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9(2010)년 제3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불에 대한 이야기
임 순 영
《군의동무, 준비가 다 됐소?》
군의소밖에서 들려오는 후방참모의 청높은 목소리와 함께 자동차에 발동걸리는 소리가 나를 재촉하는듯 했다.
나는 대답대신 저도 모르게 한숨을 호― 내그었다. 좀전에 나는 지휘부책임일군에게 불리워갔었다.
《군의동무도 알다싶이 눈사태로 림지에 식량을 제때에 보내주지 못해 그곳 동무들이 어려움을 겪고있는데 앓는 사람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소. 그러니 아무래도 군의동무가 후방참모동무와 함께 림지에 꼭 나가봐야 할것 같소.》
몹시 지쳐버렸는지 이렇게 말하는 지휘부책임일군의 두눈은 벌겋게 충혈져있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그었다.
나는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지금 지휘부에서는 채벌림지에 나간 돌격대원들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통나무생산은 앞으로 있게 될 전투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있었다.
지휘부에서는 토론끝에 전투력이 강한 대대를 선정하여 림지로 보냈었다. 그런데 그 대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줄이야… 대대장이 철직되였다. 때를 같이하여 예상치 않았던 눈사태에 길이 막혀 련계가 끊어졌던것이다.
지휘부에서 나온 나는 비상약들이 들어있는 구급치료가방과 짬짬이 만든 고려약들을 배낭에 넣어 림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후방참모의 부름소리에 나는 군의소문을 나섰다.
북방의 날씨는 여전히 맵짰다.
눈보라 한점 일지 않는 찬대기속으로 성에가루 같은것들이 반짝거리며 날아다녔다.
후방참모가 운전칸문을 열었다.
《배낭을 인주오. 그 가방도…》
후방참모는 나까지 운전칸에 끌어들이고나서 자리를 고쳐앉으며 말했다.
《군의동무도 편히 앉소.가뜩이나 길이 험한데다가 거의 백리를 가야 하니까. 아마 뻐근할거요.》
나는 하얗게 눈덮힌 차길을 근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 떠나보기요.》
차는 미끄러지듯 지휘부마당을 벗어나 곧장 큰 길에 나섰다.
나는 슬며시 두눈을 내리감았다.
(림지에서는 어떻게 하고있을가?)
대원들의 건강검진때문에 찾아갔던 림지의 전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눈속에 묻힌듯 한 울창한 천연원시림, 그속에서 울리는 청년들의 환희에 찬 목소리…
《어허― 넘어간다―》
그러면 온 산판이 진동하며 부르르 몸을 떤다. 눈발이 날린다. 이어 나무가지들을 미끈하게 쳐버린 길다란 통나무들이 《솨―》하는 소리와 함께 눈보라를 뽀얗게 일으키며 살같이 산아래로 미끄러져내린다.
청년들이 환호를 올린다.
그들속에서 은일대대장 (이제는 대대장이 아니지만)의 모습이 유표하게 안겨온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눈앞에 떠올랐던 환영은 이내 사라졌다.
내가 무엇때문에 그를 자꾸 생각하는것일가.
머리를 흔들어 쫓아버린 생각은 그에 대한 옛 추억을 끌고 지꿏게도 찾아든다.
김은일, 그는 나의 마음속에 이상하게 자리잡은 청년이였다.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것은 어느해 봄날이였다.
《여기 김혜영선생님이 누구십니까?》
문가에서 체격이 다부지고 시커먼 눈섭이 찌를듯이 곧추 선 청년이 웨치다싶이 묻는 바람에 나는 어지간히 당황하고 놀라기까지 했다.
청년은 혜영이라는 선생을 찾으면 당장 등에 업고 달려갈듯 한 기상이였던것이였다.
분명 치료와 관련된 일이겠으나 대학을 갓 졸업하고 군병원에서 일한지 얼마 안되는 나로서는 이름까지 꼭 짚어가며 병원으로 찾아온 사람을 만나기는 처음이였던것이다.
《저… 제가 김혜영입니다.》
나는 햇내기의사라는감을 주지 않으려고 무진애를 쓰며 태연하고도 랭정한 얼굴로 일어섰다.
《아?! 그렇습니까?》
청년은 자기가 찾던 의사가 기대했던것보다는 퍽 어려보였던지 다소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였다.
그러나 그러한 표정은 인차 사라졌다. 그러면서 자기는 군에서 건설하는 보산강발전소건설돌격대원이라는것, 지금 자기네 대장이 몹시 앓기때문에 모시러 왔다는것 등을 성급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절 어떻게 알고…》
《우리 대장동지가 이름까지 꼭 짚더군요. 선생님을 모셔오라구요. 한번 치료를 받았다던데…》
《치료를 받았다구요?》
나는 어리둥절한채 그를 따라나섰다. 병원문을 나서니 한대의 《제비》가 서있었다.
《우리 돌격대식 〈자가용〉이지요. 초라하긴 하지만 속도나 편의보장에선 승용차 못지 않습니다. 편안하게 모셔갈테니 어서 타십시오.》
청년은 성의를 보이느라 애쓰며 나를 향해 씽긋 웃었다.
《그렇다고 자전거야 어떻게…》
이렇게 말하며 앞서걷는 나를 한동안 멍하니 지켜보던 청년은 급히 자전거를 끌고 따라서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만성충수염을 수술을 하지 않고 확고하게 고친다는 의사선생이 이렇게 곱고 새파란 처녀일줄이야… 허참, 이제부터 우리 돌격대에 숱한 〈충수염환자〉들이 생기겠는걸…》
《뭐라구요?》
《아…아닙니다. 어서 갑시다.》
청년의 희떠운 말에 나는 그만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만성충수염이라… 아―)
그제서야 한달전에 아들을 따라 도에 올라간 김혜영선생님이 우리 과에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그는 림상경험이 풍부한 유능한 선생이였다. 그러니 돌격대대장은 그에게서 치료를 받았다는 소리였다.
내가 꽤 해낼수 있을가?
나는 청년이 안다는 지름길을 따라 30~40분가량 걸어서야 산마루에 올라설수 있었다.
《다 왔습니다. 저기 보이는 병실입니다.》
나는 은근히 두려운 눈으로 청년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먼저 힘있게 나붓기는 돌격대기발이 눈에 띄웠다.
어떻게 한다… 여기까지 와서 그 김혜영선생이 아니라고 할수도 없고… 환자는 그 선생을 찾았는데…
나의 복잡한 심리를 전혀 알리 없는 청년은 어느새 달려가 보고까지 하고왔는지 나를 재촉했다.
《어서 들어가보십시오. 지금 막… 급합니다.》
문앞에 서니 안에서 도간도간 끊기는듯 한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나는 황황히 병실문을 열었다.
순간 아픔에 지쳐 땀발이 솟고 다소 짜증기가 어린듯 한 청년의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찰나 청년의 검실한 얼굴에서 놀라움과 실망의 빛이 서로 엉키여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것이 대뜸 알렸다.
청년은 애써 웃음을 띠우며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시기에 수고많았습니다. 이거 제가 가야 하는건데… 정말… 미안합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이름도 김혜영… 아이쿠… 좀 봐주십시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년의 우선우선한 얼굴표정이 나사처럼 꽉 조였던 온몸의 긴장감을 순식간에 해소시켜주었던것이였다.
환자는 나의 진찰에 말없이 순응했다. 진찰결과는 명백했다. 수술을 하는것이였다.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그의 얼굴색은 홱 달라졌다.
그는 의문이 가득 담긴 사나운 눈초리로 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물론 그것은 순간에 불과했다. 예상외로 담담한 목소리가 울렸다.
《수술이라니요? 먼저번 혜영선생님은 잘하면 몇달은…》
《물론 만성충수염이기때문에 사전치료를 잘하면 한동안은 지탱할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의 인체가 기계가 아닌 이상 날자를 따져가며 병이 심해질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 지체말고 병원으로 갑시다.》
《꼭 가야 합니까? 지금이 제일 바쁜 때인데…》
《대장동지의 심정은 리해되지만 수술은 받아야 합니다. 대장사업은 다른 사람도 할수 있지만 병은 누가 대신 앓아줄수 없답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는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주사를 맞아서인지 몸상태가 좀 진정되자 그는 지금 하고있는 발전소건설의 중요성과 그 의의에 대하여 루루이 설명했다.
《안됩니다. 기껏 잡아서 3~4일간이나 유지할수 있습니다.》
《아니, 그럼 그 선생의 말은…》
《그때로부터 몇달이 잘 흘렀지요? 그러니 혜영선생님의 진단은 정확했습니다.》
《그렇단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아직은 한달이상은 일없을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아니, 확고한 신심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때라고 생각했는지 청년은 더욱 바싹 다가들었다. 나는 더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흥, 환자치고는 고집이 세군요. 그래 대장동지의 눈에는 의사라는 사람이 비올 때나 필요한 우산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지요?》
《아니, 뭘 그렇게까지야… 참, 대학을 갓 졸업했다지요?》
나는 그만 얼굴이 붉어졌다.
그 물음의 뜻이… 무례한 그의 발언에 격분을 느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너져내리는 자존심을 안고 문밖에 나서니 《제비》자전거주인이 그냥 서있었다.
그는 밖에서 다 들은 모양인지 안절부절못하고있었다.
《아니, 선생님, 그렇다고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이러나저러나 우리 대장동지야 환자가 아닙니까.》
《됐어요. 나도 어쩔수 없군요.》
《하긴 누가 우리 대장동지 고집을 꺾겠습니까. 앞으로 어떤 처녀와 같이 살겠는지…》
그는 이러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다시 밖으로 나온 그는 나의 기분을 흐리게 한 장본인이 바로 자기인듯 한풀 꺽인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 돌격대에 후방물자를 싣고왔던 차가 마침 그쪽으로 가는데 타구 가십시오.》
나는 그의 성의가 고마왔으나 마음속 근심때문에 가볍게 사양했다.
《고마워요. 하지만 동무네 대장부터 걱정하세요.》
나는 대장이 있는 병실을 돌아보았다. 뜻밖에도 그는 나를 바래우러 나왔는지 문앞에 서있었다.
비록 나를 풋내기로 깔보고 무시하기는 했어도 쓰러지지 않는 이상에는 일을 하겠다는 그의 완강한 정신력과 의지력앞에서는 나도 감동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얼마간 견지할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여 나는 며칠안으로 그를 다시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날로 나는 병원에서 조직한 약초채취조에 동원되여 나가게 되였던것이다.
나는 점차 그 청년에 대해 잊어버렸다.
한달만에 병원으로 돌아와서야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을수 있었다.
약초채취를 떠난지 얼마 안되여 군청년돌격대 대장이라는 청년이 우리 병원에서 충수염수술을 받았는데 입원기간 그가 나를 몹시 기다렸다는것이였다.
사연을 알리 없는 의사들은 한 그라프상에서 처녀와 총각이라는 도형이 서로 사귀는 점에 초점을 두고있었다.
허나 나에게는 그 초점보다도 나의 진찰이 정확했다는 그것이 더 중요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기가 일단 청진기를 댔던 환자에 대해 책임감은커녕 감감 잊어버리기까지 했던 자신의 경망스러운 처사에 스스로 욕이 나갔다.
그때에야 나는 그 고집쟁이청년의 이름이 김은일이며 군청년동맹위원회에서 사업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리 군에서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로 떠나는 청년돌격대원들을 환성하는 모임에 참가하여 뜻밖에도 그를 만나게 되였다.
돌격대제복을 단정히 입은 그의 모습은 의젓해 보였다. 모자에 있는 붉은 오각별이 별스레 눈길을 끌었다.
《혜영선생을 오늘에야 이렇게 만나는군요. 병원에서도 환송모임에 나온 모양입니다.》
《예…》
어쩐지 좀 부끄러웠다. 돌격대제복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옷을 입어서인지.
나는 눈길을 내리깔았다.
《그때 동무의 진단이 정확했습니다. 제가 괜히 고집을 부리면서… 절 많이 욕했지요?》
그는 허심하게 자기를 반성했다.
《욕이야 무슨… 오히려 자신의 책임감을 두고…》
나는 말끝을 흐리였다.
《전… 잊을것 같지 못합니다.》
《?!》
무엇을?! 그때 일을 아니면 날?
순간 병원의사들속에서 이 청년과 나와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하나의 고리로 련결시켜보는것이 한갖 롱담이 아니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지나갔다.
나는 할수없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군을 벗어나 멀리로 가는군요.》
《예, 멀리로 갑니다. 하지만…》
나는 왜 그런지 그의 뒤말이 두려워 인차 그의 말허리를 끊었다.
《또 수고해야겠군요.》
《수고야 뭘… 우리 청년들이 응당 가야 할 길인걸요. 저…》
무엇인가 말하려고 그가 정색해지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때 그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절 찾는군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가 가버리자 청년돌격대원들을 환송하는 모임이 인차 시작되였다.
군의 책임일군이 그에게 돌격대기발을 넘겨주었다. 모여선 군중들은 당의 부름을 받들고 발전소건설장으로 떠나는 청년돌격대원들을 열렬히 환송해주었다.
돌격대기발을 날리며 행진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무엇때문인지 자신이 떳떳치 못하게 느껴졌다. 여느때 같으면 례사로왔을 이 느낌은 이상하게 나를 괴롭혔다.
왜 그럴가? 그 청년이 있어서일가?
모든것을 잊으려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다.
…나는 끝내 그의 뒤말을 듣고야말았다.
《전 혜영선생이 우리와 함께 발전소건설장으로 갔으면 합니다.》
그는 돌격대제복을 한벌 내놓았다.
나는 뒤걸음쳤다.
《무엇때문에 제가 가야 합니까?》
《가야 합니다. 동무는 우리 시대의 청년이 아닙니까.》
그의 요구는 강경했다.
《아니, 전 갈수 없습니다.》
나의 목소리는 떨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눈덮인 산판에서 혼자 허덕이고있었다. 주위에는 돌격대원들이 둘러서서 나를 지켜보고있었다.
《락오자, 시대의 락오자!》
그들은 모두 이렇게 웨치고있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꿈이였다. 정말 생시같은 꿈이였다.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어둠이 깃든 창가로 다가갔다.
밤하늘의 별들이 자기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고있었다.
나는 아프게 입술을 깨문채 반짝이는 별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평범한 생활속에서 잠간 만났다 헤여지는 그런 사람들속에 묻어버리기에는 나에게 너무도 큰 충격을 준 청년이였다.
×
차는 몹시도 들추었다.
게다가 길은 또 얼마나 구불구불한지 나는 이따금 후방참모의 실팍한 어깨에 머리를 들이받군 하였다.
차가 어느 한 등성이를 톱아오르자 눈보라가 기승을 부렸다.
운전칸의 문짬새로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나는 바싹 목을 움츠렸다. 차는 가끔 가다 다져진 눈판우에서 헛바퀴질을 하군 했다.
성에가 하얗게 불린 차창밖으로 뿌연 재빛하늘이 내다보였다.
(아직 얼마나 더 가야 햘가? 불이라도 쪼였으면…)
문뜩 어린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멀구두 먼 옛날 호랑이가 사람하구 말을 하던 시절이였단다.》
할아버지이야기는 늘 이런 식으로 시작되군 하였다.
《그 시절에 사람들은 불을 몹시 그리워는 하면서도 죽음처럼 무서워했단다. 왜냐구? 그건 그때 사람들이 불이란걸 귀신이 지피는줄로 알았으니까.
헌데 나이두 너만 하구 생기기두 이쁘게 생긴 처녀애가… 그래, 이름두 너처럼 혜영이지. 그런데 그 애가 그렇게 무서운 불을 자기 집안에 끌어들이지 않았겠니.…》
나는 할아버지의 이런 엿가락같은 이야기에 끌려들어 눈을 동그랗게 올려뜨고 입을 딱딱 벌리군 하였다.
그때 할아버지는 아마도 하나밖에 없는 이 외손녀가 옛말속의 소녀처럼 아름답고 굳세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옛말을 지어냈을것이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도 흘렀다.
할아버지의 무릎우에서 맴돌던 철부지소녀가 지금은 어엿한 처녀로 자라 이제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의사가 되였으니…
《운전사동무, 뭘하오?》
갑자기 귀가에서 왕왕 울리는 후방참모의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깨여났다.
경사급한 눈길로 천천히 내리던 차가 갑자기 방향을 잃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던것이다.
《빨리 제동을 써야지 어쩌자고 그래.》
《가만 좀 있으십시오. 바퀴가 미끄러지는데… 제동을 어떻게 쓴다구, 제길.》
운전사가 화를 내며 운전대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얼결에 차창밖을 내다보니 함정같은 골짜기가 차를 올려다보고있었다.
나는 심장이 활랑거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채 얼굴을 싸쥐고 눈을 딱 감았다.
어지러운 소음소리와 함께 여러가지 무시무시한 환영들이 얼핏얼핏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귀마저 두손으로 틀어막았다. 더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한참만에야 나는 누군가가 잔등을 두드리는 바람에 머리를 들었다.
《군의동무, 정신을 차리오.》
히죽이 웃음을 띤 후방참모와 얼굴이 벌개진 운전사가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나는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핫하하…》
《허허허…》
그들은 방금 위험한 고비를 넘긴 사람들같지 않게 소리내여 웃었다.
나도 그만에야 따라웃고말았다.
《에라, 엎어진김에 쉬여간다구 한대 태우구 갑시다.》
담배를 피워문 운전사가 차상태를 살펴보았다.
이윽고 차는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참 군의동무, 내 보기엔 은일대대장과 별루 사이가 좋지 못한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소? 비밀이 아니라면 어디 좀 들어보기요.》
후방참모가 나에게 넌지시 던진 말이였다.
나는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감촉하며 차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격대에 와서 그와 만나던 때의 일들이 산발을 타고 언듯언듯 펼쳐졌다.
내가 돌격대에 입대하여 여기 발전소건설장에 도착했을 때 은일은 이미 대대장이 아니였다.
내가 온것이 그리도 기뻐 어쩔줄 모르던 《제비》청년에게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어쩌면… 어쩌면 그럴수 있어요, 네?!》
나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그냥 실꾸리처럼 풀려나왔다.
일은 이렇게 된것이였다.
지휘부의 임무를 받고 대대는 통나무생산을 위해 한달나마 림지에 나가있었다.
통나무생산이 앞으로 있게 될 려단의 전투일정에서 관건적인 고리라는것을 알고있는 은일은 대대가 맡은 임무수행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하였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자연조건과 환경으로 하여 통나무생산은 좀처럼 추설줄 몰랐다.
속이 달대로 단 은일은 안절부절못하였다.
손탁이 센 그는 땅크처럼 일만 일이라고 냅다밀던 나머지 대원들의 건강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러다나니 대원들이 지쳐 은일의 요구에 발을 맞추지 못하였다.
더욱 화가 난 은일은 어느날 아침 대원들을 모여놓고 버럭 큰소리를 쳤다.
《이쯤한 일에 맥을 놓는게 무슨 청년돌격대원이요. 이거 지휘관들이 대원들을 지내 어루만지는게 아니요? 인간은 바로 이런 속에서 단련된단 말이요. 어미새가 제 새끼 애처로운줄 몰라 벼랑에서 내리떨구는줄 아는가! 채심하시오. 그리구 각자가 자기자신을 위해서두 요구성을 높여야겠소.》
그날 오후 한 대원이 끝내 쓰러졌다.
려단과 백여리 떨어진 깊은 산속에서 있은 그 일을 알게 된 지휘부일군들은 문제를 크게 세웠다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은일대대장은 대원으로 강직되였다.
은일은 그후 과오를 씻기 위해 맡겨진 일만 억척같이 해나간다는것이였다.
《제비》청년이 침중한 어조로 이야기를 끝냈으나 나는 가슴이 답답하여 마른 입술만 감빨았다.
왜서인지 그를 동정하게 되고 지어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돕고싶은 마음이 앞서는 자신이 놀랍기까지 했다.
얼마간 군의소생활이 안착되면서 려단일군들과도 얼굴을 익히게 되자 나는 기회를 봐서 은일대대장의 문제를 조용히 알아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괜한 노릇으로 될줄이야… 그에 대한 걱정이 천진란만하고 동정하기 잘하는 여린 마음을 가진 순진한 처녀의 어처구니없는 왼심이였음을 누가 알았으랴.
하루는 대대부에서 나와 군의소로 들어가려는데 큰길쪽에서 누구인가가 털썩거리며 오고있는것이 보였다.
무심히 그 사람을 여겨보던 나는 무춤 굳어졌다.
(아니?!…)
은일이였다.
그런데 어제날 단정한 돌격대제복에 붉은 오각별이 유표한 모자를 쓰고 내앞에 나타났던 은일의 모습이 아니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로 달려가려는 충동을 억제하며 군의소로 들어오고말았다. 이런 때엔 그저 모르는척 하는것이 피차 좋을것 같았다.
자기의 떳떳치 못한(물론 내 생각이였지만) 모습을 나에게 보인다면 얼마나 거북해할것인가. 지휘부마당에는 오가는 사람도 많은데… 후에 만날 기회가 있겠지.
두손을 모아잡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던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가 대대지휘부가 아니라 곧장 우리 군의소 문으로 들어서는것이 아닌가.
나의 입에서는 어망결에 신음소리같은 외마디말이 새여나왔다.
《아니… 저… 어떻게…》
하지만 아무리 면구스러운 처지였어도 정작 만나면 매우 반가와할줄 알았던 그는 퉁명스레 나의 말을 받았다.
《왔다는 소릴 들었소. 잘 왔소.… 외지에 나와 수고가 많겠소.》
그러면서 그는 나의 대답같은것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군의소안을 휘둘러보았다.
한눈에 안겨오는 좁다란 방이다보니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빤한데 침대며 난로뒤에까지 살펴보는것이였다.
마치도 잊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헤덤비며 들어온 불청객같은 그의 태도에 나는 골살을 찌프렸다.
《우리 진혁이는 어델 갔소?》
숱진 눈섭을 꿈틀거리며 노려보는 그의 매서운 눈길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왜 그러세요? 그는 저쪽 더운 병실에…》
《더운 병실?! 좋소. 그런데 동문 그를 어떻게 한다구?》
련속 따지는듯 한 그의 물음에 나는 그만 화가 치밀어올랐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것도 여기 돌격대에서 만났는데 이렇게 대하다니…
진혁이는 림지에서 작업을 하다가 발목을 상하고 이틀전에 군의소에 내려와 치료를 받고있는 대원이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돌격대로 탄원해나온 그를 온 대대가 사랑해주었다.
그런데 통나무작업에 경험이 없다보니 그만…
상처는 심하였다.
나는 여러 생각끝에 도병원으로 후송할 준비를 하는 한편 어리고 몸도 약한 그를 생각하여 제대신청서를 지휘부에 제출하였던것이다. 보다 더 큰 작용을 한것은 은일이라는 청년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는 나를 탓하니…
이런 생각을 하는데 뜻밖에도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의 태도에서 무엇인가 느꼈는지 그의 얼굴에는 한가닥의 연한 미소가 보였다.
《미안하오. 그만 내 생각만 하다나니… 큰소릴친걸 용서하오. 정말 안됐소.》
《괜찮아요.》
《그런데 진혁이의 제대신청서라는건 무슨 소리요? 그의 병상태가 그 정도요?》
《그래요. 더 심해지면 발목을…》
《아니, 너무 과장하지 마오. 난 혜영선생이 왔다길래 믿고서 진혁이를 내려보냈는데…》
그는 몹시 서운한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았다.
그의 눈빛은 나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를 데려가도록 도와주시오.》
《안됩니다.》
나는 단마디로 거절했다.
《그는 중환자입니다. 그리구 또…》
나는 망설였다.
《나를 생각하는 혜영선생의 심정을 압니다. 내가 속해있는 대대에서 진혁이의 병으로 하여 또 환자를 발생시켰다는 말을 들을가봐 그러지요?》
나는 《그래요.》하고 대답하고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젠 대대장도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진혁이가 그쯤한 상처로 제대된다면… 전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그럼 전…》
그는 돌아서 가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달라진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자신을 다잡고서야 진혁이를 데리고간 은일이의 뒤를 따라 림지로 찾아갔다. 거기서 나는 또 한번 충격을 받게 되였다.
그날밤 나는 우등불가에서 돌격대원들의 신발과 장갑을 빨아 말리우는 그를 만나게 되였다.
수림의 우등불은 어둠을 태우며 세차게 타오르고있었다. 이따금 불찌들이 탁탁 소리를 내며 축포마냥 밤하늘에 튀여오른다.
나는 불빛에 어룽거리는 그의 수척해진 얼굴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다 쓰러지면 어쩔려구 그러세요.》
《전 쓰러져도 할 말이 없는 놈입니다.》
그는 나무들을 더 가져다넣었다. 불길은 더욱 거세차졌다.
나는 그의 일손을 거들어주었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그저 지나간 일들을 좀…
제가 처음 청년동맹사업을 시작할 때 어둠을 밝히고 뜨거운 열을 주는 저 불처럼 살자고 마음 다졌는데 지금 그렇게 살지 못하고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청년들모두가 당과 조국을 위하여 불처럼 살기를 바래서 혁명의 계주봉인 홰불봉을 우리 청년들에게 넘겨주셨는데… 전 그 믿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번쩍이였다.
불길은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나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모두가 말이 없었다. 다만 자동차의 고르로운 동음소리만이 들릴뿐이였다.
《허허, 일은 그렇게 됐구만.》
후방참모가 먼저 입을 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차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침침하게 내리드리웠던 구름이 점차 걷히는가싶더니 함박눈이 푸실푸실 내리기 시작했다.
눈내리는 차창밖에 눈을 주고 깊은 생각에 잠겼던 후방참모가 문뜩 입을 열었다.
《군의동무는 무관심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봤소?》
《글쎄요…》
《무관심이라는게 얼마나 나쁜것인가 한번 들어보오. 함께 일하는 동무가 식사를 제대로 했는지 또 아파하는지. 무슨 애로가 있는지 전혀 알려고 하지도 않고 내 알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때문에 저도 모르게 피해를 보군 하오. 무관심이라는게 바로 이렇게 해롭소.》
《…》
나는 바싹 긴장해졌다. 얼핏 생각해보니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기때문이였다.
《나도 이 무관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물건짝같은것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적도 없고 그저 심상히 여겼댔는데 얼마전에 한 일군이 자기의 교훈이라면서 말해주더구만.》
《저… 혹시 그 일군이…》
《그렇소, 바로 그 은일대대장이요.》
《그렇군요. 하지만 그 교훈을 찾기까지는 지내 비싼 대가를 치르는게 아닙니까.》
《비싼 대가라… 내 동무에게 사실을 이야기해주지.》
나는 후방참모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았다.
운전사도 놀란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 이러다 차가 물먹으러 가겠다. 앞을 잘 보오. 사실 려단지휘부에선 그가 찾아와 하는 자기 비판을 듣고 앞으로 교훈을 삼으라고 충고를 주는 정도로 그쳤는데 그는 스스로 대대장자리를 내놓고… 처벌을 받았소.》
《예?!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소. 그는 자기를 용납할줄 모르는 인간이였소. 정말 장밤을 타도 좁은 방안밖에 비칠줄 모르는 초불이 아니라 순간을 번쩍해도 모든것을 비치는 번개불같은 사람이였소.
그는 자기에 대한 처벌로써 우리 지휘관들에게 경종을 울렸소. 결과 려단안의 모든 지휘관들이 대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커졌는지 모르오. 그러니까 생활에선 더 말할것도 없고 맡은 임무수행에서도 상상을 초월하는 성과들도 일어났고… 군의동문 아마 다 모를거요.》
(아, 그래서였구나. 불같은 사람… 자기를 깡그리 태워 바칠줄 아는… 헌신적인 인간!)
나는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은일의 모습이 여러가지로 확대되여 안겨왔다.
충수염으로 오는 동통을 참느라 모지름을 쓰면서도 자기에게 시간을 연장해달라던 강의한 모습, 진혁이 문제를 두고 그처럼 가슴아파하며 나를 타매하던 모습, 스스로 자신을 처벌하여 배낭을 메고 림지로 찾아가는 성실한 모습…
나의 가슴은 뜨거운 불을 안은듯 세차게 달아올랐다.
불, 누구나 불에 대해 즐겨 이야기한다.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불처럼 열렬하게 살자고…
그런데 나는 정녕 불처럼 뜨겁게 살아왔던가.
옛말속의 소녀처럼 되고싶었지만.
허나 나는 오늘 그 옛말속의 소녀를 손저어 바래웠다.
자연의 불이 아니라 바로 시대의 불을 안고사는 이런 사람들속에 내가 살고있다는것을 알았기에 나는 자신이 더없이 행복스러웠다.
여기로 떠나오기 전에 병원청년동맹비서가 하던 말이 귀전에 울린다.
《난 동무가 탄원해나올줄 알았소. 사실은 동무가 떠나는 날 말해주려고 했는데… 얼마전에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건설장에서 내게 편지가 왔소.
김은일대대장동무가 썼더군. 혜영동무를 대대군의로 보내달라고 말이요. 그래 어떻게 할것인가 하고 망설였는데 동무가 먼저 탄원할줄이야…》
나는 가슴이 뜨거워났다.
그리하여 주저없이 여기로 떠났던것이였다.…
그래 나는 진정 불이 되련다. 이 고맙고 성실한 인간들을 위해서 그리고 조국이 부르는 길에서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이 되련다.
아, 나를 이끌어준 고마운이여…
푸근히 내리던 눈은 점점 세차지면서 하늘을 하얗게 덮었다.
세찬 눈발을 가까스로 헤쳐가던 자동차는 끝내 멈춰서고야말았다.
《더는 못 가겠소.》
운전사가 락심천만하여 중얼거렸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어떻게든 가야 하오. 이상태로 한시간만 지체했다가는 자동차마저 눈속에 묻히고말거요.》
후방참모는 차가 가지 못하는것이 마치도 운전사의 잘못이기라도 한듯 버럭 성을 냈다.
그러나 그도 어쩌는수가 없었다.
눈발은 순간에 자동차를 삼켜버렸다.
이제는 어떻게 할것인가?
나는 배낭과 가방을 찾아메고 차에서 내렸다.
후방참모앞에 다가간 나는 확고한 결심이 어린 어조로 말했다.
《참모동지, 제가 먼저 떠나겠습니다.》
그는 놀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안되오. 이런 속으로 어떻게… 아직 20리길은 실히 되겠는데…》
《참모동지, 전… 갈수 있습니다. 저도 그들앞에 떳떳한…》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후방참모는 알겠다는듯 눈을 꾹 감았다.
《군의동무, 주의해서 가오. 우리도 곧 따라서겠소.》
나는 무릎까지 치는 눈길을 헤쳐나갔다.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는지 나로서도 알수 없었다.
나는 불을 안고가는 심정으로 내가 헤쳐온 길을 돌아보았다.
멀리도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새롭게 성장한듯 한 나자신을 느꼈다.
이제 가야 할 길이 이보다 더 멀고 험해도 얼마든지 헤쳐나갈것 같은 신심으로 하여 나는 걸음을 더 크게 내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