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실습교원

손 수 경

(마지막회)

4

 

나는 벌써 몇번째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헌데 느렁뱅이 시침이 내가 기다리는 시간까지 가려면 아직은 멀었다. 바른대로 말한다면 내가 기다리는것은 정미가 가져올 습작집들이다.

이틀전인 토요일아침에 내가 들려준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학생들의 마음속에 어떤 효과를 주었는지 무척 알고싶었던것이다.

그날 아침 책상우의 일력을 번져놓던 나는 문득 오늘이 누구의 생일이였던가 하는 생각에 손전화기의 달력을 펼쳤다. 일정목록을 아무리 살펴봐도 오늘은 기록되여있지 않았다.

나는 나의 기억력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았다.

중학시절에 속독소조원이였던 나는 특별히 수자기억을 잘하는 특기의 소유자였던것이다.

가만, 가만… 옳지!

나는 손바닥을 딱 소리나게 마주치고 분과실을 나섰다.

내가 한달음에 달려내려간곳은 1층에 전시된 《우리 학교의 영웅들》이였다.

11명의 영웅들이 후배들의 씩씩한 모습을 바라보며 밝은 미소를 짓고있는 소개판앞에서 나는 어렵지 않게 공화국영웅 김송화동지를 찾아낼수 있었다.

오늘이 바로 영웅의 생일이였던것이다.

건설자영웅, 농민영웅들과 나란히 군복입은 모습으로 웃고있는 영웅의 모습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왔다. 바로 이런 제자들을 가지고있는 학교에서 내가 첫수업을 하였고 이런 선배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교정에서 대혁이며 영주며 우리 아이들이 자라고있구나 하는 생각에 나의 마음은 바다처럼 설레였다.

아침에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나는 수업하러 들어가는 교실마다에서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동무들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고있습니까? 우리 학교의 다섯번째 영웅인 김송화동지의 생일입니다. 영웅이 학창시절에 남긴 시 조국의 딸이라고 말하리를 읊어보고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똑똑똑.

드디여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나는 오늘따라 별스레 높아보이기까지 하는 책무지를 정미에게서 받아들고 하나하나 읽어내려갔다. 동시 《비여있는 자리》는 송우의 습작품이였다.

분과장선생님이 아무리 바빠도 매주 빠짐없이 지도하군 했다는 이 습작은 사실 학생들이 작품집을 돌려가며 읽은 다음부터 시작되였다고 한다.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께서 평범한 중학교학생들이 쓴 작품집들을 몸소 보아주시였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학생들은 우리도 그런 작품들을 묶어보자고 선생님에게 졸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을 지지하여 2년세월이나 심혈을 기울여온 선생님도 그 글과 함께 학생들의 문학적재능은 물론 마음이 이렇듯 몰라보게 자라게 되리라는것을 생각지 못하셨으리라.

비행사가 되겠다고 몸단련에 극성인 대혁이로부터 남달리 키가 작고 애티나는 송우까지 성미도 서로 다른 그들모두의 마음속에 꼭같이 자리잡은 꿈! 그들모두가 앞가슴에 영웅메달을 달고 모교를 찾아오는 모습들을 그려보던 나는 책갈피에서 떨어지는 종이장을 보았다.

송우학생이 지시봉을 들고 칠판을 가리키고있는 나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였다.

이윽고 학급으로 돌아온 나는 송우를 보며 말했다.

《송우학생이 이렇게 솜씨있는 화가인줄 몰랐는데… 내가 가져두 되겠어요?》

《완성한 다음에 드리려댔는데…》

《왜? 이것두 멋있는데요 뭐.》

《동무들이 보구서 하는 말이 선생님같지 않답니다. 저도 뭔가 부족하다는건 아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건 주지 않을래요?》

《예.》

《응- 고집쟁이같은거.》

나는 송우의 오똑한 코마루를 튕겨주고는 아쉬운대로 《나》를 돌려주었다.

아무리 하찮은 일에도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자기대로의 주장이 있고 그것이 어른들의 생각을 릉가할수도 있다는것을 언제부터인가 깨달았던것이다. 나는 교원이 학생들의 마음속을 환히 꿰뚫자면 쉬임없이 배우고 끝없이 사색해야 한다는것을 새롭게 느끼며 분과실로 돌아왔다.

《진희선생, 퇴근하기요.》

《전 좀 늦어질것 같습니다. 보다싶이 전 이 시들을 다 보구 점수까지 매겨야 합니다.》

《그거야 그제부터 보기 시작한것 같은데 뭘 그다지 깐깐스레 보면서 그러오. 나라면 한식경에 다 봤을텐데, 내가 대신 점수를 줄가?》

인철선생은 내 책상에서 시 한편을 집어들고 문학가답게 감정을 잡아 읊어내려갔다.

《멋있구만. 역시 분과장선생님네 학급은 괜찮단 말이야. 이건 두말없이 10점인거구.》

그는 필통에서 원주필을 꺼내 종이우에 댔다.

《아니아니, 그만두십시오.》

내가 급작스레 만류하자 그는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러오?》

그때의 내 심정을 따분하다는 말로 다 표현할수 있겠는지…

《저… 전 빨간 원주필로 점수를 매겨줍니다.》

《그런가? 거 꼭 분과장선생처럼 하는구만.》

《학생들이 품들여 썼는데 저도 품들여 봐줘야 마음이 떳떳할것 같습니다.》

《물론 그래야지. 그럼 난 먼저 가겠소.》

인철선생이 분과실문을 나선 다음 나는 그 서정시에 8. 3이라는 나로서도 아픈 점수를 매겼다. 어쩐지 누군가의 시를 묘하게 모방했다는 느낌이 련 이틀동안 나를 괴롭혔던것이다. 상처를 주더라도 지금 바로잡아주지 않는다면 그 학생은 앞으로의 한생을 그런 자세로 걷게 될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문득 강철이한테서 누나의 학습장을 받아본 그날 저녁 인철선생에게 그 학습장을 보여주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저… 인철선생님, 우리 학급의 강철이 말입니다. 한문성적이 어떻습니까?》

《강철이? 오, 강옥이 동생? 한문이야 잘하지. 수업시간에 보면 아무때나 대답을 잘하다가두 시험성적만은 높지 못한 그런 학생들이 더러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한두글자 실수할순 있겠지만 평상시에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 시험을 그렇게 망태기로 치는 법이 어데 있습니까?》

《글쎄… 낸들 알겠소? 허허.》

나는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그는 내가 내놓은 학습장을 보면서도 별로 가책을 받지 않는것이였다.…

 

나는 팔자걸음으로 천천히 멀어져가는 인철선생을 창문너머로 바라보며 왜서 이 학교의 많고많은 학생들중에 언제봐야 인상좋고 마음 좋은 그 선생을 따르는이가 없는지, 왜서 나 대신 2학년 7반을 맡아보겠다고 한 그가 퉁을 맞았는지 그 리유에 대해 오래동안 생각했다.

학교정문을 나서서 분과장선생님의 입원실문을 여는 순간까지도 그 생각은 지궂게 나를 따라다녔다.

《선생님, 그 몸으로 학급담임도 할래 분과장사업도 하실래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정말 힘이 들어요. 인철선생에게 분과뿐아니라 학급도 맡기고 집에 들어가 손녀나 봐주면서 편히 지내고싶어요. 그런데 인철선생이… 그래서 한해두해 미루어온게 이렇게 됐구만요.》

분과장선생의 둥그스름한 얼굴에 새겨진 주름들이 오늘따라 별스레 깊어보였다.

《내 진희선생한테라면 마음놓고 맡기겠는데…》

《예? 선생님두 참… 저야 실습교원이 아닙니까.》

《호호, 내 정신 좀 보지, 선생은 실습교원인걸… 나인 속이지 못한다더니.》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선생님의 말이 혼돈에 의한것이 아니였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사실 인철선생도 실습교원시절엔 얼마나 진취적이였는지 몰라요. 꼭 지금의 진희선생처럼 실습기간에 늘 학급을 맡았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졸졸 따르는지… 산전산후휴가를 받고 들어가면서 학급을 인계했던 난 한달후에 한번 나와보구 깜짝 놀랐어요.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인철선생이 막 시샘날 지경이였다니까요. 하루는 아이들이 하루종일 축구에 정신이 팔려 모두 수학숙제를 안했다면서 수학선생이 펄펄뛰며 날 찾아왔더군요. 난 밤을 새워서라도 숙제를 다 받아내려는 생각에 불편한 몸에도 학교까지 단숨에 달려나갔지요. 그런데 글쎄 인철선생이 운동장에서 아이들하구 같이 공을 차고있는게 아니겠나요. 쉴참에는 아이들을 운동장에 앉혀놓고 제 손으로 그림까지 그리면서 문제를 풀어주더니 (아마 세평방의 정리를 증명하는 문제였던가 봐요.) 이렇게 말하더군요.

얘들아, 이 축구공은 뭘로 만들었니?

합성재료로 만들었습니다.

그래, 하지만 옛날옛적에 사람들이 처음으로 찬 공은 짐승의 내장에 바람을 불어넣은것이였단다.

그러자 아이들이 오만상을 찌프리지 않겠어요.

에이, 끔찍해. 그걸 어떻게 발로 찼을가?

그러게 미개한 옛날 사람들 아니가.

저마끔 떠드는 아이들에게 선생은 말했어요.

그래, 하지만 그런 미개한 사람들이 세평방의 정리를 발견했단다. 그 정리를 기초로 해서 무수히 많은 정리들과 법칙들이 나오고 오늘은 비행기가 하늘을 날게 된것이란다. 그런데 그런 오늘날 이렇게 멋진 공을 차는 너희들이,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를 정복해야 할 앞날의 주인공들이 세평방의 정리 하나 증명할줄 모른다는게 말이 되느냐?

선생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다신 공차기에 정신팔지 않고 공부잘하겠습니다.

아니야, 공차기도 해야지뭐. 하지만 자기가 모르는 문젠 다 풀고 놀아야 한단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축구도 잘해. 자, 이젠 문젤 다 풀었으니까 후반전을 해야지.

난 그때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래서 학교에 제기했지요. 인철선생같은 사람은 꼭 우리 학교에 있어야 한다구 말이예요. 그런데 교장선생님이 하는 말이 그 동문 대학에서 교원으로 지목하고있는 동무요. 이러더군요. 그런데 다음해 새학년도준비로 법석한 우리 분과실에 트렁크를 든 인철선생이 나타날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나요. 헌데 세월이란 참… 언제가도 늙을것 같지 않던 우리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리구 그동안 인철선생같은 사람은 선뜻 믿기 어려울만큼 변해버렸지요. 교원의 일이라는게 얼핏보면 한가지 일의 부단한 반복인듯이 보이지요. 이 학급에서 한 말을 다른 학급에 들어가서 또 하고, 학급을 맡아서 졸업시키고나면 또 새 학급을 맡고…

난 자기는 모르는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분명 아는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교원이 자기는 이제 더 배울것이 없고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직업에 권태감을 느끼게 되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보수주의자가 되고말지요.

수업이라는건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고 래일도 있는데, 학생들이야 어떻게 배워주든 한해에 한 학년씩 올라가는데… 이렇게 생각하면서 뚜렷한 목표도 없이 수업시간표에 끌려다니는 사이에 세월은 물처럼 흐르고 해놓은 일도 없이 머리엔 흰서리만 내리지요.

그런 사람인줄 뻔히 알면서도 인철선생을 그냥 보고만있자니 마음이 아프고… 그건 그렇고 우리 애들이 요즘 글은 잘 쓰겠지요?》

《내가 그만 이야기바람에…》

나는 그제야 가방에서 휴대용콤퓨터를 꺼내놓았다. 오늘의 습작들가운데서 제일 잘된것들을 문서로 편집해가지고 왔던것이다.

《한달새 글도 많이 늘었지만 우리 애들 마음이 어쩌면 꼭 진희선생을 닮아가는것 같군요.》

《선생님은 무슨 말씀을… 제가 오히려 그애들한테서 배웁니다. 얼마나 똑똑하구 좋은 애들입니까. 대혁이랑 정미랑… 참, 언제부터 묻고싶었는데 대혁일 학급장에서 해임시킨건 좀 너무한것 같지 않습니까?》

《나도 그때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누구나 말하지요. 대혁인 영웅감이라구… 하지만 좋은 씨앗도 버려두면 실한 열매를 기대할수 없는것처럼 영웅감도 잘 키워야 영웅이 되는 법이예요. 제 마음대로 하게 놔두면 그애의 앞길은 예측하기가 두려운 방향으로 가고말아요. 지지대를 든든히 세워주면 그걸 따라서 세상끝까지라도 갈게구요.》

그러던 선생님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퇴원수속을 하자요.》

내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방을 나선 선생님은 며칠만 더 있어야 한다고 하는 의사들에게 어떻게나 설득력있는 론거를 들이대였는지 벽창호라고 소문났다는 이 병원 기술부원장의 수표까지 끝내 받아내고말았다.

나도 저 나이가 되였을 때 저런 모습으로 살수 있을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의사선생들 말대로 하다가 올해중에 병원문을 못 나설번 했다고 즐겁게 말하는 선생님과 함께 밤거리를 걸으며 나는 이제 사흘이면 실습기간도 끝나게 된다는것을 새삼스레 깨닫고 놀랐다.

그러고보니 한달이란 너무도 짧은 시간이였다.

 

×

 

앞으로 다시 보게 될지 알수 없는 정다운 교정의 창문들이 아이들의 미소처럼 밝은 빛을 뿌리며 나를 바래주었다.

《진희선생, 앞으로 훌륭한 교원이 되기 바래요.》

분과장선생님의 평범하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당부였다.

《진희선생이야 벌써 훌륭한 교원인걸 뭐, 허허.》

인철선생은 예전그대로다.

《제가 앞으로 훌륭하게 살겠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생을 실습교원시절처럼 살겠다는것만은 약속합니다.》

선생님들은 더 긴말이 없이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들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학생들이 안겨준 기념품들이 가득한 가방안에서 이제는 열번도 더 들여다보았을 송우의 그림을 꺼내들었다.

그림속의 나는 지금 공부를 하고있었다.

창밖에 빛나는 별들, 책상우에 펼쳐진 책들, 콤퓨터화면에 열중한 처녀, 새벽 4시에 맞추어진 자명종시계… 그 애들은 이 모든것을 언제 다 보았을가?

그림의 아래에는 이런 글이 씌여있었다.

《선생님을 기다리겠습니다!》

 

(평원군식료공장 로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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