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왜땅에 나타난 관음보살

12

 

교또거리는 장난에 미쳐돌아치는 애들의 세상이였다.

이집저집의 뜨락가에선 제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왜인아낙네들의 웨침소리가 쑝쑝 겨끔내기로 울리고 골목마다의 술집들에선 사내들을 유혹하는 젊은 계집들의 분바른 얼굴들이 마파람에 들꽃송이 나불거리듯 한다.

후시미성안에 들어선 유정은 관사에 들려 이미 면식이 있는 관원에게 물어 관음보살로 떠받들리던 녀의승을 들였다는 별옥을 찾아갔다. 유자나무가 우거진 나지막한 산줄기를 병풍처럼 둘러친 아늑스러운 공지에 토기와지붕을 쓴 단층별옥에 이르러 파수군한테 녀의승을 만나러 왔다고 사정얘기를 했다.

헌데 파수군사의 입에서는 의외의 대꾸가 튀여나왔다.

《관음보살께선 간밤에 승천입지를 하셨소다.》

한참 영문을 몰라하던 유정은 낯색이 엄해지며 그건 웬소리냐고 따져물었다.

파수군사는 망탕 발설해서는 안될 일인듯 입을 봉하고 주밋거리다가 유정의 재촉을 당하고서야 마지못해 녀의승이 행방불명된 사실을 털어놓았다.

파수군사가 혹시 자기네를 놀리는게 아닌가 해 장발수염을 꿈틀 떨던 유정은 그를 밀어치우고 마당안으로 들어갔다.

기모노를 늘씬하게 차려입은 애젊은 왜인처녀가 웬 소동인가 해 밖에 나와보다가 기골장대한 도승이 성난 기상으로 드닥쳐들자 수리를 본 암새처럼 놀라며 굳어지는것이였다.

유정은 그한테 왜말로 물었다.

《여기서 조선의 녀의승이 거처했던게 적실하냐?》

《네.》

날씬한 몸뚱이를 기모노로 감쌌으나 생김새가 어쩐지 조선녀자처럼 느껴지는 그 처녀는 조심스레 대답을 해왔다.

유정이 비구름처럼 휘덮여드는 의혹에 떠밀리우며 한참이나 암중모색을 하다가 재차 따져물었다.

《그 녀의승이 대체 어딜 갔는고?》

《간밤에 온다간다는 말없이 사라졌나이다.》

《밤중에 별옥에 왔다간 사람은 없었느냐?》

《사람은 못 봤는데 한밤중에 이상한 소음과 신음같은것이 났나이다.》

《어허, 변괴로군.》

송희령의 실종이 사실임을 확정한 유정은 가슴이 덜컥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분명코 불의의 사달이 났다는 직감에 눈앞이 새까매져 구척장신의 몸을 휘청거리던 유정이 락심하여 빈주먹으로 허공만 내리써는데 용모아릿다운 왜인처녀가 해말쑥한 이마를 살짝 붉히며 유정에게로 다가서며 조선말로 묻는것이였다.

《도사님은 조선에서 오신 사신이옵지요?》

《그러니라. 랑자는 대체 뉜고?》

《소녀는 본시 평양태생 황도옥이옵니다.》

그 대답이 유정을 어마지두 놀래웠다.

《허니 랑자는 조선사람이라는거요?》

《네, 고국의 동포를 만나니 십수년만에 해빛을 본 심정이옵니다.》

처녀는 이렇게 대척하더니 대뜸 눈물이 글썽해지는것이였다.

《원참, 세상일두…》

억하심정이 되여 혀를 쯧쯧 끄르던 유정은 어인 연고로 평양소녀가 만리창파건너의 이 험난한 왜국에 깃을 들였는가고 사유를 알아봤다.

반가움과 설음이 한데 뒤엉키며 감정이 북받쳐와 차마 대답을 못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던 황도옥은 유정이가 심정이 측은해져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줘서야 가까스로 진정을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평양감영의 공방에서 서무를 보던 중투리벼슬아치의 둘째딸인 황도옥은 여섯살나던 해인 임진년 여름에 평양성이 왜군한테 강점될 때 당시 왜군의 좌군선봉장이였던 고니시 유끼나가네 부하들한테 붙들린 후 (부모들과 언니는 집마당에서 무참히 살해당했었다.) 배에 실려 고니시의 령지인 우또성으로 이송됐었다.

고니시의 처 쥬스터(카톨릭교세례명)는 도옥을 양딸로 삼고 그한테 오오다라는 왜이름을 달아주었다.

몇해 지나 고니시가 임진조국전쟁에서 패하고 령지로 돌아왔다.

카톨릭교신봉자들이였던 고니시네 부부는 도옥이한테도 쥴리아라는 세례명을 붙이고 같은 신자로 만들었다.

사실 도옥이가 평양성함락당시 왜놈들한테 살해되지 않고 산채로 붙들리고 또 이후에 고니시네의 양딸로 삼아진것은 그의 남달리 예쁜 용모때문이였다.

여러해전인 경자(1600)년 가을에 도옥에게는 두번째로 되는 재난이 닥쳐왔었다.

도꾸가와네 일당을 쳐부시기 위해 들고일어났던 고니시 유끼나가가 동군과 서군이 천하를 다툰 세끼가하라싸움에서 패하고 도꾸가와한테 잡혀죽은 후 도꾸가와는 고니시의 령지와 가옥은 몰수하고 가족들과 가노들은 통쓸어 처형했었는데 그때 도옥의 절륜한 미모를 가상히 여겨 그만은 살려두고 첩으로 삼았던것이다.

헌데 불교를 우상하는 도꾸가와는 도옥이가 불륜스럽게도 이단교인 카톨릭교신자라는것을 알고는 그가 신앙을 바꿀것을 강요하며 오늘날까지 따로 살림을 시키며 그가 개심되기를 기다려오는중이였다.

《음… 실루 일이 안됐구만.》

유정은 한 동족처녀의 기구한 인생이 가슴아프게 여겨져 탄식을 했다.

한바탕 설분을 토로하고나서 슬피 오열을 씹던 황도옥은 유정의 거쿨진 두손을 매달리다싶이 붙잡으며 애원했다.

《도사님, 남없는 출중한 인품과 용맹으로써 이 나라의 막부 쇼궁과 <천황>까지도 감복시켰다니 왜땅에서 바야흐로 언권이 당당해지지 않았나요. 이 불쌍한 소녀를 가없이 여겨 이번 기회에 쇼궁께 간하여 소녀를 시궁창에서 건져주사이다. 이 살기찬 왜땅에선 별궁의 비빈살이라 할지라도 가슴저리고 숨이 막혀와 못 견디겠나이다. 천한 부엌녀로 한뉘 고역을 치를지언정 고국에 돌아가 부모님과 언니의 유해를 찾아 돌보며 살고싶나이다.》

그의 심정이 하도 처절한지라 유정은 련민의 정이 일껏 살아나 결연히 그 소청을 받아주었다.

《알겠소. 내 힘닿는껏 실행하리다. 우리가 이제 용무를 다 본 다음 왜땅에 끌려온 동포들을 조국에로 데리고 갈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오. 중히 자각할건 어디 가든 자신이 조선녀인임을 잊지 말고 송죽같은 절개를 지킬 때라야만 고국과 동족앞에 떳떳해질수 있다는거요.》

이러고는 인차 되돌아서 대문밖으로 나왔다.

으드득 이발을 갈며 어데론가 닁큼닁큼 잰걸음을 치는 유정이를 백손이가 황황히 장달음을 쳐 뒤쫓았다.

《도사님, 어쩔 작정이옵니까?》

《쇼궁을 만나야겠네. 왜인들이란 원체 사악스런 족속인지라 귀공자가 재생했을 때 당시는 수닭대가릴 갑삭거리며 호의를 베풀었으나 그새 사례금이 아까워져 녀의승을 없애버릴 꿍꿍이를 한것 같구만.》

《이번 사달은 절대로 쇼궁의 소행이 아니오이다.》

《임자가 걸 어떻게 알아?》

《리치를 봐도 그렇지 않소이까. 녀의승이 쇼궁의 자제를 살려준 은인인데 아무렴 쇼궁이 은인을 해치울가요? 쇼궁은 그런 정도로 졸렬하게 놀 사람이 아니옵니다.》

《…》

유정은 처음에는 백손이가 느닷없이 왜국의 쇼궁을 역성드는것이 아니꼬왔으나 인차 자중하고 생각을 넓게 가질수록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지라 의심을 다른 곬으로 돌리였다.

한편 그때 가또는 새로 옮긴 저희네 처소에서 요시하찌를 제앞에 꿇어앉혀놓고 엄히 기갈질을 하고있었다.

어제밤중에 요시하찌가 부하들을 시켜 별궁에 침습하여 쇼궁의 환대를 받던 녀의승을 덮쳐왔는데 그 처사가 심히 경망스러운짓이라 되게 꾸짖기 시작한것이다.

어제 막부가 차린 환영연에 참가했던 가또와 요시하찌는 관음보살로 환생하여 나타난 녀의승이 조선의 중이며 더구나 그 녀의승이 자기네가 조선원정에서 패전할 때 울산도산성에서 퇴각하면서 배에 인질로 잡아실었다가 바다에 내던진 비구니라는것을 알고는 눈알이 까뒤집힐 지경이 됐었다.

그들은 가뜩이나 조선사신으로 온 출중한 인걸인 금강산중때문에 골탕을 먹고있는 때에 령험스러운 조선녀의승이 또 본토의 막부궁에까지 찾아들어 조선의술의 신비로움을 양양히 떨치고 관세음보살로 떠받들리우고있으니 마디에 옹이가 겹치는것처럼 골치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이미 수년전에 물고기밥이 된줄로만 여겼던 년의 유해가 귀신으로 둔갑을 한것만 같아 놀라와하는 참에 요시하찌가 제꺽 골머리를 굴려 그럴듯한 안을 하나 내놓았다. 그 조선중년을 랍치하여 수염쟁이사신의 발목을 옭아매는 덫으로 써먹자는것이였다.

《그 중년이 우리의 일생숙적인 금강산중과 여사모사해 정분이 통하는 바지저고리와도 같은 관계이옵니다.》

《턱자없이 그건 또 웬 생소린가?》

《연회를 끝내고 흩어질 때 사신 종사관이란자가 저희 사환군한테 주절대는 말을 들었소이다.》

듣노니 전탕 귀신이 씨나락까먹는 소리만 같아 가또가 심사숙고를 하는데 요시하찌는 이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라면서 쾌재를 불렀다.

가또는 즉석에서 그의 음모를 부정해치웠다.

《그건 졸부들이나 할짓일세. 금강산중과 겨룰라면 정식으로 공평하게 겨루어 결판을 내야지 사무라이답지 않게 그게 뭔가? 그 수염쟁이도사한텐 그런 암수가 먹어들지 않네.》

그렇게 눌러놓고 교또 태수네 저택에 가 장밤 시국이야기와 술추렴을 하다가 오니 요시하찌가 제 주장대로 판을 벌렸었다.

《빠가야로- 우리 <도자마>들을 뭘루 만들자는건가?》

가또가 증이 나서 칼자루를 더듬어잡는것을 본 요시하찌는 상통이 흙빛갈이 되며 용서를 빌었다.

요시하찌가 잘못을 시정하겠다면서 당장 그 녀의승을 별옥에 다시 가져다놓을 의향을 내비치자 가또는 외뿔상투를 내저었다.

《이젠 늦었다. 지금쯤이면 그 계집중이 행방불명된걸 알고 막부든 조선사신이든 소동을 일으켰을테니 광에 그냥 넣어두었다가 차차루 형세를 봐가면서 처리하라-》

바로 그러한 시각에 유정이네가 송희령이를 찾아나선것이다.

그들이 속에 불이 달려 한창 재구를 쳐대며 길을 축내는데 말을 타고 마주오던 한 사무라이가 훌쩍 길바닥으로 뛰여내리더니 유정이앞에 와섰다.

이미 둬서너번 상면을 하여 안면이 깊어진 막부군의 초장인 히까리였다.

《어딜 다녀오시는 길이오이까?》

《…》

유정이 제 급한 사정에만 옴해 침울해있는데 히까리켠에서 먼저 앞질러 꿰짚는것이였다.

《동족인 녀스님을 뵈오러 오신가본데 안됐소만 도사님께선 한발 늦었소이다.》

《허니 초장은 녀의승의 행적을 아는게로구만?》

유정이가 성급하게 따지고들자 히까리는 왜서인지 그의 곁에 붙어서있는 백손이의 눈치를 조심히 살피더니 마지못해 대답을 하는것이였다.

《어제밤 순라를 돌던 소장수하의 한 군졸이 녀스님이 거처했던 별당에서 꿈틀거리는 짐마대를 메고 빠져나오는 밤도깨비같은자들을 띄여보고 뒤를 밟았는데 그것들이 글쎄 가또태수님네가 숙식하는 객관으로 숨어들었다질 않겠소이까.》

그 말이 유정을 더한층 놀라게 만들었다.

《뭐, 가또 그놈네가?!- 만약 그 상보가 실지라면 그것들이 웬 연고로 그짓을 감행했을고? 녀의승이 사내들의 음욕을 자아낼 그런 젊은 육체도 아닌데.》

분개하여 장발수염을 부르르 떨던 유정은 히까리의 팔등을 줴당겼다.

《미안한대로 이제 당장 가또네의 거처지를 나한테 좀 알려주오.》

심상치 않게 번지는 유정의 기색에서 그의 심사를 낌새챈 히까리는 급급히 그를 만류했다.

《자중하옵시오, 도사님. 스님을 비롯해서 젊은 호위원들의 용력이 하늘에 닿을 정도인줄은 아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본토인들의 터세야 당할수가 없잖소이까. 소장이 별옥에 가 증인들을 만난 후 쇼궁사마께 사연을 아뢰고 마땅한 대책을 취하도록 하겠으니 그리 아시고 오늘은 그만 돌아가옵시오.》

이러며 앞길을 막아나서는 히까리의 어깨굽을 유정이가 한팔로 드세게 잡아채여 말이 서있는 곳으로 떠밀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요. 날래 말머리를 돌리오. 난 일각이 급하오. 후사는 내게 맡기고 초장은 길안내만 좀 해주고 물러나오. 쇼궁이 알면 형세가 더 복잡해지니 녀의승이 랍치당한 소문을 꿈쩍 말내지 말아주오. 자, 우리 어서 가또어르신한테나 가보기요.》

유경이가 느직이 말끝을 둘러치며 슬쩍 히까리의 말고삐를 나꿔챘다.

유정의 눈짓을 받은 백손이가 그 말고삐를 넘겨받아 한고패 휭 돌리여 말을 오던 방향으로 되돌려세웠다.

맹랑해져 지싯거리던 히까리도 더 어쩔수가 없어 응하며 유정에게 먼저 말을 탈것을 권고했다.

그러는걸 유정이 웃으며 사양했다. 그 태도가 하도 강경한지라 마지못해 히까리는 제 타고오던 말잔등에 훌쩍 뛰여올랐다.

《도사님, 어서요-》

백손이가 이러며 유정이가 수월히 말에 오를수 있게끔 부축하려고 하자 유정이가 되려 그를 생각해주어 먼저 말에 태웠다.

말잔등에 극상해서 두사람밖에 올라탈수가 없는지라 백손이는 제가 내리고 유정이를 태우려고 했다.

그러는것을 유정이가 보행을 하는데서는 아직 자기가 웬만한 젊은이들보다도 낫다면서 고집을 써 되올라앉게 했다.

판이 황당하여 혀를 내차던 히까리가 안되겠다고 머릴 지싯거리더니 입가에 손가락을 오무려붙이고 홰액- 하고 새된 소리를 울려댔다.

그 여무진 회리바람같은 소음이 귀청을 갈퀴며 울려퍼진지 한식경쯤 지나 방금 히까리가 나타난 앞쪽에서 기마군사 하나가 군마를 쳐몰아 달려왔다.

히까리의 수하군졸인듯 한 그 왜인기마군사는 히까리가 슬쩍 고개짓을 하는데 따라 유정의 곁에 말을 붙여세웠다.

《어서 타소이다, 도사님.》

히까리가 유정에게 순편한 언성으로 권했다.

유정은 닁큼 발을 굴러 왜인기마군사뒤에 올라앉음과 동시에 발뒤축으로 말배때기를 절싹 줴박았다.

두필의 군마가 앞서거니뒤서거니하며 네굽을 안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유정은 원쑤놈들의 수중에 들어 온갖 치욕을 당하고있을 련인을 한시바삐 구원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이발을 사려물고 말에 련속 박차를 가했다. 유정의 긴 턱수염이 맞바람을 맞아 휙휙 뒤로 나붓겼다.

《도사님, 그 녀의승이 관세음보살이란게 직실하웨까?》

유정이가 탄 말가까이에서 자기 말을 몰아나가던 히까리가 한물음 튕겨넘기자 유정이 숨가삐 달리는 가위에도 타내지 않고 헐하게 받아준다.

《보살보다 못한게 없으니 보살이래도 과언이 아니지요. 세상천하를 다 뒤져내도 아마 그만한 녀의승이 없을거요. 나라님도 백성들도 두고두고 아껴야 할 인재거던.》

말이며 사람이며 다 열증이 날 정도로 되게 장달음을 쳤을 때 거리에서 멀찍이 떨어진 한적한 곳에 외따로 틀고앉은 절간앞에서 히까리가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세웠다.

《가또태수님의 처소이옵니다. 원래는 성안별채에 자리잡았었는데 근간에 이곳 사당으로 옮겨앉았소이다.》

백손이가 말에서 먼저 내려 비록 년로는 했어도 아직 자기네보다도 더 기가 펄펄한 유정이가 말에서 내리는것을 거들어주었다.

뒤따라 말에서 내리려고 등자를 벗는 히까리를 유정이가 뚝해서 제지시켰다.

《초장네가 할일은 끝났으니 그만 돌아들 가오.》

《도사님넨 장차 어찌할셈이오이까?》

《만사는 다 제대루 될테니 이상 더 개의치 맡고 일언이페지한채 제일이나 하오다.》

이렇게 오금을 박고난 유정은 제 손으로 고삐를 잡아 말머리를 되돌려세우고는 끼랴- 하며 량손으로 두마리의 말엉뎅이를 동시에 드세게 쳐갈겼다.

호오옹-

놀라서 사납게 투레질을 쳐대던 수말과 암말이 히까리와 그의 동료를 실은채 멀리로 냅다 질주했다.

유정이네는 한동안 숨을 가라앉히며 어둠속에서 우중충하니 형체를 드러낸 절간을 휘둘러살폈다.

그러는데 백손이켠에서 더 분개하여 주먹을 떨었다.

《이 쌍 골통을 바사던질 밤도깨비같은것들, 다 죽게 됐던 귀공자를 살려준 본국의 은인을 랍치하다니. 도사님, 당장 쳐들어가 저 미욱스러운 <도자마>우두머리들을 요정내고마옵시다.》

《괜히 뭘 먹은 소경처럼 우둘쩍대지 말고 조용하라구. 이제 우리가 할일은 소리없이 해치워야 되는 밀지한 거사일세.》

《불한당들과 접전하려면서 어이 소동을 꺼리시오이까?》

《형세가 부득해 그러네. <적은 피하고 동료는 구하자>, 이게 시방 내 작정일세.》

《그럼 <도자마>패당들은 그냥 두고 녀스님만 빼내자는겁니까?》

《그렇네. 아까 히까리도 말하지 않았나. 본토터세를 이겨내지 못한다고. 놈들과 맞대들이를 하면 어차피 생사결단을 벌리게 되고 그러면 죽든지 아니면 쫓겨나 이번 왜국행차의 진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거던. 설사 손실없이 녀의승을 구해낸다 해도 그가 우리한테 있다는걸 알고 또 저들의 기도가 파탄된 앙심에 북받친 놈들이 가만있을상싶은가? 그런 놈들한테 언질도 안 잡히고 또 우리가 사신중임을 끝까지 수행하자면 은밀히 녀의승을 구출해내여 쥐도 새도 모르게 이밤중으로 타곳으로 빼돌려야 하네.》

이런 말로 백손이를 납득시킨 유정은 그를 절간 뒤골목의 구석진 곳으로 이끌고갔다.

유정이 키를 넘게 쌓은 돌담을 올려다보며 이제 취할 행동을 작정하는 참인데 백손이가 제잡담 소매를 걷으며 나섰다.

《소인이 안에 들어가 내막을 살피겠으니 이 자리에 가만 있으십시오.》

《임자 혼자서 일없겠나?》하고 걱정을 하는 유정이를 꿈쩍 소리내지 말라며 눌러앉히고난 백손이가 어느새 휭 몸을 솟구치더니 한길반이 남을 담장을 량손으로 짚고 뛰쳐올라 넘어갔다.

뜨락안에 새처럼 가볍게 떨어져내린 백손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린채 주변동정을 살폈다.

한창 저녁끼식을 에울 때라 등잔불이 켜진 식방안에서 놈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술판을 벌려대는 소음이 날뿐 승방안이나 뜨락안이나 조용했다.

백손은 어느 구멍으로 새여들어가 어느 구석을 뒤질것인가를 모색하며 심기를 가다듬는중인데 식방문이 찌그덩 열리더니 사무라이 하나가 술방구리와 밥바리대를 량손에 갈라들고 흔들흔들 걸어나왔다.

사무라이는 게걸스럽게 쩝쩝 바리대를 핥으며 뒤울안 광쪽으로 돌아가는것이였다.

백손은 즉시에 떠오른 속궁리가 있어 은밀히 그자를 뒤따랐다.

사무라이는 창대를 기대놓고 광출구문앞에 자리를 고르고 앉더니 뭐라고 쑹얼거리며 술방구리마개를 뽑는것이였다.

그자가 술방구리를 꺼꾸로 쳐들고 그안의것을 꿀꺽꿀꺽 들이삼킬 때 백손이가 비호같이 달려들어 한팔로 놈의 목을 그러안고 조였다.

《어-윽.》

숨길이 막혀 끅끅거리는 놈한테 백손이가 류창한 왜말로 들이댔다.

《죽지 않으려거든 이실직고해.》

《하잇- 윽-》

술방구리를 떨군 그자는 숨이 막혀와 딸꾹질을 해대면서도 살려달라고 두손을 싹싹 빌었다.

《너희들이 별궁에 있던 조선녀의승을 잡아왔지?》

《네네.》

《그를 어찌했느냐?》

《이 과앙안에… 소인이 파수를…》

백손은 더 듣지 않고 손가락으로 그자의 급소를 찔러 혼절시켜버렸다.

그러고는 출구의 널문빗장을 뽑고 광안으로 들어갔다.

널마루가 삐꺽대고 곰팡이내가 코를 찌르는 광안은 어둠에 휘묻혀 지척을 가릴수가 없었는데 어느 구석에선지 사람신음이 간간이 들려왔다.

백손은 신음이 나는 곳을 향해 한걸음, 두걸음 발더듬질을 해나가다가 뭉클한것이 발에 걸려 넘어질번 했다. 발에 걸채이는 순간 그것이 사람이라는것이 대뜸 첫 느낌에 알렸다.

게다가 신음을 내는 목소리까지 귀에 익은지라 그가 조선녀의승이라는 직감이 확연해졌다.

백손이가 불길해지는 심정으로 희령의 상태를 다시금 알아보느라고 어름어름 쓸어만지니 그는 손목이며 얼굴에 피더덕이 지고 의식은 혼미해진 상태였다.

백손은 더 생각할새없이 녀의승을 덥석 안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사위를 예리하게 경계하며 담장가로 촉망히 달음쳐간 그는 잠간 심호흡을 한 후 힘껏 뛰쳐올라 두팔로 안고있던 녀의승을 담장에 먼저 올려놓고는 되내렸다가 재차 두손을 우쩍 높이 쳐들어 담장턱을 줴잡고 발을 굴러 그우에 올라섰다. 그런 다음 몸무거운 녀인을 껴안은채 수리처럼 훌쩍 담밖으로 내려뛰였다.

뒤골목에 내려선 그를 유정이가 황황히 맞아주었다.

유정은 백손이가 담장안의 동태나 살피고 나올줄로 여기다가 뜻밖에도 그가 송희령이를 안고 나온것을 보고는 그의 펄쩍 나는 무예와 림기응변술에 감탄을 하며 촉급한 심정으로 의식이 없는 송희령을 받아들었다.

《니고가 끝내 변고를 당했군.》

《도사님, 날래 피신부터 하옵시다.》

백손은 무겁게 늘어지는 송희령을 등에 휘둘쳐업고 제먼저 인가쪽으로 내달렸다.

행적이 끊긴 외딴 다리밑으로 들어섰을 때 유정이가 무슨 생각이 들어선지 백손이를 멈춰세웠다.

《가만, 녀승을 내려놓고 얼른 숙소에 다녀오라구.》

《숙소엔 왜요?》

《임자 보짐을 가져오게나. 그리고 홍차지를 만나 로자를 있는껏 달래오라구.》

백손은 영문을 몰라하다가 유정의 재촉을 거퍼 받고서야 마지못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춥고 어두운 밤거리를 장달음쳐가 사신일행이 거처한 객관에 이르렀다.

홍창해네 마상재패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먼저 저녁밥을 먹은 하인배들은 설겆이와 아침끼식준비를 하는중이였고 손문욱과 마광우가 안채 상방에서 술상을 펴놓고 앉아 한담을 이어대고있었다.

백손은 호행원들의 방에 들어가 제 보짐을 안고나오다가 마침 홍차지를 퇴마루에서 만났다.

《이보소 홍형, 도사님이 로자를 보내라오.》

《아닌밤중에 로자는 왜 달라는거요?》

사신행차의 후방자금을 관리해오는 홍차지는 백손이가 어떤 꿍꿍이를 벌린다고 의심했는지 선뜻 자금을 내주지 않았다.

《제기랄, 날 뭘루 아는게야? 내가 그 잘난 푼전에 목이 멜 사람같아?》

백손이는 이렇게 투덜거리다가 제 보짐안에서 은냥 두어개를 꺼내 홍차지에게 자랑하듯 휙 보이고는 대문밖으로 나왔다.

그가 다시 밤거리를 바람같이 내질러 좀전의 그 다리밑으로 내려서니 그새 혼기를 되찾은 녀의승이 유정스님과 마주서서 얘기를 나누는중이였다.

하현달빛이 둘사이를 희끗하니 밝혀주고있었다.

《청목, 그대를 뵈올 면목이 없소. 우리가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한탓에 역고만 치르었구려.》

《사신행차가 당하는 역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귀체가 만강하셔 나라일에 매진하시는 대사님을 만나 무상히 기쁠뿐이옵니다.》

합장을 한 두손을 앞가슴에 사뿐히 올려붙이며 읍례를 하는 송희령의 눈굽에선 눈물이 샘솟아 흘러내렸다.

유정이도 불도의 례의대로 합장배례를 한 후 희령의 피더덕진 두손을 어루만지다가 격해서 뇌였다.

《그대가 만리험로를 헤쳐 왜국의 서경에까지 찾아든 사유는 바이 알만 하오만 쉽사리 융허할수가 없구려. 일개의 아녀자가 어쩜 이런 과한 모험을 한단 말이요?》

《비록 험로이긴 하오나 송운대사님곁으로 온다고 생각하니 힘겨움도 위태로움도 몰랐나이다. 이렇듯 대사님을 만나고나니 모든게 꿈만 같고 일시 겪은 역고가 락으로 여겨질뿐이옵니다.》

송희령이가 눈물을 씻으며 정에 겨워 응대하는 그 말은 유정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뜨거운것을 삼키던 그는 자신을 다잡고 희령이와 백손이를 재촉하며 희푸른 달빛이 굼니는 큰길로 나섰다.

유정이가 교또거리를 등지고 남쪽 촌락으로 길을 잡아나가자 뒤따라오던 백손이와 희령은 몹시 의아쩍어했다.

《도사님,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옵니까?》

백손이가 먼저 영문을 알고싶어 묻자 그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움직이던 희령이도 덩달아 의혹을 내비치였다.

《이밤의 보행이 혹시 삼십륙계의 마지막수인 줄행랑은 아니온지요?》

유정은 귀가 솔가왔으나 못 들은척 하며 내처 걷자 송희령이 휘딱 몸을 비틀며 백손이를 털어치우고 한자리에 말뚝같이 뻗치고 서버리는것이였다.

《소승은 가도 떳떳하게 가겠나이다.》

유정이가 어서 가자고 재촉을 했으나 송희령은 꿈쩍 들을념도 안했다.

《이길로 가서 쇼궁을 만나겠나이다. 난 갈 땐 가더래도 쇼궁에게 꼭 간할 말이 있어요. 설사 이제 돌아가재도 동행해온 쯔시마도주를 앞세우고 가야 길치닥거리를 맡아줄게 아닌가요.》

오직 송희령이를 살려내야 한다는 그 한 생각에만 옴해있던 유정은 그 말에도 일리가 있는데다가 희령의 고집 또한 여간이 아닌지라 점차로 생각이 달라져 그의 요구에 응하고말았다.

유정이네의 호행을 받으며 그길로 후시미성안의 대궐로 들어간 송희령은 막부시위대장을 찾아 쇼궁과 상면시켜줄것을 요구했다.

시위대장으로부터 조선녀의승이 알현을 청해왔다는 보고를 받은 도꾸가와는 제켠에서 조급해나 시위대장을 질책하였다.

《하해같은 은공을 지니신 보살님이 왕래하셨는데 웬 통고냐? 냉큼 썩 모셔들이기나 할거지.》

이러고나서 도대체 웬 용무때문에 대낮도 아닌 밤중에 그가 찾아왔을가 하고 속짐작을 해보는데 어느새 벌써 시위대장이 조선녀의승을 쇼궁이 거처하는 상방의 내실로 안내하여 들어왔다.

《아, 수고롭게 오셨소, 의스님!》

웃으며 맞아주는 도꾸가와쇼궁에게 묵례를 하며 원탁 맞은편의 손님좌석에 가 선 송희령은 담담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쇼궁을 건너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소승은 소임을 다한지라 그만 고국으루 돌아갈가 하나이다.》

《혹시 막부의 대접이 푸성기여져 나무람이라도 드신게 아니시오? 어째 귀국행을 서두르시오?》

《만사엔 때가 있는것인즉 이밤이 소승에겐 교또를 떠야 할 때인가 봅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외뿔머리를 기웃거리던 도꾸가와는 군정보좌관을 소리쳐 찾더니 뭐라뭐라 지령을 주었다.

그러자 군정보좌관은 내실과 곁달린 옆방으로 돌아갔다오더니 비단보에 싼것을 송희령이앞에 내놓고 슬쩍 헤쳐보였다.

천냥에 달하는 황금덩이들이 드러났다.

《의스님께 사례금으로 드리는바이니 사양말고 받아주시오다.》

그러는것을 희령이 되밀어놓고 《이 금보다 더 중한 부탁이 있사오니 그거니 들어주시면 족하겠나이다.》하며 절절한 기색을 지어보였다.

《?!…》

천냥어치의 황금보다도 더 중한 부탁이라는 소리에 의혹과 긴장에 휩싸여있던 도꾸가와는 송희령이가 《현재 본국에 체류하고있는 조선사신들의 안전과 편의를 최상최대로 도모하고 그들의 의향을 무조건 존중해주사이다.》

이런 말을 꺼내자 맹랑해서 씩 웃더니 인차 외뿔머리를 끄덕거렸다.

《그건 념려마소다.》

《암암리에 막부수하의 모모한 사무라이들이 음험한 짓거리들을 저지르고있으니 경솔히 여기지 마시고 시급한 대책을 취하셔야 합니다. 만일에 조선사신들의 신상에 자그마한 변이라도 생기거나 용무실행이 방해당한다면 소승이 제거했던 원귀가 되살아나 귀공자는 물론 숱한 일본인들이 귀신병에 다시 접한다는것을 명심하소이다.》

이렇게 송희령이가 강잉하게 오금을 박아서야 도꾸가와는 속이 띠끔해져 심각히 새겨들었다.

유정은 송희령이가 순순히 귀국길에 오르는것이 다행스러운가위에도 그가 교또에 오래 지체하는것이 아무래도 안심치가 않아 별채에 들어있는 요시또모도주에게 사정을 대충 얘기해준 다음 그를 휘동하여 이밤으로 길을 떠나게 만들었다.

하여 이번엔 그들일행이 마차를 타고 랑화강부두로 나갔다.

한창 소음을 죽여가며 말을 달리는데 느닷없이 백손이가 생떼를 써대여 유정이 애를 먹었다.

《소인은 동포인 사신행차를 호위하느라 우야 예까지 온건데 일행을 그냥 둔채 나혼자만 훌쩍 갈수는 없소이다.》

《임자야 조선이주민의 자손이 아닌가. 이 험한 일본땅에 와서 조선사람의 슬기를 만방에 떨친 저 의로운 녀의승을 외톨로 위험한 길을 보낼수야 없지 않나. 그러니 다른 생각 말고 쯔시마까지만 호위해주라구.》

유정이가 이런 말로 강요하듯이 설복을 시켜서야 백손은 어지간히 숙어들었다.

《그렇다면 의스님을 안전한 곳까지 호행해드리고 돌아올테니 기다리소이다.》

일행이 랑화강포구에 이르렀을 때 마차에 송희령이와 유정이 그리고 요시또모를 남겨놓고 백손이와 도주의 시종이 강가로 내려가 배사공들이 숙식하는 주막을 찾아갔다.

객선을 부리는 왜인사공들한테 강을 건네줄것을 요구하자 그자들은 얼음이 덮여 밤운행을 못한다고 딱 잡아뗐다.

그러다가 백손이가 신표를 내보이면서 은냥을 한덩어리 꺼내 아낌없이 던져주자 방금까지 거절하던 사람같지 않게 입들이 헤벌어지더니 걸싸게 겹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서는것이였다.

백손이네가 앞서 잔교로 향하느라니 돛폭을 밤나비날개처럼 펼친 중틀이목선 한척이 삐걱삐걱 노질소리를 내며 뒤따라왔다.

얇은 얼음장들이 짱-짱- 튕겨나가며 아츠러운 소음을 냈다.

목선이 부두가에 설치된 잔교에 와 서고 선체와 잔교를 련결하는 널다리가 가로질러지자 요시또모가 먼저 시종의 부축을 받으며 널다리를 건느어 배에 오르고 뒤따라 백손이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지싯지싯 굼뜨게도 널다리를 건느었다.

그때까지도 강바람에 장삼자락을 나붓기며 뿌리내린듯이 서있는 송희령이를 유정이가 부축하여 건느이자고 다가서는데 지금껏 순순히 움직여온 그의 태도가 돌변하는것이였다.

《싫어요- 난 안 가겠나이다.》

《청목, 이건 뭐요? 애들처럼.》

유정이가 무뚝뚝해서 독촉을 했으나 송희령은 오연히 뻗치고 선채 움직일념을 안했다.

《대사님이 이렇듯 무정한분인줄은 예껏 몰랐군요.》

《어이 이리 다사하오, 청목?》

한꾸중 되게 던지고나서 유정은 무작정 송희령의 팔소매를 잡아 널다리쪽으로 끌었다.

그러자 희령이 그의 손길을 완강히 뿌리쳤다.

《안 가겠나이다. 대사님을 악귀의 소굴에 두고 소승만 떠나버릴수 없나이다.》

케가 글렀음을 안 유정은 희령을 휙 걷어안아들고 닁큼닁큼 널다리를 건넜다.

자기를 내려놓으라며 발버둥질을 치던 송희령이 혼신이 나른해져 유정의 가슴팍만 맥없이 줴박았다. 그러면서 그는 오열을 씹었다.

《도련님은 너무하셔요. 애젊어 때이르게 불륜한 사회의 희생물이 된 후 일구월심 그대만을 그리며 정다운 그 모습에서 힘을 얻어 수십년세월 풍상고초를 이겨왔는데 고생끝에 이루어진 우리의 상봉을 어쩌면 이리도 무참히 깨버리나이까? 난 살아도 도련님과 함께 살고 죽어도 도련님과 같이 죽겠나이다.》

《희령이, 진정하오, 내 어찌 그 심정을 모르겠소.》

유정은 애처롭게 떠는 송희령의 늘씬한 몸을 꽉 움켜안으며 목메여드는 소리로 설복을 했다.

《남달리 학식이 출중하고 견문이 넓은 녀인이 어째 왜소롭게 노는가 말이요? 희령이가 교또에 남아있으면 오히려 사신활동에 지장이 되기때문에 보내는거요. 왜놈들이 희령이를 조선사신의 수족을 얽매는 덫으로 써먹으려고 한단 말이요. 희령을 랍치했던 가또네 패당이 희령이의 생명을 가지고 나와 투전을 하려고 해. 내가 차마 희령일 죽게 만들수야 없잖소. 그래서 우유부단하느라면 나라일을 찌그러뜨리게 되거던. 이젠 알겠지? 희령이-》

《!…》

송희령은 오열에 떨며 눈물젖은 얼굴로 유정의 넓은 가슴팍을 허비기만 한다.

물결을 따라 흔들거리는 널다리를 다 건너 나루배에 올라선 유정은 두팔에 안고온 송희령을 선창에 내려놓고는 왜인사공한테 상선한 일행을 오사까부두까지 무사히 모셔가라고 근엄하게 오금을 줴박았다.

그러하고는 백손이와 희령이가 겨끔내기로 뭐라뭐라 웅절거리는 소리를 귀등으로 스치고 수백근이 실히 남을 길다란 널다리를 우쩍 들어 한쪽끝을 잔교턱에 박고 힘껏 밀었다.

움씰 선수를 들썩이던 목선이 강복판쪽으로 성큼히 미끄러져갔다.

그찰나 유정은 선체를 박차고 휘딱 허공을 날아넘어 잔교에 내려섰다.

그러고는 널다리를 제자리에 놓고 돌아서서 나루배가 떠가는 강물쪽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달빛에 어슴푸레 드러난 선미에선 자락퍼진 장삼차림으로 해 형체가 표나는 녀승이 억벋치고 서서 잔교쪽을 향해 손을 휘흔들고있었다.

녀승의 애절한 웨침소리가 강바람에 실려 간간이 들려왔다.

《도련님!- 몸조심하오이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부디…》

(희령이!- 우리 나라로 무사히 돌아가오-)

만리타국 사신행차의 길에서 원쑤놈들의 흉탄을 맞고 쓰러져 숨지면 영영 다시는 만나지 못할수도 있는 련인을 묵묵히 바래우며 유정은 그가 복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백손이는 송희령이를 쯔시마에까지 무사히 호행해주고 보름만에 교또로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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