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운명의 쪽배

5

 

마광우와 헤여진 오팔은 그길로 김해, 창녕, 사천 등 여러 고을을 거치는 수백리길을 내처 걸어 여드레만에 목적지에 다달았다.

그는 장시간 망대고개마루에서 걸음을 멈추고 서서 산아래의 검푸른 바다가에 오붓이 들어앉은 울돌마을과 그 동네주변의 참대밭을 감회롭게 둘러보았다.

《세월은 흘러갔어도 산천은 예이제 변함이 없구나.》

한동안 격세지감에 젖어들어 전쟁때 이 고장을 다녀가던 일을 애틋이 회고하던 오팔은 어서 가서 보고싶던 사람을 만나고싶은 충동이 불같이 일어나 등에 진 괴나리보짐을 추스르며 서둘러 언덕길을 걸어내렸다.

저녁때가 되여서 그런지 우묵히 휘여든 포구에선 전마며 떼마같은 어선들과 매생이들이 몰려들어 붐비고있었다. 목선마다에 물고기나 미역, 조개류같은 어물이 그득히 실렸는데 물참봉이 되고 비린내에 절은 어부들과 아낙네들이 사모쓴 선주의 감시속에서 하선작업을 하느라 경황없이 볶아댔다.

낙지며 조기같은 어물이 집집의 지붕마다에도 널리고 앞뜰 장대들에도 꿰달린 포구마을의 이채로운 광경을 부럽게 휘살피며 겅정겅정 걸음을 옮기던 오팔은 덤장그물뭉테기를 무겁게 메고 허이허이 지나치는 장정 하나를 붙들어세우고 물었다.

《홍창해라고 아직 이 동네에서 살겠지유?》

《홍-창-해요? 오, 그 둘레머리 능로군.》

《능로군이 아니라 우리 별초군의… 가만, 여기선 그게 금시초문이겠군. 거 무사니 오래적부터 예서 살던 사람 말요, 부친이 홍주먹이라 했드라…》

《여하튼간에 박창해가 아니라 홍창해겠지요. 그도 하선을 했을거웨다.》

장정은 숨가쁘게 대꾸하고는 해감내를 물씬 풍겨놓고 가버렸다.

《펄짝 나는 일등무사가 이런 촌구석에서 노대질이나 하며 고기비린내만 맡으려니 오금이 막 쑤셔나겠군.》

오팔은 절로 기분이 들떠 능글대며 잔교로 내려갔다.

그런데 사방에서 섬벙대는 사내들이 하나같이 고기비늘이 게발린 허드레고의적삼차림에 먹베수건을 이마전까지 감아쓴지라 누가 누군지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한참 이 배 저 배를 두릿두릿 훑어대던 오팔은 에라, 집에 들어가 지켜있으면 제절로 찾아들겠지 하며 사람찾기를 단념하고 발길을 돌려 동네로 향했다.

푸르청청하니 우거지게 자란 대밭속으로 속속이 뻗은 지름길을 걸어 산기슭의 동네에 들어선 그는 첫입구부터 한집씩 셈세여나가며 안팎꾸밈새를 살피다가 수십년 묵은 감나무 두그루가 사이좋게 앞뜰에 서있는 삼간초가의 울바자삽짝문앞에서 넌떡 멈춰섰다.

《그때 내가 왔던데가 이 집같은데.》

입안소리로 중얼거리며 삽짝안을 기웃이 넘보던 오팔은 햇강아지와 풋병아리들이 오골거리는 아담한 뜨락에서 혼자 쭈그리고앉아 미역꿰미를 다듬질하고있는 중로배아낙이 눈에 띄자 기침소리를 낸 후 웅글은 목청으로 주인을 불렀다.

《어멈, 말씀 좀 물읍세다.》

그러자 아낙이 일손을 떼고 엉거주춤 일어나며 웬일인가 해 오팔이 쪽을 내다보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서 인정미가 느껴지는 예순살안팎의 녀인이였다.

《웨 그러슈?》

《이 도래말에 홍창해라고 살지요? 그의 집이 이바루 같은데 정작 찾자니 까리까리하군요.》

그 소리에 녀인의 주름진 얼굴이 한층 더 의아한 표정으로 변했다.

《내 홍창해 에미웨다. 헌데 객은 뉘시우?》

《어휴! 면바루 찾아들었는걸.》

문기둥을 절싹 갈기며 환성을 올리던 오팔은 삽짝문을 열고 들어가 녀인앞에 무릎을 끓고앉으면서 너푼 큰절을 했다.

《그간 무고하셨소이까? 제 오래전 그때 진주성안의 병동에서 잠간 뵈온적 있는 오팔이라는 사람이옵니다. 댁의 아드님과 승병대에서 동거동락을 해온 친구이지요.》

《나두 젊은이가 낯이 익긴 하네.》

창해 어머니 최씨는 낯색이 순편해지며 오팔을 눈여겨살폈다. 상투를 틀었으니 분명 량민이고 틀좋은 몸에 소매없는 베옷을 걸쳤으니 정녕 상사람이요 발에 초신감발을 단단히 하였으니 근처사람이 아니라 먼길을 걸어온 나그네임이 알린다. 막일에 잔뼈가 굵은 우럭진 체격과 해볕에 꺼멓게 탄 투둥실한 얼굴이며 장알이 박힌 솥뚜껑같은 손을 보니 한뉘 고생속에 살아온 그야말로 메고나면 상두군이고 들고나면 초롱군다운 탐탁스런 장정인지라 첫눈에도 최씨의 믿음을 자아냈다.

《헌데 이거 어쩐다. 우리 애가 상기두 안 들어왔으니 말이웨다. 이애가 오늘은 웨 이리 늦는고?》

최씨는 자기 아들과 절친한 사이라는 젊은 나그네를 그냥 밖에 세워두기가 미안한지 난색이 되여 동구쪽만 내살폈다.

그러는데 동구길과 쌍가닥으로 뻗어온 지름길의 참대밭머리쪽에서 별안간 걸걸한 음성이 날아왔다.

《어머니, 제 여기서 오고있지 않나요. 하하, 여기요, 여기. 근데 어떤 반가운 객이 왔길래 날 눈빠지도록 기다리오이까?》

허우대가 늘씬한 삼십대 초엽의 젊은이가 물고기비듬이 잔뜩 게발린 허드레고의적삼을 너풀대며 전어꿰미를 량손에 든채 휘휘 활개질치며 걸어오고있었다.

《별군장!- 내가 왔소!》

오팔은 량팔을 활짝 벌리며 홍창해를 맞받아 뛰쳐나갔다.

《아니, 이게 누구여! 오형-》

홍창해도 반색을 하며 뉭큼뉭큼 달려왔다.

한걸음쯤 사이두고 마주섰던 억대우같은 두 사나이는 서로 꽉 부둥켜안았다가 떨어져서는 손을 맞잡은채 빙그르르 서너고패 돌았다.

《글쎄 오늘 별루 저녁해꼬리가 길다 했더니 그게 다 리유가 있었구려. 헌데 오형,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요? 하늘에서 내려왔소, 아니면 바다속에서 솟아났소? 어디 있다가 아렇게 불쑥 나타났는가 말이요.》

《옥황상제의 천궁호위대장을 지내다가 홍대장이 보고싶어 오룡차를 타고 날아왔소.》

《우리 오형이 그토록 번번 날구뛰는 호걸인가? 하하, 참.》

《뭐 별루 놀랄것두 없지유. 우리야 전쟁때 적진에 들어가 수만 왜군을 쥐락펴락하던 무사들인데. 하여튼 반갑소다. 전쟁말엽 울산공격전투때 별군장이 크게 상하고 후송된 후론 결과를 몰라 장장 줄근심을 해왔었는데 이렇듯 정정한 모습을 보니 실루 다행스럽고 기쁘구려. 어어참, 옛적보다 더 몸통이랑 주먹이랑 든든해졌는데요. 내도 막 부럽소그려.》

《허허, 전 또… 천하제일힘장사로 소문난 연개소문까지도 왔다가 울고갈 정도로 억세여지군. 헌데 정말 이거 오형이 우리 집에까지 찾아올줄은 꿈에도 생각못했소그려. 지내볼수록 오형의 우의지심엔 머리가 숙어지는데요.》

한동안 어깨를 들썩이며 정회를 나누던 그들은 다시금 와락 그러안고 서로 가슴팍들을 절싹절싹 치면서 웃어댔다.

그러면서 옛지우끼리 실컷 반가움을 내쏟은 후에야 창해는 오팔을 끼고 들어가 최씨앞에 내세웠다.

《어머니, 전쟁때 나랑 수년간이나 사생동거를 해온 동료예요. 거 있잖아요, 내가 늘 말하던 우리 별초군의 씨름군.》

《오니라, 그 승병대의 힘장사 오황소.》

이렇게 대척하며 주름진 턱을 주억거리는 최씨한테 오팔이가 한마디 내비쳤다.

《황소는 별명이고 본명은 오팔이옵니다.》

《그까짓 부르는거야 아무러면 뭐라나, 인물이 기본이지. 실지로 만나보니 말루 들어오던것보다 더 장걸스럽고 듬직하구만. 난 오늘 아들 하나를 더 얻은것 같은 기분일세.》

최씨는 오팔의 실팍한 잔등과 어깨를 어루쓸면서 기뻐했다.

친구는 물론 친구의 어머니까지도 진정으로 저를 반겨맞아주자 오팔은 기껏 사기가 나서 벙글거렸다.

《어머님, 홍창해이자 오팔이고 오팔이자 홍창해니 이 오팔을 아들처럼 여기고 무랍없이 대해주소이다.》

《알겠네. 임잔 사내답게 생긴데다가 성미 또한 호방스러운지라 내 맘에 꼭 드이. 먼길 올래게 지쳤겠는데 어서 들어가 쉼이나 하라구.》

최씨는 오팔을 방안으로 떠밀어 들여보내고나서 저도 밥을 지으려고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창해의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선 오팔은 보짐을 훌쩍 벗어던지고는 아래목에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전쟁때 왔을적엔 그저 그런가부다 했댔는데 이번에 와보니 꽤나 멀구만. 하긴 그래서 남해변방이겠지.》

저 혼자 웅절거리면서 무릎관절을 꾹꾹 눌러대는 오팔을 본 홍창해는 저으기 미안한 기색을 지었다.

《이거 내가 먼저 오형을 찾아가 문안했어야 할걸 그러지 못해 되려 웃사람인 오형이 먼길을 걷게 만들어서 안됐소.》

《상하관계를 따지면야 나보다두 직급이 우인 대장이 앉아 문안인사를 받는게 지당하지유.》

《원참, 전쟁이 끝난지가 언젠데 아직두 직급타령이시오. 건 그렇고 오형은 그새 어디서 뭘하며 지내셨소?》

《왜란이 끝난 후 의령의 처가에 눌러앉아 가시령감대신 물방아간을 운영하며 살아왔소.》

《방아간주인노릇쯤 했으면 밥술깨나 먹으며 초졸치 않게 살아왔겠는데 행색이 그게 뭐요? 떠돌이품팔이군처럼.》

홍창해가 실망한 기색이 되여 내뱉는 그 소리에 오팔은 무안해할대신 셈평좋게 벌쭉거리면서 너스레를 피웠다.

《먼길을 나다닐 땐 이런 베잠뱅이차림이 그저 무탈하지유. 멋없이 좀 사는 생색을 내다가 로상에서 도적들한테 걸려들어 난사를 치를게 있소?》

《원, 오형같은 무적의 힘장사도 도적따위를 겁내우?》

《겁나서가 아니라 시끄러워서 그러오. 참 홍대장, 내 이번 길에 개똥같은자를 하나 만나 맥을 좀 뽑았소.》

《어떤 작자게요?》

《전쟁때 우리네 별초군에 있던 마광우가 생각나우?》

《생각나지 않구요. 아직까지도 그자에 대한 원한이 내 뼈속에 맺혀있소.》

《그 자식이 어떤 세줄을 탔는지 중앙관청의 벼슬아치로 둔갑하여 하졸들까지 거느리고 흔들짝거리질 않겠소. 거세하지 않은 수말과도 같은 마가와 한탕 붙었댔는데 하마트면 그자의 발휘둘러차기에 맞아 턱이 달아날번 했소.》

오팔이가 노죽스럽게 죽어 자빠지는 시늉까지 해보이자 홍창해는 어처구니가 없어 개탄을 했다.

《허허, 오형이 실성을 했소그려. 그 힘가지고 매를 맞아요? 어째서 그 말뼈다귀같은 놈팽이의 다리갱이를 콱 분질러놓지 못했소?》

《마가의 싸움솜씨가 예전같질 않습디다. 어디서 전문택견훈련을 받았는지 급소강타만 들이대며 훌훌 날구뛰는게 당해내기가 조련치 않더군요.》

그 말이 미덥지 않아 눈이 커져가지고 둘레머리를 기웃거리던 홍창해는 오팔의 말하는 태도가 한점도 꾸민데가 없다는것을 알고는 쓰겁게 웃어버렸다.

《그렇게 됐는가아? 허허, 우리 계명이가 있었으면 그놈 망신을 탁탁히 시켜주는건데. 참, 오형두 계명이행방을 모르우?》

《왜란이 끝난 담에 헤여진 후론 여직까지 한번도 못 봤소. 그 앤 늘 총섭님의 그림자였으니까 아마 지금 유정스님이 상거하는 금강산에 가있을거요.》

《계명이가 보고싶군요. 총섭님도 보고싶고.》

이러루하게 화제가 엇섞이며 끝이 없게 번지는데 새문이 열리더니 어느새 밥을 지었는지 개다리소반에 음식그릇들을 챙겨든 최씨가 들어왔다.

《먼길을 오느라 시장했겠는데 어서 끼식을 때라구.》

최씨가 바삐 차리느라 가지수가 성기여져 안됐다고 량해를 구하면서 들고온 음식상을 둘사이에 내려놓았다.

밥상에서 풍겨나는 구수한 밥내와 물고기지진 냄새가 한창 식욕이 왕성한 때인 사내장부들의 빈 창자를 간지럽혔다.

좁쌀과 팥을 섞어 지은 밥이 벌떡사발에 무둑히 담겨진것을 본 오팔이의 입이 헤벌쭉해졌다.

《어머님, 손이 과히 크십네다. 이러단 나그네 하루밤 대접에 집의 쌀독이 밑창나겠소이다.》

《그런 걱정말구 많이 자시기나 하라구. 이거 귀한 객한테 대접이 변변치 못해 그지없이 미안하네.》

《원, 이거문 진수성찬이지요. 이 하분하분한 참미역국이랑 조기절임이랑 전어자반이랑은 내륙에선 쉽사리 맛볼수가 없는 귀물이라니까요. 어머님의 성의를 봐서 내 상의 그릇들을 말짱 밑창내겠소이다.》

《어서 그러라구. 허허, 임잔 사람이 너글너글해서 좋구만.》

반백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서 느슨한 미소를 짓던 최씨는 오팔이가 마음놓고 밥을 먹게 하느라 인차 부엌으로 나가며 새문을 닫아주었다.

오팔은 진짜로 시장했댔는지 곡상으로 눌러담은 밥 한그릇을 미역국에 말아 숟가락으로 푹푹 떠서 순식간에 게눈감추듯 먹어치웠다.

그와 동무하며 천천히 수저를 놀리던 창해가 제 밥사발의 밥을 듬뿍 한술 떠서 그의 빈 밥사발안에 덧놓아주었다.

그러자 오팔은 숟가락질을 멈추고 게면쩍게 웃었다.

《부산에서 곧장 여기로 오다나니 려비가 바닥나서 대충 끼땜을 한지라 렴치마저 먹어치운가보오. 원체 내 배집이 크다나니 이거…》

《누가 뭐 어쨌다 그러우. 오형 식성을 내가 잘 아니 미안해하지 말고 많이 드오.》

이른 저녁식사를 치르고 랭수로 입가심을 하고난 두사람은 두루두루 한담을 이어나갔다.

그러던중에 오팔이가 별로 새삼스럽게 홍창해네 집안살림형편을 살피다가 불쑥 화제를 바꾸는것이였다.

《이게 무슨 꼴이요? 년로한 홀어머니를 아직도 부엌동자질시키면서 말이요. 별군장은 왜서 여직 장갈 안 들었수?》

그 느닷없는 물음에 창해는 시무룩해서 한숨만 내그었고 오팔은 또 저대로 등이 달아 엇드레질을 해댔다.

《혹시 전쟁때 밀혼을 했던 그 한양의 참판댁아씨를 여직까지 속에 품고있는게 아니요? 그 아씨야 정유란때 왜놈들한테 잘못되지 않았소. 넨장, 관안에 들어갈 때까지 죽은 아씨만 그리며 수절을 할내기요? 한뉘 고생속에 살아온 모친 생각도 해야지요.》

《…》

홍창해의 둥실한 얼굴에 구름장이 끼는것을 본 오팔은 말한 본전도 못 찾은채 쓴입만 쩝쩝 다시다가 슬쩍 화제를 바꾸었다.

《내 사실은 별군장과 심중히 의논할게 있어서 왔소.》

《웬 일이게요?》

오팔이켠에서 먼저 녀자소리를 걷어치우자 다소 옹색한 처지에서 벗어나 숨을 돌리던 홍창해는 어지간히 긴장해지며 대척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그의 반응을 넌지시 주시하던 오팔이가 긴숨끝에 곱씹었다.

《아주 중대하고도 절박한 일이요.》

《어서 말하오다. 내 힘닿는껏 도울테니.》

홍창해가 우의심을 드러내며 재촉을 해서야 오팔은 진속에 품고있던 내막을 털어놓았다.

《스님이 왜국에 사신으로 간다오. 그래서 우리가…》

《스님이라니?! 어느 스님 말이요?》

《우리에게야 유정스님밖에 더 있소? 아, 그 총섭님 말이요.》

《뭐, 그럼 총섭님이 왜나라에 간다는거요?》

《실루 그렇다니까.》

《사신이라면 나라님의 령을 받았다는건데 어-허참. 참혹스러운 전란때에도 나라중임을 걸메고 생사를 가리는 적중에 나들며 죽을 고비를 수태 겪더니 평화로운 오늘날에 와서까지 또 그런 역사를 치른단 말이요? 이젠 총섭님의 년세가 예순이 됐겠는데 환갑에 이른 그런 늙은이를 험난한 바다건너 원쑤의 소굴로 보내려고 하니 나라님도 너무하구만.》

《그래서 난 홍대장이랑 나랑 스님을 보좌하며 왜땅으로 건너가자구 왔소. 둘이 같이 가서 총섭님을 돕잔 말이요.》

《우리가 그런 거사를 꽤 감당해낼가요?》

홍창해는 선뜻 호응을 못하고 막연하여 뙤창밖의 하늘만 내다볼뿐이였다. 사실 그도 언제건 왜국에 한번 건너가볼 생각을 해본지가 오랬었다.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쉽사리 단정할수가 없는 사랑하는 녀인! 창해는 윤옥비의 죽음을 좀처럼 믿고싶지도 않았거니와 만약 그가 진짜로 왜놈들한테 끌려가 잘못되였다면 온 일본땅과 바다속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그의 유해라도 찾아다가 윤병두참판의 마지막유언대로 그의 친아버지묘소가 있는 경원 두만강가 봉화대산에 묻어주고싶었었다.

하지만 그가 헤쳐나가야 할 앞길은 너무도 혹독하고 삼엄한것이였다.

그 거리와 깊이를 알수 없는 망망대해와 간악스러운 원쑤의 무리를 타개하며 생소한 왜국을 일편주하기에는 그 혼자의 힘과 수단이 절로 탄식이 나갈 정도로 너무도 소약했던것이다. 그때문에 차마 용단을 못 내리고 차일피일 오늘까지 미루어온것이다.

그가 기연가미연가하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통에 오팔은 저대로 등이 달아 재구를 쳐댔다.

《제기랄, 떨기나새나. 별군장이나 내나 천하에 상대가 없을 정도로 제노라 하는 싸움군들인데 무얼 겁낼게 있소?》

《겁나서가 아니라 여사모사한 생각때문에 그러는거요. 우리가 제땅에서야 아무리 번번 난다긴다 해도 야수의 무리가 살판치고있는 왜나라땅에서야 사정이 다르지요. 오죽하면 호랑이도 제 골안을 벗어나면 등허리를 구부린다 하겠소. 더군다나 사신행차야 조정에서 인원수와 당사자들을 개개이 점찍어 선정하겠는데 우리같은 외딴 시골상놈이 어이 감히 끼여든다는거요.》

이러며 홍창해가 미적지근하게 나오자 오팔의 낯색이 홱 달라졌다.

《어제날의 의롭고 용맹스럽던 별초군대장이 그새 무맥스러운 밥벌이군으로 전락됐소그려. 완전히 허울만 남았다니까. 난 그래도 크게 믿고 찾아왔었는데 안되겠군.》

제 속감정을 그대로 내쏟던 오팔은 별안간에 노염이 살아나는통에 더 말을 못하고 입귀만 씰룩거렸다.

그는 애가 모락모락 타는 한숨을 내불다가 육중한 상체를 벽에 기대이며 눈을 지써 감아버렸다. 솥뚜껑같은 손바닥을 뭉그려 주먹을 쥐였다폈다하며 끓어번지는 심중을 한동안이나 진정하고나서야 상반신을 버썩 일으켜 바로 앉아 홍창해를 올곧게 쳐다보며 목갈린 소리로 뇌이였다.

《홍대장도 알다싶이 참혹한 왜란이 한창이던 때에 내가 총섭님의 은혜를 입어 파승을 하고 꽃같은 랑자에게 장가를 들었을 때 별군장을 비롯해서 승병대의 친구들이 나를 복있는 사내라며 한결같이 부러워했었지요. 내자신도 그런줄로 여겼었고. 물론 부모처자를 잘 만나고 가산이 넉넉하여 근심걱정없이 오래 사는것은 예로부터 일러오는 오복중의 하나지요. 허지만 난 그게 진짜 복이 아니란걸 알았소.》

왜란이 끝난 후 의병대들이 해산될 때 오팔이도 동료들과 헤여져 처가가 있는 의령으로 돌아왔다. 한해전에 처가 떡돌같은 아들을 낳았고 또한 아들애의 이름을 오복남이라고 지었다는것을 이미 알고있던지라 의령성안에 들어서는 그의 걸음엔 날개가 돋친것만 같았다. 오호라, 바람많은 허허들판의 한지에 선 들메나무마냥 의지가지할데 없이 자라며 눈치밥이나 먹어온 이 외톨뱅이에게도 단란한 가정이 생겼구나. 예쁘고 착한 달녀와 다정히 손을 맞잡고 가시집 부모들을 착실히 섬기고 집살림을 깐지게 꾸리고 오손도손 애기를 키우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리라. 세상천하가 우리 가정, 우리 살림을 시샘이 나서 넘보게 만들테다.

이렇게 한껏 부풀어나 흥떡이던 심정은 처가집의 사립문을 열고 들어선 첫 순간에 산산이 쪼각나고말았다.

참대토막을 대껍질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삽짝문을 열고 애틋한 추억이 어린 뜨락안으로 들어서며 집주인을 소리쳐 찾으니 거미줄과 먼지투성이인 집안에서 찌구덩 외짝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벼락을 맞아 얼친 사람꼴이 된 가시어머니와 젖을 못 먹어 왕가물철의 풀대처럼 기껏 여위여져 목대가 간들거리는 애기뿐이였다.

《다들 어디 갔소이까?》

오팔이가 얼추 문안을 한 후에 불안이 내비낀 소리로 묻자 가시어머니는 《다들? 웬 누가 더 있다고 다들인가. 령감과 애에민 저승으로 가버렸네.》 이러더니 그새 파뿌리처럼 변해버린 머리칼을 줴뜯으며 꺼이꺼이 통곡을 하는것이였다. 그러고나서 가시어머니는 제 령감과 딸이 정유왜란(일본침략군이 1597년도에 감행한 2차침공)때 왜놈들한테 잘못된 사실을 말해주었다.

오팔은 하늘이 와르르 꺼져내리는것만 같아 아들애를 한번 안아볼 생각도 못하고 풀써덕 무너져앉아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치며 황소의 영각같은 울음을 터뜨렸다.

《달녀- 달녀- 내 처를 웬놈이 언감생심 해치웠느냐?-》

그러다가 오팔은 후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나 뜨락구석에서 몽둥이를 하나 찾아들고 동구밖으로 뛰쳐나갔다. 여태껏 가슴안에 애모쁘게 품어오던 처와 친부나 같은 가시아버지를 살해한 왜놈들이 근처 어디에 숨어있기라도 한듯 사방을 샅샅이 뒤지며 불맞은 호랑이처럼 날뛰며 돌아치다가 덩지 큰 바위 하나를 콩가루로 만들어놓고서야 어지간히 직성이 풀려 되돌아왔다.

그날부터 오팔은 어미잃은 불쌍한 아들애와 정신이상이 온 가시어머니를 부양하면서 집살림을 맡아나갔다.

한창 혈기가 방장할 때에 궁상스럽게 홀아비생활을 하는 사위가 가없게 여겨져 가시어머니는 오팔이한테 재취할것을 귀아프도록 권고했으나 오팔은 그때마다 질색을 하군 했다.

그는 자기가 장가를 들 때 제 일처럼 기뻐하면서 모두 떨쳐나 돕던 승병대시절의 동료들과 왜놈들 손에 잘못된 처한테 죄되는짓이라며 재취같은것은 애당초 꿈도 꾸지 않았다.

철부지아들애가 제 어미를 찾으며 징징 울고 이러저러한 고달픔으로 인해 먼저 저승길로 떠나간 처가 그리워질 때면 오팔은 자기에게 그런 불행을 들씌운 원쑤 왜놈들에 대한 증오가 끓어올라 왕주먹을 떨군 했다.

이런 뼈저리는 생활고속에 달이 가고 해가 바뀌였다.

그러루한 나날을 벙어리 랭가슴앓이하듯이 살아오던 오팔은 이해 여름에 왜국에서 조선에 교류를 요구하며 저희네의 말을 안 들으면 옛적처럼 대군을 일으켜 침공하겠다고 위협공갈을 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피가 꺼꾸로 치솟아 참을수가 없었다. 더구나 왜국과의 일때문에 유정스님이 사신중임을 떠맡고 왜국으로 가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속이 들뛰는 자신을 걷잡지 못했다.

오팔은 유정스님을 따라가 스님일을 도우며 무자비하게 왜놈소굴을 짓뭉개버리여 속씨원히 한풀이를 하고싶어 사신행차가 출발한다는 부산포로 촉급히 달려갔었다.

그는 가시아버지와 팔촌형제지간인 부산관가의 공방을 구슬려대여 사신일행의 출항예정날자도 알아냈고 사신배를 부리는 노군자리도 마련해놓았었다.

그런 후 임진조국전쟁때 도총섭을 호위하며 저와 함께 적진속에 드나들던 유일한 짝패인 홍창해생각이 간절해져 그를 데려가기 위해 오늘 이처럼 울돌마을을 찾아온것이였다.

《하건대 내 궁냥이 짧았댔소. 별군장이 천하의 졸부로 변한줄도 모르고 옛날처럼 총섭님을 호행하는 장거의 짝패로 삼으려 했거던.》

피눈물이 금시 뚝뚝 흐르는듯 한 오팔의 인생담을 눈을 지그시 내려 뜨리고 묵묵히 듣기만 하던 홍창해는 자기를 졸장부로 내려치는 소리에 낯색이 홱 달라지며 성을 냈다.

《오형이 당한 일이 가슴아프긴 하오만 귀맛은 좋지 않구려. 자꾸만 날 팔삭둥이처림 여기려드니 말이요. 거 너무 사람을 속단하지 마오다.》

《뭐 속단한다구요? 흥, 세상 헨둥하게 알리는데두 나때메 못난이로 됐다니 시시해서 말할 재미도 없소그려. 콱 도루 가고말아야지.》

오팔이도 맞받아 울끈해져 돗자리 한구석에 밀어놓았던 제 보짐을 되집어들고 휘딱 일어났다.

그러는것을 홍창해가 벌떡 따라일어나 그를 휘둘러잡아 되눌러앉혔다.

《날 뭘루 만들자고 이러우? 오형이 지금 가면 난 수백리 먼길을 걸어 찾아온 친구를 선자리에서 돌려보낸 무뢰한이 되여 사람들한테서 손가락질을 당한단 말이요.》

《그래서 어쩌자는거요? 여하튼간에 난 별군장이 씨원한 대답을 안하문 가고말겠소. 그래, 나랑 동행할테요, 안할테요?》

《성미도 참, 콩밭에다가 서슬을 칠 잡도리로군. 이보오, 내 언제 안가겠다고 꼭 짚어 결정하기라도 했게 설설 끓나 말이요? 내 원참.》

창해의 입에서 그런 푸념질이 나와서야 오팔은 잔뜩 주름살이 졌던 미간을 풀며 보짐을 도로 내려놓았다.

《허니 내 말을 따르겠다는거겠소?》

《별수 있소, 그 생억지에 지는 수밖에. 이젠 나이도 어지간한데 와들짝거리는 성미 좀 고치구려.》

제 목적하고왔던 일이 성사될 가망이 보이는통에 기분이 들뜨기 시작한 오팔의 귀에 창해의 그 핀잔이 들릴리가 만무했다.

《에라, 그럼 왔던김에 바다놀이나 좀 하구 갈가. 왜국행을 하자면 바다를 건너야 할텐데 그러자문 미리 배군에게서 노젓는 법을 익혀두는것도 괜찮지.》

오팔이의 능청스러운 노죽에 홍창해는 어이가 없어 피씩 웃고말았다.

그들은 일시 뒤틀리던 감정을 서로 다 눅잦히고 장밤을 후일담에 이어 이러저러한 한담으로 지새웠다.

이튿날 중낮때 홍창해는 오팔이의 요구에 의해 그를 매생이에 태우고 바다로 나갔다.

오팔이가 오래간만에 구경하는 바다경치인데다가 난생처음 해보는 배놀이여서 실로 장쾌로운 감흥에 잠겨 배전에 기대앉아 흥얼흥얼 코노래만 부르는데 저혼자 씨엉씨엉 노대를 휘젓던 홍창해가 별안간에 손에 들어쥔 노대로 선체를 지끈 내려치면서 울부짖는것이였다.

《젠장, 내가 뭐 졸부라구요? 날 뭘루 보구 그러는거요. 갈테면 가잔 말이요. 우리 함께 총섭님을 호행하며 왜국에 가서 그 쌍 쪽발이새끼들의 목대를 모조리 비틀어버리잔 말이요.》

《하하, 인제사 홍대장 본성이 나오는군. 어참, 날씨도 좋다.》

오팔은 만사가 제대로 돼간다는듯 벙글벙글 웃다가 전쟁때 승전을 이룬 후면 즐겨부르군 하던 《쾌지나 칭칭 나네》를 휘파람으로 한곡조 멋들어지게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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