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장
사명당
조선사신행차가 일본땅을 뒤흔들어놓은 때로부터 어언간에 다섯해가 지나 세월은 경술(1610)년 8월 보름 추석경에 접어들었다.
풍요한 들에서는 오곡백과가 한창 무르익고 산속의 수림속에서는 살진 산짐승과 산새들이 겨끔내기로 울어대는 이른 가을철이였다.
지세 험준한 가야산의 어느 한 산등 공지에는 백발의 턱수염을 가슴팍까지 길다랗게 드리운 로승이 홀로 서있었다.
주름진 길씀한 얼굴이 짙은 병색에 절은 로승은 기력이 쇠약해진 장대한 체구를 힘겹게 움직이며 느적느적 풀밭을 거닐다가는 공지 한가운데서 우뚝 뻗치고서서 시름겨운 시선으로 먼 하늘가를 점도록 바라보군 한다.
그러다가는 또 엎드린 소잔등처럼 민틋하니 두드러진 바위우에 올라앉아 부피두툼한 서적을 열심히 독서하기도 한다.
공지를 아늑하게 둘러싼 숲에서 희귀한 산새들이 재롱스레 날아예고 선들바람이 먹음직한 다래며 영근 밤알을 떨구는 한낮무렵이 되여 로승이 자연의 정취에는 무관심한채 바위잔등에 커다란 죽청지를 펴놓고 앉아 무슨 그림을 그리느라 여념이 없는데 별안간 등뒤에서 녀인의 짜증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대선사님, 정 이럴내기옵니까?》
그 나무람소리에 로승은 얼른 붓을 놓고 상체를 폈다.
청라장삼을 단정히 차려입고 백팔념주를 흰 목에 걸은 년로한 녀승이 노여운 표정을 지으면서 로승곁으로 다가섰다.
《오늘은 의원의 통제에서 벗어났는가 했더니 또 이렇게 걸려들었군그래. 허허.》
이러며 난처해하던 로승은 녀승한테 진짜로 중요한 일때문에 그러니 며칠간만 혼자 조용히 용무를 보게끔 말미를 달라고 사정을 들이댔다.
그랬으나 녀승의 태도에선 일점 양보도 없었다.
《
너무도 속상하여 입술을 옥깨무는 녀승의 잔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가랑가랑 내맺혔다.
그 녀승은 이곳 가야산 송화암에서 거처하는 청목선사인 송희령이고 수염쟁이로승은 다름아닌 《가랑잎을 타고 바다를 건너가 왜왕을 항복시킨 도사》로 이웃나라들에까지 명성이 쫘해진 유정이다.
유정은 신병이 극심해서 오래전부터 이곳 가야산의 홍제암에 와있으면서 송희령에게서 치료를 받아오는중이였다.
수천수만에 달하는 적군과의 대전에서도 수염 한오리 상하지 않고 펄쩍 날뛰며 빛나는 무공을 떨쳐온 천하무적의 용장이 하찮은 병마따위에 쓰러져
장골육신이 피페해진것은 본인
수년전 그때 유정은 왜국행차를 끝내기 바쁘게 그길로 곧장 묘향산으로 장달음쳐가 스승인 서산대사의 유해(이미 전해에 작고했었다.)부터 찾아뵙고 돌아오는 걸음에 왜국실태와 그에 따르는 대책안을 조정에 상보하기 위해 한성의 대궐에 들렸었다.
당시 조정은 그가 거둔 혁혁한 성과를 경이적인 사변으로 여기며 죽가마끓듯이 법석 떠들고있었다.
3공6경의 대감네들과 당상관, 당하관의 문무백관들은 하나같이 다 비천한 중에 불과한 유정이앞에서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었다.
선조왕은 유정을 친히 편전에 불러들이여 접견하면서 그의 공적을 크게 평가한 후 그에게 가위대부(종2품)의 벼슬을 하사하고 말과 모시옷감을 상으로 주었다. 아울러 유정이네 친부, 조부, 증조부 3대조상까지도 품계를 높여줬다.
그러고나서 선조왕은 유정이한테 정승자리를 맡기겠으니 머리를 기르라고 권고했다.
허나 유정은
《소승이 임진왜란때나 이번 왜국행차때나 나라를 위해 자그마한 공이나마 이룰수 있은것은 곁에서 소승을 보좌하고 밀어준 젊은 제자들의 덕분이옵니다. 그들은 비록 천한 백성의 자식이오나 비상히 출중한 자질과 지극히 열렬한 애국심을 지닌 인걸들이옵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기틀이오니 그 백성을 무한히 아끼고 귀히 여겨야 나라가 번성하고 태평할줄로 아옵니다. 그러하니 소승을 도와 멀고 험한 왜국에까지 다녀온 젊은이들의 공을 제대로 평가하고 중히 써주시기를 일구월심으로 바랄뿐이옵니다.》
그 간절한 청이 쾌히 수락되여 홍창해와 오팔은 속량을 받아 변방 요충지의 장수로 옮겨졌고 귀국의 길에서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부를 구원하고 불구가 된 계명은 나라의 록으로 한뉘 부양을 받게끔 조치가 취해졌다. 또한 늦게나마 개심을 하고 왜놈들의 흉계를 짓부시다가 잘못된 마광우도 애국공신으로 평가되여 3대후손까지 정5품이하의 관직에 오를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조선사신을 남모르게 이모저모에서 도와주고 보호해준 히까리도 본인의 의사에 따라 모친과 함께 한성에서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쓰고 살며 훈련도감의 교련군관노릇을 하게 됐다.
그러한즉 모두가 복을 받은셈이였다.
후날 그들이 감지덕지해하며 사례를 해올 때마다 유정은 《인사는 제
유정은 그후 전국의 사찰들에서 젊고 건장한 중들을 뽑아 승병부대를 무어가지고 다니며 남해변방과 북부국경지대의 산성들을 수축보강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다가 환갑이 훨씬 지난 년로한 몸으로 수년간 객지에서 풍찬로숙하며 랭설폭우속에 육신을 내대고 과로를 한탓에 골병이 들어 종내는 이렇게 명의의 손에 여생을 맡기는 신세가 돼버린것이다.
육체가 기신없이 피페해진 병자가 되여가지고도 유정은 제 일신의 치료보다도 수하 승병들이 새로 수축할 산성설계작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도를 닦기 위해 자기를 찾아 가야산으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에게 학문과 무예를 가르치는데만 열중했다.
그러다나니 이처럼 종종 치료를 담당한 녀의승의 애를 태우군 하는것이였다.
상심하여 한숨만 시름겹게 내긋는 송희령을 본 유정은 진중한 낯색으로 그를 설복했다.
《그대는 내색을 금해오나 난 이미전부터 내
유정의 그 말도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당시의 시국은 부국안민을 위해 애쓰는 열혈장부라면 주먹을 부르쥐지 않고서는 못 견딜 정도로 어망처망히 번져가고있었다.
우선 조정부터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조정의 문무백관들부터가 선조왕의 급작스런 죽음과 더불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을 서로 끄당기며 제 당파의 리익을 추구하는데만 정신을 팔면서 나라일은 줴버리다싶이했다.
임진조국전쟁전부터 서인이요 동인이요 하며 크게 두 파로 갈라져 옥신각신하던것이 동인안에서 대북파와 남인파가 생겨난것처럼 또다시 분파가 련속 형성되며 물고뜯어오다가 피비린 당쟁으로 번져져 떼죽음을 내기까지 했다. 애국을 지향하던 아까운 관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시골로 은신했다.
그로 인하여 나라정사는 혼란되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헌데 대궐의 조회청에서는 어전모임때마다 《나라엔 충신이 차넘치고 집집마다엔 효자와 렬녀가 있고 풍년으로 햇쌀이 많아져 누구나 배를 두드리며 격양가를 부르옵니다.》 이런 아뢰임소리가 뻐젓이 울리군 했다.
판이 그러니 자연히 병력도 약해지고 군기도 물란해질수밖에 없었다.
시국이 그러하자 때를 만난듯이 남해가에선 왜구들이 날치기 시작했고 북방의 오랑캐들은 대군을 무어 뻔질나게 국경을 침범했다.
유정은 아무리 병석에 든 몸일지언정 기울어져가는 국운을 수수방관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연히 천여리 먼길을 달려 한성으로 올라가 등문고를 치고 입궐하여 젊은 새 임금에게 충간도 하고 정승, 판서들한테 정신 번쩍들도록 훈계를 하여 나라정사가 바로잡히고 문무백관이 오로지 나라일에만 일심전력하도록 해놓았다. 또한 내친 걸음에 파쟁군들의 모해에 걸려 선조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책임을 지고 먼 변방에서 정배살이를 하는 궁중어의 허준을 찾아가 민족의 의학재보인 《동의보감》의 집필완성을 도와주고 왔다.
그러하느라 정신적부담이 과해지고 로독에 지쳐 병세는 한층더 악화되였다.
《그처럼 스스로가 병세를 굳히니 천하의 어느 명의인들 용을 쓰겠나이까. 백약이 무효인줄로 아옵니다.》
송희령은 이러다가 가슴이 저려들어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굽만 훔쳤다.
그한테 미안스러워 건기침만 깇던 유정은 반석우에 펼쳐진채로 있는 성곽설계도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앉으며 곁의 빈자리를 권했다.
《예 앉아 다리쉼이나 좀 하오. 첩첩수백봉우리를 거느린 천험의 산등을 가로지른 너럭바위를 타고앉아 천하의 산수를 부감하는 맛이 실로 좋구만. 추석이 돼오며 천고마비의 호계절을 맞아 일껏 풍요해진 일만경치를 바라보니 먹지 않아도 살이 오르는것 같구려.》
《대선사님도 참.》
유정이가 무안함을 모면하려고 우야 너스레를 떤다는것을 안 송희령은 한동안 새침해있다가 그에게 약을 먹일 때가 지났기에 그의 곁에 가앉아 품들여 빚은 환약을 꺼내 넘겨주었다.
자기의 병치료를 맡은 녀의승의 곡진스러운 요구를 물리칠수가 없어 마지못해 환약을 받아 입안에 넣고 움짓움짓 깨물어넘긴 유정은 일하다가 쉴참에 목추김을 하느라 도자기병에 떠다놓았던 샘물을 서너모금 쏟아마셨다. 그리고는 젖은 입술을 쑥 훔친 후 장발수염을 슬슬 내리쓸었다.
《어- 거뜬하군. 그 약이 과히 신통한걸.》
이러며 헌헌스럽게 웃는 유정을 말없이 눈여겨보기만 하는 송희령의 시선에는 애틋함이 담뿍 어리였다.
미소가 차분히 어렸던 그의 눈가에서 불시에 물기가 반짝이더니 어느새 애절한 색조로 변해버렸다.
종종 이처럼 애절스럽게 내비치는 희령의 눈빛에서 《도련님! 우리 이제라도 환속하여 머리를 기르고 그새 희생당한 청춘을 되찾아 즐기옵시다. 애정의 열매도 남기지 못한채 저세상으로 속절없이 갈수야 없잖나요. 철지난 마가을철의 인생일지언정 때늦게나마 가정을 이루고 남들처럼
여생을 즐기고싶군요.》하는 속대사를 느끼군 했으나 유정은 아무런 기미도 못 챈듯 흔연히 넘겨오는터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심중의 내막에 불과할뿐이였다.
사랑하는 녀인과의 개별적인 사정에 몰리여 예껏 한뉘 철칙으로 삼아온 지조를 이제와서 쉽사리 버릴수는 없었다.
유정은 송희령의 어깨에 한쪽손을 다정히 얹으며 뇌였다.
《희령이! 내 그대의 심정을 모르는바가 아니요. 허나 이제와서 달리 살수야 없잖소. 난 오직 우리가 태를 묻고 자란 이 땅의 부강번성을 마련하는 길에서 한생의 락을 누리려는 사람이요.》
유정의 절친한 손길에 몸을 맡기고 숫색시처럼 수집음을 타며 앉아있던 희령은 차분히 고개를 수그리며 대척했다.
《압니다. 대선사님의 변치 않는 그 일념을요. 하기에 이날까지 곁에서 거처하며 나라일을 위해 뇌심초사하는 그대를 돕고있지 않소이까.》
《참말이지 당신한테 한뉘 빚만 져오는구만. 생각하느니 죄의식뿐이요. 옛적에 그대가 나같은 부실한 소년공자를 만나지 않았어도 운명이 달리 될수도 있었건만 아, 일은 참 불미스럽게도 됐거던. 이성지합도 만복의 근원이랄지. 그때 나로 인하여 우리의 혼인이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그대가 한생 불우해졌거던. 어허, 인생을 다시 살수가 있다면 아무쪼록 내 그대 가정의 호주가 되여 공력을 다해 현숙한 안해인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싶건만 그럴수가 없으니 한스럽구려.》
그 자책에 겨운 소리에 《아니예요.》 하고 황황히 도리를 젓던 송희령은 유정의 듬직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소승은 참으로 복이 있는 녀자예요. 도련님같은 애국애민의 헌걸찬 사내를 련인으로 두었으니깐요. 현세에서 도련님과 사귀여온 갖가지 일들을 래세에 가서도 두고두고 추억하겠나이다. 도련님, 우리 래세에선 꼭 부부로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 많이 낳고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옵시다.》
《고맙소! 당신같은 선하고 현숙한 녀자를 몸가까이 둔 난 정말 행복하오.》
유정은 송희령을 뜨겁게 품안고 오열에 떠는 그를 오래도록 어루쓸었다.
몇날후인 경술(1610)년 8월 26일 유정은 예순여섯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외진 촌락의 농군으로부터 시작하여 조정의 대관에 이르기까지 각계층의 셀수없이 많은 조객들이 길이 메이도록 가야산으로 밀려들어 눈물속에 고인을 바래웠다.
불교법에 따라 유정의 시신을 홍제암에서 화장하고 9일째 제를 지내던 때에 련사흘동안 바다너머의 남쪽하늘가에서 피빛구름이 뭉개쳐오르더니 왜국의 살인괴수 가또 기요마사가 청청대낮에 원인모르게 급사한 사실이 전해져 또 한번 세상을 놀래웠다.
하늘의 조화인가? 아니다. 애국공신의 혼이 저세상으로 떠나면서도 나라와 백성을 해치려는 극악스런 원쑤놈의 목을 졸라매여 끌고갔으리라.
당시 일류문사였던 허균은 유정의 령전에 《자통홍제존자(사랑으로 크게 통하고 높이 이루어진 사람)》라는 글을 남기였다.
국왕이 직접 내린 어명에 의해 유정의 고향에 그를 제지내기 위한 사당이 별도로 크게 지어졌고 평시에 송운이라 불리우던 법호대신에 사명당(모든것에 밝고 어엿하고 신령스러운 부처라는 뜻)이라는 시호(죽은 사람의 공덕을 칭송하여 추중하는 이름)도 붙여졌다.
그때부터 유정은 사명당으로 불리웠다.
이는 바로 유정의 한생에 대한 력사의 공정한 평가가 아니겠는가.
후세가 두고두고 잊지 못해하며 그 공적을 청사에 아로새겨 길이 전해가는것!
그 또한 사람의 큰 복일진대 그러고보면 사명당은 《애국애민의 길에 복이 있다.》는 인생지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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