가느스름한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벽체의 뒤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보고있은것이였다. 《시인》의 손에서 수첩이 떨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7대대》의 눈길이 간곳에 모여들었다. 눈이 시글거리는 새하얀 유리솜이 벽체의 웃부분에 와서 알릴락말락 성글게 들여박혀있었다. 로의 보온을 위해 로체와 규소토벽돌짬사이에 박아넣게 된 솜이였다. 《여길 누가 다져넣었소?》 형준은 누구라없이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나 곧 자기의 말을 부정하고말았다. 마지막공정의 그 작업을 그들은 다같이 했던것이다. 단지 옥선을만이 이 일에 빠졌다.(형준은 그를 먹는 물을 뜨러 보냈었다.) 이 보이라축조작업에서는 유리솜을 드다루는 일이 별치 않은것 같으면서도 제일 거치장스럽고 부잡스런 공정이였다. 살짝 다치기만 해도 눈가루같이 미세하고 예리한것들이 날아예며 몸에 달라붙어 꼭꼭 찔러대는것이였다. 형준은 될수록이면 선을이가 유리솜 다져넣는 일만은 손대지 말기를 바랐다. 남자들은 유리가시가 배긴 옷을 아무때나 활활 벗어 털수 있지만 처녀인 그로서는 그렇게 할수 없는것이다. 《선을동문 솜옷을 입고 나오라요, 목수건도 두르고, 여름이지만 별수 있어요? 〈가시총알〉을 받는것보다야 낫지요.》 웃동을 활활 벗어붙이며 5대대 《꼬마》가 걱정 절반, 놀림절반으로 말했었다. 저보다 기껏해서 한살아래인 자기에게 《꼬마》라는 별명을 달아준 당자여서 그런지 그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처녀를 시까슬러대는것이였다. … 《별게 아니구만 뭐. 난 또 뭐가 잘못되였다구?》 《3대대》가 벽짬을 기웃이 들여다보며 하는 말이였다. 《뭐라구?》 형준의 놀란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날카로와졌다. 그 눈총에 《3대대》는 급기야 긴목을 움츠렸다. 《별게 아니라구? 동무도 이 벽체앞에서 수표를 한 사람이 맞소?》 형준은 자기도 모를 분격이 치밀어올라 목소리를 높였다. 《내… 내가 그만… 실언했소.》 주밋거리며 입술을 감물고섰던 그가 갑자기 주눅을 털더니 분기를 터뜨렸다. 《허지만 난 이 구간을 다져넣지 않았소. 여긴 내가 손댄 구간이 아니란 말이요.》 벌기우리하게 변하는 얼굴에서 못마땅한 시선이 곧바로 형준에게로 향해졌다. 거칠어지는 숨소리, 분함이 서린 이지러진 얼굴… 노상 너수룩하던 그에게서 좀해서는 볼수 없었던 기상이다. 형준은 눈길을 떨구었다. 랭랭한 침묵속에서 성글어보이는 유리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내가 괜히 열을 올린게 아닌가, 그의 말처럼 별찮은걸 놓고, 사실 이쯤한 일이 로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것은 없다. 만일 시공과장이 이걸 본대도 굳이 잘못이라고는 지적하지 않을것이다. 어디까지나 허용한도내에 속하는것이기에… 허나 여전히 마음은 개운치 않다.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께름직하다. 형준은 뒤늦게야 자기의 분격이 어디에서 온것인가를 깨달았다. 《3대대》, 미안하다. 하지만 이건 동무에게 하는 욕이기에 앞서 나자신에게 하는 추궁이기도 하다. 내 량심에게 하는… 《여긴…》 이제껏 잠자코 있던 호영이가 침묵을 깨뜨리며 저으기 풀이 죽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여긴 내가 한것 같애요.》 《?…》 무슨 소리를? 매사에 꼼꼼한 그가 이런 실수를 한단 말인가. 그런데 장일석이가 그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그의 얼굴에 괴로움이 실렸다. 《내가 설쳤을거네, 전번날에도 한번 이와 비슷한 일을 칠번 했더랬지. 난 아직 모르는게 많아. 일도 서툴구… 아마 이 일은 내가 한것 같네.》 《?…》 《아니예요. 여긴… 내가 했어요.》 갑자기 《꼬마》가 소리치며 마치 누가 잘못된 구간을 다치기라도 하듯 두팔을 벌려 벽체를 막아나섰다. 《분명 내가 한 실수예요. 난 그때 들떠있었댔어요. 오늘이 축로전투를 끝내는 날이라고 해서… 마감총화짓는 날이라고 해서…》 형준은 영문을 차릴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했다는건가? 그런데 왜들 다 제가 한것처럼 말하는가? 무엇때문에?… 사실 엄연히 따지면 이 구간은 선을이의 담당구간이다. 일은 그가 물 뜨러간 사이에 벌어진것이다. 출렁! 물바께쯔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언제 나타났는지 수심에 잠긴 선을이가 헐어내린 벽체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굳어진 손에서 속눈섭이 파르르 떨고있었다. 쌍겹진 눈언저리가 차츰 발기우리해지는게 좀 있으면 눈물이라도 쏟을 기색이다. 형준은 고개를 돌리였다. 다들 저으기 면구스러운 표정들이였다. 어쩜 그럴수 있어요? 여긴 내가 맡은 구간인데. 다른 동무들한텐 잘못이 없어요. 내가 책임졌으니 내가 벌을 받아야 해요. 금시 이런 목소리가 처녀에게서 튀여나올것 같다. 두팔을 걷어붙인 그가 당장 그리로 뛰여들것만 같았다. 하지만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하는 목갈린, 격정에 젖은 의외의 말이 처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형준은 뭉클 가슴이 젖어들었다. 그의 마음이 그리고 선뜻 가늠할수 없었던 이들의 세계가 그제서야 비로소 리해되며 눈굽이 쩌릿해졌다. 고맙소, 동무들!… 《됐네. 우리 제꺽 제대로 쌓자구. 호영이 이 친구, 아무튼 고마워. 동무의 말을 따랐기에 우리 이걸 발견하지 않았나. 하마트면… 우리 량심이 흐려질번 했어.》 《난말이지, 앞으로도 이 야금기지를 떠나지 못할것 같애.》 한쪽에선 《수첩》이 벌컥벌컥 소리를 냈다. 그때까지 멍하니 벽채뒤를 들여다보고있던 《3대대》가 무슨 새로운 발견을 한듯 환성을 터뜨렸다. 《이보라구, 이건 기발이 꽂혀있던 자릴세. 그래서 이렇게 성글게 보였던거요.》 하지만 그 소리는 이미 잦아버린 메아리의 여운처럼 아무러한 울림도 더는 자아내지 못했다. … 그로부터 3시간후 려단적인 총화사업이 있었다. 단 일주일동안에 보이라축조를 성과적으로 끝낸 그들에게 전려단이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매 사람의 목에 꽃목걸이가 걸리고 축하의 꽃보라가 뿌려지고 나팔소리가 터져오르고… 그날 저녁 헤여지기에 앞서 그들은 현장휴계실(축로조가 림시로 사용하는)에 모였었다. 흰보를 씌운 책상우에는 소박하면서도 이채로운 음식들과 함께 목이 빨간 두개의 병도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옥선을이가 마련한 이를테면 간단한 《송별연》이였다. 물 뜨러 갔을 때 선을이는 이걸 준비했었다. 《우리 이제 헤여지면 언제 다시 만나볼가요? 조장동문 1대대의 굴착장으로, 전 8대대의 골재장으로, 일석동무와 호영동무도 자기 초소로… 아마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거예요.》 그러고보면 정말 시간을 쪼개는 건설장이다. 후세에 남길 창조물 하나를 마무리지었는데 그저 슴슴하게 헤여질수야 없지 않는가. 《선을동무, 고맙소.》 《한데 이 동무들이 왜 여적 안 나타날가?》 벌써 입을 다시는 《3대대》의 걸탐스런 눈이 상우에 펼쳐진 음식그릇들을 일별하고있었다. 《호영동문 아마 보이라현장에 있을거예요.》 《꼬마》가 하는 소리였다. 지금 거기에선 물관들을 때붙이는 용접작업이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아직도 뭐가 못 미더운게 있어서? 형준은 호영이의 심정이 십분 리해되면서도 어딘가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한 일을 두고 심사숙고하는건 나무랄수 없지만 모두가 손털고 나앉은 지금까지 와서도 뭔가 미덥지 않아하는 그의 처사를 그저 지나친 로파심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불미스럽지 않는가. 어딘가 남들의 믿음까지도 의문시하는듯 한… 인간은 때에 따라 정당한 일을 하고도 호평을 받지 못하는 그런 경우가 있는것이다. 아니나다를가 이윽해서 모자며 어깨우에 용접찌를 붙인 그가 나타났다. 《미안하네. 물관을 들여놓을 때 우리 쌓은 벽체를 혹 다치지 않나해서… 그걸 감시하느라고…》 《동문 참…》 어줍은 표정을 짓는 그의 태도에서 형준은 더 달리 말할수가 없었다. 《이젠 마지막인데… 더는 속을 쓰는 일이 없어야겠기에…》 《동문 그게 탈이요. 괜히 자길 괴롭히는게… 하긴 저 보이라의 수명이 끝나는 그때에 가서나 동무의 그 근심보따리가 없어질런지…》 《3대대》가 싫지 않은 소리를 던지였다. 때를 같이하여 장일석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급하게 뛰여왔는지 흠뻑 익은 얼굴에 송글땀이 맺혔다. 《이거 안됐네. 기다리게 해서… 실은 청진에, 집에 전보를 치느라구…》 그는 가슴을 들먹거리며 숨을 톺았다. 《무슨 전보게?》 여기저기서 호기심이 터졌다. 《보이라축조가 끝났다는걸… 알려야 할게 아닌가. 안해에게… 또 우리 복동이한테…》 《복동이한테?…》 《백날잡이가 어떻게 알아들어?》하는 해학과 함께 분명 떠들썩할것 같던 방안이 갑자기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졌다. 물을 뿌린듯이… 《좋구만, 우리 생활이…》 상앞에 둘러앉았을 때 누군가 조용히 뇌였을뿐이다. 형준은 밝은 불빛에 류달리 정갈해보이는 남실거리는 잔을 쳐들었다. 《우리가 한데 모여 일한 기간은 고작 일주일이요. 그러나 길지 않은 이 나날에 우린 서로의 마음을 잘 알게 됐소. 그 지향이 하나가 되여 이 거창한 일을 자랑스럽게 끝냈소. 우리 영원히 오늘을 잊지 맙시다. 자, 래일을 위하여, 더 큰 위훈과 창조를 위하여!》 모두의 손에서 잔들이 가슴우에 쳐들렸다. 《그리고 일석동무의 아들을 위하여.》하고 뒤를 잇는 소리에 가벼운 웃음발이 피여올랐다. 《7대대》였다. … 《우리 간단히 오락회를 하는것이 어때요?》 《좋소!》박수갈채가 일었다. 《난 말이요.》하며 《시인》이 일어섰다. 그의 눈이 사뭇 일렁거리고있었다. 《나는 방금전에야 이 〈나의 량심〉이라는 시의 기본핵을 찾았소. 이젠 시가 살아났단 말이요. 하지만 이 자리의 발기자인 선을동무의 노래부터 듣는게 어떻소?》 또다시 일어나는 박수갈채, 사랑스런 눈길이 모아지는 앞에 귀뿌리가 빨개진 처녀가 나섰다.
생이란 무엇인가 누가 물으면 …
맑고 은은한 노래가 합창으로 이어졌다. … 《난 이 자리에서 자작시를 읊겠소. 비록 채 끝맺지 못했지만…》 감정을 잡듯 《시인》은 숨을 끊고 허공에 시선을 묻었다. 이윽고 모두의 감정을 모아잡으며 그의 열띤 목소리가 조용한 공간에 울려퍼졌다.
… 티없는 아기의 맑은 눈동자가 나를 지켜보고있어 오늘만이 아닌 우리의 래일이 언제나 이 가슴에 무겁게 얹혀있어
내 쌓아간다 순간순간을 깨끗한 땀방울로 적시며 뜨거운 이 심장을 묻으며 조국의 먼먼 미래를 담보할 내 삶의 로를 …
《야, 멋들어진데. 내 이제야 동물 인정하게 돼.》하며 《7대대》가 그에게로 다가들었다. 《가만, 좀 적자구. 오, 야금기지에서 태여난 시여, 너는 영원히 이 야금기지와 더불어 내 가슴속에서 빛나리니…》 《어쩜, 저도 베끼자요.》 《나도…》 《아, 아직 안됐네. 뒤를 마무리 못했다는데…》 설레발을 치는 그의 손에서 수첩이 빼앗겨 이 손, 저 손으로 옮겨갔다. … 차가 꺾어드는 바람에 형준은 회억에서 깨여났다. 승용차는 창유리가 커다란 청사앞에 멎었다. 일군이 따라내렸다. 《먼저 가보십시오. 내 여기 당위원회에 들렸다 그리로 가보겠습니다.》 《?…》 형준은 얼떠름한 상태에서 그와 헤여졌다. … 가까와올수록 점점 옥죄여들던 의혹과 긴장은 페열보이라앞에 이르러 고조에 달했다. 페열보이라는 한창 대보수를 당하고있었다. 놀란, 무너지는듯 하는 아픔이 심장부위에 살같이 날아와 박혔다. 병든 상처를 해부하듯 내장을 하나하나 들어내는 광경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진것이였다. 왁작 법석이는 사람들의 물결, 곳곳에 널려있는 몰탈이 엉켜붙은 벽돌무지들… 웃갓을 벗기운 커다란 동체밑에서 기중기의 긴팔이 연방 해체한 물관을 물어내고있었다. 보이라의 미츨한 모습은 와글와글 끓어번지는 사람들과 기중기, 날카로운 용접섬광들에 의해 사정없이 《수술》을 당하고있었다. (사실이구나!) 불안한 기대와 가느다란 믿음, 야릇한 무엇의 바람이 졸지에 빠져나가는 상실의 아픔이 눈앞에 어지러워지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14년전 수표마당에서 울리던 시공과장의 말이 어디선가 창끝처럼 날아와 뇌리에 박혀들었다. 어떻게 돼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무엇때문에? 누구때문에? 가까운 곳에서 울리는 음악에 실린 확성기소리가 혼잡한 머리속을 더욱 어지럽게 한다. 형준은 허겁지겁 보이라의 동체밑에 휑하니 뚫린 구멍으로 다가갔다. 이때 그 구멍으로 꺼꺼부정한 한사람의 얼굴이 쑥 나오더니 그앞에서 떡 멎어섰다. 돌처럼 굳어진 그 눈가에 일순 영문모를 놀라움이, 이어 그 어떤 환희의 불꽃과도 같은것이 펑 일었다. 《이거… 〈1대대〉, 〈1대대〉가 아니요?》 《?…》 어디선가 본듯 한 얼굴인데 피뜩 짚이지 않는다. 구부정한 키, 긴목, 넙주룩한 입술… 1대대라구? 쪼프려진 눈에서 드디여 의혹의 안개가 벗겨져나갔다. 《아, 〈3대대〉!》 《형준이!》 둘은 격렬한 포옹에 말려들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지금은 어디서 무얼? 무산광산에서 업무? 난? 총알같은 물음과 대답이 오갔다. 그런 경황속에서도 형준은 마음 한구석에 저으기 민망스러운것이 있었으니 안타깝게 그의 이름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그것이였다. 부르기 쉬운 이름이였는데… 격정에 떠는 그의 손이 형준의 어깨에서 떨어질줄 모른다. 그전날의 투미한 억양, 말투는 조금도 변한데가 없다. 《자넨 그새 발전했구만. 지배인이 되구. …》 《뭘, 동무도 같지.》 연신 슴벅이던 그의 눈이 갑자기 떼꾼해졌다. 《한데 여긴 어떻게 나타났소?》 순간, 때아니게 찾아든 반가움의 회오리가 들이닥칠 때처럼 급작스레 사그라들었다. 형준은 한동안 말머리를 찾지 못하고 섰다가 힘들게야 여기로 오게 된 사연을 터놓았다. 《아니, 동무두?…》 이런 일도 있는가. 그도 바로 내가 지금껏 털지 못하던 그것, 촉급한 그 근심보따리를 안고 여기에 나타난것이였다. 《동문 참…》 목갈린 소리를 끝내 뱉지 못하고 그는 구부정한 등을 돌려댔다. 어깨가 들먹거리고 긴 팔굽이 얼굴에 올라가붙었다. 그는 울고있었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가늠 못할 그 감정의 여파가 형준의 가슴에도 마쳐오며 눈굽이 찌르르해났다. 이윽고 그의 물기어린 얼굴이 홱 돌아섰다. 《뭐가 못 미더웠단 말인가. 뭐가?…》 방망이를 대듯 투박한 손이 형준의 어깨를 툭 때렸다. 그리고는 코멘소리로 부르짖었다. 《이건 확장일세. 번창하는 우리 공업의 면모를 달리하는, 그래서 진행하는 개건확장공사란 말일세.》 《뭐라구? 그게 확실한… 다시 말하게.》 형준은 무작정 그의 가슴팍을 내질렀다. 응ㅡ 하는 소리가 고막을 꽉 메여드는 속에 그의 성난듯 웨쳐대는 소리가 먼 꿈속처럼 들려온다. 《저게, 저게 보이지 않소? 저기에 새로 일떠서는 두기의 회전로가 안보이는가 말이요?》 그의 손끝이 길게 드리운 회전로쪽을 가리켰다. 형준은 불시에 다리가 매시시해지며 현훈증이 일었다. 눈앞에는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목구멍이 꽉 메여들고 불쑥 솟구치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것이였다. 그러니 이제껏 가슴을 서늘케 했던 그 《대보수》가 다름아닌 새롭게 앉히는 저 회전로의 능력을 감당하기 위해 벌리는 공사였단 말인가. 늘어나는 강철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진행하는 능력확장공사! 《허헛 참, 허허허…》 실성한듯 터뜨리는 시름없는 웃음이 눈물 밴 얼굴에 아니, 후덥게 달아오르는 가슴속에 하냥 샘솟아올랐다. 한껏 젖힌 머리우로 푸르디푸른 하늘이 가없이 펼쳐져있었다. 흰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있었다. 어느새에 호함지게 영글어진 탐스러운 구름송이들이. 아, 내 나라의 공업이 이다지도 빨리 변모되는가. 그사이 시련많은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겪으면서도 우리 공업은 결코 답보하지 않았구나. 14년이라는 이 세월을 줄기차게 비약의 한길만을 달려왔구나. 고맙다, 조국아!… 《한데 어떻게 이 소식을 알았나? 그 먼데서…》 형준은 한참만에야 문득 여기에 생각이 미쳤다. 《허헛 참.》 《3대대》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웬 길손한테서, 출장갔다 돌아오는 무산행렬차칸에서 들었지. 여기 어덴가에 있는 딸집에 다녀온다는 웬 로인의 입에서… 헛 참, 그 로인이 명확치 못한 소리를 늘어놓는 바람에 난 이번에 수명감소를 했네.》 《그럼 그 소릴 듣구 가던 길을 돌따서?…》 그는 시뭇이 웃었다. 가슴이 다시금 뭉클해든다. 불쑥 이제껏 뇌리에서 맴돌며 떠오르지 않던 그 이름이 생각났다. 경수! 그래 《3대대》이름은 로경수였다. 그전날 어딘가 맺힌데 없고 그래서 하나하나의 행동거지가 그저 실없게만 느껴지던 친구, 허나 지금 더할바없이 의젓한 모습이 형준의 앞에 서있다. 눈굽을 더웁히며… 《참.》 짓수굿하고 걷던 명수가 팔굽을 때렸다. 《아까 여기 책임기살 만났었는데 내가 찾아온 사연을 듣구 그가 하는 말이 누군가 어제 평양에서 우리와 꼭같은 물음의 전화를 걸어왔다는거요. 그가 바로 페열보이라축조장에서 우리가 사귀였던 그 〈꼬마〉일세. 생각날테지, 〈5대대〉》 《그가… 그런데 그라는걸 어떻게 알았나?》 《젠장, 이 보이라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그가 아니면 누구겠소? 그도 놀라서 전활 걸어온거요. 아마 어데서 이 소식을 알구…》 어딘가 실없는 소리같은것이였으나 왜서인지 지금 그 말이 진실처럼 느껴졌다. 《이태전, 꼭 12년만에 평양에서 그를 만났더랬지. 옥류관앞에서 말이요. 그가 먼저 알아보더군. 어느 돌격대에서 려단참모장을 한다누만. 이젠 몸이 틀잡혔지. 우린 대동강변을 거닐며 그때를 회고했네. 잊지 못할 나날들이 아닌가.》 문득 《꼬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늘 눈매가 싱글거리던, 웃을 때면 처녀들처럼 보조개가 옴폭 패이군 하던 그 얼굴이… 그도 자기가 한 수표를 항시 마음속에 새겨두고있는게 분명했다. 《헤여질 때 그가 한 소리가 먼지 아오? 그 시절에 찍은 사진을 좀 달라는거지. 왜 우리 저 보이라를 배경으로 〈2대대〉의 아들을 가운데 놓고 찍은 그 사진을 말이요. 출장길에 그걸 건사하고 다니겠소? 후에 보내주마고 약속했는데 아직까지 주질 못했네. 사실 시간에 빗대는건 구실이구 그 사진을 내놓자니 어쩐지…》 경수는 그때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것이 속에 걸리는지 말끝을 흐렸다. 그때 그들은 사진을 다같이 나누어 가지진 못했었다. 인화지사정(물론 사진사의 말이였다.)으로 석장밖에 뽑지 못한 그 사진을 놓고 그들사이에는 약간의 싱갱이가 오갔다. 한장은 물론 사진의 기본주인공인 장일석의 아들에게 돌려졌고 다음은 발을 동동 구르며 영악을 부리는 옥선을이한테 뺏기웠다. 마지막 한장을 놓고 경수와 《꼬마》가 옥신각신했는데 느물스런 경수가 《여, 장가를 빨리 가고싶어? 햇내기 친구한테 아직 해당 안돼.》하며 긴손으로 덥석 당겨 안주머니에 깊숙이 쓸어넣었었다. … 《〈꼬마〉한테 보내줄걸 그랬구만.》 문득 포동포동한 아들을 머리우에 건듯 쳐들고 싱글벙글하던 장일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몸이 다부져 력기선수를 련상케 하던, 해학도 많던 그 모습이… 그때 그 아들이 이젠 무척 컸을테지. 그는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 …참, 그가 왜 보이지 않는걸가. 정말 그가 가까운 곁에 있기라도 한듯 형준은 주위를 휘둘렀다. 그가 눈에 띄우지 않는게 이상스러웠다. 마치 그가 여기에 반드시 있으리라 믿었던듯이.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듦을 금할수가 없었다. 형준은 그제야 자기의 어이없는 생각에 쓸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안다면 반드시 여기에 나타나리라는 일종의 믿음같은것이 허전한 심경을 밀어내며 다시 가슴복판에 굳건히 자리잡는것이였다. 《여기에 있었구만요.》 뒤에서 기척이 났다. 풍채좋은 사람이 다가왔다. 좀전에 당위원회앞에서 헤여졌던 그 일군이였다. 《별일 없는걸 오해했구만요.》하며 그는 웃고있었다. 《아까 차안에서 그 소리를 들었을 땐 저도 속이 뜨끔했더랬습니다.》 《?…》 《저 보이라가 저한테도 전혀 인연이 없는건 아니지요.》 일순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느슨한 웃음짓는 그의 입에서 놀라웁게도 《옥선을》이라는 이름이 튀여나오는것이 아닌가. 그의 남편이란다. 안해의 입에서 때없이 흘러나오는 돌격대시절의 그 이야기를 자주 들어 이젠 자기도 어지간히 이 보이라에 관심을 두게 되였다는 그 사연… 형준은 그의 말을 꼭 꿈속에서 듣는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런 희한한 상봉도 있단 말인가. 《야, 정말! 이거 반갑습니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널뛰듯 일어예는 흥분속에서 서로 그간의 소식들이 나누어졌다. 이윽고 그는 바쁜 걸음이라면서 량해를 구했다. 그의 모습은 눈앞에서 사라졌으나 그가 던진 말들은 잦을줄 모르고 가슴속에서 하냥 일렁거리고있었다. 두 아이를 거느린 현숙한 녀인의 모습이 아닌, 여전히 명랑한 모습을 지닌 처녀의 얼굴이 눈앞에서 오래도록 사라질줄 몰랐다. 기중기의 긴 팔이 연방 물어다놓는 물관무지옆에 선 방송차의 확성기에서 노래가 울려나오고있었다.
생이란 무엇인가 누가 물으면 …
옥선을의 입에서 때없이 흘러나오던 노래, 그들모두가 조용히 따라부르던 노래였다. 사색짙은 노래의 구절에 그들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노래가 끝나고 이어 방송원이 격조높은 목소리가 찌렁찌렁 울려나왔다.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해 불꽃튀는 전투를 벌려나가고있는 여기 전투장에는 오늘까지 련 3일간 자기의 뜨거운 열정과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는 지원자도 있습니다. 어제날에는 거창한 이 야금기지를 일떠세우는데 한몫 기여했고 오늘은 또 그날의 그 정신, 그 기백을 여기에 심어가고있는 청진에서 달려온 흑색금속설계연구소의 설계가 장일석동지!…》 《?!》 형준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분명 잘못 듣지 않았는가. 그러나 녀방송원은 귀익은 그 이름을 거듭 부르고있었다. 뭐라구? 장일석이?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형준은 무작정 방송차에로 달려갔다. 마치 그가 거기 있기라도 한듯. 《아, 저기!》뒤따르던 경수의 환희에 넘친 목소리, 그의 손끝이 아슬한 페열보이라꼭대기를 가리키고있었다. 웃갓을 헐어낸 그우에서 웃동을 헤친 사람이 빨간 수기를 불길처럼 휘저으며 기중기에 신호를 보내고있었다. 그였다. 틀림없는 2대대의 그 장일석이였다. 《장일석이!ㅡ》, 《일석동무!ㅡ》 둘은 그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멀리서도 대뜸 이들을 알아본듯 벌씬 웃음짓던 그가 모자를 벗어 흔들었다. 아무렴, 그가 누구라구. … 눈뿌리가 달아올랐다. 그를 향해 달려갔다. … 세월이 흘렀으나 장일석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새 더 다듬어진듯 단단한 몸에서는 혈기가 차넘치고있었다. 부얼부얼한 얼굴이며 시원한 눈, 열정적인 목소리에서 어제날의 체취가 그대로 흘러나오고있었다. 귀밑이 약간 희슥해졌는데 그것은 오히려 그의 세련됨을 부각시킬뿐이였다. 그는 7년째 흑색금속설계연구소에서 설계원으로 일한다고 한다. 성격이 덜덜하고 속이 탁 트인 그가 어떻게 그런 분야에 몸을 잠그었는지… 그는 이해에도 세번째로 여길 찾아온다고 했다. 《아니, 그럼 동문… 이 대보수가 능력확장공사라는걸 이미전부터 알고있었나?》 그 말에 일석이 되려 눈이 둥실해졌다. 《왜? 이 보이라 새 능력설계에서 이 장일석이 한몫 담당했는데두?》 《히야, 그런걸 난 또 우리처럼…》 《알면서도 찾아왔단 말이지.》 자연 생각이 깊어진다. 장일석은 그들과 걸음을 달리한것이다. 《자기의 땀이 스민 창조물이 달라지는데 와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나? 동무라면 그래 찾아보지 않겠어?》 형준은 대답이 막혔다. 그저 목구멍이 메여들뿐이다. 《다들 이렇게 만나는구만.》 눈을 슴벅이며 일석이 하는 말이다. 정말 헤여져 만나보지 못했던 그들이 어쩌면 이 자리에서 다 만나다니… 《꼬마》도, 옥선을까지도… 잊지 못할 얼굴들이 련련히 떠오른다. 언제봐야 순한 표정을 늘 담고있던 호영이, 은근하면서도 열정적인 눈을 가진 《시인》… 형준은 언젠가 이곳 제강소에 있는 《7대대》에게서 《시인》이 어느 한 기관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본다는 소식을 들었다. 《7대대》는 자기가 한 말대로 여기 야금기지에 떨어졌다. 용해장에서 로장으로 일하고있는 그는 지금도 6대대 《시인》과 교제가 깊은듯 했다. 하긴 그때 그 시가 건설장 곳곳에 나붙고 후에 신문에까지 게재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7대대》였다. 《호영인 마침내 영웅이 되였지.》 장일석이도 지금 같은 생각을 쫓고있었다. 형준은 언제인가 신문지상에서 옹근 한면을 채운 그의 영웅적투쟁소식을 읽었다. ○○발전소건설장에서 새로운 공법과 창안들을 도입하여 나라에 막대한 리득을 주고 조업을 앞당기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는 그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어제날의 변함없는 그 모습을 신문에 난 사진에서 보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환희로운 그리움에 들레였던가. 어제날의 그 자세, 그 깨끗한 걸음으로 그는 오늘의 경지에 톺아올랐다. 부기사장의 책임적인 중임을 수행하며, 때로는 무너지는 락반에 서슴없이 몸을 내대기도 하며… 영웅, 그의 걸음걸음에 강호영영웅의 넋이 살아숨쉬고있은게 아닌가. 송별연이 끝나고 헤여지는 마당에서 터놓던 그의 목소리가 귀전에 살아오른다. 《…사실 내 이름은 곽호영이야. 그런데 수표하는 마당에선 영웅의 군상이 눈앞을 꽉 채워들며 나도 어쩔수없이 그렇게 이름이 새겨졌던거야.》 그때 너도나도 그의 어깨를 부여잡고 그냥 강호영으로 부르고 기억하겠노라고 뜨겁게 말했었다. 《그가 보구싶은걸.》 멀리 공간을 날으는 경수의 눈가에 무한한 그리움이 실려있다. 《아직 여기 소식을 모르는거지. 알았으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왔을텐데…》 저으기 서운함이 실린 그 어조, 정말 그럴가? 이제라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지 않을가. 보이라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근심보따리를 털지 못할거라던 그때 경수의 말이 느닷없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그 말이 당치 않게 느껴질가?… 《아니.》장일석이 무겁게 도리질한다. 뭔가 눈빛에 가득 실린것을 쏟을듯 하던 그는 다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형준이 역시 경수의 말을 부정하고싶은, 그의 생각과는 반대로 이글거리는 자기를 느끼고있었다. 왜선지 그가 오지 않을것이라는 기대 비슷한것이 그리고 이제라도 나타나면 어찌랴 하는 한가닥의 가느다란 위구가 마음 한구석에 갈마드는것이였다. 추연한 눈길이 실려가는 저기 우중충한 산줄기의 험준한 계곡 어딘가에 그는 지금 있으리라. 물길굴뚫기공사장에, 아니면 발전기실조립장에… 아마 물결 출렁이는 언제우에 서서 자기의 순결한 자욱이 찍힌 여기 야금기지확장건설장을 그려보며 기꺼운 미소를 보내고있을는지도 모른다. 영웅답게,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참.》 장일석이 뭔가 잊은듯 눈길을 들어 둘의 얼굴을 엇갈아보았다. 《어제 아니. 그제지. 여기 제강소에 그 친구가 나타났더랬지. 〈시인〉과 늘 의견이 분분하던 그 〈짝패〉. 그가 그저께 여기 나타나서 저 방송차에 대고 한바탕 냅다 불어댔네. 그때 그 시를 말이지.
… 오 량심이여 너는 내 생의 숨결 오늘을 추억할 그 기쁨속에 래일을 마중하는 그 락관속에 영원한 재부로 간직되여 빛날 너는 내 삶의 하나밖에 없는 밑천!…》
《정말 멋있어. 그들이 눈에 선한데…》 《7대대》는 오늘도 여전히 《시인》과 짝패를 겯고있었다. 장일석의 손에서 그때 아이를 빼앗아 안고 사진기앞에 척 들어섰던 암팡지면서도 능청스런 그 모습이 금시런듯 떠오른다. 그 손에 받들려 캐드득거리던 아기의 귀염스런 얼굴도… 형준은 장일석의 《시에 젖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젠 일석동무의 그 아이가 무척 컸을테지?》 《응?》 갑자기 그가 놀라며 성급히 팔목의 시계를 들여다보는것이였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는가? 난 그만 자리를…》 《?…》 《미안하네. 실은 우리 아들이. 우리 명호가 오늘 국제수학올림픽에 참가하러 떠나네. 아마 지금쯤 그를 태운 렬차가 여기를 가까이하고있을거네.》 수학올림픽? 벌써? 걷잡을수 없는 흥분이 온몸을 휩싸든다. 가슴은 버그러질듯 부풀어오르는데 가없이 펼쳐진 대지, 푸르른 하늘이 눈뿌리가 시글도록 안겨든다. 《동무들, 자, 그럼.》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려는 일석의 손을 들어 동시에 꽉 그러잡았다. 미처 감정을 토로할새없이 시간의 촉박감이 조급하게 마음을 다그어안았다. 《우리 함께 가서 같이 바래주자구. 저 페열보이라와 인연이 깊은 그 아들이 아닌가.》 이윽고 세사람은 해볕이 시글거리는 도로로 앞서거니뒤서거니 반달음을 놓았다. 그때 천진한 그 얼굴에서 우리 무엇을 보았던가. 그 맑은 눈동자가 우리의 가슴에 무엇을 가져다주었던가. 검푸른 산발이 우중충한 북쪽에서 빵… 기적소리가 들려오더니 역홈으로 기관차가 기세좋게 들어섰다. 렬차의 맨앞 승강대에 끼끗한 소년이 나와섰다. 서서히 멎어서는 렬차에서 소년이 총알처럼 달려왔다. 《아버지!ㅡ》 《명호야!ㅡ》 장일석은 아들을 그러안았다. 그들모두가 명호를 포옹했다. 《안됐다, 명호야. 널 이런데서 바래워서.》 《아버지, 전 알아요. 어머니에게서 다 들었어요. 아버지가 왜 여길 내내 잊지 못해하구 또 휴가때마다 여길 찾는지 말이예요.》 명호가 맑은 이슬이 돋은 눈으로 아버지를 우러렀다. 정에 겨운 미소가 형준이와 경수에게 와닿았다. 소개가 있기 전에 그 눈길은 구면지기를 대하듯 반가움을 표하고있었다. 아이적사진에서 이미 그들의 모습을 익힌듯… 《장하다, 명호야. 이번 국제수학올림픽에서 무조건 1등의 영예를 지녀야 해. 자신있지?》 명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들이, 조국이 널 지켜본다는걸 명심하거라.》 형준은 이 말을 덧붙이고싶었다. 하지만 그의 름름하고 의젓한 그 모습에서, 열정이 빛발치는 그 리지적인 눈빛에서 형준은 자기의 당부를 읽었다. 명호의 얼굴이 일순 시무룩해졌다. 서운한 눈길이 멀리 제강소쪽으로 향했다. 《작은아버지는… 못 보고 떠나는군요.》 《?…》 의아한 빛이 형준이와 경수의 얼굴에 어렸다. 《〈7대대〉를 그렇게 부른다네. 이 애는 오래전부터 그와 친교를 맺고있지.》 장일석이 무등 감개에 젖어 말했다. 메밀눈의 능청스런 친구, 어느새에 일석의 아들을 다 사귀였단 말인가. 14년전 아들의 백날때 찾아왔던 그의 안해를 역까지 따라나섰던 그때 벌써 주소성명을 교환했는지 모른다. 아마 작은아버지라도 별칭도 자작 제가 달았을테지… 《그한테 일러 함께 올걸 그랬구만.》 《일없네. 저 야금기지의 위용이, 저 거센 동음이 들려오지 않나. 저 소리가 그의 축복으로 될걸세. 우리 명호를 바래우는.》 장일석의 손길이 가리키는 저 멀리 상공에 담황색의 노을이 길게 비껴있었다. 이윽고 형준은 명호에게 뭔가 기념되게 쥐여줄것이 없나 하여 옷섶을 뒤졌다. 웃주머니에 꽂은 만년필이 손에 잡혔다. 정수가 손에서 흰 종이에 싼것을 조심스레 펼쳤다. 한장의 사진이 나왔다. 그것은 페열보이라를 배경으로 어릴적 명호를 가운데 놓고 그들모두가 나란히 찍은 그 사진이였다. 《아버지들의 모습이 담긴 이 사진을 가지고 가라구.》 그것을 정히 받아드는 명호의 눈가에 그윽한, 그지없는 행복의 미소가 흐르고있었다. 잠간 멎어섰던 렬차는 경쾌한 기적을 련이어 울리더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강대에 오른 명호가 그들을 향해 마주섰다. 무언가 속삭이듯, 다짐하듯 한없이 경건하고 숭엄한 눈빛이 그의 얼굴에 빛나고있었다. 그들은 손을 들어 흔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잘 가거라. 래일의 조국이 너를 기다린다. 우리는 너희들앞에 성실하게 살았다. 어제도 그러했듯이 오늘도 걸음걸음 책임적인 깨끗한 자욱만을 새겨간다. 이 마음을, 이 넋을 이어받으라. 그러면 너희들의 앞날은 더욱더 양양할것이며 우리 조국은 강성대국의 령마루우에 기어이 올라설것이다. 렬차는 눈앞에서 멀어져가고있었다. 아득히 뻗어간 두줄기의 레루우에서 해빛이 눈이 부시게 안겨들었다.
(함경북도 김책공기기계공장 로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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