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2(2023)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열쇠뭉치
리 정 철
(제 2 회)
별안간 그 의미깊은 눈빛과 잔잔한 웃음에서 느끼게 되는것이 있었다.
소장동지가 열쇠뭉치를 우정 나의 손에 쥐여주었고 열쇠를 골라서 내스스로 방문을 열도록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였다.
소장동지는 말로 해줄수 있는 리치도 늘 이런 행동을 추기여 대방이 스스로 그것을 찾게 하군 한다.
스스로 뭔가 생각해보게 하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찾도록 곬을 틔여주고 나아가는 떠밀어준다 해야 할지… 하다면 소장동지는 내가 방문을 열면서 무엇을 깨닫길 바라는걸가?
은근히 긴장된 나는 사무실문을 열어놓고 비켜섰다.
미소를 짓고 다달은 소장동지를 앞세우고 방에 들어섰다.
《미안한대로 열쇠뭉치를 좀 뽑아다주오.》
책상과 마주앉은 소장동지는 여전히 침착하면서도 은근한 목소리로 이렇게 부탁했다.
나는 알길 없는 영문을 눅잦히며 우정 되물었다.
《예?! 열쇠뭉치말입니까?》
그러니 소장동지는 내가 그냥 꽂아놓은 그 열쇠뭉치를 가서 뽑아오라는것이다.
열쇠구멍에 꽂혀 데룽거리는 열쇠뭉치를 뽑아가지고 오면서도 나는 소장동지의 진의도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고 하여 은근히 긴장되기까지 했다.
그 어떤 엄숙한 고견을 곧 듣게 될것이라는 생각에 자연 숨이 가빠났다.
물론 나를 납득시키려 할것이다. 설계수정을 거부한 나의 태도를 용해시키고 리해시킬 그런 의도일것이다.
내가 뽑아온 열쇠뭉치를 받아쥔 소장동지는 한참이나 침묵하더니 마치 옛말이나 들려주는듯한 그런 어투로 입을 열었다.
《설경동무, 이 열쇠뭉치는 말이요, 내가 거의 10년나마 가지고다니는거요. 이걸 좀 보오. 출입문열쇠, 서류함열쇠 그리고 이건 책장열쇠, 요거 작은건 트렁크열쇠, 이 방에 필요한 열쇠만도 자그만치 일곱개지. 그것뿐인가. 이건 집열쇠, 이건 창고열쇠…》
나의 조바심이 은근히 짜증으로 변해갔다.
그래서 어떻다는건가. 내게서 무엇을 바라는가. 설계를 수정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싶었을텐데 에도는 리유가 도대체 뭘가.
나는 그만 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야말았다.
소장동지앞에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던것이다.
소장동지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옳소, 우리에겐 시간이 천금같지. 하지만 마저 듣소. 이 열쇠뭉치는 하나하나의 열쇠로 이루어져있소. 각기 다른 문들을 열어야 하는 열쇠들이지만 이렇게 뭉쳐있는거요. 만약 여기서 한개의 열쇠라도 없다면… 더 정확히 말해서 내가 서류함을 열려고 사무실열쇠를 열고 서류함이 있는 장열쇠를 열었는데 서류함열쇠가 없다면 그전에 연 열쇠들은 헛 연것이 아니겠소.》
나는 그때야 비로소 소장동지의 의도를 알았다. 그러니 나때문에 다른 설계들이 헛된것으로 될수 있다는 소리였다. 개개의 열쇠들이 모여 열쇠뭉치를 이룬것처럼 개개의 설계들이 모여 하나의 종합설계를 이룬다는것이고… 그런데 바로 나의 설계때문에 그 종합설계가 완성되지 못한다는것이다.
나는 자연 어성이 높아지는것을 애써 참으며 조용히 말했다.
《전, 리해되지 않습니다. 왜 저때문에 다른 설계들이 헛된것으로 되는지. 설계를 열쇠로 비유하셨는데 소장동지, 저는 내가 열 문을 연 상태입니다.》
《아니, 열었지만 동무가 연 문으로는 목적한것을 내갈수 없소. 동무가 안으로 들어올 때 문이 다시 걸렸소. 그래서 다시 문을 열어야 하는데 동문 지금 그냥 문이 열렸다고 고집하고있소.》
나는 숨이 차올라 대꾸를 할수가 없었다.
왜 숨이 차오르는지.
소장동지의 말에는 어딘가 옳은데가 있었다.
팔을 붙일 큰 몸통의 이음부분을 수정하기보다는 몸통에 붙일 작은 팔의 부분을 다시 수정하는것이 수월했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감빨며 끝내 한마디의 말도 내뱉지 않았다.
너 왜 시원히 설계를 수정하겠다고 대답 못하니? 그러지 말고 어서 대답해, 설계를 수정하겠다고 대답해.
리성은 이렇게 부르짖고있었으나 나는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왜 그렇게도 내 속은 좁고 못돼먹었던지.
소장동지는 한숨을 내쉬였다. 나직이 내쉬는 한숨이였으나 나는 그 한숨에 마치 천리나 날려간듯한 심정이였다.
《됐소, 실망하게 되누만. 가서 한번 잘 생각해보오.》
소장동지는 움쭉 일어났고 내가 문에서 뽑아준 열쇠뭉치를 꽉 그러쥐였다가 책상우에 내려놓았다.
잘그랑―
나는 와뜰 놀랐다.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황황히 방에서 나와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이틀간이나 출근을 못했다.
갑자기 열이 몹시 나고 몸살이 왔던것이다. 아니, 실은 묵새길수 없는 고집과 고민이 나를 꺼꾸러뜨렸던것이다.
번민과 고열속에 헤매였다. 이때껏 하루도 번짐이 없이 연구소에 출근하였고 맡은 설계에 대해서는 자그마한 흠도 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뛰고 또 뛰여왔던 내가 아니였던가. 그런데 지금 내 꼴이 어떻게 되였는가.
모두가 나를 원망할것이다. 지독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독하고 매정한가고 손가락질할것이다.
이런 망신이 또 어디 있는가. 이제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겠는가.
이제라도 나가 설계를 수정하여야 하지 않을가.
동요와 후회 그리고 타매속에 몸부림쳤지만 끝내 용기를 내여 일어서지는 못했다. 한쪽으로는 그냥 이때껏 자부해온 그 자존심이라는것이 음달아래에서 싹트는 연약한 싹처럼 머리를 쳐들어댔다.
하루종일 자리에 누워본적이란 꿈에도 없던 내가 이부자리를 한숨으로 절구어놓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이렇게 저렇게 뭉개놓을 때 그냥 눈앞에 얼른거린것은 소장동지가 쳐들어보이던 열쇠뭉치였다.
그후 몸통부분을 수정하게 되였고 나는 두어달 지방에 있는 기계공장으로 출장을 가라는 지시를 받게 되였다.
지방의 기계공장에서 시간을 다투며 진행되고있는 채굴설비제작에 동원되였으니 가서 일을 잘하라는것이였다.
괴로왔지만 한편으로는 좋았다.
고민과 번민속에 전전긍긍하던 나였으니 왜 그렇지 않으랴.
기쁨이 가슴에 일렁이였다.
일군들과 집단이 날 믿어주는구나. 그리고 나의 바재임과 몹쓸 고집도 너그럽게 리해해주었어.
소장동지, 고맙습니다. 다음번엔 절대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바깥바람을 한껏 쐬여보자. 몇달동안 지방출장 못나가보았는데… 그리고 난 집단의 리익에 저촉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내려가서 조그마한 흠도 잡히지 않게 깨끗이 일을 해놓고 올라오자. 봉창을 해야 해.
내가 출장길에 오를 때 소장동지와 부문당비서동지가 날 바래주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 늦게야 달려오는 소장동지의 손에는 열쇠뭉치가 쥐여져있었다. 아마 방문을 걸고 기차시간이 다 되여 그냥 손에 들고 달려온것같았다.
렬차가 떠날 때 소장동지는 그 열쇠뭉치를 쥔 손을 쳐들어 흔들었다.
해빛에 반짝거리는 열쇠뭉치!
왜서인지 그 반짝거림이 눈을 시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