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109(2020)년 제9호에 실린 글

 

단편소설

3호구

변 일 문

(제 3 회)

3

 

나는 그때 대학도서관에서 대출해온 민속학계통의 책을 읽고있었다.

동방의 결혼풍습에 대해 서술한 책이였다.

여느때 보았더라면 퍼그나 흥미진진했을 자료였다. 하지만 그 시각에는 왜서인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불같은 세월에 한가하게 민속학책이나 뒤적여야 하는 자신에게 화가 동하기도 했다. 읽던 책을 미련없이 덮어버린 나는 그옆에 반듯하게 놓여있는 출장증명서에로 시선을 옮겼다.

《이름 정학성… 용무 연구사업, 가는 곳 신의주시…》

터무니없는 용무였다. 나는 고향에 연구사업이 아니라 림송의 결혼식에 둘러리를 서러 가야 하는것이다. 생활은 마치 나의 모든것을 시험해보려는듯 했다.…

사흘전이였다. 새벽에 림송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자기 둘러리를 서달라고 했을 때 나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듬직한 체통에 비해 지내 내성적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는 나였다. 한마디로 꽁하다는 뜻이랄지.

게다가 아직 독신인 나는 그런데 전혀 경험이 없었다.

《그저 곁에 서있기만 하라구. 그러면 돼!》

너무도 쉽게 말하니 불안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일체 대소사를 다 주관하다싶이 해야 한다. 신랑의 결혼식옷차림을 봐주고 구두도 신겨주는 등 신랑의 눈짓 한번에 쩔쩔매며 돌아가야 한다. 어린시절 그의 기분없는 부관노릇을 할 때처럼…

결혼식날엔 배라도 곯을가 신경도 써야겠지… 결혼사진이나 결혼편집물에도 주의를 돌려야 할것이다.

혹 연출가가 되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축하연때는 좌중에 흥그럽고 환희로운 분위기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조직해야 할것이고, 그저 서있어도 되는 사람은 둘러리가 아니라 신랑인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부탁을 거절할수도 없지 않는가.

두번째 리유는 나를 더욱 난처하게 했다. 그는 나에게 간단치 않은 난도의 공동연구를 제기해왔던것이다.

《난 규소소편에서만 가능하던 초소수성표면화를 마감건재에다 적용하자는거야. 그건 1단계목표구 전망적으론 이 세상의 모든 물체를 다 초소수성물체로 만드는게 나의 최종목표네.》

나는 마치 동화이야기감을 듣는듯 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만 이렇게 말해버렸다.

《거 정말 벅찬 생각이군그래. 그러니까 자네는 방수라는 말자체를 아예 없애자는거군?》

그러나 림송은 그것을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네. 내가 이런 착상을 하게 된건 이번에 신의주현대화건설지휘부 기술참모로 임명되면서야. 생각해보게. 모든 건물들이 다 초소수성화되였다면 건물의 수명이 얼마나 늘어나겠나? 우리가 쓰는 모든 물건들이 다 초소수성화되면 녹쓴다방수라는 단어를 자네 말처럼 후대들은 사전에서나 찾아보게 될걸세. 그래서 난 이 연구과제를 자네와 나 둘이서 해보자는거야. 이번에 아예 여기에 현실체험으로 내려오는게 어때?》

나는 선뜻 대답할수가 없었다. 가설은 말그대로 가설일뿐이다. 실험실단계에 있는 초소수성표면화를 거대한 건물에 실현하려면 얼마나 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는지 모른단 말인가. 자그마한 소편 하나를 초소수성화하는데만도 간단치 않은 품이 드는데 하물며…

바늘로 소잡듯 세월이 없는것은 둘째치고 아이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격이 될수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자네 무슨 안이라도 있나.》

《한가지 방법은 있네.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자네가 연구한 온도변색색감 말이야, 그 조성을 좀 변화시켜서 마감건재에 먹이고 거기다 내가 연구한 플라즈마법이라든지 화염방사법을 쓰면 어떨가? 한마디로 초소수성피복을 씌우잔 말이야. 자네와 나의 기막힌 협동이 아닌가 말일세. 에익, 전화로야 어디… 신의주에 오면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구. 응?》

나 역시 점점 흥분되기 시작했다. 머리속으로 복잡한 화학식이며 물리공식들이 번개처럼 휙휙 지나갔다. 리론상으로는 될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리론과 실천사이에는 아득한 거리가 있다. 이불깃도 안 보고 발을 펼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좌우간 알았네. 생각 좀 해보자구.》

《언제 오겠나?》

《이번주 일요일에, 그것두 소장이 승인하면.》

《무슨 대답이 그래?》…

다음날 아침 나는 이미 소장의 편수책상앞에 서있었다. 불만인지 의혹인지 모를 착잡한 시선으로 나의 얼굴을 더듬던 그는 책상을 다독이던 원주필을 주머니에 쑥 집어넣었다.

《둘러리? 신의주에 다른 동창들도 많겠는데 왜 꼭 평양에 있는 동무가 둘러리를 서야 한대?》

나와 림송이사이의 관계를 잘 모르는 소장으로서는 당연한 불만이였다.

나는 긴숨을 내긋고 대답했다.

《우리사이가 남다른데도 있지만 보다는… 제가… 박사이기때문입니다.》

《박사?!》

《예. …서른에 박사가 된 내가 둘러리를 서면 자기의 새 가정에… 가장 큰 축복이 되기때문이라던지. …》

림송의 말을 그대로 옮겼지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축복이라?! 허허… 좋구만!》

그러나 소장의 얼굴색은 좋지 못했다. 그 리유를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

《가야지. 아무래두 고향에 한번 휴가를 보내자던 참인데. 특별히 맡은 과제도 없으니까. 머리쉼이랑 하면서 처녀도 좀 보구… 래일 출장증명서를 받으러 오오.》

한참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장은 역시 큰사람이였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에게 나와 림송의 두번째 리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

…다음날 아침 받아온 나의 출장증명서에는 《결혼식》이나 《둘러리》가 아니라 뜻밖에도 《연구사업》이라고 씌여져있었다. …

차표를 사면서 당하게 될 멋적음을 덜어주기 위해서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장동지의 지나친 념려는 오히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혹시 그것을 바라고 우정 그렇게 적어주었는지도 모른다.

불같은 때 둘러리나 서러 다닌다고…

이로써 나는 숱한 사람들(례컨대 철도봉사자들)에게 본의아닌 거짓말을 하게 되였다. 아니, 그것이 어떻게 《본의아닌》것이겠는가. 나는 어째서 소장동지에게 두번째 리유를 말하지 못했던가. 혹시 너는 겁을 먹은것이 아닌가? 대담한 착상, 방대한 목표, 거기에 적용될 각종 첨단장비들과 나노기술, 그와 대조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우려, 이미 얻은 명예에 대한 애착… 그러자 그에 반발이나 하듯 이런 목소리들이 귀전에 울려왔다.

《학성동무가 혼합물연구과제를 재학생에게 주었다누만.》

《잘 나는 사람한테야 기는 재간이 필요있겠소.》

《하긴 박사야 큰걸 연구해야지.》…

순간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 말들은 결코 뒤소리가 아니였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던것이다. 그것은 혼합물연구과제를 석진에게 주어버린 나의 행동에 대한 전적인 지지와 믿음의 목소리였으며 나에 대한 강한 요구성이 아니였던가. 의혹도 갈마들었다. 어째서 그때에는 뒤소리로 여겨지던것이 이 순간에는 돌연 격려의 목소리로 들려오는것인가. 그 순간 나는 자신이 혼합물연구과제와 공동연구를 완전히 다른 두개의 자막대기로 재고있음을 깨달았다. 전자엔 그래도 과학자의 량심이 깃들어있었으나 후자에는 오직 친구의 의리라는 구실좋은 보자기를 쓴 리기심만 있을뿐이였다.

이미 얻어낸 명예가 있는데 사서고생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는, 서뿔리 맡았다가 한생을 다 바치고도 실패한 과학자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면 힘들게 지닌 명예마저 지켜낼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 나의 입을 봉해버린것이였다. 결국 나는 소장동지에게 기본출장리유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림송의 연구과제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보고있었던것이다.

과연 너는 어느쪽이냐. 량심이냐, 리기심이냐. 나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 두개의 크기와 힘이 어찌나 꼭같은지 나는 제스스로서도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나는 이제 림송의 새 가정과 그의 앞날을 《성공한 사람》의 자격으로 축복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자격이 과연 있는가. 없었다.

그랬다. 결국 나는 축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둘러리를 서러 가는것이다!

림송의 제안에 적극 호응하고 그에 발벗고나서는것만이 진정한 축복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저, 그저 둘러리일뿐이다. 갑자기 얼굴이 수치로 달아올랐다. 이번 출장은 량심과 리기심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나에게 생활이 내리는 최대의 처벌이였다!

어디선가 서정적인 선률이 흘러나온다.

가요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이였다.

그것은 원탁우에 놓인 나의 손전화기에서였다. 나는 전화를 받고싶지 않았다.

거침없이 이어지는 노래의 힘앞에 나는 끝내 지고말았다.

노래는 어쨌든 신기한 설득력을 지니고있다. 원탁으로 다가가 액정판을 들여다보던 나는 덮치듯 손전화기를 움켜쥐였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아버지의 번호가 찍혀있었던것이다.

《여보시오, 나 학성이예요.》

《전화를 좀 빨리 받아라. 지금 어디 있니?》

《집에 있어요.》

《차시간이 다됐는데 뭘하니? 빨리 역으로 나오너라.》

《거긴 어디예요?》

《어디겠니? 너의 연구소지.》

《언제 오셨어요?》

《한시간쯤 됐을가. 첫새벽에 뜨는 뻐스를 타고왔지, 너의 대학에 강습때문에. 좀 있다 4호기다림칸에서 만나자.》

나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탁상시계를 바라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렬차의 발차시간이 다된것이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흐르다니…

나는 려행용가방을 쥐고 급히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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