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왜땅에 나타난 관음보살
7
썰렁한 분위기속에 하루해가 저물어 서쪽하늘가로 기울어갈 때에 교또태수가 띄운 과반이 객관에 나타났다.
과반은 저희네 태수가 조선사신과 시급한 상면을 요구한다면서 유정에게 어서 후시미성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길차비를 하고 과반을 따라나서던 유정은 오늘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도 있고 해서 상방에 들어앉은 손문욱참의를 찾아들어가 사정을 알리고는 둘이 같이 가 교또태수를 만나자고 했다.
그때까지도 속에 맺힌것이 안 내려갔는지 쌀쌀한 기색이던 손문욱은 그까짓 왜인들이 하는 수작질이란 뻔하고 빤한노릇이니 부사가 혼자 가서 적당히 일처리하고 오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는것을 유정이가 《량국이 관계를 가지는 의례적인 자리에 정사가 늘 빠지면 우리 나라의
계명이와 홍창해는 오팔의 매맞은 상처를 치료할 약을 구하러 갔는지 없고 해서 백손이와 손문욱이를 시중드는 하인 둘이서 그들을 호행했다.
유정이네가 한참 땀이 나도록 보행을 하여 성문이며 대궐문을 통과한 후 태수가 정사를 보는 대청안에 들어서자 태수는 외뿔상투를 갑삭대며 몹시도 미안한 태도를 보이더니 힘겹게 말을 꺼냈다.
《조선사신행차가 그만 용무를 보고 귀국하라는 막부의 령이 내렸소이다.》
손문욱은 이미 자기가 바라던바여서 속으로 마침이로다 하며 호응하는 기색을 짓는데 유정이켠에서 크게 의아해하며 그 까닭을 끈끈히 캐물었다.
처음에는 대답을 피하고 어물쩍하니 넘기려던 태수는 유정의 송곳같은 시선이 제 상판을 허비고들자 아무래도 사유를 까밝힐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 내막인즉은 쇼궁을 따라 교또로 내려왔던 귀공자(도꾸가와의 아들)가 원인모를 중병에 걸렸는데 그어느 의원도 고쳐내지 못해 당장 사경에 처한지라 막부에선 그것을 하늘이 내린 불상스러운 조짐으로 여기고 조선과의 통상체결을 단념했다는것이였다.
유정은 알았노라고 흔연해서 응대하긴 했지만 내심은 다르게 가졌다.
그는 막부의 령이라는 그자체부터를 믿지 않았었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 그리도 애면글면하던 쇼궁이 결코 귀공자의 병때문에 나라의 중대사까지도 걷어치우며 시시부렁하게 놀아댈
속은 그러했으나 유정은 통상교류를 위해 일본에 래왕한 사절로서 일본이 불상사로 여기는 일을 홀시해서는 안되겠기에 귀공자의 병문안을 하고 공순히 물러났다.
막연하고도 번거로운 심사에 휘감긴채 허청거리며 후시미성문을 빠져나온 유정이가 손문욱참의를 먼저 객관으로 보내고 백손이만 뒤에 달은채 바람을 쐬면서 머리정돈이나 좀 하려고 강변쪽으로 느적느적 향하는데 거리초입구와 통하는 외진 골목쪽에서 웬 사내들이 왝닥거리며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퉁탕거리며 오가는 량쪽의 말소리가 어쩐지 귀에 익은 소리여서 유정은 자연히 긴장해지며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가 예감했듯이 서로 밀치락닥치락하며 큰소리를 쳐대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조선사신일행인 계명이와 마광우였다.
일인즉은 오팔이가 매맞는 사건이 벌어진 뒤 분기가 삭지 않아 내내 새파래있던 계명이가 오후 느지막해 홍창해를 대문밖으로 불러내는것으로부터 시작됐었다.
《형님은 분하지도 않수?》
《뭘말이야?》
《오팔형이 억울하게 살점을 뜯기우고 피를 흘린게 말예요.》
《그게 왜 분하지 않겠어. 내가 매를 맞은것보다 더 아프고 억장이 터져온다.》
《억장이나 터져선 뭘해요, 복수를 해야지.》
별다른 생각이 없이 껄렁껄렁 계명이를 따라나와 그의 말에 응대를 하던 홍창해는 그제야 피뜩 직감되는바가 있어 눈이 올롱해졌다.
《야래 또 무슨 재구를 치지 못해 몸살이냐?》
《몸살이 안 나게 됐어요? 속에서 불이 막 이는데.》
《불이 일어도 참아라. 너 참 주지님이 가르쳐준 현인군자수양법대루 쉰까지 셈을 세려마.》
《셈세기를 벌써 몇번이나 한줄 알아요? 암만해도 난 못 참겠어요. 참느니 차라리 속터치고 죽는게 낫지. 난 참의령감보다도 마광우 노는 꼴이 더 눈시려 못 견디겠어요. 오늘 사건도 마광우의 추동질때문에 생기지 않았나요. 형님은 저 마가가 밉살스럽지도 않수?》
《왜 밉지 않겠니. 전쟁때 그가 날 역적으로 몰아 잡아죽이려던걸 생각하문 아직도 이가 갈린다.》
《그러게 오늘 마가를 단단히 기갈질해야지 후에 또 어떤 화난을 안아올지 모른단 말이예요.》
계명이의 그 말에도 일리가 있는지라 홍창해는 차츰 즉흥적인 감정에로 기울어져 웃사람으로서 그를 다잡아야 할 책임감마저 잊고말았다.
어떻게 해야 마광우를 혼쌀내고 오팔이가 매맞은 앙갚음도 할수 있겠는가를 의논하던 그들은 지금 술사먹으러 거리의 청주집으로 제 하인배를 거느리고나간 마광우가 돌아오는 골목을 지켜섰다가 일을 치르기로 합의를 보았었다.
그래서 이곳 외진 곳에 나와 기다리다가 술에 취해 말잔등에 올라앉아 건들거리며 객관으로 돌아오는 마광우를 붙들어세운것이다.
처음에는 계명이네가 젊은 나이에 객관에나 붙박혀있으니까 하도 답답해서 자기처럼 바람쐬러 나왔는가부다 하며 심상해서 스쳐지나려던 마광우는 그들이 대뜸 말고삐를 잡아채며 험한 기상으로 다가서자 인차 영문을 알아차리고 직권으로 눌러치우려고 했다.
《감히 종사관에게 야료를 하려들어?》
《그 잘난 종사관감투 개꼬랑지만큼두 여겨지지 않는다.》
《계명이 요 애바라진 녀석, 너 아까 오황소가 량반히살하다가 죽도록 맞는걸 보구두 정신 못 차렸구나.》
《그럼 이 자리에서 날 좀 정신차리게 해주소그려, 량반님.》
《요거 동냥밥이나 주어먹던 중새끼가 누구보구 놀자그래?》
마광우가 계명이의 시까스름에 결이 발끈 살아나 당장 일도량단해치우려고 칼을 뽑아들며 말에서 뛰여내리는데 홍창해가 날쌔게 그의 손목을 잡아비틀어 칼을 빼앗았다.
《훈련도감의 한다하는 별무사가 시시하게 맨손인 사람한테 살인쟁기를 가지고 맞서우?》
《창해, 너 나살이나 꿰매단게 뒤에서 코치질을 했다는걸 내 다 안다. 저 햇강아지같은건 젖비린내가 나서 상대를 안하겠으니 우선 너와 내가 말 좀하자.》
바로 그러할 때에 유정이가 그 장소에 나타난것이다.
《으험, 망녕된짓이로다.》
호령소리가 곁에서 쩌렁하니 터져오르는통에 홍창해와 계명이는 물론이요 마광우도 놀라 그 자리에 굳어졌다.
그들은 뒤늦게야 유정이가 가까이 다가와서 눈을 지릅뜨고있는것을 알아보았다.
계명이와 홍창해는 자기들의 란동이 스님눈에 띄운것이 불안해 어쩔바를 몰라했고 마광우는 이때란듯 더 기가 살아나 으르떡떡거렸다.
유정은 너무도 억이 막히여 장발수염을 후르르 떨다가 계명이네부터 욕했다.
《아까 그만큼 경을 치고도 뭐이 또 모자라 밸빠진짓들이냐?》
스님이 이런 싸움판에서 애제자인 자기를 탕정들며 마광우를 질책할 대신 오히려 밉살스러운 마광우는 가만놔두고 막무가내로 자기만 사달의 장본인처럼 몰아대는것이 억울하여 계명은 입에 잔뜩 밤알을 물었다.
《앞으로 일행의 화목을 추구하자면 이번통에 근원을 캐던져야 해요.》
《셈이나 썩 세지 못할고?》
《오늘만도 현인군자수양법인 그 셈세기를 다섯번이나 했소이다. 그랬어도 도저히 분이 삭아지지를 않아요.》
그러는 계명을 원망스럽게 여겨보던 유정은 백손이와 홍창해에게 그를 끌고 어서 객관으로 돌아가라고 시키고는 그 자리를 떠나 랑화강쪽으로 향했다.
초겨울의 추운 늦저녁때여서 행인 하나 없는 강변에 이른 유정은 괴롭고 답답하고 분한 심사를 달래이느라 진눈까비를 날리는 하늬바람속에 한몸을 잠근채 점도록 서있었다.
이 일을 어쩌문 좋을고? 사람들이 서로 량해하고 단합할 궁리들은 안하고 왜들 자꾸 감정놀음만 해댈가? 이러다가 사신행차가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 수레마냥 풍지박산이 돼버리면 어쩐단 말인가. 어째서 나라일보다도 제 개인감정만 앞세울가? 나라일을 망각하다니?!
유정은 너무도 속상하고 안타까와 억장이 터져나갈것만 같았다.
어느덧 사위가 어둠에 잠기고 주막집쪽에선 배사공들의 술타령소리가 소란스러워지는 때에 홍창해와 백손이가 유정이를 찾아 강변으로 나왔다.
《주지님, 촉한이라도 만나면 어쩔려고 이러시옵니까?》
홍창해가 진눈에 젖어 몸이 온통 꾸둑이 언데다가 찬바람을 쐬여 쓰러질듯이 비척거리는 유정이를 되우 걱정하며 제 겹저고리를 벗어 덧씌워주려 했으나 유정은 그의 손길을 쓸쓸해서 밀쳐버렸다.
노염이 서리서리 뒤엉켜있는 눈으로 홍창해를 흘겨보던 유정은 몹시 실망한 소리로 내뱉았다.
《난 임자가 오팔이랑 같이 자진하여 사신행차를 호행하며 살벌한 왜 땅에 건너올 때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모르네. 나라를 위해 한몸 서슴없이 내대는 열혈장부들의 모습을 띄여보아서였지. 헌데 오늘 보니 내가 잘못 알았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임자네들은 그저 단순히 한창때의 객기로 이웃나라 려행길에 오른 사람들이였어. 창해, 임잔 사신의 일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때 왜놈들에게 잡혀간 내인의 행처나 알아보자고 행차에 껴묻어왔었지?》
《지나친 말씀이옵니다. 우리가 어찌 그렇게까지 졸렬한…》
《현실이 그러하니 군소리말게.》
두부판에 칼금긋듯이 예리한 말투로 상대의 변명을 선뜩하게 잘라던지고난 유정은 쇠사슬에 비틀리는것처럼 저려드는 가슴을 달래이느라 자갈판을 버석버석 밟으며 거닐었다.
한동안 그러다가 어벙벙해서 망두석처럼 굳어져있는 홍창해곁으로 다가가 우뚝하니 뻗치고 서서 책망을 해댔다.
《사신일행이 됐으면 사신행차의 본임을 우선시할줄 알아야지 세살난 애들처럼 그게 뭔가? 손벽도 두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일세. 설사 마광우가 소갈머리없이 논다해두 임자네들이 자중했더라면 그런 사달이 안 일어났을게 아닌가? 오팔이 일도 바로 본인의 경솔한 처신때문에 생겨나지 않았나, 엉? 창해, 임잔 인생고초와 풍파를 남달리 더 심하게 겪은 사람이지? 게다가 전쟁때 별초군대장까지 한 사내가 누구보다 더 처신을 무겁게 할대신 그게 뭔가? 저보다 칠팔년이나 아래인 계명이의 추동질에 놀아나 왜인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같은 조선사람 그것도 사신종사관을 욕보이려고 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짓인가 말일세, 엉? 임자네들의 얼빠진 망동때문에 우리 나라의 존엄이 손상당하고 사신행차의 위세가 허물어져 나라대업이 그르쳐질번 했다는걸 알기나 하는가, 엉?》
너무도 속상하여 량손을 내흔들며 기염을 토하던 유정은 별안간에 억장이 터지는듯 한 탄식을 꺼지도록 내뿜었다.
《하긴 다 내탓이니 누굴 원망할것도 없지. 이 로승이 눈먼 애정에 사로잡혀 어자어자하며 제자들을 얼간망둥이로 만들었거던.》
이러고는 한동안 기척없이 서있다가 휘청거리며 첨벙첨벙 물을 걷어차면서 살얼음이 덮인 강복판으로 들어갔다.
유정이가 물이 가슴노리를 넘도록 그냥 깊은데로 들어가는것을 본 홍창해와 백손이는 기겁을 하며 따라들어가 그를 붙들어세웠다.
《주지님, 고정하옵시오.》
《도사님, 어쩌자고 이러소이까?》
《구실 못한 이 몸을 랭설수중속에 던져 나라님과 백성들에게 속죄를 하려네.》
《소인네들이 죽을죄로 잘못했사오니 노염을 푸소이다. 다시는 안그러겠소이다.》
홍창해가 눈물을 쏟으며 꽉 붙잡고 늘어져서야 유정은 더 어쩌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간장이 타드는 몰숨만 짓다가 별안간에 얼음물속에 머리를 푹 잠그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