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3호에 실린 글

 

수필

봄빛짙은 창가에서

                                                         최정남

 

시대는 끊임없이 전진한다. 그것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불과 몇분동안에 살림집이 일떠서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며 단 몇초동안에 수십수백만건의 기술혁신으로 비약하는것이 오늘의 세계이다.

비약하는 이 시대에서 내가 산다는것으로 하여 긍지도 가득했다. 이러한 내가 시대에 아득히 뒤떨어져있다고 생각해본적은 아마도 오늘이 처음인듯싶다.

오랜 기간 한직종에서 일해온 나는 남들처럼 뚜렷한 공을 세워 이름을 빛내여본적은 없다. 하지만 초소를 굳건히 지켜 성실하게 일해왔다는 제나름의 자부심은 컸다.

이런 나를 두고 동료들은 늘 쾌활한 웃음속에 《어항속의 금붕어》라고 제나름의 의미를 담아 불렀다. 한마디로 아늑한 사무실이 하나의 어항이라면 그 밖을 나설줄 모르는 나는 아름다운 금붕어라는것이다.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말하든 나는 거기서 일종의 긍지까지 느꼈다.

초소를 굳건히 지키는것이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내가 하는 일이란 요구하는 자료를 제때에 수집하여 정리하는것인데 정보산업시대인 오늘 콤퓨터 하나면 얼마든지 할수 있는 일이 아닌가.

나는 부서의 젊은 사람들이 자주 과학연구기관이나 공장, 기업소의 현장으로 가는것을 보고 머리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아니, 어떤 때는 답답하기 그지없어보였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활관에 금이 가게 될줄이야.…

하루일을 만족스럽게 끝낸 나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봄빛이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퇴근시간이 되여온것이다.

열려진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보니 구내에 꾸려진 꽃밭에는 갖가지 고운 꽃들이 앞을 다투며 피여있었다. 꽃밭옆에는 한껏 봄물이 올라 통통해진 가지에 짙어가는 푸른 잎새를 펼친 정향나무가 싱싱한 자태를 자랑하는듯 했다.

한동안 밖에 눈길을 주었던 나는 불현듯 봄날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기온이 낮다는 생각에 사무실 한가운데 놓여있는 어항에 눈길을 돌렸다. 거기에는 내가 애착을 가지고 기르고있는 색갈고운 크고작은 금붕어들이 있었다. 여가시간이면 먹이를 주군 했더니 금붕어들도 날 알아보는 모양인지 어항앞에 다가서면 모여들어 재롱을 부리군 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을 두는지도 모른다.

나는 금붕어들을 생각하며 창문을 닫았다.

이때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이어 얼굴이 사색이 된 실장이 들어섰다.

그는 즉시 나에게로 다가와 말했다. 노여움이 실린 어조였다.

《최동무, 어떻게 된 일이요? 지금 분초를 다투며 새 기술, 새 제품들이 련속 쏟아져나오는데 이런 낡은 자료를 제출하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 자료는 이미 하나하나 뽑은 자료들입니다.》

나는 실장이 주는 자료에 눈길을 박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실장이 하는 다음말은 정말 속이 좋지 않게 가슴에 칼이 되여 박혔다.

《이걸 보오. 김동무가 현장에서 보내온 자료요. 그가 아니면 어쩔번 했소? 이거 정말 금붕어가 된게 아니요? 현실에 좀 나가보오.》

실장은 갔지만 그가 남기고간 말은 여전히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나는 김동무가 보내온 자료를 더듬어보았지만 눈에는 글줄이 아니라 키가 꺽두룩해서 언제나 싱거워보이는 그의 모습만이 안겨올뿐이였다.

내가 늘 비웃군 하던 김동무. 나는 그와 나를 새삼스럽게 대비해보았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날아다니는 홍길동이라고 한다.

나는 어항속의 금붕어.

그는 무슨 과제가 제기되면 즉시 현장으로 떠난다.

나는 콤퓨터앞에 마주앉는다.

나와 무엇이 다른가.

그는 언제나 현실에서 산다.

나는 주는 먹이나 먹는 어항속의 금붕어, 관상용이 된것이다.

창조력과 실천력의 마비, 구태의연한 지난날의 타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있으니 창조와 실천에 대한 열정이 없이 현실을 외면할 때 누구든 례외없이 관상용이 된다는것은 자명한 일이다.

관상용과 같은 존재, 이것은 우리의 전진도상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존재이며 벅찬 시대의 숨결과는 전혀 어울릴수 없는 오늘의 락오자, 시대의 도피자이다.

나는 더 생각을 잊지 못하였다. 머리가 숙어졌다.

눈에 꼬리를 치며 오가는 어항속의 금붕어가 안겨왔다.

많은 사람들이 웃으며 어항속의 금붕어라고 할 때마다 그 어디에도 나가지 않고 헛눈도 팔지 않고 오직 자기 일만을 안고 산다는것을 삶의 긍지로까지 여겼으니 어떻게 막아서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기세드높이 용진할수 있었단 말인가.

그 어떤 신조처럼 자리잡았던 나의 생활관이 허물어짐을 느꼈다.

이제라도 락심하거나 동요함이 없이 무거운 과제를 억척같이 떠메고 완강히 돌진해나갈 각오를 가지고 정면돌파전의 선구자들처럼 대담하게 용약 현실속으로 뛰여들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영예로운 승자가 될수 있는것이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동무처럼 살고있는가. 나도 그 대오속에 더 늦기 전에 들어서야 한다.

드디여 나는 오래동안 마음속에 고집스럽게 자리잡고있던 어항을 단호히 깨버렸다.

나는 창문가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순간 차고 신선한 봄바람이 확 안겨들었다.

나는 사무실의 어항에는 아랑곳없이 오래도록 창가에 서서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그러자 심신이 거뜬해졌다.

이제 더는 어항속의 금붕어가 되지 않으리라.

나는 시대의 벅찬 흐름속에 뛰여든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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