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길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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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신을 암살하려던 일때문에 쇼궁으로부터 된추궁을 당하고 접반사직까지 떼운 가또 기요마사는 닭쫓던 개 울바자에 걸려 자빠진 신세가 되여 교또를 떠나고말았었다.

그가 제 령지로 내려온지 스무날도 채 못 지났는데 꽁무니를 따라오기라도 한듯 막부의 군령서가 날아들었다.

 

조선의 임진조국전쟁에 참가했던 각 지방의 다이묘들과 태수들은 사취한 조선기물들과 조선인포로들을 반환시켜 조선과의 선린교류를 도모할지어다.

 

분통이 터져나오는것을 애써 달래이던 가또는 후원의 사당으로 들어가 모사엔스님의 금불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스님, 이 일을 어쩌면 좋사이까?》

측은한 눈빛으로 애제자를 한참이나 굽어보던 모사엔스님이 비분강개한 음성으로 대척을 하는것이였다.

《군장, 고수를 해야 하오. 그 모든것은 우리 일본위주의 큰 하나를 위해 필요되는거니까. 그 한점, 두점의 문화재와 몇몇의 인력을 쟁취하기 위해 우리 일본군사들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말이요. 조선땅에 유골로 묻힌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한다면 력사의 죄인이 될게요.》

《알겠소이다, 스님!》

가또는 억심을 가다듬으며 모사엔스님께 정중히 읍례를 하고 보살상앞에서 물러났다.

그가 현관돌계단앞으로 돌아나오는데 중대문쪽에서 애된 하녀가 게다를 타닥거리며 나타났다.

하녀의 꽁무니에 묻어 헐금씨금 따라오는 도포차림에 일각모를 쓴 중년사내를 띄여본 가또는 시무룩이 웃음을 지었다. 자기가 총애하는 부하인 요시하찌였기때문이다.

요시하찌는 왜서인지 날카로운 상통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는데 척 보기에도 그의 기분상태가 말이 아니라는것이 알리였다.

직성이 옥맺힌 걸음으로 겅정겅정 다가온 요시하찌는 가또한테 군례를 얼추 표하고는 자기가 받은 막부의 령장을 내보이며 거치른 말투로 물었다.

《군장님,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옵니까?》

《어찌되긴 뭘 어찌돼? 쇼궁의 군령에 의해 벌어지는 국사이지.》

《그럼 군장님도 이런 공문서를 받았소이까?》

《이 도라노스께라고 례외될수야 없지 않나.》

가또의 설퉁한 대꾸에서 판을 짐작한듯 요시하찌는 《빠가(바보)-》 하고 울부짖으면서 군령장을 갈가리 찢어던졌다.

《가노들이 보는데서 그러면 못쓰이. 허나새나 나라의 지엄스러운 쇼궁한테 그게 무슨 본땐가?》

가또는 억심이 북받쳐올라 앙앙불락하는 부하를 얼른 안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홍지백이 찰랑거리는 호로주병을 내주었다.

《한모금 마시고 자중을 하게. 나라의 일개 고을을 다스리는 다이묘답게 생각을 널리 할줄도 알아야지.》

요시하찌는 술을 둬사발 쏟아마시고서야 한결 성이 가라앉아 공순해졌다.

부하의 떨리는 어깨를 수차 다독여 진정을 시키고난 가또가 하오리를 제끼고앉아 누비돗자리바닥에 바둑쪽을 내리떨구며 점을 쳐대고있는데 후원에서 야무진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얏- 얏- 얏-》

힐끗 창너머를 내다보던 가또는 《쯧쯧, 하는 꼴을 보면.》 이러며 혀를 차다가 요시하찌에게 《임자가 왔던 길에 수고스러운대로 저 애한테 사무라이검법을 좀 가르쳐주라구.》 하고 일렀다.

그러자 요시하찌는 결기에 술기까지 겹쳐 닁큼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는 현관 나들문을 나서서 곧장 참대가 우거지고 귤나무, 유자나무, 와비수께나무가 사이좋게 어울려 자라는 후원으로 돌아갔다.

련꽃이 아롱진 못과 키넘게 쌓은 돌담사이의 널직한 공지에서 열두어살났을 사내애가 사람모양의 목각상을 제앞에 세워놓고 긴 환도를 휘둘러대고있었다. 이마가 되똑하고 눈꼬리가 치째진게 얼핏 보아도 여간내기가 아닐 그는 가또가 양자로 삼아 키우는 애(임진조국전쟁때 가또부대의 선봉장이였던 마에다의 아들)였다.

사내애의 서툴기 그지없는 격검을 눈이 찌글써해서 지켜보던 요시하찌는 갑자기 꽥 소래기를 질렀다.

《야매로- 오잇, 마찌이로-》

《하-》

사내애는 칼질을 멈추고 황황히 요시하찌앞에 달려와 서서 꼿꼿한 대령자세를 취했다.

《이봐, 칼쓰는 본때가 게 뭐냐? 그 쇠막대길 인다오.》

사내애의 손에서 외날검을 나꾸어챈 요시하찌는 목각상가까이로 몇걸음 다가섰다. 그러면서 하오리를 활 벗어 내팽개쳤다.

그러자 털이 부얼부얼 내돋은 가슴곽이며 통나무공이같은 팔뚝이 드러났다.

잠간 숨을 들이그으며 목각상을 알궂게 노려보던 요시하찌는 별안간 으얏!- 하고 기합을 육신에 넣더니 불맞은 상사말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얼굴-》

그 벼락같은 웨침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날카로운 검끝이 목각상의 얼굴부위를 깊숙이 들이찔렀다. 그런 후 요시하찌는 날쌔게 기운이 뻗치는 발길질로 목각상의 하체를 걷어차며 얼굴에 박힌 칼끝을 뽑더니 허공에서 한고패 번개불을 일구고 숨돌릴새없이 《적수》의 머리통을 칼날로 내리팼다.

《정수리-》

그 승악진 울부짖음이 끝나기 바쁘게 목각상의 머리통이 두쪽으로 빠개져 나떨어졌다.

두어합만에 벌써 광기로 하여 요시하찌의 시뻘개진 이마와 목덜미에선 진땀이 내돋았다.

그랬으나 숨돌릴념없이 광란적인 칼춤을 한토막 섬찍하게 해보이고나서 살기차게 《적수》에게로 돌입했다.

《배-》

시퍼런 칼날이 사선으로 내리그어지며 눈깜짝할새에 목각상의 복부를 헤갈라놓았다.

한바탕 기승을 부리며 시범동작을 해보인 요시하찌는 칼날에 맞아 패인 나무밥이 사람의 살점처럼 시허옇게 묻은 외날검을 사내애한테 넘겨주었다.

《이자 본대로 해봐. 칼끝에 힘이 가도록 팔뚝을 도사리면서 단번에 콱- 들이찌르고 내리썰란 말이다.》

사내애는 까치대가리같은 외뿔머리를 갑삭 숙여 제법 군례까지 표한 후 칼을 휘둘러 휘파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눈살을 실그러뜨리고 그의 여물지 못한 동작을 주시하던 요시하찌가 《가만-》 하며 그를 제지시켰다.

《저걸 단순히 훈련용목각상이라고만 여겨서는 안돼. 너의 친아버지를 죽이고 또 양아버지의 군사들을 앗아간 고마인이라고 여기란 말이다. 양아버지를 총수로 한 우리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조선을 정벌 못하고 죽으면 너희들이 대를 이어 힘을 길러 기어코 조선을 타고앉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힘을 내서 찔러봐라, 시작-》

《하잇-》

사내애는 송곳이를 옥사려물며 잘 알아들었다는듯 되똑이마를 까닥거리더니 전보다 더 암팡지고 활기차게 환도를 내지르고 후려치고 하여 목각상을 누데기처럼 만들어버렸다.

《얼굴-》

《정수리-》

《배-》

새끼승냥이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영악진 웨침소리를 뿜어올리면서 이리 내닫고 저리 올리뛰고 옆뻗고 뒤돌고 하면서 기승스럽게 날치는 사내애를 흡족하게 여겨보던 요시하찌는 목대를 젖히고 웃어댔다.

《잘한다, 잘해. 하하.》

요시하찌를 뒤따라나와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가또가 《음.》 하고 안도의 긴숨을 내그으며 구레나릇턱을 주억거렸다.

둘은 어지간히 심중이 개운해져 가또가 정사를 보는 방으로 향하였다.

익측에 현관문을 낸 복도로 들어서려고 본채로 돌아가던 가또는 안방 창문앞에서 주춤 멈춰섰다.

참지를 바른 창문이 벙싯이 열렸는데 그안에서 계집의 애바른 푸념소리가 울려나왔기때문이다.

《나무아미타불님이시여, 무소부지하신 태주아씨여, 소녀의 두손바닥이 닳아빠지도록 빌고비오니 이 가엾은 소생에게 자비를 베풀어 태기가 있도록 해주옵소사. 웅야산, 애탕산에 모신 여러 권현수신들과 기요마사가문의 종묘에 모신 신주들은 은공을 내리시여 소녀의 몸에

서 정실소생의 살붙이가 떨어져 이 요꼬가 태수마마로 만복을 누리도록 보살펴주옵소사.》

가또가 소태먹은 상을 지으며 방안을 들여다보니 살집좋은 몸에 감색비단덧옷을 너푼 걸친 젊은 녀자가 신주와 위패를 벌려놓은 상단을 마주한채 무릎을 끓고앉아 살포동한 량손바닥을 맞비비고있었다.

가또의 처 요꼬였다.

요꼬는 가또한테 시집온지 열세해가 됐으나 여직껏 애를 배지 못해 몸살을 앓아오고있었다.

가또가 후사를 끊기우게 된것이 불만스러워 막 내놓고 처를 소박하면서 자식받이를 할 후실감을 고르는 한편 늘 밖에 나가 관가의 게이샤들과만 동침하자 자기의 정실마님자리가 위태로와졌음을 느낀 요꼬는 불우하고도 박복해진 제 팔자를 한탄하면서 재물을 물퍼붓듯이 들이밀어 불공과 액풀이로 세월을 보내는데 그 광기가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지라 애어린 몸종들까지도 역증이 나하는 판이였다.

가또는 부하에게 제 녀편네의 불미스러운 꼴을 보인것이 민망하여 입을 쓰겁게 다시다가 서둘러 걸음을 뗐다.

가또는 생각이 갑자기 달라져 요시하찌를 별채로 이끌고 갔다.

둘은 이끼돋은 별채의 묵직한 나들문을 열고 들어가 널마루를 깔은 복도를 한참 걸어가다가 중간쯤 되는 어느 한 방으로 들어섰다.

습기가 척척하고 곰팡이내가 씁쓸하니 풍기는 어둑시그레한 방안의 시렁우에는 수십개의 유골함과 위패들이 순차대로 얹혀있었다.

그것들을 요시하찌에게 손짓해보이며 가또는 비분강개한 음성으로 뇌였다.

《수년전 임진조국전쟁때 내 수하에서 싸우던 잊지 못할 제장들일세. 저 첫번째 함이 바로 마찌이로의 부친인 마에다선봉장의 유해네. 자네도 아다싶이 그는 실로 아까운 장수였댔는데 애석하게도 고혼이 됐거던. 임자도 그가 근간에 조선사신으로 본토에 건너온 그 금강산 중이 거느리던 승병한테 사살당한걸 알지? 우리 일본군대의 참패로 끝난 조선원정에서 난 수만의 군사들과 백수십명의 끌날같은 장수들을 잃었네. 어허참, 생각할수록 이 가슴이 터질것만 같으이.》

가또는 억하심정이 되여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입술만 짓씹었다.

요시하찌도 그 나날의 악몽과도 같은 환영들이 떠올라 으시시 치를 떨었다.

가또는 목젖을 꿀떡이며 한동안 분기를 가라앉히고나서야 《우리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아니, 설사 백골이 진토된다 해도 옛적에 사생동거를 하며 본국을 위해 싸워온 동료들을 잊지 말자구.》 하면서 칼자루를 틀어잡는 요시하찌의 잔등을 친절하게 두드려주고는 그를 이끌고 다시금 옆방으로 돌아갔다.

널마루를 반듯하게 깔고 벽과 천정에 참대와 사꾸라꽃문양을 새긴 널다란 방안에는 류다른 물건들이 꽉 들어차서 발을 옮겨짚을 자리도 크게 나있지 않았다.

여러층으로 선반을 맨 한쪽옆에는 뚜껑에 번쩍번쩍 금박이 박히고 주먹같은 활자들이 찍혀진 대장경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조선에서 발행한 그것들중에는 고려시절의 어느 왕후가 독수공방의 지루한 시간을 보내느라 자필로 베껴썼다는 대장경도 있었고 조선봉건왕조의 7대임금인 세조가 말년에 간행했다는 대장경도 한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또 한쪽 옆면에는 길다란 탁자를 만들어세웠는데 그우로 크고작은 조선의 금불상, 동불상들이 어깨를 맞비비며 점잖게 앉아있었다.

출입문과 마주한 환기창밑면에는 조선의 세종대왕이 첫 금속활자를 만들어찍었다는 《상정고금례》 같은 서적들과 한성안의 규장각에서 빼내온 중요한 문서들은 물론이요 하물며 궁정악사들이 리용하던 악보로부터 시작해서 고려며 세나라시기에 유명했던 화가들이 그렸다는 병풍들과 족자들이 년대별순차대로 전시되여있었다.

그것들을 조선에서 가져올 때 운송작전을 직접 지휘한 요시하찌였으나 어지간히 세월이 흘러간 뒤에 다시 보면서 그때의 일들을 돌이켜보느라니 감회가 새로와졌다.

그는 은연중에 자부심이 살아나 웅절거렸다.

《우리가 조선에서 숱한 사상자를 내고 격퇴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본전은 찾은셈이옵니다.》

그 소리에 가또가 속이 우뚤해져 눈을 흘겼다.

《우리가 본전이나 찾자고 조선원정을 단행한줄 아는가?》

그 노여운 책망에 요시하찌는 저으기 게면쩍어하다가 생각이 달라져서 턱을 지싯거렸다.

《조선을 통채로 고아먹지 못하고 이런 문화재와 포로따위나 걷어가지고 온것만도 통분할 일인데 피흘린 대가로 겨우 쟁취했던 이것들마저 도루 내놓으라니 이거야 가슴이 터져와 살겠소이까?》

《여하튼 가서 차나 마시면서 그에 맞는 대책안을 토의해보자구.》

가또는 요시하찌를 뒤에 달고 별채를 벗어나 본채 침방으로 향했다.

그의 침방은 복도에서 제일 안탁진 꺾임들이의 해양진 곳에 있었다.

지붕이 로송에 묻히고 귤나무와 대숲이 우거진 정원을 향해 창문이 시원하게 나진 방이였다.

련꽃문양이 새겨진 종이로 정갈하게 도배를 한 뒤벽에는 조선의 장생병풍이 세워졌는데 학과 소나무 또한 거부기가 생동하게 그려진 그 청신한 병풍을 등에 지고 가또가 비단침보우에 점잖게 앉으니 거룩하기가 부처님과 다를바 없었다.

그의 오른쪽에는 희귀한 문방제구가 놓여있고 왼쪽자개박이손탁자우에선 매력있게 생긴 관세음보살이 야릇이 미소를 뿌리고있었다. 침대머리맡의 룡이 꿈틀거리는 청동화로(조선에서 빼앗아온것)안에서는 갓 갈아넣은 숯불이 이글거리고 불우의 쇠그물에 올려놓은 차주전자에서는 홍차가 살랑살랑 끓으며 향긋한 냄새를 풍기고있었다.

《자, 어서 한잔 하게.》

상전이 친절하게 부어주는 홍차를 송구스럽게 받아들고 한모금 마시던 요시하찌는 갑자기 억하심정이 되여 눈꼬리를 곤두세웠다.

《우리가 반환령을 거역했다가 막부의 미움을 사면 어느 순간에 황천객이 될지 모르는데 가만히 앉아 나 죽여주소 하며 칼을 받을수야 없지 않소이까. 기필코 막부와 싸우는 수밖엔 없는데 까짓거 군장님, 이번통에 <후다이>들을 제껴버리고 막부를 우리 손에 걷어쥐고마옵시다. 군장님께서 쇼궁이 되시여…》

《얼빠진 소리 그만하게.》

가또는 당황하여 요시하찌의 말허리를 급스레 분질러버렸다.

《본국을 또 전탕 수라장으로 만들자는건가? 가뜩이나 골육상쟁으로 인하여 허약해진 이 나라를 말이다. 근간에 조선의 한 비천한 중한테 일본의 지엄스러운 막부 쇼궁이 야료를 당하는것도 결국은 국력이 약해졌기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뭐 이 도라노스께가 쇼궁자리를 바래 내란을 일으키라구?! 뭐, 쇼궁? 사람이 바랄걸 바라야지.》

가또는 자기도 차잔을 집어들고 쌉쓰레한 차물로 졸금졸금 목을 추기면서 불쑥 옛시절에로 생각을 달리였다.

그가 어렸을 때 하층량민이였던 부친은 늘 입버릇처럼 외우군 했었다.

《살아가자면 물론 재산이 있어야 하지만 사람한테는 우선 직권이 있어야 한다. 권력만 손에 잡으면 부귀는 저절로 찾아들고 또 그로 해서 사람은 복을 누리게 되는 법이란다. 자고로 룡좌를 타고앉으면 하늘은 돈잎만 해보이고 부처님도 신령님도 다 제 발밑으로 굽어보인다던데 어허참, 우리 가문에 그런 인생의 큰 락을 누릴 행운아가 있기나 하겠는지.》

그러면서 자기를 바라보던 부친의 간절한 눈빛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부친의 그 눈빛에는 제 집 자손이 남보다도 월등하여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군이나 군주가 됐으면 하는 갈망이 어려있었다.

했건만 가또는 부친의 간절하게 바라던 그 소망을 실현시켜주지 못했었다. 그는 권력욕때문이 아니라 승벽심때문에 남과 다투기를 잘했고 사무라이의 존엄과 도의를 지키느라 전장에 생명을 내던지군 했었다. 우리보다도 나를 중시하고 민족보다도 나의 가문만을 생각했던 부친의 인생관이 그의 체질에는 맞지 않았던것이다. 지어 부친이 민망스럽기까지 했었다. 바로 그러한 인생관을 지닌 사람들때문에 이 땅엔 얼마나 기막힌 희비극들이 펼쳐졌던가?

가또의 눈앞으로는 일본의 피비린내나는 력사와 살륙전의 장면들이 연줄 흘러지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응인의 란》이 일어난 때로부터 히데요시가 8도 66주를 통합하기까지 장장 100년에 걸치는 전국시대의 소란스럽고 파란많은 광경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스산했다. 크고작은 다이묘들이 저저마다 소왕국을 형성하고 각기 패권을 다투며 피투성이싸움을 벌리던 그 백년세월은 일본을 뒤걸음질시킨 치욕의 력사가 아니였던가? 헌데 이제 또 그 수치스러운 행적을 답습할수야 없지 않는가.

이런 생각에 잠기던 가또는 드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그런 개인악감과 야심은 버리고 우리 곡진한 마음만 가지고 쇼궁올 찾아가 그가 옳바른 정사를 해나가도록 충간을 하자구.》

상전의 그 엄한 훈계를 듣고야 요시하찌는 더이상 가타부타 못하고 누그러들었다.

그날중으로 총망히 행장을 차린 가또는 충실한 부하인 요시하찌를 비롯해서 다나까네 가병대를 거느리고 유개마차에 올라 급급히 교또를 향하여 출발했다.

그들은 말을 쉬임없이 때려몰아 나흘만에 교또에 들어섰다.

허위단심 수백리길을 수고스럽게 달려왔건만 도꾸가와쇼궁은 이미 에도성으로 돌아가버리고 없었다.

쇼궁이 자필을 남긴 서신장만이 가또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네들이 막부의 조치에 반발하여 달려올것 같아 몇자 남기오. 나라를 거느리는 정이대장군이 타국의 일개 중한테 머리를 숙였다고 나무람마오. 장히 품은 뜻이 있어 그리했으니 널리 량해를 하오. 장차로 일본을 강병시켜 오늘의 수치를 씻겠소.

 

쇼궁의 남모르는 고충이 심중에 마쳐와 입술만 질근질근 씹어대는 가또한테 교또태수는 조선인포로들과 문화재들을 긴요치 않은걸로 적당히 내주어 조선사신들을 얼리라는 군정보좌관의 당부를 귀뜀해주었다.

그 소리에 심사가 잉해진 가또는 쇼궁의 서신장을 활 줴버리면서 얼리는것은 중책이다, 보다 좋은 상책은 아예 못 가져가게 하는것이다- 이렇게 뇌까리다가 불쑥 교또태수한테 수염쟁이 조선사신이 요즘 어디서 뭘하는가를 알아봤다.

그러자 교또태수는 맹랑한 말투로 대꾸했다.

《그들이 에도를 비롯한 동산도와 북륙도의 여러 고을을 순회하면서 산수유람을 하겠다고 수일전에 북쪽으로 행차를 띄웠소이다.》

그 대답을 들은 가또는 속으로 이크, 야단났구나- 하며 신음을 내질렀다.

《그 수염쟁이중한테 또 간을 뽑히게 됐다. 무어, 유람?! 아니다. 그는 필경 유람을 구실대고 우리 일본의 도성인 에도의 형편과 북부산업지구들과 군사요충지들을 돌아보면서 본토의 경제력과 병력확산형편을 내탐하려는거다.》

이러다가 입술을 짓깨무는 가또한테 요시하찌가 앙심이 돋쳐 씹어뱉았다.

《그자를 그냥 놔두면 본국은 염통까지 도리우고말겁니다. 까짓거, 막부에서 통상체결문서도 받아냈다는데 이젠 끝장을 내옵시다.》

제 부하의 피타는 충간을 새겨들으며 북쪽하늘가에 침울한 시선을 보내던 가또는 음- 하고 비통한 몰숨을 꺼지도록 내불다가 오비에 찼던 장검을 뽑아 마루바닥을 욱 눌러짚었다.

창문으로 새여든 한낮의 해볕에 시퍼런 칼날이 번쩍 반사광을 일으키며 주변사람들을 섬찍하게 만들었다.

그 서슬푸른 무언의 거동은 동의를 표하는것이였다.

상전의 내심을 간파한 요시하찌는 그날 밤중으로 날래고 충실한 가병 몇을 골라 동산도와 북륙도의 《도자마》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다해 조선사신을 죽여버리라는 밀령을 가또군장의 명의로 써넣은 서신장을 하나씩 주어 떠나보냈다.

한편 에도성에 올라와 정사를 보던 도꾸가와는 교또태수가 띄운 긴급장계를 받았다. 가또네 《도자마》들이 기어코 조선사신을 암살하려고 책동한다는 통고였다.

도꾸가와는 서둘러 군정보좌관을 편전으로 불러들여 의논을 했다.

《도라노스께가 의기와 용력은 넘치는데 웅지가 소약한게 탈이요. 하찮은 문화재 몇점과 귀환자 몇이 아까와 불맞은 상사말처럼 성급하게 그러니 실루 코막고 답답해할노릇이 아닌가 말이요.》

《사실 자기것으로 만들었던것을 되내놓는다는게 헐한 일은 아니옵니다.》

《장관도 역시 답답하오. 옛사람들이 큰것을 위해 작은것을 희생한다는 고담을 많이 써왔는데 그런 리치로 고급한 사고를 왜 못하는가 말이요? 일본이 발전된 나라들과의 교류를 통해 하루속히 맹주로 자라 조선을 비롯한 그너머 대륙까지 타고앉으면 지금 내놓았던것은 물론이요 나라통채로가 우리의것이 될게 아니요?》

상전의 질책을 당하고서야 군정보좌관은 심오한 뜻을 비로소 깨닫고 채심했다.

《소장이 당장 도라노스께를 불러올려 죄책을 하겠소이다.》

《그러다가 되려 <도자마>들이 반기를 들면 그 또한 우환거리요. 이제 다시 내란을 겪으면 일떠서기가 힘들거던. 허니 막부시위대의 유능한 군사들을 밀지에 띄워 북부유람에 오른 조선사신을 철저히 보호하여 그들이 본토에서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하오.》

《소장이 곧 맞춤한자들에게 군령을 주어 급파하겠소이다. 헌데 그수염쟁이사신이 하필이면 멀고 험한 북부지구에 대한 유람을 하는지 모르겠소이다.》

《무얼 모를게 있소. 그가 광산과 쇠부리터와 병기제조소들이 집중되여있는 북부지구들을 돌아보며 우리 일본의 경제적잠재력과 병력강화정도를 렴탐하려는건데.》

그 놀라운 사실을 너무도 태연자약해서 읊조리는 쇼궁을 본 군정보 좌관은 눈이 막 까뒤집힐 지경이 되였다.

《쇼궁사마께선 그 내막을 아시면서도 그들의 북부유람을 뒤받침해주고 또 생명까지도 보호하옵니까?》

《하하, 때에 따라선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고 속이면서도 속히우는척 하는게 바로 정사이고 외교거던. 누가 진짜로 속이고 누가 진짜로 속히웠는가는 후날에 알게 될거요.》

쇼궁의 웅지로운 책략을 헤아리기가 알쑹달쑹하여 일각모를 궁싯거리던 군정보좌관은 속으로 일을 꾸미는것은 사람에게 달렸지만 이루어지는것은 시운에 달렸다는 식으로 오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다가 도꾸가와에게 조심스레 건의했다.

《<비룡> 이 조선사신들과 껴붙어 돌아간다는 흉흉한 소문이 막부 장군들속에서 떠돌며 쇼궁사마의 위상을 흐리는데…》

도꾸가와의 매서운 눈총이 상판을 꿰찌를듯이 날아드는통에 군정보좌관은 흠칫 입이 얼어붙었다.

사실 《비룡》은 옛적에 도꾸가와의 막하에서 비장을 하던 충실한 부하의 아들인데 비장이 어느 한 성곽을 점령하는 싸움에서 잘못된 후 도꾸가와가 그 아들을 양자로 삼아 키워왔다. 《비룡》은 도꾸가와의 각별한 관심과 보호속에 간또에서 소문난 사부에게서 천하에 제일가는 무술을 수련하고 쇼궁의 비밀호위원노릇을 해왔었다. 이자 서른살을 갓 넘겼다는 그의 모상을 아는 사람은 시위대장밖에 없었다. 《비룡》은 쇼궁의 저택안에서만 자기 모상을 드러냈고 기타 공개석상에서는 늘 가면을 쓰거나 위장을 하고 시위군사들도 모르게 쇼궁을 호행하군 했었다.

《나의 <비룡>은 지금 제할바를 착실히 행하고있으니 제장들은 상관마오. 머지않아 <비룡>에 의해 본국의 존망을 지켜내는 멋진 결말이 나질거요.》 하고 씨벌이는 도꾸가와는 아주 태연자약하고 자신만만해하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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