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운명의 쪽배
7
쯔시마에 도착한 조선사신일행은 그곳 도주인 요시또모에게 국서를 봉정한 후 왜관의 후한 환대를 받으며 그곳에서 석달동안 체류했다.
요시또모도주로 말하면 임진조국전쟁때 조선에 일본군 좌군선봉장으로 원정했던 고니시 유끼나가의 사위되는자다.
요시또모는 임진조국전쟁이 끝난 후인 1600년의 세끼가하라격전때에 제 가시애비인 고니시 유끼나가가 도요또미 히데요시네 일파를 지지해나섰다가 싸움에서 패하여 도꾸가와한테 처단된 후 새로운 막부가 수립되자 막부의 최고권력자인 도꾸가와에게 잘 발라맞추어 제 목숨도 부지하고 가문도 보존하려고 극성을 부리던찰나에 그가 조선과의 통상교류시책을 내놓자 그 실현을 위해 발벗고나서서 앞장에서 뛰여다녔었다.
그렇게 애를 써오던 요시또모인지라 국서를 지닌 조선사신일행이 일본과 조선 두 나라의 관계개선을 위해 쯔시마에 건너왔으니 하늘의 별을 한아름 따안은것만치나 사기가 났다.
하여 그는 사신일행의 거처를 귀빈들만 들이는 객관에 정해주고 그들에 대한 대접에 극성을 부리였다.
어느날 이른아침에 밤잠에서 깨여나 두루 몸운동을 하고난 유정이 세면을 하려고 객관뜨락에 나서는데 뒤뜰에서 땔나무단을 안고 돌아오던 부엌어멈이 돌부리에 걸채여 어쿠- 하며 넘어졌다.
유정은 총망히 다가가 어멈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그는 객관에 오래동안 머무르면서 그 늙수그레한 녀인이 부엌일을 혼자 맡아안고 과중한 고역을 치르는것을 목격하며 은근히 동정심을 품어왔었다.
《어디 다치진 않았수?》
《고맙소이다. 도사님.》
왜인으로 여겼던 어멈의 입에서 의외에도 조선말이 튀여나오는 바람에 유정은 놀라 눈이 커졌다.
《그댁은 조선사람이시오?》
《그렇나이다. 쇤네는 도사님과 한강토에 태를 묻은 소생이지요.》
부엌어멈은 쌀뜨물에 절어진 터실한 손으로 유정의 넙적한 두손을 덥석 부여안으며 눈물을 주룩이 쏟았다.
《원, 세상에. 어쩌다 이런 변고를 겪소웨까?》
놀람과 의혹을 금치 못하는 유정에게 부엌어멈은 자기는 본래 제천고을에서 살던 김달이라는 량반유생의 처인데 임진왜란때 왜놈들한테 붙잡혀온 후 수년이 되도록 쯔시마관가에 얽매여 종살이를 강요당하는데 대해서와 덧붙여 숱한 조선사람들이 쯔시마의 여러 관아들과 도주를 비롯한 벼슬아치들의 집에서 가노로 전락되여 노예생활을 하고있는 사실들을 터놓았다.
어언간에 가을도 저물고 한산한 겨울이 닥쳐오는데다가 왔던 목적도 어지간히 실현한지라 유정은 손문욱참의와 합의하고 쯔시마에 끌려와 고역을 치르던 동포들을 되찾아 싣고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할 때에 요시또모의 태도가 별안간에 돌변하여 조선사신일행의 귀국을 가로막아나섰다.
사실 조선과 일본의 통상교류가 실현되면 쯔시마는 한쪽으로는 막부의 신망을 얻게 되고 또 다른 한쪽으로는 본국과 조선사이에서 무역거래를 중계하면서 폭리를 보게 되여있었다. 두 나라가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물품거래와 사신왕래를 벌리던 임진조국전쟁전까지만도 쯔시마가 조선정부로부터 받아먹은 사세미는 한해에 수십섬이 넘었으니 쯔시마도주인 요시또모로서는 그러한 선린관계를 회복하는것이 급선무였다.
그런지라 량국의 통상체결을 실현하는것을 막부의 신망도 얻고 아울러 재부도 축적하는 알뽑아먹고 닭까지 잡아먹기나 같은 일거량득의 대거사로
여기고 솔선 자기가 조선에 건너가 조선왕을 만나기까지 하며 눈이 빨개서 돌아쳤던것이다. 그자는 조선왕의 국서를 받은것만으로 그칠수가 없어
사신일행을 후하게 대접하며 일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준 후 본국에로 이끌고가 막부와
처음에는 웃는 낯으로 조선사신들에게 본토에까지 다녀갈것을 권고하던 요시또모는 자기 말을 조선사신들이 듣지 않고 그냥 돌아가려고 하자 돌연히 새파래져서 독을 써댔다. 그자는 관가의 상비군사들과 제집 가병 백수십놈을 완전무장시켜가지고 사신일행이 든 객관을 빙 둘러싸고 공공연히 말없는 위협까지 해댔다.
요시또모도주의 강압적인 요구를 거절한다면 조선사신일행은 전부 억류되거나 살해될판이였다.
정사와 부사와 종사관, 이 세사람은 무릎을 맞대고앉아 당장 요시또모의 변덕에 대처할 방안을 상론했다.
《난 차라리 도주의 요구에 응하여 본토행을 하면 좋겠는데 참의어른의 의향은 어떠하시오?》
유정이가 이렇게 말꼭지를 떼기 바쁘게 마광우종사관이 넌떡 사신과 부사신 가운데에 끼여들어 참견을 했다.
《우리가 이제 또 왜나라본토에까지 건너간다는건 가당치 않는 일이웨다. 당초에 행차를 띄울적에 종점을 이곳 쯔시마로 정하고 차비도 그에 맞게 해왔는데 뭘루 이제 또 천리가 넘는 그 먼델 다녀온다는거요?》
유정은 호박잎에 청개구리 뛰여오르듯 중뿔나게 노는 그의 덜퉁한 행실이 눈에 거슬렸으나 지금은 타국에서 사신일행이 일심동체가 되여야 할 때이라 일껏 자중하며 느직이 대척했다.
《자고로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에 들어가라 했거늘 우리가 왜나라의 속내를 더 상세하고 정확히 알아내여 나라님께서 국책을 옳바로 세우게 하자면 본토에로 건너가 일본막부와 직접 상종하는게 좋지 않겠소.》
《그렇긴 하오만 너무도 막연한 험로이니 되려 난사를 당해 중임을 그르치고 상감마마를 실망케 할가봐 걱정이구려.》
손문욱참의가
《쯔시마까지만 다녀오라는건 명실공히 임금님의 어명이요. 우린 현재 어명을 받들어 그만하면 제 직임을 원만하게 실행하였소. 험한 날바다를 건너와 국서도 전달했고 아울러 왜국의 실태도 웬간하게 내탐했으니 조국으로 돌아가면 명분이 당당할텐데 무엇이 아직 부족하여 부디 본토행을 하려는가 말이요?》
마광우의 뿔돋친 말시비질에 감정이 거슬렸으나 유정은 지그시 참으며 대꾸했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요. 설사 상감마마께서 쯔시마까지만 다녀오라 령했어도 나라에 소용되는 길이라면 스스로라도 왜나라의 본국에까지 다녀오는게 지당한 처사라고 보오.》
근 이틀째나 갑론을박하던 끝에 어차피 현재는 요시또모도주의 요구에 응하는 수밖에 없으니 사신행차가 일본본토에 건너가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손문욱과 유정은 그날중으로 요시또모를 찾아가 만났다.
조선사신들이 순순히 자기의 요구에 응해나서자 요시또모도 살차던 태도를 버리였다.
《과시 궁냥이 트인 처사옵니다. 아마 본토행이 그네들에게 큰 복을 가져다줄거웨다.》
그러는 요시또모에게 손문욱이 꿋꿋한 자세로 들이댔다.
《도주도 우리 요구를 하나 들어줘야겠소. 우리가 귀국할 때 데려가게끔 관사와 가택들에서 노비로 부려먹는 조선사람들을 내놓읍소.》
헌데 해오는 대꾸가 얼토당토않기가 그지없다.
《그들은 우리가 임진조국전쟁때 얻은 로획물이니만치 처분권은 마땅히 우리한테 있는거지요.》
그 말이 가슴을 갈퀴여 눈을 지써 감고 목에 건 적목념주알만 매만지며 격분을 눅잦히고난 유정이 《그럼 본토행의 결말에 따라 처분권을 결정짓기로 하옵시다.》 하고 느직하게 오금을 박았다.
그날 밤 요시또모가 정사, 부사, 종사관들에게 별도로 내여준 객관의 상등 독방에서 홀로 누워 밤늦도록 이궁리저궁리를 하다가 자정이 훨씬 지나서야 솔곳이 잠에 들었던 유정은 이상한 인기척을 느끼고 펀뜩 깨여났다.
뙤창으로 흘러드는 하현달빛속에서 시꺼먼 어둑도깨비같은 형체 여럿이 도적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안으로 새여들고있는것을 알아차리고 그는 수염발이 으시시 곤두섰다.
유정이 바싹 정신을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느새 머리맡으로 다가선 괴한이 손에 틀어잡은 단검으로 그의 목을 무작정 찌르려 들었다.
시퍼런 칼날이 달빛에 번뜩이는것을 띄여본 유정은 급해나서 오른쪽손을 뻗쳐 자기 목살에 와닿는 칼날부터 쳐버렸다.
그러고는 얼결에 당한 변인지라 벙벙해졌던 어안을 인차 가누어잡으며 소리쳤다.
《대체 누구길래 불륜스럽게도 이웃나라 사신의 침소에까지 뛰여들어 새벽잠을 방해하는거냐?-》
칼날이 당장 제 목대를 베여던질 판인데도 눈섭 한오리 까딱안하고 누운채로 천연해서 욕설을 퍼붓는 유정을 본 괴한들은 제켠에서 되려 주눅이 들었다.
단검으로 유정의 목을 찌르려던자가 그래도 호기를 뽐내며 지껄였다.
《일본의 실지적인 번성을 위하여 용약 거사를 단행한 가또군장님의 부하이다. 그리 알고 순순히 이 칼을 받기나 해.》
이러고는 다시금 유정의 가슴팍을 겨냥하고 단검을 휙- 내려박았다.
그찰나 사세가 부득이해진 유정이 량손으로 날쌔게 칼날을 거머잡아서는 손아귀에 욱- 하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칼날이 뎅겅 부러져나갔다.
괴한은 일시 기세가 죽어드는듯싶더니 다시 승이 살아나 유정에게로 되접어들었다.
유정의 주변을 휘둘러싸고 기회를 노리던 여느 놈들도 일시에 그를 덮치였다.
유정은 밤도깨비같은 이자들을 소홀히 여기다간 이밤에 자기가 맞아죽을수도 있다는 가슴섬찍한 느낌이 들어 바싹 긴장해지며 잠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옆과 뒤에서 달려든 놈들이 법수있게 내지르는 주먹질, 손칼질에 명치와 관자노리같은 급소를 잇달아 줴맞은데다 또한 앞에서 날아든 놈이 휘둘러차는 발길질에 턱주걱을 면바로 걷어채운 유정은 숨이 꺽 막히여 억- 신음을 지르면서 비칠거렸다.
(내가 이젠 늙긴 늙었구나.)
허거프게 탄식을 하던 유정은 한참만에야 몸을 가누어잡고 틈이 벌어진 곳으로 피해서서 놈들을 일격에 요정낼 기회를 노렸다.
바로 그때 돌개바람소리와도 같은 소음을 일으키며 싯허연 형체 하나가 휘익- 방안으로 날아들더니 괴한들을 사정없이 족쳐댔다. 가만 보니 사람이 분명한데 날고뛰는 솜씨는 꼭 표범 한가지였다.
그 정체불명의 협객에게 줴맞아 마루바닥에 나동그라져 몽둥이찜질을 당한 개새끼마냥 낑낑거리던 괴한들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문밖으로 비실비실 물러나가더니 《너희네가 본토로 건너오는건 제 죽을 함정에 스스로 뛰여드는짓인줄 알라.》 이렇게 한마디 위협을 남기고는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유정을 위기에서 구원해준 협객이 맹랑하여 빈손만 털며 서있는 그에게로 다가와 제 먼저 서툰 조선말을 걸어왔다.
《놀라지 마소이다, 스님. 소인은 조선이주민의 후손이옵니다.》
《헌즉 동포의 구원을 받았구만.》
안도의 숨을 후- 내쉬고난 유정이가 서둘러 등잔을 켜니 키꼴이나 있는 몸에 조선중치막차림을 한데다가 훤칠한 얼굴의 눈꼬리가 록록치 않게 치째진 젊은이가 모상을 드러냈다.
그때 밖에서 밤새 스님신변을 교대로 지키다가 새벽녘이 되여 안심하고 옆방에서 잠들었던 계명이와 홍창해, 오팔이(그들은 쯔시마에 와서는 노군자리를 왜인들에게 넘겨주고 정식 사신호행원노릇을 했었다.)가 소동에 놀라 깨여나 급급히 스님침소로 달려왔다.
그들은 방바닥에 어지럽게 찍힌 신발자리와 날이 부러진채 방바닥에 나딩구는 단검을 보고 무척 의아쩍어하다가 낯선 협객에게서 사건전말을 전해듣고는 그 협객의 팔을 부여잡고 스님을 구원해주어 정말 고맙다며 거듭 사례를 하였다.
나이는 막잡아 서른살이 남짓해보이고 행동거지와 목소리에서 강단이 느껴지는 그 낯선 협객은 동포로서 응당한 일을 했다면서 겸양한 태도를 취하는것이였다.
이름이 백손이라고 제 소개를 한 협객은 앞으로 자기가 본토에까지 동행하면서 조선사신의 일을 힘껏 도와드리겠다는 언약을 남기고 물러갔다.
유정은 자고로 물이 아니면 건느지 말고 인정이 아니며는 사귀지를 말랬다는 격언이 때없이 떠오르며 자기가 너무도 생소한 협객의 선의에 헐헐히 휘말려들지 않는가 하는 회의심이 들었으나 그가 조선이주민의 자손이라는데 마음이 끌리여 그를 사신호행원으로 받아들이기로 작정했다.
유정은 불의에 드닥쳤던 불상스러운 위기를 일시 모면했으나 왜땅에 건너온 첫걸음부터 자기의 목숨을 노리는 원쑤들의 악랄하고 야살찬 책동을 당한지라 저도 모르게 등골이 써늘해지며 속이 불안스러워졌다.
이자 시초에 불과한 그러루한 난국을 이제 또 부지기수로 겪으며 헤쳐나가야
할 간난신고와 미궁과도 같은 사지판들을 생각하느라니 앞날이 막연해지고 이젠 육체도 전같지 않은지라 도무지 신심이 생기지 않았으나 강잉하게 의지를 가다듬어
그무렵에 마가을철의 소슬한 찬비가 련 이틀째나 추들추들 내렸다.
유정은 쯔시마관사뒤뜰에 있는 련못가의 루각에 앉아 가마뚜껑같은 련꽃잎사귀에 떨어지는 소연한 비방울소리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련못가나 련못 한가운데에 솟은 고루거각의 경치를 부감하는것도 즐겨했지만 보다 더 비오는 날 부용당의 란간에 기대앉아 물면과 련잎에 비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것을 끝없이 즐겨했다. 못 잊을 련인의 살틀한 속삭임인듯, 옛추억을 불러내는 하많은 사연의 하소연인듯 련잎에 떨어지는 비소리를 듣노라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정서와 감정에 따라 끝없는 상념의 바다에 심혼을 내맡기기도 하고 비방울소리가 튕겨주는 령감에 따라 마음속에 간직된 아름다운 음률을 시구에 담아 읊조리기도 했던것이다.
하지만 그때 유정의 심중에서는 그 어떤 음률이나 흥취가 아니라 이제 소슬비 뒤끝에 드닥칠 추위와 그 추운 날씨속에서 위험을 꿰뚫으며 한걸음두걸음 힘겹게 장구한 행로를 헤쳐나가야 할 앞일에 대한 구상이 천갈래만갈래로 가지를 쳐 뻗어나가면서 허점이 없이 무르익혀졌었다. 또한 그는 소연한 비소리에서 서산대사의 엄한 훈계를 들었고 조국땅에 남겨두고온 백성들의 곡진한 당부를 들었다. 스승의 훈계는 채찍소리로 돌변하여 허공을 찢으며 유정에게 길을 재촉했고 각계층의 조선사람들의 귀에 익은 목소리는 원쑤를 갚아달라는 처절한 울부짖음으로 변해 가슴을 아프게 찢어발기기도 했다.
유정은 비록 제 한몸이 천쪼각만쪼각으로 찢겨진다 해도 기어이 왜국의 종심으로 건너가 장구한 나날 조선사람들의 가슴에 원한의 상처를 남긴 왜놈들과 결판을 내리라 결심했다.
여러날 지나 바람세 좋은 때를 택하여 조선사신행차는 또다시 본토로 향하는 멀고 험한 바다길에 나섰다.
풍성한 장발수염을 해풍에 길길이 날리며 배전에 거연히 뻗치고 서서 시야로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야만의 나라를 지꿏게 주시하는 유정의 서늘하니 치째진 눈가에서는 비장한 색조가 련련히 흐름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