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운명의 쪽배

4

 

삼복철의 날씨는 숨이 꺽꺽 막힐 정도로 찌물쿠었다.

뜨거운 폭양이 산야에 쏟아져 지글지글 끓어대는 한낮무렵 동래에서 부산으로 통행하는 토사도로에 량반행차 하나가 때아니게 나타나 소란을 피워댔다.

《시여- 물러까라 쉬여까라, 종사관님 행차시여-》

부담마 한필에 시중드는 하인배 서넛을 말앞뒤로 널려세우고 견마쟁이나 겨우 달은 품계낮은 무관의 행차인데다가 더군다나 땡볕이 몰방으로 쏟아지는 때인지라 행인이 뜸한 시골길이였건만 길잡이의 벽제소리가 푼수에 어울리지 않게 가히 요란스러웠다.

그 초졸스러운 량반행차가 수백년은 실히 자랐을 아름드리 들메나무가 외톨로 서있는 야산기슭에 이르렀을 때였다.

연갈색의 부들가죽으로 치장된 말안장우에 푸른 천릭자락을 헤갈라붙인채 거들먹스럽게 올라앉아 부채질을 활활 해대던 젊은 무관이 길잡이하인한테 숨가삐 호령했다.

《예서 해볕 좀 긋고 가자.》

주인의 분부가 내려지기 바쁘게 견마쟁이가 더위에 헐떡거리며 느침을 질질 흘리는 역마를 들메나무그늘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잎새무성한 가지를 마치도 갓채양처럼 널다랗게 펼친 거목인지라 나무밑의 그늘은 폭이 시원스럽게 넓었고 바람기도 선선한데 사람이 그안으로 들어서자 어느새 숨가쁘던 가슴들이 활 열리고 잔등에 내돋았던 땀도 쑥 잦아드는것 같았다.

제 주인을 다리쉼, 허리쉼하기가 편하고 땀들이기가 좋은 자리로 모시려고 두루두루 지세를 살피며 잡초가 수북이 깔린 그늘안 공지쪽으로 가던 하인배 하나가 덴겁을 하며 소리질렀다.

《아불싸, 이건 또 웬 놈이여?》

그와 동행하던 여느 하인배들은 물론 주인까지도 어인 일인가 해 그쪽을 쳐다보니 베잠뱅이를 걸친 어떤 젊은 사내가 여긴 내 세상이로다 하듯 네활개를 펴고 펄짝지근하니 드러누워 셈평좋게 코를 쿨쿨 골고있었던것이다.

《이놈, 냉큼 일어나지 못할고-》

먼저 베잠뱅이를 띄여본 전배하인이 버럭 고함을 치며 그의 엉치를 걷어차서야 체통이 그야말로 대틀인 황소 찜쪄먹을 정도로 우람찬 베잠뱅이는 푸시시해서 잠을 깨였다. 나이는 막 잡아 서른서넛쯤 됐을 사낸데 거쿨지게 생긴것처럼 뚝심깨나 쓰고 쇠고집이 있어보이는게 여간내기가 아닐것 같았다.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난 시골촌놈행색인 베잠뱅이는 퉁사발같은 눈을 뜨부럭거리며 물날은 중치막차림들인 량반행차의 떨거지들을 온곱지 않게 흘겨보았다.

《앗따- 이건 어디서 굴러온 돌인데 언감생심 배긴 돌 뽑자고 접어드는거냐? 꿈에서 산삼밭을 만나 한창 횡재를 하댔는데 재수없게스리 훼방을 당했군그래.》

《이눔아, 산삼이고 망삼이고간에 씨빠진 수작질 작작해라. 나리님 행차가 드셨으니 냉큼 자리나 내.》

량반하인배의 거들먹스러운 호령질에 베잠뱅이는 오히려 밸통만 곤두서서 우뚤거릴뿐이다.

《너희 나리님이 천궁의 옥황상제라도 되느냐? 설설 기는 그 꼴에 내눈이 다 시려 못 견디겠구나.》

《이자식이 곤장에 볼기를 뜯기우지 못해 몸살이냐? 흐흠, 함지판처럼 생긴걸 보니 매집이 꽤나 좋구나. 늬 당장 물고를 내여 편포짝으로 만들어달라니?》

《오냐. 네 담이 있으면 내 몸에다 어디 한번 곤장질을 해봐라. 하긴 내 요즘 오륙이 근질거리나 비벼댈 벋장대가 없어 몸살을 앓던중이다. 늬들 내와 겨루어낼 자신이 있느냐?》

《이 소똥구리같은 시골촌것이 어따 대구 감히 대답질이야? 주둥아리를 팥자루처럼 찢어놓고 갈비뼈를 뽑아 부지깽이로 만들어야 정신을 차릴 놈이로구나.》

《흐하, 도읍에서 사는 재세가 여간이 아니로구나. 내가 할 소릴 제편에서 먼저 해대? 네눔이 내 갈비뼈 뽑기 전에 네 손목째기가 바스라질가봐 걱정이다.》

그 소리에 당사자는 물론 곁에서 지켜보던 다른 하인배들까지도 약이 바짝 올라 외톨로 맞대드는 베잠뱅이한테 무리지어 와야야 달려들어 막무가내로 발길질, 주먹질을 해댔다.

그러다가 일시에 아이쿠-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사방으로 휘뿌려져 나딩굴었다. 베잠뱅이가 몰방으로 날아드는 하인배들의 팔목과 다리갱이를 수월히 척척 붙잡아서는 사정없이 비틀더니 썩은 무우꽁다리 따버리듯이 훌훌 내던졌던것이다.

그 힘이 옛날 호걸장사로 소문난 을지문덕이나 연개소문 찜쪄먹게 세거니와 싸우는 솜씨 또한 막스럽지 않은지라 허깨비같은 구실아치나 몇이 붙어가지고는 당해낼 어림도 없었다.
그때껏 말잔등우에 걸터앉은채로 오만상을 찌프리고 개차반이 돼가는 꼴을 지켜보던 행차의 주인인 무관이 기가 막히여 혀를 찔 내갈기였다.

《한양대처에서도 제노라하던것들이 그까짓 비루먹은 망아지같은 시골뜨기 하나도 짓밟아버리지 못하느냐? 이 두엄내나는 쌍것이 감히 뉘앞에서 난당불망종질이냐?》 하고 씨벌이며 증이 나서 주먹을 떨던 무관이 별안간에 말잔등을 박차고 뛰여내리면서 척 보기에도 숙련된 솜씨라는것이 알리는 능란한 발휘둘러차기로써 베잠뱅이의 면상을 호되게 줴박았다.

아마 여느 사람같으면 단박에 비명을 지르며 혀를 빼물고 나떨어졌을 벼락강타였건만 그 체통우람찬 베잠뱅이는 조금 비틀하다가 인차 자세를 바로 가누어잡고는 천연스럽게 맞대드는것이였다.

《어랍쇼. 이 오황소 령남일판에선 상대가 없어 적적했더니 오늘에야 마침 한 작자가 나타나 심심풀이를 하게 됐는걸.》

《무지렁이쌍놈이 죽지 못해 몸살이로구나. 조정의 관료한테 맞서면 국법에 걸려 목을 잘린다는걸 네 정녕 모르느냐?》

《이보시오, 개똥량반님- 소인은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고 요긴하단것만 알지요.》

《이 쌍것이 어따 대고 주둥아리질이야? 네 오늘 내 손에 죽어봐라-》

《오냐, 제발 좀 죽여다오. 이 어지러운 세상꼴 안 보고 편해지게스리.》

이러루하게 수차 퉁탕거리며 말뿔질을 해대던 끝에 진짜로 대판 싸움이 일었다.

한성 량반과 시골 상민이라는 천지간의 신분차이는 있으나 그들 둘 다 서른고개를 갓 넘긴 혈기방장하고 주먹깨나 쓸줄 아는 젊은이들인데다가 성미까지 어느 한쪽이 기울지 않을 정도로 과격한지라 둘중에 누가 하나 죽어야 결판이 날듯이 치고 받고 맞고 때리고 하는 격투가 주변사람까지도 치떨릴 정도로 굉장하게 벌어졌다.

서로 상대를 휘때리고 되차고 하며 성난 갈범처럼 길길이 날뛰다나니 베잠뱅이를 걸친 사내는 상투머리를 둘러감았던 허드레수건이 풀어져 날아났고 무관은 눈언저리까지 위엄있게 눌러썼던 전립이 벗겨져 나딩굴었다.

그래서야 두사람의 상통전모가 드러났다.

한바탕 맥을 뽑고나서 잠간 숨돌림을 하느라 가슴을 풀떡거리며 서로 상대방을 노려보던 그들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놀라는 소리가 튀여나왔다.

《아니 이런, 너 오팔이로구나.》

《어랍쇼, 이게 누구여? 마광우가 아닐시구-》

량쪽이 다 반색은 하면서도 흉없이 껴잡고 포옹할념은 않고 얼친 사람들처럼 멀거니 마주보기만 할뿐이다.

그러다가 둘 다 게면쩍게 웃으면서 주먹을 거두고 머쓱해서 물러났다.

먼저 수건을 되집어 툭툭 먼지를 털어버리고 흩어진 상투를 바로잡아쓰던 오팔이가 마광우의 으리으리한 무관복차림을 시답지 않게 흘겨보며 시까슬렀다.

《그새 되겐 벼락출세를 했구만. 어벌차게 량반감투를 얻어쓴데다가 꽤나 높직한 관직에도 게바라올랐으니 말일세. 흠, 승병대에 있을 때 꽤두 공을 탐내더니 종내 성사를 한게지?》

《허어,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한테 말버릇이 가히 고약한걸. 옛적엔 어질고 순박하던 오팔이가 어쩌다가 이런 난당불망종으로 번졌나, 응? 자네 오늘 하두 운수가 길한 덕에 명줄이 붙어난줄 알게.》

마광우는 이렇게 뇌까리며 옆구리에 찬 칼을 잡아 흔들어보였다.

그러자 오팔은 퉁 코방귀를 뀌며 쓰겁게 웃었다.

《이 오황소가 그런 칼따위에 목대가 끊길 시라소니가 아니라는거야 전쟁때 곁에서 지내봐서 잘 알텐데 뭘 그래? 이봐 마광우, 허세는 그만 부리고 나한테 사죄부터 하라구.》

《사죄?! 건 웬 가을뻐꾸기같은 소린가?》

《흥, 뻔뻔스럽게도 시치미를 떼누나. 너 전쟁말엽에 승병대를 탈출하여 도원수한테 가붙어 승병대의 아까운 싸움군들을 역적으로 몰아 잡아죽이려던 일을 벌써 잊었어?》

오팔이의 그 역정에 마광우는 오히려 제켠에서 뻣뻣해서 삿대질을 해댔다.

《사람이 입은 가로 째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있은 사실을 제 생각대루 망탕 배앝으문 못쓰이. 말이 난김에 진속을 털어놓건대 난 그때 숱한 사람이 아니라 홍창해 하나만을 잡아치우려고 했던거다. 그건 정정당당한 용단이였네. 창해 그 자식이 화적질을 하며 살인범죄를 저지른건 사실이니까. 그때의 사건은 오팔이 자네와는 관련이 없으니 일언이페지하고 회포나 나누자구.》

이렇게 화제를 돌린 마광우는 주변에서 어정쩡해서 서성거리는 제 하인배들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그러자 하인배들은 총망히 말에서 부담상자를 내리워 풀고 그안에서 술방구리와 음식꾸레미들을 꺼냈다. 잇달아 펑퍼짐한 공지의 풀판에 자리를 만들고 음식꾸레미를 펴놓았다. 널다란 공단무늬보를 헤치고 싸리로 엮은 궤뚜껑을 여니 그안에 참기름을 발라 차곡히 눌러담은 송편이며 절편이며 찰떡같은 떡붙이들이 드러났다. 이어 다른 보를 헤치고 2중3중 여러 틀로 쌓인 찬합들을 들어내여 뚜껑을 여니 소고기절임, 돼지고기절임, 통닭찜, 돼지발쪽료리같은 육붙이들과 마늘절임, 도라지볶음, 고사리무침 같은 반찬들 그리고 안주감으로 따로 넣은 낙지, 민어, 전복 등의 마른 어물묶음들이 드러났다.

척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돌게 만드는 고급한 도중식사꾸레미였다.

마광우는 하인배들이 먹자판을 준비해놓고 물러나기 바쁘게 먼저 무관복인 천릭자락을 뒤로 거드름스레 갈라붙이고 나앉으며 오팔을 손짓하여 불렀다.

《장장 허구한 세월만에 옛친구들이 의외의 상봉을 했은즉 한대포 하며 그새 살아온 얘기나 나눕세.》

옛날보다 살이 올라 볼따귀가 유들유들해진 그의 얼굴엔 뽐내는 기상이 완연했다.

금시 뜸베질한 황소처럼 상투머리를 짓수그린채 마광우를 흘겨보며 시꺼먼 눈을 떼룩거리던 오팔이가 휭하니 몸을 돌려버렸다.

《내래 옛적의 동냥인인줄 알어? 굶어죽을지언정 량반떨거지들하곤 맞상을 안해.》

이러다가 침을 퉤 내뱉고는 누웠던 자리에 그냥 놓여있는 제 보짐을 집어들고 씨엉씨엉 큰길로 나섰다.

보짐을 휘둘러지고 겅정겅정 동래쪽으로 멀어져가는 오팔의 거쿨진 뒤모습을 눈살이 꼿꼿해서 지켜보던 마광우는 쓰겁게 웃고말았다.

《소발통같은 자식. 저러니까 한뉘 개구창에서 거렁뱅이로 빠드락대며 고박하게 살지.》

마광우는 허줄한 행인인 오팔이가 제 집 종보다도 못한 걸상놈같이 여겨졌다. 불과 오륙년새에 천양지차로 달라진 자기네 두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니 속이 절로 흐물거렸다.

그러다가 자기도 하마트면 오팔이처럼 떠돌이하바닥인생이 될번 했던 일이 불쑥 떠올라 등골이 오싹해졌다.

임진왜란 말엽에 승병부대를 떠나 도원수한테 가붙은 광우는 도원수군영에서 파수군노릇을 했었다. 어떻게 하나 도원수의 눈에 들어 공명을 이루고 출세를 해보려고 무진 애를 쓰던차에 전쟁이 훌쩍 끝나버렸었다.

전시체계가 해제되며 도원수가 령남의 어느 도관찰사로 돌아앉고 군영도 해체되는 바람에 광우는 꼭지떨어진 감알신세가 되고말았다.

전선부대들과 의병대들이 해산되여 병정들이 고향으로 흩어져갈 때 마광우는 괴나리보짐 하나를 덜렁 둘러메고 자기의 옛 도련님이 있는 한성으로 올라왔다. 고향인 안주에 가 전쟁때 왜놈들한테 잘못된 부친처럼 시골량반집의 도차지노릇을 하느니 도성에서 어느 세도대감의 교군이라도 하는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란리통에 옛 도련님의 행처도 묘연해져 한성이며 린근 고을들을 두루두루 돌아치던 마광우는 옛다, 모르겠다 하고 한성근처의 어느 산속 암자에서 거처한다는 도사를 수소문하여 찾아들어가 무술부터 배웠다.

전쟁 수년동안 승병대를 따라다니면서 무술이야말로 사나이들한테 가장 좋은 립신양명의 발판임을 뼈저리게 체험했기때문이다.

한겻은 산을 내려 저자거리에 나가 품팔이를 하여 그 값으로 수련비와 숙식비를 치르고 한겻은 훈련과 자아수양에 바치고 하며 이발을 사려물고 네해동안 도를 닦은 후 한성으로 되내려온 광우는 용약 무과과거시험에 응시했다. 초시에서 땅짚고 헤염치듯 수월히 합격인장을 받았고 여러달후에는 복시에 응시했다.

운수좋은 놈은 자빠져도 떡함지에 어푸러진다더니 조정에서 시험관으로 나온 리조참판(종2품)이 옛날 광우를 방자로 데리고있던 안주목사의 아들인 그 도련님이였다.

광우는 리조참판의 각별한 관심과 후원속에 제 마음껏 양양 실력을 떨쳐 복시에서 갑생이 된 후 끝끝내 회시에서도 장원급제를 했다.

인생길에서 힘겨운 올리막길이 있으면 헐한 내리막길이 있다는 말이 아마도 마광우를 두고 하는 소리같았다. 그가 고생스럽게 아득바득하여 립신양명의 첫 골목을 터치자 큰 물이 줄줄이 흐르듯이 일이 잘도 풀려져나갔던것이다.

천하 민생들의 부러움속에 임금으로부터 어사화까지 받고 훈련도감의 별무사로 등용된 마광우는 사기충천하여 본업무에 매진함과 동시에 리조참판의 인줄을 타고 조정대신들과의 교제도 넓혀나갔다.

여하튼 이러저러하게 일이 펴이여나가는 가위에 령감네들의 신망도 얻었고 병조정랑(정5품)네 딸한테 장가를 들어 가세와 재력도 남부러워할 정도로 마련했다.

그 모든 환경을 발판으로 하여 두해어간에 벌써 벼슬품계가 초관(종9품)을 거쳐 종사관(종6품)직에까지 이르렀다.

중인신분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과남한 자수성가였으나 광우는 자기가 이제 겨우 립신양명의 중간도약대에 올라선것으로 여기며 업무실행과 아부아첨에 더욱더 극성을 부렸었다.

그러한 극성이 은을 내서인지 두어달전에 벌어진 어전모임에서 왜국에 사신을 보내는 문제가 론의된 후 의정들과 판서들은 일치하게 마광우를 정사인 손문욱의 수행무관 겸 종사관으로 추천했었다.

왜국행이 목숨을 내대야 하는 위험천만한 길이였으나 마광우는 오히려 그 일을 무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로 여기였다.

공이란 항상 서로 죽일내기를 하는 싸움판에서 얻어진다는것을 전쟁시기에 뼈저리게 체험했기에 적극 호응해나선것이다.

하여 그는 앞서 내려가 사신출발준비를 갖추라는 조정의 령을 받고 지금 부산포로 내려오는 길이였다.

(서른네살에 나라의 사신 종사관이라! 이만하면 나도 복이 있는 사람이야. 이번 일만 원만히 해내면 더 큰 복이 차례질테지, 흠.)

자부심이 살아나 어깨를 으쓱이던 마광우는 곁에서 어정거리는 하인들한테 눈을 부라리였다.

《뭣들 하는거냐? 날래 술을 쳐라.》

그 한마디 소래기에 하인배들은 불맞은듯이 놀라 설설기며 술잔에 맑은 소주를 부어드린다 안주를 꿰여올린다 하며 아부재기를 쳐댔다.

그러는 노복들을 흡족해서 굽어보느라니 마광우는 느닷없이 왕이 되여 천하를 호령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왕은 못돼도 갓머리에 도리옥을 붙이고 대궐에서 부귀와 권세를 시위하며 나리님행세라도 할 때라야 사람은 복을 누렸다고 할수 있다.

대궐의 주인이 되자면 이번 왜국행에서 세상을 들썩하게 놀래울 대공을 세워야 한다. 마광우는 이렇게 억척같은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술기운에 후끈 달아오르던 속에서 불뭉치같은것이 꿈틀 요동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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