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교또의 회오리바람
9
도꾸가와와 군정보좌관이 당면한 나라시책을 론하던 때에 유정은 승리자연하여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홍창해, 오팔이, 백손이, 계명이네들 한테로 돌아왔었다.
스님의 환해진 기색을 보고 쇼궁과의 담판이 락관적으로 결속됐다는것을 낌새챈 젊은이들은 자리에서 뛰쳐일어나 그를 반기면서 웃고떠들었다.
유정이 믿음직한 호행원들과 잠시 자리를 같이하고 담판과 관련한 얘기를 나누는데 군정보좌관이 들어섰다.
《쇼궁께서 사죄하시는 의미에서 조선사신을 후히 대접하여 돌려보내라는 하교를 내렸사오니 어서 가옵시다.》
유정이네는 외교치레를 받자하는것은 아니였으나 일단 대궐문턱을 넘어들은 걸음인데다가 또 쇼궁을 통쾌하게 눌러치운 뒤라 속도 흥그러워져 그 청을 쾌히 접수하고 고노하라를 따라 주연장소로 향했다. 조회청과 잇달려 밀실처럼 꾸린 식방에 들어서니 내시들이 음식상을 차리느라 바삐 돌아치고있었다.
유정이네가 알룩달룩하니 채색을 한 부들노전을 깔은 방안에 들어앉아 한담을 몇마디 나누는데 어느새 상이 다 차려졌다.
군정보좌관과 유정이가 상좌에 앉고 그들을 중심으로 해 오른편, 왼편으로 사신호행원들과 막부의
해사하게 생긴 애젊은 게이샤들이 기모노자락을 찰찰 끌며 나불나불 들어와 매 사내들의 곁에 하나씩 끼워앉아 술잔에 술을 쳤다.
막부
그러다가 유정이부터가 아무래도 이런 좌석에 초청되여 와앉은바에는 당당하게 귀빈대접을 받아야겠다는 배짱이 생기고 또 그러해서 한발 사이두고 앉은 계명이에게 《어서 네 형들한테 배띠 풀어놓고 즐기란다고 일러라.》 하고 암시를 하다나니 사신일행은 차츰 안심을 하고 수저를 놀리고 술도 마셨다.
유정은 원래 술을 할줄 모르는데다가 한생 철칙처럼 여겨온 계률에 구애되여 술을 삼가하고 계명인 저대로 스님에 대한 도덕과 계률때문에
조심하고 그러다나니 홍창해와 오팔이와 백손이만이 막부
그러할 때에 계명이가 유정의 귀가에 대고 왜인들이 못 알아듣게 조선말로 속살거렸다.
《오팔형이 술은 제가 다 맡아 제끼겠는데 기생년들은 좀 쫓아내달라 하옵니다.》
《놔더라, 여긴 량국의 대표들이 의를 두터이 하는 공식적인 자린지라 상대측의 습성을 량해해야 하느니라.》
계명을 통해 스님의 의지를 전달받은 오팔이와 홍창해는 게이샤년들이 권하는 술잔을 대범하게 받아 조선사내들 주량을 시위하듯 숨 한번 안 쉬고 쭉쭉 비워버리군 했다.
그러한 판에 군정보좌관이 술을 영 입에 못 대는 유정이와 계명이한테는 별도로 홍차를 가져다주게끔 음식심부름을 맡은 관노에게 지시했다.
왜인관노가 방금 끓인 빛갈곱고 향기로운 홍차를 들여다가 유정이와 계명이앞에 놓았다.
하여 그들 두사람은 차를 마시는것으로써 취흥이 도도해지는 술군들과 분위기를 맞추며 시간을 이어나갔다.
한쪽에선 대틀인 오팔이와 막부 시위대장사이에 술마시기경쟁이 붙었는데 원체 체통이 황소같은 오팔이가 주량이 독이다나니 그래도 본국일판에서는 세손가락에는 꼽힌다고 으시대던 시위대장이 소변을 본다며 일어나 나가다가 문턱에 걸려 모재비로 자빠져 딩구는것으로써 꼭장을 당해 오늘 주연에서는 오팔이가 술왕으로 인정되여 조선사람은 마상재뿐아니라 술마시기도 씨원스럽게 잘한다는 탄성이 장내에서 터졌다.
유정은 오팔이가 지내 오새없이 왜인과 술경쟁을 벌리며 폭주를 하는것이 곱지는 않았으나 여하튼간에 아무렇게든 왜인을 누르고 조선사신의 우세를 떨친것으로 해 속이 헌거롭기도 했다.
그러한 분위기속에서 유정은 차츰 정신이 혼미해지며 천정과 벽이 흐늘흐늘 춤추는감이 들었다.
유정은 놈들이 차에 마취제를 탔다는것을 알고 의연히 억심이 북받쳐올랐다.
했으나 그는 원래 속이 트이고 담기가 호랑이눈알도 뽑아먹을 정도로 큰
앉은자리에서 눈앞이 혼미해져 한동안 눈을 감고있던 유정은 인차 정신을 되차리고 일어났다.
그는 자기한테서 된탕을 당한 쇼궁과 군정보좌관이 발끈 증을 낼대신 오히려 환대를 하는 까닭이 왜서인지 석연치 않아 차를 마시는척 하면서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슬 쏟아버린지라 마신 량이 적어져 이내
유정은 헤풀어졌던 법의를 바로 차리고 자기 호행원들을 찾으려고 일어났다.
대청 한구석의 마루바닥에 계명이, 오팔이, 홍창해, 백손이 이 네 젊은이가 네활개를 편채로 누가 들어가도 모르게 코를 드렁드렁 골며 수면에 깊이 빠져있었다.
유정은 그들의 머리맡에 지켜앉아 긴 수염을 비비꼬며 오늘 하마트면 된탕을 겪을번 했던 사달을 두고 행수로서 자책을 했다.
젊은이들은 동창이 훤해졌을 때에야 깨여나 푸시시해서 일어났다.
그들은 자기네를 지켜앉아있는 유정스님을 알아보고는 무안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러는 그들에게 유정은 아무 내색없이 쩡한 랭수를 먹여 정신 번쩍들게 만들고서는 관사 식방으로 데리고가 음식을 청해 먹이였다.
아침해가 한발쯤 솟았을경에 유정은 비렬한 암수로 자기네를 곤경에 빠뜨린 막부것들과 해보겠다고 우둘쩍대는 젊은 호행원들을 떼버리고 혼자 쇼궁을 찾아갔다.
유정이가 푸르죽죽한 기상으로 상방안에 들어서자 둘이 마주앉아 무슨 정사를 의논하고있던 도꾸가와와 군정보좌관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사실 군정보좌관은 쇼궁에게서 조선사신일행에게 연회를 차려주어 환심을 사라는 지시만을 받았는데 자의대로 조선사신을 마취시키기 위한 작전을 꾸몄었다. 사신일행이 연회장에서 쓰러져 잠으로써 그들이 사신체면을 잃고 스스로 기가 숙어들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뒤늦게야 시위대장에게서 그 사실을 통고받은 도꾸가와는 이 아침에 군정보좌관을 불러다놓고 좀스러운짓으로 막부의 위상만 흐리였다며 한창 책망을 하던중인데 당사자인 조선사신이 찾아든것이다.
도꾸가와가 그래도 막부의 군주답게 먼저 면구함을 누르며 《밤새 무고하셨소이까?》 하고 친절하게 인사말을 건늬였다.
유정은 괘씸한 감정을 누르고 되려 순편하게 웃으며 대척했다.
《덕분에 타국의 대궐에서 금상첨화의 잠자리맛을 봤소이다.》
그러자 천연스럽게 시치미를 떼며 대접이 풍성하지 못해 안됐다고 슬쩍 말머리를 돌리는 군정보좌관을 본 유정은 성난 기색으로 변했다.
《일개국의 사신을 그렇게 우롱하면 되겠소이까? 앞으로 다시는 졸망스런 놀음을 하지 마옵시오. 일본이 당장 우리 조선과 싸움하기를 바라지야 않겠지요? 사신행차가 매일 겪거나 진행하는 상황이 우리 나라의 상감께 알려진다는것을 명심하옵소.》
그 엄한 추궁에 군정보좌관은 게면쩍어져 몸둘바를 몰라했다.
도꾸가와는 자기가 부하들을 바로 신칙하지 못해 불미스러운 일들이 벌어졌다고 씨원스럽게 사죄를 하더니 래일부터 당장 조선문화재와 조선인들을 반환할 의지를 표명하면서 유정이한테 두 나라의 통상체결문서를 교환할것을 요구했다.
유정은 도꾸가와의 선선한 태도가 왜서인지 마음에 걸렸으나 당장은 막부측에 조선의 믿음부터 줘야겠기에 그의 요구에 응하기로 했다.
이튿날 후시미성안 대궐의 조회청에서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통상체결의식이 거행되였다.
손문욱과 유정 두 사신은 일본 막부로부터 조선문화재반환,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귀환, 전쟁피해보상금 등의 문제들에서 막부의 담보를 받아낸 후 상대측의 부대조건에 따르는 통상체결문서를 작성하여 인장을 누르고 교환하였다.
체결문서를 교환한 후 유정은 념주알을 세여넘기면서 한참 침묵에 잠겼다가 눈을 크게 뜨고 도꾸가와와 그의 군정보좌관을 모두거리로 훑어보며 엄숙히 말그루를 박았다.
《옛 성인들이 후대를 깨우쳐온 훈계가 하나 있소이다. <구맹불여 심맹이고 심맹불여 천맹이라.> 이게 뭔가 하문 입으로 맹세한것은 심장으로 맹세한것만 못하고 심장으로 맹세한것은 실천으로 옮기는것만 못하다 이런 뜻이옵니다. 쇼궁전하와 장관들이 그 력사의 훈계를 각골 명심하고 언약실행에 충실하기를 바라옵니다.》
례식절차에 따라 통상체결을 축하하는 간단한 주연이 벌어졌다.
정오가 지나 주연이 끝난 후 손문욱과 마광우네는 범잡은 포수마냥 기세가 등등하여 활개치며 먼저 풍마차를 얻어타고 객관으로 나갔고 유정이네는 비용을 아끼느라 슬슬 바람을 쐬면서 걸어갔다.
그들이 후시미성문을 지나 객관이 있는 거리중심부로 향할 때였다.
조총을 가득 실은 짐마차 여러대가 북쪽으로 통한 토사도로를 따라 달려오더니 성안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말들은 물론 마차군들도 지친 거동인데다가 짐을 씌운 방수천에 먼지가 두텁게 오른것을 보니 퍼그나 먼거리를 달려왔다는게 알리였다.
《저게 어드메서 오는 마차들인가?》
유정은 바람에 방수천이 너펄거릴적마다 드러나는 갓 제조하여 윤기가 반질거리는 총들을 일별하느라니 느닷없이 가슴이 섬찍해지며 무심히 지나칠수가 없어 왜나라실정에 밝은 백손이한테 물었다.
《교또관청에 속한 역마들인데 에도에 가서 병쟁기를 실어오는 길이옵니다.》
《하필이면 그 먼 에도에까지 가서 병쟁기를 실어오는고?》
《쇠돌을 캐내는 광산들이며 병기제조소들 대개가 에도이북쪽의 산지들에 있으니까요. 교또이남으로는 기후도 좋은데다가 대체로 벌방이여서 농사지대이니 어디…》
이러던 백손이가 갑자기 낯색이 변하면서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것이였다.
그의 태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그가 한 말만 되새겨보던 유정은 언젠가 교또태수를 만나던 일이 피끗 떠올랐다.
그날 대청안에서 태수와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두루 시국형편을 론하면서 한담을 나누던중에 유정이 그에게 태수는 옥답과 과일나무가 많은 중부의 수십리 평야를 식읍으로 가지고있어 좋겠다고 중뜨듯이 한마디 던졌었다.
그러자 교또태수는 그 말을 별로 심드렁해서 흘려듣더니 실속을 따진다면 자기는 산지인 북부의 하찮은 다이묘들보다도 록봉이 못한 처지라고 불만조로 대꾸하는것이였다.
그의 말뜻이 쉽사리 리해가 안되여 유정이가 그건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태수는 《나라의 광산들 대개가 북부의 산간지대에 있으니까요. 아무러면 금광, 은광, 철광이 이따위 과일이나 수수에 비하겠소이까. 현재 막부에서 중시하는 병기제조소도 선박무이장도 쇠부리터와 림지가 가까운 북부에 있으니 조정에서 밀려나 산간 외지로 휘뿌려진 <도자마> 들한테는 화가 복이 된거나 같지요. 헌즉 우리 일본의 경제밑천이나 군수원천지를 깔고앉은 그곳 다이묘들이 실상 백만석의 식읍을 가진 갑부이고 대관인셈이지요.》 이렇게 뇌이며 한숨을 지었었다.
그때 들었던 말을 되새겨보던 유정의 뇌리에선 섬광과도 같은것이 일어났다.
(놈들의 경제적잠재력과 병력상태를 실지적으로 알려면 광산들과 병기제조소며 선박무이용림지가 있는 북부의 산간지대들을 돌아봐야 한다. 왜국의 내정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알아냈으니 이젠 여러 종류의 광석채취량과 쇠부리터들의 운영정형, 그에 따르는 병쟁기제조실태와 병력확장능력을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만이 우리 나라가 그에 맞게 대응책을 원만하게 세울수가 있다.)
그 생각은 차츰 결심으로 굳어졌다.
유정이네가 객관에 들어서니 손문욱과 마광우네 일행은 벌써 귀국길에 오를 부담짝들을 꿍지느라 분주탕을 피우고있었다.
그날 저녁식사후 정사, 부사, 종사관 셋이 모여앉아 금후의 일정을 의논했다.
손문욱과 마광우가 이젠 초지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래일 당장 교또를 떠나 조국으로 돌아가자고 설레발을 칠 때 유정이 흔연해서 그리 바빠할건 없다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손문욱이 감정이 나 눈살을 실그러뜨렸다.
《여직껏 막부것들이 통상체결문서를 받아내자고 사신일행한테 알랑거렸는데 이젠 문서를 받아냈으니 쾌재를 부르면서 별별 흉한짓을 다할수 있소. 그러니 일단 결말을 낸 이상 시급히 떠나는게 상책이요.》
유정이도 그런 생각을 못한것은 아니였으나 남달리 궁냥이 트인 쇼궁이 저희네 일본땅에서는 막부의 발등을 스스로 찍는 그런 우직스러운짓을 감히 안할것이고 그로 인해 주도권은 그냥 자기네 사신켠에 있다는것을 타산하고 차라리 그럴바에는 막부에 신망을 안겨주어서 사신활동에 필요한 조건을 하나라도 더 부대받으려고 선뜻 통상체결을 맺을 작정을 한것이다.
유정은 괜히 조급해하면서 분위기만 섬찍하게 만드는 손문욱참의를 민망하게 여겨보다가 제 의향을 내비쳤다.
《난 북부지구에 대한 유람이나 좀 하고 갈 작정이웨다.》
그 말에 손문욱과 마광우는 이 사람이 지금 제정신인가 하는 투로 유정을 쳐다보았다.
《지금 형세가 유흥따위에 신경을 쓸 형편도 아니거니와 설사 유람을 한다 해도 하필이면 전탕 산지여서 광산버럭더미밖에 없을 그따위 북부엘 놀러간단 말이요? 유흥에 미쳐두 분수가 있지. 워낙 중들이란 집도 가정도 없이 떠돌며 사는 과객이라 한지에서 날가는게 일없겠지만 제집과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귀국하는게 한시가 급하단 말이요.》
마광우가 눈알이 금시 튀여나올것처럼 되여가지고 불그락푸르락거리자 손문욱도 곁달아 언짢음을 드러냈다.
《하루속히 돌아가 임금님께 왜국의 실태를 상주하여 대응책을 세우게 함은 신하의 마땅한 도리이니 괜하니 날만 늦잡아 그 충의에 흙칠을 하게 하지 마오.》
그들의 반박을 처음에는 능글거리며 대하던 유정이 돌연히 정색해지며 선언을 했다.
《그럼 손참의와 마종사는 먼저 돌아가오. 난 볼장을 마저 보고 갈테니.》
판이 그렇게 되자 손문욱이 애써 자중을 하고 타협조로 나왔다.
《송운대사가 결코 유람에나 미칠 사람같지 않아 묻는건데 대체 그 볼장이란게 무어요? 예껏 원쑤의 소굴에서 고락을 같이 해오다가 사유도 모르고 중도에서 헤여질수야 없잖소.》
유정은 아무래도 그들한테 솔직하게 말해주는것이 유익할상싶어 진속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제서야 귀국길이 늦어진다고 설뚱해하던 여느 하인배들도 유정의 심정을 알고 태도들이 달라졌다.
어떻게 하는것이 과연 백성된 도리이고 충의인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침묵속에서 스스로 찾으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는 가위에 유정의 입에서는 보다 진중한 음성이 울려나왔다.
《사정이 그러하니 우리모두는 나라를 위해 한목숨 서슴없이 바치는 심정으로 죽음도 불사하고 각기 제 소임들을 다하기요.》
더없이 강잉하게 말그루를 박아대는 유정의 기상과 언성에서는 승병대 총섭시절에 최후결전의 군령을 내릴 때와도 같은 엄엄함과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구하는 직성이 신랄하게 내비쳤다. 그 요구에 호응하지 않는 경우 군률에 걸어 심하게 처형하려는듯 한 기세가 도도해 누구도 감히 엇드레질을 할수가 없었다.
어지간히 심기가 찔리운 손문욱은 유정의 진국스러운 충의지심에 대고 가타부타 군소리를 할수가 없어 제스스로 수그러들었고 귀향길이 늦어진다고 등이 달아하던 마광우는 여느 사람들이 다 가만있는데 저만 그냥 말질을 해대다가는 나라방위를 시답지 않아하는 불순분자로 몰려 조정에 상소될것 같아 더이상 결기를 부리지 못하고 누비돗자리바닥에 큰대자로 드러누워 하품만 쩝쩝 해댔다.
…초저녁의 어스름이 깃든 별당의 으슥한 뒤울안에서 두 왜인이 남모르게 만나고있었다.
일각모에 비단도포를 걸친 중늙은이는 도꾸가와쇼궁이고 복면을 쓴 젊은이는 그의 비밀호위원인 《비룡》이다.
방금 귀속말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준 《비룡》한테 도꾸가와는 심각해서 뇌이였다.
《도승의 욕망이 과히 크군. 흠, 하지만 일없다. 실컷 렴탐도 하고 구경도 하게 놔두자. 중요한건 과정이 아니라 결과니까.》
그러다가 자기의 비밀호위원을 애중히 여겨보았다.
도꾸가와는 장차로 그가 실행해야 될 노릇을 자상히 일러주고는 《여태껏 특령을 실행하느라 고생이 막심한 너한테 또 이런 어렵고 험한 일을 시켜서 실루 미안하구나. 널 내 친자식으로 여기기에 헐헐히 중임을 맡기는거니 량해를 해다오. 너의 두어깨에 본국의 존망이 실렸으니 부디 실수가 없도록 하거라.》 이러면서 《비룡》의 듬직한 어깨팍을 살틀히 어루쓸어주었다.
그러할 때 산기슭쪽으로 수십행보쯤 떨어진 곳의 마구간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쇼궁과 수행장관들이 타는 말들을 넣어 관리하는 마구간인데 쇼궁이 타는 성깔사나운 황부루가 바람이 났는지 고삐를 끊고 마구간을 뛰쳐나와 날쳐대는통에 호꼬인들이 말을 잡아들이느라고 오구작작 떠들어댔던것이다.
저를 붙들려는 호꼬인들을 대가리질로 받아치우고 뒤발질로 걷어차고 하며 여기저기로 돌아치던 황부루가 도꾸가와네가 밀담을 하고있는 곳으로 투닥거리며 달려왔다.
《순편하게 대해줬더니 지내 날치는군. 저런것들은 사무라이의 도법을 맛보여야 해.》
도꾸가와가 별안간 오비에 띠였던 칼집에서 장검을 쭉 뽑아들더니 황부루가 제곁으로 지나치려는 순간에 땅을 박차고 말잔등에 휙 날아 올랐다. 그러고는 냅다 달리는 말잔등에 두다리를 벋짚고 서서 검으로 말먹살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그러자 황부루가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박혔다.
자빠지는 말과 아울러 곤두박히려는 찰나에 휙 도립을 하며 땅바닥에 무난히 내려선 도꾸가와가 다시 드립다 칼질을 하여 말모가지를 아예 뚝 잘라버리고말았다.
처참하게 끊어진 말모가지에서 콸콸 솟구치는 선지피를 몇모금 받아마시고나서 칼날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버리고 칼집에 되걷어넣는 그의 모상은 결코 아량과 너그러움만을 표하던 평시의 쇼궁이 아니였다.
도꾸가와는 잔인한 야수의 기질을 드러내는것으로써 자기의 비밀호위원을 신칙시켰던것이다.
늦겨울철의 어느날 유정은 젊은 호행원 몇만 데리고 북부지구로 향했다.
그는 길을 떠나면서 교또에 떨어지는 손문욱과 마광우한테 교또와 오사까를 비롯한 큰 도읍의 다이묘들과 절간주지들에게서 문화재들과 조선사람들을 반환받아 나고야로 옮겨가라는 당부를 남겼다.
그것은 당부라기보다 일종의 군령과도 같은 엄한 요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