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길은 하나다

4

 

홍창해가 남해도에서 한창 조선사신보좌원으로서의 직분을 원만히 수행하고있던 그무렵에 유정은 에치고고을 다이묘의 흉책에 걸려 난사를 치르고있었다.

다이묘의 특혜를 입어 별당 독방에서 혼자 잠을 자던중에 화재를 당하여 불타죽게 된것이다.

한편 그날 별당근처인 객관에 행장을 풀고 로독에 치여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피곤하게 자던 오팔이와 계명이와 백손이는 한밤중에 누군가가 《불이야-》 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화닥닥 놀라 깨여났다.

객관의 문창호지가 시뻘겋게 물들여질 정도로 가까이에서 불길이 치솟고있었다. 우릉우릉 불길이 타번지는 소음이며 탕탕 토기와 튀는 소음이며 아이고 대고 통곡하는 소음들이 스산하게 들려왔다.

《이봐, 저게 총섭님이 든 별당에서 난 화재가 아니여?》

《필경 가까이에서 난 불인게고 또 가까운 곳이면 스님 든 별당밖에 없는게고… 아이쿠- 큰 야단났구나-》

계명이와 오팔이가 잠자리에서 뛰쳐일어나며 오구당당 설레발을 치자 그들곁에 누웠던 백손이도 덩달아 일어나 옷을 주어입으며 야단을 쳐댔다.

《분명코 도사님이 화난을 당했네. 이쌍, 미련한 <도자마>들이 종내 재구를 쳤구나.》

그들 셋은 여느 일행들을 와짝 들춰깨워 밖으로 피하게 해놓고는 유정스님의 숙소로 와당탕 뛰쳐나갔다.

아닐세라 불은 바로 유정스님이 든 그 별당에서 활화산같이 타오르고있었다.

잡관목을 베여묶은 땔나무단들과 마른 장작단들을 날라다가 쌓아 별당을 산더미같이 휘덮고 불을 지른것을 보니 어떤 놈팽이들이 고의적으로 안에 들은 사람을 불태워죽이자고 저지른 행위라는것이 첫눈에도 알렸다.

《총섭님이 아직 안에서 못 나왔을수 있다. 총섭님부터 찾자-》

《우리 스님이 어째 안 보여?- 아이고, 이 일을 어쩜 좋은고? 스님-》

너무도 억이 막히고 통분하여 가슴을 줴뜯고 발을 동동 구르던 계명이가 무작정 불속으로 뛰여들자 잇달아 오팔이도 뛰여들었다.

그러자 객관에서 종사하는 왜인들이 오구구 모여와 계명이와 오팔이를 붙잡아 끌어냈다.

《놔라, 우리 스님이 불타죽게 됐단 말이다-》

《이쌍 종간나새끼들, 늬들이 우야 불을 지르고는 되려 인명을 걱정해?- 이제 총섭님을 구하고 싹 다 사지를 찢어죽일줄 알아라-》

성난 갈범처럼 날뛰며 왜인들을 털어버린 계명이와 오팔은 다시금 온통 불천지로 변한 별당안으로 뛰여들다가 탕탕 튀여나는 기와장과 무너지는 들보에 줘맞고 나쓰러졌다.

《총서업니-임- 어서 나옵시-오-》

《아이고, 스님- 스-니-임-》

화상을 당한 몸을 와들짝 부림치며 유정스님을 목놓아 부르면서 불속을 헤매이던 계명이와 오팔은 그만 졸도하여 늘어지고말았다.

그들을 불속에서 끌어내다가 뜨락가운데에 눕히고난 백손이가 상심한 얼굴로 불이 활활 타번지는 별당주변을 오락가락하다가 무슨 말인지 알수 없는 소리로 개탄을 하더니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숨만 꺼지도록 내뿜었다.

사실 그때 유정이도 로독에 지쳐 곤하게 자느라 밖에서 자기를 죽여버리기 위해 어떤 악행이 저질러지는지도 모르고있다가 별당이 불더미에 휘묻혔을 때에야 뒤늦게 알아차리고 와닥닥 뛰쳐일어났었다.

쓸어드는 매캐한 화염에 금시 숨이 막히고 확확 풍겨오는 뜨거운 열기에 살이 막 익어 문드러지는것만 같았다.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자니 언제 그렇게 했는지 초저녁때만도 수월히 여닫기던 나무널문이 두터운 철판으로 밀페되여있었고 그래서 바람벽을 뚫고나가자 하니 벽도 철판으로 이미 둘러쳐있는데다가 엊그제 도배지를 발라 눈속임을 한것이였다.

유정은 자기가 말그대로 철벽에 갇힌채 활화산에 휘묻혔다는것을 느꼈다.

그때야 유정은 이곳 다이묘놈이 별로 친절하게 자기네를 대하며 사신인 자기를 독채에 별도로 들인 까닭을 알고 혀를 깨물었다.

그는 조선사신을 해치려고 놈들이 언제든지 악착하게 발악할수 있다는 생각은 해오면서도 사전에 각성하고 방비대책을 취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다가 절망하여 주저앉았다. 수년간의 생사를 가리는 전장에서도 수염 한오리 상하지 않고 죽음의 고비들을 수월히 넘겨온 자기가 하찮은 시골 다이묘놈의 잔악스러운 흉계에 걸려 꼼짝 못하고 죽게 된것이 어이가 없었다.

제 명을 그야말로 운수에 맡긴채 망연히 앉아 최후의 시각을 기다리던 유정은 품속에 간수한 조정에 상주할 왜국의 내정과 관련되는 비밀문서를 만져보며 내 목숨 하나 잃는건 아깝지 않건만 국책수립에 절실히 소용되는 이 중요한것이 소각되는게 아쉽구나 하는 생각에 휩싸이다가 손가락에 류다른것이 마쳐와 그것을 꺼내보았다.

조국을 떠나기 전에 묘향산의 서산대사가 칠범이를 시켜 따다준 소나무잎이였다.

이제는 꿋꿋이 마르긴 했으나 푸른 색갈만은 여전한 바늘모양의 잎을 어루만지노라니 마음이 별로 이상해졌다.

유정은 느닷없이 그 소나무숲이 무성하게 뒤덮인 조국땅에서 왜란을 겪던 허다한 나날에 총칼과 화포에 치명상을 당하고 숨을 거두던 사람들의 림종을 목격하던 일이 떠올랐다. 마지막숨을 거둘 때 아이들은 제 어미나 아비를 찾고 어른들은 제 자식들 생각으로 해 눈을 감지 못했었다. 아마도 사람이 죽을 때에 제일 그리워지거나 속에 걸리는것이 혈육인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유정이도 죽음을 앞둔 이때에 먼저 떠오르는것이 탈가한 손자때문에 한뉘 속을 썩이다가 비명에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할머니 생각(부친과 모친은 5살때 잃은지라 표상이 희미했다.)이였다. 내가 왜 그때 무던하고 리해력깊던 할머니한테도 말을 안하고 집을 영영 뛰쳐나와 할머니를 맘고생시켰을가? 어느때든 할머니의 산소를 찾아가 사죄를 하렸더니 종내 그 일을 못하고 가는구나. 이런 애절한 심정에 빠져드노라니 종종 친정집을 찾아와 조카인 자기를 애지중지해주던 고모들이며 사또댁 도련님일지언정 무랍없이 자기를 고와하며 아껴주던 동네 녀인들과 장정들도 잇달아 떠올랐다. 그 모습들은 어느새 전란의 나날에 승병대를 사심없이 따르고 위해주던 아낙네들과 남정들 그리고 아이들과 로인들의 모상으로 엇바뀌였다. 그러다가 얼마후엔 현재 왜땅에 끌려와 노예생활을 강요당하는 동포들의 처참한 모습으로 변하며 유정의 가슴을 허비였다. 정직하고 근면하고 열렬한 그들의 진정한 보금자리인 조선의 삼천리강산과 풍요한 옥토와 수려한 산발이 삼삼히 떠오르며 애틋한 그리움을 자아냈다.

그러자 어떻게 하나 죽음을 물리치고 살아나 나라와 백성들의 복리를 위한 대업을 기어코 실행하여야겠다는 억척지심의 결단이 굳어지며 용기가 솟음쳤다.

유정은 스승인 서산대사가 어이하여 살벌한 왜땅으로 떠나는 자기에게 솔잎을 따주게 하고 힘겹고 위급할 때면 그것을 만져보라고 당부를 했었는지 비로소 절실히 깨달았다. 하여 굳이 자각을 했다.

의지를 가다듬고 용기백배하여 뛰쳐일어난 유정은 자기가 살아날 출로는 오직 하나 지붕을 터치고 그곳으로 빠져나가는것뿐이라고 타산하고 심호흡을 크게 한 다음 별안간에 《으얏-》 하고 기합을 쓰며 중천반을 올려치였다. 다행히도 놈들은 사람의 힘과 수단을 가지고는 차마 중천반과 지붕을 꿰뚫고 밖으로 솟구쳐나오리라고 여기지 않았던지 중천반에는 쇠판을 씌우지 않았는지라 그렇게 여러번을 거듭하니 들썩거리던 중천반의 산자가 헤풀어지면서 나갈 구멍이 생겼다.

그러자 유정은 방바닥을 박차고 몸을 솟구쳤다. 지붕의 서까래를 덮고 기와를 얹은 산자도 그렇게 활 터치고 지붕밖에까지 나올수가 있었다. 헌데 한창 기승을 부리는 불길에 의해 지붕이며 산자며 서까래가 불길에 휩싸인지라 유정은 불길에 쐬고 불덩이들에 줘맞아 그의 온몸도 그야말로 불덩이처럼 홧홧 달아올랐다. 금시 숨이 막혀버리고 오륙이 가드라드는것만 같았다.

유정은 주변과 체내에서 못 견딜 정도로 풍기는 열기를 털어버리려고 별당 뒤울안에 있던 우물안으로 첨벙 뛰여들었다. 차거운 샘물속에 몸을 잠그고 오래동안 있다가 선선한 느낌이 들어서야 나왔다.

그때는 이미 별당이 불에 다 타고 재더미로 돼버렸었다.

유정은 자기를 수행하던 젊은이들이 걱정되여 객관쪽을 살피다가 그곳은 화재를 당하지 않았다는것을 알고야 안심이 되였다.

유정은 당장은 자기를 해치려던 놈들의 정체를 모르기에 이번통에 왜놈들 전반을 골려주리라 작정하고는 꺼먼 숯등걸이 되여 꺼져내리며 바람벽에 엇걸린 서까래며 중보들을 헤집고 그 공간속에 들어가 앉았다.

불길이 사그라들고 불덩이가 꺼멓게 죽어들 때에야 의식을 차리고 일어난 계명이와 오팔은 반정신이 나가가지고 《총섭님-》, 《스님-》 하고 애통한 소리로 목갈리게 울부짖으며 불꺼진 숯더미를 헤치였다.

그 처절한 광경에 동정심이 살아났는지 객관에 종사하는 왜인들이 솔광기름에 적신 걸레로 홰불을 만들어가지고 주변을 비쳐주었다.

어떤 왜인들은 어쩌다 이런 해괴스러운 변이 생겼는가 하는 놀란 표정으로 지켜보고 또 어떤 왜인들은 야살스러운 상통이 돼가지고 속씨원해서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할 때에 계명이와 오팔이가 갑자기 놀란 소리를 지르며 굳어졌다.

유정스님이 숯등걸속에 천연스럽게 앉아있었기때문이다.

흔연히 좌선을 하고 앉아 장발수염을 슬슬 내리쓸던 유정이 되려 의아한 얼굴로 계명이네를 흘겨보았다.

《늬들 왜서 이리도 부산스럽게 구는거냐?》

이러고난 유정은 몸을 후두둑 털며 뇌까렸다.

《어허- 날이 어째 이리 춥냐? 이러단 촉한을 만날것 같구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웬일인가 해 눈여겨보니 방금 불더미에 묻혀있던 사람같지 않게 유정의 화락하니 젖은 몸에서는 물이 뚝뚝 흐르고 턱수염에는 싯허연 고드름이 내맺혀있었다.

그의 코앞에 엇비뚜름히 기울어진 꺼먼 벽체에는 서리 《상》자가 부작처럼 휘갈겨써있었다.

스님의 기합술이 나는 새도 잡아내리고 하늘땅을 짓깨칠 정도로 변화무쌍함을 알고있는 계명이네였으나 그 귀신의 조화같은 사실을 어떻게 리해를 해야 할지 몰라 항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까운 별당 하나가 없어지긴 했지만 몸녹임을 잘했으니 가히 섭섭친 않군.》

유정이가 재티를 툭툭 털면서 일어나 헌거롭게 뇌이는데 그 기막힌 광경앞에서 피줄이 튀여나갈 정도로 경악을 한건 왜인들이였다.

측은한 동정을 품고 조선사신의 유해라도 찾아주려고 불을 켜들고 나섰던 객관의 종들이며 유정을 불태워죽이려고 암암리에 음모를 꾸몄던 사무라이놈들도 눈이 까뒤집혀가지고 혹시 저 수염쟁이도승이 불에 탔다가 귀신으로 부활하지 않았나 해 휘딱 뒤자빠질 정도였다.

이번 화재의 장본인인 《도자마》계통의 사무라이들이 거연히 좌선한 도승의 모습이 실지로 살아있는 현실적인 존재임을 알고는 질겁하여 비명을 지르면서 뺑소니를 쳤다.

바로 그러한 때에 《이놈들, 게 섰거라-》하는 호된 고함소리가 울렸다.

백손이가 왜말로 내웨친 소리였다.

그러자 줄행랑을 놓던 사무라이들이 그 자리에 넌떡이 얼어붙었다.

성난 범처럼 기상이 표표해가지고 화재를 당한 잔해들이 널린 마당을 가로지르며 근처에서 부들부들 떨고있는 사무라이들과 객관에 종사하던 왜인들을 악증이 나서 쏘아보던 백손이가 눈이 화등잔만해서 굳어져있는 이밤중의 사건을 조작한 장본인인 고을 다이묘놈에게 을러멨다.

《한갖 시골원따위가 언감생심 쇼궁전하의 뜻을 거스르며 대방국의 사신을 해치려들었으니 스스로 죄책을 하라.-》

제 목숨이 아까와 차마 할복자살은 못하고 닭의 똥같은 눈물만 줴짜며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다이묘놈을 가소롭게 여겨보던 백손이가 울컥 분기가 동해 발치에서 나딩굴던 소잔등만 한 퇴돌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퍽- 하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억척반석같던 퇴돌이 맥없이 부스러져 콩가루처럼 흩어졌다.

그 사나운 기상에 질겁하여 중풍을 일으키던 다이묘놈은 더는 자기가 살아 빠져나갈수 없다는걸 알고는 옆구리의 오비에 찼던 단검을 뽑아 풍덩한 제 배를 푹 찌르고 나자빠졌다.

백손은 그렇게 다이묘놈을 처벌해치운 후 근처에서 화들화들 떨고있는 여느 졸개놈들은 이제 다시 못된짓을 할 때는 각을 떠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여 쫓아보냈다.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보던 오팔이는 아, 내가 몹쓸놈이로구나 이렇게 통탄을 하며 혀를 깨물었다. 사실 그는 밤새 집생각을 했었다. 이젠 떨어진지가 반년나마된 어린 아들 복남이가 보고싶어 몸살이 났고 전쟁때 왜놈들한테 령감과 딸을 잃은 후 수년간이나 집살림과 아이를 돌보느라 어느덧 백발로 변한 고생많은 가시어머니한테 가사를 떠맡기고 오래동안이나 집을 나와있는것이 미안했었다. 그는 처음 쯔시마로 건너올 때는 한두달내로 왜놈들과 결판을 내고 돌아갈줄로 알고 왔었는데 예상외로 날이 오래 걸리자 조급증이 났었다.

그래서 장밤 엎치락뒤치락 자반뒤집기를 하면서 집에 두고온 아들애랑 가시어머니랑 생각하느라 깜뜰 각성을 늦춘탓에 유정스님신변에 대한 생각도 잊고 스님을 해치려는 놈들의 책동을 알아차리지 못했던것이다.

천지신명이 도왔으니망정이지 만약 이밤에 유정스님이 잘못되였더라면 조선사신행차는 앞채가 꺾이운 수레마냥 험악한 왜땅 한복판에서 나동그라져 풍지박산이 됐을것이고 그러면 내 나라의 리권도 박탈당하여 종내는 수년전에 당했던 임진왜란때와 같은 그런 참변을 나라님과 백성들이 겪게 됐을것이 아닌가. 나라가 무사해야 만백성의 복락도 있다고 한 총섭님의 훈계를 내 어이 망각했던고? 이런 뼈저린 자책으로 하여 오팔은 유정스님앞에서 얼굴을 바로 쳐들수가 없었다.

놀라난 가슴들을 두루 진정을 시키며 밤을 마저 새우고난 사신일행은 다시금 예정한 행로를 톺아나갔다.

서너 고을을 지나 어느 한 촌락의 주막에 들려 숙식을 하던 날 밤에 또 다른 불의지변이 생겨났다.

자정이 훨씬 넘어 일행이 모두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을 때인데 별안간에 출입구밖 토방에서 누렁이가 악을 쓰며 짖어댔다.

늘 스님신변호위에 신경을 쓰며 밤에도 잠을 제대로 자지 않고 경계를 서군 하던 계명이가 얼른 일어나 바깥동정에 귀를 기울이는데 근처에서 부산한 소음이 일어나고 이어 뜨락안에 무언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한찰나 동안을 두었다가 방문이 기척도 없이 벌컥 열리였다.

활짝 열려진 문가에 복면을 쓴 사나이가 나타났다.

예감이 불상스러워 오팔이를 흔들어 깨우던 계명이가 벌떡 뛰쳐나가 격투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누구야?-》

《막부군 장수요.》

숨가삐 대꾸하고난 복면의 사나이는 뒤늦게 깨여나 여유가 작작해서 슬렁슬렁 겉옷을 껴입고있는 유정이에게 《도사님, <도자마>패당이 습격해오니 날래 피신하소이다.》 이런 말을 급히 던지고는 어둠덮인 뜨락으로 뛰쳐내려가는것이였다.

방안의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하며 바싹 긴장해서 만일에 대처할 준비들을 갖추는데 벌써 밖에서 대문이 와지끈 부서져나가고 쟁강쟁강 칼싸움하는 소리가 울리였다.

그러할 때 밖에서 탕- 탕- 탕- 하고 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져오르면서 탄환이 우박치듯 방안으로 날아들었다.

계명이가 날쌔게 유정이를 몸으로 덮으면서 엎드렸다.

《어떤 놈들이야?-》

오팔이가 격노하여 주먹을 틀어쥐고 수범처럼 울부짖으며 밖으로 와당탕 뛰쳐나가고 잇달아 백손이도 휙휙 공전을 하여 탄환을 피하며 그야말로 비호같이 날아나갔다.

곧 문밖의 뜨락에서 치고 받고 찌르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아들던 탄환이 즘즛해지고 대신 격투만이 요란하게 번져지자 계명이도 스님에게 움쩍말라는 오금을 박아놓고 뛰쳐나가 오팔이네와 합세하여 자기네를 기습해온 정체불명의 괴한들을 족쳐댔다.

펄쩍 날고뛰는 싸움군인 복면을 쓴 협객이 앞선에서 초벌 놈들의 예기를 짓깨고 또 그뒤에서는 격투에 능먹은 계명이와 오팔이 그리고 가늠할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술법을 지닌 백손이가 서로 협력하여 이리 휘뚝 저리 번뜩 들뛰면서 드세찬 공세로 맞받아나가며 사납게 놈들을 쳐갈겨버렸다.

한창 그러할 때에 유정이까지 팔을 슬슬 걷어붙이며 나와 뒤거들기를 하자 싸움은 인차 판이 났다.

조선사신일행을 습격해왔던 괴한들이 거의 맞아죽거나 달아빼거나 한 후 유정이네는 대문가에 쓰러져있는 협객을 발견하였다.

하층사무라이들이 즐겨입는 시꺼먼 도포를 간편하게 줄여입은데다가 늘씬한 허리에는 오비를 조여띠고 갖신발에 각반까지 착용한 그 젊은 사나이를 오팔이와 백손이가 맞들어 방안으로 들여다눕혔다.

유정이가 그를 맡아 구급치료를 해주었다.

유정은 세숙된 솜씨로 칼에 맞아 살이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협객의 어깨부위와 허벅다리상처를 끓인 소금물로 깨끗이 닦아낸 다음 무명천을 찢어 붕대로 싸매주었다.

그런 후 인증에 침을 놓아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피범벅이 되여 얼굴에 말라붙은 복면을 벗기였다.

협객의 모상이 등잔불빛에 확연히 드러났을 때 유정이네 일행은 크게 놀라 입이 항 벌어졌다.

그는 다름아닌 막부군 초장인 히까리였기때문이다.

《허어… 일두 참 묘하군.》

기가 차서 혀를 끄르던 유정은 손맥을 다잡으며 히까리의 굳어진 인증을 슬슬 문지르다가 침통에서 은침을 하나 뽑아들었다.

히까리는 침을 서너번 맞고 한동안 지나서야 의식을 차렸다.

자기를 둘러싼 유정이네 일행을 한사람씩 눈에 새기며 둘러보는 히까리의 눈가에 안심하는 기색이 비끼였다.

《다들 무사하셨군요.》

《그렇네, 임자가 아니였더라면 우린 이밤 황천객이 됐을지도 모르네. 실루 고마우이.》

유정이가 일행을 대표하여 허심하게 사례를 표하자 히까리는 맥없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소장은 응당한 직분을 수행했을뿐이옵니다.》

《헌데 임잔 왜서 예까지 우릴 뒤따라왔댔나?》

그러자 히까리는 조선사신의 신변을 보호하라는 막부의 군령을 받았다고 기맥이 잦아드는 말소리로 웅얼거리다가 무슨 뜻에선지 백손이를 손짓해보이고는 의식을 잃고말았다.

그날 나머지밤을 주막에 모여앉아 뜬눈으로 지새울 때 불안과 위구에 시달리는 젊은 호행원들의 하나같은 의사를 담아 오팔이가 유정스님한테 심중해서 건의했다.

《만사불구하고 이젠 북행길을 단념하고 걸음을 돌리옵시다. 우리같은 하찮은 인생들이 잘못되는건 무슨 대수랴만 총섭님같은분이 잘못되면 나라일이 그르쳐지는건 물론이요. 민족력사의 심한 손실로 되니 그리 아시고 이 제자의 충간을 들어주소이다.》

그 말에 계명이와 백손이도 적극 호응하는 기색이였다.

너무도 소름끼치는 위험이 잇달아 겹쳐드니 이젠 더는 북부지구편답을 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이날껏 그 누구네보다도 자기를 잘 리해하여주고 받들어주던 제자들이 돌변하여 제 앞길을 막아나서니 유정이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자못 신중해서 젊은이들을 응시하던 유정은 천천히 저고리안주머니를 더듬더니 자그마한 비단쌈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내 임자들에게 보여줄게 있네.》 하고는 조심스럽게 비단쌈지를 풀었다.

그러자 비록 겉마르긴 했지만 푸른 색갈만은 그대로인 솔잎 세개가 드러났다.

꾸둑꾸둑하면서도 더없이 부드럽고 감촉스러운 맛이 느껴지는 솔잎을 매만지는 유정의 길쑴한 얼굴에 감회의 기색이 력력했다.

한참후 유정은 의아해하는 젊은이들에게 그 솔잎을 넘기였다.

《조선땅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잎이네. 한번씩 만져보라구. 그걸 품고있으면 애국열의라는 도술이 생기거던.》

유정이와 그중 가까이에 앉아있던 계명이로부터 시작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친 솔잎은 다시금 유정이한테로 돌아왔다.

유정은 바늘처럼 가늘면서 뾰조름한 그것을 생각깊이 어루만졌다. 손끝에 깔깔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이 마쳐오는 순간 짜릿하고도 뜨거운것이 피줄을 타고 흘러들었다. 소나무잎에서 조국의 향취를 느끼고나니 전신에 힘이 생기고 박약해졌던 의지도 굳세여졌다.

왜국행차의 길에서 어떤 난관에 부닥치거나 힘겨울 때면 그 소나무잎을 꺼내보라던 휴정스님의 웅심이 다시금 헤아려지며 속이 쩌릿해졌다.

유정은 자연히 심정이 격해져 젊은이들에게 훈계했다.

《우리가 나서자란 그 땅이 어떤 곳이냐. 우리 조선은 력사가 유구하여 반만년을 헤아리고 령토도 좁지 않다. 북에는 백두산, 남에는 지리산과 한나산, 동에는 금강산, 서에는 묘향산이 우뚝이 솟아 이 땅의 장한 기상과 아름다움을 더한층 돋구어주고 경향각처에선 크고작은 강과 맑은 시내가 기름진 들을 적시며 흘러내리여 동서남의 세 바다를 이루고있으니 실로 백두산의 억센 기상과 묘향산, 금강산의 절묘함 그리고 대동강과 한강의 지심깊은 물과 호남, 호서의 옥야천리는 이 나라의 자랑이 아닐수가 없다. 게다가 금강산의 정기로운 기운을 타고난 사람들 또한 예로부터 굳세고 지혜롭고 근면하여 자기들이 태를 묻고 자란 그 땅우에 자랑높은 력사와 문화를 어엿이 이룩해놓지를 않았느냐. 바로 그러한 나라, 그러한 백성을 지켜야 할 사명감이 우리의 어깨에 실렸음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되니라.》

그 지엄스러운 기갈질을 당하고야 젊은 호행원들은 더이상 가타부타 하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일찌기 유정이네 일행은 중상을 당한 히까리를 근처동네의 의원에게 맡기고 다시금 형체와 내막을 알수 없는 위험이 무수히 웅크린채 생명을 노리고있는 북행길에 나섰다.

그 길은 걸음걸음 죽음을 동반해야 하는 길이였으나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물러설수가 없는 아니, 열백번을 다시 살아나 기어이 걸어야만 하는 나라와 백성들의 안녕을 위한 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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