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끼리


   주체97(2008)년 제3호 잡지 《청년문학》에 실린 글  

 

 

령도자와 작가

 

가사 한자한자를 깊이 음미하시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시대를 선도하고 인민대중을 불러일으키는데서 혁명적인 노래가 노는 역할은 매우 크다.》

주체62(1973)년 4월초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 무대연습이 한창 벌어지고있는 극장에 몸소 나오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고 가극대본을 갈피갈피 번지시며 노래의 가사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해보고 다듬어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사에서 수령님의 덕성에 대하여 노래하는 내용은 될수록 한곳에 몰아주어야 한다고 하시였다.

덕성을 노래하는 내용을 한곳에 몰아줄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위대한 수령님의 덕성을 인상깊게 부각하여 사람들을 숭엄한 감정세계에로 이끌어가게 하는 훌륭한 형상방도였다.

새로운 형상방도를 받아안고 기쁨에 넘쳐있는 창작가들을 바라보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생사를 모르고 살아가는 아버지와 딸의 심정을 형상한 가사를 잘 쓸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때 가사에는 아버지는 딸이 살아있는것으로 생각하고 딸은 아버지를 언제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식으로 되여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버지와 딸이 서로 살아있는것처럼 가사를 끌고가면 흥미가 없어질수 있다고 하시면서 아버지와 딸이 서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고 언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하였던 상태에서 만나는것으로 해야 감정을 올릴수 있다고 하시였다.

창작가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초보적인 생활론리마저 무시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아버지가 험악한 세상에서 오래전에 생리별한 처자들이 살아있으리라는 확신을 안고 그들을 찾아간다는것은 생활론리로 보아도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극발전론리로 보아도 서로 죽었다고 단정했다가 뜻밖에 상봉하도록 하여야 감정이 폭발적으로 승화된다는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깊은 자책속에 잠겨 머리를 숙이고있는 창작가들에게 또 하나 잘못된 가사를 바로잡아주시였다.

금강산예술소조원들이 예술축전에 참가하기 위하여 마을을 떠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가사에는 《금강산처녀들 떠나간다네》로 되여있고 돌아올 때에 부르는 노래가사에는 《금강산처녀들 돌아온다네》로 되여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예술소조원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시고 대본을 번지시여 다시한번 확인해보시더니 그 자리에서 《금강산젊은이들 떠나간다네》, 《금강산젊은이들 돌아온다네》로 고쳐주시였다.

예술소조원들가운데는 남자들도 있었으므로 처녀들이 예술축전에 간다거나 온다고 하면 그 가사는 엄연히 사실과 맞지 않았으나 그 어느 창작가도 발견하지 못하였던것이다.

가사 한자한자를 깊이 음미하시며 차근차근 바로잡아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가르치심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튿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른 극작품을 지도하시면서도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에 대하여 줄곧 마음을 쓰시다가 친히 고친 가사 몇대목을 일군들에게 알려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극의 제5장에 나오는 노래 《조국광복 이룩할 그날이 오면》에서 《혁명의 새 노래를 간직하고서》로 되여있는 가사를 《혁명의 노래를 간직하고서》로 고쳐주시였다.

사실 혁명의 노래에 낡은 노래, 새 노래가 있을수 없는것이다.

알고보면 상식적인 문제였으나 창작가들이 심사숙고하지 않다보니 가사에는 이러저러한 부족점들이 적지 않았다.

자그마한 부족점이라도 있을세라 한자한자 다듬으시여 명가사로 완성하여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이고도 세심한 지도에는 정녕 끝이 없었다.

검열공연을 하는 날이였다. 이제는 작품전반이 비교적 원만히 다듬어지고 완성되였다고 생각하면서 창작가들은 안도의 숨을 쉬였다.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극의 제2장을 보시다가 가사의 정확치 않은 표현들을 다시금 지적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순이 어머니가 남편이 붙잡혀간 다음 부르는 노래가사가운데서 《…이 산속에서 내 어이 사나요》라고 한것을 …이 산속에서 우리 어이 사나요라고 고쳐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산속에 내 어이 사나요라고 하면 개인적인것을 강조하는것으로 된다고 하시면서 작품에서는 개인적인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계속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순이를 예술소조축전에 보낼 준비를 하는 장면에서 어머니가 먼저 수령님의 은덕으로 딸이 금강산의 딸로 훌륭하게 자라났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게 한 다음 3중창으로 넘어가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여기에서는 딸이 어떻게 자랐는가 하는 이야기를 가사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날 때 부르는 노래가사의 전반과 후반을 생활적으로 잘 맞물려 줄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사에서 글자가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글자가 지내 많은것들은 다듬어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공연을 앞둔 마지막날까지도 미흡한데가 있을세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몸소 다듬고 또 다듬어 모든 가사들을 주옥같은 명가사들로 완성하여주심으로써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는 그렇듯 만사람의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명작으로 자랑떨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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