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길은 하나다

8

 

초록이 푸르러 번성하는 이른여름철의 어느날이였다.

솔밭이 뉘엿하게 드러누운 사르댕촌락의 동구길에 한 젊은 사무라이가 나타났다.

흑색대마직도포를 늘씬하게 차려입고 발목에는 행전을 가뜬하게 둘러띠고 량옆구리에 찬 단검과 장검을 절렁거리며 찌득찌득 불편스러운 걸음을 옮기는 그는 다름아닌 막부시위대의 초장인 히까리다.

히까리는 에치고의 주막집에서 조선사신일행을 구원하다가 중상을 당한 후 어느 인정 후한 시골의원한테서 한달반가량 치료를 받아 몸을 어지간히 추세워가지고 막부군영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향마을에 들린것이다.

바다와 접한 아스라한 초원 한끝에 야트막한 솔산을 등지고 들어앉은 초가동네를 애틋이 살피며 점도록 감회에 잠겨있던 히까리는 중천에 걸렸던 해가 어느새 서쪽으로 기우는것을 보고서야 서둘러 동네로 향했다.

수개월전인 작년 마가을날에 다녀갈 때 초벌 낯을 익혔던 방목공네 자식들인 조무래기들이 히까리를 띄여보자 오구구 모여들어 주변을 맴돌면서 참새무리처럼 재깔거렸다.

《막부장수- 막부장수-》

《고마대장- 고마대장-》

예이제 변함없이 말투레질소리가 소연하고 여물삶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기는 향촌의 류다른 정취는 그지간 세상만사에 시달려온 히까리를 희락하게 만들었다. 그는 갓 아문 허벅다리의 창상자리가 띠끔띠끔 저려나는것도 잊고 조무래기들과 히득히득 술래잡기를 하면서 동네길을 활보했다.

그러다가 차츰 희열이 꺼지면서 자중해졌다. 집집의 울담안에서 자기를 내다보는 어른들의 행동거지와 얼굴표정이 예전같지 않았기때문이다. 어떤 남정네들은 히까리와 눈이 마주치자 죄지은 기색이 되여 슬며시 피해버렸고 또 어떤 아낙네들은 울상을 짓다가 행주치마로 눈굽을 찍기까지 하는것이였다. 전에 없던 광경이여서 이상한 예감이 들며 히까리의 등골을 선뜩하게 만들었다. 그는 까닭없이 불안해지는 자신을 다잡으며 무거워지는 걸음발을 가까스로 다그쳤다.

산기슭이 후미진 동네안탁에 유자나무를 울타리마냥 둘러치고 외따로 돌아앉은 뾰족토기집앞에 이른 히까리는 드세차게 방망이질을 하는 가슴을 애써 눅잦히며 삽짝을 밀어제끼고 뜰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는데 널쪽을 매끈하게 다듬어짠 부엌문이 덜렁 열리더니 물동이를 안은 모친이 비청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자기가 없는새에 웬 중병이라도 앓았는지 모상이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진 모친을 놀랍게 여겨보던 히까리는 《오까상!》 하고 부르며 반달음쳐갔다.

빈 물동이를 떨어뜨릴번 하다가 겨우 바로잡아 내려놓고난 모친은 히까리의 억센 팔뚝을 덥석 그러안더니 울음부터 터뜨리는것이였다.

한참 슬프게 곡을 하고나서 끅끅 오열을 씹으며 푸념질을 한다.

《어째 인제야 왔느냐? 다들 갔니라, 오소노도 가고 그의 아베도 가고.》

《대체 가긴 어드멜 갔다는거유?》

《저승엘 갔다, 저승엘.》

그 소리에 히까리는 눈이 까뒤집혔다.

《아니, 원. 전에 왔을 때만도 딩딩하던 사람들이 웬 급살을 맞았게 생뚱같이 사망했단 말이웨까?》

《급살이래두 세상에 그런 원통한 급살이 어디 있겠냐?》

모친은 억이 막혀 치를 덜덜 떨다가 절통하기 그지없는 사연을 목메인 소리로 얘기했다.

이해 소정월을 쇠고난 후 마을 들판에서 알몸으로 얼어죽은 오소노의 시체가 발견됐을 때 사람들은 어느 한 목격자의 입을 통해 그것이 목장관리인네 아들인 나미쯔네 패거리가 한짓이라는것을 알았으나 놈늘의 행패가 두려워 함부로 내놓고 발설하지는 못했다.

오소노의 부친은 장정 몇을 거느리고 뒤산에 올라 언땅을 파고 제 딸의 시신을 감장했다.

일을 끝내고 내려오던 길에 오소노 부친은 나미쯔를 만나 분풀이를 하겠다면서 곧장 관리인네 가택으로 향했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좀처럼 돌아올줄을 몰랐다.

간장이 타드는 근심속에 장밤을 뜬눈으로 새운 오소노의 모친은 날밝기 바쁘게 지아비의 종적을 알아보려고 집을 나서다가 퇴마루에 놓여있는 배불룩한 짐자루를 띄여봤다.

웬 짐인가 하여 자루를 헤쳐보던 오소노 모친은 경악을 하며 뒤로 자빠졌다. 바로 자루안에 사지를 뜯기워 죽은 지아비의 시신이 들어있었던것이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사르댕촌락주민들은 나미쯔네 패당의 앙갚음이 무서워 오소노와 그의 아비의 일을 일체 입밖에 내지 않았으며 그때문에 정신적충격을 과히 받고난 오소노 모친도 종종 정신착란이 생겨 미친개병을 앓군 했다.

《나미쯔 그 개자식을 그저…》

히까리는 분노가 치받쳐올라 주먹을 우들우들 떨다가 황소의 영각같은 울부짖음을 터뜨렸다.

《이 인간백정놈아-》

어지간히 시간이 흘러서야 진정이 된 히까리는 그지간 록봉으로 받아 품속에 간수했던 은냥을 털어 쌀과 고기를 사다가 모친에게 푸짐한 식사를 대접한 후 후일담을 또다시 눈물겹게 나누다가 밤이 이슥해져 모친이 잠들었을 때 슬며시 집을 나섰다.

그는 동네 한가운데에 솟을대문을 높이 세우고 거물스럽게 틀고앉은 목장관리인네 가택으로 향했다.

동네의 사처에 널린 마구간들에서 밤잠을 청하는 말투레질소리가 간간이 울려나왔고 건듯 불어치는 산들바람에 시큼한 말똥내가 풍겨왔다.

드디여 관리인네 가택에 다달은 히까리는 삼엄하게 늘어서서 파수를 서는 가병들이 낌새채지 못하게 은밀히 담장을 타고넘었다. 마당안에 가뿐히 뛰여내린 그는 컹컹 짖어대는 아끼따개에게 고기덩이를 꺼내 던져준 후 중대문을 바람같이 통과하여 후원 별채로 돌아갔다.

그 별채에서 바로 나미쯔가 거처하고있었다.

히까리가 별채의 안방퇴마루에 올라섰을 때는 발이 맞았는지 안에서 어떤 계집을 껴안고 짓까부는 나미쯔의 귀익은 말소리가 새여나왔다.

《산은 벗길수록 흉해지고 계집은 벗길수록 곱다더니 참 예쁘기도 해라. 요 퐁퐁한 가슴이며 매끈한 사지는 얼마나 탐스러우냐. 내 어쩌다 요런 절륜한 미녀를 품안게 됐담.》

그 흐드러진 씨벌임에 속간지러운 계집의 웃음소리가 대척한다.

《야유, 큰도련님은 롱을 곧잘하시네.》

《통이라니 원, 급살맞을 소리 말아. 청산을 통채로 떠옮긴들 내 심정만 못하리다. 암 그렇잖구. 아무리 폭포치는 록수인들 이내 애정 어이 담으리오.》

《호호, 그 청산이 곧 금무지고 록수는 술이면 좋겠나이다.》

《금무진 네 가지고 술폭폰 내 마시며 천년만년 복락을 누릴시고, 흐흐.》

《아야야- 그 손길 세차기도 하시네.》

《흐흐흐, 이불안의 정사라는건 참느라면 즐거움이 동하고 즐거움이 더해지며는 극락에로 승천하는 법이니라. 그러자면 우선 이 뜨스한 손길로 널 화끈하게 만들어야 한단다.》

짓까불던 말소리가 끊기고 부스럭소리가 나더니 이어 년놈들이 씨근덕거리며 음사를 치르는 류다른 소음이 새나왔다.

히까리는 더 듣기가 역겨워 침을 퉤 뱉다가 문을 와락 밀어제꼈다.

홀딱 벗고 비단이불속에서 껴안고 딩굴던 년놈은 두억시니같은것이 찬바람을 확 풍기면서 닁큼 뛰여들자 으악- 기절초풍을 하며 떨어졌다. 기름등잔이 느물느물 타는지라 사치한 방안풍경이며 알몸뚱이바람인 년놈들의 흉측한 몰골이 그대로 드러났다.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희멀건 몸통을 홀딱 드러내고있던 계집은 급기야 이불을 뒤쓰며 바들바들 떨었고 털투성이가슴팍을 드러내면서 벌렁 뒤자빠졌던 나미쯔는 그래도 사내랍시고 일어나앉아 제법 허세를 부린다.

《감히 어디라고 여길… 네놈은 누구냐?》

《나미쯔, 그 삐우리눈알을 바로 모으고 날 봐라. 네놈들이 참혹하게 무리강간을 해대고 얼궈죽인 오소노의 약혼자인 내가 왔다.》

《히… 히까리 네자식이?》

《흥, 용케도 알아봤구나. 하긴 우린 소시적부터 피를 튕기며 다퉈 온 막역한 사이였지.》

되우 놀라 한절반 얼이 빠진 상태인지라 그 시까스름을 잘못 가려들은 나미쯔는 볼따귀가 늘어진 상통을 이지러뜨리며 마지못해 응대했다.

《막역지우?! 그… 그래. 우… 우린 막역한 사… 사이였지.》

여느 사람이 이렇게 불문돌입을 하였으면 제 가문의 권세를 내흔들며 떡떡 을러메였을 나미쯔였건만 히까리가 허나새나 세상 당할자없이 무예가 뛰여난 막부군의 장수인데다가 또한 자기가 저지른 부정한짓이 있는지라 속이 부쩍 켕기여 오륙도 제대로 못 가누었다.

제 패당들과 함께 오소노를 무리강간하여 죽게 만든데 이어 그의 부친까지 각을 떠 죽인 나미쯔는 아무때건 그들 일속의 보복이 있을것이 우려되여 가택경계를 평시의 몇곱절로 늘여놓고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되였는데 문창호지로 새여드는 바람마냥 불쑥 제 침전에 형체를 나타낸 히까리를 보자 눈앞이 아뜩하여 살구멍을 찾기에 급급했다.

그러다가 더는 빠져나갈 길이 없자 골목에 몰린 강아지가 범에게 달려들듯이 최후발악을 해댔다.

《죽일테면 어서 죽여라- 이 말똥내나는 고마새끼야.》

나미쯔놈의 지껄임에 분노가 폭발한 히까리는 왼쪽오비에 찼던 칼집에서 서너척이 넘을 긴칼을 쭉 뽑아들었다.

《난 결코 조선이주민의 후손이여서 말똥내나는 거랑배로밖에 살수없었던 조상들의 신세를 탓하지 않는다. 우리 고마인들한테는 믿고 의지할 고국이 있기때문이다. 나의 고국에서 온 사신일행이 이 야만의 섬나라땅을 횡행하며 기개를 떨치고있어 나도 배심이 든든해진거다. 이 야수같은 왜놈아, 조선민족의 후손이 내리는 철추를 받아라-》

이런 절규가 쏟아짐과 동시에 히까리의 칼쥔 손이 휙 허공을 썰며 나미쯔의 모가지에 대고 칼금을 그었다.

《으악-》

숨길을 끊기우는 단말마적인 비명소리가 울리는듯 하더니 어느새 나미쯔의 대가리가 선지피를 튕기며 누비돗자리바닥에 떨어져 나딩굴었다.

《그건 오소노의 복수다. 이번엔 우리 작은아베복수다.》

히까리는 나미쯔가 오소노 부친을 각떠 죽인것처럼 그놈의 팔다리며 가슴통을 칼날로 각을 떠 갈가리 찢어놓고야 어지간히 직성이 풀려 그자리를 떴다.

피가 퍼져나가는 방구석에 구겨박혀 와들와들 떨던 계집은 제풀에 혼절해서 나자빠졌다.

히까리는 관리인네 저택에 새여들 때처럼 바람같이 빠져나와 자기집으로 돌아왔다.

날이 샐녘에 히까리는 술방구리와 술잔을 품고 동네 뒤산의 치성터 근처에 있는 오소노 부친의 묘를 찾아갔다.

그는 산소봉분앞의 상들에 나미쯔놈의 선지피가 묻은 장검을 가로 올려놓고 술을 정히 부은 다음 세번 큰절을 했다. 그렇게 제를 지내며 땅속에 누워있는 오소노 부친에게 아뢰였다.

《이 불효한 이웃집 장손이 때늦게야 작은아범의 원한을 풀었소이다. 세상 야한 나미쯔놈을 징벌하여 우리 조선이주민의 악착한 원쑤 한놈을 없애치웠소이다.》

히까리네와 오소노네 가문은 원래 조선의 남해변방에서 살던 조선사람이였는데 일여덟대 우인 고고조부적에 왜구한테 랍치되여 끌려와 사까이의 인신매매장에서 히나노주 다이묘한테 팔리운 후 대를 이어 말방목을 해오는 집안이였다.

고마인(일본에서 고구려나 고려사람들을 가리켜 부르던 말. )들 대개가 왜땅에서 수백수십년간 대를 이으며 살아오다나니 주변환경에 휘말려 점차 왜말을 쓰고 왜나라풍속을 따랐다.

그들속에서는 탈가하여 중이 되거나 아득바득 자수성가하여 부유계층에 올라선 사람도 있었고 지어는 본토인행세를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허나 히까리네 조상들은 천한 노비로 살면서도 고마인의 순결성만은 흐리지 않았다.

그 전통을 이어가게 하자고 몇해전에 세상을 떠난 동네 존위였던 히까리 조부는 늘 이웃들에게 선조의 뼈가 묻혀있는 고국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기갈질을 해왔고 제 집안의 장손인 히까리한테도 《네가 남다른 무예를 지니여 막부군 장수로도 되고 령주들의 환심까지 사 집안을 부유하게 만들수 있을지라도 그게 결코 복의 전부는 아니니라. 허니 자기가 조선민족의 후손임을 늘 자각하거라.》

이런 훈계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왔었다.

하지만 히까리는 그 훈계를 늙은이의 한갖 잔소리로 흘려들으며 가슴에 곡진하게 새기지 않았었다. 청년시절에 접어들어 이주민의 후손인 자기가 웬간한 왜인들도 하늘의 별따기처럼 아득하게 올려다보는 막부군의 장수로까지 된것을 마치나 천궁의 제천대왕이라도 된듯이 여기면서 자기에게 그런 행운을 안겨준 막부의 군정보좌관과 쇼궁을 은인으로 삼고 막부궁호위에 전심전력을 해왔었다.

히까리가 단지 조선사신을 여러모로 도와준것은 고국의 동포들이 생소하고 살벌한 본토에 건너와 난해한 처지에 빠지거나 생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었다. 더구나 히까리는 수염풍성한 도승의 절륜한 인품과 무예에 반하여 그에 대한 동정과 옹호심이 싹터자랐으며 그리하여 그가 교또태수를 만나러 갈 때도 길거리에서 맞부딪치는척 하며 그가 돗자리밑의 물구뎅이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귀뜀을 해줬었다. 신년회때 가또네 패당들이 살인청탁을 해오자 칼춤을 나가 춘것도 사실은 그들이 다른 살인업자를 청해오지 않도록 하고 금덩이에 매수된척 하면서 수염쟁이 도승에게 드닥친 위기를 모면시켜주기 위해 동포라는 가명으로 된 쪽지로 미리 선통을 한 후 적당히 칼춤을 이어댔었다. 군정보좌관이 쇼궁의 의지에 따라 자기에게 북부유람길에 나선 조선사신을 남모르게 따르며 《보호》하라는 군령을 줬을 때는 얼싸 좋다 하며 멀고 험한 북행길을 마다하지 않고 횡행하면서 조선사신을 해치려고 무분별하게 날치는 《도자마》들의 준동을 막아나서군 했었다. 그러다가 에치고관사에서 자기가 막부에 첩보를 띄우느라 자리를 비운 틈에 조선사신이 화재난을 당한것을 막심하게 후회했었다. 그러나 그 모든것은 어디까지나 한갖 동정과 옹호심에 불과한것이였지 진정으로 조선사람의 넋을 가지고 자기의 고국을 위하느라고 한 일은 아니였었다.

히까리는 오늘에야 비로소 자기가 몸 절반, 넋 절반이 왜인이였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뼈저린 통탄으로 뒤번져 격파마냥 쾅쾅 가슴벽을 쳤다. 아, 내가 왜놈의 껍질을 쓰고 왜놈노릇을 해온탓에 결국은 약혼녀만 죽게 만들었구나. 이런 뉘우침에 뼈가 저리고 피가 타들었다. 약혼녀와 작은아범을 억울하게 잃은 지금에 와 자신의 지난 생활을 돌이켜보느라니 한뉘 자기 가문이 대대로 말똥내나는 거랑배로 살도록 강요해온 나미쯔네 일속이며 무예에 출중한 자기를 늘 질투하면서 갖은 모욕을 들씌워온 시위대장이며 또한 자기를 써먹을 때는 깨를 다독여주며 혜택을 아낌없이 베풀다가도 일단 돌아서서는 고마의 족속이라고 차별하던 막부장관들의 야살스러운 모상이 시야에서 섞여돌면서 히까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을 주었다.

히까리는 한바리에 실어도 어느 하나 짝지지 않을 요사스럽고 살찬 왜놈족속들과 한하늘을 이고 살아서는 자기네 조선이주민들이 결코 복된 생활을 누릴수가 없다는것을 피눈물속에서 절감하였다.

《할아버님, 난 이제야 똑똑히 알았어요, 나처럼 얼치기조선사람이 되여가지고는 결코 사람답게 살수가 없다는것을. 소자는 뒤늦게나마 평시에 할아배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훈계해온 우리 가문의 근본을 찾겠소이다.》

히까리는 오소노의 묘소를 찾아가 봉분앞에 그가 생시에 좋아하던 방초꽃 한송이를 꺾어다놓고 목례를 했다.

《오소노, 내가 부실해서 제 색시감 하나 지켜주지 못했구나. 내 이담 저승에서 꼭 너와 다시 만나 백년해로를 할테다. 너에게 수치를 들씌웠던 나미쯔놈을 칼탕쳐 한을 풀었으니 이젠 편히 눈을 감아.》

히까리가 속이 후련하도록 직성을 풀고 늦은아침이 되여 집으로 내려오니 모친이 겁에 질린채 뜨락 한구석에서 나미쯔네 집쪽만 주시하면서 안절부절을 못하고있었다.

히까리가 삽짝문을 열고 뜨락에 쑥 들어서자 모친은 피가 묻은 그의 도포와 비장한 얼굴색을 불안스럽게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간밤에 작은주인네 댁에서 불상사가 났다누나. 글쎄 작은주인과 소비가 정체불명한 괴한의 장도에 란도질을 당했다더라.》

《그 개자식은 제갈길을 응당 갔으니 상관마소이다.》

아연실색하여 굳어지는 모친을 그 자리에 놔둔채 잉하니 집안으로 들어가 제 길짐을 둘러메고 밖으로 되나온 히까리는 모친한테 수일내로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조용히 동네를 빠져나갔다.

히까리가 에도성에 들어서니 마침 일이 될 때라 북부유람을 끝낸 조선사신일행이 하루전에 돌아와 객관에 들어 로독을 풀고있었다. 히까리는 행차의 총수인 인정 후한 도승을 만나 자기가 치른 과사를 사실그대로 얘기한 후 금후 자신의 처신에 대해 물었다.

유정은 심중한 생각끝에 이런 조언을 주었다.

《물론 쇼궁과 장관들은 히까리의 무예를 아끼는데다가 또 죽은 말목장아들네가 <도자마>계렬이므로 살인에 대한 죄책을 안할거요 하지만 히까리는 늘 근심과 불안속에서 살아야 할것이며 언젠가는 그때문에 허물을 잡혀 막부의 배척을 당할 때가 있을거요.》

《소장도 야수들이 살판치는 왜땅에선 우리 고마인들이 제아무리 재능이 있고 비단옷에 고기국을 먹으며 살아도 결코 복될수가 없다는것을 뼈저리게 느꼈소이다.》

《히까리가 진정으로 안착된 보금자리를 틀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려면 이제라도 조상의 나라를 찾아가야 하오.》

《도사님, 그럼 저를 조선으로 데려가주소이다.》

《좋소, 그럼 이제부턴 히까리를 우리 조선사람으로 치겠소.》

며칠만에 정말로 사르댕촌락에 다시 나타난 히까리는 길량식으로 쓸 보리쌀 몇되박과 로상에서 갈아입을 옷가지와 미투리 같은것을 간단히 보따리에 꿍져가지고 저의 모친과 외톨뱅이가 된 오소노의 모친을 데리고 길을 떠났다.

동구를 벗어날 때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집과 가산을 두고 가는것을 아쉬워하는 모친한테 히까리는 절절한 소리로 오금을 박았다.

《사람에겐 집과 가산보다도 먼저 제 나라가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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