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왜땅에 나타난 관음보살

9

 

초저녁때 오팔이를 찾으려고 객관을 나섰던 유정은 백손이가 날저물었다면서 붙잡는데다가 홍창해와 계명이까지 동행하겠다고 뒤따라나서기에 자기가 그냥 고집을 부리며는 소동만 커지겠기에 할수없이 되들어가 잠자리에 누웠다가 아무래도 오팔이 일이 걱정스러워 젊은이들이 곁방에서 다 곯아떨어진 자정무렵에 슬며시 일어나 승복을 내리워 입고 혼자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겨울밤의 강추위가 일격에 그를 얼구어버리려는듯 하늬바람에다가 눈가루까지 휘말아 앞세우고 위잉- 위잉- 스산하게 덮쳐들었다.

솜을 넣고 누빈 겹내의를 승복안에 껴입었는데도 랭기가 새여들어 바늘끝같이 속속 살을 찔러대는지라 저절로 량어깨가 옹송그려졌다.

유정은 이틀어간 자리에 누워앓느라 기력이 약해진 신체가 바람질에 넘어갈듯이 휘청거리는것을 가까스로 가누어잡으며 저벅저벅 어둠을 박차고 나갔다.

유정은 오팔이가 우뚤거리는 제 성격을 못이겨 일시 객관을 뛰쳐나가긴 했어도 제 사람들을 버리고 달아날 인간은 아니라는 믿음을 안고있었기에 그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교외 어디바루쯤에 나가있을것이라고 단정하고 쉽사리 찾아나선것이였다.

객관근처의 으슥한 골목으로부터 시작하여 오팔이가 몸을 붙일만 한 거처지들을 이곳저곳 샅샅이 훑어보고난 유정은 점차 멀리로 폭을 넓혀나갔다.

오팔이의 행적을 찾느라고 경황없이 여기저기를 헤매이는 속에서도 유정은 그 어떤 미지의 형체가 자기 주변을 배회하고있는것을 감촉하고 등골이 써늘해졌다.

가뜩이나 조선사신의 생명을 노리는 원쑤놈들이 득실거리는 낯설은 타지에서 혼자 밤길을 헤매다가 꼭 어떤 변사를 당할것만 같아 속이 한줌으로 줄어들었으나 사람이 늙으면 이렇게 겁이 많아지는구나 하는 허거픈 생각으로 자신을 탓하며 애써 용기를 가다듬었다.

그가 애탕산과 랑화강부두쪽으로 길이 갈라지는 성밖초입구의 객주집에 등잔불이 켜있길래 말을 좀 물으려고 문을 두드리고 들려보니 장돌뱅이차림인 중년기의 왜인사내가 술상을 마주하고앉아 밤술을 마시며 주인로파와 말추렴을 벌리고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은냥깨나 주머니에 차고 다닐 부유층의 사내인데 지체에 어울리지 않게 허름한 평복차림을 한것이 별로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 왜인사내는 유정이가 주인을 부르며 들어서자 제켠에서 먼저 알은체를 하더니 고뇌의 흔적이 력연한 그를 아래목으로 잡아끌어 앉히고는 음식을 친절히 권하는것이였다.

《도승께서 로심초사가 과하신 모양이온데 이 뜨스하고 기름진 밤참으로 공복을 채우시고 기력을 돋구소이다.》

《소승은 밥상을 마주할 경황도 못되거니와 주머니안도 비였으니 권하지 마소이다. 엎어진김에 쉬여간다고 이왕지사 들렸던김에 언몸이나 좀 녹이고 가겠소이다.》

유정이가 유선한 태도로 나오자 왜인사내는 슬기에 뻗개진 눈으로 건너다보며 그냥 말시비질을 해왔다.

《이웃나라 사신인 도승께선 어인 일로 밤길에 나섰소이까?》

《사람 하나를 찾자 그럽니다.》

《어떤 사람이외까?》

《내 제잔데 버려서는 아니될 인간이웨다.》

《혹시 그가 체통이 황소같은 상투머리사내는 아니온지요?》

《옳소이다. 그를 봤소이까?》

《보다마다요. 신아침부터 종일 랑화강부두에서 사공과 웬일로 해서인지 주먹다툼질을 해대더니 오후반나절쯤 되여서는 포교들을 피해 애탕산의 도깨비골쪽으로 줄행랑을 쳐댑디다.》

《도깨비골쪽으로?》

유정은 요전날 시나지로태장로와 함께 광륭사에 다녀오던 길에서 얼핏 지나친 그곳의 지형지물이 피끗 떠올랐다. 수림이 우거져 불땔 나무가 수두룩하고 자연동굴이 많은 산세를 보아 오팔이가 십분 그리로가 림시로 은거했올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정은 몸이 어지간히 녹자 알려춰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인사치 테로 남기고는 객주집을 나섰다.

사위가 칠칠혹야에 묻힌지라 개울에 뒤덮인 얼음판이 발산하는 어룡어릉한 빛으로 겨우 방향을 가리며 허위단심 들길을 축내고 애탕산어구에 들어서던 유정은 동굴이 있는 산등으로 질러올라갔다.

도읍의 거리는 아직 눈이 그리 두럽게는 덮이지 않았는데 이곳 애탕 산은 해발고가 높고 랭설북풍이 류달리 세차서인지 설달그몸을 앞둔 때인데도 눈이 한길이나 쌓여 해볕에 녹고 얼고 하면서 전탕 얼음산으로 변해버린지라 험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는 도깨비골짜기가 시꺼먼 미궁처럼 굽어보이는 산릉을 발자국이 난 외통길을 따라 조심히 톺아나가다가 갑자기 주변에서 불덩이들이 무수히 떠오르는통에 깜짝 놀라며 서버렸다.

천뭉치에 솔광기름을 먹여 켜든 홰불같은 불뭉치들인데 그것을 추켜든 두억시니같은 형체들이 우엉- 우엉- 하고 괴상한 소래기를 지르

면서 가로세로 횡행을 해댄다.

(어허참, 도깨비골이라더니 진짜로 도깨비들이 나타났군그래. )

유정의 잔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옛날에 어떤 한 가난맹이농군이 밤도깨비들이 장난치는 소굴에 모르고 들어갔다가 뜻밖의 횡재를 하는통에 벼락부자가 됐다는 고담이 느닷없이 떠올라 혹시 자기도 이밤에 도깨비들이 벼림질하며 놀던 금붙이라도 한짐 얻어갈지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빠져들던 유정은 난데없이 코앞의 나무밑에서 시꺼먼 말승냥이같은 형체가 벌떡 일어나며 으왕- 하고 괴상한 소래기로 짖어대는 바람에 《앗-》 하며 흠칫 놀라다가 몸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러다가 발이 얼음판을 헛짚고 미끄러지는통에 허양 나넘어졌다.

그는 넘어진채로 얼음이 덮인 산둥아래로 미끄러져내리다가 아찔한 낭떠러지아래로 굴러떨어지고말았다.

유정은 어렴풋이 흐려지는 의식속에서 《꽈당-》하는 요란스러운 폭음과 잇달아 굉장하게 큰 무슨 물체들이 우당탕 통타당 산꼭대기에서 굴러내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유정이가 후에 안바에 의하면 그의 목숨을 노린 왜놈들이 의도적으로 그를 죽음의 골안으로 유인해다가 애탕산꼭대기에 사철 응크리고있는 얼음산을 폭파하였고 그로 해서 그가 쓰러져있는 골짜기에 얼음덩어리들이 무수히 굴러내렸었다.

유정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커다란 얼음덩이들이 그를 휘덮고 무지를 이룬 뒤였다.

오늘 그의 운수가 아마도 하늘에 닿았댔는지 천만다행히도 유정은 집채같은 얼음덩이 두개가 서로 맞부딪쳐 멎어서며 삼각으로 기대여 생겨난 소여몰칸만 한 공간속에 누워있었다. 그러다나니 모가 예리하면서도 둔탁한 얼음덩이에 죽탕쳐지지 않았던것이다.

유정이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나 싼득하고 미끄러운 얼음덩어리들을 어루더듬었으나 도무지 나갈 곳이 없었다.

가뜩이나 추운 겨올밤인데다가 차거운 얼음이 휘덮인지라 심한 랭기가 온몸을 엄습했다. 살이 얼어들자 육신이 가드라들며 안면근육과 손발에서 점차 감각이 없어졌다. 차츰 공기도 희박해져 숨이 막혀들었다.

(내가 오늘 이렇게 죽고마는구나. )

불시에 이런 느낌이 들며 심정이 처량해졌다,

사람이 인간세상에 태여났다가 언젠가 한번은 죽기마련이건마는 열혈 장부로서 나라위한 일에 용약 나섰다가 초지의 목적도 이루지 못한채 총포탄이 우박치는 혈전장이 아니라 타국의 외진 험산속에서 허무맹랑하게 목숨을 잃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막 저려들며 절로 눈물이 났다.

일루의 희망마저 잃어버린 유정은 다시금 기맥을 잃고 나른해서 드러눕고말았다.

생의 종착점에 다달은 그는 이날껏 자신이 걸어온 행적을 애뿌듯이 더듬었다. 어릴 때 너무도 일찌기 여왼 부모들과 그 이후 애숭이시절에 괴로운 감정만을 안고 결별한 조부모들의 잊지 못할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려보다가는 세월의 흐름을 따르면서 불가에 몸을 의탁한 후 수십년간 경향각처를 편답하며 부처님의 자비의 넋을 구가하여온 만단사연의 그 나날들을 돌이켜보았다. 그러다가는 또 조국땅에 원한의 피가 사품쳐흐르던 임진왜란때에로 불쑥 상념을 달리여 군마를 타고 전장을 종횡무진하면서 아수라의 무리들을 삼대베듯이 쳐죽이고 나라와 백성들을 지켜낸 그 무비의 공훈을 긍지롭게 추억하기도 했다.

유정의 눈에 삼삼히 어려오며 생동한 화폭으로 펼쳐지던 자신의 한생이 시야에서 가물가물 흐려졌다.

그의 명이 실지로 사그라들고있었던것이다.

애오라지 운명에 자신을 맡기고 죽음을 기다리던 유정은 마지막 본능적인 거동으로 얼음덩이들을 파헤칠 어떤 쇠붙이나 돌쪼각이라도 있지 않을가 하여 제 잔등밑의 땅바닥을 손으로 훑어보다가 나중엔 제 몸까지 어루만져보았다. 그러던 그의 손끝에 무엇인가 뾰조름한것이 마쳐왔다. 저고리 안주머니에 간수했던 소나무잎이였다.

조국을 떠나기 전에 묘향산의 서산대사가 따서 보내준 그 소나무잎을 어름어름 꺼내 볼에 대고 비비느라니 뭉클 향수가 살아나며 소나무 푸르싱싱한 조국땅에서 함께 생활하여온, 다시는 만날수 없게 된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의식이 흐리마리해지던 그의 귀가에서 문득 가랑가랑 울음기가 섞인 계집애의 말소리가 울리였다.

《스님, 쉰밥이 있으면 좀 주어요.》

그 소리에 엔참, 하필이면 사람 못 먹을 쉰밥을 찾는거냐 하고 속으

로 대꾸를 하는 유정의 시야에는 동냥쪽박을 든 류랑아들의 람루한 모

습이 비껴들었다.

조국을 떠나오기 전에 한성안에서 만났던 임진왜란때 량부모를 다 잃

고 정처없이 떠돌며 빌어먹고 산다는 불쌍힌 오누이 애들이였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 피골이 상접해지고 누데기옷을 걸쳐 꾀죄죄하기

가 그지없는 그 애들은 땅바닥에 눈을 감고 쓰러져있는 유정에게로 다

가와 머리맡에 쭈그리고앉더니 그의 팔굽을 잡아혼든다.

《스님, 어서 일어나소이다. 스님이 잘못되면 우린 어떻게 사나이

까?》

그 애끊는 웨침소리가 다르릉 귀청을 울리는 순간 유정은 소스라치

며 눈을 버쩍 뜨었다.

(이게 무슨 꼴이람? 여기서 죽어버리면 모든것이 끝장이 아닌가. 내

기어코 열백번을 다시 살아나서라도 왜국의 내정을 세세건건이 알아내

가지고 돌아가 대응책을 옳바로 세우게 해야·한다. 만약 그렇게 못한다

면 조국땅엔 임진왜란때와 같은 참화가 또다시 들이닥치고 그로 인해

많은 떼죽음과 고아들이 생겨날것이다. 어떻게 하나 우리 나라와 백성

들이 당할 불행을 미연에 막아야 한다. )

불의의 사태에 잔뜩 기가 스러져서 나약하게 자포자기하여 맥을 놓

고 순순히 죽음만 기다리는 자신을 탓하던 유정은 강잉하게 의지를 도

사려먹었다.

더군다나 그를 자각시킨것은 최근 난파에 처한 쪽배의 각각나름의

사공들처럼 사분오렬되여 하는일없이 입론질로 허송세월이나 하는 사

신행차를 자기가 휘걷어잡아 이끌어나가지 못하면 종. 내 암초에 부딪쳐

산산쪼각난 배처럼 행차가 뿔뿔이 흩어지고말것이며 그래서 나라대업

이 종내 망그러지고말것이라는 생각이였다.

그는 자기가 지금처럼 가만있다가는 진짜로 얼마 못 가 얼어죽고말

며 그러는것은 스스로가 제 직분을 줴버리는 배신행위나 다를바 없다

는 생각에 휘뜩 각성을 하고 처음에는 손발을 엇바꾸어 주무르다가 다

음엔 오륙을 이리저리로 움직이였다.

한참 그러하니 몸이 달아오르면서 손발을 놀리기가 한결 편해지고 동

상도 그치는것 같았다.

유정은 저으기 신심이 생겼다. 그는 아무때건 구원자가 나타나 밖에

서 얼음덩이들을 치워줄 때까지 오직 운동으로써 추위를 이겨낼 작정을 하고 쉬임없이 몸놀림을 해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유정이가 팔힘, 다리힘을 엇바꿔쓰느라니 꽁꽁 얼어들었던 몸이 어지간히 풀리였다. 잔등이며 얼굴에서 땀이 내돋 을 때쯤에 얼음무지밖에서 쏭쏭대는 왜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수염쟁이중이 이안에 묻힌게 적실한가?》

《여부가 있소이까. 소인이 두눈으로 직접 보았소이다.》

《흠, 발칙한 중놈이 본국에까지 기여들어 일본의 리권을 침해하며 잘코사니처럼 놀아대더니 천벌을 받았네그려.》

《제아무리 번번나는 도숭이래도 이 밤도깨비의 수완에는 꼼짝 못하 을지요.》

《네가 이번에 큰 공을 세웠다. 내 가시라사마께 보하여 너의 료미를 늘이도록 하겠다.》

짓까부는 말소리가 끊기더니 이어 얼음덩이들을 치우는 소리가 났다.

《고마놈이 동태귀신이 되여 콱 썩어지도록 그냥 놔두옵시다.》

《아니다. 시체를 가져다가 가시라사마께 확인을 시켜야 우리의 공이 인정을 받을수 있다.》

쿵덩거리는 소음과 아울러 얼음덩이들이 하나둘 치워지는지 희박해졌던 공기가 점차 푼푼해지며 숨쉬기가 헐했다. ·

유정은 차라리 일이 이렇게 번진김에 놈들을 혼쌀내우기로 작정하고 맨 안락에 엇각지게 놓인 집채같은 얼음덩이를 량팔로 밀며 욱- 욱- 연방 힘을 써대여 온몸에서 땀발이 일도록 했다.

그가 안쪽에서 내’밀어치는 가위에 밖에서 놈들이 끌어당겨제끼는 힘이 묘하게도 합쳐지며 커다란 얼음덩이가 덜썩쿵 저쪽으로 굴러났다.

그러자 새벽녘의 희미한 려명빛에 홰불빛이 겹쳐들면서 유정의 전신이 확 드러났다.

그 순간 밖에서 얼음무지를 달라붙어 헤치던 네덧놈의 왜인이 경악을 하며 굳어졌다.

아직 채 치워지지 않은 한쪽 얼음덩이에 상반신을 반쯤 기대인채 거연히 웅좌를 틀고앉은 조선사신이 널다랗게 펼친 손바닥으로 바람을 활활 부쳐대는데 그의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비물 흐르듯이 굴러내리고있었던것이다

얼이 빠져가지고 천신과도 같은 그 모습을 퀭해서 바라보던 놈들은 한참만에야 제정신이 들어 황급히 도망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거쉰 호령이 동터오는 새벽하늘가를 쩌렁 울리였다.

《게 섰거라-》

그러자 놈들은 몽둥이후림질을 당한 이리처럼 그 자리에 음짝 못하고 서서 화들화들 떨기만 했다.

그때 엉치를 툭톡 털고 일어나 풋내나는 놈들에게로 경정경정 다가간 유정이 한놈씩 상통을 들여다보다가 객주집에서 만났던 장돌맹이차 림인 왜인사내를 알아보고는 그자의 목덜미를 움켜잡아 제앞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네가 의도적으로 날 이 도깨비골안으로 몰아넣었댔구나. 대체 웬생심을 먹었게 날 죽이려 했느냐?》

《소인은 가시라사마의 령을 실행했을뿐이옵니다. 하늘이 낸 도사님 을 몰라보고 만고의 잘못을 저질렀으니 제발 용서해줍소사.》

《너의 가시라사마가 어째 날 해치려드는거냐?》

《사마께선 조선원정에 나갔던 부친이 조선승병대한테 사살됐다면서 그에 대한 보복으로 승병대총수였던 도사님을 죽여버려 원한을 풀겠다. 했나이다.》

《그때 조선의 의병들이 일본군의 장병들을 쳐죽인건 살행을 막기 위한 장거였으니 그리 알고 너희 주인께 가서 사실을 아뢰여라. 앞으로 그냥 이런 못된짓을 할 때는 용서치 않겠다.》

《하잇- 하잇-》

《가만, 내가 찾는 젊은이가 어디 있는지 이실직고해.》

《사실은 그가 사공과 싸우고 관옥(관가에서 운영하는 감옥)에 잡혀 갔소이다.》

《거짓말이 아닐테지?》

《하늘에 대고 맹세하옵거늘 소인의 말은 죄다 사실이오이다.》

《그렇다면 됐다.》

외뿔상투머리를 갑삭대며 사례를 표하고난 놈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꽁지가 빳빳해서 줄행랑을 쳤다.

놈들이 사라진 후 유정은 랭하고 좁은 공간안에 오래동안 쪼그리고 들어있은탓에 지긋지긋해나는 육신을 힘겨이 움직여 후시미성안으로

향했다.

그는 날이 훤하게 밝았을 때야 대궐과 멀찍이 떨어진 산골안에 외따로 틀고앉은 옥사출구앞에 다달았다.

철근을 가로세로 촘촘스레 덧댄 출입문앞에 웅크리고있던 누렁이가 유정이를 보더니 꼬리를 저으며 달려와 콩콩 올려뛰며 반가와했다. 돌로 든든히 축조한 옥사안에 함정에 빠진 참대곰마냥 머릉해서 웅크리고있는 조선인젊은이가 진짜로 오팔이가 옳다는것을 확인한 유정은 안도의 숨부터 내쉬였다.

자기가 이 아침에는 영낙없이 사형장에 끌려나가 동료들도 모르게 왜인도부수의 칼질에 목이 잘리울것으로 여겼던 오팔은 갑자기 나타난 유정스님을 보자 그가 자기를 구원하러 왔다는것을 알고는 눈물부터 글썽해졌다.

《총섭님-》

그러다가 얼음더미에 묻혔던 흔적이 처참하게 남겨진 유정의 옷주제와 하루새 몰라를 정도로 홀쭉 여위여진 모상을 보고는 너무도 놀라와 입을 항 벌린채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러는 오팔이를 민망스럽게 흘겨보며 기막힌 몰숨만 꺼지도록 내쁨 던 유정은 그를 옥사안에 그냥 놔둔채 대궐로 들어가 교또태수를 만났다,

태수는 평상시에도 조선사신인 도승의 출중한 인품과 자질에 위압올 받았던지라 유정이가 국서까지 정식으로 봉정한 이웃나라 사신의 호행

원을 사신과 합의도 없이 옥에 가두고 처벌하는것은 외교관례와 도의

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사리를 따지고들자 혹시 또 이 일이 막부에 통

고되는 날엔 쇼궁의 노염을 사 제가 처벌이라도 받을것이 우려됐던지

포도비장에게 오팔을 내놔주라고 지시했다.

비장과 동행하여 옥사에 되돌아와 오팔을 밖으로 데리고 나온 유정

은 그를 곧장 랑화강쪽으로 이끌어갔다.

시리죽은 상이 되여가지고 어청어. 청 따라걷던 오팔은 유정이기 자기

를 나루배가 도강객들을 기다리고있는 곳으로 가자 년떡 멎어섰다.

《저…소인을 어찌하자는겁니까?》

《집으로 돌아가게. 혼자 보내는게 미안은 하다만 나도 더 다른 도

리가 없으니 랑해하라구.》

죽으라는 말보다 가라는 말이 더 섭섭하다더니 아닌게아니라 오팔은

자기가 한생의 은인으로 여기며 따르던 사람에게서 정작 혼자 떠나가

버리라는 말을 듣자 저절로 눈물이 났다.

《허니 총섭님은 소인과 영영 정을 끊으려는겁니까?》

《…》

《전쟁때도 그렇고 이번 사신행차때도 그렇고 소인이야 예껏 총섭

님과 사생동거를 해온 제자인데 어쩜 이리도 매정하게 칼금을 긋소이

까?》

《…》

《난 죽어도 총섭님을 살벌한 왜땅에 그냥 두고 혼자 못 가겠소이다.》

이러다가 오팔은 혀가 떡 굳어지였다.

유정의 두눈에서 축축히 내배다가 방울지여 두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띄여보았기때문이다.

안타까움으로 인해 목이 꺽 메이는 소리루 오팔의 하소연을 중등무

이시키고난 유정이 자책에 겨워 말을 이었다.

《난 창해에게서 자네의 기박한 가정사에 대해 알고서도 가슴속에 큰 아픔을 안고있는 임자를 한번 따뜻이 위안하지도 못하고 그냥 부려먹

기만 한 인정머리없는 중일세. 그지간 나를 호행하며 온갖 편의를 도

모해준 일은 고맙게 여기며 두고두고 잊지를 않겠으니 이젠 돌아가 어

미없이 자라는 어린 아들과 가정사를. 돌보라구.》

《하오니 총섭님은 이 오황소를 집안의 다리부러진 장수로 만들어버

릴 작정이군요.》

심기가 설뚱해지여 코김만 흥흥 내부는 오팔을 측은히 여겨보던 유

정은 여리여지는 심정을 다잡고 근엄하게 그를 꾸짖었다.

《난 임자가 자진하여 사신호행을 맡아나섰을 때 정말로 이 오팔이

야말로 나라의 충신이로다 하고 뜨겁게 여겼댔네. 헌데 지금보니 아니

였거던. 오팔이, 임잔 제 가정의 원쑤를 갚으려는 그 하나의 관념과

옛 상관을 보호하려는 단순한 열망에 들떠 왜국행에 나섰댔거던. 우리

사신행차가 어이하여 이 멀고 험난한 원쑤의 소굴로 건너왔나? 왜국의

실상을 꿰뚫어내여 우리 나라의 정책을 그에 대응하게 세워 나라와 백

성들의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서가 아니였나 말일세, 영? 헌데 임잔 그

대의보다도 졸렬하게 신분구별이나 가리는 짓거리에 더 신경을 쓰면서

일행의 단합과 위력에 금이 트이게 하지 않았나. 일행전부가 소소한 개인감정들을 누르고 일심협력하여야만 나라의 리권을 달성할수 있다는걸 어째 궁리 못하는가 말이네. 이번에두 또…》

《사실 이번 일은 교또태수를 만나 사리를 따지려다가 이렇게 된것 이옵니다.》

《그런 개인영웅주의행위는 사신행차에 파국적인 결과만을 초래할뿐이네.》

《…》

오팔은 유정스님의 말이 옳은지라 반마디의 변명도 하지 못했다.

가슴치는 자책감으로 해 얼굴을 들지 못하던 그는 한참만에야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총섭님, 소인이 다시 사신행차에 들도록 널리 융허해주소이다. 잘못한 사람에게 개심할 기회도 주는게 옳은 처사가 아니옵니까.》

유정은 가슴안에 서려도는 노염을 다 쏟아버리자면 끝이 없었건만 본인이 일단 제 잘못을 깨달아 자각을 하는데다가 여태껏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제자를 오이꼭지 따던지듯 하는것 또한 사람의 도의가 아닌지라 애써 마음을 고쳐먹고 그를 일행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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