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한 하늘을 이고살수 없다
6
그 시각 홍창해가 탄 배와 마광우가 탄 배와 히까리가 탄 배안에서도 그와 류사한 복닥소동이 벌어지고있었다.
《사람살려요. 왜놈들이 배를 폭파해요-》
뒤쪽에서 아우성치며 울려오는 내인들의 숨넘어가는 비명소리가 유정이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유정은 펄쩍 놀라서 다락방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란간에 붙어서서 뒤따라오는 배들을 휘둘러 살폈다.
이배저배마다에서 왜인《사공》들과 뒤섞여돌아가며 때리고 차고 하는 호송원들과 귀환자들이 눈에 띄였다.
오팔이, 홍창해, 마광우, 히까리같은 전문싸움군들이 제각기 분담받아 탄 배에서는 그래도 귀환자들을 뭉쳐가지고 떨쳐나 큰 손해가 없이 배를 폭파시키려던 왜인《사공》들을 제압하고 소동을 가라앉히는데 여느 배들에서는 무예와 완력을 지닌 주동인물이 없다나니 벅작 고아대며 서성거리기만 할뿐이였다.
탕- 탕-
아츠러운 조총소리에 이어 사람죽어가는 신음소리가 유정의 귀청을 잇달아 때렸다.
가슴이 덜컥하여 굳어졌던 유정은 바삐 계명을 소리쳐 찾아 곁으로 불러세웠다.
《얘, 호행원들이 타지 못한 저뒤의 화물선에 좀 가봐라.》
유정이가 급해서 소리를 치자 계명은 저대로 난색을 지었다.
《그럼 여긴 스님 혼자 남지 않소이까.》
《내가 무슨 대수냐? 보다 중한 물건들과 수많은 동포들이 위험에 처했는데.》
《소승은 절대로 자리를 뜨지 못하겠소이다. 사신배에도 불한당들이 슴배여들었을텐데 소승이 없으면 스님신변은 누가 지키겠나이까.》
《네가 안 가겠다면 내라도 가봐야겠다.》
유정이가 장삼을 활활 벗으며 진짜로 바다물에 뛰여들 태세를 취하자 계명은 질겁하여 스님을 붙잡았다.
《스님, 이래선 아니되옵니다.》
《저도 못 가겠대, 나도 가지 말래… 그럼 어쩌자는거냐?》
버럭 역증을 쓰던 유정은 솥뚜껑같은 손으로 허공을 홱 내리썰며 너무도 안타까와 발을 굴렀다.
《나라는 인간이 대체 무어냐? 이눔아, 저 귀환자들은 우리 조선의 백성들이고 저 서적들과 활자들은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보란 말이다.-》
스님의 잔뜩 흡떠진 눈에서 펑끗 튕겨나온 불총에 줘맞은 계명이 놀라며 굳어졌다.
《…》
이럴 땐 어째야 좋겠는지를 몰라 그 자리에 쭈그리고앉아 두무릎새에 얼굴을 묻고 안타까와하던 계명이가 튕기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장삼을 벗어던지고 바다물로 휙- 뛰여들었다.
《소승이 돌아올 때까지 제발 조심하소이다.-》
계명이가 남긴 그 말소리의 공명이 허공에서 울림과 동시에 첨벙 하고 물장구 튕기는 소리가 났다.
어느새 새매같이 물우에 날아내린 계명이가 떨어지는 힘을 리용하여 파도우를 미끄러져나가고있었다.
계명은 자기네 호행원들이 타지 못한 뒤쪽의 화물선을 겨냥하고 헤염을 쳐나갔다.
길길이 솟구치는 물갈기가 철썩철썩 사납게 몸통을 휘때리며 통채로 들씌워질적마다 쩝쩔한 소금물이 그의 입안과 코구멍안으로 흘러들었다.
계명이가 홍창해가 탄 배를 지나치는데 제가 맡은 배의 불량스러운 왜인《사공》들을 족쳐버린 홍창해도 다른 배들이 걱정되여 그쪽으로 가려고 바다물에 뛰여드는참이였다.
물에 첨벙 떨어져내려 방향을 잡는 그한테 계명이가 상반신을 우쩍 솟구며 소리쳤다.
《형- 마종사네 옆배를 맡으라요. 그뒤의 배들은 내가 맡을테니. 어푸- 헉…》
그 말을 가려들었는지 창해도 한쪽팔을 휘저어보이더니 입안에 새여든 바다물을 내뱉으며 대척했다.
《주의해라, 계명아. 내 인츰 간다. 푸-》
《혀… 형님도 주의하라요.- 어후 푸-》
계명은 쏴- 쏴- 하고 세차게 불어치는 해풍에 밀려 이리저리 날뛰며 솟구치는 파도와 힘겹게 씨름질을 벌린 끝에야 목적한 배에 가닿았다, 그가 기운이 진한 팔을 솟구쳐 겨우 선체가녁을 붙잡고 몸을 들어올릴 때였다.
옆배에서 조선귀환자들을 단검으로 찌르고 노대로 후려치고 하던 왜인《사공》들중에서 한놈이 날쌔게 조총에 탄환을 재우더니 계명을 겨누고 발사했다.
탕-
계명은 총소리를 듣는 순간 어깨박죽이 몽둥이질을 당한듯 저려들고 인차 육신이 매시시해지면서 눈앞이 핑 돌았다.
선체홈에 박아짚었던 계명의 발이 털썩 미끄러져내렸다.
그는 선체가녁을 한쪽팔로 겨우 붙든채 맥없이 늘어졌다.
옆배의 갑판우에서 왜인《사공》들이 지껄여대는 말소리가 가물가물 흐려지는 의식속에 들려왔다.
《오이, 후꾸라- 폭약심지에 불을 다 달았어?-》
《모든게 제대로 됐으니 걱정놓으라구.》
《그럼 냉큼 가시라사마가 있는 배에로 가자구.》
그 지껄임이 끝나기 바쁘게 검은 사공차림의 괴한 두엇이 선체에서 휙- 휙- 날아내려 바다물을 헤염쳐가는것이 보였다.
계명은 놈들이 배를 폭파하려고 선창안에 폭약을 장치하고 꽁무니를 사린다는것을 알았다.
화드득 가슴이 놀라 들뛰고 치가 떨려하는 계명의 귀가에서는 유정스님의 웅글은 웨침소리가 되살아울리였다.
《저 배들마다에 실린 귀환자들은 우리 조선의 백성들이고 그 서적들과 활자들은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보들이란 말이다.》
계명은 고막을 쩡- 울리는 그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제 한몸의 보존보다도 나라와 백성의 존재를 우선시해온 스님!… 우리 스님의 말씀은 늘 옳았었지. 그래, 어떻게 하나 스님의 의지를 실현해야 한다.)
계명은 안깐힘을 써 가까스로 선체를 타고올랐다.
선창안과 갑판우에 부류별로 정리되여 산더미처럼 쌓여진 포장짐들을 지키던 귀환자들과 쯔시마관아의 호송왜인 여럿이 괴한들의 칼에 찔리여 여기저기에 쓰러져있는것이 계명의 눈에 띄였다.
으드득 이발을 갈던 계명은 혼미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가다듬으며 비틀비틀 짐짝틈새들을 얼추 돌아보고는 선창안으로 내려갔다.
작식도구와 쌀자루들이 휘뿌려져 나딩구는 어느 구석에 폭약꾸레미에서 늘어진 심지를 따라 칙칙거리며 우불구불 타들어가는 불덩어리가 보였다.
(이 쌍 짐승같은 놈들.)
끓어오르는 분노로 하여 부르르 치를 떨던 계명은 폭약꾸레미를 와락 움켜안고 잉그르르 돌아섰다. 일각이 급함을 알았던것이다.
그의 바지를 질쩍이 적시며 흘러내린 선지피가 발자국마다에 줄줄이 떨어져 선창바닥에 흥건히 퍼지였다.
계명은 천길나락속으로 잦아드는것만 같은 몸을 가까스로 휘적휘적 움직여나가다가 그만 쾅 하고 넘어졌다.
그때 어느 구석에서 튕겨나온 왜인《사공》 두놈이 칼과 총을 추켜들고 계명이한테로 뛰쳐왔다.
놈들은 심지에서 불찌가 칙칙 타들어가는 폭약꾸레미를 계명의 손에서 빼앗아 선창안에 되넣으려고 날구닥질을 했다.
그러다가 계명이가 악을 쓰며 그것을 꽉 그러안고있기에 더 어쩔수가 없자 칼을 버쩍 추켜들어 폭약꾸레미를 붙잡은 그의 두팔을 무참히 내려쳐 찍었다.
《앗-》
오른쪽, 왼쪽의 팔뚝을 다 잘리운 계명은 비명을 지르다가 정신을 잃었다.
칼을 휘두르던 놈이 다시금 계명의 가슴팍을 들이찌르려고 칼날을 올리는 바로 그 시각에 선미쪽에서 《이 벼락맞을 놈들아-》하는 고함소리가 울리더니 방금 배에 오른듯 옷이 화락하니 젖은 마광우가 나타났다. 제가 맡았던 배의 불한당놈들을 제압해치우고 뒤에서 따라오던 화물선들이 걱정되여 옮겨온것이였다.
마광우는 무작정 계명의 가슴팍에 칼날을 가져다대는 《사공》놈부터 발로 걷어차 쓰러뜨리고 짓밟아댔다.
그러는새에 조총을 한쪽겨드랑이에 낀 다른 《사공》놈이 계명에게서 빼앗아낸 칙칙 불이 타들어가는 폭약꾸레미를 들고가 선창안에 되넣고 흡족하여 돌아섰다.
마광우는 갑판을 박차고 날아들며 그놈의 면상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왜놈이 캑-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마광우는 그렇게 초벌 놈들을 꺼꾸러뜨리고는 황황히 선창안으로 내려가 폭발직전에 이른 폭약꾸레미를 집어들고 뛰여올라와 바다물에 내버렸다.
그찰나 바다물겉면에서 폭발이 무섭게 일어나며 배가 뒤집힐듯이 흔들거렸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돌아서던 마광우는 《탕-》 하고 울리는 총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팍을 그러안으며 비틀거렸다.
방금전 마광우의 골받이를 당하고 자빠졌던 왜인《사공》놈이 정신을 되차리고 일어나 조총을 발사했던것이다.
마광우는 이를 악물고 한발자국, 두발자국 가까스로 걸어가 자기를 총으로 쏜 놈을 걷어차 바다물에 처넣었다.
그러고는 계명이를 살리려고 그한테로 다가앉아 그의 처참하게 끊어진 팔뚝을 그러안고 너무도 가슴이 아파 《내가 한발 늦어 이렇게 됐구나. 이 아까운 팔이…》 이러다가 정신이 혼미해져 맥없이 넘어갔다.
한편 유정은 긴급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조선사신들이 탄 다락배를 모는 쯔시마관아의 왜인사공들에게 호령하여 배를 뒤로 돌리여 뒤배들에 붙여 세우게끔 했다.
그리하여 사신배가 급급히 선수를 빙 잡아돌리는데 앞에서 길잡이를 해나가던 도선주의 배와 사신배를 뒤따르던 배가 약속이나 한듯이 갑작스레 속력을 내여 뒤돌아오고 달려오고 하더니 사신배의 앞을 넌떡 막아서는것이였다.
배들이 서로 선체가 부딪칠듯이 스칠 때 도선주의 배와 사신배뒤에 섰던 배에서 억대우같은 젊은 왜인 대여섯놈이 사신배에로 와다닥 뛰여건너왔다.
그저 흔하게 먹베수건에 베적삼으로 배군차림을 했으나 결코 쌍된 일이나 해온 사람들같지 않았고 오륙놀림이며 눈돌아가는 품새가 전문 싸움판에서 굴러먹은 사무라이들 같았다.
그자들은 세숙된 솜씨로 쯔시마관가에 매인 왜인사공들과 손문욱참의며 유정을 시중들던 수행성원들을 순식간에 초절임시켜 선미 한쪽구석에로 몰아넣고는 울레줄레 사신행차의 기본 도총수인 유정을 둘러쌌다.
자기가 맡은 화물선은 어떻게 하고 그자들 배에 가있댔는지 백손이가 유정의 신변을 우려하여 비호같이 날아건너왔다.
《백주에 이 무슨짓이냐?-》
유정은 노기가 울컥 치받치여 불한당들한테 버럭 고함을 쳐댔다.
그러는데 뼈대가 굵직하면서도 거동에서 박력이 느껴지는 왜인사내가 유정이앞에 코바투 다가서며 제 얼굴을 위장했던 먹베수건을 풀어내리고 턱수염을 뜯어버렸다.
이건 어디서 빌어먹던 놈팽이가 와가지고 푼수없이 놀아대는고? 이런 눈찌로 상대를 대수롭지 않게 흘겨보던 유정은 아연하여 굳어졌다.
그 작자는 늘쌍 가또의 꽁무니에 묻어돌던 가병대장인 다나까였기때문이다.
먼저 제 정체를 드러내면서 《안됐소. 로승, 우리 군장님의 의지에 따라 당신과 마지막결산을 하러 왔소.》 하고 이죽거리는 다나까놈을 쏴보던 유정은 뒤늦게야 피뜩 지금 벌어지는 사태의 진상을 간파했다.
가또놈에 의해 이런 어망처망한 악행이 빚어지고있다는것을 생각하니 불더미같은 분노가 욱 치밀어올라
그는 이발을 으드득 갈다가 왜말로 부르짖었다.
《이 사악스러운 아수라들-》
그 소리에 속이 찔린듯 한찰나 흠칫거리며 주저하던 다나까는 인차 악심을 도사리고는 씩 랭소를 지으며 시까슬렀다.
《우리가 피흘려 쟁취했던 숱한 인력과 물건을 공짜로 빼앗아가면서 되려 주인보고 욕설이니 어디 일이 바로 됐소?》
《패전지장에 불과한 가또의 졸개들이 언감생심 전리품을 론해? 이 배의 사람들과 물건들의 진짜주인은 우리 조선이란 말이다. 사람같잖은것들이 감히 전승국의 사신한테 삿대질이냐?》
《다 늙어빠진 돌중놈이 아직 속은 살았구나. 우리 군장님과의 남다른 인연을 보아 곱게 저승행차를 태우려고 했더니 안되겠군.》
이렇게 씨벌거리던 다나까놈은 벼락같이 유정이한테로 날아들며 모두발차기로 명치부위에 급소타격을 해대는것이였다.
예상치 않던 공세를 당하고 비청거리던 유정은 인차 각성되여 몸을 바로잡았다.
악을 도사려먹고 끈끈히도 뒤쫓아와 기어코 흉책을 실현하려고 하는 《도자마》패당에 대한 격노감으로 하여 유정의 눈에서는 시퍼런 불줄기가 펑끗펑끗 쏟아져나왔다.
그러할 때 또 다나까가 눈깜박할새에 단검을 뽑아들고 번개같은 동작으로 유정의 심장이 자리잡은 왼쪽가슴팍을 들이찔렀다.
그찰나 유정이 욱- 힘을 쓰며 량손으로 칼날을 거머잡아 비틀었다.
그러자 다나까가 아이쿠- 하고 신음을 내면서 단검을 쥔 오른쪽손을 늘어뜨렸다.
유정이 한쪽팔을 휙 내젓자 그 손에 묻어나온 단검이 허공으로 반원을 그리며 날아나 바다물에 툴렁 떨어졌다.
《전쟁을 끝낸 후론 내 다시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 했건만…》
유정은 한순간 합장을 하고 하늘을 우러르며 오, 부처님이시여 이 불민한 교도 오늘 불가피해 살생을 쳐야 할가보옵니다, 허지만 이건 선을 해치는 악에 대한 징벌이옵니다 하고 아뢰였다.
유정이가 잠을 깬 호랑이마냥 장발수염을 화르르 떨며 기염을 돋굴 때 절치부심을 하던 다나까가 재차 선창을 박차며 날아들었다.
그때 유정이가 돌개바람같이 휙- 몸을 솟구치며 한발로 휘돌아차기를 했다.
그 단 한번의 타격을 당한 다나까가 바람맞은 풀오래기처럼 허궁으로 휭 날아나 선체에 와지끈 부딪치고 너부러졌다.
그러자 악에 받친 다나까네 패당들이 칼을 꼬나들고 악- 소리를 치면서 동시에 유정을 덮쳤다.
침착하게 벋치고 서서 그자들의 거동을 주시하던 유정이가 《으얏-》 하고 기합을 쓰더니 발휘둘러차기를 하며 날아드는 놈팽이의 두다리를 휘잡아 사지를 헌 걸레쪼박처럼 무자비하게 찢어서 바다물에 내던졌다.
그 광경을 목격한 여느 놈팽이들이 질겁을 하여 꽁무니를 사리려는 때에 불쑥 여태껏 놈들의 뒤에 붙어서서 형세를 관망하던 백손이가 유정이앞에 나섰다.
《불승이 년세가 넘즉했으나 솜씨는 여전하군.》
유정은 자기를 늘쌍 도사님이라고 곰살스럽게 존대하며 충의를 다해 따르던 백손이가 갑자기 생사를 판가리하는 이 마당에서 휘뜩 돌변하여 자기를 불승이라고 하대를 하며 표독스러운 기색으로 다가들자 어마지두 놀라났다.
《이 사람아, 이 웬 영문인가, 엉?》
그러자 백손이가 흥- 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미안하게 됐소, 로승, 여직껏 당신에게 나의 근본을 숨겨와서. 비록 때늦긴 했지만 진짜로 자기소개를 하겠소. 하긴 인제사 마지막결별을 할 때가 됐으니 더이상 숨박곡질할것두 없지. 난 쇼궁의 비밀호위원인 <비룡>이요.》
이렇게 이죽거리던 《비룡》이 먼저 불시에 갑판을 박차고 날아들며 급소타격을 해왔으나 유정은 그때까지도 차마 믿어지지 않아 망연히 그자리에
서서 줘맞기만 했다. 그러다가 숨이 꺽 막히며 눈앞이 아찔해지고 의식이 흐릿해져서야 백손이가 실지로 조선사신을 죽이려는 다나까네 패당과 한짝인
왜놈족속이라는걸 느끼고
유정이가 정신을 바싹 차려가지고 대항했으나 《비룡》의 격투솜씨는 여느 놈들과는 대비도 안되게 뛰여난지라 당하기가 조련치 않았다.
그자는 키가 넘는 높이의 허공을 휙- 휙- 조약하여 날아넘으며 공전, 옆전, 뒤전도 번개같이 하는데다가 기합술까지 쓰는 별호그대로 날아다니는 룡이나 한가지였다.
한창 혈기가 뻗치는 그놈이 법수 있게 내지르는 발길질, 주먹질을 막아내기에 급급하던 유정은 분기가 치밀어올라 씹어뱉았다.
《이 간특요사한 놈, 네놈이 그동안 내 간을 빼먹느라고 조선이주민으로 둔갑을 하여 호행원노릇을 했구나.》
《난 그동안 조선사신의 일거일동을 감시하여 쇼궁에게 통고하면서 동시에 사신신변에도 사달이 나지 않게 하여 조선과 일본의 통상체결이 튀지 않게 하라는 쇼궁사마의 특령을 실행했다.》
유정은 도꾸가와가 늘 자기와 상면할 때마다 조선사신일행의 움직임에 대해서 남달리 자상히 알고있고 또 언제나 여유가 작작한 태도로 배포유해서 대해주기에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게 여기긴 하면서도 그자가 자기의 비밀호위원까지 조선이주민으로 둔갑시켜 조선사신의 간을 뽑아먹을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기에 분노와 회오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컸다.
《쇼궁은 그래도 <도자마>들과는 달리 조선과의 통상을 추구하는것 같던데 어째서 그 밀정은 우릴 죽이자고 피를 물고 날개드는거냐?》
《어리석은 불승, 우리 쇼궁사마께서 <도자마>들을 제어하며 당신네를 유하게 돌봐준건 사신단의 환심을 사서 통상체결의 담보증서를 받아내기 위한 웅지였단 말이다. 쇼궁사마께선 그동안 일개국의 비천한 중한테서 당한 모욕에 대한 분풀이를 <도자마>들의 거사를 리용해 공해에서 사신행차를 수장시키는것으로 하는거다.》
《도꾸가와놈은 가또놈네보다 더 간악무쌍하고 단수가 높은 놈이였구나. 그놈을 벌하지 못하고 떠나온게 한스럽도다.》
너무도 기가 막히고 통분하여 장발수염을 화르륵 떨던 유정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수가 없어 《네놈을 징벌하는것으로써 도꾸가와놈에게 패배의 쓴맛을 보일테다.》 하고 부르짖고는 공중으로 장신의 몸을 날려들어가며 노기가 서린 주먹으로 《비룡》을 강타했다.
상판을 되게 줘맞은 《비룡》이 쓰러질듯이 한번 비틀하더니 인차 자세를 가누어잡고 피씩 웃으면서 맞받아 드잡이를 해댔다.
갑판우에서는 일본땅에서 소위 천하무적으로 일러오는 젊은 사무라이와 년로한 조선도승간에 서로 치고 받고 찌르고 막고 하는 생사결단의 격투가 굉장하게 벌어졌다. 어떻게 보면 청룡과 황룡이 휙휙 공중을 날아다니며 몸통을 와지끈 우지끈 부딪치면서 우뢰를 일으키는듯 했고 또 어떻게 보면 사자와 범이 땅에서 메치고 뒤치고 딩굴면서 물어뜯기를 하는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광경이 맹렬히 이어졌다.
바로 그러할 때에 히까리가 사신배에 올라 유정이를 도왔다.
《어쩐지 늘 이상하게 여겨지더니 역시 네가 <비룡>이였댔구나. 이제야 생각난다. 내가 언젠가 쇼궁저택에 들렸을 때에 피끗 본 네놈의 상통이. 그러니 난 너를 은페시키는 위장물노릇이나 해왔구나. 개같은 쇼궁떨거지들.》
번개치듯이 휘둘러지는 히까리의 법수 있는 칼질에 유정이를 꺼꾸러뜨리는데만 몰두하던 《비룡》이 잔등을 헤갈리우고 나쓰러졌다.
시뻘건 선지피가 콸콸 쏟아지는 잔등을 선체에 지리눌러대고 몽둥이찜질을 당한 개처럼 늘어져있던 《비룡》이 곧 정신을 차리고 이발을 으드득 갈며 일어나더니 와락 도포를 헤치고 제 몸뚱이에 휘감은 폭약쌈지의 심지에 불을 다는것이였다.
《군령을 살아서 실행 못하면 죽어서라도 실행하는것이 사무라이의 도의다.》
그놈이 어떤 흉심을 먹었는가를 직감한 유정은 《과연 악착하기가 그지없는 왜놈종자로군.》 이렇게 개탄을 하다가 벼락같이 날아들어가며 놈을 드세게 걷어차 배에서 떨궈버렸다.
《비룡》이 바다물에 첨벙 빠지는찰나에 쾅- 하고 폭발이 일어나며 놈의 육신이 갈가리 찢겨져 허공에 휘뿌려지고 목선도 위태롭게 뒤흔들렸다.
그때까지 눈이 휘둥그래가지고 그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던 사신일행과 사공들이 뒤바뀐 형세를 보고서야 신심이 생겨나 우야야 몰려들어 초죽음이 되였거나 정신이 얼쳐가지고 공포에 떨고있는 놈들을 겨끔내기로 지리밟아 죽살탕을 만들어버렸다.
놈들의 더러운 시체를 바다물에 모조리 내버린 후 유정은 사공들을 시켜 모든 배들을 횡대로 한곳에 모이도록 했다. 그러고는 구급대책을 취하기 위해 부상자들을 사신배로 옮겨오게끔 급령을 내렸다.
옆배에선 오팔이가 피투성이로 변하여 끙끙 신음을 지르는 낯모를 장정 둘을 량옆구리에 하나씩 껴안고 바줄사다리를 건너왔고 다른 배에서는 히까리와 다른 귀환자사내들이 놈들의 칼에 찔린 중상자들을 업거나 맞들고 건너왔다.
《피해자가 몇이나 되냐?》
유정이가 모두거리로 묻자 이 배에서는 서넛이 죽고 몇몇이 상하고 저 배에서는 네댓이 죽고 몇몇이 경중상을 당했다는 식의 대답이 잇달아 날아들었다.
한창 그러는데 뒤배에서 홍창해가 축 늘어진 계명을 안고 건너왔다.
어깨죽지와 잔등에 칼침을 맞은 장정들을 앉혀놓고 상처를 처치해주던 유정은 창해의 팔에 들려오는 계명을 보고 눈이 까뒤집히며 닁큼 놀랐다.
《야가 왜 이러느냐?》
그러자 홍창해는 눈물을 주르륵 떨구며 대꾸했다.
《놈들의 탄환에 어깨박죽을 상한데다가 또… 계명인 량팔을 다 잃었소이다.》
《?!》
유정은 또 한번 움쩍 놀라며 기척이 없이 늘어진 계명을 굽어살피다가 팔뚝이 끊기워 너덜거리는 두팔을 보고 부지불식간에 끄윽 신음을 지르며 소스라쳤다.
《어쩌다가 이런 변사를… 이 일을 어쩌문 좋을고?》
유정은 계명이가 처참하게 란도질을 당한것이 차마 믿어지지 않아 갑판에 반듯이 눕힌 그가 꼭 생시에 잠을 자는듯싶어 조심히 흔들어깨웠다.
《계명아!- 정신차려라. 얘야, 일어나거라.-》
이러다가 숨이 꺽 막히며 눈앞이 캄캄해져 털썩 선체에 상반신을 던졌다.
《내 동생아, 어서 눈을 좀 뜨렴. 내가 형구실을 쓰게 못해 널 이 지경이 되게 했구나.》
애절하게 부르짖으며 우뚝 뻗치고서서 주먹으로 연방 눈물을 훔치던 홍창해는 살이 터져 피가 흐르는것도 모르고 선체만 쾅쾅 내리쳤다.
자기가 맡은 배에 건너가 부상자들을 날라오던 히까리도 억이 막혀 굳어졌다가 량어깨를 후르르 떨며 눈물만 소리없이 흘리였다.
유정은 한쪽무릎을 세우며 다시 계명이곁에 다가앉아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그의 핼쑥해진 얼굴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금시라도 그가 눈을 뜨고 새물새물 웃으며 《스님, 소승이 없는 새에 신상에 별다른 일이 없었겠지요?》 하고 말할것만 같아 그 정다운 얼굴을 하염없이 들여다보았다. 기맥없이 내려덮인 눈거죽이며 파릿하니 피기가 없는 볼살을 어루더듬노라니 그가 20여년전 길가에 쓰러져 숨져가던 류랑아의 모습으로 뒤바뀌며 안겨왔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난 바위짬에서 나와 벌레를 잡아먹으며 자랐대요.》
그날에 들었던 처량한 말소리가 귀가에서 되살아울리면서 유정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다.
유정은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내가…》하며 뼈저린 회오를 금치 못하다가 계명의 처참하게 끊어져나간 피투성이의 팔뚝을 정신없이 어루더듬었다. 두팔이 무참하게 잘리운 그를 바로 눕혀놓고 긴급처치를 하려고 하니 언젠가 그가 정색해서 뇌이던 말이 피뜩 떠올랐다.
《소승의 이 손주먹은 스님을 위해 있는것이옵니다. 스님의 신변을 지키는 무기란 말이옵니다. 소승은 스님의 영원한 호행원이옵니다. 소승은 그 어느 누가 높은 벼슬자리를 주고 집과 재물을 주겠대도 절대로 안 가고 오직 스님곁에서 스님만을 수행하며 시중군노릇과 호행원구실을 하겠소이다. 스님께서 백살장수하신 후 세상을 떠나시면 스님의 신주를 지키는 상제구실도 하고요. 좋지요? 스님!》
(이눔아, 량팔이 다 없는 불구가 시중군노릇은 어떻게 하고 상제구실은 또 어떻게 하느냐? 어허허-)
유정은 너무도 기가 막혀 계명의 가슴팍에 눈물을 떨구며 그때까지도 피가 그냥 흐르고있는 계명의 상처를 구급처치했다.
바로 그러할 때 또 한 장정이 기신없이 축 늘어진 마광우를 업고 건너왔다.
잇달아 드닥치는 참혹한 광경에 유정이 재차 놀라며 《아니, 종사관은 왜 또 이러느냐?》 하고 물으니 귀환자중의 일원인 장정이 《그 악귀들이 총으로 쐈소이다.》 이렇게 꺼져드는 소리로 대꾸를 하면서 황망히 마광우를 갑판에 내려놓았다.
마광우는 탄환에 가슴팍을 정통 꿰뚫리여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태였는데 유정이가 저를 둘쳐안고 붕대를 감는 손길을 느꼈는지 한번 피끗이 간간스레 의식을 차렸다.
《이… 못난 놈도 총섭님처럼 옳게 살려고 했었는데… 왜놈들때문에 종내…》
이러다가 덜컥 숨이 넘어가는 그를 줴흔들면서 《이 사람, 광우-》하고 목놓아 부르던 유정은 절통한 심정을 금치 못해 피터지도록 입술을 짓깨물다가 의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는 반백의 장발수염을 화르르 흩날리며 음산한 구름장이 드리운 왜나라쪽을 노려보다가 피타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이 원쑤놈들아-》
가욱- 가욱-
갈매기들의 목갈린 울음소리가 상공에 메아리치고 격노한 파도가 철썩 처절썩 배전을 쳤다.
삐걱- 삐걱-
운명의 쪽배는 다시금 난파심한 대해를 헤쳐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