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타국만리에서

2

 

먼 옛적부터 일본본토의 하네꼬산을 경계로 해 동쪽지대를 일명 간또(관동)라고 불러왔다.

바로 그 지대의 한가운데에 도꾸가와막부가 새로 둥지를 튼 에도성이 자리잡고있다.

에도성에서 북쪽으로 한나절길을 가느라면 기여가는 뱀처럼 우불렁구불렁 줄기친 야산을 등지고 해변과 코를 맞대며 아스라하니 펼쳐진 초원이 나진다.

눈이 쌓인 겨울철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 이 세계절의 긴긴 나날에 수백마리의 말들이 무리지어 밀려다니면서 풀을 뜯어먹군 하는 그 드넓은 초원은 가또 수하의 한 《도자마》다이묘의 식읍(령지)인 히나노주에 속한 군마목장의 방목지다.

그곳 목장에 종속되여 말을 기르는 가노들이 모여사는 촌락을 일명 사르댕마을이라고 불러온다.

막부 쇼궁인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조선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교또로 행차할 준비를 한창 다그치던 늦가을철의 어느날 황부루를 탄 사무라이 하나가 에도성을 벗어나 북쪽으로 줄곧 내달리고있었다.

검푸른 대마직천에 싯누런 금박줄로 멋들어지게 띠두름을 한 무사복을 늘씬하게 차려입고 죤마께(일본사무라이들의 머리카락가꿈새)를 어깨뒤로 늘어뜨린 젊은 사무라이는 도포중둥이를 가뜬히 동여맨 굵은 오비의 량옆구리에 찬 장검과 단검을 절렁거리면서 기세차게 말을 질주시킨다.

막잡아 스물대여섯살 되였을 사낸데 허우대가 늘씬한데다가 거동이 결패있고 눈꼬리가 치째진게 척 보기에도 감때사나운 싸움군이라는게 알린다.

먼지구름을 뒤로 풍겨놓으면서 산밑의 황토길을 쉬임없이 내달리던 말이 산코숭이를 핥으며 흘러내리는 시내를 건너 버들방천에 올라서자 잡초우거진 평야가 앞에 나타났다.

천고마비의 좋은 계절을 맞아 더없이 풍요해진 초원에서는 수백필의 엄지말이 떼지어 밀려다니면서 풀을 뜯어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 간또지방의 등갱이 짧은 토종말이 더러 보이긴 했으나 원래 군마목장인지라 대개가 다 타곳에서 끌어다가 교잡하여 개량시킨 류달리 눈에 들게 발육이 잘된 말들이였다. 조선의 제주도와 명나라의 료동지방 지어는 수천리 먼 내륙지방에서 골라 가져온 순종과 잡종들인지라 생김새도 털빛갈도 실로 각이했다. 털빛갈이 누렇고 다리 겅뚱한 공골말, 밤색털에 갈기가 류달리 부르르한 차류마, 다리통이 굵은 검은빛갈의 가라마, 검푸른 털색의 허리긴 철총마, 얼룩털에 몸통실한 니총마, 몸통은 붉고 갈기는 검은 월다마, 흰털을 띠처럼 두르고 목을 훌썩 솟군 오총마 등 별의별 말들이 다있었다.

그 생김새가 각이하고 마리수가 허다한 말무리의 한가운데서 몸집 가냘픈 처녀 하나가 말을 타고 길다란 가죽채찍을 휘두르면서 광야를 종횡무진하고있었다.

처녀는 제법 호기스럽게 딱- 딱- 채찍소리를 울리면서 말무리를 몰아댄다.

꽃문양덧옷을 가뜬하게 중둥매끼해 입은 처녀가 불타는 석양아래서 호함진 머리태를 나붓기며 거센 군마 수백마리를 자유자재로 거느리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였다.

벙글써 미소를 머금으며 처녀의 매혹적인 자태와 야생적인 거동을 홀린듯이 지켜보던 사무라이는 입가에 두손바닥을 오그려대더니 《오소노-》 하고 소리쳐 그를 불렀다.

그러자 연방 휘파람소리를 내며 휘둘러지던 처녀의 채찍이 허공에서 떡 굳어지였다.

말고삐를 채며 사무라이쪽을 돌아보던 처녀는 활짝 반색을 짓더니 그한테로 질주해왔다.

《오빠!-》

《오소노!-》

사무라이도 좋아서 주먹쥔 팔을 휘둘러보이더니 그를 향해 말을 쳐몰아갔다.

오소노가 탄 토종 홍사마(흰 털과 붉은 털이 섞인것)와 히까리가 탄 황부루는 땅을 박차며 질풍같이 마주 다가들다가 앞다리통을 스치면서 급작스레 멈춰섰다.

달려오던 힘에 밀려 몇걸음 지나쳤던 말들은 잽싸게 기수를 돌려가지고 다시금 가까이로 다가붙었다.

수말과 암말이 더운 김이 풍기는 코등을 맞대고 흥흥거릴 때 어느새에 땅바닥으로 날아내린 히까리와 오소노는 두손을 맞잡고 한고패 빙그르르 돌았다.

《그새 잘있었어?》

《네. 오빠, 어이해 인제사 왔나이까?》

《군률에 매여 쉽사리 몸뺄수가 없었어.》

《아유, 그런걸 난 또 오빠가 하늘나라에 올라가 신선이라도 됐는가 했지유.》

《내가 신선이 되면 되는게지 뭐. 난 진짜루 천궁에 올라 제천대왕이 되여 오룡차를 타댔어.》

《오룡차를 탔음 선녀에게로 가지 말먹이계집한테 올가. 하두 뜀박이말을 탔으니 나를 찾아왔지.》

《그럼 이쪽저쪽이 다 제대루 됐구만, 하하.》

《호호, 막부군 장수가 되더니 되우 싱거워졌네.》

진담 절반, 롱담 절반 엇섞인 인사말을 씨까부리며 주고받은 그들은 시내가 방천으로 내려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정스럽게 어깨를 기대고앉아 오손도손 회포를 나눌 때 름름히 번진 히까리를 할끔히 훔쳐보던 오소노가 정찬 미소를 살짝 머금으며 말했다.

《쇼궁사마께서 근간에 자비로운 보살님이라도 되신가봐. 궁성시위대의 골간장수를 시골유람시킨걸 보니.》

그 소리에 희떱게 벙글거리면서 오소노의 쌍까풀진 오목눈만 정겹게 들여다보던 히까리가 무릇 정색해지며 대척했다.

《난 수일후 쇼궁사마를 모시고 교또로 가야 돼. 그게 중한 행차라고 시위대의 가시라사마께서 왼심을 써준 덕에 짬을 냈어.》

그 말을 들은 오소노가 일순간 긴장해지며 되물었다.

《쇼궁사마가 교또엔 어째 가나이까?》

《조선에서 건너온 사신을 맞으러 간다나.》

《웬 사신이게 쇼궁사마께서 친히 왕림해 마중한담.》

《소문을 들으니 굉장히 난 인걸이래. 그가 이제 오면 일본과 조선이 화친교류를 맺는다더라.》

《그러면 두 나라가 사이좋게 지내게 됐군요.》

이렇게 대척하며 오목눈을 삼빡이던 오소노가 불쑥 엉뚱한데로 화제를 돌렸다.

《오빤 좋겠네요.》

《무스게 좋다는기야?》

《황성구경도 하고 또 그곳 게이샤(기생)들과도 사귀게 됐으니까요. 교또 게이샤들이 퍼마 이쁘다던데.》

오소노가 때없이 새침해지며 눈빛을 흐리자 히까리는 잘 익은 귤알처럼 통통한 그의 볼을 손가락으로 꼭 눌러주었다.

《내 맘속엔 오소노밖에 없으니 걱정마.》

그래서야 안심이 된듯 오소노는 히까리의 어깨에 머리를 실으며 해죽이 웃었다.

이곳 사르댕촌락의 방목지에 태를 묻은 그들은 발가숭이때부터 함께 소꿉놀이를 하며 자랐었다. 오소노가 계집인데다가 히까리보다 두살 손아래였으나 원래 두 집이 이웃해서 가깝게 지내는터이고 본인인 오소노자체가 사내번지기처럼 세찼던탓에 둘은 맞잡고 딩굴며 장난질을 쳐왔었다.

히까리네 부친이 불상사를 당한 일로 하여 두 집사이는 더 가까와졌고 히까리와 오소노는 오누이처럼 돼버렸었다.

어느해 겨울 독감에 걸린 오소노네 부친을 대신해서 그가 맡은 말무리까지 거느리고 방목을 나갔던 히까리네 부친이 과중한 부담을 못이겨 말에서 떨어져 객사했다.

그후 오소노네 부친은 빚진 심정이 되여 늘 히까리네 집일에 관심을 돌렸고 아비없이 자라는 히까리를 친아들처럼 돌봐왔다.

히까리는 그를 작은아범이라 부르며 오소노와도 오누이처럼 지내였다. 히까리는 밖에 나가놀 때면 늘 오소노의 보호자가 되군 했다.

열네살나던 해에 히까리는 작은아범네 딸을 못살게 구는 목장관리인네 아들인 나미쯔를 막아나섰다가 부자집 자식들로 무어진 그의 패당한테 죽탕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그때 주먹이 약하면 제아무리 정의로운 싸움을 해도 질수밖에 없고 그 주먹으로 자기의 눈물을 씻을수밖에 없다는것을 피눈물속에 절감한 히까리는 어떻게 하나 힘을 키우고 주먹을 벼리려는 억심을 품고 탈가하여 류랑아가 되였다. 그는 소문난 사무라이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심부름을 들어주면서 주인한테서 열심히 싸움법을 익혔다. 고생도 막심하고 짓터진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건만 하여튼 그 과정에 매집도 늘었고 때리는 수법도 배웠고 뺏아먹는 기질도 생겼다.

천부적인 적성체질을 타고난데다가 눈썰미가 있고 동작이 날랜 히까리는 실지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무시무시한 결투장에서 닥달질을 당하며 드살찬 싸움군으로 자라났다.

그는 열일곱살때는 벌써 웬간한 장정 두셋을 순식간에 해치우는 사무라이가 되였다.

교또며 오사까며 에도같은 큰 성시의 고로즈끼(불망나니)들을 휘눌러잡으면서 전국각지를 종횡무진하던 히까리가 어지간히 철이 든 스물한살이 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목장부락을 휘딱 놀래우는 름름한 대장부였고 검술에서나 권법에서나 당할자가 없는 천하무적의 무술가였다.

번번나는 싸움군인 히까리에게 눈독을 들인 나미쯔의 애비가 그를 목장수비병으로 끌어들였으나 한해도 못 넘기고 제 상전인 다이묘한테 떼우고말았다.

다이묘는 히까리를 가병으로 삼아 부려먹다가 쇼궁한테 잘 보일 심산으로 그를 막부시위대에 추천했다. 무예가 출중한 히까리는 인차 시위대의 장수가 되여 웬간한 사무라이들도 하늘의 별따기처럼 여기는 초장(중간급 장수)자리에 올라앉아 온 집안이 먹고도 남을 정도의 높은 록미를 받으면서 최하층신분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낼 호강한 생활을 해왔다.

바로 그 호사스러워진 인생이 사내의 마음을 변하게 할것 같아 오소노는 근심을 놓지 못하는것이다.

왜서인지 한숨을 시름겹게 내긋던 그가 눈물이 가랑가랑 내맺힌 오목눈으로 히까리를 빤히 들여다보며 애원했다.

《오빠, 이젠 날 잊어버리라요.》

《왕청같이 건 또 웬 씨빠진 소리야?》

히까리가 푸들쩍 놀라며 따져물어서야 오소노는 진속을 터놓았다.

《오빤 궁성의 무관직을 지닌 큰 장수인데 나같은 촌뜨기녀자가 무슨 소용이 되겠나요, 오빠의 장래에 도움을 못 주고 걸림돌이나 될바에야 차라리 없는게 낫지. 하오니 날 버리고 도성의 장관가문의 귀공녀를 사귀여 오빠의 한생을 복되게 해요.》

《정신빠진 수작질 그만해.》

불맞은 상사말마냥 증이 나서 날뛰던 히까리는 오소노를 와락 그러안았다. 그러고는 오소노의 날씬한 몸집을 줴흔들면서 크게 책망을 해댔다.

《넌 날 의심하는구나. 믿지 못하면서 기다리긴 어째 기다렸어?》

《자꾸 보고싶어져서요. 하지만 이젠 나도 오빠를 잊겠어. 그러니 어서 그러시와요.》

《듣기 싫어. 그 요망한 생각 싹 걷어치워.》

히까리는 한쪽손을 칼날처럼 내뻗쳐 허공을 홱 내리썰었다.

그러고는 오소노를 바싹 끄당겨안았다.

히까리는 눈물이 흐르는 처녀의 곱살한 얼굴을 구멍나도록 들여다보며 오금을 박아댔다.

《네가 날 의심하는건 믿음이 없기때문이야. 하긴 우리가 여직껏 남남으로 지내고있으니 믿음이 생길게 뭐야. 좋아, 오늘 내 너에게 믿음을 주겠다. 네 몸에 신표를 남기겠단 말이다. 이 자리에서 혼인을 맺자. 피를 섞잔 말이다.》

히까리는 맡을 끝내기 바쁘게 오소노의 의향엔 관계없이 그를 제 품안에 휘걷어넣었다.

사내도 처녀도 몸과 몸이 맞닿자 쩌릿한 느낌으로 해 흐느낌을 간간이 터뜨렸다.

억센 팔뚝으로 오소노를 움쩍 못하게 껴안은 히까리는 새처럼 바들바들 떠는 그의 덧옷끈을 무작정 풀어버렸다.

《넌 사나죽으나 내 사람이야.》

히까리는 열증이 내돋친 소리로 웅절거리며 오소노를 애무했다.

자기의 퐁퐁한 앞가슴을 어루더듬는 히까리의 손을 꼭 부여잡은 오소노는 숨넘어가는 소리로 사정했다.

《이러지 마. 아베 엄메 융허없이 이러면… 난 몰라.》

《뭘 모를게 있어? 뻔한노릇인데. 나와 너 각시, 서방되여 애기낳고 백년해로하잔 말이야.》

《아무리 그러한들 가법과 인륜은 지켜야 할게 아니야.》

《가법도 인륜도 다 사람이 만든거다.》

밀어버리고 당겨안고 하는 새에 둘은 다같이 몸이 달아오르고 피가 끓기 시작했다.

《난 널 절대로, 널 버리지 않을테다.》

《…》

어지간히 시간이 흘러 일을 치르고난 그들은 의복을 대충 걸친채 팔을 끼고 드러누워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저 흰구름이 전부 꽃송이같구나. 하늘에 참 꽃이 많기도 하지?》

《…》

《저 쟁글쟁글 웃는 해는 신통히도 오소노의 얼굴같아.》

《피- 사람놀리지 마.》

《꽃은 곱고 해는 따뜻해서 좋거던. 어 참, 하늘은 왜 저렇게 높고 푸르담?》

히까리가 부정스러운짓을 저지른 면구함을 실없는 한담으로 가시려는데 오소노가 튕기듯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야유- 정신빠졌지. 큰엄메한테 문안인사도 드리기 전에 이게 뭐람.》 하고 종알대며 그는 말 서있는 곳으로 뜀박질해갔다.

야생적이다싶이 과히 오돌차고 되바라진 오소노였건만 히까리네 모친한테는 깍듯이 큰엄마라 부르며 곰살스럽게 대해온다.

《우리 엄멘 지내 곧은목이라니까.》

혼자 투덜대며 우무적 일어난 히까리도 바지괴춤을 추슬러올려 조여띠고 오소노를 뒤따라 들머리로 나가 제 말우에 훌쩍 올라탔다.

이윽하여 황부루와 홍사마는 사이좋게 어울려 네굽을 구르면서 초원을 가로질렀다.

우거진 수풀속에 떨기져 피여난 앵잠화, 금전화, 수사앵 같은 들꽃들도 좋아라 빨갛고 노랗고 흰 송아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사내품안에 들어 무르녹는 애정속에서 비맞고난 꽃송아리마냥 한결 더 생신해지고 활달해진 오소노는 황부루곁으로 바싹 다가붙으려는 홍사마의 고삐를 잡아채며 재잘거렸다.

《어마, 이 새암이가 어인 일이람. 여느땐 수말이 곁에만 와도 뒤발질을 해대더니 오늘은 제켠에서 먼저 어깨붙임을 해대네.》

《고놈의 암말이 이 멋들어진 수말의 기품에 반한거야.》

히까리가 황부루의 탐스런 갈기를 쓰다듬으며 뻐기자 오소노는 귀밑이 빨개지며 눈을 할기작인다.

《놀리지 마. 새를 쓰기 전에.》

《아이코, 새악시 가죽채찍에 앞골 깨지겠는걸.》

《에참, 오빤 바람쟁이야.》

《이 수바람쟁이가 인제사 제 랑군인데 어쩐담.》

《피- 난 몰라.》

흉없이 갈갬질을 하며 둘은 야산밑에 둥지를 틀은 부락에 들어섰다.

히까리네가 태를 묻고 자란 사르댕마을이다.

새초이영을 얹은 초가들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들어앉아있고 말우리들이 처마를 잇대고 늘어앉은 사르댕마을은 대를 이어 말사육과 방목에 종사하는 가노들의 보금자리다.

히까리와 오소노가 마구간이 잇달린 동네 초입구를 지나는데 머리를 수닭의 볏처럼 밀어꽁진 애들이 올망졸망 밀려나와 히까리를 둘러싸고 떠들었다.

《막부군 장수다!-》

《우리 마을의 대장이 온다!-》

《원참, 끌끌하게도 번졌수다. 천하에 둘도 없을 호걸이지유.》

물을 긷던 녀자들도, 말무리를 몰아오던 남정네들도 히까리를 보자 반갑다고 손을 저어주었고 컹컹 짖으며 뛰쳐나왔던 집개들까지도 꼬리를 휘젓는다.

상경하여 막부시위대의 초장이 된 히까리를 개천에서 룡이 난것만치나 대단하게 생각하면서 부락의 자랑거리로 여겨오는 목장사람들이다.

숫저어하는 오소노를 제 말무리있는 곳에로 되돌려보내고 히까리는 자기를 반기는 고향사람들한테 일일이 인사말을 건늬며 말을 천천히 몰아가다가 동네 한끝에 유자나무를 울타리마냥 둘러치고 돌아앉은 뾰족토기집앞에서 멈춰섰다.

《어머니-》

굴뚝모퉁이의 처마밑에 말리운 마초단을 들여쌓던 몸집 퉁퉁한 녀인이 말에서 내리는 히까리를 띄여보고 허둥지둥 달려나왔다.

《왔구나! 어디 보자, 내 아들아!》

《엄메, 그새 잘있었나유?》

히까리는 굽석 머리숙여 인사를 한 후 모친을 덥석 안아들고 뜨락안으로 들어갔다.

《고생이 심했군요. 몸이 퍼그나 축간걸 보니.》

《얘, 남보기 흉하다, 네가 장수가 되더니 이 에밀 휙휙 드는구나.》

모친은 히까리의 실팍해진 어깨를 대견히 어루쓸다가 연방 눈굽을 훔쳤다.

그러는 모친을 어화둥둥 호사를 시키며 꽤 널직한 뜨락을 두어고패 휘돌고서야 히까리는 모친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고향집의 안팎을 정겨운 눈으로 살피다가 예전과 다르게 변해진것을 보고 혀를 찼다.

《영 딴판이 됐군요, 어쩌다 우리 집에 이런 천지조화가 일어났소이까?》

《다이묘사마가 친히 관노들을 거느리고 나와 지붕이랑 수리하고 부엌이랑 안방이랑 창고랑 새루 꾸려줬단다. 일체 목재며 쌀까지 가져다 주었니라.》

《그 노랭이같은 작자가 두해새에 보살님이라도 된게군요. 전에는 말똥구리만큼도 안 여겨오던 우리 방목민네 가옥에까지 환심을 베푸니 말이예요.》

이러며 히까리가 죤마께를 내젓자 모친은 그의 넙적한 잔등을 살틀히 두드리였다.

《그건 다 네 덕때문이란다. 네가 막부군장수로 된 후부터 우리 집을 대하는 그 어른의 태도가 극진스러워졌니라.》

《막부에서 시위대장수들의 가족을 돌봐주라는 령을 각지 태수들과 다이묘들한테 내렸다더니 그러한 내막이 있었군요. 그 지독한 노랭이가 아마 막부의 령이니 울며 겨자먹듯이 마지못해 선심을 썼을거예요.》

《이러나저러나간에 네가 아니문야 이런 호사를 하겠냐. 그저 다른게 없다. 뭐니뭐니해두 우리 집에선 네가 잘돼야 하니라.》

모자간에 흥하는 가세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한참 말방아를 찧어대다가 모친은 끼식을 장만하려고 총망히 부엌으로 들어갔고 히까리는 울대문밖으로 되나가 황부루의 잔등에서 안장을 풀어내리고 말먹이를 가져다주었다.
날이 저물어 그들모자는 오래간만에 가정적분위기속에서 겸상을 하여 저녁밥을 먹었다.
모친은 갑자기 차리다나니 음식이 변변치 못하다고 미안함을 표하면서 반찬 한점이리도 히까리의 그릇에 덧놓아주려고 왼심을 썼다.
그러는 모친의 마음을 족하게 해주느라 밥이랑 찬이랑 푹푹 떠먹던 히까리는 모친의 기색을 넌지시 살피면서 자기가 교또로 가게 된 사유를 터놓았다.
그러자 히까리 모친은 놀라는 낯색으로 《조선에서 사신이 어째 온다는거냐?》 하고 되묻더니 왜서인지 불안해하는것이였다.
《일본과 조선이 척을 진 사이니 네가 공연히 그가운데 끼여 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이 애, 넌 아예 조선에서 온 사신일행과는 상관을 말아라.》
그 느닷없는 훈시질이 마깝지 않아 히까리는 눈살을 찌프렸다.
《조선사신이 무슨 뿔난 귀신이나 되는듯이 그래요? 조선사신을 맞으러가는 쇼궁을 호행하는 시위대장수가 어떻게 상대측과 아예 상관을 안할수가 있어요.》
《글쎄 소금에 쩔고 간장에 쫄은 이 어미말을 들어두는게 좋으니 채심을 하거라. 네가 남다른 무예를 지닌 덕에 막부군 장수로도 되고 다이묘의 환심까지 사 집안을 부유하게도 만들었으나 그게 결코 복의 전부는 아니다. 허니 자기의 처지를 늘 자각하거라.》

히까리는 자기 조상들의 가슴속에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절치부심의 사연을 아는데다가 모친의 훈계 또한 절절한지라 부쩍 채심을 하며 사무라이의 호방스러운 성품대로 결패있게 다짐을 했다.

《알겠소이다, 엄메. 소자는 처신에 주의하겠소이다.》

하루 몸쉼, 머리쉼을 푹 하고 에도성으로 돌아가던 날 히까리는 홍사마를 타고 멀리 수십리밖까지 배웅나온 오소노에게 자기가 꼭 데리러 올테니 믿고 기다리라는 굳은 언약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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