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교또의 회오리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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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대찰인 남선사에서도 소정월을 맞아 여러가지 불교의식을 치르며 붐비고있었다.
한낮이 기울어 싸느러운 기운이 사원구내에 드리웠을 때 시나지로는 감자주빛비단가사를 단정히 손질해 걸치고 승방을 나섰다.
법당에 가 성인식을 주관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너렁청한 법당안에는 교또성안이며 린근 촌락들에서 모여온 일본사내애들과 계집애들이 가득 들어앉아 의례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옥작복작 떠들고있었다.
시나지로가 목탁을 량손에 갈라쥔채 점잖은 걸음으로 마당을 가로지르는데 앞쪽에서 쌍대문이 찌꿍 열리더니 장삼을 걸친 고달쇠가 들어왔다.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고달쇠의 입에선 술냄새가 확 풍겼다.
《어이구. 태장로님-》
주정인지 푸념인지 분간키 어려운 혀까부라진 소리를 내며 툴툴대는 제자승한테 시나지로는 버럭 역정을 썼다.
《고현녀석, 불승이란게 시퍼런 대낮에 술까지 처먹으며 이 웬 추태냐?》
이러며 시나지로가 눈을 부라리자 고달쇠는 《이거야 어디 분통해서 살겠나유?》하더니 그앞에 어푸러져 눈물을 주르륵 쏟았다.
그가 이처럼 엉망진창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울기까지 하는것을 처음 보는지라 시나지로는 속이 덜컹해졌다.
《얘, 대체 웬일이냐? 암자에 무슨 불상사라도 생겼느냐?》
《소승은 애매하게 모두매를 맞았소이다. 야스끼네 패거리가 소승을 죽어라 하고 막… 그래서 화술을 허-흑.》
꺼이꺼이 목놓아 설분을 터뜨리던 고달쇠는 시나지로가 미시리처럼 울지만 말고 차근차근 사유를 얘기하라며 힐책을 해서야 자기네 암자에서 벌어진 일을 자초지종 고해바쳤다.
고달쇠가 속한 퇴경암자중들이 식방에 모여앉아 점심밥을 먹을 때였다.
끼때면 늘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고달쇠는 빈사발에다가 국과 밥과 반찬들을 담아 말아가지고 굴뚝모퉁이쪽으로 나가 《고수레-》하며 뿌려던졌다.
그 모양을 본 방주의 오른팔노릇을 하는 야스끼가 눈알이 올곧아져서 까박을 붙였다.
《그따위 말라빠진 고할애비가 뭐길래 아까운 음식을 자꾸 버리는거야?》
《그따위라니 원. 고씨는 우리 조선사람들을 잘살게 해준 농사의 시조이시여. 조선사람이 조선의 조상을 섬기는게 뭘 잘못됐다 그래?》
고달쇠가 혀를 갈기며 노염을 쓰자 왜중들은 밥숟가락을 막 내동댕이치면서 벅작 떠들어댔다.
평시에도 늘 본사의 태장로님이 같은 일본중인 저희들보다 조선족인 고달쇠를 끼고도는데 대해 불만이 많던차라 그 오감이 고달쇠한테 터쳐진것이다.
《이 거랑배 불목하니야, 조선의 조상을 섬기겠으면 다시 조선으로 가란 말이다. 아이구, 시큼한 김치냄새, 토장냄새.》
《일본땅에서 일본사람이 지은 낟알로 고마인이 조상제례를 하니 그런 날도적놈심보가 어디 있어? 당장 고수레놀음을 걷어치워라-》
《이 세상의 조상은 오직 한분 우리 일본의 짐무 <천황>님이시다.》
이러며 중구난방으로 고아대는 왜중들을 하찮게 흘겨보던 고달쇠는 저도 신경이 나서 침방울을 튕기며 고아댔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천황>이 나라조상이라면서 왜서 아무런 권세도 못쓰는 허깨비로 만들었니? 그 잘난 관백이나 쇼궁한테도 꼼짝 못하는 허깨비가 무시게 조상이야? 너희들 우리 조선사람들을 얕보면 안돼- 야만족이던 너희네한테 백제왕께서 불교경전과 률사, 선사, 니승, 주술쟁이들과 절간을 짓는 수공업기술자들을 보내여 일본불교의 시발을 떼줬는데 배은망덕하게도 조선사람을 욕해? 이 얼간망둥이들아.》
《고마족 불목하니가 일본민족을 모독한다. 저놈을 혼쌀내우자-》
야스끼가 제 동료들을 휘동해가지고 고달쇠한테 달려들어 그를 엎어 메쳐놓고 마구 두들겨팼다.
전후사연을 듣고난 시나지로는 혀를 끌끌 찼다.
《세살난 애들처럼 그게 뭐냐? 그녀석들도 너도 사람배속에서 나온 다 같고같은 사람족속인데 뭘 네 조상 내 조상 하며 피나는 싸움을 벌려대느냐 말이다.》
시나지로는 수일내로 말사의 주지에게 하달해 너를 이곳 종사로 옮겨오겠다는 말로써 고달쇠를 달래여 되돌려보내고나서 착잡해진 심정을 속에 안은채 대웅전에로 향했다.
그가 위엄을 풍기며 법당안에 들어서자 수십명의 애숭이들이 줄레줄레 일어나더니 《대법사어른께 축수드리옵니다.》 하고 례의를 표현하며 설익은 보리이삭같은 머리들을 까닥거렸다.
하나같이 꼭뒤에서 채 피가 마르지 않은 햇내기들이다.
이제 얼마후면 성인대렬에 들어서서 제마음대로 시집장가도 가고 동네잡사는 물론 관가정사에도 참여하며 어른대접을 받게 된것이 기뻐 계집애들은 갓 물들인 이발을 드러내면서 노상 해죽거렸고 사내애들은 갓 꽁져늘인 수닭꼬리같은 죤마께를 휘저으면서 제법 틀스러운 거동을 차린다.
《나무아미타불!》
합장배례로써 례의를 표하고난 시나지로는 불상앞의 상좌에 가 서서 관가들에서 넘어온 문서를 펼치고 참가대상자들을 한사람씩 호명하여 확인해보았다.
그런 다음 생각많은 시선으로 한동안 장내를 둘러보다가 의례시작을 알리였다.
《오늘 너희들은 철부지시절과 작별하고 정식 성년이 된다. 말하자면 어른이 되여 어른노릇을 한다는거다. 헌데 명심할건 나이가 찼다고 어른구실을 하는게 아니라 어른답게 살아야 어른구실을 한다는것이다. 자, 다들 중생을 보살펴 성인으로 키워주신 부처님께 불공을 드려라.》
그러자 사내애들과 계집애들이 저마다 기모노와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앞으로 나와 공물상에 은냥이며 음식꾸레미며 하는것들을 그득히 올려놓고 들어갔다.
시나지로는 장내가 정돈되기를 기다렸다가 목탁을 무겁게 두드리며 주문을 외웠다.
장시간에 걸친 주문끝에 정구업진언을 이어댔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바
《나모라다나 다라야아 나말알약…》
그 념불소리가 반복되며 이러저러한 내용의 교리가 엇바꾸어 섞여들자 애숭이들은 싫증이 나서 끼리끼리 모여서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루감을 못이겨 앞사람, 곁사람에게 한두마디씩 건늬던것이 어느새 가벼운 롱질로 변해갔다.
심술궂은 몇몇 녀석들이 이젠 처녀가 됐다고 제법 요염을 빼는 계집애들의 머리태도 잡아당기고 살진 뒤엉치도 슬슬 건드리며 히죽거린다.
《미짜, 래일 너희집에 매파를 보내겠어. 좋지? 닐닐닐.》
《하나꼬, 너 슬프겠구나. 숫기를 벗기울 때가 돼서.》
그런데도 계집애들은 낯색 한점 안 붉히며 맞잡고 드레질을 해댄다.
《우시라, 너한테 시집갔다간 개새끼를 낳을가봐 걱정이다.》
《행, 숫기는 해서 뭘하니. 갑부가 나선다면야 내 가슴껍질도 벗어주지 않으리.》
장내가 정숙을 잃고 시시껍적한 판으로 번져질 때 법사의 설교도 고조에 달했다.
《진흙탕속에서도 련꽃은 솟아 피여나거늘 아, 인생 구만리를 앞둔 그네들이여, 부디 부처님의 대자대비로운 뜻을 받들어 현세에서 복을 받아 락을 누릴지어다.》
이렇게 장중한 어조로 축사를 끝내고 성인식참가자들을 향해 돌아서던 시나지로는 란잡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고 대뜸 성을 냈다.
《요망하다. 부처님의 존귀하신 상을 모신 신성한 사당에서 이 웬 해괴망측한짓들인고-》
법사의 서슬푸른 기상에 놀라 장내는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그런 가위에 신통히도 잰내비처럼 생긴 한 사내녀석이 발딱 대중속에서 삐여져나오더니 공물상에다 꽤나 큼직스러운 금덩이를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러고는 시나지로에게 뻣뻣한 태도로 당돌하게 줴쳐대는것이였다.
《대법사님, 부처님께서 하사하시는 복을 소자가 혼자 다 받게 해주오이다.》
아연하여 굳어지며 덜퉁스런 녀석을 한참 눈여겨 살피던 시나지로는 불쾌한 낯색이 되여가지고 따져물었다.
《그녘은 뉘집 자제인고?》
《소자는 교또태수의 귀공자옵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시주공물은 세세년년 듬뿍이 내겠사오니 부디 소자한테 큰복을 안겨주옵시오. 소자는 저 가난뱅이들과 복을 나눠가지기가 싫소이다.》
그녀석이 한바탕 새빠진 너스레를 털고 제자리로 들어서기 바쁘게 마고소자(귀신이름)의 허울같은 덧옷을 괴상하게 차려입은 키자그마한 계집애가 빠르르 반달음쳐나와 공물상에 보석과 진주로 세공하여 붙인 목걸이며 팔찌 같은 노리개붙이들을 한웅큼 올려놓았다.
《비나이다, 부처님. 소녀도 만복을 받아 한생 부귀영화 누리도록 굽어살펴주옵시오.》
이러며 불상을 향해 허리를 까불딱이는 계집애를 퀭해진 눈으로 지켜보던 시나지로는 울뚝 치받치는 심사를 애써 누르며 한마디 건늬였다.
《랑자도 권세가문의 옥동녀겠다.》
《네. 소녀의 부친은 <천황>궁의 내정대감이옵니다. 대자대비하신 법사님, 손이 닳도록 빌고비오니 소녀가 태후마마가 되도록 보살펴주옵소서.》
계집애가 아양을 떨고 제자리로 돌아 들어갈 때 별안간 소동이 일어났다.
다이묘들과 관가에 종속되여 비천하게 살아오는 평민가문의 자녀들이 반발심에 등이 달아나 저마끔 애끊는 심사를 터놓으며 송사리떼처럼 끓어번졌다.
《법사님, 소녀가 쇼궁소첩이 되도록 힘써주사이다. 소녀도 복을 받아 부귀영화를 맛보고싶나이다.》
《소자도 대관 대
《아- 아- 자비로운 부처님, 소자는 권세도 재부도 싫으니 준마와 보검만 하사해주옵소서. 임진조국전쟁과 세끼가하라격전에서 애통하게 죽은 조부와 부친의 원쑤를 갚고싶소이다.》
시나지로가 목탁을 세괃게 두드리며 조용하라고 꽥 소리지르자 애숭이들은 눈에 달이 떠가지고 드잡이를 하려들었다.
태장로를 시중드느라 문가에 대기하고있던 동자승이 황망히 달려가 우직스럽게 생긴 불목하니들을 여라문명 데려왔다.
볼목하니들이 주먹을 휘두르며 으르떡떡 위협을 해대서야 애숭이들의 막스러운 소란이 즘즛해졌다.
시나지로는 기분이 잡치고 흥심이 사그라들어 성인의식을 대충 끝내버리고말았다.
애숭이들이 이제는 당당한 어른이 됐답시고 제법 의기가 양양해져 찧고 까불면서 삼삼오오 떼지어 법당밖으로 밀려나갈 때 시나지로는 상좌의 초물방석에다가 늙어빠진 몸뚱이를 던져버리고말았다.
그는 히히닥 떠들면서 사원마당을 벗어나는 불량성인들을 망연자실해서 내다보다가 서글프게 한숨을 내뿜었다.
《망조로다. 저것들이 이제 쌍을 무어 새끼낳이를 하면 쉬쓴 몸뚱아리에서 삐여져나온 씨다구니들이 무얼 온전할고. 이 나라엔 장차 야인무리가 번성할판이니 어허, 이 아니 통탄할 일인지고.》
이러며 가슴아프게 탄식하느라니 요전날 광륭사를 다녀오던 길에 조선사람들의 귀무덤앞에서 포악무도한 일본군사들을 절규하고 타매하던 유정선사의
울분에 찬 모습과 본토배기 일본인중들한테서 모두매를 맞고와 억울함을 하소연하던 고달쇠의 피멍든 얼굴이 시야에 떠올라 엇섞여돌며 인생의 새로운
리치를 깨우쳐줬다. 그 리치는 일본사람의 견지에서는 납득하기가 괴로운것이였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