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12(2023)년 제5호에 실린 글

 

단편실화소설

 승자의 주로 

한 철 규

(제 4 회)

4

 

오늘 공장에서는 월사업실적을 총화하는 모임이 있었다.

회의실에 모인 종업원들은 자기들의 실적이 어떻게 평가되겠는지 가슴을 조이며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지배인의 총화를 기다리고있었다.

회의집행석에 앉은 김성철은 좌중을 둘러보며 마디마디 탄력이 느껴지는 웅글고도 무게있는 목소리로 말을 뗐다.

《이번 달에도 모든 종업원들이 열심히 학습하고 성실한 로동의 땀을 흘려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사업실적도 높습니다. 또한 거의 모든 동무들이 건설적이며 창발적인 의견을 제기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그 정형에 대하여 평가하겠습니다.》

종업원들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마친 김성철은 심중한 기색으로 말하였다.

《보다싶이 이번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사람들은 원격교육을 받고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훈은 뭔가? 학습에서 졸업이란 없다는것입니다.》

모든 종업원들을 쟁쟁한 실력가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심어린 노력을 바쳐왔던가! 그렇게 품들여 키워온 사람들이 긴장을 늦추고 자만하는것만 같아 성철은 이렇게 엄하게 추궁하는것이였다.

《우리가 높은 목표를 내걸고 투쟁해온지도 벌써 7년이 되였습니다. 우리 힘으로 그동안 엑스화공정을 완전히 꾸려 효능높은 고려약들을 꽝꽝 생산해내고있으며 GMP화의 요구에 부합되는 위생조건과 환경을 마련하는 사업도 성과적으로 완성하였습니다. 이제 기계설비들을 현대화하는 사업까지 종결짓게 되면 우리 공장은 그야말로 멋쟁이공장이 될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도 인재들의 역할에 달려있습니다. 모든 동무들은 조금도 자만하거나 도태되지 말고 분발하고 또 분발해야 하겠습니다.

기술준비실장동무!》

리철혁이 자리에서 무겁게 일어났다. 지난 시기 리철혁은 최우등의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당당한 고려약학전문가가 되였으며 기술준비실장으로서 공장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되였다.

《이번에 동무의 성적이 상상외로 떨어졌습니다. 우리 공장에는 철두철미 로동계급화된 기술자가 필요하지 귀족화된 기술자는 필요없습니다. 어떻게 된거요?》

리철혁은 수수떡처럼 벌개진 얼굴을 들지 못하고 쭈밋거리며 입을 열지 못하였다.

《무슨 잡생각을 하고있는게 아니요? 사색을 해야 하오, 사색을! 이번에 실장동무의 점수를 특별히 삭감하겠습니다.》

김성철의 말이 끝나자 리철혁이 무너지듯 걸상에 주저앉았다. 언제나 사색적인 빛이 어려있던 그의 눈이 금시 불꺼진 숯덩이처럼 되여버렸다.

모임이 끝나고 다른 사람들이 다 나갔는데도 철혁은 일어날념을 하지 않고 컴컴한 낯빛으로 앉아있었다.

침중한 기색을 짓고 고민속에 빠진 철혁을 보자 김성철의 가슴속에 은근한 련민의 정이 차올랐다.

(내가 집단앞에서 너무 심하게 저 사람을 비판하지 않았을가? 아니야, 철혁이같이 소총명이 있는 사람들은 맵짜게 자극을 줄 필요가 있어. 약은 언제나 쓴 법이지.)

철혁이 반드시 채심할것이라고 생각하며 김성철은 회의실에서 나갔다. 그러나 일은 다르게 번져갔다.

다음날 아침 출근정형을 알아보니 리철혁이 아무런 보고도 없이 출근하지 않았던것이다.

철혁의 이전 생활에서는 물론 김성철이 지배인사업을 시작한 이후로는 아직 한번도 없었던 일이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고무줄도 너무 당기면 끊어진다는 격인가? 철혁이가 그쯤한 정도의 비판에 앵돌아져 출근도 하지 않는 그런 옹졸한 사내였던가. 계속 잘한다잘한다 칭찬만 해주었더니 이젠 교만해졌는가. 인재들의 품성이 이렇게 되면 안되겠는데…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을가?)

불만스럽고 아리숭한 의혹이 줄기를 뻗고 아지를 치며 끝없이 이어지자 성철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를 위해 얼마나 많은 품을 들여왔던가. 그런데 이렇게까지… 노여움에 이어 괘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는 지그시 분을 가라앉히였다. 우선 믿고싶었다. 자기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한 철혁이가 달리는 처신하지 않을것이라고 애써 믿고싶어지는 마음이였다.

그러나 철혁이는 오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한 종업원이 김성철을 찾아와 알려주었다.

《지배인동지, 어제밤에 군과학기술위원회에 다니는 사람의 집에서 기술준비실장동무가 콤퓨터를 들고 나오는것을 보았습니다.》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철혁이가 누구라구.)

성철은 마음이 놓이였다. 비록 기분주의적으로 행동하는것이 거슬렸으나 더 잘해보겠다는 야심을 품고 밤깊도록 콤퓨터를 마주하고있다는것이 대견하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김성철은 리철혁에게 전화를 하였다.

《실장동무, 뭘 하고있소?》

《저… 지금…》

뒤말을 똑똑히 잇지 못하고 중얼중얼하는 철혁의 목소리가 가늘게 울려나왔다.

《내 방으로 오시오.》

얼마후에 리철혁이 지배인방에 나타났는데 몹시도 죄스러워하는 인상이였다. 김성철은 그에 대한 고까왔던 감정이 봄눈 녹듯 사그라져가는것을 느끼였다.

《실장동무, 자체수양을 잘해야겠소. 오늘 약초가 들어오니 검증을 책임적으로 해야겠소.》

《알겠습니다, 지배인동지.》

리철혁은 사뭇 활기띤 걸음으로 방에서 나갔다.

그때로부터 리철혁은 자신을 인간적으로 더욱더 부단히 수양하기 위해 배가의 노력을 기울이며 일해나갔다. 모든 곳에서 언제나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았고 많은 기술혁신과 창의고안을 하여 여러개의 증서를 받았다. 그는 기계설비설계와 제작에서 언제나 기둥이 되여 공장현대화에 적극 기여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김성철은 언제나 밝은 인상에 자신만만하던 리철혁의 얼굴이 그 어떤 무거운 시름에 잠겨 우울해져있는것을 보게 되였다.

전에 없이 정기를 잃고 흐려있는 눈, 어두워보이는 낯빛, 별로 맥이 진한듯해보이는 걸음걸이… 왜 그렇게 수척해졌는가고, 어데 아픈가고 물었으나 리철혁은 아프지도 않고 아무 일도 없으니 걱정말라고 하고는 일부러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이였다. 어쩐지 가냘파보이는 그 미소가 김성철의 가슴속에 무거운 납덩이를 매달아놓았다.

다음날도 또 물었으나 그저 일없다는 단마디대답뿐이였다.

김성철은 도저히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사업수첩을 펼쳐놓아도, 콤퓨터앞에 마주앉아도 글줄이나 화면은 안겨오지 않고 리철혁의 고뇌에 잠긴듯한 모습만 자꾸자꾸 어른거리였다.

워낙 그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였다. 수십명의 종업원들의 눈빛이나 행동거지, 지어 그들의 숨소리마저도 놓치지 않는 예민한 촉감과 모든 사람들을 차별없이 돌보아주는 그런 뜨거운 인정으로 그 어떤 말 못하는 어려움이나 괴로움도 속속들이 알아내여 기어이 풀어주고야 마음을 놓는 사람이 바로 김성철이였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철혁의 생각으로 머리속이 번거로와 밤새도록 잠 못이루며 궁싯거리던 김성철은 그만에야 집에서 떠나 공장으로 나왔다.

콤퓨터를 들여다보며 한참동안이나 생각을 집중해보았으나 때없이 떠오르는 철혁이 생각… 시계를 내려다보니 5시 30분이였다.

성철은 움쭉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조용한 가정적분위기속에서 철혁이와 심중의 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곧장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부엌에 들어서니 쌀을 일고있던 리철혁이 눈이 떼꾼해서 성철을 쳐다보았다.

《지배인동지, 이 새벽에… 무슨 일입니까?》

성철은 응대할 생각이 나지 않아 입을 꾹 다물었다. 앞에 두른 행주치마에 물묻은 손을 닦으며 짐짓 게면쩍은 표정을 하고 서있는 철혁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어째서 동무가 밥을 하오? 처가 더 심하게 앓는게 아니요?》

성철은 더 들어볼것이 없다는듯 제잡담 방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래목에 누워있던 철혁의 안해 변은화가 성철을 보자 병색이 완연한 낯빛으로 간신히 웃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아, 누워있으라구.》

성철은 일어나앉으려는 은화를 제지시키였다. 다음순간 가슴이 툴렁 떨어져내리는듯한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불깃불깃 혈조가 피여있던 녀인의 얼굴이 뼈에 가죽을 씌워놓은것처럼 파리해졌고 숨가쁘게 오르내리는 배는 물독만큼이나 불어나있었던것이다.

《아니, 이거 왜 이렇게 되였소, 응?》

성철은 뒤따라 들어온 철혁에게 다그어물었다.

《간복수로…》

《뭐요?! 그런데도 나한테 알리지 않고 혼자서 속을 썩였나. 동무 혼자서 붙안고 씨름질해야 무슨 뾰족한수가 있어, 처를 죽이자고 그래?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도 모진가, 엉?》

철혁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변은화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지배인동지, 애아버지를… 탓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리지 말라고… 매번 지배인동지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게 다 이 지배인을 믿지 않는 표현이야. 말끝마다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이게 뭔가. 알리지도 않고 혼자서 앓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게 이 지배인을 생각하는거요? 동무들은 정말 너무해.》

김성철은 빚어놓은것처럼 꼿꼿이 서있는 철혁을 돌아보았다.

《도종합병원에 입원할수 있게 당장 떠날 준비를 하오, 내 인차 승용차를 구해가지고 오겠으니.》

성철은 바삐 그의 집을 나섰다.

얼마후 철혁은 집앞에서 안해를 승용차에 태웠다.

김성철은 안해를 부축하고앉은 철혁에게 일러주었다.

《내 방금 병원에 전화를 했소.》 하고는 환자에게 피끗 눈길을 돌리였다.

《힘을 내오, 다 잘될거요.》

그런데 자기를 바라보는 환자의 눈빛이 몹시도 처량해보이였다. 모든것을 포기해버린듯한, 생에 대한 의욕이나 애착이라고는 조금도 있어보이지 않는 환자의 초점잃은 공허한 눈빛… 성철의 가슴은 칼로 허비는듯 몹시도 쓰리였다.

저들부부는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한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아버지구실을 제대로 했던가?

만약 내 딸이 저렇게 실려간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혼자서 가라고 보냈을가? 아니, 아무래도 함께 가야겠어.

김성철은 이렇게 결심을 내리자 지체없이 승용차에 올라탔다.

《같이 가기요. 운전사동무, 떠납시다.》

승용차는 발동소리를 울리며 떠났다.

《지배인동지, 고맙습니다.》

《고맙긴! 응당 내가 해야 할 일이지.》

은화의 눈에서 뜨겁고도 진한 눈물이 샘처럼 솟구쳐나와 두볼을 적시며 흘러내리였다.

얼마후 병원에서는 의사협의회가 열리고 이어 환자에 대한 긴장한 치료가 진행되였다.

김성철은 날이 어두워서야 병원문을 나섰다.

승용차가 발동을 걸고 떠나려는데 《지배인동지, 같이 갑시다.》 하고 다급히 웨치는 소리가 날아왔다.

차창으로 내다보니 철혁이가 총총히 차있는데로 달음질쳐오고있었다.

김성철은 급히 차에서 내리였다.

《병원에 남으라는데 왜?》

《아무래도 가야겠습니다. 공장에 일판을 잔뜩 벌려놓고… 어쩐지…》

《안돼!》 김성철은 단호히 도리질을 했다.

《지금 동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침상에 누워있는 안해곁이요.》

《지배인동지!》

입새로 간신히 흘러나오는 속삭임소리… 아주 낮게 들리는 목소리에는 그 어떤 비장한 무게와 저력이 실려있었다.

《저를 막지 말아주십시오. 지금 제가 있어야 할 위치는 공장입니다. 지배인동지의 성의에, 집단의 고마운 기대와 믿음에 제가 맡은 일을 더 잘하는것으로 보답하게 해주십시오. 하루빨리 공장의 현대화, GMP화를 실현해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승리의 보고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지배인동지!》

리철혁의 불덩어리같은 말마디들은 김성철의 달아오른 가슴속을 쿵쿵 울려주는듯싶었다.

간절한 지향과 열렬한 호소가 불꽃처럼 튀여나오는 철혁의 눈을 뜨거운 감동속에 바라보며 김성철은 그의 어깨를 정겹게 꾹 잡아주었다.

《고맙소, 철혁이! 의리를 알고 정을 안다니 그 이상 기쁜 일이 없구만. 함께 가자구. 빨리 가서 또 본때있게 일을 제껴야지.》

두사람은 격동된 심정으로 차에 올랐다.

그날 밤 공장에 도착한 그들은 설비제작작업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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