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3호구

변 일 문

(제 1 회)

1

 

퍽 오래전에 있은 일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인도로로 한 소년이 정신없이 뛰여가고있었다.

예닐곱살쯤 나보였는데 이마가 도두룩하고 눈빛이 초롱초롱한게 척 보기에도 여간내기가 아닌것 같았다.

앙증스러운 코마루와 꼭 다물어버린 입술에선 그 나이또래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고집과 당돌함이 엿보였다. 그런데 왜서인지 소년은 울고있었다.

부르쥔 종주먹, 먼지오른 바지가랭이…

땀때문인지 눈물때문인지 소년의 얼굴은 알룩달룩했다. 이 소년은 다름아닌 일곱살때의 나였다. 나는 그때 평양출장을 떠나기 위해 역으로 나가신 아버지를 따라가고있었다. 지방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어릴적 나의 많고많은 소원들중에 제일 큰 소원은 출장가는 아버지를 따라 평양에 한번 가보는것이였다. 도사범대학 교원이였던 나의 아버지는 평양출장이 잦았으므로 나에게는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한번 나를 데리고다닌적이 없었다. 출장갔던 아버지가 돌아와 나의 작은 동가슴에 평양에서 가져온 권총곽이라든지 큼직한 당과류봉지를 아름벌게 안겨줄 때에야 나는 사연을 짐작하군 하였다. 그때면 나는 볼이 풍선만치나 불어나 게정을 쓰군 하였다. 아버지한테서 다음번엔 꼭 데리고 간다는 그리 미덥지 못한 대답이라도 받아내고서야 나는 동네애들에게 자랑하려고 문을 박차군 하였다.

그날은 어떻게 아버지가 평양가신다는것을 미리 알게 됐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반시간나마 발을 구르고 몸을 흔들며 사정도 하고 떼질도 하며 우는척 했지만 끝끝내 아버지는 혼자 떠나셨다. 그때 나는 진짜 울었다. 딱친구인 림송이도 그날 이모의 결혼식때문에 부모들을 따라 평양에 가기때문이였다. 전날 림송이는 자기가 유치원에서 제일먼저 평양에 간다고 으시댔다. 그러면서 뭐 군사놀이대장은 마땅히 자기가 되여야 한다나.

자기네 집 텔레비죤이 우리 집의것처럼 흑백색이 아니라 천연색이라는것도 그 중요한 리유중의 하나였다. 그만 말문이 막힌 나는 하는수없이 그날만은 그 애에게 군사놀이대장을 양보하고 부관이 되였다. 얼마나 분한지 몰랐다.

나는 내자신이 몹시도 가엾게 생각되였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도 다음날 평양출장을 떠난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나는 너무 좋아 구들장이 깨지게 콩당콩당 모두뜀을 뛰였다. 림송이한테 지지 않게 되였다는 생각과 텔레비죤으로만 보아오던 지하전동차며 관성렬차랑 타보게 되였다는 가슴뛰는 생각에 나는 잠까지 잊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를 떼여놓고 혼자 가겠다고 하실줄이야. …

할머니가 어깨를 붙잡지만 않았어도 나는 아버지를 놔주지 않았을것이다.

아버지를 태우러 왔던 대학소형뻐스의 부르릉소리가 창문너머로 들려온 다음에야 할머니는 집게같은 두손을 풀었다. 순간 나는 재워졌던 고무총알처럼 튀여나 문밖으로 내달았다. …

문득 내가 라이터로 고양이의 한쪽수염을 다 태워버렸을 때 엄마가 속상해서 하던 말이 생각났다.

《넌 첫째다리밑에서 주어온 아이다. 그러니 엄마말을 그렇게 안 듣지.》

신의주에서 남신의주로 나가는 도로상에 네개의 다리가 있었다.

첫째다리란 말그대로 첫번째 다리라는 뜻이다. 누가 때리거나 욕하지도 않았는데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아마도 태여나 처음으로 제 설음에 겨워 울었던것 같다. 내가 정말로 첫째다리밑에서 주어온 아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다지도 아버지나 할머니가 내 마음을 몰라줄수 있단 말인가. 나는 팔소매로 눈물을 뻑 닦으며 달음질쳤다. 내가 역앞에 다달았을 때 어떤 아지미의 엄청나게 큰 목소리가 귀가에 왕왕 들려왔다.

《평양쪽으로 려행하시는 손님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잠시후 신의주역을 떠나 평양역으로 가는 제6렬차의 차표를 팔아드리겠습니다. 차표를 사실 손님들은…》

(차표라는게 도대체 뭘가?)

나는 목청 큰 그 아지미의 말이 잘 리해되지 않았다.

…역사안에 들어선 순간 나는 더럭 겁이 났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를 나는 처음 보았던것이다. 앉은 사람, 선 사람, 짐을 들고 나가는 사람, 반대로 짐을 들고 들어오는 사람… 여기서 어떻게 아버지를 찾는담.

어른들만큼 키가 크다면 발뒤꿈치를 들고 찾을수도 있으련만 아무리 목을 기린처럼 뽑아도 나의 눈에 보이는것은 오직 어떤 키다리아저씨의 혁띠뿐이였다. 나는 신발을 벗고 긴의자우에 올라갔다. 그래도 키는 모자랐다. 발돋움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학성아.》하는 짜랑짜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멋진 옷을 입은 림송이가 내 신발을 량손에 한짝씩 들고 서있었다.

《너 여기서 뭘하니?》

그 애를 보자 또다시 설음이 북받쳤지만 나는 용케 참아냈다.

《나 아버지 찾아. 평양가려구 같이 나왔는데 장난질하다가 놓쳤어.》

나는 서러운 속에서도 체면을 차렸다. 그런데 얄밉게도 림송이는 속지 않았다.

《피, 거짓말! 너 아버지가 따라오지 말라 그랬지. 평양에 간다는게 놀러 다니는 옷을 입니 뭐? 나처럼 이렇게 멋있는 옷을 입어야지.》

림송이는 머리를 잔뜩 뒤로 젖히고 염소처럼 《애햄!》하고 기침까지 하며 뻐기는것이였다.

감춰두었던 설음이 불쑥 솟구쳐올랐다. 그바람에 나는 슬픈 어조로 림송에게 솔직히 말해버렸다.

《림송아! 난 말이야, 첫째다리밑에서 얻어온 아이야.》

림송은 순간에 근심어린 기색이 되였다.

《정말이가? 누가 그러던?》

《엄마가, 할머니랑…》

림송이는 내 말을 듣자 죽겠다고 웃어댔다.

《너 이제 보니까 정말 고지식하구나.》

《고지식? 그게 뭐야?》

《나도 모르는데 뗑하단 소리같애.》

《그럼 내가 뗑하단거니?》

《그렇지 않으문. 그런 빤한 거짓말에두 속아서 애기처럼 질질 짜니까 그러지. 우리 엄마두 내가 말 안 들으문 그렇게 말한단 말이야. 그거-언 이…》

림송이는 큰 비밀이나 말하듯 바투 다가와 나의 귀박죽을 잡아당기더니 거기다 더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어른들의 속임수야.》

《으-응?》

《응! -》

나는 림송의 반짝이는 새까만 눈동자를 한참 쳐다보았다. 그 애의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림송의 어깨우에 한팔을 올렸다.

《그러니까 내가 얻어온 아이가 아니구 우리 엄마가 낳은 아이란 말이지?》

《그렇지 않으문.》

그 바람에 나는 저도 몰래 씽긋 웃었다.

《난 네가 제일 좋아!》

나는 할머니가 나를 얼리느라 바지주머니에 넣어주었던 엿사탕봉지를 꺼내 림송이한테 내밀었다.

《한알만 먹었다. 다 먹어라.》

사실 울면서도 서너알은 더 꺼내먹었지만 림송이가 좋아할것 같지 않아 나는 슬쩍 보탰다.

《좋아, 같이 노나먹자.》

밤알 문 다람쥐들처럼 량볼이 볼록 나왔을 때 나는 또 물었다.

《하나만 더 대줘. 림송아, 차표란게 뭐야?》

발개돌이인 림송이는 우리 쏠쏠이패중 제일 머리가 팩팩 돌아 아는게 많았다. 림송이는 코밑을 쑥 훔쳤다.

《나두 이자 엄마가 대줘서 알았는데- 이, 그건 기차타는 값을 냈다는 증명서대. 그게 없으면 기차에 안 올려놓는대. 그런데 진짜 너 역에 왜 나완?》

나는 어른들처럼 한숨을 훌 내쉬였다.

《아버지가 평양가는데 날 쏙 빼놓구 혼자 나왔거던. 너 우리 아버지 못 봤니?》

《봤어. 저기에 있더라.》하고 림송은 어느쪽인가를 가리키더니 내 손목을 잡았다.

《내가 데려다줄게.》

…불쑥 나타난 나와 림송을 한참이나 번갈아보던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훌쩍거리는 나의 코밑을 정성스레 닦아주었다. 세면장에 데리고가서는 손수 물을 떠다가 나의 얼굴이며 손이며 옷에 묻은 얼룩을 깨깨 닦아주고난 아버지는 우리를 역전공원으로 데리고갔다. 공원매대에서 아버지는 얼음과자를 네개나 사서 우리들의 량손에 하나씩 쥐여주었다.

나는 정말 사기가 났다. 그 얼음과자가 마치 나를 평양에 데리고가겠다는 아버지의 말없는 승낙처럼 생각되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이젠 빨리 가자요.》

《오냐, 아닌게아니라 차시간이 거의다 됐구나.》

…우리가 역사로 돌아왔을 때도 사람들은 많았다. 하나부터 다섯까지의 수자들을 차례로 붙인 차표파는 《창문》들(물론 림송이가 대준것임.)앞에 사람들이 질서있게 줄을 서있었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죽 늘어선 첫번째와 두번째의 긴 줄들을 지나 몇사람만 줄을 서있는 세번째 《창문》으로 다가갔다. 림송이는 자기 부모들이 서있는 긴 줄쪽으로 가야겠는지 아니면 나를 따라와야겠는지 한동안 망설이다가 나를 따라왔다. 아버지는 인차 표를 끊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왜 아버지처럼 여기에 와서 헐하게 차표를 사지 않고 그냥 줄을 서있는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리해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아버지도 뭔가 모를게 있는지 한참이나 손에 쥔 차표를 들여다보며 그자리에 서있는것이였다. 의문은 더욱 커졌으나 나는 감히 물어볼 엄두를 못 냈다. 아버지의 얼굴이 어찌나 컴컴했던지 나는 더럭 겁마저 들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서있던 아버지는 다시 《창문》으로 다가가더니 이미 가림막이 내리워진 유리를 똑똑 두드렸다. 가림막이 제껴졌다. 곱게 생긴 출표원아지미의 얼굴이 영화화면처럼 나타났다.

《무슨 일입니까?》

《하나 좀 물읍시다. 이 3호구엔… 늘 이렇게 사람이 적습니까?》

그러자 아지미는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전 새로 와서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오늘은 별스레 손님들이 더 적군요.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아버지의 얼굴에 어줍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저 알고싶어서요. 미안합니다.》

아지미는 머리를 기웃거리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렇게 하는게 미안하기라도 한듯 조심스레 가림막을 내렸다. 그때 나는 용기를 내여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여긴 왜 사람이 없나요? 저긴 많은데… 사람들은 왜 여기로 안 오구 그냥 줄을 서서 기다리나요?》

그러자 아버지는 한동안 나를 이윽토록 바라보다가 내 어깨에 한손을 올리시더니 다른손으로 3호《창문》의 우에 붙어있는 표쪽을 가리켰다.

《읽어봐라.》

나는 아버지가 가리킨 표쪽을 한글자한글자 큰소리로 읽었다.

《…박사, 대―학―교―원? ! …》

나는 머리를 돌려 아버지를 보았다. 내곁에 나란히 선 림송의 동그래진 눈동자와 딱 벌어진 입도 보았다. 그다음엔 저켠에 서있는 림송이의 부모들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숨이 딱 막히면서 가슴속에 무어라 말할수 없는 기쁨과 자랑이 샘솟는것이였다. 그 자랑이 림송이네 천연색텔레비죤이나 평양구경 그리고 군사놀이 대장보다 비할바없이 크다는것을 느끼자 나는 주위도 잊고 챙챙한 목소리로 웨쳤다.

《야! 우리 아버지 정말 쎄구나.》…

…물론 나는 그때 평양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후부터 더는 아버지에게 평양에 같이 가자고 조르지 않았다.

그후 나는 인민학교(당시)에 입학한 다음날로 학교자연소조에 들어갔다.

몇년후 나는 압록강제1고등중학교(당시)에 입학하였고 졸업후엔 희망대로 군대에 나갔다. 군사복무를 마치고 대학추천을 받았고 그로부터 몇년만에는 김책공업종합대학 박사원을 졸업하면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아직 철없던 어린 날 3호구앞에서의 그 강렬한 감정체험은 아버지처럼 사회와 집단의 존경속에 떠받들리우며 사는 그런 사람이 꼭 되리라는 굳은 결심과 그 실현을 위한 필사의 노력을 낳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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