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실습교원

손 수 경

(제 3 회)

3

 

오늘 수업시작전에 교실에서는 자리교체가 있었다.

《창문쪽 첫자리엔 리영주, 조성범동무들.》

《?!》 한순간 우리는 호흡을 딱 멈추고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나요? 전번에 약속하지 않았어요? 학과경연이 끝나면 등수별로 앉겠다고.》

우리는 그제야 머리를 끄덕이며 숨을 내쉬였다.

남동무들속에서는 키득거리는 소리까지 났다. 영주동무와 한책상에 앉게 된 성범동무의 얼굴이 익은 도마도처럼 되여버린것이다. 사람들을 배가 끊어지도록 웃길줄 아는 남다른 재간이 있는 그는 당황하여 순간에 얼굴이 시뻘개지는 별로 쓸모없는 재간도 있었던것이다.

《강철동무가 제일 좋아하는데요?》

선생님의 그 롱담에 우리는 교실이 떠나가게 웃었다.

《어느 동무와 앉게 되였길래 그렇게 좋아하는지 좀 있다가 다같이 봅시다.》

그러시고는 등수별로 짠 자리표를 읽어내려가셨다. 그런데 강철동무와 함께 내 이름도 불리울줄이야.

어쩔바를 몰라하는 강철동무를 보며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아냈다.

등수별로 자리배치를 하는 경우에도 남녀별로 갈라서 앉군 하던 우리 교실의 분위기는 낯선 사람들이 모여앉은듯 한동안 서먹서먹했다. 하지만 하나, 둘 수업이 바뀔수록 교실은 이전보다 더 흥성거리는것 같았다.

휴식시간이 되자마자 밖으로 달려나갔다가 《아, 춥다.》하며 교실에 들어선 강철동무는 《정미동무, 이제 한문시간 맞지?》하고 묻기까지 했다. 나는 머리를 끄덕여 대답하고는 그가 꺼내놓은 한문학습장을 넘겨다보았다.

어째서인지 한문만은 자신이 없는것이 늘 안타깝던 나는 요즘 한문시간마다 높은 점수를 맞군 하는 그가 부러웠던것이다.

강철동무의 학습장에는 놀랍게도 《제12과》라는 제목이 써있고 한페지 가득 수업내용까지 써있었다.

나는 11과까지밖에 정리되여있지 않은 나의 학습장과 배울 내용을 구체적으로 예습한 강철동무의 학습장을 번갈아보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들사이의 차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의 학습장을 들여다볼수록 뭔가 석연치 않은것을 느꼈다.

강철동무는 어떻게 교과서내용뿐만아니라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보충적으로 내는 질문들과 탐구과제들까지 다 알고 정리했을가?

혹시 이 동무가? 다음순간 나의 머리속에서는 이 일을 절대로 못 본척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과 내 일도 아닌데 괜히 옆동무의 비위를 건드릴 필요가 있을가 하는 두개의 대립되는 생각이 한참이나 골받이를 했다.

그러느라니 문득 며칠전에 풀던 수학문제가 생각났다. 과외시간에 수학참고서문제들을 풀어나가던 나는 《독립》이니, 《련관》이니 하는 귀에 선 말들이 들어있는 확률문제에서 원주필을 멈추었다. 아직 배우지 못한 내용이였던것이다.

《선생님, 이 문제를 좀…》

그때 나는 마침내 책상옆을 지나치는 실습선생님에게 풀이장을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문학선생님인데 따분해하시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주밋거리고있는데 선생님은 《아직 배우지 못한 내용인게로구나.》 하시면서 차근차근 설명해나가시였다.

《직렬회로에서는 한개의 요소만 고장이 나도 회로전체가 고장나게 되는데 이런 경우를 보고 〈련관〉이라고 한단다. 이와는 달리 병렬회로에서는 한개는 물론 여러개의 요소가 고장나도 다른 요소들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게 되여있지. 이런걸 보고는 요소들이 서로 〈독립〉이라고 한단다. 이런 관계를 알아야 회로들의 고장날 확률을 정확히 구할수 있어.》

나는 그때 우리 실습선생님은 전공과목도 아닌 다른 과목의 내용을 언제 저렇게 깊이있게 알고계실가 하는 생각과 함께 회로에서 요소들사이의 관계가 어쩌면 사람들사이의 관계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품었었다.

그때의 문제가 오늘 갑자기 생각나면서 학급이라는 집단은 병렬회로가 아니라 직렬회로가 될 때 진정 훌륭한 집단으로 되리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오늘 내가 여기서 물러서고 동무의 결함을 못 본척 한다면 우리 학급, 우리 초급단체는 병렬회로로 되고말것이다.

아니, 절대로 그렇게 되여서는 안된다. 전류가 흐르는 회로에는 병렬이 있을수 있어도 정이 흐르는 우리 집단에는 오직 직렬만이 있어야 한다. 나는 실습선생님이 오늘 새로운 자리배치를 조직한 리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드디여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강철동무, 난 동무가 이런 동무인줄은 몰랐구나.》

분과실에서 나는 최정미의 글을 읽고 놀랐다.

그 문제를 설명해준 나자신도 그렇게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것이다.

나는 문득 요즘 이상해진 학급분위기가 정미와 강철이의 이러한 대립으로부터 시작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배치를 새롭게 할 결심을 하면서 미리 예견한바이지만 이악하기로 소문난 이 학급의 녀학생들은 남학생들과 같이 앉으면서 적지 않은 결함들을 발견하게 될것이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것을 고쳐주려고 할것이다.

그 예견이 이렇게 빨리 들어맞을줄이야. 이것은 그저 웃고 지나칠 문제가 아니였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책상가득 일감들을 펼쳐놓고도 연필방아만 찧고있는데 《똑똑똑.》 문기척소리가 났다.

대혁이였다.

《어떻게 왔어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니, 저…》

대혁이는 울적한 내 심사를 눈치챘는지 말머리를 돌렸다.

《선생님, 선생님은 점심때마다 어디서 식사하십니까?》

《구내식당에서… 왜?》

《저… 우리 담임선생님은 매일 점심밥곽을 싸가지고 나오시댔습니다.

선생님이 싸오신 닭알부침이랑 오이김치랑 정말 맛있댔습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어쩔수없이 스며드는 서글픈 기색을 똑똑히 느꼈다.

《담임선생님은 점심시간에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시구 또 동무들간에 쌓였던 오해도 말없이 풀어주시군 했습니다.》

《그걸 말하고싶어서 찾아왔군요. 고마워요.》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야 학급장이 아닙니까, 비록 자격은 잃었지만… 오늘 아침에 쌍둥이인 성범이와 성화까지 따로따로 교실에 들어서는걸 보니 정말 속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마음이면 벌써 학급장자격이 있는거예요.》

다음날 점심시간에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있는 재간, 없는 재간 다 부려서 만든 음식들이든 밥곽을 들고 교실로 향했다.

내가 교실에 들어섰을 때 북극과 남극보다 더 멀리 떨어져 앉아있던 《쌍방》이 갑자기 나타난 《참전자》를 의아쩍게 바라보았다.

다음순간 내가 들고있는 밥곽꾸레미를 본 그들의 눈에는 커다란 기쁨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눈치로 빚어놓은 대혁이 신이 나서 웨쳐댔다.

《선생님, 제옆에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자 반대켠 녀자들쪽에서 삐죽거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아니, 내 보기엔 우리 녀동무들 밥이 더 맛있어보여.…》

그 말에 녀학생들이 좋아라고 탄성을 올렸다.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이번에는 남학생들쪽에서 시쁘둥한 얼굴들이 생겨났다.

《정 그러면 남자들이 이쪽으로 오던지.》

나의 눈길을 받은 대혁이 제꺽 응수했다.

《정말, 우리가 가면 되겠구나.》

저희들쪽에서 머뭇거리는 기색이 엿보이자 대혁은 《우리가 이런 자리를 녀동무들에게 양보할수 있는가.》하고 그들의 약한 고리를 슬쩍 건드려놓았다.

반응은 예견했던대로였다.

다들 얼마나 날쌔게 달려들왔는지 대혁에게는 오히려 맨끝의 불편한 자리가 차례졌다.

언짢아할것 같던 대혁의 입에서 《참모장자리로구나.》하는 말이 튀여나왔을 때 모두가 마주보며 웃었다.

《야, 맛있다! 선생님, 이 두부튀기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저한테두 좀 배워주십시오.》

《대혁동무가 그건 배워서 뭘하자구?》

《저두 해먹으려구 그럽니다.》

《대혁동문 매일 제 손으루 밥해먹구 나옵니다.》

주성이의 자랑스러운 대답에 대혁은 《푼수없다는건…》 하는 인상으로 눈을 빨았다.

《하긴 뭐… 다들 아는건데, 헤… 선생님은 새벽마다 〈아침매대를 봉사해드립니다. 따끈한 미역국과 물김치를 봉사해드립니다.〉하는 소릴 들으셨습니까? 그 하얀 위생복입은 뚱뚱한 판매원이 바로 우리 어머닙니다.》

나는 볼수록 정이 가는 대혁이의 얼굴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아마 온 학급에 우리 어머니신세 지지 않은 사람이 없을겁니다. 그렇지, 정미동무? 동무두 오늘 아침에 미역국 먹구 나왔지?》

터무니없이 걸고드는 대혁이를 향해 정미는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아니, 오늘은 못 먹었어.》

《거짓말, 아침에 동무가 들어서니까 온 교실에 미역국냄새가 확 풍기던데?…》

그 말에 정미는 귀밑까지 빨개져서 어쩔줄 몰랐다. 그런 그를 구원해주려는듯 주성이가 끼여들었다.

《대혁인 정미동무보다 늦게 등교한것 같은데?…》

교실에 즐거운 웃음이 그칠줄 몰랐다.

《맞아, 정미동문 오늘두 빨리 나왔는데 뭐. 비록 나보단 한발 늦었어두.》

성범이가 끼여들었다.

《제 자랑 많은건 배안의 병신이라더라…》

남동생의 말에 섞인 자랑을 꼬집어내는 성화였다.

《왜? 성범이쯤 되면야 제 자랑을 할만도 하지. 공부잘하지, 노래 잘하지, 매력있게 잘생겼지.… 난 처음 볼 때 어디서 봤던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내가 성범이의 편역을 들었으나 성화는 꿈쩍도 안했다.

《전 어디서 보았는지 압니다.》

《어디서 봤게?》

성화는 자기 남동생을 쳐다보며 호호 웃기부터 하더니 《영화에서.》 하고 대답했다.

학생들도 웃고 나도 웃었다.

《강철동문 왜 시무룩했나요?》

내가 노래부르듯 묻는 말에 강철이는 숙였던 머리를 번쩍 들더니 밑도 끝도 없이 《선생님… 바치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바람에 킥 하고 터져나오려던 웃음들이 벌떡 일어나서 자기 책상으로 달려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급히 찾는 강철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서 쑥 기여들어가고말았다.

강철이가 내 코밑에 들이댄것은 한문학습장이였는데 명찰표에는 《강옥》이라는 이름이 씌여있었다.

《이건 올해 군대나간 우리 누나 학습장인데… 책꽂이에 빤히 꽂혀있는걸 보고는 제힘으로 할 생각이 나지 않아서… 한번, 두번 베끼기 시작했습니다.》

《야- 강철이, 너 그랬댔구나?》

그런줄도 모르고 강철이를 두둔해주느라 쌍둥이누나와 다투기까지 한것이 분한지 성범이가 눈을 가늘게 쪼프리고 들이대였지만 그는 뻐꾹소리 한마디 못하고 머리만 더 깊이 숙였다.

강철이보다 더 큰 잘못을 범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가만두어서는 절대로 안될 현상이기에 나는 꼭 말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철동무, 누나의 말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요. 사람이 무슨 일이나 성실하게 해야지 요령을 부릴 생각부터 하면 그 순간에는 결과가 좋을지 몰라도 영원한것으론 될수 없어요. 아마 동무의 누나라고 해도 잘했다고는 하지 않을거예요. 자, 이건 내가 보던 옥편인데 이젠 강철동무거예요.》

책을 두손으로 받아든 강철이는 갑자기 누나 생각이 난듯 눈물이 그렁해졌다.

《우리 누나도 절 용서치 않았을겁니다.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됐어요, 사내가 울긴… 자, 밥이나 먹자요. 강철동무한텐 두부튀길 하나 더 주겠어요.》

《선생님, 저두…》

주성이가 찬곽까지 내밀며 애원하는 바람에 우리는 또다시 한덩어리가 되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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