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청년문학》 주체97(2008)년 제6호에 실린

 

 작가일화

 

《매화부》와 시인의 운명

       

                            

어무적은 노예출신의 시인이였다.

중세 우리 나라 작가들중에 사회의 최하층에서 통치배들로부터 온갖 계급적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창작생활을 한 노예출신의 작가는 거의나 없을것이다.

이러한 리유로 하여 어무적의 작품은 《류민탄》(방랑하는 백성의 탄식), 《매화부》와 같은 몇편의 시만이 알려지게 되였으며 그의 활동년대도 15세기말~16세기초로 추정할수 있을뿐이다.

하지만 재능있는 풍자시인인 어무적은 누구보다도 자기의 계급적처지를 옳게 자각하고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백성들의 심정을 대변한 시인으로서 중세문학사에 이채로운 자취를 남기였다.

어무적이 김해관가의 관노로 있을 때 일이였다. 무슨 일로 하여 읍내유측의 마을을 지나던 무적은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자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이미전부터 알고있는 어떤 농부가 자기 집 앞마당에 서있는 매화나무를 도끼로 찍고있었다.

황황히 울안으로 들어선 무적은 제잡담 농부의 도끼든 손을 잡아내리였다.

《이 사람아! 이게 무슨 일인가? 아까운 나무를, 열매까지 가득 달린 이 좋은 나무를 무엇때문에 찍느냐 말일세.》

때마침 허리를 찍힌 나무는 으지직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모재비로 나가넘어지였다.

농부는 주름투성이얼굴을 험하게 찡그리며 허허 탄식조로 말하였다.

《이 나무야말로 우리 집의 우환거리일세.》

《아니, 과일나무가 어떻게 우환거리란 말인가?》

《내 말 좀 들어보게. 관가에서는 민가의 과일나무들까지 일일이 조사하여 문서로 꾸며놓고 해마다 제정한 정량대로 열매를 걷어간다네.

그해의 결실이 좋든 나쁘든 무조건 정량을 채워 바쳐야 하는데 만약 못 바치면 관가에 잡아다가 매를 친다네.

그러니 이게 우환거리가 아니고 무언가.

이따위 나무는 차라리 없는게 훨씬 마음편한 일일세.》

어무적도 관가의 검은 손이 집집의 과일나무들에까지 뻗쳐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나무로 하여 백성들이 이처럼 고통을 겪고있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어무적의 생각은 깊어지였다.

봄에는 향기로운 꽃들이 피고 가을에는 탐스러운 열매들이 맺히는 매화나무.

초가일망정 집집의 담박한 풍치를 돋구어주고 집살림에 적으나마 보탬을 주는 보배로운 나무들이 어이하여 우환거리로, 원한의 대상으로 되여 등허리를 찍혀야 하는가.

자고로 나무는 인간을 괴롭힌적 없건만 인간은 어이하여 나무를 이렇게 죽이는가.

더 말할것없이 이것은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관가의 량반, 아전들탓이다.

그들로 하여 백성들은 열백가지 가렴잡세에 짓눌리여 허덕거리고 죄없는 나무마저 이 지경이 된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러한 범행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그럴수 없다.

쓰러진 이 매화나무를 두고 시를 써야 한다. 온 세상에 백성들의 고통을 알리고 심악한 량반아전들의 죄행을 고발해야 한다.…

《이 사람 무적이, 왜 아무 말 없나. 또 시를 쓸 생각인가?》

농부가 근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제야 사색에서 깨여난 무적은 힘있게 고개방아를 찧었다.

《쓰겠네. 이 매화나무에 대해서, 백성들의 고통과 관가의 죄행에 대해서…》

농부는 대뜸 눈을 흡뜨며 손짓을 하였다.

《말게, 말아. 그런 시를 썼다간 임자는 그 당장 형틀우에 오를거네.

이제 또다시 그 모진 매를 맞는다면 여위고 병약한 임자는 살아남지 못하네.》

무적은 《매화부》서문에서 자기자신이 쓴것처럼 초췌할 지경으로 여윈데다 여러가지 몹쓸 병을 겹쳐가진 다병한 사람이였다.

그가 만약 통치배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시를 써서 형틀우에 오른다면 곡절많은 노예시인의 운명은 필경 끝장날것이였다.

하지만 무적은 자기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정의로운 문장으로 불의를 단죄하기 꺼려한다면 그게 무슨 참된 문인이겠는가.

만약 정의와 진실이 죽음우에 피는 꽃이라면 내 기꺼이 목숨을 바쳐 그 꽃을 피우리라…

무적은 다시금 힘찬 어조로 말하였다.

《내 기어이 시를 쓰겠네. 그 시때문에 설사 목숨을 잃는대도 절대로 물러설수 없네.》

그날 밤으로 어무적은 《매화부》라는 제목의 풍자시와 시의 서문을 지었다.

그는 《매화부》서문에서 먼저 당시의 악법을 《호랑이나 뱀과 같은 포악한 법》이라고 규탄한 후 적라라한 필치로 시의 첫 련을 떼였다.

 

…누렇게 더덕더덕

  열매야 적으랴만

  검측한 아전놈의

  욕심은 못 따르리

 

  가지우 달린 수의

  곱절도 더 내라네

  그것을 못낼 때는

  닿는대로 매질일세…

 

무적은 계속하여 눈물과 고통만을 엮어내는 매화나무의 열매를 지키기 위해 안해와 아들이 낮과밤을 이어 번을 서는 고달픈 정상에 대해 쓰고나서 풍자의 도수를 한껏 높이여 시의 결구로 돌입하였다.

 

…이탓이 무슨 탓고?

  매화나무탓이구나

  남쪽산 북쪽산에

  허구많은 잡목들을

 

  관리는 상관없고

  아전도 본체만체

  매화나무 오히려 잡목만 못하거든

  내 어찌 너 베기 사양하리…

 

어무적의 《매화부》는 고을안을 나돌던끝에 김해 원의 손에까지 들어갔다.

시를 본 김해 원은 크게 노하여 천둥같은 호령을 터치였다.

《이게 또 어무적이란 놈이 쓴 시로구나. 당장 그놈을 잡아다가 형틀우에 올려라.》

그 소식을 들은 어무적은 마을을 뛰쳐나와 방랑의 길에 올랐다.

가진것도 없고 갈곳도 없는데다 병약하기까지 한 노예시인 어무적은 방랑의 길에 오르는것이 형틀우에 오르는것 못지 않게 위험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아니, 죽음을 향해가는 길이라는것을 똑똑히 알고있었다.

그의 예감대로 무적은 가도에서 방황하던 끝에 병이 악화되여 수난에 찬 생을 마치였다.

결국 어무적은 한편의 시로 하여 때이르게 세상을 떠난것이였다.

하지만 무적은 마지막순간까지 자기의 시창작을 두고 후회하기는커녕 긍지와 자부를 느끼였으니 그는 진정 생명을 바쳐서라도 정의와 진실을 노래해야 한다는 시인으로서의 생활신조를 끝까지 지킨것이다.

어무적은 노예작가로서 참을수 없는 멸시와 천대를 강요당하다가 그 길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치였으나 그의 강개한 뜻과 의지는 《매화부》와 더불어 당세는 물론 후세에도 전해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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