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길은 하나다
3
유정이네가 에도를 거쳐 그 웃쪽 북부지대에로 한정없는 보행길을 이어가던 그무렵에 홍창해는 옥비와 함께 남행길을 다그치고있었다.
유정이가 교또를 출발하면서 홍창해한테 남부인 규슈지방에 가서 가시노미네촌락을 비롯한 여러 고을들에서 노예생활을 강요당하는 조선사람들과 조선문화재들을 장악하고 되찾아 나고야(쯔시마를 거쳐 조선으로 건너가는 항구)로 집결시킬데 대한 중임을 맡기면서 자기네와 갈라져 활동할것을 요구했다.
그러할 때에 창해는 크게 놀라며 그 직분을 마다했다. 그 리유인즉은 첫째로는 로숙하고 용맹하고 변화무쌍한 유정스님없이 외톨로 사지판을
헤쳐다니며 힘겨운 일을 맡아하자니
계명이 또한 스님의 의향을 내놓고 거스르며 창해가 자기네와 동행하기를 바랐다.
그러다가 창해도 계명이도 유정이가 《일개인의 보신이 중하냐? 나라대업이 중하냐? 지금처럼 한데 몰켜다녀가지고는 삼년석달이 걸려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못다 끝낸다. 한시 하루라도 시간을 끌면 그만치 조선사람들과 조선문화재가 사멸된다는걸 어째 모르느냐?-》
이렇게 엄하게 신칙을 해서야 더 어쩌지 못하고 그의 의향을 따랐다.
홍창해는 윤옥비가 처음 끌려와 고생을 했다는 가시노미네촌락이 어딘지도 모르거니와 더우기는 외롭고 힘겨운 먼길을 정다운 련인과 함께 가고싶어 현재 오사까해변의 그 황무지개간공사촌락에 림시 정착하고있는 옥비를 찾아가 그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어떤 때에는 역마를 얻어타고 산고개를 넘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들판의 밭최뚝길을 질러 걷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매생이에 올라 바다길을 미끄러져가기도 하면서 한달어간이나 이 고을, 저 고을에 들려 일을 보며 남행을 하는중이다.
홍창해가 유정스님 생각에만 옴해 늘 말이 없이 걷자 무료감에 싫증을 느낀듯 옥비가 그의 팔을 잡아채며 말을 시켰다.
《웬 생각을 그리하나이까?》
《옥비 생각을 하지.》
《이렇게 곁에서 둘이서 같이 가며 보고있는데 생각은 또 뭐나이까?》
《사람이란 헤여져있으면 함께 있을 때가 그리워지고 반대로 같이 있으면 헤여져있던 때가 돌이켜지는 법인가보오. 색시는 춤판에서 고르지 말고 남새밭에서 고르랬다고 내가 옥비를 시련속에서 택한 반려자여서 그런지 지내볼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들거던.》
창해가 빙긋 웃으며 하는 말에 옥비는 어쩌면 신통히도 자기와 심정이 같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 새뭇이 웃었다.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처없는
남자는 고삐없는 말과 같고 남편이 없는 녀자는 키없는 쪽배와 같다더니 실지로 옥비는 랑파에 뜬 쪽배처럼 이리저리 파란만장의 행로를 뒤굴러온
둘은 그야말로 꽃본 나비, 물본 기러기처럼 좋아하며 한쌍의 원앙이 되여 길먼줄, 힘든줄 모르고 걸음발을 다그쳤다.
그들이 왜인농군들이 소후치와 가대기로 수수밭을 갈아엎느라 붐벼대는 어느 외진 밭머리의 신작로를 걷는데 서서히 흐려지던 하늘에서 부실부실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 나라, 제 고향땅에서 맞는 한봄철의 보슬비라면 달고 따뜻하게 맞으련만 낯설고 살찬 원쑤의 땅에서 맞는 비라 더없이 소슬하고 차겁기만 했다.
그 추들추들 내리는 비에 어느새 창해와 옥비의 옷이 축축히 젖기 시작했다.
비발이 가득찬 하늘을 역겹게 올려다보던 창해가 예로부터 봄비는 약비고 또 지금처럼 내리는 가랑비는 늙은이턱수염밑에서도 긋고간다는데 왜놈의 나라에서 내리는 한봄철의 가랑비는 어째 이리도 지겹고도 구질스러운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면서 옥비를 돌아보았다.
《야단났군, 이러단 속안까지 다 젖겠는걸?! 우리 달릴가? 저기 주막이 있는 곳까지.》
그러자 옥비는 살랑살랑 도리질을 했다.
《싫나이다. 천천히 가소이다. 난 거기와 함께 있으면 비를 맞아도 싫지 않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두렵지 않고 총칼이 앞을 막아도 무섭지 않나이다.》
《사내구실도 쓰게 못한 날 그토록 믿어주니 고맙구려. 그 손을 인주오. 난 그대의 곱고 나긋한 손을 잡고 걸으면 아무리 먼길을 가도 힘들것 같지 않소.》
《그럼 손을 잡을가요?》
《응, 어서.》
《자요.》
둘은 손을 꼭 잡은채 다정히 어깨를 기대고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길이 질건 개의치 않으며 꽃밭을 거니는 심정이 되여 흐느적흐느적 걸음을 내옮겼다.
《이봐요, 내 옛말 하나 해도 되겠나이까?》
《하구려.》
《옛날 어떤 집에 사위가 놀러왔다 하오이다. 헌데 그 사위라는 사내는 본성이 건달기가 많은
《하하, 나에게 건달뱅이사위가 되지 말라고 엇찌르는건데 걱정마오. 옥비, 난 그 사내처럼 살진 않을테니.》
《호호, 그건 옛말이오이다. 난 당신이 놀고먹든, 날 부려먹든 아무튼 좋으니 늘 곁에만 있으면 좋겠나이다.》
둘은 보슬비에 몸이 화락하니 젖는것도 개의치 않고 희희락락하며 수십여리길을 힘든줄을 모르고 축냈다.
동해도의 이 세주중에서 그중 큰 고을인 반야를 시오리가량 앞두었을 때 날이 벌써 어둑해졌다.
읍거리초입구인 유자나무가 우거진 나지막한 산기슭의 지세를 두루두루 훑어보던 창해가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고 가야겠소.》 하고 서두를 떼고 제 먼저 신작로에서 벗어나 산자드락쪽으로 향했다.
《이 한산한 야외에 어디 잠잘데가 있나이까?》
《저기 초가가 있지 않소.》
창해가 손짓한쪽을 옥비가 살펴보니 정말로 유자나무숲을 두어돌기 꿰지르고나가 어지간히 비탈진 곳에 새초이영을 쓰고 양지바른 골안쪽으로 돌아앉은 오두막 한채가 눈에 띄였다.
어떤 농군이 돌서덜지를 개간하여 부대밭을 일구느라고 나와 사는 가설막인데 주인은 무슨 일이 생겨 제 집으로 내려갔는지 없어 집이 비였었다.
창해와 옥비는 엇걸이로 달은 부엌아궁에 장작불을 지펴놓고 쇠가마안에 끓일 물을 부은 후 비에 젖은 겉옷을 벗어 줴짜 말리워 입었다.
그런 다음 지난밤에 묵은 객사에서 싸넣었던 도중밥을 꺼내여 뜨거운 물에 말아먹었다.
더운것이 속안에 들어가자 비에 젖어 떨리던 몸이 후끈해졌다. 그러자 피로에 지쳤던 육신이 매시시해났다.
하품을 연방 하던 창해가 먼저 졸음을 못이겨 외구들을 놓고 그우에 돗자리를 편 오두막안에 드러누웠다.
《피곤해죽겠군, 일찍 자기요. 왜인이 주인이랍시고 횡행하는게 없고 숙비도 낼 걱정이 없으니 맘편해 좋구만.》
《먼저 쉬소이다. 난 좀…》
옥비는 어두워진 밖에 나가 그때까지도 축축히 젖어있는 속옷을 벗어 짜입고 되들어와 아궁앞에 한참이나 앉아 몸을 말리운 다음 막안으로 들어갔다.
창해는 막주인이 쓰던 얄팍한 덮개를 옥비가 누울 자리로 남겨놓은 아래목에다 밀어놓고 자기는 웃목에 누워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저고리로 배만 건성 가리운채 눈을 감고있었다.
옥비는 미안하여 얼른 그 덮개를 창해에게 가져다가 덮어주고 자기는 한쪽에 떨어져 그냥 쪼그리고 누웠다.
그러는것을 창해가 눈을 뜨고 옥비쪽으로 낑 돌아누우며 덮개를 활 밀어 옥비에게 되씌워주었다.
《난 초근목피로 끼를 때며 랭설과 한지잠에 치여난 무사여서 이쯤한건 띠끔도 안하오. 당신은 연약한 내인이여서 찬비에 젖으면 쉽사리 감기에 걸릴수 있으니 그걸 덮고 자오.》
그러는데도 옥비가 사양을 하자 창해는 그럼 둘이 같이 덮자면서 휘딱 일어나 아래목에 누운 옥비곁에 와 누웠다.
창해가 그닥 푼푼치 못한 너덜덮개를 활 펴서 둘의 배우에 올려씌우고는 찬기운이 새여들세라 옥비의 몸에 꼭 눌러주었다.
오사까에서부터 예까지 수백리를 둘이 동행하긴 했으나 수십일이 남는 허다한 밤을 객관이나 민가에서 숙박하며 잠자리는 따로 해왔었기에 옥비는 아무리 애중스러운 사람일지라도 별안간에 외따른 막에서 단둘이 밤을 지새우려니 부끄럼이 동해 내우를 했다.
《왜 그러오? 내가 싫소?》
《그런게 아니라 저…》
《난 당신이 감기들가봐 이러오.》
창해는 이렇게 애인과 한자리에 눕고보니 전쟁때 옥비를 잃고 애간장을 태우며 살아온 지난날이 허무하게만 여겨지였다.
《고진감래라더니 참 그게 다 일리가 있는 소리였소. 옥비, 우리 이젠 영영 헤여지지 말고 함께 있자구.》
《이렇게 함께 있는데 뭘 자꾸 새삼스럽게…》
《이담에 우리한테서 어떤 애가 생겨날가? 남들은 아들이 좋다지만 난 옥비처럼 고운 딸이 있으면 좋겠어.》
《피- 아들이 아들이지 아무렴… 헌데 이봐요, 부모님들이 우리의 혼인을 승낙할가요?》
《우리 어머님이나 옥비네 부모나…》
창해는 이러다가 말꼬리를 흐리였다. 자기를 만나서부터 늘 부친소리만 외우는 옥비한테 차마 그의 아버지인 윤병두종사관이 정유왜란때 전사한 사실을 말해줄수가 없었던것이다.
창해는 이 세상에서 혈혈단신으로 되여버린 옥비를 이젠 자기가 맡아 등탈없이 돌보며 어떻게 하나 복되게 해주리라는 마음을 다졌다.
한량없는 심정속에서 다정히 애무하며 봄아지랑이에 휩싸인 행복의 공상다리를 오래동안 톺아나가던 그들은 자정이 넘어서야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창해는 잠결에 막밖에서 딱- 하고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와 쑥덕거리는 왜말소리를 듣고 정신을 버쩍 차렸다. 그는 도간도간 들려오는 말소리에서 사무라이들만이 써오는 은어가 섞여있는것을 가려듣고 머리칼이 곤두섰다.
창해는 벗어놓았던 겉옷을 얼른 주어입고 거동할 준비를 갖추면서 옥비를 흔들어깨웠다.
그때 막문이 부서져 떨어지며 긴 쇠칼을 든 괴한 여럿이 뛰쳐들어왔다.
창해는 잠에서 채 못 깨여난 옥비를 구석쪽으로 밀어던지는 찰나 두손으로 바닥을 짚고 휙- 두다리를 날리며 앞에서 뛰여들던 두놈을 동시에 걷어찼다. 급소인 명치부위와 사타구니를 줘맞은 놈들은 단코에 아이쿠- 하고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그러자 뒤에서 뛰여들던 네놈의 괴한이 《고노야로-》하며 일시에 창해를 덮치였다.
창해는 달빛조차 없는 어둠이 덮인 속이라 순전히 무술가의 촉감으로 놈들의 칼질을 피하며 한놈씩 케를 보아 급소를 타격하여 꺼꾸러뜨렸다. 그러다가 놈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어깨박죽을 헤갈리우고 앗- 하고 신음을 질렀다.
그는 아찔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다잡으며 상하지 않은 한쪽팔로 놈들과 격투를 벌렸다.
어느새 부엌에 나가 부지깽이를 집어가지고 온 옥비가 그것을 휘둘러 놈들의 뒤통수와 팔목을 짓조겨대며 창해를 도왔다.
옥비의 후원에서 힘을 얻은 창해는 용기백배하여 싸웠다.
살아남은 두어놈이 아무래도 케가 글렀다고 여겼는지 와당탕 밖으로 뛰쳐나가 도망을 쳤다.
피도 어지간히 흘린데다가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홍창해는 긴장이 풀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날샐녘에야 간간이 정신이 든 그는 《옥비, 어디 있소?- 옥비-》하고 부르며 마음이 조급해서 옥비부터 찾았다.
그러자 그의 머리맡에서 다정한 녀인의 목소리가 울리는것이였다.
《제 여기 있지 않나이까.》
창해는 뒤늦게야 자기가 옥비의 보살핌속에 누워있는것을 의식했다.
자기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물그릇과 어깨박죽에 감겨진 피젖은 옥비의 속옷을 찢어 만든 붕대를 보고 창해는 그가 자기를 처치하고 간호하느라 역사를 치르었다는것을 알았다.
《이게 무슨 일이람. 사신호행원이란게 그깟 허깨비같은 놈팽이들한테 줘맞고 쓰러지다니, 참.》
창해가 창피감이 들어 일어나려고 하자 옥비가 그를 되눕혔다.
《일없어요. 그냥 이렇게 누워 안정을 하소이다.》
창해는 따뜻한 온기와 싱그러운 향취가 풍기는 녀인의 손길에 몸을 맡긴채 한량없는 무아경에 잠겨들었다.
그러다가 소스라치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여긴 아무래도 안전치가 못하니 자릴 뜨기요.》
그들이 길짐을 꿍져들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동녘하늘이 희붐히 터오고있었다.
도망질을 치다가 다근관절이 삐여져 더 못 가고 골개울가에 어푸러진채 낑낑 신음을 내는 괴한을 띄여본 홍창해가 그자의 목덜미를 움켜잡아 휘딱 쳐들며 따져물었다.
《너흰 누구냐?- 어느 놈이 보냈어?-》
《다이묘께서… 무사님, 한번만…》
《령주가 어째서 날 죽이려 하는거냐?-》
《<도자마>의 거두이신 가또 아니, 도노사마께옵서 조선사신일행을 죽여치우라는 밀지를…》
《무야?- 조선사신을 살해하라고 했다고?! 그럼 수염발이 풍성한 스님도 해치려고 하느냐?-》
《그렇소이다. 동산도와 북륙도의 <도자마>들에게 수염쟁이도승을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없애버리라는 밀령을 띄웠소이다. 소인도 그같은 밀서를 가지고 이곳 동해도에 왔댔소이다.》
《악귀같은 놈들-》
분노가 치받쳐 으드득 이를 갈던 홍창해는 놈의 숨통을 마저 눌러치우고는 사색이 된채 서있는 옥비에게로 다가가 결연히 뇌였다.
《당장 되돌아 송운대사님에게로 가야겠소. 그분이 위험하오.》
정말로 향방을 돌려 되가는 창해를 망연히 지켜보던 옥비가 갑자기 짜증을 썼다.
《그럼 우리 가시노미네사람들과 규슈의 다른 곳들에 끌려와있는 조선사람들은 어떻게 하나이까? 송운대사님께선 거기한테 그들을 구원하라는 령을 주지 않았소이까.》
그 소리에 창해는 피뜩 자각이 되여 멈춰섰다. 그찰나 유정스님의 호된 꾸중소리가 그의 귀청을 드르렁- 울렸다.
《일개인의 보신이 중하냐? 나라대업이 중하냐? 지금처럼 한데 몰켜다녀가지고는 삼년석달이 걸려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못다 끝낸다. 한시 하루라도 시간을 끌면 그만치 조선사람들과 조선문화재가 사멸된다는걸 어째 모르느냐?-》
아래입술을 욱 피나도록 깨물던 창해는 《아무리 그러한들 젊은 호행원들을 나처럼 이렇게 다 떼보내고 사지판을 단마필기로 횡행하면 어찌하옵니까? 그 어느 누구도 총섭님을 대신하지 못하니 귀체를 보존해야 하옵니다.》 하고 뼈아프게 통탄을 하다가 총섭님, 제발 무사하옵시오- 이런 절심의 기원을 북쪽하늘가로 실어보내고 남쪽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내옮겼다.
그들은 불의의 봉변을 당한 그날부터 네댓새만에 남해도에서 그중 큰 땅덩어리인 규슈의 한쪽끝에 위치한 가시노미네촌락에 당도했다.
촌락의 존
《옥비야!- 살아있었구나.》
《할아버님!-》
옥비도 눈물을 쏟으며 일어나 윤로인의 팔을 부둥켜안았다.
윤로인은 후들거리는 손으로 옥비의 팔등과 손목을 어루쓸며 가슴에 맺혀있던 노염을 내쏟았다.
《어쩌면 그럴수가 있느냐? 이 할애비한테 간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훌쩍 사라지다니, 원. 느닷없이 행방불명된 네 일로 해 오죽이나 속을 썩인줄 아느냐?》
이러던 로인은 홍창해가 그 사연을 얘기해줘서야 옥비가 별안간에 까닭없이 떠나간 리유를 알고 감심을 했다.
《그때당시는 달리할수가 없었나이다. 할아버님, 소녀는 늘 할아버님 걱정만 했소이다.》
《여하튼 고맙니라. 네가 우리 가시노미네의 불우한 인생들을 살려줬구나. 사회복연이라고 식은재가 다시 타듯이 내 비록 늙은 몸이지만 고국에서 온 사신들의 일을 힘껏 돕겠니라.》
울산댁이며 박서방이며 수년간 옥비와 야수의 땅에 끌려와 고락을 같이해온 친근한 사람들이 옥비를 둘러싸고 반가움을 금치 못해했다.
그런 가위에 입심센 울산댁이 창해를 가리키며 옥비에게 물었다.
《이 젊은인 뉜가?》
《저의 랑군이오이다.》
이런 말로 서두를 뗀 옥비가 창해와 자기사이의 기이한 연고와 아울러 자기네 두사람이 이곳 규슈로 오게 된 사유를 구구히 얘기하자 도자기터의 사람들은 크게 감동하였다.
《글쎄 어쩐지 우리 귀랑자가 천지풍파와 부귀영달의 유혹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수절렬녀의 기강을 세운다 했더니 맘속에 이런 끌끌한 지아비가 억척같이 자리잡고있었군그래.》
울산댁이 이런 노죽을 부려대는통에 웃음과 눈물이 뒤섞여 흐르다가 기쁨의 파도로 변해 일렁이였다.
가시노미네촌락의 조선사람들은 홍창해를 최대의 극빈으로 환대해주었다.
그곳에서 며칠 묵으면서 막부의 군령장을 내대며 귀환자들과 문화재를 반환받아 나고야항으로 옮겨갈 만단의 준비를 끝내고난 홍창해는 이웃고을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