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실습교원

손 수 경

(제 2 회)

2

 

이해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가을비가 메말랐던 대지를 축축히 적셔주고있었다. 그러나 창문가에 앉아있는 나의 가슴은 시간이 흐를수록 말라들기만 했다.

처음 참가한 모임에서 비판을 받았던것이다. 어려서부터 다른건 다 좋아해도 욕먹는것 하나만은 죽기보다 더 싫어하던, 그래서 밤을 패고 진창길을 헤치면서라도 언제한번 욕먹을 짓을 해본적 없는 내가!

내가 맡은 학급이 학습과 조직생활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학년적으로 1, 2등권안에 들어있기에 자못 흐뭇한 마음으로 둥 떠있었는데 청년동맹책임지도원선생이 갑자기 꺼내든 규률문제에 와뜰 놀라 자유락하하고말았다.

지난 일요일에 학교청년동맹위원회에서는 학생들로 가을철나무심기를 조직했었다. 그런데 그 나무심기에 우리 남학생들이 여러명이나 참가하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날 아침 내가 운동장에 나가봤을 때에는 분명 삽을 둘러메고 나무모를 안은 학생들 전원이 나와있었고 나를 제일먼저 발견한 대혁이와 송우는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하지 않았던가.

《진희선생이 왜 저러나?》

《뿔이 났습니다.》

인철선생이 찾는 소리를 내가 듣지 못했는지 내 옆자리에 앉은 3학년 2반 담임교원이 대신 대답해주고있었다.

《나무심기에 참가했던 남자애들이 도망쳤답니다.》

《허, 그녀석들… 하긴 그녀석들이 녀자학급장 말을 듣겠다구 할게 뭐야. 분과장선생님두 참.》

《진희선생은 성미가 너무 꽁한게 탈입니다. 나처럼 학과경연에서 마지막으로 1등을 했으면 아마 까무라쳤을겝니다.》

《거짓말 마십시오. 선생님이야 학과경연에서 학년적으로도 아니고 학교적으로 1등을 했다구 칭찬만 한아름 받지 않았습니까.》

《아이쿠, 진희선생 귀가 정전되지 않았댔구만. 우린 그런것도 모르구 태양빛전지판이라도 설치해주려구 한참 의논까지 하구있었지.》

애꿎은 귀까지 놀려대는 그를 나는 가재미눈이 되도록 흘겨보았다.

《허허허… 그 모양을 사진찍어놨다가 진희선생 선보러 갈 때 같이 보내야겠구만.》

인철선생의 말에 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래, 교원이란 억울한 욕을 먹을 때도 있지. 대학교원이라면 몰라두…》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찔끔 솟아날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정말 억울한 욕이였던것이다.

《자, 이젠 그만하구 퇴근들을 하자구요. 을씨년스럽게 비까지 오는데… 이런 땐 그저 뜨끈한 집이 제일이지. 헌데 진희선생은 안 갈셈이요?》

《아니, 전… 망자료를 좀더 보다가 가렵니다.》

《말리진 않겠지만 몸을 좀 돌보면서 하라구요. 사람이 오래 살자면 몸을 보양해야 하는데 몸을 보양하는 최선의 방도는 마음을 진정하고 기를 펴구 사는거라오. 교원들이 없을 때 아이들이 저지른 일이야 어쩌겠나. 제 잘못도 아닌걸 가지구 괜히 속쓰면서 자길 혹사하지 마오.》

인철선생의 다심한 권고였다.

그의 권고를 따라 심호흡을 몇번 하고난 나는 콤퓨터에 마주앉았다. 새로운 과학기술자료들을 읽으면서 필요한것은 수첩에 발취하느라 주위세계를 망각하고있던 나의 귀전에 문두드리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왔다.

《들어오십시오.》

뜻밖에도 문가에 나타난것은 하루새 눈이 쑥 들어가보이는 최대혁이였다.

순간 책임지도원선생이 인원장악을 할 때 그도 없었다고 하던 생각이 나서 저도모르게 미간이 좁아졌다.

《무슨 일이예요?》

《저… 비가 옵니다.》

《그래서요?》

《담임선생님이 비올 땐 화분을 꼭꼭 밖에 내다놓군 하셨길래…》

대혁을 맞창낼듯이 쳐다보던 나의 시선은 어느새 창턱의 화분에로 옮겨졌다.

분과장선생님이 이 학급을 맡은 날에 심어서 지금껏 정성다해 가꾸어온 화분이라고 한다.

퍽 소담한 화분이였는데 요새 주인이 없어서인지 별스레 초췌해보였다.

새삼스레 눈에 띄우는것은 잎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것이였다.

학급 하나만도 힘에 부쳐 마가을 청서처럼 드바쁜 나에게는 화분까지 쓸고 닦아줄 시간적여유는 물론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것이다.

문득 대혁이에게 따지려던 생각이 발밑으로 쑥 빠져나가는것 같았다.

그것은 먼지를 들쓴 화분에서 2학년 7반, 바로 우리 학급의 모습을 본것이였다.

대혁이보다 먼저 문초를 당해야 할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억울한 욕… 나야 림시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학급의 담임교원이 아닌가.

왜서인지 갑자기 그것이 억울한 욕이 아니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아직 집에 안 갔어요?》

《선생님하구 같이 가려구 기다립니다.》

나에게서 이런 물음이 나오기를 기다린듯 거침없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난 아직 퇴근하려면 멀었는데.》

《기다릴수 있습니다.》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한 그는 작지 않은 화분을 고양이 안듯 닁큼 안아들고 나갔다.

《우산을 쓰구 나가야지.》

《괜찮습니다.》

울적해진 나를 눙치려는듯 퍽 활달해진 그의 목소리는 벌써 복도 한끝에서 울렸다.

우리가 청사를 나설 때는 사위가 어둠속에 묻혀있었지만 비는 여전히 내리고있었다.

《선생님, 우산 있습니까?》

《없어요, 대혁인?》

《저두 없습니다.》

《우산도 없으면서 같이 가자고 했나요?》

《전 사실 선생님우산을 좀 얻어쓰려구 지금껏 기다렸는데…》

《뭐?》

내가 눈을 흡뜨자 그는 재미있다는듯 픽 웃다가 《요쯤한 비 뭐랍니까? 그냥 갑시다.》하고 호기있게 말하더니 가방에서 곱게 접은 우산을 꺼내들었다. 우정 한쪽으로 치우쳐 걸어가는 대혁이의 한쪽팔이 축축한것을 느끼며 나는 눈굽이 따끈해졌다.

말이 학생이지 나보다 키가 한뽐이나 더 큰 그 소년은 《선생님은 꼭 우리 친누나같습니다.》하고 벌씬 웃었다.

《그-래? 누나도 대학생인게지?》

《예? 아니… 전 외아들입니다. 헤헤… 제말은 우리 학급동무들이 모두 그렇게 말한다는겁니다.》

자기 말을 형상적으로 듣지 못한 이 실습선생이 어색해할가봐서인지 대혁은 그답지 않게 헤식은 웃음으로 어물쩍해버렸다.

《이제보니 대혁인 형편없는 아첨군이로구나. 왜? 나한테 미안한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지?》

그 말에 대혁은 머리를 푹 숙였다.

푸르싱싱하던 대나무가 금시 데쳐낸 시래기모양으로 변해버린것이다.

《나무심는 날에 있은 일은 사실 저때문에 일어난것입니다.》

대혁은 나무심기가 끝난 다음 담임선생님을 찾아가보려고 계획했었다. 그런데 작업은 예상외로 오래 걸려서 해마저 꼴깍 넘길 잡도리였다.

자기에게 차례진 나무모를 다 심고난 대혁이는 골살을 찌프리고 주저앉았다. 녀자애들이 얼마나 꼬물거리는지 아직도 심지 못한 나무모들이 많이 남아있었던것이다.

(개미같이 아물거리기란…)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안타까왔다.

《자기걸 다 심은 동무들은 여기루 오라.》

대혁이가 찾는 리유를 말 안해도 다 알고있는 남자애들은 흔들흔들 거드름을 피우며 모여와서는 각기 녀자들의 삽들을 앗아쥐였다.

《일없어. 우리끼리 해.》

《뭘 그래? 속으론 좋아하면서.》

한참이나 사양하던 녀자애들은 발기우리한 얼굴에서 땀방울을 훔치며 새실새실 웃었다.

남자들이 달라붙으니 일자리가 푹푹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자들이 있긴 있어야겠지? 우리 학급의 어떤 녀동무들은 글쎄 남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어깨가 으쓱해진 대혁이 슬쩍 내비친 이 말이 그처럼 큰 효과를 나타낼줄이야.

《그걸 말하자고 하는 일이라면 그만둬.》

새파래진 영주는 대혁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선언했다.

《필요없어.》

대혁이는 (괜히 그랬구나.) 하는 후회도 없지 않았으나 온 학급이 지켜본다는 생각과 함께 선생님면회에 자기를 빼놓았던, 넓게 리해하자던 그 일까지 생각나 영주의 발치에 삽을 내동댕이치고말았다.

《도와주는데다 대구서두 고렇게 까박을 붙여? 내 정말… 학급장동무, 잘해보십시오. 방해하지 않을테니까.》

그러고는 홱 돌아서서 산을 내리고말았다.

《대혁아,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만류하는 성범이의 손을 뿌리치고 한참 가느라니 주성이까지 따라왔다.

《대혁아, 너 지금 선생님한테 가지?》

《상관하지 말라.》

《실은 나두 같이 가자구 그래.》

《뭐?》

대혁이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주성이를 바라보았다.

《너까지 욕먹겠니? 올라가라.》

《싫어. 가야 할 일도 없잖니. 녀동무들은 저희끼리 하겠다구 하구.》

《흥! 우리가 거의다 심어줬는걸.》

《그러게 말이야. 이젠 그 애들끼리두 다 심을수 있으니까 같이 가자. 나두 선생님이 보구싶어서 그래.》

별수가 없었다.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심정이야 온 학급모두가 꼭같은것이 아닌가.

《그럼… 같이 가자.》

둘이서 산밑에까지 내려오니 언제 어느 길로 왔는지 강철이며 송우까지 일여덟명이나 먼저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대혁이는 에라, 내친김에 간다 하고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반달음을 놓았다.…

《전 사실 밸이 나서 그런겁니다. 토요일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성범이가 우쭐거리며 하는 말이 자기가 뭐 남자 〈대표〉루 병원에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댔다는데…》

나는 속으로 역시 아이는 아이라고 생각하며 웃음을 겨우 삼켰다.

다음순간 나는 학생들속에서 벌어진 그 모든 일이 다름아닌 바로 나때문에 생긴것이라는것을 새삼스레 깨닫고 입술을 꼭 감쳐물었다.

내가 영주 말대로 학생들을 모두 데리고 선생님을 찾아갔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게 아닌가. 그러고보니 교원에게는 억울한 욕이라는것이 없었다. 학생들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든 그 행동에는 교원의 책임이 있다.

제자들이 교문을 나선 때로부터 수십년후에 세상끝에 가서 저지른 잘못이라고 해도 학창시절 가르쳐준 선생님은 절대로 그 책임에서 벗어날수가 없다.

왜냐면 사람의 일생은 학창시절에 결정되고 학창시절은 교원에 의하여 결정되기때문이다.

《리영주 고거 제가 뭐라구 학급장을 쏙 빼놔?》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틈에 혼자소리로 두덜거리는 대혁이의 말에 나는 놀랐다.

(학급장?! 그러니 처음의 내 짐작이 맞았댔구나.)

《선생님, 사실 전 선생님이 오시기 며칠전까지만 해도 학급장이였습니다. 초급단체위원장이 하는 일이 눈에 차지 않아서 제 마음대로 하겠다고 날치다가 리영주와 대판 싸웠는데 그 일이 선생님과 집단에 그렇게 큰 실망을 줄줄 미처 몰랐습니다.

난 그날 처음 선생님한테서 엄한 꾸중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종아리를 아프게 치시듯 말씀하셨습니다.

〈넌 학급장자격이 없다. 그래가지고도 뭐 학교의 다음번 영웅이 되겠다고? 아니, 넌 영웅들의 시를 읊을 자격도 없다. 그들은 너처럼 살지 않았어. 그들은 네가 생각하는것처럼 어느 한순간의 위훈으로 영웅이 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학창시절부터 자기보다 먼저 동무들을 생각할줄 알았고 언제나 자기가 남보다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면서 무슨 일이나 피타는 노력으로 해내군 했어.〉

사실 전 그때까지만 해도 리영주가 학급장사업까지 맡아안고 얼마나 땀을 빼는지 보자는 심산이였습니다. 그런데…》

《달라지는게 없다는거겠지?》

《예, 제가 없어도 학급일은 다 잘되고 오히려 제가 없으면 더 잘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날에 있은 일을 놓구봐두…》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제저녁 병원에 찾아간 《도주병》들이 분과장선생님에게서 어떤 대접을 받았으리라는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었다.

분과장선생님은 아마 욕할새도 없이 문전에서 떠밀어보내셨으리라.

나는 죄스러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나를 믿고 학급을 맡겨준 학교앞에, 학생들을 위해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는 분과장선생님앞에 그리고 나같은 철부지도 선생님으로 불러주는 학생들의 맑은 눈동자앞에…

비내리는 밤길에서의 과도한 《산보》로 하여 나는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거꾸러졌다.

따랑, 늦은밤의 통보문소리에 와뜰 놀란 손전화기가 오한이 난듯 바르르 떨었다.

손전화기화면에는 통보문과 함께 무려 일곱번이나 받지 못한 전화가 찍혀있었다.

어마나, 세상에… 어머니였다.

《진희야, 아직 퇴근하지 않은게구나. 몸을 잘 돌봐라. 23시전엔 꼭 잠자리에 들고…》

지금쯤 새날이 가까와오리라고 생각했는데 손전화기의 화면에서 뱅글거리는 시계는 22시를 가리키고있었다. 그러니 어머니도 이제야 겨우 집에 들어섰을것이다. 나는 늘 그런 어머니에게 습관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내가 어머니를 기다리다못해 처음으로 쌀함박을 든것이 금방 교복을 입고 학생이 된 7살때였다. 물론 밥을 해보고싶은 욕망도 없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지은 밥이 설었던지 탔던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낌없는 칭찬을 받았던것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실 잠시도 자기를 위해 숨쉴수 없는 사람이 바로 교원이였다.

저녁밥상을 물리기도 전에 서둘러 꺼내놓군 하던 어머니의 두툼한 학습장, 나에게 필요한 어머니사랑을 그 학습장이 다 앗아가는것만 같아 늘 입술을 내밀던 나의 어린시절… 그 시절에 나는 어머니에게 자주 묻군 했다.

엄만 선생님인데 무슨 숙제를 자꾸 하느냐고.

그러면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님도 모르는게 많으면 숙제를 해야 한단다.

그때 나는 입을 비죽거리며 생각했다.

우리 선생님은 뭐나 다 아는데 우리 엄만 모르는게 뭐 그렇게 많나?

허나 그때 어찌 생각이나 했으랴.

이 세상의 지식을 다 알고계시는듯 무엇을 물어도 척척 대답해주시던 우리 선생님에게도 그런 《숙제장》이 있는줄, 막힘없는 그 대답들이 모두 그 《숙제장》에서 나온것인줄…

문득 오늘 아침에도 내 책상우에 산같이 쌓였던 습작집들중에서 코마루를 울리던 한 대목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젊은시절 그리도 작가가 되기를 희망했던 우리 담임선생님. 그 뛰여난 재능의 붓을 자신을 위해 들었다면 벌써 그 희망의 상상봉우에 우뚝 올라섰을 우리 선생님!

그러나 그 붓은 어디에서 달리는가. 바로 우리의 소박하고 서투른 글뒤에서 말없이 달린다.

가슴속깊이 묻어둔 그 희망도 우리의 아롱다롱 무지개꿈들의 뒤에 세웠다.

우리 선생님의 동글동글한 글씨가 있던 자리에 오늘은 실습선생님의 활달한 필체가 새겨지고있다. 글씨는 달라도 빛갈은 꼭같다.

선생님들의 뜨거운 마음의 빛갈―붉은색이다. 그 붉은색을 듬뿍 찍어낸 선생님들의 붓이 우리를 따르고있다. 희망찬 앞날에로 힘있게 떠밀고있다. …

그 글을 읽고나니 몰려오던 피곤이 어디로 갔냐싶게 머리가 맑아졌다.

나는 책꽂이에서 시집을 꺼내들고 오늘 수업시간에 강철이가 물어보던 시 《벽계수 너처럼》의 글줄들을 더듬어내려갔다.

나는 어머니의 당부를 어길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나 역시 어머니와 같은 교원이기때문이였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1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