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3호구

변 일 문

(제 4 회)

4

 

사람들이 붐비는 인도로로 나는 거의 달리다싶이 걸었다.

얼굴로 땀이 줄줄 흘렀다.

온통 땀투성이가 되여 반달음을 놓는 나를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본다. 관계없다.

지금쯤 차표를 다 팔고 출표구문을 닫았을는지도 모른다. 이때 구내방송소리가 울렸다.

《신의주쪽으로 려행하시는 손님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잠시후 평양-신의주행 렬차의 차표를 찍어드리겠습니다. 차표를 사신 손님들은…》

나는 숨이 턱에 닿아 4호기다림칸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제일 가까운 긴의자에 려행용가방을 털썩 내려놓았다. 몸이 바닥에 잦아드는듯싶었다. 그러나 주저앉을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찾기 시작하였다. 평범한 역기다림칸의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나처럼 금방 숨차게 들어서는 사람들, 배포유하게 긴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사람들, 신문게시판을 찬찬히 훑어보는 사람들과 짐을 들고 나가는 사람들…

창황중에도 나는 출표구들을 훑어보았다.

평양역의 출표구들은 신의주역과 달라서 모두 흐린 유리였다. 닫겼는지 어쨌는지 알 재간이 없었다. 그앞에 서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한 출표구앞에만은 몇사람이 손에 증명서들을 들고 서있었다. 바라보니 6호구였다.

순간 나는 거기에 보란듯이 걸려있는 표식판을 띄여보았다.

《대학교원, 석사…》!

그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여기도 고향역의 3호구와 다를바 없는 6호구가 있었구나.

한사람의 얼굴이 글줄을 가리웠다. 아버지였다.

온통 땀얼룩이 된 나를 한동안 여겨보시던 아버지가 나직이 말했다.

《증명서를 주렴. 차표를 사줄테니. 넌 세면장에 가서 얼굴을 좀 씻어라.》

…내가 급히 세면을 하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문다지며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벌써 출표구앞에 서있었다. 차표를 사는 아버지의 얼굴은 밝았다. 출표원과 반달구멍으로 웃으시며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아버지뒤로 몇사람이 또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차표를 산 아버지가 내게로 다가왔다.

《속이 달지. 내 덩이크림을 사주마.》

땀, 세면장, 차표, 덩이크림… 갑자기 코허리가 시큰해졌다.

아버지에게는 내가 다 컸어도 여전히 철부지였다.

…한동안 덩이크림을 손에 들고 푸르른 잎새를 한가득 그러안은채 까딱없이 서있는 나무에 다른 손을 얹은채 깊은 생각에 잠겼던 아버지는 말했다.

《어릴 때 일이 생각나니? 네가 평양가는 나를 좇아 신의주역으로 나왔던 일 말이다.》

《…》

어찌 잊을수 있으랴. 흰 종이같은 어린 마음속에 그 무엇과도 비길데없는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긍지와 자랑을 또박또박 적어주었던 그날의 3호구를…

석달전 박사학위를 수여받던 날에는 그 일이 그대로 재현된 꿈까지 꾸었다. 그랬다. 나는 항상 3호구를 생각하였다. 만사람의 존경속에 그리고 선망의 눈길속에 사는 그런 사람이 되리라는 자각을 안고 나는 이날까지 수많은 고충과 고민들을 이겨내며 달려왔다. 나의 박사학위도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였다고 해도 아마 틀린 소리는 아닐것이다.

《하지만… 네가 이 아버지에 대한 긍지와 자랑으로 기쁨을 느낄 때 사실상 나의 가슴은 무척 아팠구나.》

《예?!》

나는 놀랐다. 무엇이 그리도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단 말인가.

《대학교원으로서 자신의 사명과 본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구나 하는 자책과 죄스러움때문이였지.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주관인지 몰라도 나는 짧아진 그 3호구의 줄이 마치도 우리 도의 구실하는 인재수를 나타내는 도표처럼 보이더구나. 제자들에게 순수 지식만을 전수한것 같아 정말 머리를 들수 없었다. 우리 대학교원들과 그들이 키워낸 과학자들이 제구실만 바로했더라면 나라가 그토록 힘겨워지지 않았을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것은… 너의 부모들 세대가 한평생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어버이장군님께 지은… 아직까지도 씻지 못한 죄다.》

…아버지의 눈가에 굵고 진한 눈물이 맺혔다. 어느새 나의 눈가에도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시더니 천천히 눈굽을 닦았다. 아버지의 그 말은 그리고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의 눈물은 나의 가슴에 세찬 파동을 일으켰다. 그 순간 나는 《이 3호구엔 늘 이렇게 사람이 적습니까?》 하던 아버지의 말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

그것은 아버지의 교육자적량심과 인간적 의무감에서 흘러나온 뼈저린 자책이 아니였던가.

《내 인생의 목표는 그날부터 3호구에 끌끌한 제자들이 꽉 차넘치게 만드는것이였다. 평범한 날에는 물론 어려운 날에도 말이다. 다음해부터 난 내가 강의를 해준 학생들이 졸업식을 한 날이면 3호구앞으로 나가군 했지. 속으로 그들에게 당부했다. 동무들! 탈선없이 최대급행으로 달려주오! 동무들의 노력에 조국의 미래가 달려있소.라구.… 해가 다르게 그 줄은 늘어만 갔다. 나는 새로운 힘과 열정을 안고 대학으로 돌아오군 했구나. 우리 나라의 인재숲이 또 한번 넓어졌구나 하구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가 다름아닌… 자기 아들만은 그렇게 키우지 못했구나. 오늘에야 알았다. 너처럼 일순간의 성공과 명예에 만족하여 인생의 다음구간을 편안하게 짚어가려는 그런 과학자를 과연 인재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말이다.》

《예?!》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잎새들이 불안스레 몸을 떨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거리를 지나는 무궤도전차의 동음이 별스레 크게 들려왔다. 우리 로동계급이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낸 새형의 무궤도전차가 거리를 누비며 지나가고있었다. 바람은 좀더 세졌다. 돌연 돌개바람이 일면서 그 서슬에 땅우에 떨어진 락엽 몇개가 휘감더니 공원 한가운데 놓여있는 오물통쪽으로 휘말려갔다. 그것은 분명 나의 가슴속에서 일고있는 회오리였다.

《3호구앞에서 제 아버지를 목청껏 자랑하던 너는 철모르는 유치원생이였다. 그렇다면 이 6호구앞에 선 지금의 너는 누구냐? 과학자이며 박사다. 하다면 너는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지식을 늘이구 노력했지. 나라에선 품을 들였구. 이런 생각이 든다. 실력이란 결코 과학기술지식만이 아니구나 하는. 자기 목표에 대한 강한 지향성, 그 어떤 고난도, 지어 자기의 성공앞에서도 주저와 만족을 모르는 정신력, 언제나 자기를 키워준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과 복무열로 가슴불태우는 심장, 이것이 안받침되여야 진정으로 당이 바라는 실력을 갖춘 과학자, 혁명인재가 아니겠느냐.》

《아버지!》

불현듯 나는 언젠가 밤늦도록 제자들에게 론문지도를 하는 아버지에게 저녁식사를 가져갔던적이 생각났다.

그때 아버지는 무엇때문인지 가장 사랑하는 한 제자를 엄격히 추궁하고계셨었다.

그때 아버지의 눈빛이나 어조가 바로 지금처럼 이러했었지.

후날 그 제자는 나에게 그때 자기는 참된 인생에 대한 강의를 받았다고 말했었다. 물론 나는 아버지의 말이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니였다. 너무도 많이 들어왔고 읽어왔으며 나 또한 많이도 해온 말이였다.

그러나 그 참의미를 오늘처럼 절절하게 깨달은적이 과연 있었던가.

한동안 말을 멈추고 나를 사려깊은 눈길로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강의》를 아니, 강의를 계속했다.

《박사라는 명예를 네것으로만 생각지 말아라. 내가 보니 명예라는건 없을 땐 마치 아름드리나무 맨꼭대기에 매달린 이 세상 제일 크고 단 열매같더라. 기어코 올라가 따고싶은. 그러나 일단 그것을 지녔을 땐 크고 무겁더라. 그건 명예가 잔등에 짐처럼 지는거지 무슨 보석목걸이나 장식브로치처럼 몸에 달고다니는게 아니기때문이다. 네가 그 열매를 따기 위해 딛고올라간 줄기와 아지들을 잊지 말아. 그 줄기를 자래운 땅과 그 땅우에서 네가 순간이라도 발을 헛디뎌 떨어질가봐 근심스레 쳐다보았고 지금도 쳐다보며 온갖 심혈을 다하고있는 모두의 눈빛을 말이다.》

어느새 아버지의 눈가에는 따뜻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그것은 아버지 하나만이 아닌 이 나라의 기둥감들을 꿋꿋이 키워내는 우리 교육자들의 하나같은 심정이였다. 교육자인 아버지가 한생 품들여 준비했고 제자들과 자식들앞에 헌신적인 모범으로 증명해나가고있는 인생강의안이였다.

나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이기 전에 제자였으며 박사이기 전에 과학자였다. 자기만을 위한 명예는 버리라.

그럴 때 그토록 어려운 나날 조국이 품들여 키워 안겨준 이 나라 과학자의 진정한 명예를 지킬수 있다.

그러자 또다시 6호구의 글줄들이 망막을 자극하며 다가왔다.

《대학교원, 석사…》

너의 아버지세대가 이앞에서 다진 맹세를 잊지 말라.

그들의 피타는 노력과 실천으로 오늘은 너의 젊은 세대가 그자리에 섰다. 과학기술의 추동력과 교육의 원동력으로 짧은 몇해사이에 조국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수많은 과학기술인재들이 그속에서 자라났다.

키워준 부모들과 스승들과 조국에 실망을 주지 말라. 이앞의 늘어가는 줄이 그대로 내 나라를 받드는 혁명인재, 과학자들의 수를 나타낸 도표가 되도록 그렇게 살라. …

나는 그 글줄들이 이렇게 말하는것 같았다.

바람이 더욱 세차졌다. 푸른 잎새들이 몸부림하듯 세차게 떤다.

열두시를 알리는 평양역의 은은한 종소리가 울렸다.

조금 있으면 발차시간이다. 나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아버지, 이번 신의주행을 아무래두 하루 늦잡아야 할것 같습니다.》

《왜 말이냐?》

《소장동지한테 모든걸 이야기하구 정식으로 림송이와의 공동연구를 제기하겠습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왜서인지 마음이 천근짐이나 내려놓은듯 가뿐해진다.

그 한마디 말이 이렇듯 무거웠더란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 어깨에 지워지는 무거운 짐도 나는 느꼈다.

(그래, 무거운 짐을 져야 마음이 가벼운 법이지!)

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며 나의 어깨에 한팔을 올려놓으시였다.

《내 그럴줄 알았다.》

아버지는 손에 들고오신 가방을 열었다.

《시간을 아껴라. 하루면 벌써 24시간이다. 그리구 둘러리는 어찌구. 받아라. 너의 현실체험파견장이다. 소장과 아버지의 자격으로 토론을 했다!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 사람 알고보니 나하구 동갑이더구나.》

《!》

이로써 나의 출장용무는 진짜가 되였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기적소리가 길게 울렸다.

나는 이 길이 결코 헐치 않은 길임을 안다. 그러나 과학자가 가는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광명한 미래로 나아가는 조국의 전진로는 더 넓고 평탄해질것이며 나의 인생은 더더욱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으로 후대들의 기억속에 오래 남을것이다. 퍽 오래전 일이 다시 떠오른다. …

3호구에서부터 6호구까지…

나는 어른이 되였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어린 날의 그 3호구로 되돌아갔다.

어릴적의 그 천진한 마음과 순진하고 깨끗하며 열렬한 지향으로, 그것으로 자래운 드팀없는 신념으로 나는 과학의 길을 주춤없이 달려갈것이며 그 길에서 나의 심장은 언제나 이 출발원점에만 서있을것이다.

…조국은 비약할것이다. 우리 미래는 보다 아름다와질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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