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4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비내리는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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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영건

 

문동리 1작업반 반장인 최경림은 녀자치고 꽤 키가 큰데 비해 몸이 약했다.

그래서인지 시집을 가 첫애기를 키우는 지금은 처녀때에는 알수 없었던 고충을 받고있었다. 그것은 웬일인지 젖이 잘 안 나오는것이였다. 갓난애들은 엄마의 단젖 한모금에 몸이 토실토실해지고 얼굴색이 발깃해진다. 한데 경림에게는 때없이 오물오물하는 애의 작은 연분홍입술을 만족하게 해줄 자신이 없었다. 애가 다섯달이 잡히는 이달부터 함께 사는 친정어머니가 암죽을 만들어 좀 얼리기는 한다만 척 보매에도 다른 젖먹이들보다 실하지 못한게 알렸다.

그것이 알알해 경림은 혼자 한숨짓군 했다. 깊은 밤 애를 끼고 누워 살풋이 잠들면 꿈엔 젖많은 엄마가 된 제가 보이군 했다. 그러다 깨서는 도리머리를 하며 또 농사걱정을 했다.

경림은 봄비내리는 이날도 새벽부터 푹푹 빠져드는 논을 쇠스랑으로 번져내고있었다.

소로 갈아엎기도 베차거니와 비맞으며 멍에를 끌면 목탈이 나서였다. 그렇다고 뜨락또르는…

사실 경림은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뜨락또르를 받은 지난해부터 사시절 물이 차있어 농장원들의 맥을 뽑는 진논들을 기계보습으로 갈아엎을 생각을 품었다.

농촌경리의 기계화를 다그칠데 대한 당 제4차대회가 제시한 과업이 그의 마음에 불을 달아준것이였다.

열손이 한지레라고 기계갈이를 하면 남는 로력 또한 큰것이였다. 경림은 그새 뜨락또르모는 법과 속내도 퍼그나 익혀두었다.

올겨울에는 보습날의 개수를 줄여 동력을 크게 해보려는 궁냥도 무르익혔다. 운전수들과 토의하니 반영이 좋아 보습부터 개조하였다. 관리위원회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며 반대를 했다.

그런걸 경림은 제 고집대로 누구의 승인도 없이 진논갈이에 뜨락또르를 들이밀고야말았다. 허나 논에 들어선 뜨락또르는 얼마 갈지도 못하고 바퀴가 잠겨들며 헛돌이를 하더니 그예 발동이 죽어버리고말았다.

일을 그쯤 그치고말았어야 했는데 속에 안달이 보글보글 찬 경림은 작업반의 다른 뜨락또르까지 끌고들어가고야말았다. 종내는 두대가 다 《숨이 지게》 만들어버렸다. 리에서 벅적 끓어 딴 작업반 뜨락또르들이 드닥치고 반원들의 줄당길내기로 한겻 품을 거반 먹어서야 고장난 두대를 끌어내게 되였다.

변속기치차와 반축이 나간 뜨락또르앞에서는 풀이 죽은 두 운전수가 어느새 군에서 온 작업소 소장에게서 마른벼락을 맞고있었다.

《보습 다듬다 쇠꼬칠 만든다더니… 그래 부속들은 언제 물어다 저 숱한 논들을 다 갈아엎겠느냐 말이요? 응? 기계화의 선구자들이라는게 치마두른 반장장단에 뼈대없이 흐물떡거려서야 되는가?》

그 말도 앙금으로 가라앉지 않는데 옆에선 관리위원장이 언성이 높지 않은 가랑가랑한 소리로 경림이에게 또 신칙을 했다.

《이보라구, 그런 논이 뭐 1반에만 있나? 제논 모 큰줄 모른다더니, 내 참… 우에선 뭐라겠나? 이렇게 소꼬리에다 여물버치 팡개치듯 해보는게 기계화가 아니지.》

제 몸보다 더 아끼고 아들애보다 더 소중히 돌봐야 할 뜨락또르들…

경림은 며칠밤을 새며 혼자 속을 썩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아니, 극성스레 말리는 일을 벌려놓아 엉뚱한 사고를 저지른데 대한 반성도 해보았다.

허나 번마다 새록새록 떠오르는것은 그 진논들을 꼭 뜨락또르로 갈고싶은 생각이였다.

수령님께서도 그것을 바라지 않으실가.…

풀이 죽어 주눅도 들었지만 그 생각이 자꾸만 머리속에 감겨돌면 자신심이 생기게도 해주었다.

그래 재구를 친 뒤에도 꼭 무슨 방도를 찾아야겠다고 죽자꾸나 궁리를 짜보았다. 그러다 덧바퀴가 떠올랐다. 제재칸의 원형톱날식의 들쑹날쑹한 쇠바퀴를 덧씌우면 빠지지 않을것만 같았다.

경림은 몇번이고 다시 그려도 보았다. 선뜻 누구에게 내보이지는 못했다.

아이들이 땅바닥에 사금파리로 금긋듯 보풀인 수첩종이에 그려본것이여서였다. 또 농장이나 군에서 만들어내기 아름찬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동네에서는 사고를 낸 뒤 시작이 나쁘면 끝도 나쁘다는 격으로 그가 반장일을 더 못할거라는 소문도 쉬쉬하게 나돌고있었다.

경림은 그렇게 된다 해도 진논들을 꼭 뜨락또르로 갈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바질바질한 충동이 떠밀어 얼마전 농장에 도당위원장이 들렸을 때 경림은 주저주저하면서도 큰맘먹고 그걸 보이리라 생각했다. 사실 경림은 저를 자별하게 여겨주는 그에게 제 생각을 말짱 퍼내고 꼭 방조를 받고싶었다.

그날 농장에 들린 도당위원장은 《각을 뜬》 뜨락또르를 보고는 제창 관리위원장을 달고 그 말썽거리진논으로 갔었다.

제 먼저 두다리를 올리걷고 논에 들어서 흐물렁한 논흙을 손으로 한동안 번져냈다.

워낙 그는 그렇게 일하군 했다. 예서 군당위원장을 할 때도 농촌의 한길에 차를 세워두고 논두렁을 딛고다니던 일군이였다. 도당위원장이 되여서도 농촌에 나오면 가래질, 모내기, 김매기, 그저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면 손발걷고나서는 푸수한 농촌토배기였다. 그래 아래 일군들도 저처럼 일하라고 내놓고 달구어대는데는 누구도 할말을 못한다고들 했다.

그날도 도당위원장이 논에서 그러니 나이든 관리위원장은 땀동이나 뽑은터였다.

《이 일이 그렇게도 살을 깎소? 그래 농사군 손발바닥에 털을 자래울셈이요? 기계화를 한다는게 뜨락또르를 그 지경으로 만들어놓는가 말이요?》

경림은 그 소리에 다가서기는커녕 그만 돌아가고싶었다.

그때 고개를 돌려 그를 띄여본 도당위원장이 마침이런듯 맨발차림으로 걸어왔다.

그 걸음새만으로도 경림의 마음은 두근거리고있었다.

펼쳐보이던 수첩은 주머니속에 숨겨지고말았다.

《들으니 반장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가본데 그런가?》

도당위원장이 먼저 경림이에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경림은 터놓으려던 생각이 외려 더 꽁져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속상한 마음도 도당위원장이 먼저 터놓았다.

《…이불깃보고 발펴란 말을 네 아버지나 난 나라없던 세월에 지울수 없는 아픔으로 골수에 새긴 사람들이야. 경험주의나 보신주의멍에두 수령님손길아래서 벗겨버리며 자랐어. 경림이도 일군이 되려면 철이 든 눈으로 늘쌍 나라의 큰집살림을 대할줄 알아야 한다.》

주근주근하게 울려나오는 말소리가 고개를 짓숙이고 논뚝에 선 경림이의 가슴노리를 파고들었다.

《…난 경림이가 응석받이처럼 구는게 가슴아프구나. 나라사정이 푼푼해서 수령님께서 이 뜨락또르를 보내주신게 아니야.

전후에 네 아버지가 편질 올렸을적에도 같아. 아버지당부가 뭐였나? 대를 이어 나라에 손만 내밀라는거였나?

수령님께서 늘 잊지 않고계시는 경림이가 그래 펀펀하던 나라재산을 고장낸 사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니? 경림이야 어떡하든 제 편할 생각에 나라속을 태우는 농사군이 되여선 안되지 않냐.》

경림의 눈에 가랑가랑 눈물이 맺혀돌았다. 한생 수령님은덕을 갚아드리지 못하는걸 한으로 안고살아온 아버지가 생각나서였다.

…경림의 아버지 최동배는 전후 처음으로 조직되였던 조합의 첫 리당위원장이였다.

경림의 아버지는 1954년 초봄 어느날 수령님께 조합에 양수기 한대만 주신다면 논을 더 개간하여 농사를 땅이 꺼지도록 지어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어벌이 큰 편지를 올린적이 있었다.

그 소행을 나무라는 일부 일군들을 타이르신 수령님이시였다.

《이 리당위원장이 제 배 불리우자고 그러겠소? 알아보지 않아도 아마 보리고개에 제일 허리띠를 조여매는건 이 사람일거요. 각박한 나라사정도 남못지 않게 알고있단 말이요. 무엄하다고 채찍을 들기 전에 보답하겠다는 이런 마음을 나라가 싸안아주지 않으면 우리 땅이 살이 찌겠소?!》

수령님께서는 그해말 평남도당전원회의를 지도하실 때 아버지의 경험토론을 들어주시고 맨먼저 박수도 쳐주시였다.

서창강의 물을 양수기로 퍼올려 푼 논에서 4톤이상의 수확을 낸것이 그처럼 기쁘신것이였다. 회의후 군당위원장이였던 리창린과 함께 또다시 불러주시였다. 그만하면 양수기값은 문셈이라고 아버지의 두손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그후에도 수령님께서는 아버지를 만나주실적마다 《나에게 양수기를 달랬던 리당위원장》이라고 애틋한 정을 담아 불러주시였다.

아버지는 급병으로 때일찍 돌아가는 순간까지 나라에 손을 내민 보답을 다 못했다고 한탄을 했다.…

그래 경림은 도당위원장에게 품었던 말을 종내 한마디도 할수 없었다.

그밤 마음은 그렇게도 죄스러운데 왜선지 경림은 수령님이 못 견디게 그리워만졌다. 이태전 눈내리는 12월의 어느날 작업반을 찾아오셨던 일이 금시런듯 되새겨졌다.

…경림은 작업반선전실마당에서 처음 뵈옵는 수령님의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드렸다.

그이께서는 키가 크고 가냘파보이는 경림의 모습에서 인츰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내 다 들었다. 들었어.》

목이 갈리신듯 뇌이는 말씀에 경림의 가슴이 젖어들었다.

그이께서는 이내 얼굴색을 밝게 하시며 누가 들을세라 조용히 물어주시였다.

《꼭 아버지를 닮았구나. 그런데 어디 속탈이 있는건 아니냐?》

경림은 어버이정에 그만 고개를 돌리고 터져나오는 소리를 짓씹으며 흐느끼였다.

《반장이 반원들앞에서 그러면 쓰나.》

수령님께서는 그를 진정시켜주시고서야 주인이 앞서라고 작업반선전실문도 손수 열어주시였다.

경림은 무척 송구스러워 머리를 떨군채 선전실안에 들어섰다.

자그만 앉은책상 하나와 연탁만이 뎅그러니 놓인 곳, 회칠을 한 벽에는 구호들과 서툰 솜씨의 직관물들이 붙어있는 초라한 곳이여서였다.

경림이가 그이를 구들아래목에 모시였다.

앉은책상앞에까지 가신 수령님께서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며 장판바닥을 내려다보시였다. 거무스레 색이 변한 아래목에 노란 장판지를 오려 덧바른것이 보매에도 온돌이 더울거라는 생각이 드신것이였다.

그래도 수령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구들바닥에 손을 대보시였다. 선전실안을 둘러보시다가 방의 맨 웃목 천반에 허연 성에가 내불린것도 띄여보시였다.

그때 리안의 초급일군들이 방에 웅게중게 들어서 책상과 여라문걸음 떨어진 웃쪽에 둘러섰다.

수령님께서 다시 허리를 굽히시고 방바닥에 손을 짚어나가시였다.

한걸음, 두걸음… 또 한걸음, 두걸음…

그이 뒤에선 두손을 가슴앞에 모두어쥔 경림이가 발소리도 못 내고 발볌발볌 따라섰다.

수령님께서 끝내 방 맨 웃목까지 다 짚어보셨을 때 경림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야말았다.

그이께서 그러는 경림이를 구들아래목으로 이끄시였다.

경림이가 수령님께서 앉으셔야 한다고 우겼다.

리창린이 그이곁으로 다가갔다.

《이곳 농민들모두가 수령님을 이 아래목에나마 모셨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이께서 일어선 경림이를 다시 앉혀주시였다. 한사람한사람 손을 잡아 그 아래목에 다 둘러앉게 하시였다.

《늘 벌에 나가 사는 동무들에겐 이 아래목이 제자리요.》

경림의 뜨거워나는 눈길이 문득 수령님의 외투깃에 닿았다. 수수한 검은 털모자에서 눈녹은 물이 그이의 외투깃에 방울방울 떨어져내리고있었다. 경림은 선전실아래목이 이처럼 더운줄 이날 처음 알게 된것 같았다.

수령님께서는 올해농사정형과 생활형편을 하나하나 물어주시였다. 수첩을 펴놓으시고 농민들의 말도 또박또박 적으시였다. 나라사정이 어렵지만 뜨락또르를 꼭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시였다. 또 모든 농사일을 기계화하기 위해 일군들과 농민들이 다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그이께서 떠나시려 나서실 때도 덩지눈이 내리고있었다.

곁에서 떨어지기 아수해 울먹이며 따라서는 경림이에게 《내 자주 와보마.…》하고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는 그이의 눈가에도 축축한것이 고여오르는것만 같았다.…

경림은 그 모습을 우러를수록 정말로 그이의 속타실 생각을 잊고산것만 같아 온밤 재가 되도록 속을 태웠다.

꼬깃꼬깃 구겨진 덧바퀴를 그린 종이를 다시 펴보면서도 그게 나라에 한근의 짐이라도 덧씌우는 일이라면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경림은 이 며칠째 작업반원들과 함께 진논들을 쇠스랑으로 번져내고있었다.

그는 입고나온 비옷을 논두렁에 벗어놓은지 오래되였다. 팔이 달린 비옷이 쇠스랑을 내리찍을 때마다 불편해서였다. 그러다보니 자연 옷이 젖어들었다. 몸이 떨리고 발도 시려났다.

그래도 경림은 휴식때까지 버텨내려 했다. 그러자니 불어난 젖몸이 아파났다. 몸이 차니 더한것 같았다. 아마 애가 손주먹을 빨며 새된 소리를 내다못해 지금쯤은 발버둥질할 기운마저 없을것이다. 애가 배고픈 설음에 목이 꺽꺽 막혀드는것이 눈에 막 보이는듯싶어 경림은 이를 옥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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