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한 하늘을 이고살수 없다

2

 

나고야항을 우묵지게 감싸안으며 남북으로 쌍가닥쳐 뻗은 동쪽 산코숭이 중턱근처에 그리 요란치 않은 절간 하나가 자리틀고있었다.

해풍에 뒤설레는 송림속에서 외톨로 검푸른 지붕을 솟구고 매일 조중석으로 범종소리를 올려대는 그 사당은 해상에 나서는 행객들이 출항을 앞두고 기풍제를 지내는 장소였다.

나고야부두에서 쯔시마를 거쳐 조선으로 건너갈 선박들이 한창 상선을 다그치던무렵에 그 사당의 뜨락에서는 싯누런 법의를 지엄스럽게 차려입은 고령의 법사가 낯색이 침침히 흐려가지고 자못 불안스러운 태도로 서성거리고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남선사의 시나지로태장로였다.

시나지로는 엊그제 낯모를 사무라이들한테 강압을 당하며 마차에 실려 이곳 나고야로 왔었다.

그날 어뜩새벽에 가또태수의 손발노릇을 하는 요시하찌가 느닷없이 한무리의 사무라이들을 거느리고 남선사에 나타났었다.

요시하찌는 곧장 시나지로의 방부터 찾아들어와 강요하는것이였다.

《로승, 수고스러운대로 우리와 함께 나고야에로 좀 가야겠소.》

번번이 만날 때마다 태장로님이라고 공경스럽게 개여올리던 요시하찌가 전과 다르게 첫마디부터 반말을 쓰며 접어드는 바람에 심사가 삐쭉해진 시나지로는 그한테 밑도 끝도 없이 아침부터 웬 생소리냐며 한바탕 후려댔다.

그래서야 한층 기가 숙어든 요시하찌는 곰살궂어져서 조선사신행차가 본토를 떠나기 앞서 망궐례와 기풍제를 지내니 이웃나라사절이 벌리는 의례를 본토에서 고명도사로 공인된 로스님이 직접 가서 주관해야 마땅하겠기에 이런다고 사유를 터놓았다.

시나지로는 불단의 관록있는 도승답게 그 요살스러운 청탁에 눈섭 한오리 까딱 안했다.

《그쯤한 의례식이야 그곳 사당의 법승들도 주관할수가 있는데 구태여 이 쇠진한 늙은이를 수백리 험로에 내세우려 하는고?》

시나지로가 성이 나서 침을 내뱉았건만 요시하찌는 숙어들긴 고사하고 한수 더 뜨며 접어드는것이였다.

《사실 말해 태장로님이야 조선사신인 그 수염쟁이도승의 옛 제자가 아니웨까. 한지붕아래서 한가마밥을 먹으며 도수를 시켜준 선사님이 다시 만날수 없는 길을 떠나는데 가서 배웅해주는게 도의상 옳지 않소이까.》

시나지로는 자기와 유정의 연고관계까지 거들면서 기어코 자기를 나고야로 끌고가려는 그자의 처사가 께름하게 여겨져 더 외뿔지게 고집을 세우며 그의 요구를 뿌리쳤다.

그러자 요시하찌가 낯색이 희뜩 돌변하더니 험상하게 나오는것이였다.

《로승, 당신도 본국의 일원이란 말이요. 당신의 나고야행은 우리 일본의 리익을 지켜내는데 절실히 소용되는 걸음이니 싫든좋든 기어코 실행돼야 하오.》

이러고난 요시하찌가 밖에 대고 뭐라고 한소래기 줴치자 제창 두억시니같은 사무라이 대여섯이 쓸어들어왔다.

그자들의 무지막지한 발길질, 주먹질에 떠박질리여 시나지로는 생활비품을 대충 바랑안에 꿍져가지고 밖으로 나섰다.

팔십고령인 시나지로가 수백리의 장거리로상에서 지쳐 잘못될가봐 우려되였는지 요시하찌는 젊은 불목하니 하나를 시중군으로 붙이도록했다.

시나지로는 대사찰의 수많은 사미들중에서 그중 믿음이 가고 정이 통하는 고달쇠를 기약할수 없는 험로의 동행자로 삼았다.

그날 늦아침때 둘은 요시하찌네가 몰고온 마차에 실려 남선사를 떠나 수백리길을 줄창 달려 나고야로 왔었다.

요시하찌네 패당들은 포구를 지척에 둔 이곳 사당에 시나지로네를 부리워놓은 후에도 그들의 주변을 눈에 띄우지 않게 감돌면서 잠시도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시나지로는 뒤늦게야 가또네 부하들이 조선사신인 유정이와 사제관계인 자기를 미끼로 하여 조선사신들을 사당으로 유인해다가 어째보려고 한다는것을 낌새채고 심기가 불안스러워졌다.

그는 참혹한 무리살생이 일어날것 같아 가슴을 조이면서 속으로 제발 조선사신일행이 사당에 오지 말았으면 하고 빌었다.

그 절절한 소망이 구천에 사무치여 부처님이 조선사신에게 어떤 계시라도 내렸는지 천만다행스럽게도 그들이 망궐례와 기풍제를 쯔시마에서 통몰아 지내겠다면서 나고야에서는 의례를 걷어치웠다는것이였다.

그렇다 하여 가또네 부하들의 살생음모가 끝날리가 만무했다.

오늘 중낮때 소풍을 하느라 사당주변의 산둔덕에 나왔던 시나지로는 불량스러운 괴한 두엇이 어떤 꾸레미를 안고 포구와 지척인 산코숭이 벼랑쪽으로 가며 수군덕대는 소리를 우연히 엿들었다.

《망해자빠질 고마놈때문에 우리만 썩어지도록 고생하지 않나.》

《그 수염쟁이중놈이 천신갈은 명물일세. 제를 지낼 때 우리가 사당을 폭파하려는걸 어떻게 알고 이곳엘 오지 않았는가 말이여.》

《흥, 제아무리 천신이래두 이번엔 영낙없는 고두레뽕일세. 항구를 빠져나가려면 반드시 저 벼랑밑 수로를 지나야 할텐데 그때 꽝 해치우면 쏟아지는 돌벼락을 피할수가 없는기라 배도 사람도 물건짝도 전탕 물귀신이 되고말걸세. 헌즉 천신은 바로 우리 태수님이거던.》

비로소 가또네 부하들의 악독스러운 기도를 말짱 알게 된 시나지로는 후두둑 치를 떨었다.

그는 한뉘 부처님의 자비로운 뜻을 받들어온 불도승으로서 아수라들의 살생만행을 묵인할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참혹한 재난을 당할 대상이 다름아닌 유정이가 거느리는 조선사신일행이여서 그의 우려와 걱정은 류달랐다.

시나지로는 조선사신으로 일본에 나타난 유정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제 나라, 제 사람들만을 우선시하면서 일본인들을 덮어놓고 타매하는것을 보고 부처님의 광휘롭고 자비로운 뜻과는 대치되게 나라들간의 질시와 분쟁만을 추구한다고 고깝게 여겼었다. 지어는 반감까지 생겨 사제간의 연고까지도 무시해버리고 그를 비속한 파계승으로 경멸했었다. 그러다가 광륭사를 다녀오는 길에 호꼬꾸진쟈근처의 귀무덤앞에서 일본군사들이 임진조국전쟁때 저지른 살인강탈행위를 절규하던 유정의 호된 부르짖음을 당하고나서야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었다. 그때부터 시나지로는 예전과는 다른 안목으로 주변생활을 뜯어살폈고 여태껏 철칙으로 여겨온 경문도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을 했었다.

가슴이 활랑거려 황황히 사당으로 되들어온 시나지로는 고달쇠를 외딴 곳으로 이끌고가 다짜고짜 숨가쁜소리로 이제 곧 조선사신행차가 뜨는 부두로 가서 송운대사를 만나라고 일렀다. 그리고는 송운대사에게 전달할 여사모사한 내막들을 얼추 까밝혀주었다. 그런 후 심각하게 오금을 박았다.

《그 소임을 다한 후 넌 사신행차와 동행해 조선으로 가거라.》

그 소리에 고달쇠는 크게 놀라며 한길이나 뛰였다.

《예?! 스님, 건 웬 말씀이옵니까?》

《너의 고국으로 돌아가란 말이다. 뒤늦게나마 근본을 되찾으라는거다. 넌 아직 한창때니 이제라도 태를 묻은 조상의 나라에 가서 복되게 살아가거라.》

《그… 그럼 스님은 어찌하옵니까?》

《나야 원래 일본태생인데다가 또한 이제는 다 산 고목이니 더이상 관심을 말거라.》

이러고난 시나지로는 제 손으로 고달쇠의 사품을 바랑안에 넣어가지고 와 그의 잔등에 지워주면서 어서 떠나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고달쇠는 어쩔바를 모르고 허둥거리다가 별안간에 《스님- 어흐윽-》 하더니 시나지로앞에 무릎을 꿇고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부산성밖의 길거리에 버려졌던 피덩이같은 자기를 장삼속에 품안고 일본으로 건너와 장장 수십년세월을 애중히 먹여주고 입혀주면서 보호해준 로스님을 험지에 홀로 두고 저만 혼자 차마 갈수가 없었던것이다.

오열로 인해 세차게 떨리는 고달쇠의 어깨를 측은히 쓰다듬던 시나지로는 회오에 절은 소리로 웅절거렸다.

《너를 그때 부산성문밖에 그냥 뒀더라면 운명이 달리 될수도 있었는데 내가 괜하니 널 일본으로 업어왔는가부다. 야하고 살찬 이 땅에선 제아무리 불도를 수련해 보살이 된다 해도 결코 복될수가 없느니라. 그러하니 사람들이 원체 의롭고 선량하고 성실한 조선에 건너가 후반생이나마 인간답게 살거라. 사신행차를 놓치면 영영 기회가 없을테니 그리 알고 날래 떠나거라.》

시나지로는 고달쇠를 억지로 일으켜세워 괴한들의 감시가 덜미치는 뒤울담쪽으로 이끌고가 그를 떠받쳐 넘겨보냈다.

고달쇠가 뒤산 송림속으로 자취를 감춘지 반나절이 됐을가말가 하는 때에 군마를 탄 막부군사 여럿이 사당으로 들이닥쳤다.

막부군사들은 사당에서 어물거리던 가또네 부하 두어놈을 덮쳐잡아 초벌죽음을 시키더니 그자들을 앞세우고 다니면서 사당안과 산코숭이 벼랑중턱에 장약하고 발파심지까지 늘였던 폭약꾸레미들을 들춰내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조선사신일행과 귀환자들과 화물을 실은 거대한 목선들이 포구를 빠져 날바다로 나설 때까지 사방을 감시하며 지켜서있었다.

막부군사들은 신시 초경(오후 3시)쯤에야 이미 포박했던 괴한들을 말잔등에 처실어가지고 떠나갔다.

그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인차 가또태수가 가병대장을 비롯하여 우악지게 생긴 사무라이 여렷을 꽁무니에 달고 절에 나타났다.

법당의 앞단에 정중히 좌선시킨 석가불상앞에서 향불을 지펴놓고앉아 천천히 목탁을 두드리면서 근간에 이르러 선과 악의 소용돌이속에서 다난다망하게 번져진 자신의 여생을 불문에 비해보며 념불을 외우고있던 시나지로는 험악한 기세로 뛰쳐드는 가또네 패당을 띄여보고 진절머리를 떨었다.

갖신을 신은 우락진 발통으로 널마루바닥을 뚜걱뚜걱 울리며 시나지로곁으로 다가선 가또가 비단도포의 중둥허리를 두른 굵은 오비에 찼던 쌍날검을 뽑아 꾹 벋짚고 서서 이죽거렸다.

《로망이 과히 심하시구려. 우리 애들은 그래도 로승의 쇠진해진 몸조리를 걱정해 혈기방장한 불목하니까지 동행시켜줬는데 그 선심을 악용하여 시중군녀석을 시켜 조선사신한테 우리의 거사내막까지 말짱 통고했으니 이런 배은망덕한 처사가 어디 있나 말이요?》

그 가시돋친 말이 귀에 거슬려 시나지로는 부처를 향해 읍했던 상체를 돌리며 가또를 힐끗 쏴봤다.

《자비는 불도의 근본리념이고 그때문에 교도들은 살생금지를 첫째 계률로 삼은 사람들이요. 하기에 난 불도승의 일원으로서 불법을 따랐을뿐이요.》

그 덜퉁한 대꾸를 쓰겁게 여겨듣던 가또가 이발을 으드득 갈았다.

《가소롭소, 로승. 당신은 불도승이기 전에 먼저 일본인이요. 일본인이 우리 일본을 망하게 만들려고 날쳐대는 조선사신을 제압할대신 되려 암암리에 도움을 줬으니 이런 한심한짓이 또 어디 있는가 말이요. 당신은 조선사신과의 옛 연고와 쓸데없는 자비심에 눈이 어두워 본의 아니게도 일본의 번영과 일본민족의 리익에 막심한 해를 주었소. 하여 로승 당신은 죽음으로써 그 값을 치르어야 하오.》

자기의 신상에 불의지변이 닥쳐왔음을 직감한 시나지로는 석가불상을 향해 바로 돌아앉으며 합장배례를 했다.

《나무아미타불.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천지신명에 능통하신 지장보살님, 덕망이 하해같으신 관음보살님, 아수라의 살기가 불당과 불도승에게 뻗쳐왔으니 굽어살펴주솝사-》

이러다가 가또한테 등을 돌려랜채로 쓰겁게 내뱉았다.

《태수는 평시에 모사엔도승을 극진히도 숭상해오지 않았는가? 모사엔의 리념자체가 너와 나라는 구별과 계선을 없애고 분파와 분파, 나라와 나라들이 화합하여 큰 하나를 만들자는것이였는데 어째서 태수는 그와는 대치되게 일본의 리익만을 추구하면서 조선을 침범하고 조선인들을 멸살하기 위해 피를 물고 날뛰는고?》

《나의 변함없는 정신적지주인 모사엔스님의 웅건한 뜻은 전세계를 일본을 위주로 하는 큰 하나를 이루는것이였소. 헌데 로승은 조선과 일본이 동등하게 어불리는 하나론에로 치우쳐 본의아니게 우리 일본의 번성과 강병에 방해를 놀았단 말이요. 하여 난 나라의 번영을 위해 당신같은 걸림돌들과 방해물들을 단호히 없애버리기로 결심했소. 이건 모사엔스님이 계시해준 결단이기도 하오.》

악에 치받친 그 씨벌임이 끝남과 동시에 시나지로의 구부린 잔등에 쌍날검이 쿡 들이박혔다.

《음-》

입술을 짓깨물고 신음을 삼키던 시나지로는 극악한 아수라를 절규하다가 선지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가또네 일당은 사당에 불까지 질러놓고야 어지간히 직성이 풀려 그곳을 떠나버렸다.

정신을 잃은채 간간이 마지막숨을 몰아쉬던 시나지로는 뜨겁고도 매캐한 화염내에 얼핏 의식이 들어 란무장으로 변한 법당안을 둘러살폈다.

시뻘건 불타래와 매연에 휩싸이는 석가상을 망연히 바라보는 시나지로의 귀가에는 언젠가 들었던 유정의 준절한 웨침소리가 되울려왔다.

《니찌렌숭배자들이 주창하는 큰 하나론은 주변 나라와 타국인들을 집어삼키고 지배하려는 아수라들의 야심이니 그에 휘말려서는 아니되오. 태장로가 진정한 불도승으로서 부처님의 자비의 뜻을 옳게 받들려면 그 사악스러운 야심에서 헤여나야 하오. 그러지 않다간 제자신의 운명조차도 보존할수가 없소.》

《송운선사, 그대가 옳았소이다.》

시나지로는 유정이가 마치 제앞에 있기라도 하듯 꺼져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절거렸다. 세상에 사람모상이 비쳐지는 어루쇠(거울)는 있어도 사람의 넋이 비쳐지는 어루쇠가 없다는 소리는 거짓말이라고 생각됐다.

시나지로의 경우에 유정이라는 존재는 바로 자기의 넋을 낱낱이 밝혀내는 어루쇠와도 같았기때문이다. 바로 그 어루쇠에 비쳐진 제 한생을 들여다보고 시나지로는 불법의 진수를 뒤늦게야 깨달았으며 자기의 죽음으로써 부처님께 속죄를 하는것이였다.

그러는새 시나지로의 꺼져드는 생명을 사정없이 짓태우며 무더기불이 불당을 통채로 휘덮었다.

불경책이며 보살상이며 오동향로같은 수백년의 력사를 가진 사당의 문화재들을 순식간에 불덩이로 만들어버린 시뻘건 불길이 마귀의 살뻗친 혀바닥인양 널름널름 지엄스러운 석가상까지도 가차없이 불덩어리로 태워치우고 천정으로 무섭게 타래쳐올랐다. 평시에 늘 여의주를 놓고 으르렁대며 다투던 청룡과 황룡이 화염속에서 꿈틀꿈틀 몸부림을 치고 알룩달룩한 깃털로 이승의 어진 생령들을 희롱하던 멋진 봉황이 화드득 날개를 치다가 꼼짝 못하고 떨어져 불튀기를 당한다.

와지직 딱- 룡마루가 꺼져내리고 지붕이 무너지며 삼단같은 불길이 저녁하늘로 치솟았다.

로승이 마지막념불로 남긴 말소리가 화염이 흩날리는 하늘가에서 오래도록 공명을 일으켰다.

《하늘땅이 다하도록 빌고비오니 부디 저승사자를 보내시여 이 살기찬 야만의 땅에서 군림하는 아수라의 무리를 멸살하옵소서. 나무아미타불.》

그날 밤 삼경이 가까와올무렵 전함 한척이 나고야항을 도적고양이처럼 가만히 빠져나갔다.

전함에는 칼과 조총과 화포로 완전무장을 갖춘 사무라이들이 타고있었다.

싸움군인 다나까가 거느리는 그자들은 조선사신행차를 바다 한가운데서 수장시킬데 대한 가또의 군령을 받고 떠난 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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