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한 하늘을 이고살수 없다
3
십수명의 조선사신일행과 수천명의 귀환자들과 수백수레분의 화물들을 실은 여러척의 목선들은 나고야항을 떠나 이튿날 한낮때 쯔시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이제 며칠 묵으면서 목선들도 교체할건 교체하고 정비할건 정비하고 노군들도 쯔시마관아 인원들로 바꾸고 화물도 지키면서 현해탄을 건너갈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가 바람새 좋은 날을 택해 조선으로 건너가야 했다.
조선과 일본 이 두 나라의 통상을 중간에서 성사시킨것으로 하여 새막부의 신망을 얻고 상금까지 듬뿍 받은데다가 매해 량국의 교류를 중계하는 과정에 폭리를 보게 되여 사뭇 흡족해진 요시또모도주는 제 부하들을 처느리고 포구에까지 나와 유정이네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요시또모는 관청의 관원들과 관노들을 내몰아 조선사신일행은 물론
숱한 귀환자들까지도 생활조건이 제대로 구비된 숙소에 들이고 푸짐히 먹이도록 했다.
초저녁때에 재판과 새 봉행을 거느리고 사신숙소를 방문한 요시또모는 유정이앞에 외뿔머리를 갑삭거리면서 곁의 사람들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알랑거렸다.
《도승같은 명인을 재차 관아에 모신것은 소관의 다시없을 행운인줄로 아옵니다.》
유정은 그 아첨이 눈에 시리고 귀에 간지러웠으나 여하튼간에 왜국의 작지 않은 도주가 조선의 일개 중에게 굽신거리는 꼴이 흡족하여 장 발수염을 슬슬 내려쓸면서 혼연스럽게 대척했다.
《허허, 이 하찮은 걸숭한테는 과찬이옵니다. 참, 일전에 교또에서
돌려보낸 녀의승은 무고히 건너보냈소이까?》
《여부가 있겠소이까. 재판이 직접 부산포까지 실어다주고 왔소이
다.》
송희령이가 무사히 조국으로 돌아갔다는것을 안 유정은 한결 근심이
놓였다. 그때 야밤중에 랑화강나루터에서 련인을 억지로 쪽배에 태워
떠나보낸 후 그의 생사를 두고 혼자 속으로 애를 태워온 유정이였다.
헌데 가슴안에 다북이 쌓여 숨을 막히게 하던 그 근심덩이를 털어버리
고나니 마음이 다 개운해졌다.
《역시 도주는 의리가 있는 사내옵니다. 이번에 가는 길에 쯔시마에
·와있던 조선사람들을 데려가려고 하는데 몇명이나 내놓겠소이까?》
《도승께서 본토로 떠나면서 남긴 분부를 받들고 소관이 곳곳의 관사
와 가택들을 조사하여 삼백마흔사람을 선출해놓았소이다.》
《음, 삼백마혼명이라…》
유정은 도주의 선행이 마음에 들어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러니 일본
본토의 각곳에서 된찾아오는 동포들까지 합치면 수천수백명이다. 결코
적다고 할수 없는 인원이다. 아직 개개이 찾아내여 데려오지 못한 동
포들에 대, 한 생각으로 해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으나 그 수천수백명
의 동포들이라도 조국으로 데려가 혈육과 만나게 해주고 고향집뜨락을
밟게 해준다고 생각하니 다소간이나마 숨이 나갔다.
《도주의 각근한 성의를 보아 내 조국에 돌아가 상감께 장계를 올릴
때 쯔시마에 돌리는 사세미량을 늘이도록 하겠소이다.》
유정이가 진담으로 내비친 그 말 한마디에 요시또모의 입이 대뜸 헤 벌어졌다.
보다 부하고 흥해질 앞날에 대한 생각으로 하여 속이 더없이 흐뭇해진 요시또모는 관사 대청안에 수하관원들을 모아놓고 밤늦도록 잔치판 올 벌렸다,
하늘에 명운이 닿아 기껏 장성하는 저희 가문의 복을 속으로 주절주 절 빌며 술을 사발들이로 취하도록 퍼마시던 요시또모는 자정이 넘어서야 저택으로 돌아와 통기가 잘되는 시원한 다락방에서 네활개를 펴고 단잠에 들었다.
별들도 잠에 취해 깜박거리고 삼라만상이 어둠과 정적에 잠겨버린 축시(1시-3시)경에 요시또모는 갑자기 모가지가 선뜩하는 느낌에 놀라 잠을 깨였다.
복면을 쓴 어떤 괴한이 머리맡에 서서 단검을 내뻗치고있는 형체가 어스무레한 달빛에 드러난것이 희뜩 보였다.
요시또모는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누…누구냐?》
《염라대왕님이 보낸 지옥사자다.》
괴한은 단검을 쑥 요시또모의 목살에 들이대며 제 품안에 둘둘 말아 넣었던 종이장을 꺼내 펼쳐보였다.
《그…그건 뭐-요?》
《나의 신분을 보증하는 막부의 인장이다.》
그 말을 듣고 요시또모가 정신을 도사려 들여다보니 네모진 인장이 주먹같이 찍혀진것이 희미하게 안겨왔다. 실지는 갑작스레 당한 변에 혼이 들락날락하는지라 거무스레한 그 먹물혼적이 인장으로 여겨지고 또한 일개 소왕국의 도주를 짓뭉갤 정도로 도담한자이면 막부의 권력 올 등에 업은자가 분명할것이니 막부의 령을 받았을것이라고 인식됐올 뿐이였다.
《나한테 무…무엇을 요…요구하는거요?》
《래일 낮에 배군들을 교체할 때 내가 데리고온 사람들도 상선시키라.》
《그건 어째 그러는거요?》
《바로 우리 일본의 리익을 위해서시.》
이런 소리를 통명스럽게 내뱉는 괴한의 말투와 거동에선 살기가 풍겼다.
그자가 잠간 숨을 돌리고나서 악종이 내뻗친 소리로 일본의것을 사정없이 걷어가지고 가는 조선놈들을 고스란히 살려보낼수야 없잖은가고 내뱉는 말을 듣고 요시또모는 속이 후두둑 뛰였다.
이크- 큰일났구나 하며 요시또모는 가슴을 움켜안았다.
막부의 령장을 지닌 괴한이 끔찍스러운 살인음모를 꾸민다는것을 안 요시또모는 쇠방망이에 되게 줘맞기라도 한듯 얼뻥해졌다.
《쇼궁께선 예껏 조선과의 통상정책을 실사해오셨는데 어이하여 급작스레 내심이 달라져 조선사신을 몰살시키려 하시는거요? 이곳 쯔시 마부틴 본관이 조선사신행차의 안전을 떠맡았는데 이제 크고작은 참사가 생기면 모든 추궁이 본관한테 들씌워진단 말이요.》
《통상은 웬 말라빠진 통상이야?- 홍, 아무때든 조선을 통채로 먹어치우는것이 일본의 영구불변할 시책인줄이나 알아. 이건 현재 가또 군장님을 비롯한 어르신들의 응지란 말이다. 그걸 거역했다간 너의 온가문이 멸족지화를 피치 못한다는걸 명심하라.》
괴한은 이렇게 으름장을 놓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요시또모는 그때부터 귀신의 손바닥안에 들어 한바탕 휘돌림을 당한것처럼 정신이 휘지해져 옹노에 걸린 산짐승같이 낑낑 앓음소리를 내며 장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동이 틀녘에 너무 골머리가 우직거려 강주를 둬사발 퍼마시고야 다소나마
소금기를 안은 해풍이 설렁설렁 불어치는 포구의 물면엔 크고작은 목선들이 한벌 꽉 덮이고 부두와 잔교에선 귀국길에 오른 각양각색의 숱한 조선사람들이 앉거나 서거나 다니거나 끼리끼리 모여들어 떠들거나 하면서 붐비고있었다.
요시또모의 관할하에 있는 관원들과 장수들이 그 복잡틈새를 헤집고 다니며 왝왝거리면서 수송선준비작업도 지휘하고 조선사신행차를 부산 포에까지 날라갈 배군들도 새로 선정해 교체시키고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관노들을 시켜 풍랑에 대처할수 있게끔 화물들도 고쳐쌓고있었다.
잔교에서 어슬렁거리던 스무나문명의 낯선 젊은이들이 요시또모를 이상야릇한 태도로 맞아주었다.
그들중에서도 첫눈에도 체격이 거클지고 성깔사나와보이는 럽석부리가 요시또모에게로 걱석걱석 다가와 죤마께를 한 머리통을 굽석 수그리며 말을 건네는것이였다.
《도노사마, 소인네들이 놋대를 잡아도 일없겠소이까?》
거만방자하면서도 시까스름이 다분한 그자의 말투에 신경이 거슬려 단매에 칼을 뽑아 일도량단해치우려던 요시또모는 그 음성이 어딘가 모르게 귀에 익어 주춤거렸다.
분명 지난 밤중에 저택에 뛰여들어 자기를 위협공갈하던 그 《지옥사자》 의 목소리였기때문이다.
요시또모는 자연히 머리칼이 곤두서며 이발을 갈았다.
본토에서 건너온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한다? 이런 궁리를 한찰나 심각해서 뒤굴리던 요시또모는 나고야에서부터 조선사신행차를 뒤쫓아온 자객이 분명한 이자들이 막부의 승낙없이 감히 이런 어벌찬 거사를 벌리지 않을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자기가 한걸음 양보하기로 작정했다.
이랬든저랬든간에 지금 당장은 이 《지옥사자》 네 패당의 요구를 들어주는게 상책일것 같았다. 그러지 않다간 아차하는 순간에 전문 싸움판에서 딩굴어먹은 사무라이들이 분명한 이자들의 칼이 무더기로 자기 숨통을 꿰찌를수 있었기때문이다.
시또모는 조선사신행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맡아 주관하는 봉행을 호출하여 《이 젊은이들이 힘깨나 쓰게 생긴데다가 바다물계에도 미립이 틔였다니 배군으로 올려 노를 잡게 하라-》 이렇게 지령을 내리고는 황망히 부두를 떠났다.
그런데 보기만 해도 등골이 으쓱해지는 《지옥사자》 가 몇걸음 따라오며 요시또모의 귀가까이 대고 《지난밤에도 말했지만 도주님은
자기네를 떠나보내놓고 돌아앉아 딴꿍꿍이를 하지 말라는 암시 ~ 였다.
요시또모는 속이 괜히 싱숭생승해져 발내키는대로 해풍세찬 바다가를 정처없이 걸었다.
숨막히는 불안속에 이 궁리 저 궁리를 이어가던 요시또모는 이제라도 결단을 내려 《지옥사자》 네 패당들을 요정내버릴가 하다가 그건 제 눈을 스스로 찌르는 경망한 처사같아 단념했다. 괜히 서뿔리 놀다가 《지옥사자》 네를 이곳에로 급파한 상전에 의해 저희 가문이 멸족지화를 당하고 이날껏 대를 이어오며 피로써 마련하고 축적해온 권세와 재부마저도 잃을수 있었기때문이다
그러자 자기가 새 막부에도 잘 보이고 또 제 치부를 위해 지금껏 조선사신들을 이끌어오고 접대하고 떠나보내며 애써 억눌러참았던 자존심과 오감이 꿈를 되살아났다.
옛적부터 대를 물려오며 이 요시또모의 가문이 일구월심 갈망하며 피흘려 추구해온것이 무엇이였던가. 조선의 옥토삼천리와 근면한 백성들을 통채로 우리 가문의것으로 만드는게 아니였던가.
생각이 예까지 흐르자 느닷없이 조선을 타고앉는것은 일본의 변함없는 시책이라던 《지옥사자》 의 말이 새로운 의미를 띠고 상기됐다.
(옳다, 그게 지당한 일이다. )
요시또모는 비로소 자기의 몸에도 일본사람의 피가 흐르고있다는것 올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로부터 사나훌이 지나 바람새 좋은 날이 되여 조선사신일행은 바다신, 해신에게 제를 지내는 의식을 치론 후 수십척의 배를 띄워 쯔시마를 떠났다.
부두의 언덕진 곳에 밑둥박힌 장승처럼 서서 줄줄이 포구를 벗어나 망망대해로 멀어져가는 덩지 큰 목선들을 허무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요시 또모는 휘청거리며 양지바른 산기슭에 웅좌를 튼 저택으로 향했다. 그는 곧장 본채 뒤뜰에 L자로 틀어박힌 으슥한 골방안으로 들어가 조상들의 위패와 가문이 대대로 우상해온 신령들의 화상을 마주하고앉았다.
《여러 권현수신들과 춘일대명신, 탈번대보살, 대방랑, 소방랑 등의 존귀하신 천신들은
요시또모는 응얼웅얼 넉두리를 늘어대며 두손바닥이 닳아빠지도록 비벼대다가 별안간에 골머리가 횡해지면서 넋살이 빠지는통에 미친놈 처럼 소래기를 질렀다
《싹 다 죽어라- 낮도깨비같은 고마놈들도 죽고 밤도깨비같은 그 본
토놈들도 콱 다 썩어자빠져 물귀신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