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왜땅에 나타난 관음보살
10
송희령은 요시또모도주의 호행속에 배타고 바다를 건는 다음 마차를 타고 아흐레만에 오사까까지 온 후 다시금 배를 타고 랑화강을 거슬러올라 쇼궁행차가 머무른다는 교또에 도착하였다.
요시또모가 쯔시마의 유능한 녀의승을 데리고 온다고 막부에다가 미리 선통을 했건만 부두에 마중나와있는 관원은 하나도 없었다.
송희령이와 요시또모가 오후반나절쯤 지나 후시미성에 걸어들어가 파수장을 거쳐 교또태수에게 상주한 다음 막부에다가 재차 통고를 했는데도 대궐안의 반응이 미미스럽기가 그지없었다.
이미전부터 간사하고 변덕스러운 왜인들의 기질을 파악한지라 송희령은 덤덤해서 내응이 있기를 기다렸다.
희령이 내색은 안했건만 그의 거동과 인상을 보고 기분이 상한것을 눈치챈 요시또모는 제켠에서 먼저 바빠맞아 신발바닥이 닳아빠지도록 이곳저곳으로 들락거리더니 쇼궁을 보좌한다는 한 장관을 이끌고 나왔다.
일각모를 위엄있게 눌러쓰고 비단도포를 후렁하게 걸친 장관은 씁쓸해서 아무 말도 없이 먹베장삼을 걸치고 먹베수건을 쓴 일본의 범상한 비구니차림인 송희령을 한번 힐끗 치훑어보고는 그들을 뒤에 달고 도포자락을 찰찰 끌며 별채로 향하는것이였다.
대궐본채곁에 외따로 돌아앉은 토기와를 얹은 별채안으로 들어가니 누비돗자리를 깐 아담한 방안에 담요를 반쯤 덮고 죽은듯이 누워있는 외뿔머리사내애가 보였다.
나이는 열서너살 돼보이는데 원래 소약한 체질인데다가 병환까지 덧치다나니 그 꼴이 봐주지 못할 정도로 처절했다.
장관은 희령에게 인사불성이 돼버린 사내애를 눈짓해보이더니 희령이만 남겨두고는 요시또모를 데리고 나가버리는것이였다.
별스레 설뚱해하는 막부 장관의 태도에서 희령은 그들이 이미 귀공자의 명이 기울어진것으로 여겨서인지는 모르나 여하튼간에 왜국의 막부가 자기의 출현을 별로 시답지 않아한다는것을 알고 감정이 상하여 그 자리에서 돌아서고말려다가 쯔시마를 떠나올 때부터 품고온 목적이 있는지라 애써 고까움을 누르고 병자에게로 다가섰다.
사실 그때 막부의 우두머리들은 경향각처에서 제노라 하는 명의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귀공자의 병을 고치려고 수십명씩이나 후시미성을 찾아들었다가 아무런 용도 못쓰고 휘주근해서 물러간 뒤인지라 쯔시마도주가 데리고온 녀의승도 그러루한 돌팔이의원으로 여기며 왔던김에 환자나 한번 보고가라는 심산이였다.
더구나 한갖 계집에 불과한 녀승이 존귀한 쇼궁 자제의 귀체에 손을 대는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태도가 분명했다.
시위군사 여럿이 삼엄한 감시를 편 속에서 송희령은 바랑을 벗어놓고 귀공자의 병을 진찰했다.
의원들이 병자치료에 접할 때면 의례히 그러하듯이 그는 귀공자의 손목과 가슴언저리의 맥박부터 짚어봤다. 한참새에 수십번나마 이어져야 할 심장박동이 금시 멎을듯이 서너번 간간스레 손가락을 통해 마쳐왔다. 원기가 시시각각으로 완전히 꺼져들고있었다.
자칫하면 목숨이 끊기울 경각의 상태였다.
송희령은 병자의 여린 가슴팍을 세괃게 련거퍼 눌러 호흡을 돋군 다음 그의 혀도 끄집어내여 살펴보고 눈거죽도 까뒤집어봤다.
귀공자는 오장륙부가 순편하고 성한 상태인데 그야말로 교묘한 원인으로 해 신경발작에 시달려 기가 삭아들었었다.
송희령은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긴장된 속에서 몇식경쯤 온 정신을 쏟아부어 묘령의 병원균을 예리한 촉감과 지능으로 추적하느라고 이마에 식은땀이 홍건히 내맺혔다.
드디여 그는 귀공자의 육신을 망그러뜨린 병의 근원을 밝혀냈다.
왜인들이 귀신의 조화처럼 여기는 그 괴상한 병이 다름아닌 항간에서 상문병으로 일러오는 무명무형의 병이였던것이다. 상문병에 걸린 환자들대개가 상가집에 갔댔거나 또는 그러한 사람과 접촉한 사람들인데 그 까닭을 구태여 밝힌다면 사망자의 체내에서 발산한 괴이한 균(현대에 와서는 그것이 산화린성분이라는게 밝혀졌음. )이 전염되여 신체내에서 음기를 확산하며 양기를 제압하기때문이였다.
상문병에 걸린 환자는 그의 인체에 침습된 기균을 제거시켜야만 원상태를 회복하여 생명을 부활시킬수가 있었다.
삼남일대의 민간인들을 치료해오는 과정에 중태에 빠졌던 상문병환자들도 여럿이나 회복시켜준 경험이 있던지라 송희령은 신심을 가지고 귀공자의 처방에로 이행하려다가 손길이 굳어지며 주춤거렸다.
현재 자기의 손에 명운을 맡기고 기신없이 누워앓는 나어린 병자가 어느 범상한 왜인이 아니라 장차로 쇼궁에게서 막부의 실권을 넘겨받고 일본을
통치해나갈 왜나라 쇼궁의 자제이며 그로 해서 언젠가는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항시 칼을 벼리고있는 사악스러운 불구대천의 원쑤 왜놈들을 휘거느리고
조선으로 쳐들어올 정이대
송희령은
송희령은 차라리 조선의술의 본때를 보여 왜놈들을 정신 번쩍들게 만들어야겠다는 의분심이 북받쳤다.
그러는데 요시또모가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수위서는 시위대군사들과 뭐라뭐라 몇마디 쑥덕거리고나서 송희령에게로 다가왔다.
요시또모는 희령의 기색을 지꿎게 더듬더니 애절한 기대가 내비친 외씨같은 눈을 삼빡거리며 물었다.
《어떻소, 의승? 살려낼 가망이 있는가 말이요.》
《이미 진단도 확정됐고 그에 따르는 처방전도 내렸으니 가망이 있소이다.》
송희령의 심상한 대꾸에 요시또모는 죽었던 제 애비가 땅속에서 환생되여 나오기라도 한듯 환성을 내지르면서 좋아했다.
《과시 의스님은 하늘이 낸 보살님이시오!》
《안됐사오만 치료에 방해가 되여 그러니 도주님은 나가계셔요.》
그러자 요시또모는 군말 못하고 물러갔다.
송희령은 우선 바랑을 풀고 그안에서 향나무가루며 복사씨며 역삼씨며 약쑥 같은것을 따로 싼 봉지 여러개를 꺼냈다.
그것들을 시중드는 왜인한테 주면서 반동이쯤 되는 물에 풀어 끓여오라고 했다.
송희령이 바랑을 되꿍져놓고 한숨 돌리는데 왜인이 김이 물물나는 물소랭이를 들고 바삐 나타났다.
송희령은 거무스름한 색갈에 쌉쓸한 냄새가 나는 그 약물을 먼저 한사발정도 퍼 숟가락으로 환자의 입안에 떠넣어 먹인 다음 그의 옷을 벗기고 꼭두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약물로 목욕시키다싶이 질쩍하게 씻어냈다.
그러고는 환자의 옷을 되입힌 후 젖은 수건과 약물소랭이를 왜인한테 넘겨주었다.
《이젠 됐소이다. 아마 초저녁쯤 되여선 차도가 생기리다.》
시위군사들의 감시를 받으며 대궐을 나선 송희령은 민가쪽에 나앉은 초라한 절간으로 가 려장을 풀었다. 그는 겹쌓인 로독과 초긴장으로 하여 지칠대로 지친 몸이 물먹은 솜마냥 나른해와 대충 끼를 때고는 깊은 잠에 들어버렸다.
그 시각 대궐의 으리으리하게 꾸려진 상방안에서는 도꾸가와쇼궁이 침울한 안색으로 앉아 정사를 보고있었다.
일찌기 세상물정을 틔워주느라고 먼 교또에까지 데리고 왔던 귀공자가 원인모를 병에 걸려 쓰러진 후부터 도꾸가와는 심기가 말이 아니였다. 본래 정실부인의 소생인데다가 여러 아들중에서도 제일로 총명하고 충실한 히데다다를 장차 막부의 장래를 떠맡길 당자로 정하고 애중히 여기던 도꾸가와로선 그의 급작스러운 병고가 큰 타격이였으나 애써 괴로움을 이겨내며 정사에 전념했다.
헌데 의외의 일이 또 발생하여 재차 도꾸가와를 괴롭혔다.
어제아침 쇼궁의 침전에 찾아들어 문안을 한 군정보좌관이 엉뚱한 문제를 상정시켜 도꾸가와를 되우 실망시켰는데 그 내용인즉은 귀공자의 급살병을
막부가 근간에 당한 가장 큰 화난으로 여긴 군정보좌관이 경향각처에서 제나름대로의 신통력을 지녔다는 의원들을 후시미성으로 불러들이였으나 그들이
귀공자의 병명은 물론이거니와 그 진상조차도 밝히지 못하고 물러갔다는것이다. 일루의 희망마저 허물리운 군정보좌관은 자실자망하여
기가 막혀 한참 혀를 털고난 도꾸가와는 침중해서 군정보좌관한테 오늘 아침조회에 막부의 군신들은 물론 근처의 태수들까지도 다 불러들이라는 령을 내렸다.
그런데 쉬이 물러가지를 않고 주밋거리던 군정보좌관이 그 자리에 넙적 엎드리더니 애원을 하는것이였다.
《거룩하신 쇼궁사마, 솔직히 아뢰이는바 귀공자의 명은 이미 기울었소이다. 그의 사망은 국상에 못지 않는 변고이니 제발 업무를 탈하고 별당의 내실에서 안정을 하옵소서.》
도꾸가와는 눈물이 그렁히 내맺히는 눈으로 충의지신인 군정보좌관을 애뿌듯이 여겨보다가 머리를 저었다.
《난 8도 66주를 옳바로 이끌어가야 할 나라의 쇼궁이요. 일본의 운명을 량어깨에 걸머멘 쇼궁이 제 아들이 죽어간다고 해 어찌 정사를 파할수가 있나 말이요.》
《히데다다는 쇼궁사마의 아들이기 전에 본국의 장래를 떠안았던 귀공자옵니다.》
《그는 이 나라의 평범한 사내애요- 그 애가 설사 죽었다 해도 난 국사를 버릴수 없소. 조선과의 통상교류는 현재 일본의 최대국사이니 조선사신도 보내지 말고 요시또모도 처벌해선 안되오. 만약 이걸 어기는 날엔 군령으로 가차없이 다스릴줄 아오.》
도꾸가와는 그렇게 강다짐을 하여 군정보좌관을 내보냈다.
어전모임이 열릴 조회장으로 향하던 길에 도꾸가와는 별채에 들려 병석에 쓰러져 숨이 거의나 꺼진 히데다다를 애처롭게 굽어보다가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쓸어만졌다.
(내가 널 조선사신을 맞으려고 교또에 데리고 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병마에 접하진 않았을텐데. 용서해다오, 히데다다야. 이 아빈 본국의 번성을 위해 달리할수 없었단다.)
사실 도꾸가와는 조선사신과 상면이 잦아질수록 스스로
그래서 히데다다와 심중의 고별을 하고 나와 급령을 받고 모여든
오후 반나절이 지났을 때였다,
도꾸가와가 명운이 박복한 귀공자로 해 복장이 터지는듯 한 아픔을 조선사신을 휘여잡을 생각으로 잊어가는데 군정보좌관이 화색이 된채 뛰여들었다.
《쇼궁사마, 귀공자께서 소생했소이다!》
군정보좌관의 웨침소리를 귀결에 흘려듣던 도꾸가와가 저 사람이 귀공자가 살아나기를 오죽이나 바랐으면 그 소망이 현실로 변하는 환영에 사로잡혔으랴 하는 속뜨거운 느낌에 눈굽을 적시는데 군정보좌관은 절구통같은 몸뚱이를 춰흔들면서 한층 더 사기를 올린다.
《귀공자님이 병을 털고 일어나 대지를 활보하옵니다!》
《다 죽었던 그 애가 어떻게 세상을 횡행한단 말이요?》
도꾸가와는 피흐르는 전장에서 승전을 알리는 기폭의 펄럭임인양 시야에서 희끗거리는 군정보좌관의 도포자락에 멍청해지는 시선을 못박으며 되물었다.
《요시또모가 데려온 녀의승이 단 한손질로 귀공자님의 기를 부활시켰사옵니다. 녀의승이 치료를 끝내기 바쁘게 숨결을 되찾은 귀공자님은 서너식경쯤 지나자 요를 차버리고 일어나더니 글쎄 배고프다면서 먹을것부터 찾는게 아니겠소이까.》
군정보좌관의 숨넘어갈듯 한 설명에 훈수라도 하듯이 옻칠을 광택나게 한 널판문이 활짝 열리더니 어린 히데다다가 각삭거리며 들어섰다.
수닭의 꼬리털같은 머리꽁지를 나붓대며 해싯해싯 웃음을 풍기는 히데다다를 저게 혹시 사람으로 둔갑한 귀신이 아닌가 해 내리훑고 건너훑고 하던 도꾸가와는 벽에 벗어걸었던 장검을 홱 나꾸채 들고 시퍼런 칼날로 그의 머리주변 허공을 휘썰어댔다.
칼날이 제 살을 스치며 윙윙 휘파람소리를 대자 히데다다는 금시 정색해져 반들이마를 조아리며 《하잇- 하잇-》하고 사무라이식군례를 표하더니 옆구리에서 단검을 뽑아들고 《얏, 얏, 얏.》하며 제법 호기차게 기합소리를 내면서 맞대들이를 했다.
《요로시!- 요로시!-》
평시에 심혈을 기울여 배양시켜온 사무라이의 도법이 히데다다에게서 그대로 나타나는것을 보고야 도꾸가와는 진실로 제 아들이 살아있다는게 믿어져 장검을 줴던지고 털투성이가슴팍을 들썩이며 웃어댔다. 도꾸가와가 유감없는 태도를 짓자 히데다다는 단검을 칼집에 꽂고 그의 품에 담쑥 안겨들었다.
《아버님!-》
《정녕 생시의 내 귀한 아들이로다!》
귀공자의 여린 어깨를 한참이나 다독여주며 기쁨을 금치 못해하던 도꾸가와는 군정보좌관을 향해 돌아서며 엄지손가락을 쭉 펴 내흔들었다.
《쯔시마에서 온 녀의승은 령험스러운 명의요! 아미타불께서 이 땅에 내려보낸 관세음보살이 분명하단 말이요.》
그때부터 별궁의 분위기는 휘딱 돌변했다.
귀공자의 사망이라는 불의지변으로 하여 침울한 공기속에서 쇼궁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제 직분을 수행하던 장관들과 시위군사들은 물론 시종들까지도 끼리끼리 허리띠를 풀어헤치고 호호탕탕 박장대소를 해대며 명절이라도 맞은듯이 사방사처로 호들갑스럽게 오갔고 그 여파가 성밖에도 내미쳐 교또거리의 말단관원들과 지어는 쟁인바치며 게이샤들까지도 내놓고 희희락락거렸다.
그밤중으로 막부에 대한 충의지심을 일껏 발휘한 쯔시마도주에게는 한개 군의 식읍을 더 할당하고 녀의승은 최상최대의 귀빈으로 맞으며 천냥의 금을 하사한다는 쇼궁의 군령이 하달됐다.
빈곤한 주민들이 모여들어 불공상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신세타령이나 늘어대는 성밖 길거리의 한미한 절에서 깡보리밥 한술로 대충 빈속을 달래이고 풋잠에 들었던 송희령은 문밖 마당에서 급작스럽게 일어난 소동에 놀라 잠을 깨였다.
웬 왜인사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이어 절간대문이 급스레 여닫기더니 막부군의 중간급장수가 관노 몇을 거느리고 들어서는것이였다.
잠기가 채 가셔지질 않아 어정쩡한 얼굴로 밖을 내다보는 희령이한테 막부군 장수가 공손히 죤마께를 수그리며 아뢰였다.
《관음보살님께 문안드리오. 보살님을 별당안으로 들이라는 쇼궁의 령을 받고 나왔소이다. 여봐라-》
장수가 나직이 호령을 내리자 개꼬리같은 외태머리를 뒤통수에 감아붙이고 먹베수건을 두른 관노배들이 사인교로 된 가마를 퇴마루아래에 가져다놓고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녀의승이 기거보행하기를 기다렸다.
불과 한겻전까지만도 자기를 칠팔월삼복철에 화로불대하듯 하던 왜인들이 급작스레 태도를 달리하는것을 보고 귀공자의 병증세가 호전됐다는것을 가늠한 송희령은 자연히 의기가 양양해졌다. 그는 왜인들의 얄망스러운 호의를 물리치고말려다가 일단 판이 벌어진김에 기껏 위세를 떨쳐 왜국의 막부를 납작하게 주물러놓아 조선사신들의 활동에 유익한 조건을 마련하기로 마음먹고 바랑을 메고나가 천연스럽게 가마에 올랐다.
대문밖에 나서니 막부군의 기마군사 열댓이 무장을 갖추고 말을 탄채 줄느런히 호행을 위해 대령하고있었다.
《가자- 관음보살님께서 불편이 없도록 보행을 조심하고 일체 행인을 금하라-》
막부군 장수가 군마에 올라앉아 일행에게 엄히 령을 내린 후 행렬의 맨 앞장에서 솔선 길을 잡아나갔다. 그뒤에서 교군들이 조심스럽게 가마를 떠메고 따르고 또 그 좌우와 후위로는 창칼로 무장한 기마군사들이 삼엄한 경계진을 펴며 따랐다.
거리를 꽉 메우며 오가던 형형색색의 왜인들이 막부군의 호행속에 가마를 타고 가는 미모의 녀스님을 세상에 이런 경천동지할 일도 있는가 하는 놀라움에 퀭해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송희령은 후시미성안의 아늑한 산골안 별당에 부리워졌다. 그는 유자나무가 우거진데다가 맑은 골개울물이 졸졸 소리내며 흐르는 더없이 경치좋고 후생시설이 그쯘히 갖추어진 그곳에서 거처하며 귀빈대접을 받았다.
도꾸가와가 특혜를 베풀어 송희령을 별도로 들인 뾰족토기지붕을 쓴 별당의 곁채에서는 이미전부터 한 왜녀가 시종 하나를 두고 살아오고있었다.
나이가 스무살이 채 못됐을 그 애젊은 왜인처녀는 얼굴이 한봄철에 갓 피여난 복사꽃같고 몸매는 강변의 버들가지처럼 늘씬하면서도 회친회친한 일류급의 경국지색이였다.
송희령은 별당에 거처하는 동안 바람을 쐬러 밖에 나들 때면 인물맵시가 절륜한 그 왜인처녀와 후원에 있는 련못가에서 종종 길을 어기군 했다.
왜인처녀는 송희령이 곁을 지나칠 때마다 까닭없이 한참씩 주밋거리며 무슨 말인가 건늬고싶어하는 기색이였다.
희령은 그와 한번 속털어놓고 얘기를 나누려다가 바로 그날 낮에 갑자기 대궐에서 쇼궁이 차린 연회에 초청되여가는통에 후일로 미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