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4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비내리는 봄날에

3

                                                                               변영건

 

비가 그냥 후둑- 후두둑 내리고있었다.

축축히 젖어든 농촌길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차가 천천히 달리고있었다. 차체에는 흙탕이 뽀얗게 달라붙어있었다.

새벽녘 그이의 전화를 받고 속이 철렁하니 내려앉은 리창린이 뒤좌석에 고개를 숙인채 타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리창린에게 아직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그저 창밖으로 흘러가는 모습만을 여겨보고계시였다.

그러다 문득 길녘에 자리잡은 마을의 흙벽이 젖어든 초가이영집을 보시고 차를 멈춰세우시였다.

《들어가보구 갑시다.》

그이께서 먼저 삽짝문을 열고 마당가에 들어서시였다.

토방 한켠에 벼짚으로 엮은 둥우리도 젖어있는게 보이시였다. 키낮은 부엌문에 매달려 하얗게 반들반들해진 동그란 쇠손잡이도 눈에 띄여드시였다.

(방안엔 비가 안 새는지.…)

《주인님 계십니까?》

그이께서 밖에 있는 기척을 내시고 사람손에 대우가 난 그 문손잡이를 잡으시였다.

꿈인듯 놀라와하는 허리굽은 할머니도 꼭 당겨안으시였다.

《어디 앓지는 않으십니까? 할머니.》

그이께서 다심한 문안을 먼저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할머니와 함께 부엌에 들어서시였다.

물이 반굽되게 차있는 물독, 옹배기며 그릇가지 몇점밖에 보이지 않는 가시대, 거무칙칙한 크지 않은 쇠가마…

《자식들은 다 나가사는가봅니다.》

《예, 령감과 둘이서 오붓하니 지냅니다.》

그이께서는 첫째, 둘째 꼽으시며 자식들 안부도 알아보시고 집거두매질도 하나하나 물어주시였다.

이어 방문을 열고 노전을 깐 방안의 천반과 구석도 찬찬히 더듬어보시였다.

다시 밖에 나오시여 널 몇장을 처마에 덧대면 벽이 젖지 않을거라고 널판 구할 걱정도 하시였다.

그에게 그곳 리당위원장을 찾아 리안의 살림집들 형편을 하나하나 물으시였다. 떠나시면서는 집집의 살림살이들을 잘 돌보아달라는 후더운 당부를 잊지 않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어느 농장도 그냥 지나지 못하시였다.

리창린은 머리를 들수 없었다.

도안의 적지 않은 집들에 들려도 보았지만 그렇게 식구들 일이며 토방 젖는 걱정까지는 해보지 못한 그였다. 그저 식량은 넉넉한가, 장공급은 제대로 되는가 하는걸 물은게 고작이였다.

어쩌면 저는 생각지도 못하고 스쳐온 집집의 자그마한 가사였다.

허나 수령님께선 무척 걱정스러운 일로 여기고계신다. 만나보신 농민들이 낸 의견도 차안에서 한자두자 수첩에 빠짐없이 적어넣으신다.

리창린은 단지 뜨락또르가 들어서기 힘든 논들을 뚜져내겠다는 보고를 드려 그이께서 진걸음을 하게 되신것만 같지 않은 생각이 차올랐다.

수령님께서 차를 멀리 신명고개어방에 자리잡은 문동리로 곧추 몰게 하시였다.

그때에야 뒤에 앉은 리창린에게 물으시였다.

《난 발이 푹푹 빠져들던 그 논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누만. 뜨락또르가 있으면서도 그런 논들을 인력으로 뚜진다는게 통 마음들지도 않구. 머리를 싸매구 무슨 방도를 찾을 대신 후에 보자는걸 정말 리해할수 없단 말이요. 그래 도당위원장동문 감탕이 물에도 잘 벗겨지지 않던 논에서 김을 매던걸 잊은건 아니요?》

리창린은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께서 논김을 맸다는 소리를 누구들에게도 하면 안된다고 다짐까지 두시던 그날의 음성이 다시 울려오는것만 같았다.

그이 물으심에 저도 모르게 지난 일들이 돌이켜졌다.

농촌에 나가면 늦잡히는 영농공정과 수확고에만 신경을 쓰던 일, 자연히 목소리를 높여 일군들을 달구어대던 일…

어느새 욕을 한만큼 일자리가 나게 된다고 믿게 되였다. 관료주의를 부린다고 추궁도 여러번 받았지만 속으로는 일군이라면 그쯤한것은 각오해야 한다는 관념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는 원래 농사군출신인지라 농사에서는 역시 막힘이 없을것 같았다. 매 군의 경지면적을 뜬금으로 알고있었고 작황을 보고도 얼마만 한 수확을 낼수 있다는것마저 알아맞출수 있게 되였다.

그러다나니 농사에서만은 만능의 해결책을 내릴줄 안다고 장담하게 되였다.

농촌기계화문제도 아래실정과 나라사정을 다같이 고려하여 책임일군다운 견해를 지켜왔다.

《나도 어깨에 지게멍이 들었던 농사군출신이요. 동무네 사정은 눈감고도 다 알수 있단말이요. 그래도 전후에 대면야 지금은 한참 편하지. 그래서인지 제 땀을 들여 뭔가 나라에 보탬을 주려는 그 시대의 정신은 점점 잃어가고있단 말이요.》…

정말 한생을 두고 새겨두어야 할 그밤을 잊지 않고있었다고 주저없이 말씀올릴수가 없었다.

수령님께서 일순 리창린의 졸아드는 속을 눙쳐주시려는듯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시였다.

《경림반장이 아들을 봤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구만.》

그 말씀이 경림이네 가정사에 대해 물으시는것처럼 들려와 리창린은 또 다른 눈으로 자기를 들여다보게 되였다.

대개 그가 아래사람들을 대하며 중시하는것이란 계획, 실적, 생산 그리고 당면하게 해결을 주어야 할 문제들이였다.

요전번 경림이를 만났을적에 그의 집안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못했던것도 상기되였다.

사실 그는 경림이 아들애가 무탈하게 잘 자라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밖에 시선을 주신 수령님의 안색은 흐려지시였다.

소잔등에 채찍을 쳐든 농민의 비옷겨드랑이가 쭈욱 따진것이 눈길을 아프게 잡아끌었던것이였다.

(저러단 속옷까지 다 젖겠군.)

여름비도 맞고나면 몸시릴 때가 없지 않은 법인데 봄비야 더 오죽하랴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그이의 시선앞으로 왜선지 불현듯 추억의 갈피갈피에 새록새록 새겨두셨던 고향 만경대의 봄전경이 삼삼하게 다가들고있었다.

품을 팔기로 하고 빌려온 소, 한푼한푼 챙긴 푼전을 털어내여 쌀겨되박이나마 사오시던 할머님, 푹 삶은 콩짚에 소금과 겨를 고루 섞은 더운 여물을 듬뿍이 먹이며 소잔등에 지성스레 빗질을 해주시던 할아버님…

모진 세월에 겪던 추억이여선지 그 여물의 냄새가 잊혀지지 않으시였다.

마당가에 떠도는 두엄내, 기운 박막을 씌운 자그만 고추모판, 바가지안에서 젖은 수건에 싸여 뾰주름히 싹을 내미는 호박씨…

마음속에 그들먹이 차오르는 고향의 정취는 잊지 못할 어느 봄날로 그이를 이끌어가고있었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전후의 첫봄 어느날이였다.

그날 만경대로 가시던 길에 그이께서는 남산옆 갈매지논에서 차를 세우고 내리시였다.

아버님께서 논갈이하는 젊은이가 서툴게 빈돌이를 많이 하는것을 보시고 벗은 발로 보습을 잡으시는것이였던것이다.

《이랑을 안 잡아도 되는 논이라고 막 가는게 아닐세. 한해는 옥같고 한해는 제갈아야 논이 항상 물매가 맞는 법이라네. 이렇게 매번 제껴갈면 논가운데가 자꾸 깊어지지. 그래 모를 내자면 가래군들이 널널이 한품을 들이게 된다네.》

굽어든 등허리, 허연 수염발, 이날따라 더 늙어보이는 할아버님께서 논귀돌이를 할 때 힘겹게 보습을 쳐드시는 모습에 그만 그이의 눈굽이 화끈 달아올랐다.

한생 땅을 소중히 여기고 땀들여 가꾸어오신 할아버님이시였다. 여적 수상이 된 손자의 덕을 언제한번 바라지도 않으시였다. 그저 평범한 농민으로 땅을 다루며 이날껏 살아오시였다.

흔히 보아온 논갈이였다. 허나 수평을 잡느라 애써야 할 보잡이의 심정도, 논을 간 후에 들일 농민들의 고생까지도 다 생각해보지는 못하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아버님의 모습에서 인민의 로고를 항상 먼저 마음에 새겨안아야 한다는것을 다시한번 느껴보시였다.

…두해전 당 제4차대회에서 농촌기계화의 과업을 제시한것도 농업생산을 장성시키는것과 함께 중요하게는 하루빨리 농민들을 힘든 로동에서 해방하기 위해서였다.

세세년년 축력이나 사람의 손으로 갈아야만 했던 논들도 다 뜨락또르로 갈고 앞으로는 모내기나 김매기, 가을걷이도 모두 기계로 하려는것이 바로 당의 정책이다.

허나 그것을 앞장에서 받들어야 할 리창린이 마른논이나 갈고 웬간한 물동량이나 나른다고 이쯤해도 농사짓는게 재골에 말뚝 박는것처럼 수월해졌다는 식의 사고에 머무르고있었다. 애쓰고 노력하면 기계로 할수 있는 일도 나라사정을 앞세우고 영농절기에 빙자하며 차일피일 미루고있다.

…차창밖으로는 비에 젖는 논과 밭이 스쳐지나고있었다.

수령님의 생각도 깊어가고있었다.

자연의 바람과 눈비를 말없는 땅과 함께 온몸에 맞으며 일하는 농민들. 마음같아서는 이런 날 그들의 머리우에 맑은 하늘이 되여주고 찬바람도 막아주고싶으시였다. 아니, 그들에게 누구나 부러워할 문명과 환희, 행복을 안겨주고싶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농촌에 나가본 일군들이 낟알수확고가 높아졌다는 보고를 할 때마다 한켠으로 늘 섭섭한감이 들군 하셨다.

그것도 중요한것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먼저 땅에 묻은 농민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것이 더 중한것이다. 일군이라면 그들이 생활에서 내색하지 않는 자그만 애로가 무엇인지 먼저 느껴볼줄 알아야 하는것이다.…

비에 젖은 진탕이 점점 튀여오르는 농촌길로 그이의 사색을 실은 차가 내처 달리고있었다.

수령님께서 문득 뒤에 앉은 리창린의 거쿨진 모습을 돌아보시였다.

과연 그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느끼고있을가.

물론 아직은 뜨락또르대수도 부속품도 모자라지만 나라에 걱정을 끼치지 않고 모든걸 자체로 극복해보려는 그의 속마음을 모르지 않으시였다. 또 그가 땀들여 일하는줄도 알고계시였다.

그러나 그런 외줄배기투신만으로는 일군의 책임을 다할수 없지 않는가. 일군들은 농촌의 현실에 들어가 당에서 바라는대로 농민들이 기계로 헐하게 일하게 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지난 세월처럼 농민들이 육신으로 가대기를 끌거나 꼬창모를 내게 하자고 우리 당이 병진로선을 내놓은것이 아니였다.

수령님께서는 머리를 짓숙이고있는 리창린에게 추궁의 말씀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였다.

지금 그이의 사색은 어느 한 일군의 잘못된 생각에만 향해지는것이 아니였다.

…그때 차가 급하게 걷는 한 녀인의 곁을 지나고있었다.

짧은 경적소리에 녀인은 얼른 길을 비켜섰다.

수령님께서 고개를 뒤쪽으로 돌리시였다.

녀인은 비옷에 팔도 못 꿰고있었다. 한손은 갈라진 비옷 앞자락을 거머잡고 다른 손으로는 잔등에 업은 애를 추스르고있었다.

애가 보채는 모양인지 비에 젖은 머리도 반쯤 뒤로 돌려진채 걷고있었다.

애가 급하게 앓고있는것만 같아 수령님께서 차를 세우시였다. 다가온 녀인은 놀랍게도 경림이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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