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한 하늘을 이고살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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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성과 그아래 해변가의 포구가 손금처럼 굽어보이는 바다가 산등의 암자에서는 청목스님이 이즈막에도 불도숙련과 환자치료에 전념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청목스님은 아무리 급하고 바쁜 일에 몰리여도 하루 두번 조석으로 승방 웃목의 단에 모신 불상을 마주하고앉아 정성스레 불공을 드리군 했다.
암자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물론 동려들과 제자승들까지도 적막한 산중에서 홀로 거처할지언정 하루도 번짐없이 불공에 전심하는 녀의승을 보며 그를 그저 독실한 불도인으로만 여겼지 그가 어찌하여 그리도 직심스럽게 불공을 하고 절절히 념불을 외우는지 그 내막까지는 알지를 못했다.
어느 한날 저녁녘인데 석양이 서쪽하늘가에 드리운 그 시각에도 암자안에서는 청목스님의 애절한 념불소리가 울려나오고있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하고 념불을 한동안이나 외우고나서 석존상을 우러르며 기원을 한다.
《하늘땅이 다하도록 빌고비오니 바다건너 왜국에 간 조선사신이 아수라들을 이겨내고 부디 성업을 이루도록 보살펴주옵소서.》
적막강산의 정적을 밀어치며 연방 이어지던 녀의승의 간간한 음성이 잦아들무렵 해빛이 방금 사위여진 수림너머의 산등아래쪽에서 《스님- 스님-》 하고 애젊은 녀자의 웨침소리가 울리더니 골안 오솔길로 스물대여섯살쯤 나보이는 젊은 녀승 하나가 잔등에 걸멘 바랑을 달싹이며 올라왔다. 그는 중낮때 생활용품을 얻으려고 성안 저자거리에 내려갔다가 돌아오는 봉림이였다.
웬 급한 일이라도 생겼는지 종주먹을 부르쥐고 반달음쳐와 암자뜨락에 들어선 봉림은 냉큼 퇴돌을 뛰여올라 기척도 없이 미닫이문을 제끼며 안에 대고 소리부터 쳤다.
《스님- 희소식이와요!》
방금 불공을 끝내고 상을 치우던 송희령은 평시에 얌전스럽던 제자승이 오늘은 왜 이리도 덤벼치는가 하며 언짢은 눈으로 내다보다가 희소식이라는 소리에 기색이 느긋해져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 애, 숨넘어갈라. 생뚱같이 희소식이라는건 또 뭐냐?》
《왜땅에 건너갔던 사신행차가 돌아온다 하옵니다. 송운대사님께서 왜왕을 항복시키고 전쟁때 끌려갔던 수많은 조선사람들과 진귀한 물건들을 되찾아온다 하옵니다. 글쎄 그분께서 왜왕에게서 조공까지 받아온다 하옵니다.》
《그게 적실하냐?》
《아유, 스님은 태평도 하시네. 지금 그 일로 해 부산일판이 막 끓고있사온데 적실이란게 다 뭐나이까.》
봉림이가 애가 발발 끓어하는것을 보고야 그의 말이 실지임을 안 송희령은 량손을 가슴팍에 모두어올리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드디여 그분께서 성사하셨구나!》
송희령은 반가움과 환희가 뒤섞이며 북받치여 자리에서 움쭉 일어나다가 갑자기 현훈증이 일어나는 바람에 넘어질듯 휘청거렸다.
그 모양을 본 봉림이가 냉큼 뛰여들어와 스님을 부축했다.
문설주에 기대여 잠간 진정하며 몸균형을 바로잡은 송희령은 끓어넘치는 기쁨을 금할수 없어 승방밖으로 나왔다.
축축히 젖어오르던 송희령의 눈굽에서 뜨거운것이 샘솟아 흘러내렸다. 속을 태우며 일각이 여삼추로 기다리던 송운대사님이 드디여 성업을 이루고 무사히 돌아온다는 소식은 석달장마끝에 해를 본것만치나 반갑고도 기쁘기가 그지없는것이였으나 왜서인지 정작 듣고나니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져내렸다.
송희령은 그때 왜나라 본국에까지 건너갔다가 유정의 억지떠밀림에 의해 되돌아온후 가슴아프게도 조정으로부터 곡해를 당하는 그의 죄명을 벗겨주기 위해 한성에 올라가 국왕까지 만나며 애를 썼고 또 그후엔 그가 무사해서 성업을 이룩하고 돌아오기를 일일천추로 기다려왔었다.
헌데 그토록 송희령의 애간장을 태우던 장본인이고 련인인 송운대사가 대업을 이루고 승전고를 울리며 금의환향을 한다는 소식을 받은것이다.
송희령은 격랑치는 심정을 걷잡을수가 없어 암자뜨락을 벗어나 바다와 이마를 맞대인 산코숭이벼랑쪽으로 종종걸음쳐갔다.
그는 아찔하니 높은 벼랑우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서서 마파람을 맞아 쉬임없이 출렁이는 검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석양을 떠이고 아득히 펼쳐진 바다의 길길이 치솟아 뒤번지는 물마루로 목선 한척이 날듯이 달려오는데 그우에서는 반백의 긴 수염발과 장삼자락을 훨훨 날리며 유정이가 우뚝 서서 송희령을 향해 손을 높이 쳐들어 흔들고있었다.
시야에서 언뜻 흘러지나는 환영이였으나 희령은 반기며 달려가 련인의 품에 안기는 심정이 되여 눈굽을 훔치면서 속삭였다.
《끝내 성사하셨군요. 송운대사님!》
송희령이가 왜국에 건너간 유정이가 살아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한것은 그가 단순히 자기가 사모하는 련인이여서가 아니라 그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도 아낌없이 바치며 분골쇄신을 하는 충의지사였기때문이다. 그러기에 희령은 력사에 드문 그 충의지사가 하루빨리 돌아와 조국의 품에 안겨 복락을 누리기를 기다렸었다.
어느덧 석양마저 꺼지고 하늘도 땅도 바다도 온통 어둠에 휩싸였건만 희령은 그런줄도 모르고 밑둥박힌듯이 서있다가 등뒤에서 《스님, 날이 저물었나이다.》 하고 나직이 귀띔하는 말소리가 나서야 문득 현실로 돌아왔다.
뒤를 돌아보니 언제 따라나왔는지 봉림이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서있었다.
송희령은 자기한테 기쁜 소식을 날라온 봉림을 대견하게 여겨보다가 그의 둥실한 어깨에 한팔을 얹으며 애정스럽게 뇌였다.
《네가 오늘 정말 큰일을 했다. 사신행차가 돌아온단 말이지! 난 무상히도 기쁘구나. 아니, 나뿐이 아니라 이 나라의 만백성이 다 기쁠게다. 만고에 드문 사변이니까. 얘야, 이밤으로 차비를 하자. 포구에 미리 나가 사신행차를 마중해야 할게 아니냐. 그분네들이나 만나보고나서 다시 가야산으로 돌아가야겠다.》
송희령은 자기가 이날껏 이곳 암자에 옮겨와 산설고 물설은 생활을 해온 목적이 바이 이루어진지라 본거처지로 되돌아갈 작정을 한것이다.
이튿날 이른아침을 치르고나서 송희령이네는 행장을 갖춰가지고 부산포로 향했다.
그날 정오때쯤에 사신일행과 귀한자들과 물품들을 실은 배가 도착하게 되여있는지라 그들을 마중나온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포구가 메이도록 모여들어 붐비고있었다.
개중에는 조정에서 내려온 품계높은 관리도 있었고 부산진첨사가 거느리는 지방관료들도 있었고 평시에 송운대사와 우의가 두터웠던 량반유생들, 도승들, 평민들 등의 각이한 계층의 사람들도 있었고 린근의 주민들도 있었고 귀한자들과 혈육관계인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그들속에 끼인 송희령은 여기저기 주고받는 송운대사에 대한 찬사의 대화를 귀결에 들으며 천하명인을 련인으로 가지고있는
그러다가 사신행차의 배가 부산포에 도착하게 된 예정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무아경에서 벗어나 차츰 긴장해지며 바다쪽에 초조한 시선을 보냈다.
《이거 웬 변이 생긴게 아니요?》
《분명코 사달이 났쉐다. 그러지 않으면야 날샐녘에 떠나기로 했다는 배가 이렇게두 못 올리가 있겠소.》
사람들이 바람맞은 숲처럼 술렁거리며 불안해서 쯔시마쪽의 아득한 수평선만 눈빠지도록 지켜보았다.
물새들이 애타는 소리로 각- 각- 각- 우짖으며 부산스럽게 날아예는 그곳 상공에서는 불상스러운 원기가 서린 먹장구름이 음산하게 떠돌고있었다.
가욱- 가욱-
저 멀리 바다너머에서 부산포로 딩굴듯이 날아온 갈매기들이 그 어떤 긴박한 사연을 전하려는지 목터지는 울음소리를 연해연방 질러댔다.
《아무래도 조짐이 불상스럽다.》
전립에 천릭차림을 하고 군교와 사령들을 거느리고 사신행차를 마중나왔던 부산진첨사가 불안을 금치 못해하다가 급급히 수하권관에게 군사 수십명을 붙여 전함에 태워 앞바다로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