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교또의 회오리바람
1
을사(1605)년 정월 초하루.
설을 맞는 교또거리는 온통 눈천지였다. 목화솜같은 흰눈송이들이 공중에도 가득찼고 땅에도 두터이 깔렸다.
함박눈이 하염없이 펑펑 쏟아지고있었던것이다.
그 눈을 맞으며 유정이네는 후시미성안의 대궐로 가고있었다. 막부에서 차린 신년연회에 초청받아가는 길이였다.
거리는 조무래기들의 세상이였다. 어른들처럼 머리를 정수리까지 빡빡 올려밀고 외뿔태를 수닭꼬리처럼 세운 일본 사내애들은 한곳에 모여들어 팽이를 치고 연을 띄우며 옥작복작 붐비였고 다른 한쪽켠에서는 다스끼(긴 일본옷소매를 가뜬히 올려매는 사선띠)를 띠고 게다를 신은 계집애들이 눈사람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길량쪽으로 주런이 늘어선 집집마다에서는 대문가에 송죽을 세우거나 참대를 창처럼 엇걸어세우고 저마끔 경쟁적으로 팡- 팡- 하고 폭죽을 터뜨리면서 잡귀를 내쫓느라 소란을 피워대고있었다.
조선사신일행은 그 광경을 묵묵히 일별하면서 제마끔 자기나름의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겼다. 그러느라니 느닷없이 조국땅에서 맞고보낸 설날들이 눈에 삼삼해와 누구나 다 짜릿한 향수에 젖어들었다. 비록 빈부귀천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일시나마 온갖 잡념에서 해탈하여 만시름을 잊고 즐기던 조국의 명절이 그리웠다.
섣달그믐날 저녁이면 해묵은 때를 씻어버리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가지는 목욕재계를 한 후 집안팎도 알뜰히 거두고 설음식장만도 하면서 늦밤을
보내다가 잠간 눈을 붙이고나서 새벽녘이 되기 바쁘게 새해의 여러가지 재앙을 막고 행복을 비는 심정으로 출입문, 창문, 벽장문들에 《처용》이요 《뿔난 귀신》이요 하는 신상들과 복두를 쓴 관리며 갑옷을 입은
헌데 그보다 더 이채롭고 즐거운것은 동네 집집마다에서 벌어지는 아침례식이였다. 온 가족이 옷차림을 바로한 다음 조상제사인 《차례》를 하고나서 집안세배에 이어 음식상에 빙 둘러앉아 남정네들은 《세주불온》이라 하여 찬 술을 한잔씩 나누고 아낙네들과 아이들은 《첨세병》(나이를 더 먹는 떡)인 떡국을 훌훌 불며 먹은 다음 저마다 술주전자와 특식을 꾸려들고 한동네의 로인들과 놀음터를 찾아가느라 복새통을 피우는 모습은 그야말로 볼만 한 풍경이 아니였던가.
그저 범상히 여겨지던 그 생활이 낯설은 이곳 왜나라땅에서는 왜 이다지도 못 견딜 정도로 그리워지는것인가.
아, 미풍량속의 내 나라, 가고싶은 조선이여!
일행은 어느덧 후시미성안에 들어섰다.
대궐앞마당엔 풍막을 씌운 고급유개마차들과 승마와 승교들이 반나마 차있었다. 연회에 참가하기 위해 온 여러 주의 태수들과 막부의
유정이네가 마당을 지나 으리으리한 대궐 현관나들문앞에 거의 이르렀을 때였다.
어느 한 유개마차안에서 시꺼먼 괴물이 후닥닥 뛰쳐나왔다. 곰처럼 우직스럽게 생긴 아끼따갠(덩지가 크고 힘이 세여 싸움경기에 쓰는 개)이였다. 그놈은 코구멍을 벌름거리면서 오팔이 바지가랭이에 묻어오던 누렁이한테로 다가들었다.
누렁이는 긴장하여 그 자리에 딱 굳어졌다.
《이건 어디서 굴러온 놈이야?》
이러하듯 눈을 지릅뜨고 누렁이를 흘겨보던 아끼따갠이 터세를 부리려는지 제먼저 와락 누렁이를 덮치였다.
그러자 누렁이는 날쌔게 말같은 그놈의 배밑으로 빠져 먼발치로 비켜섰다.
《저놈이 우리 누렁이를 죽이겠구나.》
오팔이가 속이 철렁해져 《지가이-》하며 량쪽팔을 내저어 왜놈의 싸움개를 쫓았다.
유정이도 자기가 임진조국전쟁때 불쌍하기 그지없어 금강산에서 전장으로 가지고나와 먹여기르던 그 어미개의 후손이여서 무척 애정이 가고 중히 여겨지던 누렁이가 잘못될가봐 가슴을 조였다.
그럴 때 계명이가 승벽이 살아나 떠들었다.
《야, 누렁아- 왜 쫓기면서 그래? 덩지가 크면 다 왕노릇하는줄 알아? 저 허풍선이같은 놈의 멱살을 뚝 물어끊어라!》
그 말뜻을 알아채기라도 한듯 누렁이가 귀바퀴와 목갈기를 꼿꼿이 세우며 아끼따갠한테로 접근했다.
그러자 아끼따갠은 《하, 요 새빠진게.》하듯이 씩 코바람을 내불더니 별안간 사나운 기세로 누렁이한테 달려들었다.
누렁이도 이번엔 피하지 않고 그놈과 정면으로 맞대들었다.
아끼따갠과 누렁이의 대결은 어른과 아이가 맞붙어 딩굴면서 서로 치고 받고 물어뜯는 싸움을 방불케 했다.
싸움을 잘하기로 소문난 풍산개종자도 아닌 누렁이가 감히 싸움을 전업으로 삼는 덩지 큰 일본개를 당하랴 하는 걱정때문에 손에 땀을 쥐였던 유정이네는 한참후 안심이 되여 후- 숨이 나갔다.
상상외로 누렁이의 격투솜씨가 뛰여났기때문이다.
누렁이가 번개처럼 날쌔게 올리뛰고 건너뛰고 하며 아끼따갠의 목대와 다리갱이를 물어뜯군 했다. 아끼따갠이 우에서 내리누르면서 자기 목등을 물으면 발딱 뒤채여 그놈의 코등을 앞발로 후려쳐 얼뻥하게 만들고 몸을 빼군 했다.
점차 개싸움은 살기를 풍기면서 스산하게 번져갔다.
한창 그러할 때에 관노들이 뭐라고 알렸는지 대궐안에서 왜인대관들과
그것들은 저희네의 아끼따갠이 이겼으면 하는 낯색으로 개싸움을 지켜보았다. 분명코 소문난 맹견인 저희네의 일본개가 이길것이라는 확신이 력력히 어린 승리자연한 눈빛들이였다.
헌데 천만뜻밖에도 말같은 아끼따갠이 조막덩이만 한 조선개한테 몰리워 수세에 빠져들자 상심하여 혀를 내갈겼다. 지어 어떤
점차 험악해지는 공기를 느낀 유정은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홍창해의 팔굽을 쳤다.
《날래 개들을 뜯어말리라구. 소소한 일때문에 우리의 중대한 외교사업이 파탄되면 어쩌겠나 말일세.》
조급해서 그러는 유정이를 계명이가 밀막아나섰다.
《가만있소이다, 스님. 왜인들에게 한번 본때를 보이옵시다. 이젠 거의다 판이 난걸요 뭐.》
진짜로 인차 결판이 났다.
아끼따갠의 살진 잔등을 올라타고 밥주걱같은 귀때기를 이악스럽게 물어뜯던 누렁이가 중심을 잃고 덜썩 떨어졌다가 다시 발딱 되일어나면서 자기를 깔고앉는 그놈의 멱살을 사정없이 물어끊었다.
《캐갱-》
아끼따갠이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자빠졌다.
이발을 으드득 갈던 쇼궁의 군정보좌관이 꽥 소래기를 질렀다.
《저 미물같은 짐승이 뉘집거냐? 썩 나서지 못할고?-》
그 살기찬 고함소리에 다들 소름을 쳐대는데 외뿔모를 쓴 한 다이묘가 고개를 짓숙이며 두어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소인네 싸움개옵니다.》
《싸움개?! 저따위가 싸움갠가?》
《아니옵니다. 미물이옵니다.》
《수치다, 수치. 본국의 한다하는 다이묘가 저런 똥통같은것을 끌고다니며 나라망신을 시키는가, 앙?》
《벌을 받아도 마땅하옵니다.》
용서를 비는 다이묘한테 군정보좌관은 제 오비에 띠였던 외날검을 뽑아 던져주었다,
《네 손으로 저 미물을 처리해버려라.》
《하잇.》
자칫하다간 제 모가지가 잘리울것 같아 사색이 되였던 다이묘는 끼깅- 끼깅- 신음을 내며 딩구는 아끼따갠에게로 엉금엉금 다가가더니 애석함이 어린 눈물을 질끔 흘리며 칼날로 개배때기를 쫙 갈라버렸다.
그자의 호꼬인이 피투성이시체로 변한 아끼따갠을 걷어안고 어디론가 황망히 사라져버렸다.
군정보좌관이 기분잡친 상판으로 유정이네를 맞아 대궐안으로 들이는데 그때까지 호행원들속에 섞여왔던 백손이가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자기는 밖에 남아 왜인들의 동태를 살피겠다면서 떨어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