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2(2023)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열쇠뭉치
리 정 철
(마지막회)
나는 출장온 이곳의 기계공장에서 40여일을 보내면서야 소장동지가 열쇠뭉치에 부여한 그 의미를 통절히 깨달을수가 있었다.
하나의 고리에 이어진 열쇠뭉치가 되여야 한다.
대중과 하나의 마음으로 숨쉬고 일할 때 앞으로 나라와 인민을 위해 더 큰일을 할수 있다.
나는 로동계급의 억센 심장, 불과 불이 오가는듯 열띤 심장들을 마주 대하며 또 그들의 후더운 숨결이 담겨진 목소리를 그려가는 도면우에 선과 점, 부호로 옮기고 또 옮겨가며 자기의 옳지 않았고 잘못되였던 모든것을 다 버릴수가 있었다. 그리고 기술자에게는 나의 자존심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자존심만이 절실히 필요하다는것을 가슴뜨겁게 깨달았다.
소장동지의 그 의도를 깨닫게 한 사람이 이 공장에 있었다. 물론 소장동지나 열쇠뭉치와는 아무런 련관이나 관계가 없는 사람이였지만.
그는 다름아닌 공훈설계가였다. 항상 얼굴에는 주름보다 웃음이 벙글거려 《풍년할아버지》라고 정담아 불리우는 아바이였다.
이 아바이의 심장속엔 언제나 우리가 있었다. 우리 설계, 우리 기술조, 우리 공장… 어찌 아바이뿐이랴.
이 공장 지배인동지는 때없이 우리를 찾아와 설계안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모든걸 토론했다. 그리고 실패의 쓴맛을 보고 주저앉았을 때는 그 책임을 스스로 걸머지고 나서주었다. 아니, 공장의 누구나가 설계의 주인이였다. 고급기능공들은 물론 이 공장의 수많은 사람들도 찾아와 하나하나 설계에 대한 의견과 함께 현재 제작과정에 있는 설비의 우결함에 대한 문제를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갔다.
그런데 난… 나의 설계, 나의 명예만이 마음속에 자리잡고있지 않았던가.
내가 무엇을 몰랐을가?
한번은 깊은 밤중에 이런 일도 있었다.
긴장한 설계를 다그치다가 너무 곤해 그만 깜빡 깊은 잠에 든적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고요… 끝없는 고요가 흐르는 깊은 밤 잠들었다가 깨여났을 때 나는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모두들 나의 그 쪽잠을 지켜주고있었던것이다,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그때 왜 그렇게 눈물이 핑그르르 돌던지.
《깨났구만, 설경동무.》
웅글은 공훈설계가아바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좀더 잘걸 그랬구만. … 시간이 급한 설계가 돼나서 그냥 돌아설수도 없구… 우리가 지켜주는 설경이의 단잠이야 꿀잠이지. 백날이구 천날이구 지켜주고싶은데.》
시계를 보니 1시를 가리킨다.
긴박한 설계로 모두가 눈에 피발이 섰고 입술들이 부르텄다.
쪽잠도 쫓아내며 줄기찬 사색과 탐구의 밤을 밝히면서도 나만은, 일에 지쳐 깜빡 빠져든 나의 잠만은 이렇게 지켜주는것이 아닌가.
《아바이!》
격정이 산보다 더 높을것만 같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한집안식솔이나 다름이 없는 설계가들이 내가 서있는 책상앞으로 《설경동무!》하며 다가와 분초를 다투며 마지막검토중에 있는 설계를 보여주는것이였다.
《자, 보오. 이렇게, 이렇게. 설경동무도 주었던 의견이요. 어떻소?》
나는 모두의 사색과 심혈이 천갈래 만갈래로 뻗어있는 설계도면을 들여다보며 끝내 샘솟듯하는 눈물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눈물방울이 뚤렁 떨어졌다.
《설경동무. …》
《아바이!》
《정말 좋구만. 자, 보라구. 이렇게 집체적인 지혜를 합쳐서 완성한 설계이니 흠잡을데가 하나 없는 만점짜리 설계가 태여났거던. 혼자 완성한 설계라면 이렇게 긍지롭고 기쁠수가 있겠나.》라고 설계가아바이가 하하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아준다.
그 순간에야 나는 알게 되는것같았다. 왜 아바이의 그 말이 꼭 소장동지가 하는 말처럼 들려오는것인지. 나이도 다르고 모습도 다른 이 두사람이 내게는 왜 한사람이 되여 소중한 진리를 가르쳐주는것처럼 생각되는지.
열쇠뭉치! 하나의 고리에 이어진 열쇠뭉치가 된다는것이 바로 이런것이였구나! 너무도 당연한 이 리치를 나는 굳이 외면하려 하지 않았는가.
열쇠뭉치에서 떨어지면 잃어버리기 쉬운것이 열쇠이다. 그 잃어버린 열쇠를 찾느라 얼마나 사람들은 속을 태우던가.
그런데 나는, 나야말로 그 열쇠뭉치에서 떨어진 잃어버린 열쇠였다. 하여 조직은, 집단은 잃어버린 열쇠처럼 되였던 내가
인생의 리치는 하나 더하기 둘 하고 물어야만 셋이라고 대답하는것과는 다르다.
그렇다, 교훈이라는것은 참으로 중요한것이다. 잊지 말자, 열쇠뭉치가 주는 이 교훈을. 인생의 가장 귀중한 추억으로 간직하자.
소년단시절에 갔던 야영소의 길지 않은 나날도 한생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는데 하물며 인생의 참된 진리를 새겨준 이 기계공장의 40여일을 어떻게 잊을수 있겠는가. 난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절대로.
연구소에 있을 때에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던 헛된 자존심과 쓸데없는 고집은 그야말로 엉키고엉킨 실토리에 불과했다. 바로 그 엉킨 매듭들을 하나하나 풀어내고 다시 감아준 현장생활이였다.
소총명, 자고자대 그리고 자기과신… 불미스러운 그 모든것들이 모두 씻겨져버렸다. 비온 뒤 번듯해지고 깨끗해진 길처럼.
너무도 고마운 이 사람들, 나와 함께 40여일의 낮과 밤을 이으며 하나로 고동쳐온 심장들, 모든것을 영원히 함께 할 사람들을 나는 여기서 만났고 알았다.
《설경동무! 우리가 맡은 대상설계를 꼭 훌륭하게 완성하자구.》
우린 그날 서로서로의 의견을 일치시키며 나라의 채굴설비발전에 참답게 이바지할수 있는 절실하고도 의의있는 설계의 마지막 부분품도면을 끝내 완성하고야말았다.
나는 참말로 깨달았다.
내가 여기로 떠나올 때 열쇠뭉치를 다정하게 흔들어주던 소장동지가 무엇을 바랐는가를.
자존심과 고집을 헐어버린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일생 가도 그것을 못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소장동지가 흔들어준 열쇠뭉치에 담겨진 뜻이 아니겠는가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열쇠뭉치를 다시 그려본다.
모양도 각각이고 크기도 다르고 그 용도에서도 다 차이가 있는, 꼭같은것이 하나도 없는 열쇠뭉치를.
우리 연구소종업원들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 생김새나 취미와 습관, 성격이나 바라는 리상 등 모든것에서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 소장동지는 연구소의 로설계가이든 신인설계가이든 그리고 실력이 높든 낮든 모든 사람들의 심장을 다 한고리에 이어놓을줄 아는 사람이다. 항상 간수하고다니는 그 열쇠뭉치처럼.
우리 소장동지가 어떻게 그토록 높은 실력을 지니고있는줄 이제는 알게 된것같다.
《소장동지, 열쇠뭉치의 진의미를 이제야 안것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손전화기로 이런 통보문을 보냈다.
잠시후 소장동지에게서 통보문이 날아왔다.
《설경동무, 난 믿었소. 동무가 자기를 알게 되리라는걸, 동무도 이 사회가 품들여 키워 내세워준 달리 될수 없는 사람이 아니요.》
래일 아침엔 공훈설계가아바이에게도 열쇠뭉치이야기를 해야겠어.
참, 그리고 이제 집에 가면 출장이 많으신 아버지에게도 나의 교훈을 솔직히 털어놓을테야. … 그리고 사랑하는 동무들에게도 또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는 하나로 뭉쳐 더없이 아름다와질 우리 조국의 찬란한 미래를 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