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한 하늘을 이고살수 없다
1
일본의 서쪽해안가 남단에 위치한 나고야는 일본에서 쯔시마와 조선으로 통하는 중요항구였다.
그래서 임진왜란때에는 륙로와 해상이 련결되는 요충지인 그곳에 왜군의 독부(전선사령부)가 자리잡기까지 했었다.
해풍이 심한 바다가고을을 병풍처럼 둘러싼 나지막한 산발을 따라돌면서 우중충하니 형체를 드러낸 높다란 성곽이며 토기와지붕을 뾰족하게 쓴 관사와 루각과 점포들이 웅기중기 들어앉아 번창함과 더불어 위엄을 돋구는 그 땅에서는 오늘도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살기찬 악청이 되울리고있었다.
《조선을 타고앉으라- 그곳의 옥토삼천리와 은금보화와 미녀들은 다 너희들의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여 돌진하라-》
살인괴수의 령에 따라 20만의 침략군이 출전의 닻을 올린 후 조선의 삼천리강토에선 얼마나 많은 피가 뿌려졌고 이곳의 나고야항으로는 또 얼마나 많은 은금보화와 문화재와 조선인포로들이 실려와 부리워져 강도배들의 소굴마다에 수장됐던가. 아아, 돌이켜보건대 그때는 실로 악몽같은 세월이였고 생각하느니 절통하기 그지없는 비참상이였었다.
바로 그러했던 나고야항에서 오늘은 조선민족이 어제날에 당했던 수난의 자취를 걷어싣고 새로운 력사의 배가 닻을 되올리고있었다.
조선사신일행이 임진조국전쟁때 왜놈들한테 강제로 끌려왔던 수천여명의 조선사람들과 수백점의 문화재들을 되찾아실은데다가 일본막부에서 사죄보상비로 내놓은 진귀한 물품까지 받아가지고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상선을 시작한것이다.
일본땅 각지에서 귀국길에 오르려고 나고야항으로 모여드는 조선인들속에는 오사까의 랑화강하구에서 황무지를 개간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에서 별로 유표하게 눈에 뜨이는것은 허리굽은 백발로인을 앞세우고 흰 옥당목저고리와 검정색모시치마를 산뜻하게 차려입은 두 젊은 녀자가 사이좋게 어울려 별나게 손시늉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포구로 들어서는 모습이였다.
그들은 윤옥비와 벙어리처녀였다.
몸매 날씬하고 머리태 실하고 얼굴 고운 두 젊은 녀인이 싱그러운 향기를 풍기며 나타나자 항구내가 다 금시 환해지는듯싶었다.
그들이 잔교에 접어드는데 이미 배근처에서도 눈물겨운 상봉이 수없이 펼쳐지고있었다.
《아이고, 동서!-》
덧기운 토스레치마차림인 늙수그레한 녀인이 옥비네보다 한발 앞서서 도착한 중년아낙네인 울산댁을 덥석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리자 울산댁도 그 나이지숙한 아낙네를 맞잡아안고 곡을 해댄다.
《성님!- 살아있었군요.》
다른 한쪽에서는 살여윈 꼬리머리총각애가 베잠뱅이차림의 나이지긋한 장정의 품에 안겨들어 꺽꺽 목메인 울음을 짓는다.
《얘, 울지 말거라. 우리 살아서 이렇게 만나지 않았느냐.》
《삼촌, 아버지와 엄만 다 죽었어. 아버진 굶어죽고 엄만 왜놈들이 릉욕하고 때려죽였어.》
《저 악귀같은 왜놈들을 그저.》
여기저기서 이러루한 상봉을 벌리면서 울고불고들 했다.
선창과 잔교에서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져 도랑을 이루며 흐를 때 반백의 수염발을 가슴노리까지 드리운 년로한 도승이 젊은이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잔교에 나타났다.
귀환자들은 황황히 배에서 내려 저저마다 그 도승앞에 무릎을 꺾고 주저앉으며 큰절을 올렸다.
《송운대사님! 진실루 고맙소이다.》
《아아… 이게 꿈이오이까? 생시오이까?》
《백골난망할 이 은혜 쇤네의 머리칼을 베여 신발을 삼아올린들 어찌 다 갚을수가 있겠소이까.》
낯설고 물설은 오랑캐의 땅에서 한줌 흙으로 영영 묻힐번 했던 불쌍한 인생들이 환생의 기쁨에 겨워 중구난방으로 개여올리는 인사말에 유정은 은근히 당황해났다.
《이러지들 마시오. 인사는 나한테가 아니라 나라에다가 하시오다. 왜놈들이 이 로승 한사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가 강대하고 조선백성들이 무서워서 굴복을 했단 말이웨다. 자, 한식경쯤 지나서 배를 띄우겠으니 어서 올라가 자리들을 잡으시오.》
목갈린 음성으로 뇌이며 유정은 한사람한사람 따뜻이 어깨를 안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는 제먼저 널다리를 건너보며 안전상태도 확인해보고 배에 올라 사람들과 물건들의 상선형편도 알아보았다.
그런 후 유정은 선체에 통굵은 두다리를 벋짚고서서 감개가 무량해서 사위를 휘둘러보았다. 승리의 쾌감이 솟구치며 희열이 전신을 푸르청청한 하늘로 둥둥 띄운다.
무상한 기쁨이 눈물로 변하여 량볼로 흘러내릴 때 유정은 그리운 조국땅이 있는 서북쪽의 하늘가로 추연한 시선을 보냈다.
(스님, 드디여 원쑤놈들을 이겨내고 조국으로 돌아가옵니다. 우리 조선이 이겼소이다!)
그러자 아득한 허공의 한끝에서 서산대사의 다심하면서도 지엄한 음성이 공명되여 울려왔다.
《송운, 자중하오. 아직 거사는 결말이 나지 않았소. 그러니 절대 방심해선 안되오. 그대가 상대하는 적들이 세상 더없을 간악한 아수라임을 잊지 말아야 하오.》
스승의 지엄스러운 깨우침은 유정을 다시금 자각시켰다.
한편 그 시각 포구가 손금처럼 굽어보이는 둔덕에 자리잡은 정각안의 어두침침한 방안에 가또와 요시하찌와 다나까 이 세 사무라이가 침울한 기색으로 마주앉아 창밖을 내다보고있었다.
그들은 지금 닭쫓던 개 지붕 올려다보듯 머렁해서 한창 귀환자들과 포장한 짐짝들을 여러 배에 나누어 상선하면서 기세등등하여 돌아치는 조선사신일행을 지켜보는중이다.
가뜩이나 패배의 쓴맛때문에 속이 뒤꼬이는 판인데 흥겨운 분위기가 도도해지는 나고야항을 철통같이 둘러싸고 개미 한마리 새여들지 못하게 하며 조선사신일행과 귀환자들과 상선배들을 보호하는 막부군사들 또한 눈꼴을 시리게 했다.
광증이 나서 한쪽손으로 칼자루를 틀어잡고 풀떡거리던 다나까가 《저 우매한 막부것들때문에 그물안에 들었던 조선범을 놔보내게 됐소이다.》 하고 개탄을 해대자 덩달아 요시하찌도 신경이 잔뜩 돋쳐가지고 저 쌍 빌어먹을 《후다이》들이 나라를 망그러뜨린다고 원성을 터뜨리면서 불그락푸르락거렸다.
침통한 기색을 짓고 앉아있던 가또는 당장 피를 보고싶어 궁뎅이를 들썩거리는 부하들을 무뚝뚝해서 능추었다.
《이 도라노스께가 영 고드레뽕이 된건 아니니까 상심하진 말라구.》
그러하는데 육중한 출입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알룩달룩한 비단옷을 후렁하니 걸친 무당년이 시종나인 둘을 꽁무니에 달고 들어왔다.
좀전에 요시하찌가 미궁속에 빠져든
와비수께기름으로 머리카락을 흠썩 잠재워서 뒤통수로 맵시나게 틀어올린 애되고 얼굴해사한 계집년 둘이서 진갈색의 자그마한 항아리를 봉싯한 앞가슴팍에 올려안고 총수무당을 옹위하며 대명전대들보의 맹매기걸음으로 살몇살몇 걸어왔다. 요염스러운 계집들이 갖신 신은 발을 살짝살짝 옮겨짚을적마다 년들의 매출한 장딴지가 그들을 쳐다보는 사내들의 시야에서 희끗거리고 날씬하게 퍼져내린 하체를 팽팽하니 휘여감은 꼬리치마속에선 탐스러운 엉뎅이가 유표하게 좌우로 흔들리면서 사내들의 얼혼을 뽑아댔다.
제아무리 신령의 너울을 쓴 거룩스러운 존재일지라도 하여튼간에 그도 사람이고 고운 녀자인지라 그들의 매혹적인 자태와 향내에 취한 다나까의 젊은 육체가 경련을 만난듯이 떨리고 치째진 눈에서는 정욕이 번뜩거렸다.
그러다가 가또의 험상궂은 눈총에 얻어맞고서야 헤풀어지던 육신을 꼿꼿이 다잡았다.
그러는새에 방 한복판으로 들어와 멈춰선 무당년이 방울과 부채를 량손에 갈라쥐고 가또네를 향해 잘끔이 얼굴을 수그리면서 요염기를 함뿍 날리였다.
《도노사마께 문안드리오.》
가또는 그 말을 들었는지 먹었는지 여전히 무뚝뚝해서 창문밖만 내다보자 그를 대신하여 요시하찌가 올내기 수고했다고 한마디 얼추 응수한 후 한손을 내저어 어서 굿을 시작하라는 뜻을 알린다.
그러자 무당년이 방울과 부채로 엇갈아 허공을 한두번 내리썰고나서 《오호네야-》 하고 괴상스러운 소래기를 지르더니 늘씬한 몸을 드세차게 휘젓기 시작했다. 흐느러진 비단치마자락을 울긋불긋이 너펄거리고 마루바닥을 따가닥거리면서 너렁청한 공간을 종횡무진으로 돌아치는데 좀전의 얌전스럽던 태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도고하고도 지엄스러운 기상만이 표표히 내돋치면서 굿구경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선뜩하게 만들었다.
령신을 부르는 앙칼지고도 호기찬 목소리 또한 등골을 콕콕 찔러대는 언성이다.
《무소부지하신 태주아씨, 부디 자비를 베풀어 불행에 처한 인생들을 살펴주사이다. 이 땅에 도래한 대재앙을 물리칠 령험을 내려주옵소서- 급급여률려엉-》
섬광이 벙끗 튕기는 시선을 하늘쪽에 휘던지며 한바탕 애절히 토설하고난 무당년은 부지불식간에 천궁의 사자로 둔갑하여 용맹스러운 자세를 취하며 《오호네야-》 하고 한소래기 뽑아올리더니 부채를 활활 내젓고 방울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면서 일장광설을 늘어댔다.
《오냐, 네 마음이 의롭고 강직한 덕으로 옥황상제께서와 부처님께서 은공을 하사해 나를 여기로 강림시켜 방책을 주게 했사오니 허실히 여기지 말고 부디 각골명심할지어다.》
간간이 이어지다가 별안간에 돌변하여 새되게 휘파람소리를 내며 뒤섞이는 령신의 호령소리는 천군만마가 줄달음치는 호용같기도 했고 굶주린 맹수의 사나운 울부짖음같기도 했다.
아득한 하늘공간에로 횡행하는 그 소음이 청중의 넋살탕을 한고패 휘둘러치는데다가 애젊은 시종나인들이 새족거리며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그들이 보란듯이 내든 항아리안에서 제 혼자 춤을 추는 종이꽃이 사람의 령혼을 밟고서서 흔들어대는 머리태 풀어헤친 귀신의 자태같아 모골이 다 송연해졌다.
정신이 휘지해져 몽상의 나락을 너울너울 날음질치고있는 요시하찌와 다나까를 온곱지 않게 흘겨보던 가또가 별안간에 일껏 고조되던 실내분위기를 깨뜨렸다.
《기실 액막이란건 소소한 잡귀의 시달림이나 피할수 있는 장난에 불과한짓일세. 령신의 위용이나 겨우 흉내내는 저따위 년의 무맥스러운 넉두리나 가지고야 어찌 일본에 들씌워진 날벼락을 모면하겠나. 임자네들은 아직도 조선사신행차의 도반수인 금강산 중을 만만하게 보는것 같은데 기실 그는 사해룡왕(소위 동서남북 네 바다의 룡왕들)과 오방신장(동서남북과 중앙을 맡은 귀신)의 사자까지도 수월히 쳐낼 천하무적의 도사일세. 그런 인걸을 저까짓 서푼짜리 푸닥거리로써 어째보겠다는건 그야말로 어리석은 망상이네.》
이러고는 훌쩍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와버렸다.
파도가 출렁이는 부두에서는 상선을 끝내여 만짐을 한 수송선들이 출항을 예고하며 둔중한 북소리를 쿵쿵 울리고있었다.
이제는 승패가 완전결속이라도 된듯이 승전고마냥 대고까지 울리며 호기를 뽐내는 조선사신들쪽에 대고 가또는 코웃음을 쳤다. 그의 충실한 부하들은 이곳 나고야항을 나드는 선박들마다 출항을 앞두고 기풍제를 지내는 장소인 포구근처의 사당에서 조선사신일행이 관례에 따라 제를 지낼 때 폭약을 터뜨려 일행전부를 몰살시킬 계책을 꾸몄었다.
헌데 그 얄망스러운 조선사신이 무슨 낌새를 챘는지 공공연히 관례까지 어기며 사당의식을 걷어치우는통에 거사는 수포로 돌아갔었다. 그래서 앙심이 곱배로 돋구친 부하들이 재차 음모를 꾸몄다. 조선사신일행과 조선귀국자들과 문화재와 일본막부의 조공을 만재한 수송선들이 포구도래굽이의 산코숭이밑을 지날 때 아예 사당과 벼랑을 통채로 폭파하여 수송선들에 돌벼락을 들씌워 몽땅 요정내버리기로 작정하고 비밀리에 그 준비를 해놓았었다.
그런 내막이 있기에 가또는 속이 뜬뜬해서 종말을 앞둔 조선사신과 마지막말이나 나누려고 나선 길이다.
부두를 삼엄하게 둘러싸고 불의의 사태를 경계하던 막부군사들속에서 한 젊은 장수가 튕겨나오더니 가또앞을 막아섰다.
《태수님, 안됐사오만 이 이상은 허용할수가 없소이다.》
가또는 그제야 막부측에서 《도자마》들의 거두인 자기를 그중 위험분자로 지목하며 특별히 경계하고있는 사실에 대해 새삼스럽게 상기했다.
기분이 잡친 가또는 별 하찮은 좀사니들한테 멸시를 당하는것 같아 버럭 역증을 냈다.
《너희들이 이 도라노스께를 뭘루 아는게야?》
가또가 고함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눈꼬리를 곤두세우는데 목선들마다에 한둘씩 갈라태운 자기의 젊은 호행원들한테 손짓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면서 뭐라뭐라 지령을 하달하고있던 금강산 중이 가또를 막아나선 막부군의 젊은 장수를 소리쳐 찾는것이였다.
《이보라구 히까리, 태수를 들이라구. 우리와 가또태수는 필생의 구면지기니 작별인사야 나누고 헤여져야 할게 아닌가.》
조선사신일행이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배포가 유해서 있는것을 보고야 히까리는 가또에게 길을 틔여주었다.
자존심이 상해 마른기침을 깇으며 성급히 다가오는 가또한테 유정이가 먼저 말을 건늬였다.
《바쁠텐데 먼길을 달려 배웅까지 나왔구려.》
가또의 령지까지의 거리를 셈에 둔 소리같았으나 어떤 흉심을 품고 아득바득 시간을 내여 달려왔을 그자의 진속을 중떠보느라고 던진 엇찌름이였다.
기세가 은근히 돋쳐가지고 자기를 굽어보는 금강산 중을 덤덤해서 마주보던 가또는 쓰겁게 뇌까렸다.
《구면지기와의 마지막고별을 허술히 할수야 없잖소.》
《역시 당신은 담기가 있는 무장이요. 그지간 군장네 부하들이 우릴 적적치 않게 해주느라 수고가 많았소. 내 고국에 돌아가서도 그 수고에 대해 잊지 않겠소.》
흔연해서 내던지는 그 말이 자기네를 시까스르는 소리라는것을 알았으나 가또는 속에 따로 꿍진 결산보따리가 있는지라 곤두서는 뿔을 점잖게 누르고 맞잡아 배지기를 뜨었다.
《예나 지금이나 승장의 기개앞에선 머리가 숙어지오. 사실 승장은 저쪽의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내긴 아까운 인걸이지만 할수 없구려. 우리 둘은 현세에선 물과 불처럼 종내 화합될수 없는 인생들이니 제갈길을 갔다가 래세에서 다시 만나 의좋게 지내기요.》
가또는 이러며 씁쓸히 웃고말았다. 속으로는 자기 나라, 자기 민족에 대한 우애심을 지닌 당신을 부러워한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차마 그 말을 내뱉을수가 없었다.
가또는 느닷없이 이 금강산 중과 자기가 만약 한나라에서 한민족의 피줄을 타고났다면 배짱이 맞는 지우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심정이 허거퍼졌다.
가또의 눈에 얼핏 내비치는 그러한 애절스러운 심정을 읽은듯 금강산 중이 씩 웃음을 짓는다. 그 미묘한 웃음속엔 -절대로 그렇게는 될수가 없는 우리 두사람이다- 이런 속대사가 어려있는것만 같았다.
실지로 유정은 서로 감정이 올꼬이는 침묵속에서 가또와 그런 속대사를 나누고있었다.
왜서 우리 두사람은 막역지우가 될수 없는가? 그것은 바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려는 마음은 같았으나 그 근본이 서로 달랐기때문이다. 선과 악! 옳다, 그때문에 영원히 화합이 될수 없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것이다. 복을 마련해온 선, 화들 산생시킨 악. 본질이 상극되는 그것들은 필연코 맞부딪쳐 불꽃을 튕기다가 어느 하나가 사멸되기마련이다. 물론 선이 악을 이겨 화를 방지하는것은 어쩔수 없는 력사의 법칙이다.
《장차로도 그냥 제 리속만을 위하며 남의 나라, 남의 민족을 해치다가는 저승에 던져져 염라대왕의 벌을 받는다는걸 아오. 자고로 적선지인에 필유여복이요 악덕지인에 필유여화(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화를 입는다)라 했으니 부디 내 말을 명심하기를 바라오.》
유정이가 서리찬 얼굴로 오금을 박았으나 가또는 눈섭 한오리도 꿈쩍 안했다.
그는 되려 제켠에서 속이 뜬뜬해져 누가 먼저 화를 당히고 저승귀신이 되는가는 오래지 않아 량자가 다 알게 될것이라고 씹어뇌까렸다.
그자의 속심이 어떠한지 채 꿰뚫어보지는 못했으나 유정은 저 가또네가 결코 순순히 자기네를 놓아보내지는 않을것이라는 예감으로 하여 긴장을 탕개조이며 《그럼 난 이만 가보겠소.》 하고 작별삼아 한마디 내뱉고는 배에 올랐다.
귀국하는 조선사신행차를 위해 도꾸가와막부에서 나고야고을 다이묘에게 령하여 특별히 장만해준 루각까지 있는 판옥선이였는데 다락기둥과 란간에 윤택이 나게 옻칠을 하고 휘장까지 둘러쳐 제법 사신배맛이 났다.
배에 먼저 올라 자리를 정하고 기다리던 손문욱과 마광우가 선창안으로 내려서는 유정을 맞아주었다.
다락란간과 선체에 주런이 나와서서 승리자연한 미소를 짓는 금강산 중과 그의 일행을 얄밉게 건너다보던 가또는 오래전 그날 조선의 고성읍에서
그랬으나 가또는 제켠에서 먼저 자실자망하고싶지는 않았다. 그는 억심을 더 도사려먹었다. 그래, 금강산 중- 당신은 나라와 백성에게 크게 공헌한것으로 해 복을 받을것이다. 하지만 그 복이 저승길과 이어진 허망한 복이라는것을 이제 곧 알게 될것이다. 우리 일본의 진짜배기 공신들의 기개가 어떤것인가를 저승길에서 톡톡히 맛보게 될것이다.
가또가 절치부심을 하는 때에 어느새 뒤따라나온 요시하찌가 《군장님, 저것들이 인차 물고기밥이 될테니 너무 상심을 마옵시오.》 하고 위안을 했다.
그러던 요시하찌가 눈이 둥그래지며 굳어졌다.
선체가녁에 붙어서서 얄궂은 웃음기를 머금은채 자기네를 굽어보고 있는 옥비를 띄여보았기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제 식읍의 재물원천지인 도자기터의 조선인기술자들과 로력자들을 몽땅 조선사신한테 빼앗기우고 분통이 터져나던 요시하찌였는데 자기가 후실감으로 정하고 오랜 나날 품들여 아껴오던 조선미녀를 한번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채 놔보낸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혀 죽을 지경이였다.
조선사신호행원인 젊고 의젓한 사내의 한쪽팔을 끼고서서 닭쫓던 개 지붕쳐다보듯 맹랑해서 저희네를 흡떠보며 혀만 짓깨무는 자기쪽에 오묘스러운 랭소를 던지던 《아사꼬》가 《어리석은 다이묘놈아, 나에게 이런 끌끌한 조선사내가 랑군님으로 정해있는데 아무렴 너같은 왜놈한테 출가할줄 알았느냐? 네가 조선녀인들을 알길 우습게 알았지.》 이렇게 힐난을 하는것만 같아 요시하찌는 저절로 등이 달았다.
그래서 더 악이 치받친 요시하찌는 《요 발칙한 고마년, 근 칠팔년간이나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이며 기와집에서 고이 호강을 시켜줬는데 그 생활이 뭘 어쨌다고 홀짝 도망질을 치는거냐? 내 품에 안겨 부귀영달을 누리라는데도 아득바득 마다한탓으로 어떻게 되나 두고 봐라- 네년도 이제 저 물건짝들과 함께 바다물속에 콱 수장될게다.》 하고 저 혼자 뇌까리는데 주변에서 놀라운 변이 또 한사건 벌어졌다.
지금까지 삼엄한 경계진을 펴고 조선사신일행과 상선배들을 지켜주던 막부군의 초장인 히까리가 방금 닻을 올리고 움찔움찔 자리뜸을 하려는 배에 급작스레 뛰쳐오르는것이였다.
히까리의 수하에서 그를 추종하던 막부시위대의 군사들이 어리뻥해서 히까리의 거동을 지켜보다가 급살을 털었다.
《아니?! 초장님, 어쩌자는겁니까?-》
《가시라사마- 가시라사마-》
선창에 내려서서 이미 구면인 조선사신호행원들과 반갑게 포옹을 하고난 히까리는 잔교로 몰려나와 눈이 퀭해있는 저희네 막부군사들이며 소태먹은 상이 된채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가또네를 휘둘러보면서 뻐젓이 웨쳐댔다.
《난 간다, 조상의 나라로 간단 말이다. 하하.》
사실 히까리는 유정이네한테 저의 모친과 오소노네 모친을 맡기고 후사를 약속했었다.
북부에서 돌아온 히까리가 그지간의 군령실행정형을 보고하려고 막부에 찾아들어가니 시위대장과 군정보좌관이 오묘한 태도로 그를 맞아주었었다.
전날에 히나노주의 다이묘한테서 히까리가 말목장주네 아들내외를 살인하고 달아났다는 장계가 올라왔었는데 그 사실을 보고받은 쇼궁이 《도자마》계렬의 하찮은 놈 하나 죽인것때문에 막부군의 아까운 싸움군을 처벌할수 없다면서 그를 융허해주라고 했던것이다.
사실 도꾸가와는 북부유람길에서 조선사신들을 보호해주었고 또 조선이주민의 후손인 히까리를 관대하게 처리함으로써 조선사신의 환심을 사 그들이 조정에 올리는 장계문에 일본의 막부에 대해 좋은 글을 써보내게끔 함으로써 후날에 어떤 변사가 생기는 경우에도 조선국으로부터 아무런 의심도 안 받고 또 통상교류도 무난히 실행하려는 속심으로 그런 아량을 베푼것이였다.
바로 그러한지라 이번엔 또 히까리에게 시위대의 군사 수십명을 거느리고 나고야항에까지 조선사신행차를 호위해가도록 새 조치를 취했었다.
이랬든저랬든간에 히까리는 속으로 얼싸 좋다 춤을 추며 성수가 나서 길을 떠났었다. 그는 중임을 실수가 없이 실행하여 조선사신일행과 귀환자들과 물품수레들을 무사히 나고야까지 호행해온 후 《도자마》들을 철저히 경계하면서 때가 되기를 기다렸던것이다.
그의 모친과 오소노의 모친은 이미 배에 올라 귀환자들속에 섞여있었다.
뒤늦게 잔교로 뛰쳐나온 다나까가 히까리를 향해 손짓을 하며 목터지도록 고아댔다.
《겐까다이쇼- 이 자식 돌았구나. 고마인들과 같이 가다간 죽는다-》
그 소리에 히까리는 코웃음을 치며 이죽거린다.
《내가 죽긴 왜 죽어? 사람답게 더 잘살려고 조상의 나라를 찾아가는데. 여, 고꾸도- 너도 오래 살려거든 조선사람한테 쌍된짓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유자농사나 착실히 짓는게 좋아- 시세를 따르란 말이다, 짜식.》
《저… 저게?》
기가 막혀 혀를 쩍 내털던 다나까는 그제야 피끗 소시적에 들었던 히까리의 래력이 떠올라 아뿔싸- 하며 제 이마빡을 쳤다.
《저 고마인의 새끼가 끝내 반변을 하는구나. 저 새낄 미리 죽여치웠어야 하는건데.》
망연자실하여 굳어져서 칼자루만 틀어잡는 다나까를 조롱하며 마치 극락에로 승천하는듯 한 희열의 웨침이 허공을 꿰지르며 날아든다.
《자, 그럼 난 간다. 늬들 잘 있거라-》
《가라, 콱 저승에나 가라. 고마인들이 탄 배에 당장 날벼락이 쏟아지게 된걸 모를테지. 복을 스스로 줴버리고 망해빠질 길이나 택하는 쌍 바보같은 새끼.》
제김에 증이 나서 쑹얼거리던 다나까는 어느새 뒤따라나온 요시하찌가 살기찬 눈총을 쏘아서야 흠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뿌웅-
출항을 알리는 뿔나팔소리가 길다랗게 울린 후 사신이 탄 판옥선을 위주로 하여 호행선, 수송선, 화물선들이 차례로 자리뜸을 하려고 움씰거리는 때였다.
헌털뱅이장삼을 걸친 젊은 왜중 하나가 잔등에 둘러띤 짐바랑을 덜썩거리며 잔교로 헐금씨금 장달음쳐왔다.
왜말로 뭐라고 목터지게 웨치며 널다리앞에까지 숨가삐 와닿은 왜중은 웬일인가 하여 선체밖을 굽어보는 조선사신들한테 까까머리를 굽석거리며 연방 알지 못할 소리를 주절댔다.
그 젊은 왜중이 별로 낯익어 남달리 관심을 돌리던 유정은 《아니, 저게 남선사의 고달쇠가 아닌가?》 하고 놀란 소리를 내다가 고달쇠가 뇌이는 왜말을 가려듣고 그를 선체가까이로 손짓해 불러세웠다.
어째 혼자서 예까지 따라왔는가고 물으며 의아해하는 유정이한테 고달쇠는 합장을 하고 애절히 아뢰이였다.
《대사님, 이 불민한 소승을 고국으로 데려가주사이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하오니 임잔 왜인허울을 벗어던지고 본태를 되찾겠다는건데 자네의 양부인 시나지로태장로께서 허락하더냐?》
《네. 소승의 고국행도 기실 태장로님의 추동에 의해 내짚은 걸음이옵니다. 태장로님께선 요즘 나고야항근처의 사당에 강제로 옮겨와있사옵니다. 태장로님은 조선사신을 시급히 만나 위태로운 사정을 긴요히 여쭈라고 하셨소이다. 현재 아수라들이 포구를 떠나가는 조선사신배들을 해치려고…》
고달쇠가 두루 황황히 옮겨뱉는 말을 통하여 가또네 부하들에 의해 암암리에 벌어지던 끔찍한 참변의 내막을 알게 된 유정은 출항을 잠시 뒤로 미루었다.
고달픈 이국살이를 이어오던 또 하나의 불쌍한 조선사람인 고달쇠를 귀국하는 배에 싣게 하고는 막부군사들을 나고야항 출입구인 잘루목의 산등으로 보내여 《도자마》들의 망동을 사전에 막아치우도록 했다.
그런 후 사신배들은 마치 한바탕 승전이라도 이룬듯이 뿔나팔소리를 부-웅- 기세좋게 울리며 항구를 벗어났다.
마지막거사마저도 수포로 돌아간것이 분통하여 절치부심을 하던 요시하찌가 가또앞에 와 넙적 엎드리며 죄책을 했다.
《군장님, 이 부실한 놈이 만사에 주의를 돌리지 못한탓에 이런 결말을 빚어냈사오니 목을 쳐 화풀이를 하옵시오.》
그 처량한 꼴을 한참 쓰겁게 굽어보던 가또는 별안간에 악소리를 치며 오비에 띠였던 장검을 잡아뽑아 땅바닥에 쿡 눌러박았다.
《궁냥이 협소하다. 난 참모가 예껏 앞에 나서서 일을 벌려오기에 마음이 놓여 간참을 안해왔었다. 헌데 국난을 막겠다고 한몸 내대고 나섰던 사내장부가 그쯤한 일에 실망하여 스스로 좌절을 하니 어찌 일본의 운명을 참으로 위하는 사무라이라 하겠는가? 좋다, 이젠 내가 직접 나서서 본국에 실지로 소용되는 마지막수를 쓸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