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길은 하나다
5
지겹던 겨울은 어언간에 저 멀리로 물러가버리고 만화방창하는 새봄이 이 땅에 도래하였다.
오늘은 도성의 량반이건 시골의 상민이건 누구나가 다 햇풀밟이와 화전놀이로 하루를 즐긴다는 삼월삼짇날이다.
시골벽촌의 산야에 햇풀이 돋아나 푸르르고 가옥마다 청제비가 쌍쌍이 날아들어 둥지를 트는 양춘가절에 삼월삼짇날을 맞은 한양성안에도 소생의 훈향이 차넘쳤다.
봄명절날의 특식인 쑥떡을 빚느라 장밤을 새운 민가들에선 날밝기 바쁘게 조무래기들이 튕겨나와 바람개비싸움을 벌리면서 오구작작 떠들었다. 그러는새 어느덧 새벽이슬에 젖은 해가 락타산우로 불쑥 둥싯한 자태를 드러냈다.
아침해가 물기를 털어버리고 중천으로 둥둥 떠오르자 때를 기다린듯 연지곤지로 곱게 화장을 하고 록의홍상차림을 한 각시들과 랑자들이 청계천기슭의 그네터로 모여들었다.
분홍치마를 봄바람에 나붓기며 창공으로 솟아오른 녀자들이 방울을 찰 때 숲너머의 씨름터에선 기운뻗친 장사들이 샅바를 거머잡고 욱욱 힘내기를 벌려댔다.
이날 사람사태로 인해 호화판을 만난건 한양성이 생긴이래 《윤종가》로 번창하던 종로저자거리였다. 장난꾸러기들의 고무총이며 갑사댕기로부터 시작해서 아낙네들의 속옷빈침은 물론이요 늙은이등걸이와 지어는 칼도마며 밥사발이며 장농자물쇠에 이르기까지 각종 생활비품이 가득 쌓인 가게점마다에선 형형색색의 인총이 발옮겨짚을 자리조차 없이 꽉 들어차서 붐벼댔다. 박쥐저고리(색동옷)에 당혜를 신은 계집애나 복건을 쓴 사내애의 손목을 잡고 사뿐사뿐 갖신 신은 발을 옮기는 삼회장저고리차림의 예쁜 가시내가 있는가 하면 하인배나 방자를 꽁무니에 달고 대로 한복판에서 희락거리는 람색전복차림의 미끈절싹한 대감댁의 도련님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중치막이나 두루마기차림을 한 중인신분의 남정네들과 행주치마를 두른채로 분주스럽게 널대문밖을 들락이는 려염집아낙네들도 보였다. 그러한 사람사태속에서도 비단도포에 흉배를 달고 람여를 탄 나리님네들과 털배자겉에 조바위나 람바위를 휘걸치고 손목에는 금고리와 털토시를 낀 마나님들이 제세상인듯이 횡행하며 마냥 뽐을 낸다.
그런 복새통에서도 산수털벙거지에 다홍다리아청군복을 걸친 군교들과 짚신감발을 한데다가 풀대님질한 무명고의가랭이를 무릎까지 걷어올린 외촌농군들은 량반님네들의 눈을 피해가며 슬금슬금 제볼장을 보기에 여념이 없다.
청계천상류인 홍인문안팎의 《아래대》에 거처하는 군교로부터 시작하여 구리개아근의 중촌에 사는 의관, 역관 등의 증인들을 거쳐 산수좋은 북악산밑 삼청동의 량반유생에 이르기까지 부담마를 앞세우고 경치좋은 곳을 찾아 놀음길을 떠나는 중낮때였다.
검푸른 합각지붕을 위세있게 솟구고 엄엄스러운 정숙속에 잠겨있던 대청안에서 돌연간에 뿔나팔소리가 뿌웅- 하고 터져오르더니 잇달아 대고소리가 둥다당둥다당 하고 흥그럽게 울리였다.
그로부터 한식경쯤 지나 쌍대문이 기척도 없이 나비날개 펴듯 활짝 열리더니 임금의 행차가 쏟아져나왔다.
화전놀이의 분위기에 들떠 삼삼오오 떼지어 희희락락거리며 대궐앞의 통로를 오가던 각양각색의 행인들이 수리를 본 새떼마냥 급기야 길가로 우르르 흩어져나가 머리를 구겨박으며 연줄 엎드렸다.
대통로량쪽에서 줄줄이 부복배례를 하는 도성안의 주민들한테 나라님의 지엄스러운 존재를 시위하련듯 화려하게 치장된 궁마를 탄 선전관이 《쉬이- 휘여- 물러까라 비껴까라 상감마마 나옵시오-》 하고 거센 목청을 호기스럽게 뽑아대면서 맨 먼저 길잡이를 하며 평보로 달려나왔다.
그뒤로 소바 몇기장쯤 사이를 두고 연홍색더그레를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시위대의 끌끌한 군사들이 황룡기와 부대기를 창공에 솟구고 창검을 번쩍거리면서 오마작대(오렬종대)로 선봉이 되여 나타났다. 시위대의 행렬이 우줄우줄 흘러나오다가 꼬리가 설펴지기에 이제는 그 수가 끝나는가 했는데 별안간에 앞의것보다 더 어마어마한 기마군사들이 나타났다.
억척반석같은 시위군사들의 철통같은 호위를 받으며 황금일색의 비단휘장을 둘러친 련(임금이 타는 가마)이 잔물결에 실린 꽃배마냥 교군들의 머리우에서 흐느적이며 둥둥 떠나왔다.
잇달아 내시들이 임금을 시종하며 뒤따랐고 또 그뒤에선 빨갛고 노랗고 파란 치마저고리를 울긋불긋하니 떨쳐입어 흡사 한무더기의 만발한 봄꽃과도 같은 궁녀들이 요염을 풍기며 줄지어 흘러나왔다.
후위행렬의 앞에선 궁궐악대의 푸른 수건, 푸른 옷차림인 남녀악공수십여명이 흥야라 붕야라 풍악을 잡아나가고 중간쯤에서는 도리옥을 붙이고 홍색, 람색의 비단도포에 쌍학흉배를 단 대관 몇이 제마끔 품직에 해당되는 승교에 올라앉아 하인들의 시중속에 거뜰대며 떠간다.
의정부와 리조, 호조, 례조, 병조, 형조, 공조 이 6조와 한성부가 좌우에서 재무지를 털어치우고 전쟁전처럼 으리으리하게 형체를 솟구고있는 중심거리를 어느새 축낸 임금의 행차는 청계천을 타고넘은 혜종교 근처에서 문득 방향을 인왕산쪽으로 돌려 강변길을 거슬러올랐다.
덩실한 련안에서 곤룡포자락을 휘감은채 상반신을 엇비듬히 젖히고 앉은 선조왕은 안광이 침울해서 휘장밖으로 느릿느릿 스쳐지나는 봄풍경만 덤덤히 내다보았다.
어화자-지화자- 이러한 건드러진 풍악이 한봄철의 훈향과 어불리면서 흥취를 한껏 돋구고 억척장신의 무사들과 꽃같은 예쁜 궁녀들이 행차의 위세와 호화로움을 지극히 뽐내면서 줄줄이 호행했건만 선조왕의 기분은 흥뜰줄을 몰랐다.
선조왕은 요즘 복잡다난한 국사와 궁중야사로 인해 뇌심초사가 여느때없이 심한 상태였다.
낮에 편전에 나앉아 정사를 보느라면 함흥차사격이 되여버린 왜국에 간 탐적사일행에 대한 분분한 의견상쟁과 사분오렬된 문무백관들(서인파를 짓누르고 권력을 틀어쥔 동인파가 다시금 북인파와 남인파로 갈라져 다투고있었다.)의 피터지는 당쟁을 탕평하느라 골머리가 빠개질것 같았고 또 밤이 되여 침전에 들면 왕세자자리를 놓고 치렬하게 벌려대는 왕자들의 암투와 그것을 둘러싼 왕후, 왕비, 대신들의 쏠라닥질때문에 심기가 편할새 없었다.
그러던차에 도성안에 봄기운이 완연해지며 삼월삼짇날이 오자 씨원히 들바람이나 쏘이면서 햇풀밟이와 화전놀이로 온갖 번뇌와 잡념을 털어버리려고 만사를 밀어놓고 궁궐을 나섰건만 웬놈의 귀신병이 체내에 쉬라도 쓸었는지 좀처럼 흥심이 나지를 않는것이다.
그 까닭을 곰곰히 따져보던 선조왕은 《하긴 인제야 그럴 때도 됐지.》하며 맹랑한 소리로 중얼댔다. 그러다가 마른나무에서 진짜내듯 이미
로쇠해진 육신에서 한창때처럼 혈기를 돋구어 시흥춘풍을 즐겨보려던
제아무리 권세와 부귀의 바다속에서 영화를 누리는 임금일지라도 어디까지나 사람인이상 백년천년 젊어 살수는 없다. 리치는 그러하나 선조왕은
선조왕은 선왕들때에는 상상조차 못한 임진왜란이라는 대동란에다가 당쟁의 시달림까지 당한
더구나 십년가까운 장구한 나날 조선을 침범한 왜군의 악행속에서 온갖 치욕과 고통을 겪던 일은 죽어도 잊을수가 없었다. 명나라와 접경인 압록강에까지 지싯지싯 쫓겨가 고역을 치르다가 하마트면 선왕들이 대대로 물려온 나라와 백성마저도 잃을번 했던 그 악몽같은 변사를 생각하느라면 왜놈들에 대한 증오가 치솟았고 그러다가는 아울러 가증스러운 왜놈들을 삼대베듯 쳐부신 충의용장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커졌다. 하여 전란이 끝난 후 충무공 리순신같은 희생된 명장들에겐 사당을 지어주고 매해 어김없이 제를 지내도록 했고 곽재우나 정기룡이나 유정이같은 살아있는 명장들한테는 벼슬품계와 록봉도 아낌없이 높여줬었다.
헌데 나라를 지키는 싸움에 공헌한 애국명장들은 임금이 하사하는 권세와 재부마저도 마다하고 시골에 묻혀 조용히 살아가건만 국난의 시기에는 제 살구멍만 찾던자들은 되려 평화가 이룩되기 바쁘게 아득바득 권모술수를 다해 공신감투를 얻어쓰고 조정에까지 바라올라 더 큰 권세와 재부를 차지하기 위해 당쟁까지 벌려대며 시국을 어지럽히고있는것이다.
그러한 간신들을 짓쳐버리자고 하니 간신들 대개가 왕족이요 왕비인척이요 하는 궁중세력과 얽힌자들이라 서뿔리 손을 댈수가 없었다.
이런 사연으로 해 더구나 뇌심초사가 짙은 선조왕이다.
자연히 심중이 무거워져 조는듯마는듯 싯허연 장미를 치뜨리고 어디론가 둥둥 떠가던 선조왕은 불시에 련이어 들춰대는 충격에 놀라 혼미해지던 상념에서 깨여났다.
웬일인가 하여 휘장을 제끼고 내다보니 방금 교군들이 개울을 건너 방뚝에 올라서는중이였다.
행차는 어느덧 인왕산을 가까이하고있었다.
한성안에서 인왕동은 두번째로 손꼽히는 풍치좋은 곳이다.
첫째로는 삼청동이고 그다음은 인왕동이요 그다음은 쌍계동과 청학동이다.
북악산밑의 삼청동이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으뜸이긴 하나 근처의 남촌에 사화당쟁에서 밀려난 조정퇴물인 량반들이 가득 널리여 사는지라 선조왕은 부디 그곳을 피하고 활터가 있는 인왕산밑으로 행차를 띄운것이다.
점차 시야로 확연히 비껴드는 풍치좋은 인왕산의 봄절경에 심신이 무르녹으며 안정감에 잠겨들던 선조왕은 어데선가 난데없이 울리는 꽹과리소리에 화뜰 놀라났다.
쾡쟁쾡쟁 숨가삐 이어지는 그 소음은 놀음흥취를 돋구는 그런 풍악이 아니라 그 어떤 긴박한 사연을 알리는 소리가 분명했다.
선조왕이 영문을 알고싶어 휘장을 제끼고 련밖을 굽어보느라니 주변을 맴돌던 내시관이 황황히 달려와 부복하며 아뢰는것이였다.
《상감마마, 웬 불상행인이 상소를 해왔사옵니다.》
《허니 저 소리가 격쟁이란거냐?》 하고 나직이 되묻는 선조왕의 안광엔 그늘이 비끼였다.
격쟁이란 다름아닌 임금이 궁성밖에 행차할 때 상민들이 꽹과리를 쳐서 자기가 당한 억울한 사연을 상소하는것이였기때문이다.
격쟁의 내용을 보면 대체로 상소자의 부모나 자식이 애매하게 당한 피해며 적자와 첩사이의 상속권문제며 량인과 천인사이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이며 하는 등등의 일들인데 제 고을이나 도의 관청들에서 해결을 못 받아 나라님께 의존하려고 생사결단하여 들고 올라온 본인
하건만 력대 선왕들도 그렇고 선조왕
세조왕때에 격쟁법을 정한 초기에만도 임금이 상주하는 궁성안의 차비문앞에서도 꽹과리를 울리거나 등문고를 치며 당사자마음대로 상소하도록 했댔으나 그로 인해 궁궐질서가 혼란되고 왕권이 심히 훼손되는 페단이 생겨 명종23년인 신유년(1560)부터는 그것을 엄금시켜 지금처럼 임금이 궁성을 벗어나 거동할 때 호위행렬밖에서만 격쟁을 하는 법도를 다시 세웠었다.
여하튼 내전에 찾아들어 꽹과리소리를 내든, 행길가에 지켰다가 꽹과리를 두드리든간에 나라의 대소사를 건건이 관심해야 하는 국부로서 바이 외면할수 없는 일인지라 선조왕은 골머리가 지긋거리는대로 느닷없는 격쟁에 응할수밖에 없었다.
《상소를 받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의관한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난 내시관이 시위대의 군교 두엇을 거느리고 행차밖으로 벗어나더니 오솔길이 휘우듬히 굽어든 잡관림속으로 사라지는것이였다.
한식경쯤 지나 황망히 되돌아온 내시관이 련아래에 부복하며 죄스럽게 아뢰였다.
《국사와 관련한 중대문제여서 본인이 직접 상감마마를 알현하겠다하옵니다.》
《으흠…》
선조왕은 전례에 없던 발칙스러운 일이여서 가히 못마땅스러웠으나 국사와 관련되는 중대문제라는 소리에 속이 찔려 마지못해 그 무엄하기 그지없는 상소자의 청탁을 수락했다.
숨막힐듯 한 긴장이 드리운 속에 나이가 지숙해보이는 비구니가 시위대 군사들의 삼엄한 감시와 가시박힌 눈총들을 받으며 선조왕이 탄 련가까이로 다가왔다. 임금의 행차라 해서 조금도 꺼림이 없는 흔연스러운 태도였다.
바랑을 가뜬하게 둘러멘 그 녀승은 비록 잔주름살이 눈가를 덮었으나 아직 자태가 늘씬하고 용모가 절륜한게 한창시절에는 세상 비할바없는 경국지색이였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생토록 궁중에서 잘 가꾸어진 월용화태의 미녀들을 수없이 주물러온 선조왕이였으나 이토록 기품과 태도가 의젓하면서도 미모가 눈부시도록 황홀스러운 녀자는 처음 보았다.
(저런 당대 으뜸의 가인이 한뉘 삭발중노릇이나 하다니?!)
선조왕이 이런 아쉽고도 측은한 심정에 잠겨드는데 어느새 련과 몇행보쯤 떨어진 곳에 이르러 멈춰선 녀승이 진실로 차분하면서도 저으기 무게가 있는 거동으로 합장배례를 하는것이였다.
《나무아미타불. 지극히 존엄스러운 상감마마의 행차를 방해한 죄 백번 죽어 마땅하옵니다.》
《녀승은 뉜고?》
《소승은 가야산 송화암의 청목이라는 범승이옵니다.》
《천리타지인 령남경내에 처소를 둔 불승이 어인 연고로 상경을 했는고?》
선조왕이 휘장을 제끼고 황의에 휘감긴 상체를 기울서 드러내며 무랍없이 수응해주자 녀승은 과히 송구하여 삭발머리를 깊숙이 수그렸다.
《불민한 소승은 나라님께 긴히 충간할 일이 있어 허위단심 달려왔사오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만민이 봄향취에 심신을 적시는 길일이니 불승도 심중의 잔짐을 털어버릴지어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다시한번 더 삭발머리를 조아려 례의를 표하고난 청목 송희령은 간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극히 높은 덕과 도리로 어짐을 빛내이시고 하해같은 정성과 믿음으로 백성들을 안착시켜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상감마마께 초야의 소빈한 녀중은 삼가 옷깃을 여미고 천백번 무릎을 끓으며 감히 아뢰옵니다. 상감마마, 왜국에 사신으로 간 송운대사님에 대한 포박령을 거두옵시오. 생사를 기약키 어려운 험난한 아수라의 소굴에서 한목숨 아낌없이 내대고 나라의 리익을 쟁취하느라 일일천추로 애쓰고있는 사람들을 망탕 의심하고 잡아들이게 한것은 심히 잘못된 처사인줄로 아옵니다.》
그 애절한 청원을 눈살이 찌긋해서 듣던 선조왕의 희슥한 장미가 꿈틀 요동을 쳤다.
사실 그가 놀랄만도 한 일이였다.
작년여름때 사신일행이 대마도로 건너간 후 대여섯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자 조정에서는 별의별 흉한 억측과 소문이 휘돌았다.
어떤 관료들은 사신일행이 분명코 왜놈들 손에 잘못됐으니 시급히 군사를 일으켜 보복전을 벌려야 한다고 와짝 떠들었고 또 어떤 관료들은 사신중책을 맡고 바다를 건너간 손문욱과 유정이가 왜인들의 간계에 넘어 주색잡이와 유흥에 미쳐버린거라며 그들에게 갖은 욕설을 다 퍼부었다.
그런가 하면 일부 관료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면서 사신일행이 혹시 나라에 큰 리익이 될 거사를 성사시키고 불쑥 나타날수도 있으니 잠자코 기다리는게 상책이라고 우겨댔다.
그런 속에서 립장이 난처해져 함구무언이 된 사람은 삭발중인 유정을 사신으로 추증했던 대관들과 유정에게 직접 부사신이라는 중임을 맡겨 떠나보낸 선조왕이였다.
선조왕은 왈가왈부 갑론을박을 벌려대는 신하들의 새짬에 끼워 이모저모에서 시달림을 당하며 사신일행의 행방을 몰라 속을 썩이는 가위에도 은근히 희소식이 있기를 기다렸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왜국에서 손문욱참의가 띄운 파발이 바다를 건너왔다. 파발은 정사가 본국의 조정에 상보하는 서신장을 가져왔었다.
손문욱이 자필로 써보낸 서신장에는 그지간 사신일행의 왜국체류과정이 자상히 적혀있었다. 쯔시마에서 다시 본토행을 한 그들이 톱아나간 기나긴 로정과 그 나날에 겪은 복잡다단한 일들이 세세건건이 기록됐으나 지금까지 이렇다 하게 눈이 번쩍 띄도록 이루어진 성과는 없었다.
파발은 종사관이 별도로 보낸 밀서도 한통 내놓았는데 그것이 조정관료들과 선조왕의 눈을 까뒤집히게 만들었다.
부사인 유정이가 정사와 종사관을 밀어제끼고 유아독존처럼 놀아대는데 그 내막인즉은 유정이가 제멋대로 혼자 찾아다니며 왜국막부 장군들과 상대하는가 하면 국사를 망각하고 명산대찰유람과 연회같은데 미쳐 허송세월만 한다는것이였다.
어명을 받은 나라의 사신이 이 웬 해괴한 추태인고?
조정이 바람맞은 숲마냥 설레는 속에 마광우의 후견인들인 북인파 대관들이 때를 만난듯이 들고일어나 법석 떠들었다.
유정을 사신으로 발탁하여 왜국행을 하게끔 적극 동조했던 남인파들은 뭘 먹은 벙어리들처럼 속으로 끙끙거릴뿐 변명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눈치보기만 했다.
노염이 살아나 앙앙불락하던 선조왕은 배은망덕한 중 유정을 붙들어다가 엄하게 추궁하고 그 죄행에 맞게 처벌을 해야 한다는 대북파 대신들의 충간을 따라 당장 유정에게서 부사신직임을 거두고 의금부로 잡아들이라는 어명을 내렸었다.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물론 해당 지방의 관찰사에 이르기까지 임금의 과격한 어지를 오로지 지당한 처사로 받아들이고 그 실행에로 이행하여 이러저러한 조치를 취하고있는 때에 천만뜻밖에도 산중에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던 한 비천스러운 녀승이 도담스럽게 반기를 들고 감히 상감마마를 찾아든것이였다.
가야산 녀승의 소행은 선조왕의 기분을 불시에 잡쳐버렸다.
옥안에 금시 드리우는 소낙구름을 그대로 안은채 선조왕은 보련안에 육신을 잠그고말았다.
휘장밖에서 대북파를 좌지우지하는 의정과 남인파의 우두머리인 리조판서가 서로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쪽에선 녀승을 소갈머리없는 불쌍년이라며 욕질하고 다른쪽에선 녀승을 우의심이 있는 도승이라고 두둔하는 말싱갱이였다.
선조왕은 속이 울끈해져 밖에다 대고 일렀다.
《여봐라- 행차를 돌려 환궁할지어다.》
상감마마의 돌발적인 호령에 주변의 소란이 삽시에 잦아들었다.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며 한동안이나 의논을 벌리던 내시관과 대신들이 어디론가 멀어져간 후 다시금 떠드는 소음이 일어나더니 어언간에 선두행렬이 방향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달을 몰아온 녀승은 즉석에서 오라에 묶이워 의금부옥으로 압송되였고 잇달아 그 불충스러운 비구니는 물론이요 그를 받자 했던 모모한 대감들까지도 당장 군기시다리(사형장이 있는 곳)나 당고개(역시 사형장이 있는 곳)로 끌어내다가 목을 쳐야 한다는 사간원의 장계가 선조왕에게로 올려졌다.
화전놀이를 떠났던 임금의 행차가 중도에서 되돌아오고 또 그로 인하여 떼죽음이 나게 된 불의지변의 사태는 도성안의 민심에도 파국적인 여파를 미쳐 이날의 봄명절은 먹장구름이 드리우는 하늘처럼 침침하게 흘러가버리고말았다.
그날로부터 열사나흘이 지나서였다.
먼 령남의 향촌에서 강호생활을 하고있던 류성룡이 별안간에 상경하며 승정원에 페현(임금을 만나는것)을 청해왔다.
도승지를 통해 그 사실을 전달받은 선조왕은 쉬이 알현을 수락했다.
내시관을 따라 입궐한 후 홀로 편전에 들어 부복배례를 하는 어제날의 령상을 덤덤히 굽어보던 선조왕은 《경은 백이숙제의 후손이겠다?》 하고 느닷없이 야유조로 물었다.
류성룡이가 국왕인
선조왕에게 있어서 사실 류성룡은 오른쪽, 왼쪽의 량팔과도 같은 존재였다.
자는 이현, 호는 서애로 불리우던 류성룡은 명문가의 후손으로서 일찌기 당대의 일류문사였던 퇴계 리황의 슬하에서 학문을 닦은 후 병인년(1566)에 과거급제를 했었다.
애젊고 영특하고 열혈남아다운 신진으로서 률곡 리이같은 명망높은 선배들의 신망속에 중앙관청에 첫발을 들여놓은 후 그는 승정원의 부제학을 지내다가 상주목사를 거쳐 리조판서로까지 발탁됐었다.
성품이 정직하면서도 업무에 근면하고 사리사욕이 없다나니 만인의 공인을 받아 경인년(1590)에는 우의정으로 승급했고 인차 령의정으로 올라앉았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을 당하자 나라의 충신답게 3도도체찰사로서 국운을 떠메고 전선부대들을 총괄하면서 실로 전무후무할 대업을 실행해왔다. 사나운 이리떼마냥 달려들던 왜군무리들을 관서의 평양성과 관북의 길주에서 예기를 꺾어버리고 반공격의 서막을 열어놓는데서나 남쪽으로 쫓겨갔던 놈들이 다시 정유년에 재침을 해왔을 때는 호된 타격을 안겨 최종적으로 섬멸을 해 전쟁승리를 이룩한데서나 전선을 총지휘하던 류성룡의 공적이 적지 않게 깃들어있었다. 임진왜란직전까지만도 당파적편견에 사로잡혀 국방력강화를 소홀히 했던 그가 뒤늦게나마 채심을 하고 계사년(1593)에는 급기야 훈련도감(전쟁에 대처하여 군대의 각종 훈련과 무기화약제조를 주관하는 관청)을 설치했고 속오군을 새로 편성했으며 그렇게 군사제도를 개편한 후에는 산성수축보강을 내밀고 한편으로는 모자라는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둔전개간을 하게끔 주관했던것이다.
그런 공신원로가 무술년(1598)에 전란이 끝나기 바쁘게 대북파 두목인 정인홍의 공격으로 인해 령의정자리를 내놓고 향촌으로 은퇴했었다.
그랬으나 선조왕은 험난하던 전란의 시기에 자기 국왕일행이 평양을 거쳐 룡만(의주)으로 무사히 피난하도록 긴급조치와 편의를 도모해주었고 또한 종묘사직과 나라를 보존하도록 공헌한 류성룡을 못 잊어 갑진년(1604)에는 그를 《호성공신》으로 책봉했었다.
그런 후 선조왕은 왕권을 써 대북파무리들을 눌러치우고 솔선 선전관을 령남으로 내려보내여 류성룡이 다시금 조정으로 상경하여 령의정직을 맡아줄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류성룡켠에서 무엄하게도 임금의 자별한 은혜를 공공연히 마다하면서 벼슬길에 다시 나서기를 단념하고 조정일과는 일체 담을 쌓은채 시골향가에 들어앉아 터전농사와 붓대놀림만 해왔었다.
그곳 관청에서 올려온 장계에 의하면 류성룡은 요 몇해사이에 새로운 남새농법을 연구하여 민가들에 도입했으며 임진조국전쟁시기의 피어린 교훈과 성과들을 렬거한 《징비록》과 조선례의법 그리고 사회관계발전사와 영농법 등을 서술한 《신종록》, 《영문록》, 《관화록》 같은 문집들을 써냈다고 한다.
물론 선조왕은 류성룡이 이젠 년로하여 기력도 전같지 않은데다가 더우기는 당쟁에 신물이 나서 대관직을 마다한다는것을 모르는바가 아니였으나 그가 아직도 령의정으로서 임금을 충의스럽게 받들고 조정의 문무백관들을 탕평하여 옳바로 이끌어나갈 능력이 있는 동량지재이기에 그의 강호생활을 고깝게 여기는것이였다.
선조왕의 그 꼿꼿스러운 노염이 자기에 대한 믿음과 기대에 바탕을 두고있다는것을 잘 아는 류성룡이기에 갓테의 채두가 방바닥에 닿도록 오래동안 부복읍례하는것으로써 사죄감과 고마움을 표명했다.
《황공무지로소이다!》
이런 후 한참 정중한 자세를 취하던 류성룡은 별안간 움쭉 상반신을 일으키더니 선조왕의 옥안을 우러르며 거침없이 심중을 토로하는것이였다.
《상감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온데 가야산의 녀승을 출옥시켜야 하옵니다.》
그 느닷없는 엉뚱스러운 충간에 선조왕은 흠칫 굳어졌다가 반백의 긴 눈섭을 부르르 떨며 되물었다.
《경은 그 녀승을 아는고?》
《소신은 여사모사한 연고로 해 그를 한식솔처럼 알고있사옵니다. 그 녀승은 전무후무할 천재적인 의술가일뿐더러…》
이렇게 서두를 뗀 류성룡은 녀승이 임진왜란때 나라를 지키는 싸움에 떨쳐나선 의병들과 관군을 적극 후원한 사실을 하나둘 실례를 들어 아뢰인 후 옛날 자기의 비장이였던 부산진첨사로부터 알게 된 이즈막의 놀라운 사건에 대해 구구히 렬거하였다.
그 놀라운 사건이란 다름아닌 청목이라는 법명을 가진 그 녀승이 조선사신을 돕기 위해 쯔시마에 건너가 도주의 중병을 고쳐준 후 잇달아 본토의 막부에까지 횡행하여 사경에 처했던 쇼궁의 자제를 소생시키고 그 과정에 왜국의 내정과 조선사신일행의 활동내용을 자상히 알아가지고 돌아온 사실이였다. 더우기 소홀히 여길수 없는것은 그 녀의승이 쯔시마도주와 막부 쇼궁에게 좋은 인상을 안겨주어 왜국본토에 건너간 조선사신들의 활동에 더없이 유리한 환경을 마련해준것이였다.
《그 녀승의 말에 의하면 사신으로 왜국에 건너간 유정은 간난신고를 하는 속에서도 사심이란 꼬물만큼도 없이 나라의 리익만을 위해 그야말로 간뇌도지하고있다 하옵니다. 소신이 지내본바에 의하면 녀의승은 결곡하고 진심스러운지라 거짓과 허위를 모르는 교도옵니다.》
류성룡의 곡진한 그 아뢰임에 선조왕이 앞질러 결구를 달았다.
《그런즉 경은 유정에 대한 의심을 풀고 그 녀승도 윤허를 하자는 의도겠구만?》
《그렇사옵니다. 전하, 소신을 믿으신다면 널리 사정을 헤아려 해빛같은 은혜를 베풀어주옵시오.》
《서애가 이리도 민심에 지극한 사람인줄은 몰랐는걸.》
한결 느긋해진 음성으로 대척하는 선조왕의 눈엔 감심하는 기색이 엷게 서려돌고있었다.
사실 선조왕은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정기룡이 같은 무관들과 경상도 체찰사 리덕형같은 공직의 신하들이 송운대사의 견실함을 담보하는 장계를 수차 보내오고 또 곽재우며 리수광이 같은 시골에 은둔한 공신들과 허균이 같은 이름난 문사들에게서 유정의 포박령에 항의하는 련명상소가 연줄 올라오기에 생각이 많던차였는데 류성룡의 출현으로 하여 옳바른 결심을 채택하게 된것이다.
이튿날 의금부옥에 감금되였던 녀승은 임금의 어명에 의해 석방되였다.
옥리들에게 밀리워 대궐밖으로 나선 송희령은 돌아갈념을 않고 서서 버티기를 했다.
송운대사에 대한 포박령을 거둔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을 잡도리였다.
그러할 때 역마를 탄 대관풍의 량반 하나가 견마쟁이의 시종을 받으며 나타났다.
송희령은 년세가 지긋한 그 량반이 류성룡대감임을 알아보자 일순간 뜨아해졌다.
사실 송희령은 한성으로 상경하기 전에 령남의 향촌에서 은거하는 류성룡대감부터 찾아가 만났었다.
임진조국전쟁때 전선지휘도중 중환으로 해 사경에 처했다가 송희령의 의술덕에 살아난적이 있는 류성룡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송희령에게서 사정얘기를 듣고난 류성룡은 왜놈들과 외교전을 벌리고있는 애국공신을 어떻게 그렇게 포박할수 있는가며 분개해하면서도 정작 조정에 올라가 국왕에게 충간해줄것을 부탁하자 난색을 지었다.
《상감께서 수차에 걸쳐 상경하라고 권하는것을 외면했는데 이제 무슨 낯으로 제발로 찾아간단 말이요.》
이러고는 난처하여 한숨만 쉬는 그가 민망스러워 더이상 가타부타하지 않고 물러나 자기가 직접 올라와 일을 벌렸었는데 인차 개심을 하고 뒤따라 상감마마를 알현한것 같았다.
송희령은 임금을 노엽히고 세속밖의 천한 불승이 정사에 참견한 죄로 당장 형장으로 끌려나가게 되였던 자기가 아무런 죄책도 당하지 않고 놓여난것은 뒤에서 류성룡대감이 힘써준 덕이였음을 뒤늦게야 알수 있었다.
희령이가 해오는 인사치레를 고개를 알릴듯말듯 끄덕이며 받고난 류성룡이 앞질러 한마디 던졌다.
《만사가 다 제대로 됐으니 녀의승은 맘놓고 하경하오.》
송희령은 속으로 뜨거운것을 삼키며 더 깊숙이 머리를 수그렸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