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교또의 회오리바람
8
유정이네는 곧장 후시미성안으로 들어가 막부가 림시 틀고앉은 대궐현관앞에 마차를 세웠다.
아직도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솟은 뾰족지붕들과 이끼푸른 석벽들로 옛 궁궐의 위세를 뽐내고있는 건물안에서 무장한 사무라이들과 례복차림의 관리들이 쓸어나와 마차를 둘러쌌다.
유정은 장발수염을 하늬바람에 훨훨 나붓기며 태연한 거동으로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그가 앞을 막아서는 사무라이들한테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는데 어느새 먼저 뛰여내린 백손이가 제나름대로 시위대장에게로 다가가 고명도사인 조선사신을 어서 쇼궁에게 안내하라고 사신호행원답게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시위대장이 황황히 대궐안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조금 있노라니 도꾸가와쇼궁이 시위대장의 호행을 받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출구문을 삼엄하게 지키고 서있던 시위대 군사들이 창과 칼을 걷으며 길을 내였다.
도꾸가와는 호걸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유정을 마중하였다.
《수고로운 걸음을 하게 만들어 안됐소. 한번 짬을 내여 찾아가 만난다는게 다난한 국사에 몰리다나니 오늘에까지 이르렀구려.》
《현재 막부로서는 조선사신의 마음을 틀어잡아 통상체결을 하는것이상 급한 일이 없을줄로 아옵니다.》
유정이 이렇게 느긋한 어조로 대척했으나 그의 시선에서는 불찌가 튕기였다.
그러자 도꾸가와의 얼굴에서 떠돌던 호인다운 웃음발은 사라지고 초조하고도 애절한 기색이 엷게 내비치였다.
도꾸가와는 그동안 제가 앞에 나서거나 혹은 뒤에서 부하들을 사촉하여 조선사신한테 선의를 베풀면서 그를 회유하기 위해 애를 써왔었다. 그런데 쥐뿔만 한 소득도 없어 혼자 간장을 태우고 골머리를 앓았다. 재물도 권세도 영달도 죽음도 안중에 두지 않고 철두철미 사사건건 제 나라의 리익만을 위하는 조선사신인 이 중한테는 자연히 머리가 숙어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날씨가 찬데 어서 들어가옵시다.》
도꾸가와는 일부러 지어먹었던 위엄을 버리고 각별한 태도로 나왔다.
그의 친절한 이끌림을 받으며 유정은 대궐안으로 들어갔다.
량측 호위성원들은 다 외랑에 떨어지고 도꾸가와와 유정 둘만이 상방안으로 들어섰다.
마루바닥에 누비돗자리를 깔고 벽이며 천정에 화려한 문양의 단청을 먹인 방은 비단보를 씌운 원탁과 룡좌만이 뎅그러니 놓여있어 별로 너렁청한게 썰렁해보였으나 네구석에 히바찌를 하나씩 들여놓아 방안공기는 겹저고리를 벗어도 일없게끔 제법 훈훈했다.
바둑판을 펼쳐놓은 원탁에 붙어앉아 혼자 바둑쪽을 가지고 놀던 열서너살가량의 일본사내애가 냉큼 일어나 수닭의 꼬리털같은 머리태를 달싹이며 유정에게 묵례를 해보였다.
도꾸가와는 손짓으로 그 사내애를 가리키면서 유정에게 소개했다.
《내 아들인 히데다다옵니다. 자기도 조선사신을 만나보겠다고 이번에 막부행차를 따라왔소이다.》
《년소한 몸으로 과분한 걸음을 하셨소이다.》
심상히 한마디 응대하던 유정은 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말머리를 돌리였다.
《그러니 이 자제가 마귀병에 걸렸던 그 귀공자오이까?》
《옳소이다. 늘그막에 겨우 씨붙임을 한 애녀석이 사경에 처하는 바람에 후사를 끊기는가 해 눈앞이 새까매졌드랬는데 령험스런 조선녀의승의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했소이다. 그 녀의승은 세상에 드문 신비한 명의였소이다. 그런 신묘한 의술은 난생처음 봤다니까요.》
도꾸가와는 절치부심하던 수일전의 난사를 회고하며 진정으로 감심한 낯색을 지었다. 그러할 때 유정은 송희령에 대한 생각으로 하여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가 연약한 녀인의 몸으로 장장 수천리에 달하는 험난한 왜국의 옛도성에까지 찾아와 비상한 솜씨로 의술을 떨쳐 왜인들을 감복시킴으로써 사신행차의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해준 그 의거가 더없이 고맙게 여겨지며 련인에 대한 애정이 그들먹이 차넘쳤다.
길다란 수염발만 슬슬 내리쓸며 상념에 잠겨있는 유정이한테 도꾸가와는 속심정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 고마운 녀의승에게 사례를 듬뿍이 하렸더니 허 글쎄 그가 천냥어치의 황금도 마다하고 빈손으로 돌아가질 않겠소이까. 여하튼간에 그가 조선으로 무난히 건너갔다니 안심은 됩니다만 어허참, 한 나라 조정의 혈통을 잇게 한 하해같은 은공을 세우고도 어쩜 그리 아무런 보수도 안 받고 훌훌히 가버릴수가 있나 말입니다. 참으로 사양지심이 극심한 의승이옵지요.》
유정은 송희령이 때이르게 돌아가게 된 기막힌 사유를 그대로 말해주려다가 그러면 도꾸가와의 감정을 자극해 담판흐름이 엇나가겠기에 금후 놈들을 리간시키는데 써먹기로 작정하고 꾹 속에 눌러두고말았다.
《불륜과 불의와 욕망을 금하는건 불도의 중요계률이옵니다.》
이렇게 대꾸하며 히데다다쪽에 유심한 시선을 던지던 유정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옥안을 보니 귀공자님은 천하를 호령할 귀인상이옵니다. 옥체에는 구름을 일으키며 승천하는 룡의 기질이 슴배였고 명민한 두눈에는 누구도 바이 견주지 못할 지혜가 어렸은즉 당장이라도 곤룡포를 쓰고 옥좌에 앉으면 나라도 능히 다스려낼겁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의 털이 함함하다면 좋아한다더니 뜻밖에 조선사신한테서 아들칭찬을 받은 도꾸가와는 심기가 즐거워져 노상 벙글거렸다.
《아직 어린애한테 과한 호평이옵니다. 하긴 저 애의 말과 행동이 여느 려염집 애들과 다른걸 보니 범상한 인물은 아닌것 같소이다.》
유정은 내친김에 쇼궁을 좀더 든장질하기로 작정했다.
《안됐소만 귀공자님의 나이가 세는 나이로는 열넷쯤 되지만 먹은 나이로는 열셋을 못 넘긴것 같은데 어떤가요?》
《신통한 짐작이옵니다. 저애가 만력19(1592)년 7월생이니 이제 서너달 지나면 먹은 나이로 열세살이지요.》
그 말에 유정은 장발수염을 무겁게 주억거리며 뇌였다.
《그것 보소이다. 열세살에 나라 위한 먼 걸음을 했은즉은 이건 대단히 호평받을 일이 아니옵니까. 단지 한가지 걱정되는건 귀공자님의 체질에 슴배인 불직성인데 그건 다름아닌 분수에 넘치도록 과한 욕망이니 그 욕망을 스스로가 잘 다스리여 환경에 융합시켜나가면 얼마든지 립신양명할수가 있소이다. 후날 룡상에 오르는 경우에도 지경너머 다른 나라의 땅과 백성을 탐내거나 지경내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식의 전횡을 일삼는 행위만 없다면 제 한당대는 물론 수수백년 대를 물려가며 권력의 자리를 보존할수가 있고 부귀영화를 누릴수가 있소이다. 그러자면 전하부터가 황금만영이 불여교자일경(많은 금보다 한권의 책을 물려주는것이 낫다는 뜻) 이라는 시본을 보여야 하옵니다.》
《하하. 고맙소이다, 도승!》
도꾸가와는 두손바닥을 찰싹찰싹 마주치며 좋아했다. 기분이 들뜬 그는 비단도포와 외뿔모자를 벗어 걸고 모시천으로 만든 하오리바람으로 유정이와 격식없이 마주앉아 흉심을 터놓았다.
《내 지금까지 지내본데 의하면 조선사람은 장공인, 악공, 재인, 승려 등 그 어느 누구나가 다 우리 일본사람들보다 난것 같소이다. 단적인 실례로 국가사신의 중책을 지닌 도승만 봐도 그렇단 말입니다. 그대의 신통스러운 선견지명과 풍부한 학식 그리고 능란한 언변은 본토의 흥법대사(일본 불교의 선창자이며 붓글씨의 명수인 고보다이시)를 훨씬 릉가할 정도옵니다. 술법에 능통했다는 대불사의 법왕 쇼고인이며 글 잘 안다고 으시대는 태장로 다죠오르며 시를 잘 짓기로 소문난 철장로(교직) 대쯔조로네들도 아마 도승한테 왔다가는 울고갈겁니다. 솔직히 털어놓고 말하건대 나에게 공자의 가어를 가르쳐준 가꾸오스승도 인품에서나 식견에서나 도승과 견줄바가 못되옵니다.》
《초의초식하는 이 비천한 소승한테는 과한 찬사옵니다. 허허, 사실 소승은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우리 조선에는 나보다 월등한 명인재사들이 셀수 없이 많소이다.》
《하긴 년로한 이 몸이 국가정사를 맡아안고 사업상 필요로 하여 력사를 좀 고찰해봤는데 예로부터 조선엔 뛰여난 명인들이 허다하옵니다.》
《옳게 봤소이다. 바로 그 명인재사들은 우리 나라는 물론 주변나라들 특히는 일본의 문명개화를 일으키는데 큰 공적을 쌓은분들이지요. 고망옛적에 일본에 건너와 채집경제울타리안에서 헤매던 원시상태의 렬도에 농경문화를 도입함으로써 문명의 시초를 열어놓은 조선이주민출신인
야마대국녀왕 비미호와 일본씨족통합의 실현자이며 일본국가정치체계창시자인 성덕 그리고
《아, 그건 사실…》
도꾸가와는 그만에야 입이 얼어붙고말았다. 급작스레 태도를 돌변하여 엄한 추궁을 들이대는 조선사신의 림기응변술에 대응할 계책이 인차 떠오르지
않은데다가 자기네가 잘못했다는것이 적실하게 인정되였기때문이다. 도꾸가와는 제 아들 칭찬 몇마디에 괜히 기분이 들떠가지고 서뿔리 흉심을
헤쳐놓았다가 이 로회하고도 엉큼한 조선사신의 외교술에 휘말려들어 어쩔새없이 골목으로 몰린
은근히 화가 동하여 애매한 혀바닥만 짓씹던 도꾸가와는 변명조로 대꾸했다.
《임진조국전쟁때 우리 간또일대의 다이묘들은 태합의 군사작전에 가담하지 않았소이다. 나도 그때 조선과 전쟁하는것이 성사불가능임을 꿰뚫어보고 병을 피탈하고 나서지 않았소이다.》
《가담했든 안했든간에 한 나라 성원으로서 그 책임은 져야 하옵니다. 더구나 막부는 현재 일본의 조정이 아니옵니까.》
유정의 기상은 부드러웠으나 나직하게 울려나오는 말마디들에선 서술이 풍기였다.
나라의 실권을 거머쥔 막부 쇼궁이 무참하게도 이웃나라의 일개 중한테 죄책을 당한다는 생각에 도꾸가와는 기가 막혔으나 국사를 걸머멘 몸인지라 애써 자중하였다.
도꾸가와는 잠시 숨을 돌리다가 한풀 김빠진 소리로 대화를 이었다.
《조선이 우리 새 막부하고는 아직 크게 원쑤진 일이 없으니 앞으로 얼마든지 가깝게 사궐수 있다고 봅니다.》
《원쑤진 일이 없다고요?! 흠, 가또태수처럼 조선에 건너와 살인방화를 저지른자들이 권력과 령지를 차지하고 활개치도록 묵인하고있고 또한 조선에서 략탈해온 귀중한 문화재들을 사취하여 부식마모시키고 또한 전쟁때 강제로 끌어온 조선사람들을 아직도 돌려보내지 않고 마소처럼 부려먹으며 노예생활을 강요하고있는건 원쑤질 일이 아니란 말이웨까?》
저으기 격분하여 수염발을 부르르 떨던 유정은 노기가 충천하는 내심을 가라앉히려고 두눈을 반쯤 감고 목에 건 념주알을 한동안 세여넘기였다.
그러고나서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조선의 수염호걸찬 중의 서늘하니 치째진 눈에서 벙끗벙끗 쏟아져나오는 불줄기에 온몸이 재가루가 되는것만 같아 도꾸가와는 슬며시 얼굴을 돌려버리며 중언부언했다.
《그건 개별적인 다이묘들의 권한에 속한것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전장에 나갔던 그들이 로획물로 가져온것이니 처분권이야 그들한테 있는게 아니겠소이까.》
《그건 강도적인 론리옵니다. 만약 일본이 우리 나라의 문화재를 아예 절취하거나 조선사람들을 혹사시키며 돌려주지 않는다면 전승국인 우리 나라는 일본의 새 막부를 나라조정으로 인정하지 않을것이며 교류가 아니라 대군을 일으키겠소이다. 쇼궁께서도 옛적에 우리 조선이 쯔시마를 두번씩이나 정벌한것을 알고있겠지요?》
유정이가 엄하게 들이대자 도꾸가와는 난처해져 일언반구의 대꾸도 못했다.
위협적인 어조로 도꾸가와의 얼혼을 한번 슬쩍 흔들어놓은 유정은 문득 자세를 늦추며 그의 탕개쳐진 심중을 눙치였다.
《사실 말해 현재 막부로서야 륙칠년간의 임진조국전쟁에 뒤이어 치른 <세끼가하라격전>의 후과와 아울러 오사까성에 틀고앉은 도요또미패당과의 암투로 인해 조선과 전쟁을 할 형편이 못되지 않소이까. 그러니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고 통상을 하는게 백번 지당하옵니다. 일본의 막부가 옛 도요또미정권의 과오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나오면 우리 조선도 보상을 받은 후 선린관계에 응할것이옵니다. 까놓고 말해 환갑이 훨씬 넘은 쇼궁사마께서 이제 룡상에 앉아있어야 몇해 더 앉아 있겠소이까. 대를 이어 그 룡상에 오를 귀공자생각도 좀 해야지요. 만약 다시 조선과 싸우느라 시국이 소란스러워지고 정계가 뒤흔들리면 각 주의 다이묘세력들이 반변을 하고 또한 그러하면 쇼궁의 자리가 태자한테 고스란히 물려지지 못하며 우심하게는 가문이 멸살당할수도 있소이다.》
《…》
떨리는 손길로 룡상을 어루더듬던 도꾸가와는 신음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슴이 저려들며 숨이 꺽 막혀와 창가로 다가가 참지를 바른 짝문을 활 열어제꼈다. 그러기를 기다린듯 찬바람이 확 쓸어들었다. 헌데 왜서인지 도꾸가와에게는 그 랭풍이 피비린내를 풍기는 바람처럼 역하게 느껴지며 속이 메슥메슥해왔다.
도꾸가와는 아예 상반신을 문턱너머로 쑥 내밀고 찬 공기를 숨가삐 들이삼켰다.
창대를 추켜메고 정원을 둘러싼 시위대의 군사들과 바삐 성문을 들락거리는 도포차림의
해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그들의 창날과 관띠들이 이 순간에는 어째서인지 쇼궁자리를 노리는 음모군들과 적수들의 살기띤 눈빛처럼 느껴졌다. 늘쌍 충의를 입버릇처럼 외우며 자기곁에서 맴도는 《후다이》들과 변방고을들에 틀고앉아 마지못해 겉으로나마 막부에 복종하는척 하는 《도자마》들과 행여나 권력과 재부를 얻어볼가해 산지사방 싸다니며 칼부림을 일삼는 무지막지한 사무라이들중에 쇼궁자리를 노리는자들이 있을지 어이 알랴?
도꾸가와는 스산한 느낌을 억지로 털어버리고 짝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러자 이번엔 방 한쪽에 긴장한 자세로 서있는 어린 귀공자의 애리한 모상이 시야를 메우며 안겨왔다. 왜서인지 애처롭게만 느껴지는 그 모상이 자기한테 옥새를 빼앗기고 오사까로 쫓겨가 비참한 생활을 하고있는 도요또미 히데요리의 어린 모상으로 뒤바뀌는 환각에 도꾸가와는 흠칫 소스라쳤다.
더구나 도꾸가와를 불안하게 만드는것은 근간에 자미성(북두칠성 동북쪽에 떠있는 왕의 운명이 실렸다는 별)이 스러져간다는 천문쟁이들의 요설이 항간에 쉬쉬하며 떠도는것이였다.
도꾸가와는 나라를 위해서나 귀공자의 앞날을 위해서나 지금은 분해도 참고서 이 배짱 센 조선중을 얼리여 어떻게 하나 일본에 유익하게 통상체결부터 하고 그후에 다른 대책을 강구하는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며
도꾸가와는 룡상으로 돌아와 조선사신을 향해 마주앉아 결연히 뇌였다.
《좋소이다, 도승의 요구를 들어주겠소이다.》
《그렇다면 먼저 강제로 끌려온 조선사람들을 이번에 우리가 데려가게끔 내놓읍시오. 그다음 국고와 사고들에 수장된 조선문화재들을 전부 진품그대로 반환하소이다.》
유정의 강경한 그 요구를 도꾸가와는 헐헐히 받아주었다.
《그러도록 합시다. 헌데 단번에 실행하긴 곤난하니 점차적인 방법으로 단계를 두고 하옵시다. 그러면 조선에선…》
《가만, 또 있소이다. 일본에서는 우리 나라에 매해 구리쇠 3만 6천근과 황금 300근, 옥백미 수천근을 조공해야겠소이다.》
《?!》
도꾸가와는 마른벼락을 당한 사람처럼 아연하여 굳어졌다. 쇠방망이에 되게 줘맞은듯이 하늘땅이 핑그르르 도는듯 한 환각이 덮쳐드는 바람에 그는 김빠진 신음을 지르면서 등받이에 몸을 던지였다.
조선사신인 수염쟁이도승이 저희 사람들한테로 가겠다며 출입문을 열고 나가기 바쁘게 밖에 대기하고있었는지 군정보좌관이 들어왔다.
호피방석을 깔은 룡좌에 기맥풀린 자세로 앉아있는 도꾸가와를 본 군정보좌관은 첫 낌새에 벌써 판이 글렀음을 짐작하고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차라리 저 수염쟁이중을 없애버리고마옵시다. 지금에 와서보면 도라노스께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소이다.》
기분이 울끈해가지고 탁자만 구멍이 뚫어지도록 굽어보던 도꾸가와는 별안간에 손바닥으로 탁자를 치고 《빠가-》 하며 튕기듯이 일어나 암돼지처럼 비육이 풍성한 군정보좌관의 코앞으로 바싹 다가들며 랭음을 내뿜었다.
《도라노스께나 군정보좌관처럼 속밭은 감정에 치우치여 상대국의 사신을 일본땅에서 마구 살해한다면 조선은 물론이요 주변국들이 우리 막부를
뭘루 보겠나 말이요. 막부의
예상치 않다가 한방망이 얻어맞은 군정보좌관은 쇼궁의 넓은 궁냥에 속으로 내심 탄복을 하다가 한수 더 높은 책략이란게 대체로 어떠한건지 궁금하여 그에 대해서 물었다.
도꾸가와는 궁금해하는 군정보좌관의 턱밑에 코수염을 바싹 갖다붙이며 씹어뇌까렸다.
《작은것을 양보하면서 큰것을 쟁취할 때를 기다리는거요. 만사엔 다 때가 있는 법이거던. 자고로 참을 인자가 셋이면 군자라는 말이 이래서 생겨난거요.》
도꾸가와의 그 말에는 자기 한생의 체험이 담겨있었다.
그가 일찌기 전국시대의 말엽 오다 노부나가수하에서 도요또미 히데요시와 함께 군장노릇을 할 때인데 어느날 노부나가가 그들 두 부하와 동참한 자리에 꾀꼬리 한마리를 가져다놓고 이렇게 물은적이 있었다.
《난 저놈이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네. 임자네들은 어쩌겠나?》
그때 히데요시는 새가 울 때까지 때리겠다고 했고 도꾸가와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대답했었다.
최대의 인내력을 발휘하며 맞춤한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는것, 그 성품은 도꾸가와의 장점이였다.
《내게 다 궁냥이 있으니 제장들은 마음놓고 본업에 매진하오.》
군사작전과 계략의 능수인 쇼궁의 덕택에 의해 자기네들이 대관이나
역시 성미가 원체 느긋하면서도 웅심깊은 도꾸가와인지라 자기가 새막부를 일떠세우는데 협력해온 충실한 부하의 공헌을 애심히 여기는 태도로 나왔다.
《막부의 정사를 모두거리로 맡아안고 돌보자니 때론 궁냥이 딸리여 그럴수도 있지. 보좌관은 바로쳐도 엎어쳐도 오직 이 도꾸가와막부의 동량으로 살 사람인지라 믿고 싫은소리 좀 한거요.》
절친하게 군정보좌관의 어깨굽을 다독여주고난 도꾸가와는 지금 당장은 수염쟁이도승의 옹친 심사를 얼리여 통상체결문서를 받아내는것이 급선무라면서 조선사신을 위한 주연을 크게 베풀라고 지시했다.
그제서야 군정보좌관은 희색이 되여가지고 방에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