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11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실습교원

손 수 경

(제 1 회)

1

 

《예? 제가 말입니까?》

《얼마동안 학급을 좀 맡으라는데 놀라긴 왜 놀라오?》

햇내기실습교원에게 학급을 맡기며 부교장선생은 빨갛게 달아오르는 나의 얼굴을 안경너머로 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나는 두볼이 볼록하게 공기를 채워보이고나서 회의실 맨뒤에 로장답게 앉은채 습관처럼 귀바퀴를 연신 쓸어내리고있는 우리 분과의 인철선생에게로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허허선생》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사람좋은 허인철선생은 온 학교에 유명짜한 그 허허전략으로 곤경에 처한 나에게 지원포를 쏘아주려고 결심했는지 너부죽한 얼굴을 웃음으로 채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희선생이야 엊그제 온 실습생인데 차라리 제가 맡아보는게 어떻습니까? 허허… 거 뭐 분과장선생님 병셀 봐두 인차 나오실것 같진 못한데.》

반죽좋게 넘기는 인철선생의 말에 턱이 뾰족한 부교장은 두부모베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건 분과장선생님의 요굽니다. 진희선생, 2학년 7반은 학교적인 모범학급인데 잘해보시오.》

이로써 나는 비록 림시적이긴 하지만 2학년 7반의 담임교원이 되였다.

사실 그 학급은 내가 첫 수업을 한 학급이였다.

《강철학생.》

《예.》

《리주성학생.》

《옛.》

걸걸한 목소리로 옆자리의 녀학생들은 물론 나까지 놀래우며 싱글거리는 그들의 대답에서 나는 학생들이 이 실습선생을 무척 마음에 들어한다는것을 느꼈다. 그런데…

《최대혁학생.》

《예.》하는 대답소리를 삼켜버리며 웃음판이 터졌다.

나는 영문을 몰라 허둥지둥 출석부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최대혁, 분명 옳았다.

나는 저도모르게 화면으로 어설픈 이 수업을 지켜보고있을 분과장선생님은 물론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눈앞에 안겨왔다.

당황함을 한구석으로 밀어내며 노여움이 불쑥 치밀었다.

자기들의 실책을 느낀 수십쌍의 맑은 눈가에 미안한 빛이, 용서를 구하는 천진한 빛이 비끼지 않았던들 나는 이내 교수안을 싸안고 교실을 뛰쳐나가고말았을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45분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나는 머리속에 독버섯처럼 돋아난 물음표를 종내 뽑아버리지 못하였다.

그날 저녁 온 나라에 소문이 자자한 이 고장 특산사과를 한구럭이나 들고 숙소로 찾아온 분과장선생님으로부터 사연을 전해들은 나는 너무 창피스러워 내 얼굴이 손에 든 사과보다 더 빨개진것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우리 고향 북관사투리로 내는 《최》라는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듯 우습강스럽게 들린다는것을 그때에야 알았던것이다.

바로 그래서 대학동무들이 짬만 있으면 핀잔을 주군 했으리라.

그날의 일은 웃음으로 끝났지만 나는 왜서인지 그 학급 학생들을 마주하기가 몹시 어색해졌다.

사흘째 그 학급 문학수업이 차례지지 않는것을 다행스레 여겼던 나로서는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다가 범을 만난 심정이라 할지…

《허, 종달새같이 명랑하던 우리 진희선생이 하루아침에 밝은 날의 부엉이처럼 뻥해졌는걸.》

교원모임이 끝나자 분과실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인상을 좀 펴라구요, 그러다 그 고운 얼굴이 말린포도알처럼 되고말겠소. 자, 서있지만 말구 앉소. 우리 분과실천정은 말이요, 그렇게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게요, 정말이라니까! 허허.》

자리까지 권하며 익살을 부리는 인철선생의 성화에 못이겨 나는 끝내 웃고야말았다.

《선생님, 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에이, 참… 어떤 사람들은 엎어져두 떡함지라던데 난!》

《왜 2학년 7반은 뭐 돌무지라던가. 사실 실습기간에 학급을 맡아본다는것자체가 행운의 떡함지라니. 나역시 수십년전에 그 떡맛을 본사람으로서 하는 말인데 복인줄 알라구요.》

인철선생은 눈을 깜박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보고 《허허.》 소리내여 웃더니 《자, 그럼 시간표를 볼가. 3수업에 1반, 4수업에 5반…》하고 쭉 내리읽었다. 이때였다.

똑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분과실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턱에 닿을 정도로 높이 쌓은 책무지를 안은 녀학생이 언뜻 보였다.

《야… 동무, 제발 오늘만 사정봐달라.》 무언가 사정하는 남학생의 목소리…

《안돼. 아, 안된다는데.》

차겁고 딱딱한 대답과 함께 도망치듯 재빨리 분과실에 들어선 몸매 날씬하고 살갗이 유난히 맑은 그 녀학생은 차겁던 목소리의 주인답지 않게 방그레 웃었다.

밖에서 《에이, 고거 콤파스같은거. 괜히 들어다줬다.》하는 남학생의 랑패스러운 목소리가 울리였다.

《15분전 8시인게구나. 정미가 온걸 보니.》

혀를 차는 인철선생의 말에 나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정말 15분전 8시였다. 분과실에 웃음의 잔물결이 일었다.

《진희선생. 그 학급 문학과목책임자요. 이건 분과장선생님이 매주 월요일마다 꼭꼭 보아주는 학생들의 습작집이요.》

나는 인철선생의 말을 들으며 정미에게서 넘겨받은 책무지를 책상우에 놓았다. 맨우에 놓인 빨간색의 습작집표지우에 싱갱이질끝에 난 상처인듯 꺾였던 자리가 유표했다.

《조성범》

그런즉 정미를 콤파스라 욕하던 그 남학생이 조성범이라… 키는 그리 크지 않은데 몸이 다부지고 큼직한 얼굴의 이마에 《임금 왕》자까지 그려놓으면 정말이지 범처럼 보일 인상이였다.

성범이가 무엇때문에 습작집을 놓고 정미와 싱갱이를 벌렸을가 하는 물음표가 꼬부랑거리며 호기심을 자아냈다.

《진희선생, 세번째 수업부턴 련달아있는데… 힘들어도 어찌겠소.》

수업준비종이 울리자 분과실문을 나서던 인철선생은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후더분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 괜찮습니다.》

그러니 두시간은 여유가 있는셈이였다.

책상에 마주앉으니 쌓아놓은 습작집들이 나와 키를 겨루잔다.

나는 성범이의 책부터 펼쳐들었다.

《고드름》이라는 제목이 안겨왔다.

…오늘 아침 교실에 들어서니 동무들이 《고드름》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고있었다.

《실습선생님을 두고 하는 말이니?》

나의 말에 누구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긴 이렇게 물어보는 내가 보기에도 실습선생님은 고드름이라고 할 정도로 차겁고 딱딱해보였다. 날씬한 몸매와 대학교복인 흰저고리를 입어서인지 그런 느낌을 더해준다. 사실 첫눈에 우리는 교실이 환해질 정도로 밝은 웃음을 지으며 들어선 선생님에게 무척 호감을 가졌다. 헌데 우리 학급에서의 첫 수업이 선생님을 고드름으로 만들어버릴줄이야. 교내에서 만나 인사를 하면 깍듯이 받아주기는 하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당황해진 선생님의 얼굴에서 우리는 웃음을 기대할수 없다.

날이 갈수록 모든것이 나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이 어는것은 주위가 차기때문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날 누나는 날보고 《그건 다 웃기 잘하는 너때문이야. 아무때나 부실하게 히들거리면서…》하고 욕했다. 그때 나는 온 학급이 다 웃었는데 왜 나보구 그러느냐고 대들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말이 옳았다.

아무 일에나 선구자가 있듯이 웃음판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누군가가 웃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도 반사적으로 따라웃는것처럼…

그날에는 내가 바로 그 《영예로운》 선구자가 되였던것이다. 사실 그날 나는 선생님이 성이라도 나시면 어쩌나 하고 마음을 조였었다.

혹시 한문선생님이라면 《이녀석들은 그저 좋다는군, 허허…》하고 웃어넘기였을테지만 강한 자존심의 소유자라는것이 십리밖에서도 알리는 실습선생님은 《성범학생, 일어서세요.》하고 교치꼬치 따져물었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몇순간 당황해서 얼굴을 붉히셨을뿐 전혀 내색없이 수업을 끝내셨다.

얼마나 노여우셨을가, 그러나 참으시였다. 바로 선생님이기때문에. 나는 이렇게 좋은 실습선생님에게 용서를 빌고싶다.

칠판에 축하장을 그려 담임선생님을 깜짝 놀래웠던 그 아침처럼 실습선생님이 우리 교실에 두번째 수업을 들어오시는 날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 선생님의 웃음을 다시 찾아드리고싶다.

고드름을 녹이는 봄바람이 되고싶다. …

 

그제야 나는 분과실문앞에서 있은 말다툼의 동기가 어렴풋이 헤아려졌다.

성범이는 여느날처럼 생각하고 글을 썼는데 담임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여 그대신 내가 학급을 보게 된다는것을 알고는 덴겁하여 정미에게 습작집을 도로 달라고 졸랐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기 비슷하게 되여버린 그의 글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재치있는 글솜씨보다도 그 글에 비낀 진실한 마음때문이였다.

나는 책상우에 있는 푸른색원주필을 들어 수표를 하려다가 앞페지들을 번졌다.

분과장선생님과 가장 비슷한 방식으로 수표해주고싶었던것이다.

《요즘 사그러져가는 성범이의 실력이 정말 걱정됩니다. 분발하자요.》

빨간색으로 또박또박 박아쓴 이 글은 시험성적이 낮아 고민하는 어느날의 습작품뒤에 써준 분과장선생님의 글이였는데 피를 찍어 쓴것 같은 그 빨간색의 문장에서 선생님의 뜨거운 심장이 맥박치고있는듯싶었다.

그 하루뿐이 아닌 모든 날들에, 그 한 학생만이 아닌 모든 학생들의 습작품 갈피마다에 티없이 깨끗하게 날마다 커가는 학생들의 마음이, 그들모두를 한가슴에 꼭 안고사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곱게 새겨져있었다.

글이란 손끝에서 나오는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나오는것이다.

나는 책상서랍안에서 붉은색원주필을 꺼내들었다. 내가 들고있던 원주필이 마치도 그 《고드름》색갈 같아서.

《성범학생의 따스한 글이 선생님에게 녹음점을 안겨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마지막수업이 끝나자마자 습작집들을 아름벌게 안고 웃으면서 교실문을 열었다.

《자, 습작집을 나눠주겠습니다. 리영주동무.》

그의 글에서는 책을 많이 읽고 사색을 깊이한다는것이 쉬이 알렸다.

《강철동무.》

글을 아기자기한 동화처럼 재미있게 쓴 그는 《강철》이라는 묵중한 이름과는 아주 딴판으로 생겼다.

크지 않은 키에 날씬한 몸매, 류달리 장난기로 빛나는 까만 눈, 이마우에 물결을 그린 고수머리…

《최정미동무.》

기하문제를 풀던 모양인지 손에 콤파스를 쥔채 일어서는 그를 보니 아침에 분과실앞에서 두덜거리던 조성범의 목소리가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났다.

글을 수학문제 풀듯이 한문장 한문장 정확하게 써내려가는 빈틈없는 전개방식에 비해 형상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결함이 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문학과목책임자가 되였을가?

《송우동무.》

《예!》하는 챙챙한 목소리에 이어 내 코앞에서 불쑥 튀여일어난 꼬마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키나 생김새로 봐서 초급반학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애된 소년이였다.

책표지가 아롱다롱한 그의 습작집은 그야말로 동요, 동시로 가득찬 동심의 세계였다.

《조성범.》

내가 일부러 온곱지 않은 목소리로 부르자 아까부터 자라목이 되였던 성범이는 송우의 옆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며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비위살좋은 웃음을 씩- 웃었다. 그 바람에 나까지 웃을번 했다.

애써 무뚝뚝한 《고드름》인상을 짓고 서있는 내 모습에 겁먹었던 성범이는 습작집을 펼쳐보더니 얼굴이 대뜸 밝아졌다.

좀전의 웃음과는 달리 그 웃음에는 천진스러운 기쁨이 찰랑이고있었다.

책들을 모두 나누어주고나서 나는 아주 홀가분한 기분으로 학급장을 찾았다.

《학급장동무, 이제 다른 사업계획이 또 있습니까?》

내가 학급장이라고 생각되는 그 멋쟁이 최대혁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있을 때 창문쪽줄에서 리영주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니 학급장이 녀자였나?

어리뻥뻥해졌지만 인츰 정신을 가다듬고 그를 교실밖으로 불렀다.

《선생님이 앓으신다는데 과외시간에 다른 계획이 없으면 가보도록 하자요.》

《아닌게아니라 모두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수업만 끝나면 가보자고 절 얼마나 다불러대는지 모릅니다.》

리영주의 대답이였다.

《그렇다고 몽땅 다 갈수는 없는거구… 초급단체위원동무들만 가도록 하자요.》

《다들 가고싶어하는데…》

나는 《원, 철두 없지.》하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영주는 더 다른 말을 못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하루사업이 다 끝난 다음 교실에 들어서니 리영주와 최정미, 조성화와 조성범(그들은 쌍둥이오누이임.)이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입원실에 들어서자부터 능청맞게 너스레를 떠는 성범이 덕분에 겨우 일어나앉았던 분과장선생님은 웃다가 다시 쓰러질 지경이였다.

중한 병인가고 근심스레(그것은 사실 나에 대한 근심이기도 하였음.) 묻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부석부석해진 얼굴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중한 병은 아니예요. 지금껏 이러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믿음직한 대리인이 생기니 긴장이 풀린게지.》

롱삼아 하는 말같았으나 선생님의 눈가에는 진정으로 다행스러워하는 빛이 력연했다.

《선생님은 절 그렇게 믿습니까?》

《그럼요. 입원하기 전에 매일 진희선생이 수업하는 화면들을 봤는데 선생은 정말 교원이 되려구 태여난 사람같더라니까요. 다른 과목도 그렇겠지만 특히 문학에선 자기가 시 백편을 쓰기보다 학생들이 한편을 쓸수 있게 하는것이 더 힘든 법이지요.》

그 말을 듣고는 언제쯤 나올수 있는가고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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