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2(2023)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열쇠뭉치

리 정 철

(제 1 회)

 

나는 먼곳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무척 놀랐다.

한순간 나는 목이 콱 메여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듣고있소?》

부문당비서동지의 물음에 《제가 말입니까?》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렇소, 설경동무. 소장동지도 몹시 기뻐하고있소.》

그 순간 왜서인지 속보판으로 우정 나를 불러내여 《우리 연구소의 혁신자처녀요.》 하면서 볼우물이 패우도록 곱게 웃는 내 사진을 게시해주던 소장동지의 모습과 함께 여기로 떠나올 때 손에 쥐고 쳐들어보이던 열쇠뭉치가 눈앞에 비껴들었다.

열쇠뭉치!

례사롭고 범상하게 흘러가던 나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다준 열쇠뭉치였다. 해빛에 반짝이는 은빛열쇠들의 잘랑대는 소리도 금시 들려오는듯싶다.

나는 멀리 평양의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그날 온밤 깊은 잠에 들수가 없었다.

꿈결에서도 부문당비서동지의 목소리가 그냥 들려왔다.

《축하하오. 동문 채굴기계설계실 실장으로 임명됐소. 빨리 거기 일을 당겨끝내구 올라와 사업을 인계받기 바라오.》

내가 일하는 연구소는 채굴설비를 전문으로 설계하는 연구단위인데 지난해 TV에 방영된적이 있었다.

방금 어머니에게서도 같은 내용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연구소에서 내 일을 알린 모양이다.

내가 한개 부서를 책임진 책임자가 되다니?!

지금도 가슴은 막 쿵쿵 방망이질을 해댄다.

내가 꽤 해낼가? 정말?

나는 이런 희열과 고민속에 새날을 맞았고 출장지에서의 마지막출근길에 올랐다.

한겻이 어떻게 흘렀는지 몰랐다.

저쪽끝에서 때때로 쾅쿵 쾅쿵 무얼 두드리던 대형설비도 동작을 멈추고 이쪽에 즐비하게 늘어서서 사르릉 사르릉 고르로운 동음을 울리며 부속품을 깎아가던 선반들도 멎고 하하호호 웃음을 터치며 일손을 다그치던 로동자들의 오전작업도 끝난지 이제는 퍼그나 되였고… 점심시간인것이다.

공장의 공훈설계가아바이가 나를 이끌었다.

오늘 오전 계획됐던 설계도 말짱히 끝을 봤은즉 이제는 자기 집으로 가서 로친네가 맛있게 말아놓은 시원한 국수나 들자는것이다.

이 아바이로 말하면 중요한 채굴설비제작과제가 제기될적마다 설계를 같이 진행한바가 있어 잘 아는 채취설비분야의 관록이 있는 박사아바이였다.

그의 집은 공장가까운 곳에 있다.

이곳에 내려와 몇번이나 그의 집에 초청받아갔었는지 모른다.

설계가아바이의 아주머니는 60을 가까이했지만 무척 젊어보이고 억양이 센 목소리로 사람들을 곧잘 웃긴다.

나는 아바이의 청을 이번만은 사양할수밖에 없었다.

여느때 같으면 《아바이, 고마워요. 매일 찾아주세요.》 하고 고마움의 인사를 하고 콩당콩당 앞장서 달려갔으련만… 오늘은 어쩐지 혼자 있고싶은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부서책임자라는 새로운 직무를 맡았다는 생각과 함께 하나의 열쇠뭉치가 눈앞에 계속 떠오르며 잘그랑거리는 정겨운 음향이 내 심장을 울려주었기때문이다.

이제는 제집처럼 친숙해진 합숙호실에 들어서니 해빛이 잘 비쳐드는 창턱에 놓인 화분이 먼저 눈에 안겨든다.

창가로 다가가 바라보니 맑은 하늘가는 그저 푸르기만 하다.

이 공장에 온지도 벌써 40여일이라는 날이 흘렀다.

40여일, 인생에서 40여일은 과연 짧은것인가, 긴것인가?

결코 짧지는 않은것같다.

나는 여기 내려와 40여일의 하루하루를 손가락을 꼽아가며 보냈다.

나를 믿어주고 오늘의 성과를 이루도록 이끌어준 소장동지에게 어서 빨리 올라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싶다.

눈만 감으면 내가 여기로 떠나오던 날에도 의미깊은 미소를 띠우며 열쇠뭉치를 쳐들어보여주던 소장동지의 모습이 그냥 떠오른다.

기차를 타고 여기 동해기슭의 기계공장으로 내려오던 그날이 눈앞 다가들었다.

눈물이 흐르는 볼을 훔치며 푸른 바다와 그리고 아오아오 노래부르는 갈매기들과 끝없이 마음속대화를 나누었었다.

내가, 내가 정말 그렇게도 하찮은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가. 아니, 그들은 자존심이 아니라 고집이라고 했지.

하등에 필요없는 고집… 그렇다면 내가 정말 안하무인격이였는가.

갈래없이 뻗어가던 의문과 고민 그리고 그뒤로 물밀듯이 휩쓸어들던 아픈 고통.

혹시 사람들은 나의 자존심을 기술자의 자존심이 아니라 처녀의 앙큼한 타산과 리기에 가리워진 그런 속된 감정으로 여기는것은 아닐가?

사실 우리 연구소에서 나에게 달아준 애칭은 고집덩어리였다.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좋았던지… 이 가슴에 담쑥 담아보기까지 하던 말이였다.

어떤 연구사들은 날보고 고집덩어리를 뛰여넘어 하늘소발통이라고까지 하였다. 그래도 그 말이 나에겐 왜서인지 듣기 좋았다.

누가 말했던가. 가장 총명한 인간은 자기의 주장을 지키고 그것을 남들이 납득할수 있게 증명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되고싶었다.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는 그런것을 찾아 지키고 증명하여 진리로, 법칙으로 내놓는 그런 과학자, 기술자야말로 신념있고 자존심이 강한 인간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의 이 생각을 뒤집어놓는 왕청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내가 여기로 내려오기 전에 중요한 설계과제가 긴급하게 제기되였었다.

연구소에서는 한다하는 설계가들이 모두 달라붙어 각기 설계를 완성하였으며 연구소적인 심사를 진행한적이 있었다.

개개의 설계들이 하나하나 완성되여야 수값들과 해당된 수치들이 계산될수 있고 최종적인 결과가 이루어지는 설계 즉 완성된 하나의 설계가 태여날수 있는 그런 과제였다.

좀더 리해가 될수 있게 설명한다면 팔, 다리, 머리, 몸통을 각기 만든 다음 모두 조립하여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것과 같은 그런 설계과제였다.

내가 맡은 설계는 팔을 만드는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지.

나는 제일먼저 설계를 끝냈고 심의에서 우수하게 평가되였으며 쟁쟁한 설계가라는 칭찬도 듣게 되였다.

그런데 개개의 설계들을 모두 종합하는 단계에서 일련의 문제가 제기되였다. 정확히는 내가 만든 팔을 몸통에 붙이는데서 산생된 문제였다.

수정을 해야 했다. 몸통에 붙이는 팔의 이음부를 수정할것인가, 아니면 팔을 붙이는 몸통의 부분을 수정할것인가.

론의끝에 내가 맡은 설계를 수정할것을 요구하였지만 나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그것을 부정했다.

만약 설계를 이제 수정한다면 결국 설계조에서 맨 마지막에야 설계를 끝내는것으로 되는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도 실력이 모자라 맨 나중에 끝냈다고 생각할것이다.

나는 완강히 부정했다.

무엇때문인지 나자신도 몰랐다. 다만 수치라는 감정을 묵새길 용기가 없었고 스스로 수정을 인정하기에는 나의 감정이 너무도 날카로왔는지 모른다.

그 토론이 끝난 뒤 소장동지가 조용히 자기 방으로 가자고 하면서 잠간 어디 들렸다가 인차 가겠으니 먼저 방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손에 열쇠뭉치를 쥐여주었다.

묵직한 열쇠뭉치였다.

소장방에 다달은 나는 열쇠뭉치속에서 출입문을 열수 있는 열쇠를 찾으려고 하나하나 열어보았다. 몇번이나 해서야 꼭 맞는 열쇠를 찾을수 있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던 나는 흠칫 놀라 굳어졌다. 글쎄 소장동지가 복도 저켠에서 열쇠뭉치에서 하나하나 열쇠를 골라 문을 열어보는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서있은것이 아닌가.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