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길은 하나다
7
땡가랑-
술사발을 맞찧는 귀맛좋은 소리에 절로 마음들이 흥그러워졌다.
사꾸라꽃문양이 요염하게 돋은 도자그릇안의 파르스름한 액체를 흐뭇해서 들여다보던 마광우는 곁에 공순히 무릎을 꿇고앉은 청주집 주인령감한테로 시선을 돌리며 능글거렸다.
《이걸 가마에 두고 끓여 김을 뽑아 식히면 처음엔 원주, 다음엔 소주, 마감엔 후주가 되지요. 끓이지 않고 독채로 휘저어 시큼털털한 그 물을 채에 밭아 거르면 청주가 되구 또 그담엔 걸죽한 막걸리가 되구요. 헌데 령감님, 낟알가루로 누룩을 잡고 덧죽을 써 독안에 넣어 여러날 끓이다가 뽑는 술제조법은 어디서 배웠소이까?》
《조선이주민한테서 배웠소이다.》
주인령감이 어줍게 개여올리는 그 대답을 들은 마광우는 리해가 간다는듯 상투머리를 끄덕거렸다,
《하긴 술만드는데선 우리 조선사람들이 귀신이나 한가지지요. 헌데 당신네 일본사람들이 제조한 무슨 제백이요, 로련주요, 마양이요 하는 술은 소오줌같아 도무지 먹지를 못하겠단 말이요.》
《아무래도 우리 본국인들이 재간이 부족한가 봅네다.》
주인령감은 진심으로 수긍을 하며 무안해했다.
그 모양이 더구나 마광우의 흥취를 돋구었다. 그는 한층 더 기고만장해져서 령감과 그의 딸 미야꼬를 눈아래로 굽어보며 꺼림없이 뇌까렸다.
《아마 우리 조상들이 당신네 조상들한테 누에를 쳐서 그 실로 비단천을 짜고 논밭을 개간하여 농사짓는 법을 배워주지 않았더라면 일본인들은 오늘날까지도 가둑나무잎으로 사타구니를 가리우고 다니면서 풀씨를 훑어다가 피죽이나 겨우 쑤어먹으면서 살았을거요.》
《아유, 무사님답지 않게 웬 해괴망측한 말씀이옵니까?》
제 애비곁에서 꽃문양돋은 덧옷자락으로 실팍한 무릎을 살짝 가리우고 앉아 동이안의 청주를 퍼내 상우에 놓인 빈 술사발에 채워주던 미야꼬가 마광우한테 눈을 곱게 빨며 샐쭉거렸다.
마광우는 그러는 계집의 앵두알같은 볼살을 아프지 않게 튕겨주고는 그냥 속심의 말을 털어놓았다.
《교또의 서점이랑 가게점이랑 약방이랑 보니까 전탕 조선에서 만든것들이더군. 대정월이요, 소정월이요 뭐요 하며 폭죽을 터뜨리고 연을 띄우고 씨름을 하면서 명절쇠는걸 봐도 조선이나 명나라의 풍속을 본딴것들이고. 당신네 막부 쇼궁이 어째서 우리 조선과 화친교류를 하려고 안달이 났는지 바이 짐작이 가오. 일본은 우리 나라의 신세를 져야만 부쩍 번성할수 있단 말이요.》
마광우는 주인령감이 마치 막부 쇼궁이기라도 한듯 그를 얄망스럽게 흘겨보며 이죽거렸다.
그런데도 령감은 무턱대고 《네네, 그 말씀 지당하지요.》 이러며 조개턱을 갑삭대였다.
그 꼴을 보니 조선종사관의 환심을 사려고 속조림을 한다는게 헨둥하니 알려 방 한가운데서 독상을 받은 제 주인과 엄연히 구별을 둔 길목에 쭈그리고앉아 급 낮은 탁배기에 지짐부스레기나 씹던 광우의 사환군들조차도 눈이 시려했다.
미야꼬가 해반주그레 웃어대면서 민족적인 감정을 야기시키며 별나게 번져가던 방안분위기를 재치있게 바꿔치웠다.
《그래서 조선사람 고마워 늘 술대접을 하지 않나이까. 조선인이나 일본인이나 두눈, 두팔, 두다리가진 사람이기는 매한가지니 서로 친하면 좋지 않나이까. 우리 부녀는 그저 무사님만 하늘같이 믿고 사나이다.》
딸년의 애바른 교태에 덩달아 주인령감도 바람질을 부쳐댔다.
《실루 소인네 일족이 종사관님에게서 백골난망할 신세를 졌소이다. 접때 어르신께서 불망나니들을 혼쌀내여 쫓아버리지 않았더라면 이 집 가산은 풍지박산이 되고 이 애는 참혹하게 릉욕을 당했을것이옵니다.》
곡진히 개여올리는 령감의 칭찬이 싫지 않았으나 마광우는 점잖게 겸양의 태도를 취했다.
《그쯤한 일 가지고 무얼 자꾸 이러시오까. 자고로 같은 인생지간에 가난은 서로 구제하고 화난은 서로 돕는다질 않았소. 허허, 그지간 틈틈이 지내보니 이 댁의 로인장과 랑자가 은인의 혜택을 입으리만치 덕망이 유한 선인이오다. <충신은 출어고문이고 렬녀는 항다천첩이다.> 라더니 충신은 빈곤한 가정에서 많이 생기는가 보오. 로인장이나 랑자가 바로 그러한 출신이고 기질이 분명하외다.》
진속이 어린 그 소리에 미야꼬가 눈물을 짤끔히 짜더니 《소녀의 머리칼을 베여 무사님의 신발을 삼아 올리고싶나이다.》 하고는 나부작이 마광우의 한쪽무릎우에 올라앉아 사발이 철철 넘치도록 청주를 부어 권하면서 아양을 떨어댔다.
해사하게 생긴 왜계집의 살간지러운 애교에 절로 입맛이 달아오른 마광우는 연방 사발들이를 해댔다.
사실 그는 요새 허리띠를 풀고 들어앉아 술놀이를 할 정도로 속이 편한것도 아니였다.
유정이가 교또에 떨어지는 손문욱과 마광우한테 교또와 오사까를 비롯한 큰 도읍의 다이묘들과 절간 주지들에게서 조선사람들과 문화재들을 반환받아 나고야로 옮겨가라는 군령과도 같은 엄한 당부를 남기고 일본 북부지역으로 떠난 후 마광우는 하찮은 중이 조정관리들을 이래라저래라 하며 시켜먹는게 맞갖지 않고 또 당장 조선으로 돌아가고싶은 마음만이 굴뚝같았으나 북부지구에 대한 내탐을 하느라 신고를 치르고있는 그들을 버리고 자기들끼리만 훌쩍 달아났다가는 후날에 또 나라방비를 등한시한 죄를 들쓰고 처벌이라도 받을것 같아 속이 떨리여 할수없이 남아 울며 겨자먹기로 그의 요구를 실행했었다.
마광우는 제가 맡은 동산도 매 고을의 간사하고 조폭스러운 왜인다이묘들과 주지들과 입씨름질을 하고 때로는 주먹싸움까지 벌리면서 사람과 물건들을 되찾아 나고야로 실어보내느라고 진땀을 뽑았었다, 그동안에 힘겹긴 했지만 이제 그 모든것을 싣고 조국으로 돌아가면 자기가 큰 공적을 세운것으로 평가를 받겠기에 은근히 사기도 났었다.
그런데 북부유람을 떠난 유정이네가 두어달이 지나도록 활시위에서 튕겨난 화살처럼 돌아오지를 않자 붕 떴던 마음은 소금친 콩비지거품처럼 사그라들고 대신 그에 대한 오감이 홍두깨같이 치밀어올랐다. 이제는 막부 쇼궁의 항복도 받았겠다, 임진왜란때 놈들한테 강탈당했던 문화재와 사람들도 어지간히 되찾았겠다, 이러저러한 실력행사로 조선사신의 권위도 세웠겠다 등등 이룩한 성과가 크니 보무당당히 승전고를 올리면서 귀국길에 오르면 될텐데 뭐이 아직 부족하여 타국의 멀고 험난한 북부벽촌에까지 코코이 뒤져보면서 돌아치고있단 말인가? 괜히 이 야한 쪽발이들의 세상에서 날만 질질 끌다가 그새 혹시 속심이 달라진 놈들이 병력을 동원하여 반발적으로 나오면 큰 야단이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해 속이 조밀거리는데다가 마광우는 오사까 이남의 고을들의 일처리를 맡고 떠났던 손문욱참의까지 행처불명이 되여 서로 련계가 끊어지자 혼자 불안스러워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즈막에 지루함과 불안감을 우야 술취기로 가셔버리느라고 여러날째나 청주집출입만 하고있었다.
주인령감네 부녀는 마광우의 불룩한 돈주머니를 넘짚어봐서인지 아니면 진실로 그를 제 가문의 수호신으로 우상해서인지 하여튼간에 온갖 성의를 다해 그를 섬기였다.
그 풍성한 대접에 치여 마광우는 오늘도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고 환락의 세계에서 노닐고있는중이였다.
《자, 또 한잔 할가?》
느직이 외우며 광우가 술사발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자 미야꼬는 저가락으로 손바닥같은 편육 하나를 냉큼 집어 들이받쳐주었다.
《오늘은 고마우신 무사님께 최상최대의 성의를 표하는것이니 값을 물 걱정은 마시고 량껏 드시오이다.》
《허-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데 이거 내가 공짜로 먹었다가 더 값비싼 대가를 치를가봐 겁나는걸.》
《사람진정을 그렇게 오해하시니 실로 섭섭하나이다.》
《허허, 내 그저 롱을 한번 해본거다.》
마광우는 객적게 웃으면서 미야꼬의 야들한 귀망울을 손가락으로 슬쩍 튕겨주었다.
그러자 미야꼬는 해죽이 웃으며 광우의 듬직한 어깨등에 얼굴을 살며시 기대였다. 그는 광우가 자기의 손등을 슬슬 쓸어주자 바싹 더 들어붙으며 회친한 몸을 비꼬았다.
애젊고 해사하게 생긴 계집의 하르르한 머리태가 사각사각 목언저리를 스치고 향긋한 분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말큰한 살감각이 손바닥에 마쳐오자 마광우는 점차 기분이 들떴다.
《오늘은 청주맛이 별로 더 좋은걸.》
마광우가 흡족해하며 사발의것을 단숨에 쭉 들이키고 빈 사발을 내려놓기 바쁘게 미야꼬는 곰살스러운 태도로 동이안의 청주를 퍼서 빈 사발에 찰랑찰랑 부어주군 했다.
마광우는 공복에 대여섯사발을 제끼고나니 머리가 휭 도는것 같았다.
그는 차츰 속이 뜬뜬해지며 세상이 발아래로 굽어보이기 시작했다.
《또 부어라, 또. 내가 이래뵈두 조선의 도성안에선 주량이 세손가락안에 꼽히는 대틀이다, 대틀.》
그 흐드러지는 주정에 미야꼬는 살짝살짝 기름을 쳐댄다.
《주량이 도량이라고 역시 무사님은 천하를 다스릴 당상재목이옵니다.》
《당상재목이라? 흐하하. 랑자가 과시 사람가려볼줄 아는군. 이봐, 임자도 재산을 많이 모아가지고 시집을 잘 가 대감마님이 되라구.》
《아그나, 천비소생인 소녀가 어이 감히 그런 호사를 바라겠나이까.》
《임자가 비록 천비소생이긴 해도 용모예쁜데다가 맘씨 또한 고우니 능히 잘되여 복을 누릴수가 있지. 이봐, 내가 조선에 데리고가서 호강시켜줄가?》
《쇤네가 무사님의 천첩이 되여 따라갔다가 댁의 마님에게 머리털뽑히려고요? 호호.》
이러루한 롱으로 히득거리며 무랍없이 팔등살과 어깨팍을 부벼대는 그들을 못 본척 하고 수걱수걱 음식그릇들을 챙겨 네모소반에 올려놓고난 주인령감은 슬며시 일어나 건너방으로 가버렸다.
곁에 눈치볼 사람이 없어지자 마광우의 호기는 더욱더 뚱하니 솟구쳤다.
《또 부어라, 인제사 진짜루 청주맛을 보는구나.》
《무사님은 참으로 출중하셔요!》
《사내다운 사내지.》
《천하미녀들이 반할만 한 대장부오이다.》
미야꼬는 광우의 허벅다리안탁까지 바싹 엉치를 들이붙이면서 술사발을 그의 턱우에까지 받쳐주었다.
의외의 연고로 인해 그를 알게 돼서부터 상대해온지가 서너달은 지났으나 늘 자기를 어려워하며 언행을 조심하던 미야꼬가 오늘은 별스럽게 몸까지 바싹 들이붙이며 아양을 떨어대는것이 이상스러워 자연히 긴장해졌던 마광우는 취기에 붕 떠 인차 그 느낌을 심상히 여겨버렸다.
마광우는 한쪽팔로 미야꼬의 잘쑥한 허리를 그러안고 다른 한쪽손으로 그가 쉴새없이 부어주는 청주를 달게 받아 마셨다.
미야꼬는 부끄럼을 타긴 하면서도 자기의 회친한 허리를 그러안는 사내의 손을 털어치우지는 않았다.
마광우는 계집과 몸을 꺼림없이 맞대고 희희닥닥거리면서 한동이의 청주를 거의 바닥내다가 그만에야 녹초가 되여 방바닥에 큰대자로 뻐드러지고말았다.
문밖의 퇴마루아래서 서성거리면서 주인이 깨여나기를 기다리던 마광우의 하인배들이 하루해가 서산너머로 기울어버리고 어둑어둑 땅거미가 깃들자 더는 참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와 《나리님- 나리님-》 하고 부르며 마광우의 몸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제 하인배를 올려다보던 광우는 《싹 물러가- 가라, 가- 내 오늘은 집같은 집에서 발편잠을 좀 자야겠다. 에- 그 쌍, 객관생활 지겹기 그지없다.》 이러고는 재차 곤드라져 코를 쿨쿨 골았다.
늦저녁이 되도록 어쩔바를 모르고 뜨락에서 서성거리는 광우의 하인배들을 사랑방으로 불러들인 주인령감네 부녀는 그들에게 한상 잘 대접하고나서 나리님은 자기네가 무탈하게 모시겠으니 래일 아침에 와서 태워가라며 안심을 시켜 돌려보냈다.
그래서야 하인배들은 저희 주인을 부탁하고 돌아갔다.
한밤중에 목이 타드는듯 한 갈증을 못이겨 설핏이 잠을 깨였던 마광우는 화들짝 놀랐다.
언제 의관을 풀어던졌는지 속옷바람이 된 자기는 두툼한 이불포단속에 들어있는데 곁에는 미야꼬가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알몸뚱이로 누워있었기때문이였다.
(이크, 내가 왜년과 한잠자리에 들다니?!)
자기가 불의한짓을 저질렀다는 느낌에 속이 뜨끔해지는 순간 마광우는 한성에서 덩실한 기와집안을 지키며 독수공방을 하고있을 젊은 녀편네의 퍼렇게 독기어린 얼굴이 떠오르고 사헌부와 의금부의 령감네들의 사나운 눈빛이 시야에서 언뜻거렸다.
상감마마의 어지를 받고 중임을 실행하는중인 사신행차의 종사관이 나라의 대의명분마저 잊고 왜나라 계집과 부화를 하다니?! 이야말로 대역부도죄에 걸려 멸족지화를 당할짓이로다.
이런 자책이 들어 이불을 제껴버리고 일어나 옷을 주어입었다.
오목눈을 잘끔히 치켜뜨고 마광우의 거동을 지켜보던 미야꼬가 그의 허리를 꼭 그러안으며 속살거렸다.
《이 한몸 무사님께 바쳤으니 죽이든지 살리든지 맘대로 하소이다.》
마광우는 몸을 비비꼬며 살살 품속으로 파고드는 계집이 꼭 마녀처럼 여겨지여 소름을 치다가 년을 활 털어치우고 일어났다.
그는 방미닫이를 열어제끼고 퇴마루까지 나서기는 했으나 술에 엉망진창이 된 몸이라 바깥의 찬바람을 갑자기 쏘이자 휭 머리가 도는 바람에 털써덕 나넘어져 그 자리에서 다시금 푸푸거리며 곯아떨어졌다.
자정이 지날무렵에 마광우는 누군가의 드세찬 발길질에 채워 잠을 깨였다.
《이년, 롱을 해도 분수가 있지.》
이러며 눈을 질써히 치뜨던 마광우는 자기를 둘러싸고 장승처럼 뻗치고 서있는 어둑도깨비같은 괴한들을 띄여보고 기절초풍을 했다.
마광우는 움찔 일어나려다가 《억-》 하고 신음을 내며 뒤굴렀다.
그의 두팔목이며 다리정갱이가 어느새 오라줄에 꽁꽁 묶이여있었던것이다.
꼼짝달싹을 못하고 눈알만 더부럭거리던 마광우는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대체 왜들 이… 이러는거요?》
《왜 이러는가구? 이보오, 대처에서 뻐젓이 상대국의 유부녀를 간통하고도 체면이 서우? 그 주제에 뭐 한 나라의 종사관이라구?!》
체격이 다부지고 눈망울이 디굴디굴하게 생긴 젊은 놈이 이렇게 이죽거리며 마광우를 흘겨보았다.
광우는 집안팎을 어룽어룽 비치는 등잔빛에 드러난 그자의 모상을 보고 조선사신접반사노릇을 하던 가또태수의 가병대장임을 알았다.
《난 간통하지 않았소- 술에 취해 이제껏 잠만 잤단 말이요-》
마광우는 억하심정이 되여 목터지게 부르짖으며 일어나려고 모지름을 썼다.
《흐하하. 사내장부가 웬 변명이 그리 심하슈?》 하고 이죽거리던 다나까가 부하들쪽에 대고 홱 손짓을 했다.
《내다 실어-》
그 호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곰처럼 우직스럽게 생긴 사무라이 서넛이 달라붙어 마광우를 억지로 일으켜가지고 퇴마루아래로 끌고내려갔다.
마광우는 그때에야 의복을 주어입고 퇴마루아래에 오도카니 서있는 미야꼬를 띄여보았다.
물에 빠진자 짚오래기라도 붙잡듯이 마광우는 놈들을 털어버리고 미야꼬앞에 욱 뻗치고서며 구원을 청했다.
《왜 가만있어? 내가 너와 간통하지 않았다는걸 증언하란 말이다.》
《…》
《넌 유부녀가 아니지 않아. 어서 이들한테 사실여부를 까밝혀.》
그러자 머리를 외로 틀고있던 미야꼬가 마광우를 할끔 쳐다보며 옹알거렸다.
《호걸찬 무사님이 뭘 애들처럼 그러시오이까. 한잠자리에 든 남녀가 아무렴 한몸이 되지 않았을가유? 소녀에겐 이미전에 혼약한 대상자가 있었나이다.》
너무도 의외의 대꾸질에 마광우는 기절할것만 같았다. 초저녁에 자기한테 여느때없이 헐헐히 몸까지 맡기면서 폭주를 권하고 극진스러울 정도로 곰살스레 놀던 미야꼬의 행실을 돌이켜보느라니 광우는 이 년놈들이 자기를 잡자고 이미 작당을 하고 일을 꾸몄다는것이 깨달아졌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이것들은 같은 왜인들이니 그럴만도 하지, 어허, 요런 간특스러운 왜년을 허물없이 가깝게 대해온 내가 우매했지. 혀를 깨물며 개탄하던 마광우는 분통이 터져와 왝왝 고아댔다.
《요망스러운 왜년, 단매에 쳐죽여도 씨원치 않을 암여우같은 년.》
마광우는 미야꼬년의 몸뚱이를 칼로 당장 찢어놓고싶었으나 오라에 결박당한 상태라 어쩌지 못하고 옹노에 걸린 갈범처럼 으르렁대기만 했다.
그러다가 우직스러운 사무라이들한테 걷어채워 뜨락 한가운데로 내뿌려졌다.
청주집뜨락에서 태를 치며 나딩구는 마광우를 사무라이들이 풍을 친 마차에 실어가지고 어데론가로 줄행랑을 쳤다.
바로 그무렵에 교또교외의 으슥한 산기슭에 외따로 자리잡은 절간 별당에서 요시하찌가 초조한 기색으로 어둠덮인 뙤창밖을 내다보며 서성거리고있었다.
이밤의 운수를 점쳐보느라 하늘의 별자리에 줄곧 시선을 못박던 요시하찌는 출입문이 텅- 하고 여닫기는 소리가 등뒤에서 울려서야 몸을 돌렸다.
다나까가 희색이 만면해가지고 들어왔다.
갔던 일이 어떻게 됐는가고 묻는 요시하찌에게 군례를 깍듯이 표하고난 다나까가 승리자연하며 아뢰였다.
《그자를 덮쳐왔소이다.》
《덮쳐왔다구? 모가지가 귀하거든 입부리를 조심해 내가 그를 모셔오라고 하지 않았는가?》
요시하찌가 의외로 눈꼬리를 세우며 책망을 하는 바람에 당황해난 다나까는 얼른 자기의 실언을 바로잡았다.
《하잇, 분부대로 조선사신종사관을 모셔왔소이다.》
요시하찌는 다나까의 짓숙인 어깨를 건성 두드려주고는 훌쩍 밖으로 나갔다.
그는 이즈막에 상전인 가또의 의향에 맞게 조선사신들에 대한 새로운 살인계책을 실행하느라 암수를 쓰는중이였다.
조선사신일행의 실지총수인 금강산 중이 도꾸가와쇼궁을 굴복시켜 저들의 리익을 달성한 후 산수유람을 구실로 북부산업지대에 대한 렴탐을 진행할 때 그를 죽여버리라고 가또의 명함을 빌어 북부의 《도자마》들에게 밀령을 긴급히 띄운 요시하찌는 그후 흡사 생불과도 같은 금강산 중이 신출귀몰하며 여러 고을 다이묘들의 살인기도를 쉽사리 제압해치우고 신수가 펀펀해서 그냥 돌아치고있으며 막부군사들까지도 그들의 신변보호를 맡아한다는 통고를 받고는 더욱 앙심이 돋쳐가지고 기어코 그를 없애버리기 위해 사로운 음모를 꾸몇다.
이번엔 적의 손을 빌어 적을 친다는 손자의 《차도살인》계책을 쓰기로 작정했다. 말하자면 조선사신들끼리 싸우게 하여 금강산 중은 물론 일행전부를 몰살시키는것이였다. 그야말로 막부의 눈도 속이고 조선의 반감도 사지 않을 신기한 묘책이였다.
그 실행고리로서 요시하찌는 조선사신행차의 종사관인 마광우를 선정했다. 마광우가 남달리 술을 즐기고 공명을 탐낸다는 사실을 부하들을 통해 안 요시하찌네는 그 허점을 리용하여 그를 꼼짝 못하게 틀어쥐고 새로운 살인계책을 실현하는데 써먹으려고 그의 단골청주집 령감과 딸을 금덩이로 매수한 후 그들과 작당하여 이밤의 거사를 벌린것이다.
요시하찌가 별당 후원으로 돌아가니 방금 마차에서 부리워 결박을 풀리운 삼십대 초엽의 체격실한 조선종사관이 관청에 잡혀온 촌닭처럼 얼떠름해서 서있었다.
달빛에 희미하게 드러난 조선종사관의 기골 좋은 모상을 얄궂게 뜯어살피며 가까이로 다가선 요시하찌는 그한테 한밤중에 놀래워서 안됐다고 한마디 사과를 한 후 심중을 터놓았다.
《무예에 능한 당신의 신세를 질 일이 생겨 데려오도록 했소.》
이러면서 어느 한곳을 손짓해보였다.
괘씸하고도 분노한 감정이 북받치여 속을 풀떡거리던 마광우가 그쪽으로 얼핏 시선을 돌려보니 자루를 뒤쓴 어떤 사람이 유자나무에 비끄러매여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의아해하는 그한테 요시하찌가 말했다.
《저건 우리 숙소에 새여들었던 도적이기에 죽여치우려고 붙잡아맸소. 헌데 정작 칼질을 하자니 같은 본국인이라 손이 저리는구려. 그러니 당신이 좀 도와주오. 일을 끝내면 곧 당신을 제 사람들이 있는 객관으로 보내주겠소. 그리고 조선사신이 일본의 유부녀와 간통했다는 소문도 내지 않고.》
(요 쪽발이왜놈패두가 웬 암수를 쓰자는거야? 사람을 죽이는짓을 식은죽 먹듯이 하는 사무라이들이 제 집안에 뛰여들었던 도적 하나 처치하지 못해 이웃나라의 사신종사관까지 살인에 청한단 말인가?!)
마광우는 어벙벙하던 정신을 일껏 도사리고 이밤에 당한 변고의 까닭을 따져보다가 리유는 어쨌든간에 지금 당장은 맞갖지 않은대로 놈들의 요구에 응하여 위기를 모면해야겠기에 요시하찌가 내여주는 환도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었다. 오라줄에 묶여오느라 뻣뻣해지고 저려드는 팔굽과 다리무릎을 서너번 놀리며 강직을 풀고난 그는 환도를 비껴들고 나무에 묶이운 사람에게로 다가서다가 주춤 굳어졌다.
자루를 뒤쓴 그 사람이 몸을 꿈트럭이며 뭐라고 저주를 퍼붓는데 입에 자갈을 물리웠는지 발음은 정확치 않았으나 조선말이라는것이 알렸다.
《이 처-언-벌- 맞을 쪽발이…》
자루안에서 간간이 새여나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마광우는 불맞은 사람처럼 화뜰 놀랐다. 달빛에 희읍스름히 드러난 조선중치막차림의 형체가 시야에 안겨드는 순간 그는 소름을 쳤다. 이 간특한 왜놈들이 나를 속여 같은 조선사람을 죽이게 할 작당이였구나, 내가 하마트면 원쑤 왜놈의 나라에서 동족인 인명을 해칠번 했구나.
마광우는 휘뜩 돌아서서 환도로 요시하찌의 면상을 직통 겨누었다.
《늬들이 이 종사관을 뭘루 아는거야? 내 이밤에 조선사람들을 해치려는 네놈들을 일도량단해버리고 떳떳한 죽음을 당하리라.》
판이 글렀다는것을 안 요시하찌는 손을 홱 저어 다나까네 패당을 불러댔다.
《저 어른이 속통이 과히 불었다. 적당히 헛김을 뽑아주라구.》
상전의 령을 받은 다나까네 젊은 사무라이들이 기승을 부리며 마광우에게로 이리떼마냥 사납게 덮쳐들었다.
마광우는 죽기를 각오하고 그자들과 치고 받고 찌르고 하며 격투를 벌리였다. 광우가 택견술을 소유한 무관인지라 번번 날고 뛰였건만 그 용력이 별로 은을 내지 못했다. 다나까를 비롯하여 그의 패당모두가 잠자다가 눈만 짜개지면 때리고 죽이고 하는짓을 업으로 삼아온 사무라이들인데다가 전문 권법과 검술훈련을 받은지라 뒤골목패의 코로즈끼 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던것이다.
마광우는 칼싸움 몇합만에 벌써 어떤 놈팽이의 눈챠꾸(쇠사슬방망이를 단 흉기)에 팔목을 맞아 환도를 떨구었고 자기 특기인 발휘둘러차기로 두어놈이나 겨우 꺼꾸러뜨리고 다나까가 내지르는 주먹질에 급소를 얻어맞고 나넘어졌다.
다나까네 패당은 마광우를 한바탕 두드려팬 후 목매달아 죽인 개처럼 질질 끌어다가 음침한 곡물창고안에 던져넣었다. 그러고는 뒤이어 자루를 씌워 유자나무에 비끄러매놓았던 중치막차림의 조선선비도 풀어다가 그곳에 억류시켰다.
마광우는 곡물창고에 갇힌지 몇식경쯤 지나서야 겨우 의식을 차리고 일어나앉았다.
자기 내의를 찢어 광우의 피멍든 얼굴도 닦아주고 삼거웃처럼 흐트러진 머리칼도 바로잡아 상투를 틀어주던 중치막차림의 선비가 《살았소그려!》 이러며 안심하는 낯색을 짓는것이였다.
얼떠름해서 그 사람을 마주보던 마광우는 어마지두 놀랐다.
손문욱참의를 호행하며 서무원노릇을 하던 그 댁의 홍차지였기때문이다.
《그러니 나무에 묶여있던 그 조선사람이 홍차지였수?》
《옳소, 나였수다.》
《원, 세상에…》
마광우는 기가 막혀 말이 다 안 나갔다.
홍씨는 스무날전엔가 손문욱참의와 동행하여 동해도와 산양도의 다이묘들에게서 문화재와 조선사람들을 반환받아 나고야항구로 집결시키기 위해 규슈쪽으로 떠났었다.
《헌데 어쩌다가 이런 변고를 당했소?》
《비주에서 일을 끝낸 후 참의어른은 다시금 산양도쪽으로 떠나면서 송운대사께 사정을 알리라고 날 에도성으로 띄웠소. 난 참의어른과 헤여진 후 역마를 얻어타면서 북행길을 다그치던중 오사까근방의 어느 객주집에서 류숙하다가 괴한들한테 덮치워 이곳으로 실려왔소. 그런데 마종사는 어찌된 일이요?》
마광우는 속이 찔리여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아무래도 놈들의 죄행을 까밝혀야겠기에 자기가 단골술집에서와 이곳에서 당한 변고를 사실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의 자책에 겨운 말을 자상히 듣고난 홍차지가 리해가 간다는듯 상투머리를 지싯댔다.
《그 까닭을 바이 알만 하웨다.》
《그 까닭이 대체 뭐시우?》
《차도살인 바루 그거지요. 놈들은 마종사가 야심이 많은 사람이란걸 내탐하고 마종사를 송운대사를 암살하는데 써먹으려고 그 단골술집에 덫을 놨댔구려.》
홍차지가 기탄없이 내뱉는 말에 마광우는 속이 찔려 어름적거리다가 골기빠진 소리로 웅얼댔다.
《내가 아무렴 미쳤다고 왜놈을 도와 제 일행을 죽이겠수?》
《본심은 그러하나 일단 끈턱을 잡힌 담에야 놈들이 끄는대로 따라움직일수밖에 없지유. 마종사가 일국의 사신종사관으로서 제 본분은 물론 나라존엄까지도 망각하고 왜년과 한잠자리에 들었댔으니 본의든 본의아니든 그게 첫째 과실이고 그로 인해 놈들에게 약점을 잡혀 붙들려와서 놈들의 살인청탁에 수응하여 제 일행인 이 홍차지를 죽이려 했댔으니 두번째 허실을 범해 그것이 본국과 사신단앞에 용서받을수 없는 큰 죄로 되여 그래서 어차피 놈들의 요구에 휩쓸려들수밖에 없었지요. 틈난 돌이 터지고 설구운 독이 깨진다고 평시에 얼떨떨하게 놀았으니 사달이 날수밖에 없었지요.》
《…》
《자고로 사람이 제 부모와 엇서면 불효자가 되고 친구와 엇서면 원쑤가 되고 나라와 엇서면 반역자가 된다고 했소. 마종사, 일국의 품계를 지닌 무관에게 이 하찮은 차지가 버릇없이 하는 충고이긴 하오만 명심해 들어주오.》
마광우는 자기가 공명과 영달에 혹해 생사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동료들과 엇서다못해 나중엔 본의아니게 나라일을 망그러뜨리고 왜놈들의 꼭두각시노릇을 해 나라님앞에 멸족지화의 대죄를 지을번 했다는 생각이 들어 으시시 몸서리를 쳤다.
그는 때늦게야 펄쩍 제정신이 들었다.
《홍형, 이젠 우린 어째야 좋을것 같소?》
회오에 절어 허우적거리는 마광우를 덤덤히 지켜보던 홍차지는 침중한 소리로 대척했다.
《놈들은 저들의 꿍꿍이가 튀여나간데 반발하여 기어코 우릴 죽일거요. 헌즉 정신이 멀쩡한것들이 어서 날 죽여주소 하고 목에 칼날이 떨어지기를 순순히 기다릴순 없는거고… 그래, 마종산 어쩔 생각이시우?》
《여하튼간에 이젠 놈들의 마수가 송운대사와 참의어른에게로 직접 뻗칠게 분명한데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달을 막아야지요.》
《그러자면 우리 둘중에 누구 한사람이 이곳을 탈옥하여 에도의 막부군을 찾아가 <도자마>인 가등청정네 무리가 조선사신일행을 해치고있는 사실을 알리고 책임을 따지며 방비책을 강구해야 하오.》
그 소리에 마광우는 혀를 내둘렀다.
《원, 실성을 했지. 막부군도 저놈들과 같은 왜놈종자들인데 아무렴 저희 족속인 <도자마>들편을 들지 타국인인 조선사신들을 위할가유?》
《그 말이 일리는 있다만 기실 그런것만도 아니요. 막부 쇼궁이란자는 조선과의 통상을 주장하고 실지적으로 현재 송운대사의 주견에 추종하여 일시적이긴 하지만 그러한 시책을 펴고있으니 <도자마>들의 망동을 알면 우리 나라와의 통상이 튈가봐 결코 가만있진 않을거요.》
《그럼 내가 남겠으니 홍형이 여길 빠져나가 그 일을 감당해주오.》
마광우가 조급해서 거사를 서두르자 홍차지는 난색을 짓는것이였다.
《그 중임은 마종사가 맡아주오다. 난 이미 놈들의 매질에 치여 갈비가 다 마사지고 한팔이 부러지고 다리힘줄이 끊기운 피페한 육신인지라 기거보행이 불가능하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마광우는 펄쩍 뛰였다.
《그럼 홍형을 죽게 놔두고 내만 달아빼란 말이요? 이 마광우를 뭘루 만들 작정이시우.》
《자중하오. 마종사, 그건 달아빼는게 아니라 명실공히 중임실행을 위한 거동이요. 마종사는 원체 체력을 단련한 젊은 사람인데다가 아직 오륙이 크게 상하지 않았으니 거동이 십분 가능할거요. 자, 어서- 시간이 벌써 사경에 이르렀으니 좀 있으면 날이 새오.》
홍차지는 다짜고짜 마광우를 돌벽곁으로 이끌고가더니 높다란 뙤창밑에 등을 구부리고앉았다.
《홍형, 이러면 난…》
이날껏 살아오며 눈물을 모른 마광우였건만 이때만은 주먹같은 눈물방울을 떨구며 홍차지의 두팔을 그러안았다.
그러는 마광우를 홍차지가 무섭게 흘겨봤다.
《일각이 급하오. 어서- 일개인의 잔명보다 나라의 대업을 먼저 위하자구요.》
《홍형! 내 어떤 일이 있어도 에도성에 갔다가 인차 올테니 그때까지 제발 무사하오다.》
이러다가 마광우는 홍차지의 손길에 떠박질려 수월히 뙤창을 빠져 산기슭과 잇닿은 뒤뜰에 뛰여내렸다.
《광우별무사, 사람이 마음 잘 가지면 죽어도 옳은 귀신이 되는 법이니 장차론 나라의 사신종사관답게 옳바로 처신하길 바라오.》
등뒤의 뙤창안에서 홍차지의 기맥빠진 당부가 들려오며 마광우의 심정을 아리게 만들었다.
마광우는 가또놈네 부하들의 추격을 피해 산길을 톺아나가느라 근 보름만에야 에도에 들어섰다.
그때는 마침 북해도까지의 유람을 끝낸 유정이네가 에도로 착 돌아와 도꾸가와쇼궁이 내여준 별당에 행장을 풀고 숨돌림을 하려는 참이였다.
장장 이천여리에 달하는 편답과 생사판가리의 흔적인듯 볼꼴없이 수척해진 송운대사를 만나는 순간 마광우는 여태껏 대의를 위해 분골쇄신해온
그를 진심으로 도울대신 되려 애만 먹여온 제
뿔빠진 소처럼 초췌해진 마광우한테서 긴박한 사연을 자상히 듣고난 유정은 도꾸가와쇼궁을 찾아가 만나 요즘 본토 각지들에서 《도자마》들이 감행하고있는 만행이며 자기가 북부지구의 고을들에서 당한 변고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을 실례들어 알려준 후 막부에서 실지적인 대책을 세워 놈들의 준동을 저지시킬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우린 사신행차의 행수인 도승의 신변을 지키라고 막부군의 유능한 장수까지 파견했소이다. 헌데 사처에서 그런 불미스러운짓이 벌어지는줄은 몰랐구려.》
도꾸가와는 미안하게 됐다고 거듭 사과를 하더니 유정이가 보는 앞에서 막부군의 장수를 불러 시급히 군사들을 파해 막부의 시책에 불응하는 《도자마》들을 족치고 군기를 세울데 대한 군령을 내리였다.
일시 대책을 취하고 숙소로 돌아온 유정은 서리맞은 나무이파리처럼 푹 다부라져있는 마광우를 호되게 꾸짖었다.
《임진조국전쟁때 승병대에서도 그랬고 또 근간에 사신단에 속해서도 그랬고 마종사는 공명을 탐내고 시기질투가 세찬게 큰 탈이요. 사람의 부귀영달도 제 나라가 무사존재해야 실지로 성취될수 있다는걸 전쟁때 그만큼 뼈저리게 체험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씨없이 놀아대오, 엉? 이 야살찬 왜땅에 와서 서로 일심협력하여 나라의 위세를 떨치고 민족의 리익을 달성할 대신 하찮은 일에 편견과 선입감을 앞세우면서 옴니암니 시비나 따지며 감정놀음을 줄창 해댔으니 세상에 그처럼 졸렬하고 얄망스러운짓이 또 어디 있나 말이요? 마종사때문에 우리 나라의 존엄이 흐려진건 물론이고 나라와 민족의 존망을 떠멘 사신행차의 운명까지도 위태롭게 되지 않았는가-》
박달몽치로 되우 내리패는듯 한 유정의 험한 욕설앞에서 마광우는 머리를 푹 떨군채 일언반구의 변명도 못했다.
곁에서 도끼눈이 돼가지고 지켜보던 계명이며 오팔이가 유정에게 당장 조정에 변사를 알리는 장계를 올리고 마광우를 사신일행에서 축출해버리자며 윽윽했으나 유정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귀신은 경에 몰리고 사람은 인정에 몰린댔으나 사실 유정이가 마광우를 경하게 처분하려는것은 단지 인정에 치우쳐서만이 아니였다. 마광우가 본의아니게 사신활동에 해는 끼쳤으나 근본적으로 왜놈들편에 가붙어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역적이 아닌데다가 더구나 그가 이러나저러나간에 조선사람이라는, 지금은 왜땅에 있는 조선사람들이 한데 뭉쳐 왜놈들을 타파하고 나라의 대업을 실행하여야 한다는 오직 그 한생각만을 대범하게 갖고있었기때문이였다.
유정이 이튿날 일행을 거느리고 홍차지를 구원하기 위해 바삐 에도를 떠나 교또로 내려왔으나 그는 이미 놈들의 칼에 란도질을 당해 눈도 못 감고 죽은 뒤였다.
그날 밤 유정이네가 든 객사에서는 홍차지가 남기고간 사품속에 들어있던 참대피리를 꺼내여 홍창해가 불어대는 피리소리가 굴에서 뛰쳐나온 성난 호랑이의 울부짖음마냥 처절하게 호곡을 이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