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4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비내리는 봄날에

1

                                                                               변영건

 

김일성동지께서는 금시 창문을 두드리는것만 같이 느껴진 비바람소리에 잠시 드셨던 잠에서 깨시였다.

두손을 가슴앞으로 모았다가 쭉 펴며 심호흡을 크게 하고 창가림도 여시였다.

어슴새벽속에서 창밖이 희벗하게 드러나고있었다.

날이 점점 선명해지며 간밤부터 내리던 보슬비가 제법 굵어진 비발로 그이 눈앞에 다가들었다. 아침빛의 은혜로움을 온 가지와 줄기에 받으며 잎을 펼치던 싱싱한 정원수들이 비내리는 새벽엔 다소 애처롭게 보이신다. 허나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려도 분명히 밝아온 이 아침은 은백의 해빛이 안아온것임을 그이께서는 새삼스럽게 느껴보시였다.

(그래, 비내린다고 아침이 밝아오지 않는건 아니지.…)

그이께서는 두손을 등뒤로 맞잡으신채 여전히 비발이 흩날리는 창밖을 바라보고계시였다. 눈길은 이미 정원을 지나 멀리로 아득히 펼쳐진 전야를 떠올리고있었다.

이해따라 류달리 잦은 봄비였다.

워낙 봄비 잦으면 마을집 내인들 손이 헤퍼진댔지만 그이의 마음속엔 풍년을 조짐하는듯 한 이 비가 줄창 흥그러이만 느껴오지 않으시였다.

사람들이 흔히 곱게 웃는 봉오리나 푸르러가는 실버들을 보며 부풀어올리는 환희로운 감정을 농민들은 땅을 다루며 씨앗을 묻는 천생의 로동에서 먼저 느껴보는 법이다.

농민들에게서 동삼에 늘근늘근하던 때는 립춘께 움에서 파낸 무우추렴하는새에 해토머리눈사라지듯 어물쩍하니 물러가버리고만다. 그러면 거죽부터 물러드는 부근부근한 땅이 주인의 손을 바란다. 이내 통통 여문 씨앗이 엄마품을 찾듯 부드럽게 갈아번져진 땅을 찾는다. 그래서 농민들은 이맘때면 의례 갈바람부는 봄들에서 드바쁘게 새벽별, 밤별을 맞군 할것이다.

(군별논갈이실적, 높지 못한 뜨락또르의 가동률…)

외우다싶이 하신 평안남도영농실태자료가 이 새벽 그이의 사색을 봄들판에로 가닿게 하고있었던것이였다.

어제밤 수령님께서는 중공업부문협의회를 마치고 늦도록 집무를 보시며 평안남도당위원회에서 올린 그 자료를 여러번이나 읽어보시였다.

뜨락또르가 들어서기 힘든 진논들을 인력으로 번져서 논갈이를 제철에 보장하겠다는 당면안이 마음을 아프게 잡아끌어서였다.

《…농민들의 사상을 다시한번 발동하여…》에는 줄을 긋고 물음표까지 쳐놓으시였다.

그래 온밤을 새다싶이 하시였다.

…마음은 벌써 열두삼천리벌의 경림이, 온천 마영벌의 김석화,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이 창조된 강서땅의 농민들과 개천 보부리의 이악한 녀인들에게로 향해지고계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들모두를 잊지 않고계시였다. 그들과 함께 걸으신 울퉁불퉁하던 소로길이며 질척하던 논두렁길, 아이들이 뜀박질로 달려나오던 어느 마을길마저도 기억속에 소중히 안겨있었던것이였다.

평안남도의 벌방지대는 그이께서 농촌기계화의 본보기로 꾸리시려고 지난해까지 농장마다 꼽아가며 뜨락또르를 골고루 보내주신 곳이다. 그래 이해부터는 논밭갈이를 전부 기계나 축력이 감당할줄로 알고계신 곳이였다.

그런데 올봄도 그 적지 않은 논들을 농민들 힘으로 뚜져내게 한다면… 설마 농민들이 그러기를 바라지는 않을것이다. 그래서 다시한번 사상을 발동하려는것일것이다. 일군들이 농촌의 기계화를 그런 식으로 대한다면…

(리창린이…)

문제를 산생시킨 도당위원장이 떠오르시였다.

그는 늘 현실에 들어가면 평범한 사람들과 로동속에서 한데 어울리는 성품이 두드러지는 일군이였다.

허나 그 장점이 당의 의사에 면바로 따라서지 못하고 인민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가로막는것으로 된다면…

어느새 그이의 생각은 지난해 초복골의 어느 밤으로 향해지고있었다. 0시가 지난 새벽, 그 논.

…창성현지지도를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오시던 수령님께서는 문득 차를 열두삼천리벌로 몰게 하시였다.

좀 있으면 날이 든다고 도당위원장 리창린이 걱정의 말씀도 올렸다.

《그래, 잠간 들렸다가기요. 경림반장이 시집을 갔다지. 그의 땀이 스민 논벌이라도 보고싶어 그러오. 아수한걸 챙겨두고야 무슨 새벽잠인들 달겠소.》

그이께서는 문동리 마을어구에서 차를 세우게 하시였다.

《괜히 차소리를 내서 곤하게 자는 사람들을 깨우지 맙시다. 예가 분명 경림이네 논들이겠소?》

그이께서 도랑뚝을 따라 걸음을 옮기시다가 길옆에서 얼마쯤 떨어진 논배미에 멈춰서시였다. 무릎을 꺾으시고 실하게 아지를 친 벼포기를 쓸어보시였다.

《괜찮은것 같구만.》

논물온도를 가늠해보시느라 손도 잠가보시였다. 순간 손끝에 연한 잎줄기가 닿는 느낌에 손을 더 내밀어 그것을 줌안에 잡아올리시였다. 물을 뚝뚝 떨구며 줄기채 묻어나온것이 길둥근 가래잎임을 대뜸 알아보시였다.

(김이 또 성해지려나보군.)

그이께서는 서너걸음 떨어져있는 리창린이 몸을 숙이고 논고에서 물을 뽑는것을 보시며 바지가랭이를 두겹 접으시였다. 누가 말릴사이없이 제창 맨발차림으로 논에 들어서시였다.

순간 논바닥이 그이를 쓰윽 잡아당기는듯 물이 무릎우를 넘었다.

리창린이 물탕을 튕기며 황급히 논에 들어섰다.

《이러시면…》

수령님께서 기우뚱하는 그의 몸을 팔굽을 잡아 가누어주시였다.

《덤비지 마오. 생각보담 논이 꽤나 깊소.》

그이께서 선자리에서 축축히 젖어든 바지가랭이를 더 올려거두시였다.

리창린이 빗누운 벼포기를 바로잡으며 말씀을 올렸다.

《이곳에 폭탄구뎅이를 메우며 생긴 진논들이 몇정보 될겁니다. 제가 미처…》

《뭐라오? 이왕 젖었는데… 수상이라구 물이 맞춤한 논을 우정 골라 김을 맬수야 없지 않겠소.》

수령님께서 허리를 굽히시고 물속의 잡풀들을 뽑아나가시였다.

《논김매는걸 다 잊은건 아니요? 이보라구, 살랑살랑… 잠을 자는 벼가 놀라서 깬다니깐.》

발로 점벙점벙, 손으로 와락와락하는 물소리를 내며 김을 잡는 리창린에게 주의도 주시였다.

논에서 나오시여서는 옆의 보도랑으로 흐르는 맑은 물에 들어서시였다.

전조등빛이 밝게 비쳐오고있었다.

《…이런 도랑속에 넙죽한 판돌 같은걸 여라문개 놓아주면 농민들이 일마치구 집으로 갈 때 손발씻기가 얼마나 편하겠소.》

그 별치않은것마저도 농민들을 위한것이여서 그이께서는 그대로 스쳐지나게 되지 않으시였다.

《이크, 이것 보우. 감탕흙이 잘 씻기지 않누만. 응?! 동무두 같애.》

수령님께서 바지가랭이를 풀어 물에 헹구시며 혼자소리처럼 다시 외워보시였다.

《이런 논이 열두삼천리벌에두 적지 않겠소. 온 나라에 진펄이나 수렁논들은 또 얼마나 많겠나. 논갈이가 헐치 않지. 더우기 태반 녀성들이 모도 내고 김도 매겠는데…》

…그날 일이 묵여둔 체증처럼 마음에 맺혀돌다가 다시 무직하게 올려미는것이였다.

그이께서 시계를 보시고는 그냥 창문앞에 서계시였다.

(손으로 뚜져서라도…)

생각은 여전히 한곬을 타나가고있었다.

물론 농기계작업소들의 수리기지가 빈약하고 기능이 높지 못한 운전수들도 있어 뜨락또르들의 가동률이 떨어지고있는것을 모르지 않으시였다. 그것은 걸음마를 뗀 농촌기계화가 겪을수 있는 진통이다. 성장의 과정에는 시련도 난관도 있기마련이다. 그런다고 분명히 해내야 할것을 외면하다면 그만큼 길은 멀어진다. 그러면 농민들은 언제까지건 고생을 당해야 할것이다.

이제 보름남짓하면 기후가 비교적 온화한 평남도의 벌방지대들에선 강냉이씨붙임을 해야 하고 그게 끝나면 인츰 모를 내야 한다. 바로 농민들이 제일 드바쁜 깐깐오월에 접어들게 되는것이다.

수령님께서는 창너머로 뚝뚝 들려오는 락수소리를 이윽토록 들으시며 두번째로 시계를 다시 보시였다. 5분전 5시였다.

그이께서 도당위원장인 리창린을 전화로 찾으시였다.

그가 지금쯤은 깨여났으리라고 믿으시였던것이였다.

《안됐소. 내가 단잠을 깨운건 아니요?》

수령님께서는 청청하신 음성에 미안감부터 실으시였다.

《아닙니다. 푹 자고나서 금방 도농촌경리위원회에… 수령님, 이 새벽에…》

투박하니 들려오던 소리가 되려 송구함에 젖어 아예 즘즛해진 순간 들먹이는듯 한 숨소리만이 나직하니 느껴왔다.

봄갈이, 석탄, 지방산업…

그이께서도 떠올리신 순으로 묻고싶었던 말을 선뜻 떼지 못하시였다.

《이보시오, 도당위원장동무…

부름말뒤에 잠시 여유를 주신 동안 그것은 다 뒤전으로 미루고 직방 물으시였다.

《그래 도당위원장동문 이 봄에 열두삼천리벌엔 몇번이나 나가보았습니까?》

《예?! 저…》

놀라움에 뒤이어 인츰 조용하나 솔직한 대답이 울려왔다.

《제 얼마전 지나던 길에 잠간… 그날 문동리에 들렸다 경림이가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뜨락또르를 두대나 고장을 냈길래 말을 좀 했습니다.》

그이께서는 뜻밖에 들으신 경림이네 일이 무척 걱정스러우시였다. 작업반의 전재산이 그렇게 되였다니 꼭 무슨 곡절이 있을것만 같으시였다.

《차고에서 놀리면서 그러지는 않았을테지요?》

《…타산없이 무작정 진논을 갈겠다고 몰고들어가 그렇게 된것 같습니다. 그래 저 하나 편할줄만 알고 나라사정은 죽 끓는지, 밥 끓는지 알려 하지 않는다고 욕을 좀 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순간 속이 저린듯 한 아픔을 받으시였다.

나타난 현상에 대한 리창린의 평가는 다소 리해가 가시였다. 허나 그가 말한대로 경림이 깊은 강의 큰 고기를 잡느라 치마차림으로 막무가내 헤덤볐을것 같지도 않으시였다. 경림이도 무슨 마련을 가지고 접어들었을것 같으시였다. 더우기는 경림이나 농민들이 진논도 뜨락또르로 갈고싶어한다는데 마음이 더 쏠리시였다.

(꼭 그렇게만 보아야 하는가?…)

아픔은 그래서 오고있었다. 결코 리창린의 걱정처럼 나라사정으로 인하여 오는 아픔이 아니였다.

수령님께서는 전후 처음 만나보셨던 리창린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추억되시였다.

물날은 혼방직적삼을 입고 걷어올린 아래도리가 온통 흙빛으로 거무스레 타있던 사람, 삽을 든 손을 어쩔지 몰라 논머리에서 어줍게 그이를 뵈옵던 군당위원장.

그가 눈물을 머금고 뇌이던 과거지사도 모두 되살려지시였다.

해방전시절 일가의 남정들이 돌려가며 입었다는 베잠뱅이, 지지리도 가난하였던 산골소작농의 아들.

…돌이켜보면 해방, 토지개혁, 준엄한 전쟁, 농업협동화라는 거창한 사회의 변혁을 승리로 주도한 우리의 당이 그 나날 참되게 키워온 사람들중의 한 일군이 바로 그가 아니였던가.

그렇게만 믿고싶으시여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경림반장이 무슨 타산을 세우고 접어들었을것 같은데 알아본건 없습니까?》

《예. 궁리라야 5련식보습을 3련식으로 바꾼것인데 그것만으로 뜨락또르가 진논을 와랑와랑 갈아번질줄 안 모양입니다.》

수령님께서는 리창린의 소리에 자못 흥미가 동하시였다. 동력이 커지게 하려는 의도라는 생각으로 그냥 스치게 되지 않으시였다.

《도당위원장동문 무슨 방도를 생각해본게 없습니까?》

《저, 마른 논을 다 갈재도 바쁜 목이여서 아직은…》

대답이 궁한 모양인지 주춤했던 답변이 다시 이어졌다.

《봄갈이나 넘기구선 차차루… 당장은 뜨락또르도 고장내지 않으면서 봄갈이가 늦어지지 않게 계획한대로 조직을 하겠습니다.》

자책은 느껴지지만 바라시던 대답은 아니였다.

경림이네는 아득바득하는 모양인데 그는 바쁘다며 시재는 덮어둘 심산이다. 그러다나니 당에서 바라는것과는 그릇된 사업을 조직하려는것이다. 그것이 잘못된것임을 정말 모른단 말인가. 그렇게 고안해낸 사업으로 당정책을 받든다고 생각할 정도로 되였단 말인가.

그게 더 가슴아프시였다.

이어 송화구로 그이의 격하신 물음이 비발치듯 흘러들었다.

《틀렸습니다. 농민들 요구가 높아지는데 후에 보자는게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뜨락또르를 못 뛰게 만들면서도 해보려고 애쓰는 일을 제껴놓고 그래 무엇을 조직한다는겁니까? 우리 농민들이 이만해도 오금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건 아닙니까? 대답해보오! 도당위원장!》

《…》

아픈 매는 그이께서 드시였지만 어쩌면 마음이 더 쓰려나는것도 그이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한순간에 그에게 모진 추궁보다 현실에서의 깨달음이 더 필요하다는것을 느끼시였다.

그래 더 다른 말씀이 없이 이렇게 물으시였다.

《동무도 지금 저 비소리가 들립니까?》

그이께서는 대답을 바라지 않으시였다.

《오늘은 우리…》

숨결을 고르롭히느라 끊기였던 말씀이 다시 이어지셨다.

《함께 열두삼천리벌에 나가보기요. 봄비가 오니 농사가 잘되겠다는 생각보다 저 찬비를 맞으며 이 새벽부터 신고할 농민들의 모습이 마음에 걸리여 이대로 있을수 없구만.…》

수령님께서는 송수화기를 놓으시고도 오래도록 사색의 세계에 계시였다. 자신께서 저 찬비를 다 맞으시고 농민들에게만은 봄의 따뜻한 훈향만을 안겨줄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을듯만싶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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