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교또의 회오리바람

6

 

신년연회때 유정스님에 대한 살인미수사건이 있은 후 홍창해와 계명이는 그 장본인인 히까리를 만나려고 후시미성안으로 자주 들어갔다.

그한테 스님을 죽이려 한 리유를 캐보고 주먹찜질이라도 콱 해야지 속이 도저히 풀리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시위대장이 군영을 차단하고 출입을 통제하는지라 매번 허탕만 쳤다.

소정월날도 명절이여서 틈이 생기겠거니 하며 성안에 들어갔던 그들은 또 헛물을 켜고 그냥 돌아왔다.

객관마당을 슬슬 거닐며 담장너머로 왜인들의 명절놀이를 구경하던 유정이가 기분이 잡쳐 돌아온 제자들을 리해시켰다.

《굼벵이도 지붕에서 떨어질 땐 다 제 마련이 있어 그런다고 그 사람도 칼을 들고 나섰을 때야 무슨 사유가 있어 그랬을테니 너무 그를 원쑤치부하진 말거라.》

그러자 창해와 계명이가 올꼬이던 속을 스님에게 터뜨렸다.

《스님은 천연도 하시네. 저를 죽이려던자에게 아량을 베풀어요? 그자를 망에 갈아죽여도 씨원치 않겠는데.》

《히까리가 우리를 위해주던건 제 본색을 감추기 위한 얼림수였소이다. 정말이지 난 그가 주지님을 해치려고 탈바가지까지 쓰고 나설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소이다. 평시에도 백손이와 우릴 리간시키자고 쐐기를 치며 어쩌구저쩌구한게 다 리유가 있었소이다.》

한참 이러다가 둘은 막걸리로 성을 삭이려고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결기가 남달리 세찬 제자들이 민망스러워 혀를 쯧쯧 끄르고난 유정이 량손을 뒤짐진채 거리쪽으로 다시금 시선을 돌리는데 한 왜인장정이 대문을 열고 어줍게 들어섰다.

《저… 여기에…》

유정이한테 허리를 굽석이며 말을 물으려던 왜인이 갑자기 그의 발앞에 와서 넙적 엎드렸다.

《불타스님, 새해에 귀체만강하옵소서!》

《?!》

유정은 생각지도 못했던 왜인의 세배를 받고 어리벙벙해서 그를 한참 굽어보다가야 누군가를 알고 반색을 지었다.

누덕누덕 기운 고의적삼을 입고 상투를 막스럽게 틀어올린 그 왜인은 접때 유정이네가 광륭사를 다녀오던 길에 산소에 올라가 장례식 불문을 펴주고 풍수까지 봐준 가난뱅이상주였다.

《안댁을 떠나보내고 요즘 홀로 어떻게 지내셨소?》

《그럭저럭 살아왔소이다. 아무렴 산사람의 입에 거미줄이야 쓸겠나유. 그저 죽은 놈 하나 불쌍하지유. 저… 소인이 오늘 그때 입은 막중한 신세에 대한 갚음을 하자고 왔사오니 거절을 말아주옵시오.》

《허- 그게 무슨 신세라고… 환난에 서로 관심을 돌려주는건 사람의 초보적인 도리인데.》

《비록 밥 한그릇 얻어먹었어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사오니 스님이 바로 그런분이옵니다. 그러니 이걸 받아주옵소서.》

왜인은 흰 무명보에 싸가지고 온 웬 물건 하나를 유정이한테 내주었다.

《가난한 홀아비살림에 뭐이 있겠다고 이렇게…》

왜인의 성의를 차마 거절할수가 없어 받아 펼쳐보니 수달피였다.

《소인이 사냥에 취미가 있사온데 이 겨울엔 은인을 못 잊어하는 마음을 하늘이 헤아렸던지 글쎄 수달 한놈이 덫에 들지 않았겠소이까.》

《이런거야 살림에 보태야지 선사품으로 쓰문 되겠소.》

유정이 사람의 도리를 아는 이 비천한 왜인의 진정에 감동되여 세배를 받은 사례로 객관에 종속된 왜인관노를 불러 홀아비왜인을 데리고가 식사를 시켜 보내라고 일렀다.

특색있는 조선음식을 맛있게 배불리 얻어먹고난 왜인은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조선의 고마운 불타스님을 잊지 않겠다는 말을 수십번이나 외우고 물러갔다.

이해는 좋은 일만 있으려는지 왜인이 왔다간지 한식경도 못되였을 때 오사까역참의 파발군이 조선사신들이 숙식하는 객관에 찾아들어 엽서 수십통을 내놓았다.

조선에서 사신일행의 가족들과 친척, 친우들이 보내온것이였다.

유정이한테도 불가의 고승들과 문우인 량반유생들이 여러통이나 엽서를 보내왔다.

겉봉에 찍힌 발송날자를 보니 전해 그믐달초에 조국에서 띄운것들이였다.

유정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만든것은 류성룡이 직접 자필로 친서를 보내온것이였다.

송운대사!

이해도 어느덧 저물어 남방으로 날으던 철새들도 그치고 산야는 찬눈에 덮였는데 한여름철의 순풍에 돛을 달고 떠나간 사신행차는 어이하여 감감무소식이요?

혹 그네들의 신상에 어떤 불상서로운 변이라도 생긴건 아닌지 못내 걱정스럽구려.

 

(서애상공!-)

짜릿한 정회가 유정의 가슴을 적시였다.

 

왜국으로 건너간지 넉달이 되도록 소식 한장 없이 행방불명된 사신행차를 두고 조정에선 론의가 분분하고 행차의 주관인 송운대사에 대한 뛰뛰한 풍문이 돌지만 난 전쟁때처럼 대사를 믿는바요.

그네들이 험난한 왜땅에서 원쑤놈들의 갖은 모략책동과 난관을 이겨내느라 너무도 심뇌가 짙고 부담이 과중한지라 서신을 띄울 여유마저 없었으리라 보오.

 

유정은 그때에야 비로소 자기네가 본토로 건너오기 앞서 띄운 상보가 조국에 가닿지 못했다는것을 알았다. 아마 조정에 보하는 장계를 지닌 파발군을 실은 배가 풍랑에 잘못된것 같았다.

 

송운대사.

이 불민한 사람은 요전날 조정에서 내려보낸 상감의 어지를 무엄하게도 거절했소. 내가 상경하여 예전처럼 령의정자리를 맡으라는 하교였건만 이미전에 조정에서 란무하는 당쟁에 신물이 난 사람인지라 일점의 미련도 없기에 그랬던거요.

경상도 안동 향촌의 생가에 은둔하여 한적한 강호생활을 세상 더없는 별미로 여기며 터밭에서의 남새농사법에 관한 《영문록》서술로 잡다한 인생사의 번뇌를 씻어가던 나는 송운대사의 왜국행차에 접하여 그 장거에서 큰충격을 받고 분발하여 임진조국전쟁때의 성과와 교훈들을 부류별, 년대별로 묶은 《징비록》을 집필하고있소. 우리의 후손들이 그것을 읽으며 자각하여 다시는 오랑캐의 말발굽에 국토가 짓밟히는 뼈저린 수치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송운대사가 중임을 수행하고 귀환하기 전에 기어이 책을 완성하여 조국땅에 들어서는 대사와 떳떳하게 상봉하겠소.

 

폭이 크고 무게가 느껴지는 서신에서 유정은 마음이 결곡하면서도 리지적인 류성룡의 준수한 모습이 어려와 뿌듯한 심정에 잠겼다가 이어 허균의 서신장을 꺼내 펼쳤다.

서생은 요즘 력대문사들의 5언절구와 7언절구들을 묶어 시평을 한 저서 《성수시화》를 집필하고있소이다. 수법이 새롭고 뜻이 고유한 시들을 추려보니 그중에는 전쟁시기와 그전에 송운대사님께서 지으신 시들이 여러편이나 되더군요. 대사님의 그 양양한 뜻과 호걸찬 기백앞에선 정말이지 머리가 절로 숙어지옵니다.

 

(허… 고산(허균의 호)은 늘 남을 춰주길 잘하거던.)

유정이 금강산 유점사 주지로 갓 천거된 어느날 처음 보는 애젊은 도령 하나가 그한테 나타나 다짜고짜로 시짓기경기를 청했다.

알아보니 그는 유정의 문우인 허봉의 둘째동생이였는데 제 형들이 글공부를 하려면 금강산의 유정이라는 중만큼은 해야 된다는 말을 자주 외우자 대체 그가 어느 정도이기에 한양일판에서 제노라 하는 형들까지도 혀를 털게 만들었나 해 그 실력을 떠보려고 찾아왔었다.

유정은 아직 코밑에 솜털이 보르르한 도령의 의기가 맘에 들어 기꺼이 도전에 수응했는데 그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였다.

한바탕 서로 운을 내고 대구를 달고 하며 어지간히 상대의 능력들을 가늠했을 때 유정이 먼길을 찾아온 도령의 수고를 생각해 우야 시구 하나를 문맥이 튀게 쓰어 져주었다.

그러자 허균이 제꺽 그 속심을 간파하고 붓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그렇게 사람을 놀리는 법이 어디 있는가고 나무람을 쓰더니 다시 경기를 할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이번엔 련발로 부르고 일필휘지로 내갈기고 해 그를 순식간에 꼭장을 시켰다.

허균은 무참하게 패하고도 뭐이 그리도 기쁜지 싱글벙글 웃으며 어쩔줄 몰라하는것이였다.

《오늘에야 표본으로 삼을만 한 문사를 만났소이다. 오늘 몇순간만에 키가 한자는 나마 자랐으니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소득이 어디 있겠소이까.》

그후에도 허균은 자주 금강산에 와 유정이와 함께 시를 지으며 우의를 두터이 해나갔다.

 

전달에 서자들의 불우한 생활을 반영한 《홍길동전》을 쓰려고 령남지방을 편답하던중 홍의장군 곽재우공의 댁에 들렸댔습니다. 곽공께선 송운대사님이 왜국으로 가는줄 알았으면 자기도 함께 가는건데 그러지 못해 안됐다고 무척 서운해하시며 만약에 왜놈들이 대사님의 수염 한오리라도 건드리는 날엔 자기가 즉시 대군을 일으켜 왜국으로 원정하겠다고 했소이다.

송운대사님.

그동안 조국땅에서는 전쟁피해를 가시기 위한 투쟁이 힘차게 벌어진 결과 실로 비약적인 성과들이 수다히 이룩되였소이다.

우선 한성안의 창덕궁복구가 마감단계에 이르러 래후년쯤이면 개설을 할것 같습니다.

임진왜란때 혹심하게 파괴됐던 촌락의 관개시설들이 농군들의 근면한 로동에 의해 복구되여 작년 가을에는 전례에 없는 풍작이 들었으며 한성과 평양의 직조소들에서는 각종 비단천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방의 제지소들이 복구되여 질좋은 종이들이 생산되고 도자기터들에서는 밥사발과 국사발을 비롯한 여러종의 음식그릇들이 만들어져 도읍들과 고을들과 촌락들에 퍼져나가 전후 깨진 쪽박으로 밥을 담아먹던 조선사람들이 예전처럼 도자기그릇을 사용하고있습니다.

훈련도감에서는 성능좋은 화승총과 화포들을 만들어낼수 있는 병기제조소를 일떠세웠고 동, 서, 남해들에서는 신식전함이 건조되고있습니다.

 

유정은 가슴이 뿌듯해와 서신장에서 눈을 떼고 허리를 반쯤 눕혀앉으며 조국땅이 있는 서북쪽 하늘가로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왜국으로 떠나올 때 부산포에까지 수백리길을 걸어와 배웅하며 고급서사도구와 함께 명필 한석봉의 글씨본보기책을 넘겨주던 젊고 정의로운 문사 허균의 영특스러운 모상이 떠오르자 잇달아 조국땅에서 오랜 나날 사귀여온 잊지 못할 사람들이 시야에 삼삼히 어려왔다.

국문시가를 개척하려고 금강산의 불승까지 감영에 불러들이여 자자구구 론의를 붙이던 강원도관찰사시절의 송강 정철이며 당대사회의 불합리한 현실을 비판한 우화소설 《재판받는 쥐》를 써가지고 금강산 유점사를 찾아와 호호탕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랑독하던 백호 림제며 붉은 갑옷자락을 날리면서 적진을 풍우마냥 휩쓸어대던 곽재우며 자기와 손잡고 서산대사가 넘겨준 도총섭인장을 준수하여 전국의 승병대들을 통솔하던 처영이며 건달관료들과 간신들을 시로써 신랄하게 비판하군 해 매발톱으로 불리우던 젊고 의로운 문사인 석주 권필 등의 허다한 모습들이 웃으며 다가들어 어서 조국으로 돌아오라고 속삭인다.

그들이 유정이와 어지간히 마음속의 정회를 나누고 하나둘 물러가는데 한사람만은 좀처럼 떠나지를 않고 끈덕지게 유정의 심중을 파고들었다. 화담 서경덕의 《기일원론》과 률곡 리이의 《리선후기론》을 놓고 만날적마다 언쟁을 벌리던 지봉 리수광이다.

임진조국전쟁때 도체찰사의 종사관으로 령남지방에서 활동하던 리수광은 전후에 조정에 올라 도승지와 례조참판을 거쳐 리조판서를 하다가 당파싸움에 신물이 나 높은 대관직을 스스로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갔었다.

작년 초여름 황악산 직지사를 다녀오는 길에 유정은 우야 품을 들여 그의 집을 찾아갔었다.

리수광은 야산에 둘러싸여 새둥지처럼 아담한 동기와집의 안방에 들어앉아 저서집필에만 몰두하고있었다.

유정이가 합장을 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운 끝에 《상공은 어이하여 조정정사를 외면하고 골방지킴이나 하옵니까?》 이렇게 넌지시 한물음 던지자 리수광은 시름겨운 한숨끝에 《눈꼴사나운 무리들을 한팔매질로 휘쳐서 쓸어내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물러나 그 꼴을 안 보는게 낫지요.》 하고 대꾸하고는 허거프게 웃어넘기는것이였다.

유정은 그의 애매스러운 대답을 듣고나자 왜서인지 까닭없이 서글픔이 살아나 나직이 한숨을 톺다가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승상을 지내던 류성룡대감님도 락향했지, 경상좌우도 병마절도사이던 홍의장군도 군직을 스스로 내놓고 물러앉았지, 리조판서이던 상공도 락향을 했지.… 뜻과 기개가 높은분들이 저마다 당쟁과 정사의 시끄러움을 피해 시골로 은신을 하면 이 나라는 장차 무엇이 되옵니까?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사대부라면 시골에 들어앉아 기울어져가는 형세를 두고 걱정이나 할것이 아니라 분연히 떨쳐나 한몸바쳐 국운을 바로잡아야 지당한 처사가 아니옵니까.》

그 말이 명치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지 눈살이 찌긋해졌던 리수광이 직발 유정이를 엇찔렀다.

《기실 송운대사님도 전후에 상감께서 벼슬을 하사하는데도 현실을 등지느라 산속 절간으로 들어가지 않았소이까?》

그 말에 선뜻 대답이 나가지 않아 입이 얼어붙는 유정을 한참 주시하던 리수광은 저보다 거의 20년이나 손우인 사람한테 불손하게 굴었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낯색을 풀더니 씨원히 바람이나 쏘이자면서 유정을 산비탈과 잇닿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봄배추와 부루, 쑥갓, 고추, 오이가 푸르싱싱한 뜨락을 지나 뒤울안에 돌아가니 오얏, 복사, 앵두 등 각종 과실나무들이 우거지고 구기자며 향나무 같은 약용식물이 덤불을 이루었는데 그 사이사이에는 벌통도 여러개나 놓여있었다.

《한성의 고루거각인들 이에 비할수가 없지요.》

현재 자신이 택한 생활에 만족한듯 흐뭇한 미소를 짓던 리수광은 자기가 계획하고 실행해가는 저서의 내용에 대해 자상히 설명을 했다.

총 20권으로 된 책은 25개의 부분으로 분류하고 다시 3435개의 항목으로 나누어진다. 1-2권에서는 아름다운 조국산천과 각 지방의 지명들에 대하여 력사적으로 고찰하고 아울러 주변 40여개 나라들의 위치, 령역, 기후, 풍토, 주민들의 종족관계와 정치구도, 경제생활, 전쟁사가 서술된다. 3-4권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이 세나라시기와 고려시기 그리고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정치, 경제, 군사관계가 서술되는데 여기서 중요하게는 군사관리의 등용과 나라의 방위력강화문제가 론의되면서 동시에 임진조국전쟁시기 의병들의 역할을 강조할것이다.

5-7권에서는 유교경전과 기타 여러 책들의 글가운데서 리해하기 힘든 부분의 뜻을 풀이하고 력대 명인들의 저서를 소개할것이다. 15-20권에서는 인물, 품성, 신체의 형태, 언어, 의복, 음식, 화초, 금수 등에 대한 다방면적인 상식이 서술된다.…

류다른 감흥속에 들어보니 그의 지향에서 특징은 종래의 고루한 량반학자들이 쓴것과는 달리 봉건통치제도의 부패타락성을 비판폭로하고 나라의 정치제도를 변혁할데 대한 주장이 강한것이였다.

《그러니 상공은 실용적인 학문연구를 지향하는군요.》

유정이가 감심하는 태도를 지어보이자 리수광은 분연히 제 속궁리를 드러내는것이였다.

《바로 실사구시가 나의 지향이옵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을 잘살게 하려면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대외사업도 현실에 부합되게 촉진시켜야 합니다. 헌데 조정은 전부 공리공담뿐이거던요. 그래서 내 단연코 그곳을 떠난겁니다.》

《후날 상공이 저서를 완성하면 책제목을 <지봉류설>이라고 명명하옵시다.》

《리해해주어 고맙소이다, 송운대사!》

유정은 그후 실리가 있는 그의 저서완성을 위해 품을 들여 많은 참고서적들을 구해다주었으며 시간이 생기면 원로를 마다하고 그를 찾아가 집필에 도움이 되는 조언도 주군 했다.

아마 오늘도 지봉은 침식을 잊어가며 실천에 필요한 자기의 방대한 저서완성에 여념이 없을것이다.

유정은 이제 조국에 돌아가 리수광과 상면할 때 그가 자기의 팔소매를 잡아흔들며 왜 저한테 알리지 않고 왜국으로 떠났는가고 나무람을 쓰면서 《지봉류설》에 당장 사신행차의 왜국탐정기를 추가로 넣겠다고 덤벼칠 그 모습이 방불해져 속웃음을 지었다.

 

이날 손문욱참의와 마광우는 물론이요 그들의 시종들까지도 저희 집에서 보내온 서신을 받고(까막눈들인지라 식자있는 홍차지가 대신 읽어주었다.) 좋아했다. 엽서를 못 받은 사람들도 동료들의것을 서로 돌려보며 제일처럼 기뻐했다.

그러다나니 자연히 일행의 분위기가 흥뜨어 오래간만에 타국행의 고달픔과 시름을 잊고 웃고 떠들었다. 조국에서 보내온 소식은 그대로 기쁨이 되고 힘이 됐던것이다.

헌데 어쩌다 마련되였던 그 흥겨운 분위기가 하루도 못 가 마광우때문에 싱겁게 깨져나가고말았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