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타국만리에서
1
수백년동안 일본의 도성으로 존재해온 교또는 성곽과 대궐 그리고 거리들이 크고 어마어마하고 번화스러웠다. 그러던것이 《천황》의 실권을 대신하던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관백자리를 제 조카한테 넘겨주고 자기는 태합이 되여 젊은 애첩과 어린 아들이 사는 오사까성으로 가 들어박히고 또 그 이후에 도요또미의 정권을 뒤집어엎은 도꾸가와가 새로 수립한 막부를 자기의 본거지인 에도(도꾜)로 옮겨간 후부터 옛기상을 잃으며 점차 쇠퇴몰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집이 기울어져도 3년은 간다고 교또는 원래 번창하던 옛 도읍인데다가 비록 명색뿐이긴 해도 아직까지 왜인들한테는 우상적인 존재로 떠받들리는 《천황》의 거처지인 고궁이 뻐젓이 웅좌를 틀고있고 또한 숱한 역참들과 객주집들과 객관마다에서 역마와 풍마차들 그리고 인력거와 보행군들이 우글거리여 물물교류가 번창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나니 옛적의 위세와 사치함은 한층 사그라들었어도 건물들의 웅장화려함과 거리의 번잡스러움만은 여전했다.
더구나 요즘 에도성에서 쇼궁(막부의 최고장관인 정이대
실내 공기가 그다지 무덥지 않은데도 멋부림삼아 사꾸라꽃문양이 새겨진 상아부채를 슬렁슬렁 휘저으면서 제앞에 량줄로 품계를 맞추어 늘어선
막부의
지금으로부터 6년전 일본의 실권자였던 태합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임진조국전쟁에서 패하고 울화병에 시달리다가 죄많은 한생을 마치면서 심복부하였던 도꾸가와에게 자기 애첩과 어린 아들 도요또미 히데요리의 장래를 부탁했었다.
했건만 평시에 히데요시의 광증과 폭군적인 정사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도꾸가와는 상전의 유언을 줴던지고 반변하여 관백이던 히데요리한테서 권력을 빼앗고 그의 에미까지도 궁성에서 내쫓았다.
그에 격분한 히데요리와 그의 애비인 히데요시의 충실한 부하들이였던 모리 데루모도, 이시다 미쯔나리, 우끼다 히데이에, 고니시 유끼나가 등은 군사를 일으켜 도꾸가와네 무리들을 쳐부시기 위해 떨쳐나섰다.
그리하여 만력27(1600)년 9월 15일 세끼가하라벌판에서는 15만의 동군(도꾸가와네)과 18만의 서군(도요또미네)사이에 천하를 다투는 대격전이 벌어졌다. 이 력사적인 세끼가하라격전에서 히데요시의 양자였던 히데아끼가 변절함으로써 서군이 패하였다.
히데요리네 모자는 자그마한 지방령주로 전락되여 오사까성으로 쫓겨났고 고니시 유끼나가, 이시다 미쯔나리를 비롯한 많은
히데요리네 일파의 터세가 세찬 교또를 떠나 원래 저희 본거지인 에도에 성곽을 쌓고 그곳으로 수도를 옮긴 도꾸가와는 에도성에서 새 막부를
설립하고 자기가 태정대신 겸 정이대
임진조국전쟁에서 너무도 큰 물질적손실을 본데다가 국내전쟁까지 치르느라 과히 허약해진 일본을 추세우는 길은 오직 물산이 풍부하고 문화가 발전된 조선과의 통상에 있다고 여겼기때문이다.
새 막부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수차 바다너머의 조선왕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하던 요시또모가 드디여 성사를 하여 조선왕의 국서를 지닌 조선사신일행을 본국으로 이끌고 온다는 전갈을 받은 도꾸가와는 국운이 트인다며 환성을 올렸다.
그는 제가 직접 조선사신을 마중하기 위해 전례를 깨뜨리며 어린 아들까지 데리고 교또로 황황히 내려왔다.
그러다가 뒤늦게야 조선사신단의 정사는 미미한 관직의 선비이고 더구나 사신행차를 주관하는 실지 거물은 부사신인 머리깎은 불승이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했다.
도꾸가와는 은근히 당황해났다. 조선정부에서 일본의 새 막부를 조롱하느라고 중을 일개국의 대표로 띄워보냈는지 아니면 그 중이 진짜로 령험스러운 인물이여서 사신으로 천거하여 행차를 거느리게 했는지 그 진의도를 바이 가늠할수가 없었기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관권과 군권을 틀어쥔 쇼궁인 자기가 일개의 범속한 중과 마주앉는것 자체가 나라망신으로 되는건 아닌지 또 그와 마주앉았다가 체면을 손상당하고 웃음거리나 만들어내지는 않겠는지 하여 조선사신들을 만나기가 싫어졌다. 차라리 조선사신행차의 실권자라는 그 중을 콱 죽여치워 조선정부에 새 막부의 위세를 보일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러면 조선과의 통상이 아예 단절되겠기에 억지로 자존심을 눌러치웠다.
도꾸가와는 선듯 결심을 못 내리고 방황모색하다가 부하들의 의견을 널리 들어보고 그에 따라 마땅한 대책을 강구하려고 제 안중에 있는 거물들을 속히 교또에 있는 후시미성의 대궐로 불러들이여 조선사신과 관련한 문제를 상종시킨것이다.
도꾸가와는 지난 조선전쟁때 직접 대군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우군선봉장으로 싸웠고 사신으로 오는 그 조선중과는 여러번 만나 강화담판까지 했다는 동부규슈의 태수인 가또 기요마사의 의향부터 알아보았다.
《도라노스께, 나라의 시책을 받드는 중신답게 어디 금언같은 발언을 해보오. 조선의 금강산에서 상주한다는 그 도승이 대체 어떤 작자요?》
그러자 가또는 한발자국 앞으로 나서서 통버선을 꺼꾸로 뒤쓴것 같은 외뿔모를 약간 수그려 군례를 표하며 진중한 어조로 아뢰이였다.
《그는 범상한 불승이 아니옵니다. 불도의 리치를 속속들이 꿰뚫은건 물론이고 무예에서나 병법에서나 정사에서나 외교술에서나 어느 한구멍도
막힘이 없는 다재다능한 인걸이옵니다. 하기에 그 중은 수년전 우리 일본군이 임진조국전쟁을 단행했을 때 력사에 류례없는 승병대를 무어가지고
《흠, 찬사가 과히 요란하군.》
도꾸가와는 가또의 말을 귀등으로 스치며 씩 랭소를 지었다. 설사 일개의 지방 다이묘에 불과한 그한테는 하느님같이 여겨질지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쇼궁인 자기에게는 한갖 범상한 중으로밖에는 달리 될수가 없다는 자고자대의 감정이 완연한 태도였다.
자기의 충간을 장마철의 마파람소리처럼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리는 쇼궁의 처신에 가또는 기분이 상하는것을 참으며 그냥 내심을 쏟아놓았다.
《원래 일본의 리익을 고수하자면 조선사신인 그 중을 본국에 건너오지 못하게 했어야 했소이다. 이제라도 입국을 불허하든지 아니면 막부득이해 그들을 받아들이는 경우 막부로부터 시작해서 매 고을의 촌락 서민에 이르기까지 바싹 각성되고 조심해야지 나라존망과 관련되는 비밀을 뽑히우고 리권을 침해당하기가 일쑤옵니다. 아울러 부차적인 문제에 대해 한가지 더 첨부한다면 조선사신행차의 정사라는 관리는 그 중을 감싸기 위한 한갖 위장물에 불과할뿐이옵니다. 조선정부에서는 한편으론 저들의 대의명분을 세우고 다른 한편으론 우리의 이목을 혼란시키려고 행차를 그렇게 꾸민게 분명하온즉 그에 맞게 대처함이 지당한줄로 아옵니다.》
정이대장군다운 훤칠한 얼굴의 이마를 살갑게 쪼프리고 가또의 말을 새겨듣던 도꾸가와는 고개를 젖히며 허거프게 웃어댔다.
《하하, 한뉘 목탁이나 두드리며 살아온 중을 뭘 그다지 두려워하는거요? 보아하니 태수네 <도자마> 들이 그때 조선전장에서 되우 혼쭐이 난것 같군. 잔뜩 허겁이 든걸 보니. 일본의 명성높은 맹장답지 않소그려.》
《옳소이다, 쇼궁사마. 이리한테 얼치운 사냥개 양무리보고도 놀란다고 괜히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겁만 내는 <도자마> 들의 잔약스러운 사설질에 지내 귀를 기울일건 없소이다.》
막부의 군정보좌관이 도꾸가와한테 아뢰이는 소리였다.
군정보좌관은 《후다이》다이묘들의 거두였다.
원래 《후다이》란 세습적으로 상전에게 복무하는 사무라이를 의미하는 호칭이다. 따라서 《후다이》다이묘는 도꾸가와가 정권을 잡기 전부터 그가 거느리던 간또지방의 다이묘들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였다.
그들은 거리상관계로 인해 임진조국전쟁에 참가하지 않았었다.
도꾸가와는 도요또미파를 최종적으로 때려눕힌 세끼가하라격전에서 자기한테 와붙은 관서와 규슈의 다이묘(예전부터 도요또미가 거느리던 령주)들을 새 막부개설후에는 모두 변방의 태수나 다이묘로 내보내고 감시속에 두었다. 그런 후 그들을 《도자마(바깥님)》라 부르며 《후다이》다이묘들과 차별대우를 했었다.
그러한 여파가 국사를 론하는 어전모임에까지 끼쳐온것이다.
가또는 도요또미정권때의 이시다 미쯔나리와 고니시 유끼나가를 신통히도 방불케 하는 간신이며 말공부쟁이인 군정보좌관의 얄궂은 상통을 지그시 쏘아보며 속타는 한숨을 내뿜었다.
비운의 구름장이 본국의 하늘로 소리없이 비껴드는것도 알지 못하고 잔뜩 기고만장해서 허세만 부려대는 막부의 거두들을 안타깝게 휘둘러보던 가또는 애써 자중하며 갈린 음성으로 씹어뱉았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잠자는 범과도 같소이다. 때문에 조선사람들과의 상대는 신중해서 해야 하옵니다. 소장네들이 조선원정에서 찾은 교훈중의 하나가 조선과는 저리 어깨를 낮추고 맞서야 먼저 물어메치기가 쉽지 괜히 얕잡아보고 맞섰다가는 허양 받기워 쓰러지기 쉽다는것이옵니다.》
《음, 태수의 말에도 일리는 있소.》
역시 도꾸가와는 웅지가 있고 로회한 군주라 가또의 진지한 태도와 피가 바작바작 타는듯 한 충간에서 심상치 않은것을 느끼고 차츰 인식이 달라졌다.
도꾸가와는 나라정사를 떠맡은 쇼궁답게 널리 아량을 표하여 좋은말을 해주어 고맙다면서 가또의 심정을 어루쓰다듬어준 후 조회청안이 비좁도록
들어찬 거쿨진 몸통들을 수그린채 읍을 하고 서있는 대관들과
《조선과의 통상교류는 우리가 먼저 요구한것이니 그들을 도중에서 되돌려보내는것은 도리상 옳지 않은짓이요. 듣자니 조선사람들이 <구데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겠나?> 이런 고담을 즐겨 쓴다던데 그 참 일리가 있는 말이거던. 그까짓 중 하나가 두려워 나라대사를 걷어치울수야 없지 않소. 극도로 허약해진 우리 일본을 속히 일떠세우자면 싫든좋든 당분간은 조선과 통상을 해야 하오. 후날의 시책은 케를 봐가며 다시 세우면 될것이고. 그러하니 그 조선중을 사신으로 맞아들이기요. 헌데 그의 무게와 가치는 좀 떠봐야겠소.》
긴급모임을 파한 후 도꾸가와는 군정보좌관과 교또태수를 따로 남겨놓고 그들에게 조선사신문제와 관련한 비밀지령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