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왜땅에 나타난 관음보살
5
종일 차거운 대기를 덥히느라 기운을 뽑히여 핼쑥해진 해가 서쪽으로 맥없이 기우는 때에 자락이 늘씬하니 휘퍼진 장삼겉에 가사를 덧걸친 풍채좋은 두 도승이 교또지구의 북산이며 주산인 애탕산(옛적에 신라사람인 일라가 여기서 죽어 권현수신이 됐다고 한다.)에서 흘러내린 산자드락의 소로를 나란히 걸어가고있었다.
몸집은 꽤 부하나 얼굴엔 주름살이 얼기설기 덮인 고령의 중은 남선사의 태장로인 시나지로이고 수염발을 가슴노리까지 길다랗게 드리운 나이지긋한 중은 조선사신인 유정이다.
그들과 초간히 떨어져 사신호행원인 백손이와 남선사의 젊은 왜중 고달쇠가 저마끔 제 스님들을 호행하는 소임을 맡아하며 조심스레 뒤따른다.
일행은 지금 교또의 우즈마사에 있는 광륭사로 가는 길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절간들이 산은 물론 도시복판과 촌락들에도 지어졌었고 그 절간들을 관사나 객관으로도 리용했으므로 그곳에서는 각계층의 왜인들이 모여드는지라 경향각처의 소식을 얻어듣기가 좋았다.
유정은 요즘 어떤 리유로 인해서인지 교또에 내려와있는 막부의 쇼궁을 비롯한 일체 고관대작들이 조선사신일행을 문안도 안하고 찾지도 않는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며 그때문에 속이 답답한지라 오늘 도성안의 사원들을 돌아다니면서 왜국의 실태와 주민동향이나 자상히 알아보려고 우야 품을 놓아 유람길에 나선것이다.
그는 먼저 시나지로를 찾아가 문안을 한 후 안내를 부탁했었다. 사신접반사인 가또한테 길안내를 의뢰할수도 있었으나 가또와는 이젠 신물이
나는데다가 요전날
시나지로도 유정을 잠간 만났다가 서로 울뚝해서 헤여진 후 심기가 좋지 않던차라 그와 내심을 털어놓고 옳고그름을 가늠할 의향이 있어 기꺼이 동행에 응했었다.
일행이 산밑에서 벗어나 강가의 촌락어구에 접어들 때 시나지로가 유정을 돌아보며 새삼스럽게 격세지감을 드러냈다.
《세월은 류수라더니 그참 옛말 그른데가 없소이다. 젊고 혈기방장하던 선사님도 어언간에 반백의 중늙은이가 됐으니 참.》
이러다가 비죽이 웃으며 혀를 찼다.
《요전때 보니 과격한 성민 여전하더군요. 아무리 타고난 기질이래두 인제야 년세도 있고 대사직에도 올랐는데 자중할줄을 알아야지요.》
사제간으로서가 아니라 스무해 먼저 인생살이를 한 선험자로서 친동기를 타이르듯이 애심하게 뇌이는 시나지로의 말을 유정은 덤덤해서 듣기만 했다. 지금 시나지로가 우려하는 자기의 과격한 성미란게 기실은 부정스러운 현상에 대한 돌발적인 타매였으나 그렇다 해 야박스럽게 즉석에서 변명을 들이대여 자기네의 연고를 념두에 둔 상대의 애정스런 감정을 깨버리고싶지는 않아서였다. 더구나 방금전 남선사에 속한 말사들을 돌아보며 되게 기분을 상한지라 말할 흥심이 나지 않았었다.
천연사, 상국사 등의 절간사고들마다에는 《삼국유사》, 《의방류취》, 《산학계몽》, 《고려사절요》 같은 수십종류의 조선서적들과 조선사람들이 만든 인쇄목판과 금속활자들 그리고 불교대장경들이 가득 쌓여있었기때문이다.
그 모든것들이 임진조국전쟁때 조선에 기여들었던 상국사의 쇼다이, 남선사의 레이잔, 동복사의 에이데쯔 등의 왜중들이 훔쳐온것임을 안 유정은 괘씸하기가 그지없었다. 더군다나 조선원정군 장수로 출전했던 에께이라는 왜중놈이 경상도의 성주사관에서 통채로 강탈해다가 동북사에 진렬한 소장본을 보니 속에서 불이 일어났다.
왜놈들한테 오죽이나 털리웠으면 임진왜란후에 선조왕까지도 깨진 사발에다가 밥을 담아먹으며 독서할 서적마저 없어 홍문관에서 《사서연해》, 《손자》, 《력대병요》, 《훈몽자회》같은 서적들을 전국각지를 수소문하여 구해들이도록 하는 조치까지 취했으랴.
소위 자비를 숭상하고 신의를 주창하는 불가의 중들까지도 침략전쟁에 발벗고나서서 조선사람들의 피땀이 스미고 슬기가 깃든 문화재보를 공공연히 강도질한것을 알고나니 왜놈들이야말로 세상 못된 야만의 족속이라는 생각에 격분이 치밀어올라 참을수가 없었다.
유정은 지금 자기와 한길을 걷는 시나지로가 비록 옛적에 자기에게서 불법을 수련한 잊지 못할 제자이긴 해도 결코 한식솔로는 될수 없는 적국의
중이라는것이 새삼스레 깨달아지며 저으기 꺼리여졌다. 그러자 본의아니게 옛정에 끌려 선뜻 그를 찾아온
복잡한 생각에 휩싸여 걷던 유정이 자칫 실수하여 돌부리를 걷어차고 넘어질듯이 휘청거렸다.
마침 두 도승의 가운데서 제 스님의 시중을 들던 젊은 왜중이 냉큼 유정을 부축해줬다.
나이가 삼십대 중엽에 달했을 고달쇠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왜중을 시답지 않게 여겨보던 유정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모상이 무척 낯익은걸. 어디서 봤더라?》
이러며 기억을 더듬는데 시나지로가 한마디 튕겨주었다.
《동족이니까 늘 본 인상일겁네다. 그 앤 근본이 조선사람이니까요.》
그 말은 유정이와 그의 호행원을 놀래웠다.
조선사람이 어떤 연고로 인해 일본 본토에 와서 일본중노릇을 하는가며 의혹을 표하는 그들한테 시나지로는 자기가 불교숙련을 끝내고 조선을 떠날 때 부산포의 길가에 내버려진 갓난애와 맞다들렸고 부모의 버림을 당한 그 어린 생명이 불쌍하여 장삼자락에 싸안아가지고 바다를 건너온 후 이곳 절간에 두고 키우다가 동자사미로 만든것 등등의 사연을 얼추 알려줬다.
팔십고령의 왜중이 자기의 남다른 인정미를 엿보이듯 자랑삼아 뇌인 그 말에 유정이네는 왜서인지 은근히 민족적자존심이 상해 인상을 흐리였다.
그러해서 음영이 비낀 대화가 두서없이 수차 딱딱스레 이어지는 속에 어느덧 일행은 광륭사에 도달했다.
시나지로가 유정을 안내하여 사원안팎을 돌아보며 건립년대와 유래를 설명해줬다.
일천여년전 진하승이라는 사람이 쇼도꾸태자(성덕태자)의 뜻을 따라 지은 광륭사는 남선사나 본능사만치 웅장화려하지는 못해도 건물축조와 꾸밈새가 정교하고 기물갖춤이 아주 세련됐는데 그중에서도 법당에 앉힌 매력보살로 불리우는 미륵반가유상이 유표했다.
반달형의 갸름한 얼굴에 날씬한 몸매를 가진 그 불상은 살짝 다리를 꼬고 앉아 애모쁜 미소를 연연히 뿌리는것이 매우 인상적이였다.
그 매력보살을 조선의 조각가가 조선에서 자란 소나무를 가지고 조선미인을 본따서 만들었다는 설명을 들은 유정은 역시 조선사람들의 슬기와 재능이 출중하다는 긍지가 생겼다.
하여 그는 안광에 벙글써 희색이 완연해졌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시나지로가 느직하니 엇찌름을 해댔다.
《고망옛적 아스까지방에 문명의 자취를 남겨놓은 조상들도 그렇고 저 반가유상을 제조한 목공이나 법륭사 금당벽화의 대화폭을 펼친 화공이나 일본도자기생산의 번성기를 안아온 규슈의 도자공들이나 궁중기악의 시초를 열어놓은 악공이나 다 조선사람들이 아니오이까. 만약 그들이 제 나라만 생각하고 무슨 종족이요 민족이요 하는 리기심을 품었다면 험난한 바다너머 일본에까지 건너와 문명개화에 공헌했겠나요. 석존께서 일찌기 천하인생을 가엾게 여기시여 하사한 불법에는 소협스레 나라요 종족이요 하는 구별이 없다는거야 송운선사님도 잘 알지 않소이까?》
그 말을 덤덤해서 듣던 유정의 장발수염이 꿈틀 꼬리를 떨었다.
이자껏 선조들의 자취를 더듬으며 유순히 펴이였던 인상이 굳어지더니 《그래서 내가 어찌라는거웨까?》 이런 대꾸가 입에서 나직이 튀여나왔다.
시나지로는 너그러운 말투로 절절하게 강조했다.
《조선의 중들이나 일본의 중들이나 부처님의 뜻을 받드는 같은 승려로서 화애롭게 지내자는겁네다.》
《설사 부처님의 뜻을 받드는 같은 승려일지라도 필연코 나라구별은 있기마련이지요.》
유정이가 굳이 제 고집을 세울뿐 전혀 호응을 안하자 시나지로는 버럭 어성을 높였다.
《송운대사님처럼 꼭지따기를 하는 사람들때문에 량국이 이때껏 화합을 못하고 종당엔 서로 죽일내기까지 했단 말이웨다.》
《량국의 생사쟁탈에 대한 근원을 따진다면 바로 일본인들한테 심한 죄책이 있지요. 일본인들은 바다건너 조선의 옥토와 재부, 슬기롭고 근면한 백성을 탐내여 전쟁까지 일으키고 수십만대군이 광증스레 달려들어 숱한 인명을 해쳤은즉 이 어이 용납이 될 일인가 말이웨까? 태장로도 알다싶이 부처님의 교리인 <잡아함경>에는 <만약 이것이 있으면 저것도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아울러 이것이 발생하면 저것도 발생하고 저것이 소멸되면 이것도 소멸된다.> 이런 경문이 있지 않소. 헌데 일본은 자기만의 세계와 자기 위주의 하나를 주창하면서 불행금지를 대의로 삼은 승려들부터가 조선침략의 앞장에 나서서 갖은 악행을 저질렀지요? 하여 우리 조선의 중들도 반발하여 손에 병쟁기를 잡고 전장으로 떨쳐나가 살륙과 강탈을 즐기는 아수라들을 족쳐댄것이고요.》
유정의 말에 시나지로는 속이 찔렸는지 한층 기가 숙어들어 쓰겁게 입만 다셨다.
그는 유정이와 그냥 한자리에 있기가 머쑥해져 먼저 사원을 나섰다.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산성주의 주산으로서 이곳 도읍지를 감싸안으며 병풍마냥 량가닥을 펼친 애탕산의 한쪽 발부리가 잠긴 히가야마촌락의 호꼬꾸진쟈(1598년에 건설된 도요또미 히데요시를 제사지내는 사당)앞을 지나게 되였다.
사당과 둬마장쯤 거리를 든 야트막한 둔덕에는 쑥덤불이 뒤덮인 산봉우리 비슷한 봉분이 하나 있었다.
그곁에서 유정은 우뚝 멈춰섰다.
뒤따라 걷던 시나지로도 웬일인가 해 의아쩍은 기색을 지으며 걸음을 멈췄다.
《태장로는 이 봉분속에 뭐이 묻혀있는지 아시오?》
《거 뭐 태합 히데요시의 유물을 묻었다더군요.》
《태합의 유물이라구요?》 하고 되뇌이는 유정의 관자노리에서 피줄이 꿈지럭 요동을 쳤다.
그는 교또에 상거한 후 어떤 인줄을 통해 호꼬꾸진쟈봉분의 내막을 알았었다. 바로 지금 그들의 눈앞에 무둑히 솟아있는 봉분은 임진조국전쟁 륙칠년동안에 왜장들과 병졸들이 군공을 인정받기 위하여 조선사람들의 귀와 코를 잘라다가 태합인 히데요시에게 바쳤었는데 바로 그것을 산더미같이 묻은 《귀무덤》이였다.
《이안엔 유물이 아니라 유해가 묻혀있소다. 아수라들한테 무참히 살해된 조선사람들의 귀와 코가 말이우다. 이 무덤속에 잠들어있는 령혼들의
애절한 울부짖음이 이 시각도 내 귀전을 치오다. <원쑤를 잊지 말라- 원쑤를 갚아달라-> 하고. 내 나라 사람들의 그 피타는 절규를 외면하고 어찌
원쑤들과 어불리겠나 말이웨다. 그러하니 태장로는 나에게 어떤 기대도 품지 마옵소. 개심해야 될 장본인은 소승이 아니라 태장로
불덩어리같은 말마디들로 시나지로를 한참 설교하고난 유정은 어안이 벙벙해서 굳어지는 그를 뒤에 남기고 먼저 큰길쪽으로 향했다.
길가로 바투 나앉은 호꼬꾸진쟈의 전각대문앞을 지나치는데 대문 한가운데에 문패삼아 크게 써붙인 붓글이 유정의 눈뿌리를 찌르며 안겨왔다.
-대명(크게 문명)한 일본에는 온 세상에 기상을 떨친 호걸이 났도다. 태평한 길을 열었으니 그의 덕 바다같이 넓고 산같이 높아라.-
유정은 가슴속의 상처자리가 동통을 일으켜 입술을 욱 깨문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사당관리를 맡은듯 한 한 로승이 몇행보 떨어진 곳에서 읍례를 취하고있다가 유정이가 조선사신이란것을 알고는 불도승이 사절로 왕래해주어 고맙다면서 송구히 이마를 조아리더니 자칭 대문에 새겨진 글에 대한 주해를 다는것이였다.
《남화선사(당시 일본의 유명한 중)께서 직접 남기신 자필이옵니다.》
이러고는 제꺽 안으로 들어가 서사도구를 한조 안고나와 태합의 사당에 기념으로 사시를 한편 남겨달라면서 자진하여 벼루에 먹을 가는것이였다.
그러는 왜인로승한테 유정은 미숙한 불승의 솜씨로 어찌 한 나라 태합의 사당에 란필을 남기겠는가며 겸허히 사양을 하였다.
그러다가 다시금 념주알만 매만지는 유정의 마음속에서는 대문에 금문자마냥 아로새겨진 문구에 대한 대구가 울리였다.
한평생 경영한게 한줌 흙 된단 말인가
열층의 황금전당 부질없이 높았구나
탄환만 한 네 땅 지금 타인손에 갔느니
조선에 대든 값에 나라만 잃었구나
유정은 당장 검은 토기와를 얹은 사당지붕우로 뛰여올라 기와장을 밟으며 룡마루로 올라가 노성을 터뜨리고싶은 심정이였다.
《히데요시, 이놈- 내 오늘 네놈의 숨통을 짓이겨놓을줄 알라.》
임진조국전쟁때부터 가슴에 사무쳐오던 조선침략의 원흉인 도요또미 히데요시놈의 상통을 지리밟는 심정으로 지붕을 짓깨놓고싶었으나 그러면 사신의 체면이 손상되고 나중에는 왜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중대사를 망그러뜨리겠기에 눈을 다시금 지써 감고 념주알을 한알두알 세여넘기면서 입안소리로 중얼중얼 현인군자수양법인 셈세기를 하였다.
그렇게 가까스로 격해진
백손이가 그와 몇행보 뒤떨어져 따르며 왜국의 태장로를 기갈질한 스님의 대바르고 결곡한 소행을 왜서인지 못마땅해하는 기색이다가 유정이가 언뜻 자기를 돌아보자 얼른 얼굴표정을 달리하는것이였다.
유정이가 침침해진 심중을 안은채 걱석걱석 앞서걷고 그 착 뒤에서 백손이가 스님의 잡친 기분을 자극할세라 발자국소리마저 죽여가며 따라걷거니 하면서 외따른 산굽이를 꿰질러 신작로에 내려서는데 한무리의 왜인들이 꽃비단으로 차일을 두른 가마를 메고 와짝 웃고 떠들면서 몰려왔다.
행렬꾸밈새와 행장차림새를 보니 시집가는 신부를 호행해가는 무리였다.
유정이네가 이제 내려서야 할 길목인 소나무가 빽빽이 자라는 곳에서 불시에 신부행렬이 멈춰서더니 가마안에서 하얀 모시옷으로 소복단장을 한 애젊은 신부가 내렸다.
신부가 산굽이와 잇닿은 길가의 덤불뒤로 총총히 돌아오는통에 앞에서 오솔길을 헤쳐나가던 유정이가 당황하여 주춤거리다가 새각시라는게 출가도중에 웬 소변인가고 입으로 책망을 하며 새각시의 희멀건 엉뎅이살을 보기가 멋해 얼굴을 돌려버리는데 의외로 신부가 소복단장을 활활 헤쳐벗더니 연홍색의 혼례복을 바꿔입는것이였다.
유정이가 새각시란게 환장을 했다며 기가 차하는것을 본 백손이가 제꺽 주해를 달아주었다.
《민간풍속을 따르느라 저럽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옛적때부터 흰색을 죽은 색으로 그리고 시뻘건 색을 소생의 상징으로 여겨오는바 새색시들이 시집갈 때는 출가하면 본가집을 영영 떠나므로 죽는것이나 다름없기때문에 처음엔 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흰옷을 입혔다가 도중에 저렇게 재생한다는 의미에서 홍색종류의 혼례복으로 갈아입군 하오이다.》
《그런즉 언턱없이 막무가내로 남의 풍속을 흉질할번 했네그려.》
《여하튼간에 일본인들의 미개함이 풍속을 통해서도 드러나는건 누구나가 다 자인해야 하는 사실이거던요. 일본인들은 예로부터 태반이 성씨를 쓰지 않고 혹 성이 있다 해도 무슨 강이나 산이나 짐승이름같은것을 본딴것들이던데 그참 실루 우습기가 그지없다니까요.》
《내 전쟁때랑 이번 행차전에랑 일본국의 풍습에 대해 웬간히 파고들어봤었는데 <고사기>(옛적에 서술된 일본의 력사책)에 의하면 원래 이곳의 원주민들이 성이라곤 아예 없고 막된 호칭이 그대로 이름처럼 쓰이였는데 백제의 구수왕때에 건너온 백제사람 왕인에 의해 한자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성을 지어 쓰기 시작했는바 그것도 상층귀족들에게만 허용되다나니 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성을 못 가진 가문이나 평민들이 허다하다더군.》
그러루한 대화를 이으며 선자리에서 서성거리던 유정이네는 옷갈이를 끝내고 다시 가마에 오른 신부의 행차가 선자리뜀을 하여 교외쪽으로 멀어져간 다음에야 재차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방금전에 신부행차가 나타났던 산밑 신작로를 수십행보쯤 축냈을가 하는데 산등쪽에서 느닷없이 애고대고 곡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 흥겨워하는 잔치날에 이건 또 웬놈의 장송곡인고 하며 그쪽을 홀깃 쳐다보니 한떼의 왜인들이 상여를 메고 올라오며 옥작복작 붐비고있었다. 그러한가위에 중년기에 달했을 한 왜인남정이 헌털뱅이적삼자락을 너풀거리며 유정에게로 달음박질해와 뎀벙 발 한치앞에 엎드리더니 애원을 하는것이였다.
《불타스님, 불쌍한 중생을 보살펴주옵시오.》
《댁은 웬일이시오?》
유정이가 영문을 몰라하다가 그 왜인의 걸인행색이 속에 걸려 측은한 동정을 표하는데 백손이가 한발 앞에 나서더니 도사님의 귀체에 급살스러운 상문이 끼게 하지 말고 썩 물러나라며 을러멨다.
그러는것을 유정이 눈을 흘겨 눌러치웠다. 불쌍한 중생이란 소리에 속이 여리여진 유정은 왜인의 하소연에 관심을 돌렸다.
《어서 사유를 말하오.》
《주인댁의 수수밭을 소작하며 소인과 근근득생속에 동고동락해오던 녀편네가 기박한 팔자를 못이겨 새끼도 하나 못 남기고 저승길을 제먼저 떠났사온데 묘자리를 잡고 불문을 펴려고 사당의 지관을 찾아갔더니 소인네가 평시에 공양미를 못 바치고 재물이 피박스럽다 해 거절을 했사옵니다. 한뉘 고생만 시키던 불쌍한 녀편네한테 불타스님의 축수도 못 드리고 떠나보내자니 두벌죄나 같아 렴치불구하고 도사님을 찾아왔으니 제발 자비를 베풀어줍소사.》
왜인의 그 말도 일리가 있는 소리여서 유정은 장발수염이 늘어진 턱을 주억거렸다.
민가나 관가나 조정이나 상사가 났을 때 불교의 행사를 벌리는것은 옛적부터 이어오는 풍속인데 그 행사의 관례를 말한다면 상사가 난 뒤에 한차례 중들을 청하여 빈소에서 법문(불경)을 펴는것은 대청이 법석하니 야단스럽기가 짝이 없었다. 일칠일부터 칠칠사십구일까지 칠일마다 재를 올리는것은 명분이 식재니 재물이 엄청나게 드는데 그중에 일칠일 첫재와 사십구일 마지막재에는 상가집에서 재물을 있는껏 아끼지 않을뿐아니라 친척들과 고구(오랜 친우)들이 모두 와서 보시를 쓰므로 재에 드는 비용이 엄청났다. 그러한 속에서도 소대상과 기타 중들을 청하여다가 제사전에 만반공양하는것은 명색이 승재인데 이렇게 해야 죽은 혼령이 부처의 인도를 받아 극락에로 승천한다 하여 꼭꼭 있는 은냥을 아끼려 하지 않는다. 이러다나니 자연히 장례식이 번잡다다하고 비용이 약차하게 들었다. 그러니 이런 극빈한 왜인같은자가 지관의 문전거절을 당하는게 례상사인것이다.
그러루한 페단이 있는데다가 또 이 상주가 원쑤의 족속이기는 하지만 유정은 왜서인지 불도인으로서 그의 불행을 외면할수가 없어 걸음을 돌리여 왜인을 따라 장례가 한창인 산등으로 올라갔다.
역도군들이 시체를 넣은 통나무관을 메고와 참파토(무덤구뎅이를 파는 일)를 끝내고 상주를 기다리다가 상주인 왜인과 유정이가 나타나자 곧 하관(관을 광중에 내리는것)을 시작했다.
이어 모다붙어 삽질을 하니 인차 평토가 되였고 잇달아 개다리소반에 좁쌀밥 한그릇과 맹물 한그릇과 당분을 넣은 반찬 서너가지를 올려놓고 초벌제를 지낼 때 유정은 간단히 불문 몇구를 읊으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그런 후 이어 봉토제를 지내고 역도군들이 상여와 잡귀가 묻은 너스레들을 불사르고 내려갈 때 상주한테 귀맛좋은 소리를 한소답 해주었다.
《륙갑을 치는 소리는 아니니 들어두오. 내 예껏 살아오며 산안(산에 대한 안목)이 어지간한데 이곳 지세를 보니 명당산지가 분명하오. 뒤로는
교또도회지의 주산인 애탕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랑화강상류인 청개천을 껴안았으니 말그대로 배산림수인데다가 저 오른쪽으로 련련히 뻗어가다가 봉우리를
우뚝 솟구친 산은 청제
그러자 왜인은 《요시, 요시.》 하며 이마빡이 땅에 닿도록 무릎절을 해댔다.
유정은 상투머리를 갑삭대며 《불타스님께서 상거하는 절간명칭과 직분을 알려주옵소서.》 이러는 왜인한테 자기는 객관에 림시로 거처한 조선사신이라는 말을 남기고 산등을 되내려가던 길을 그냥 갔다.
유정이와 백손이가 한담삼아 지껄지껄 얘기를 나누면서 산자드락의 양지받이들에 민가들이 목기와나 토기와지붕을 뾰족하게 쓰고 유자나무림에 묻혀 오붓이 들어앉은 동네를 네댓개 지나 교또거리의 초입구에 접어드는데 길가의 점포안에서 일각모에 비단도포로 단출하게 례복차림을 한 중년기의 왜인관리가 일어나 나오더니 유정이네를 맞아주었다. 보매 오래동안 기다리고있은듯 한 행색이다.
《천황궁의 내정대감이옵니다.》
《대감어르신께서 하찮은 소승을 어째 나례상면하시는거웨까?》
《도승을 황궁으로 모셔오라는 황명을 받았소옵니다.》
《설마하니 <천존>께옵서 이국의 비구승을 황궁으로 들이겠소이까.》
유정은 비록 그 《천황》이란게 한갖 명색뿐이고 아무런 실권도 없는 왜국의 상징적인 존재이기는 하나 외교관례때문에 할수없이 일명 《천존》이라고 춰올리였다. 하면서도 그가 기연가미연가하며 의아스러움을 금치 못하자 왜인관리는 제편에서 조급해하더니 말다짐을 해왔다.
《일본에 온 사신이라면 본국의 우상인 황궁에도 들려 인사치레를 하는것이 지당한 처사일것이옵니다.》
유정은 왜국본토에 첫발을 들여짚던 때부터 에도막부는 물론 이곳 교또의 《천황》궁에도 관심이 있던차라 못 견디는척 하며 그의 요구에 응했다.
내정대감은 교자를 탔고 유정은 교자를 마다하고 내정대감의 초졸스러운 행차를 뒤따라 백손이의 호위속에 성큼성큼 걸어갔다.
《천황》궁은 관사로 쓰는 본능사의 서남쪽바루인 도회지 한켠에 치우쳐 나앉아있었다.
궁성의 성벽은 토성이였고 성문 전문 및 궁위(궁중에 있는 문) 등 어데나 표문을 써붙인 현판은 하나도 없었다. 궁성내외에는 일수직하는 내시가 더러 오갈뿐 내정대감들이 정사보는데와 관문(출입문), 전페(전으로 출입하는 섬돌)에도 무장한 수위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궁성을 출입하는 황족 측근자와 소위 대감네들은 그 용모와 거동이 특출한데라곤 별로 없었고 왜인관습대로 헛되이 검을 찼다는 모양만 차렸을뿐 《천황》궁내에서 감히 쇠칼날을 가질수 없어 나무로 만든 칼날을 칼집속에 꽂았으며 관복도 그 바지만 부질없이 발목의 복사뼈까지 늘였을뿐 겨울추위에도 버선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니였다. 그리고 두다리사이에는 길이가 두어자나 될 한폭의 백포를 달아 이를 뒤로 늘여뜨려 땅에 찰찰 끌리고있어서 걸을적마다 부산스럽기 짝이 없건만 그들은 이것을 점잖게만 여기니 괴상스러운 풍습이 아닐수가 없다.
고색창연한 루각과 전각들이 우중충하게 웅좌를 틀은 《천황》궁은 세월의 비바람에 부대끼여 낡아진감은 났으나 그 위세와 엄엄함은 예이제 그대로였다.
이끼를 뒤쓰고 키높이 둘러쳐있는 성벽의 쌍대문에 들어설 때 교자에서 내려 유정을 안내하며 걷던 내정대감이 《천황》궁에 오면 하늘과 땅이 뒤바뀐 세월을 볼수 있다면서 대충 몇마디 주해를 달았다.
유정은 내정대감의 서글픔이 비낀 말을 흘려듣노라니 신고령(신숙주)의 기행글과 남호곡(남룡익)의 《문견록》에서 보았고 또 본국에 건너와 누구에게선가 들었던 왜국의 력대설화가 상기됐다.
태고적의 하늘에 신이 있어 비녀 하나, 옥새 하나, 거울 하나를 가지고 휴가에 내려와서 《천황》이 되였는데 그 신무《천황》은 성은
왕씨요 이름은 협야이다. 그는 땅의 신 로자존의 자손으로서 주나라 유왕11년(기원전 781년)에 처음으로 《천황》으로 부르고 수도를 태화주(야마도)에 정하였다. 그 이후부터는 다 《천황》이라 불렀고 몇번 도읍을 옮겼다. 녀왕 신공후때 이르러 처음으로 한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그다음 신응황제때 고구려가 비로소 사신을 보내였고 백제는 녀재공을 보냈는데 의복제도가 이때부터 시작되였다. 또한 경전과 여러 분야의 인재들과
왕자를 보내여 친교를 맺았었다. 조선과의 교류는 아스까문화와 같은 문명을 급진적으로 도입시켜 일본을 개명시키는데 결정적인 계기로 되였고 이때부터
일본의 《천황》은 다른 나라들에 사신과 중들을 보내여 왕래하였다. 계체시기 곧 량나라 무제때 량나라에서는 사마규를 보내였다. 이때에야 비로소
일본의 년호가 제정되였다. 서명때 당나라 태종때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니 당나라에서는 고인표를 보내왔다. 양성때에 등원기경이 섭정으로
임명되면서부터 관백이라 불렀다. 관백의 명칭은 이때부터 시작되였다. 안덕원시기에 백하왕후가 란을 일으킨것으로 인하여 관백 원뢰조에게 쫓기여 죽었고 후광엄원때는 사신을 명나라에 보내여 조공하였다. 그 계승자인 후원융원때는 고려국의 정포은(정몽주)이 사신으로 왔었고 그 이후인 후화원때에 대마도 도주가 조선과 교류조약을 맺게 되자 조선에서는 신숙주를 사신으로 보내왔었다. 그 이후에도 조선에서는 일본과 계속
관계를 가지였으나 《천황》에게 사신을 보낸것이 아니라 관백에게 통신사를 보냈었다. 일본은 신무《천황》때부터 거의 100여대에 걸쳐 《천황》을 이어오는데 처음의 성은 왕씨요 후의 성은 원씨이다. 대를 물려오며 《천황》이 정권을 전제할 때에는 3공6관을 두어 백공(조정의 모든
벼슬아치)을 거느리고 대
그때부터 《천황》은 허수아비처럼 궁중에나 들어앉으니 그 호령이 궁밖을 나가지 못하고 다만 년호박힌 력서가 국내에 나도는것과 은전에 보자(년호를 가리킴)를 찍게 하여 십일세(금액의 십분의 1을 세금으로 하는것)를 받는것과 작첩(칙임 관리에게 주는 임명장)에 《천황》의 도장을 찍어주어 사은의 례가 있을뿐이다.
권세는 하찮게 미미해졌으나 역시 하늘같은 존재는 분명한지라 가내100리지역을 탕목지로 받아서 수입을 충당하며 선보름에는 단정하게 앉아서 분향(재를 올리며 불경을 외우는것)이나 하며 후보름에는 주색과 향락을 일삼는다. 혹 거동을 할 때에는 금은으로 아로새긴 련이 있고 궁중에는 금의옥식이 있어 영화를 다할뿐이다. 맏아들외의 제왕자들은 다 따로 내여 호를 법친왕이라 하며 딸은 비구니로 삼아서 부마란 칭호도 공주란 칭호도 없다. 귀족근친인 신하들로서 문헌, 력사 등을 맡아보는자는 반드시 법안이라 하니 대개 그 근신관계가 마치 불가의 문수며 라한이 제석궁에 벌려앉은것과도 같다 할수 있다. 유래로 왜《황》은 외국에 사신을 보내여 글을 통할적에 《해돋는 곳의 천자는 해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드리노라.》라고 써왔다. 당 함형(년호)초기에 왜인은 왜(난쟁이를 의미함)라는 명칭이 싫어서 일본이라고 고쳐불렀다고 한다. 일본에는 《천황》외에도 나라와 민생을 수호한다는 권현수신들이 많은데 그 단적인것으로서 웅야산의 신을 들수 있는바 신무의 7세손 효령《천황》때에 진시황의 부하였던 서시가 바다로 들어와서 기이주에 살았고 그의 아들 복은 180살까지 살다가 죽어서 웅야산을 지키는 신이 되였다고 한다.
하건만 유정은 그 고전설화를 믿지 않았다. 만약에 왜땅에 불사약을 얻으러왔다가 눌러앉았다는 서시가 실지로 존재했다면 그가 당시 삼(당시는 그저 인삼이라고만 했음)산지로 유명했고 더우기는 가까운 륙로인 조선을 택했을테지 어이해 부디부디 만리 창파건너의 왜국으로 건너왔을텐가.
유정이가 내정대감을 따라 새하얀 화강석을 반반하게 다듬어 깔은 마당안에 들어서니 궁륭상으로 형성된 화려한 건물들이 나졌다. 벽의 중방들은 금, 은으로 장식되였고 정원 한가운데는 꽤 널직한 련못이 있었고 그 련못을 가로지른 구릉다리로 해서 조회청인 대청나들문으로 통하게 되여있었다.
적목널로 쪽무이를 하고 옻칠을 한 나들문을 열고 들어서니 옛적에 대신들이 조회를 하던 대청이 나졌다. 또 한참 그곳을 지나 《천황》이 정사를 보는 편전에 들어서니 그안에는 차를 나누어먹는 원탁과 차끓이는 노구(놋쇠로 된 작은 솥) 등이 비치되여있으며 학과 소나무 등을 그린 십장생병풍이 화문석을 편 마루우에 둘러쳐있었다. 벽과 천정을 두루 일별하니 빨갛게, 노랗게, 꺼멓게 단청과 옻칠을 먹인것이 환하기가 거울같고 인중방은 벽에 무늬목을 써서 가늘고 정밀하게 조각한것이 철망같기도 하고 은실같기도 하고 천정에는 금과 구슬을 섞어 장식하여 보기가 눈이 부셨다.
알룩적삼에 알룩바지를 입은 젊은 환관 하나가 뽀르르 들어와 내정대감과 유정을 공경스럽게 맞아 대기석에 앉히더니 종종걸음쳐 침전으로 가 《천황》을 모시고 나왔다.
나이가 갓 중년기에 달했을 《천황》은 첫눈에 보기에도 소약하고 우유부단하게 생겼는데다가 관백이 쓰는 일각오모도 쓰지 않았고 상투도 아니고 죤마께도 아닌 미미한 머리모양새를 하고 푸르스름한 무명도포를 수수하게 차려입다나니 어느 관가의 평범한 관원같은감이 들었다.
아마도 검소한 모상으로써 권세와 부귀영달을 양양 떨치며 천상천하유아독존처럼 놀아대는 막부의 실권자들에게 반항을 표시하는건지.
《천황》은 제켠에서 유정을 청한지라 먼저 유선한 표정을 지으며 초면인사를 건늬였다.
《창파만리를 건너 본국에 왕래하느라 수고가 많으셨겠소.》
유정이도 량손을 모아 앞가슴에 올려붙여 읍을 하며 비천한 소승을 궁성에 불러주어 황공무지하다고 겸손하게 대척했다.
그러하자 《천황》은 유정에게 도승은 한갖 불승이기 전에 일국을 대표하는 사신이라면서 상대의 지위를 가식없이 높여주었다.
그럴수록 유정은 《천황》의 진속을 아직 모르는지라 마음의 탕개를 바싹 조이면서 겉으로는 점잖게 례의를 지키면서 무쌍 존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천존>의 옥안을 뵙게 되여 감개가 무상하옵니다.》
《항간에서 떠도는 소문이 과연 그르질 않소그려. 겉볼안이라고 도승은 첫대면에 벌써 만사에 도통한 생불임이 알리오.》
《한뉘 중생구제를 표방하며 목탁이나 두드려온 소승에겐 과찬이옵니다.》
그러루하게 몇마디 오가는데 내시가 차다반을 들여왔다.
청신하고도 화려한 십장생병풍안에 놓여진 원탁을 가운데 두고 내정대감과 《천황》과 유정이 둘러앉았다.
내정대감이 쌉씨그레하면서도 달작지근한 홍차를 경건한 태도로 부어 《천황》에게도 권하고 유정에게도 권했다.
김이 물물 나는 차를 모금모금 마시며 무슨 생각엔가 잠긴듯 하던 《천황》이 느닷없는 말을 꺼내는것이였다.
《막부것들이 좀스럽거던. 이웃나라의 사신을 청해놓고는 장히 국사를 실현할념은 않고 여사모사로 암책이나 쓰면서 시간끌림이나 하고있으니 일본의
유정은 《천황》이 황궁의 실권을 빼앗은 관백이나 쇼궁에 대한 원험이 크다는것을 간파하였으나 모르쇠를 하고 천천히 차만 마시였다.
《천황》도 인차 자국내의 허물을 발설한다는것을 느꼈던지 말을 거두고 생활상의 문제에로 화제를 돌렸다.
한담같기도 하고 실담같기도 한 대화가 한동안 이어지던중에 《천황》이 내시를 부르더니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시키는것이였다.
어명을 받은 내시가 어디론가 종종걸음쳐 나가더니 팔절지로 도전한 백지 몇장과 룡제먹(룡틀임의 모양을 꾸민 먹), 서호필(족제비털로 만든 붓), 홍도연(주홍빛이 나는 벼루) 등 서사도구 한조를 갖고왔다.
《듣자니 도승께서 문장이 출중하다던데 황궁의 기념이 되게 시 한수를 남겨줬으면 고맙겠소이다.》
왜국행을 하는 도중에 로상이나 사관들에서 각계층의 왜인들한테서 종종 시를 지어달라는 시달림을 당해오면서 왜인들이 조선문사들의 글씨를 얻기만 하면 정자로 쓴것이건 초서로 쓴것이건 또 막 썼건 잘 썼건 관계없이 모두가 좋아서 발을 구르며 뛰는것을 겪어본 유정인지라 흔연해서 《천황》의 요구를 받아들이였다.
내시가 벼루에 갈아 풀어놓은 먹물을 붓끝에 듬뿍이 찍어 도화전(일본의 종이이름)에 갖다대고 첫 획을 내려긋는데 종이가 맥없이 찢겨져나갔다.
일본에서 제일로 치는 삼원의 산지가 물을 먹자마자 허부러기가 돼버리는것을 본 《천황》은 무안하여 낯색이 질리며 슬쩍 화제를 돌리는것이였다.
《귀국에는 질좋은 종이가 많이 난다지요?》
《설도의 채전지(시와 음률에 능했다는 당나라의 기생인 설도가 만들어 쓴 심홍색종이)에 견주겠는지는 모르겠사오나 우리 나라에선 백면설화(품질이 좋은 백지와 강원도 평강에서 나는 설화지)며 죽청지(전라도 전주에서 나는 엷고 질긴 백지)며 선자지(전라도 순창에서 나는 희고 질긴 종이)며 청간지(충청도 청풍에서 나는 두껍고 품질이 좋아 편지지로 쓰는 백지)며 분주지(전라도산물로서 뜰 때 쌀가루를 뿌려서 굳힌 종이)며 화전지(시나 편지를 쓸 때 사용하는 종이)며 옥판지(글씨나 그림용의 두껍고 폭이 좁은 종이)며 대장지(두껍고 질긴 큰 백지)며 여하튼간에 색과 품질이 허다한 종이들이 많소이다.》
《역시 조선은 은금보화가 가득찼다더니 말그대로 물산이 많고 문명이 개화되고 인재가 많은 나라옵니다.》
《천황》은 진실로 감동된듯 유정에게 깍듯이 경어를 썼다.
유정은 속으로 웃음이 나갔으나 덤덤해서 수염풍성한 턱만 주억거리다가 새 도화전을 끄당겨 좀전의 경우를 보아 종이가 째지지 않을 정도로 붓에 적당히 힘을 주어 일필휘지로 휘갈겨썼다.
큰 바다가 없다 해도 한나라는 아니되리
악이 선을 해치려고 마구 날름질하니
어지고 착한 마음인들 어이 참을손가
본국이 귀하거든 《천황》은 관심을 다해
사악한 관백도 쇼궁도 초달질해야 하리
시내물이 천길벼랑에서 폭포치듯이 필체가 척 보기에도 기백있고 문맥이 순식간에 천만뜻을 걷어안고 관통되는 시구를 홀린듯이 들여다보던 《천황》은 속에 찔리는게 있었던지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립장이 난처해졌는지 내정대감에게 귀한 객을 모셔왔는데 어서 연회를 차리라고 일렀다.
인차 대청과 잇달린 내당에서 히바찌의 열기가 도는 속에 풍성한 연회석이 차려지고 취흥이 흐르기 시작했다.
취흥이 어지간히 도도해진 《천황》이 잃어버린 권세에 대한 미련과 막부에 의해 손상당하는 《천자》존엄의 아픔을 늘 주연으로 달래여온 타성이 살아나선지 곧 주악을 시작하게 만들고 악공과 가수들과 무희들을 불러냈다.
외당의 아담하고 명랑한 행랑으로 일여덟명의 악공이 비파, 저대, 요고(작은 북의 일종) 등을 들거나 안고서 몇패로 벌려앉고 앞줄로는 노래하는자가 여럿이 괴이한 의상차림으로 벌려섰고 그 량옆으로는 무희들이 요염스러운 자태로 곁달아섰다.
비파의 모양은 조선의 해금과 같고 배에 줄이 있는데 채로써 이를 타며 북은 장구형상으로 되고도 작은데 왼손으로는 그 허리를 껴안고 어깨에 멘 다음 바른손으로 그 한면을 두드리는것이였다. 소위 장구친다는자는 미친듯한 소리를 지르다가는 무엇인가를 꾸짖고 하며 야단법석인데 한참 그러다가는 흥이 날 때면 넙적다리를 치며 얼씨구 좋다 소리를 내지르는셈이지만 그게 얼핏 듣기에 개짖는 소리같기도 하다가 별안간 학의 울음같기도 해 부지중 구경하는 사람의 복장에서 허거픈 웃음이 터져나왔다. 저대의 길이는 한자도 못되는데 구멍이 있어서 불기는 하지만 그 소리가 마치도 한가을철의 풀밭에서 나는 벌레소리같았다. 노래부르는자는 열서너줄되는 글줄도 외우지 못한듯 책을 앞에 놓고 들춰가면서 창하는데 그 모양은 흡사 글읽는 형상같고 그 소리는 중의 념불소리같았다. 또 춤추는것을 보니 열예닐곱살 되여보이는 미남자들인데 그들은 눈섭을 그리고 발갛게 분칠을 하고 머리를 틀어얹고는 까맣게 윤을 내였고 알쑹달쑹한 오색의 무늬진 비단옷을 입어서 비할바없는 경국가인이였다. 그들은 밖에서 옷차림을 하고 들어와서 두루 돌아다니며 되는대로 걸어 그 걸음발이 장단을 맞추어 들고놓는것 같지는 않았다. 대개 조선창기의 오방신무 비슷하였는데 잠시후 나가서 옷을 바꿔입고 들어왔을 때에는 복색이 더욱 고왔다. 머리에는 노란 수건을 썼는데 높이는 한자쯤으로 둥글고 곧아 기울지 않았다. 손에는 길이 오륙척쯤 되는 까만 나무지팽이를 가졌는데 그 지팽이를 들어 공중을 가리키며 발을 벋디디고 팔을 뽐내면서 창으로 무엇을 찌르는 형상을 하더니 갑자기 노란 수건은 저절로 떨어지고 문득 채색꽃이 머리에 가득하였다. 이러면서 나갔다가 다시 열명이 두패로 갈려 다섯은 창기의 차림을 하고 들어오니 그 어여쁨이 바로 청루미인이였으며 다른 다섯은 호협소년으로 차리고 들어오니 다름없는 도시의 방탕아였다. 고운 옷차림을 자랑하며 동서에서 대무하는데 그 춤이란 소매는 벌리지 않고 몸을 돌리고 발을 옮겨 느리게 걷기도 급하게 달리기도 하여 눈송이가 날리고 꽃잎을 형상함인지 모를 지경이다. 이윽고 동작을 바꾸어 남녀가 정을 어루고 추파를 흘려보내는 태도를 지을 때에 내정대감이 유정에게 넌지시 한마디 던지는것이였다.
《도승은 저런 흥취를 아옵니까?》
《세상에는 쇠나 돌로 만들어진 사람이 없거늘 남녀의 놀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다만 불문을 받드는 승려로서 삼가할뿐이지요.》
유정이 이렇게 대꾸를 하자 내정대감은 소리죽여 웃었다.
시간이 어지간히 지났을 때 굿구경하듯 심드렁해있던 유정이가 실큼하여 내정대감에게 분부했다.
《소승이 이젠 지루감이 나니 물러케 하소이다.》
그랬더니 인차 무희를 걷어치우고 잡희가 나왔다.
이 잡희는 조선의 곡두와 같은것이였다. 장막을 행장안에 처넣고 사람이 아이 하나를 안고 나타났는데 예뻐서 사랑스러운 기미를 보였더니 어느새 아이는 변하여 검이 되였다. 그리하여 검빛이 얼른거려 빛나고있었는데 그 등을 쳐 바수니 다시 변하여 기이한 꽃이 가지에 가득 피였고 이를 불어 헤뜨리니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락엽이 되였다. 그리고는 또 화려한 집채가 갑자기 장막우로 솟아나왔는데 보이는것이 요사스러워 절간같았다. 그안에 등촉이 사람없이 홀로 타고있더니 얼마 안되여 다시 온통 락엽으로 변하여 분분히 떨어졌다. 이런 몇가지 눈속임의 장난과 환롱질이 요괴스럽게 벌어지다가 노루꼬리만 한 겨울해가 기울 때에야 판이 났다.
《천황》은 다시금 유정이네를 내당으로 데리고 들어가 별찬을 베풀었다.
유정이네는 주류는 극력 피하면서 가루음식과 남새찬으로 적당히 요기를 하다가 케를 보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유정은 서둘러 헤여지는것을 무척 아쉬워하는 《천황》에게 뼈박힌 소리로 이런 주연이나 분향으로는 결코 황권을 되살리지 못하니 나라와 백성의 경륜에 품과 시간을 바치라는 말을 남기고 유유히 《천황》궁을 벗어났다.
유정이와 백손이가 서쪽하늘을 피빛으로 물들인 석양을 머리에 이고 객사에 들어서는데 멀리 근강주에까지 가서 마상재를 한 홍창해, 계명이, 오팔이 이 세 젊은이가 승전을 이룬 장수인양 기세좋게 말을 타고 달려들어왔다.
호오흥-
땀에 젖은 준마들이 앞발통을 땅바닥에 욱박으며 투레질을 해댔다.
훌쩍훌쩍 땅바닥으로 날아내린 기마수들은 의기양양해서 유정에게 대성황리에 벌어진 공연결과를 실지그대로 보했다.
그런 후 량쪽이 한데 섞여 웃고 떠들면서 행장을 풀었다.
오팔이와 함께 안장을 벗긴 말들을 마구간에 몰아넣고 돌아나오던 계명이가 스님이 벗어놓은 갖신을 사람발길에 채우지 않게 퇴마루밑에다가 밀어넣고있는 백손이를 툭 건드렸다. 그들은 나이가 극상해서 서너살 차이났으나 불의앞에서 참지 못하는 성미와 유정스님의 신변을 한몸바쳐 지키려는 열의가 상통해선지 쯔시마에서 처음 만나 두어달 사귀여오는 새에 벌써 남달리 호흡이 잘 맞아 서로 형, 동생 하며 자별하게 지내는 사이가 됐었다.
《백손형, 스님호위를 하느라고 수고가 많았시유.》
《수곤 너희네가 더 했다. 오늘 또 왜인들의 넋살을 한바탕 뽑아놨겠구나.》
《그럼유. 깜짝 놀라 눈알이 까뒤집힌자만 해두 열두름은 나마 돼유. 형, 내 비밀 하나 대달라우?》
《비밀?》
《응, 그 값이 만냥어친 돼유.》
《어큰사, 그렇게 굉장한걸 나한테 홀홀히 넘겨줄래?》
《형에겐 그저 줘야지 뭐.》
《이런 고마울데라구야. 얘, 대체 무사니냐?》
백손이는 롱질로 대척하다가 은연중 호기심이 동해 바싹 계명이에게로 다가붙었다.
계명이가 백손이의 벌떡 퍼진 귀박죽을 제 입 가까이에 끌어다대고 한다는 소리가 《아까 말이유, 마상재를 끝내고 떠나오는데 웬 애되고 해사스런 계집년이 내 손목을 닁큼 붙잡더니 <소녀의 이 순결한 몸을 당신에게 깡그리 바치고싶나이다.> 이러질 않겠나유.》
《흐하하, 그래서 넌 어쨌냐?》
《뭘 어째유? 소스라치며 그 바라진 왜년을 털어버리고 냅다 줄행랑을 쳤지.》
《아이코나- 이 못난아, 그런 호화판을 마다하다니 원, 어화둥둥 안고와서 절구질이나 실컷 할거지.》
덩달아 호기심이 동해 귀를 기울이던 주변사람들은 둘의 너드락질에 어처구니가 없어 웃고말았다.
백손이의 걸죽한 롱소리에 질색을 하던 계명이가 《이 형 사람놀리네. 혼쌀탕낼테다.》하며 백손이한테로 달려들고 그러자 백손인 그 주먹을 피해 아고고 엄살을 부리면서 달아나다가는 《야래 감히 뉘보고 대들이질이냐? 내 이래뵈두 <천황>에게 초대되여 들어가 호사를 누리던 사신종사이다.》이러며 코대를 세우고 그래서 더욱 희희락락의 롱질바람이 세차지는통에 객사뜨락에선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한편 남선사에 돌아와 솟을대문을 열고 들어서던 시나지로는 높다란 석탑아래서 뒤짐을 진채 서성거리고있는 가또태수의 오른팔, 오른다리노릇을 하는 다이묘인 요시하찌를 띄여보고 주춤거렸다.
시나지로가 오솔길을 가다가 뱀을 만난 사람처럼 오싹해서 굳어지는데 요시하찌가 먼저 눈인사를 하면서 그에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옛 선사와 유람을 하신다더니 만사가 제대로 됐소이까?》
독음이 내비낀 요시하찌의 날카로운 시선이 육신을 치훑는 순간 살기가 선뜩 마쳐와 까닭모를 불안에 젖어들던 시나지로는 무뚝뚝해서 뇌까렸다.
《우리 사제간의 일은 그녘이 참여할바가 아니니 그만 관심을 돌리는게 좋을거요.》
《고정하소이다, 스님.》
요시하찌는 무안을 당하고도 내색없이 끈덕지게 접어들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소장의 의지는 곧 가또태수님의 의향이고 일본의 의지이니 자중하여 맞잡아 실행함이 지당할것이외다.》
《하다면 대체 이 몸이 어쩌라는건가?》
《그 수염쟁이 조선중이 우리 일본에 대한 반감을 버리고 속히 막부의 화친교류에 응하는 인장을 찍도록 잘 타일러주는것이지요. 제아무리 완고한 사람일지라도 설마하니 애제자의 소망까지야 거슬리겠소까.》
《소용없는짓이요.》
시나지로는 빤빤머리를 설레설레 휘젓고는 픽 몸을 돌려 도끼눈이 돼버리는 요시하찌를 뒤에 남긴채 승방쪽으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