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왜땅에 나타난 관음보살
3
일각이 여삼추로 목빠지게 기다리던 소식이 드디여 요시또모도주한테 날아들었다.
《도노사마- 명의가 도착했소이다.》
봉행이 솟을대문을 열어제끼고 급스레 달려들어와 퇴마루에 넙적 엎드리면서 아뢰이는 소리에 요시또모는 공단이불을 제끼고 엉거주춤이 상체를 쳐들었다.
《명의?! 건 또 어느메서 온 돌팔이냐?》
《돌팔이가 아니라 진짜로 출중한 의원이옵니다. 조선의 삼남일대에서 소문이 자자한 청목이라는 녀의승이온데 다 죽었던 사람도 되살려내는 신통력을 지녔다했소이다.》
《음, 재판이 드디여 성사를 했구나.》
이러다가 흥분이 살아올라 《요로시!-》하며 일어나앉던 요시또모는 갑자기 목등을 움켜쥐며 신음을 내였다. 목등에 밥바리처럼 부풀어오른 종기가 쿡 저려나면서 꼭두로 쥐가 찌르륵 뻗쳐올랐던것이다.
요시또모는 누비돗자리를 깔은 방바닥에 풀썩 되주저앉아 엉금엉금 종처를 주물렀다.
조선왕이 일본막부의 요구에 동의하여 사신일행을 띄우고 또 인차 쯔시마에 건너왔던 조선사신일행을 억지로 설복시켜 본국의 막부로 이끌어다준 후 요시또모는 오래동안 애써온 목적을 드디여 성취함으로써 가문을 번창케 할 권력과 재부를 얻게 된 무상한 기쁨에 취해 언제 해가 지고 달이 뜨는지도 모를 정도로 쾌락한 나날을 보냈었다.
헌데 세상일이란 얼마나 공교로운가. 자고로 고진감래는 례상사라 했는데 이건 고생끝에 락이 와 그 기쁨을 좀 누릴가 하는 때에 어느새 흥진비래로 불상스러운 변이 도래했다. 한창 사는 재미가 나던 이즈막에 뚱딴지같이 종기라는 신병이 발생하여 귀신의 손아귀같은것이 죽음의 문구멍으로 그를 잡아끌었던것이다.
옛적부터 일본에서는 사람목등에 뽀두라지라는 종기가 생기면 그 병자는 세상살이를 끝낸것으로 여기고 아예 관부터 장만해놓군 했었다.
그만큼 목등의 종기는 사람죽이는 무서운 불치의 병이였던것이다.
요시또모는 한창 쾌락을 누릴 시절에 하늘같은 권세와 재부를 남겨두고 세상을 하직하자니 가슴이 터져나갈 정도로 억울하고 분통했다.
못된 팔자를 물려준 제 조상들에게 애매한 욕설만 해대며 자실자망하여 장탄수심속에 비애의 날을 보내던 그는 자고로 사람이 아무리 팔자도망만은 못한다 했지만 그래도 이 하늘아래의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권세와 재물이면 고양이뿔도 만들어낼판인데 하늘에 닿을 권력과 산같은 재물을 가진 자기가 뭘 자포자기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겠는가고 스스로를 탓하며 이미 기울어진 명운을 되돌려보려고 부하들을 내몰아 각지에서 명의들을 불러들였었다.
헌데 도주의 권세와 재부에 혹하여 불본 부나비마냥 찾아드는 의원들이란 침혈도 제대로 찾아 꽂지 못하는 돌팔이들이라 그만 실망을 하고 나앉아 하루 삼시 자비로운 부처님께 만반공양을 드리며 절치부심의 나날을 보내던차인데 이렇듯 령험스럽다는 조선의 녀의승까지 나타난것이다.
요시또모가 쥐가 찌르르 올려뻗치는 목등을 그러쥐고 어이고, 어이고 하며 죽어가는 소리를 내는데 밖에서 솟을대문이 여닫기는 소리가 나더니 잇달아 여러 사람이 투덕투덕 정원을 내밟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안 있어 쌍미닫이문밖 퇴마루아래서 《도노사마께 문안드리오-》 하는 재판의 숨가쁜 아뢰임이 날아들어왔다.
요시또모는 물에 빠진자 지푸래기라도 붙어잡을판이라 쿡쿡 쑤셔나는 종기의 아픔을 참으며 《오냐, 어서 내실로 들거라.》 하고 기꺼이 대척을 했다.
그러자 쌍미닫이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더니 장작개비처럼 바짝 여윈 재판이 두어깨를 잔뜩 옹송그린채 네발걸음을 치다싶이하며 들어왔다.
그와 몇행보 사이두고 나이지숙한 녀승이 청라장삼에 감싸인 늘씬한 몸을 사뿐히 움직여 뒤따라 들어섰다.
어지간히 나이는 들었으나 첫눈에 보기에도 사내들의 애간장을 퍼그나 태웠을 미모의 녀승이였다.
아직 마흔안팎이라 해도 곧이들릴만큼 싱싱하고 환한 그 절륜한 용모에 눈이 부시여 올빼미눈처럼 오목하니 숨어들어간 눈까풀을 슴벅이던 요시또모는 한손으로 종기난 목등을 그러쥔채 구실아치에게 호피방석을 벽장안에서 꺼내 녀승한테 내주도록 호령했다.
《불원천리하여 수고로이 와주어 고맙소. 앉소, 녀의승. 원로에 고생이 막심했겠는데 앉아 몸쉼부터 하오.》
그 친절한 호의에 녀승은 차분한 눈웃음으로 대척했다.
《괜찮나이다. 환자를 살리자고 온 의원이 목숨이 경각에 달한 병자를 앞에 두고 한가로이 쉼부터 한다는건 도리가 아닌줄로 아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는 소리에 오싹 기가 저려들어 멍청해지는 요시또모를 담담한 눈빛으로 굽어보던 녀의승은 주변에서 어정거리는 관원들과 가노들한테 일각이 급하다면서 빨리 수술준비를 다그치도록 했다.
요시또모의 부하들은 조선녀의승이 시키는대로 곰상스레 돌아쳤다.
먼저 끙끙 앓음소리를 내는 저희 상전을 조심히 맞들어서 별채의 빈 마루방으로 옮겨가 널침대에 눕힌 다음 화로에 숯불을 지피고 물을 끓이며 수술도구들을 소독했다.
녀의승은 그들의 일거일동을 관할하여 차비를 빈틈없이 마무리지은 다음 장삼을 벗고 두손목과 허리중둥에 희고 깨끗한 행전을 감고 입도 침방울이 튀여나지 않게 흰 천으로 가리우더니 날이 선들선들한 절개칼을 들고 요시또모의 머리맡으로 다가섰다.
밥바리처럼 불거진 목등에 금시 칼날을 들이박는가 했는데 절개칼은 허리띠안에 꽂고 대신 침통에서 은침을 한대 뽑아쥐더니 그 침대로 종기와 통하는 중추신경혈을 찾아 살몃살몃 비벼박는것이였다.
그런 후 입속말로 셈을 하며 시간을 가늠하다가 한참후에야 때가 됐는지 토기그릇을 널침대밑에 가져다놓게 하고 절개칼을 뽑아든다.
눈앞에서 번뜩이는 시퍼런 칼날을 본 요시또모는 겁이 더럭 나서 우들우들 치를 떨었다. 이제 녀의승이 칼로 종기를 터뜨리면서 목의 숨길까지 썩둑 끊어버릴것 같아서였다. 일본인이라면 철천지원쑤처럼 여기는 조선사람들이니 십분 그럴만도 했기때문이다.
어허어, 내가 무슨 망녕이 들어 미련하게 조선의 의원을 맞아들였던고? 이런 후회가 막심해져 요시또모는 목등을 그러쥐며 고아댔다.
《난 싫다, 그만해라- 여직껏 이 나라 전례에 목등의 종기를 칼로 우벼대여 고친적이 없었다. 상판에 난 좁쌀알만 한 부스럼도 긁으면 더 곪아 속골까지 들이썩는데 하물며 이 무덤더미같은 종기야 극심하지 않으리.》
그러는데 어느결에 날렵하고 단단한 녀의승의 손이 요시또모의 목등을 감싸쥔 손을 풀어치우더니 칼날이 종기속에 쿡 들이박힌다. 와지직 살을 우벼대는 느낌과 찍 치가 올려뻗치는 아픔에 요시또모는 와들짝 소스라치며 숨넘어가는 비명을 질러댔다.
《네년이 날 죽일 잡도리로구나. 어이쿠- 천조황대신궁과 웅야산애탕산에 모신 여러 권현수신들과 춘일대명신, 팔번대보살 등의 전지전능하신 천신들은 부디 굽어살피사와 소자의 명에 미쳐온 액운을 막아주옵소.》
방책을 요하는 넉두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요시또모의 목등에선 진득진득한 피고름이 덩이져 좌르륵 쏟아져내렸다.
악취를 풍기는 살썩어진 진물이 커다란 토기소랭이에 반나마 차올랐다.
살맞은 지네마냥 와뜰와뜰 몸뚱이를 비틀며 《이놈들아, 뭣들 하는거냐? 이년이 날 요정내려드는데.》 하고 넌덜머리를 털던 요시또모는 차츰 기맥을 잃고 늘어지다가 아예 혼절하고말았다.
그러거나말거나 녀의승은 칼날로 종기의 괴저물을 모조리 썩썩 우벼던지고는 피와 고름이 스산하게 들박힌 상처를 페장을 알싸하게 찌르는 약물로 말끔히 씻어내더니 소독된 면심지를 박아넣고 붕대를 감았다.
반주검이 된채 부하들한테 맞들리여 침방으로 옮겨와서 이부자리속에 묻혔던 요시또모는 옹근 이틀만에야 의식을 차렸다. 그는 사흘째되는 날부터 미음과 알약을 받아먹다가 엿새만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아흐레째 되던 날 아침에는 목을 휘두르며 기가 펄펄해서 정원에 나가 가병대장을 상대로 검도까지 했다.
그는 거리 한끝의 절에 머무르면서 매일 시간을 맞추어 수술자리를 처치해주러 오는 녀의승한테 외뿔머리태를 달싹이며 진정으로 경탄을 표했다.
《과시 신령스러운 명의요. 그대는 아미타불님께서 이 불쌍한 소자를 살려주려고 이 땅에 내려보내신 관세음보살이요!》
보름이 지나 여느때처럼 신수가 멀끔해가지고 관청에 나가 호호탕탕 폭소를 터뜨려대며 아무 불편도 모르고 정사를 보게 되였을 때 요시또모는 제 생명을 구원해준 은인에게 사례하는 심정에서 관사대청안에 굉장히 요란스러운 잔치상을 차렸다. 제법 건드러진 기악에다가 무희들의 요염한 가무까지 펼쳐지는 그 흥취로운 석상에서 요시또모는 미모의 녀의승한테 자기의 진속을 그대로 내비치였다.
《본관을 인간세상에서 두번다시 환생시켜준 고마운 관음보살구세주님께 뭘 아까울게 있겠소까. 금이면 금, 비단이면 비단, 옥백미면 옥백미, 땅이면 땅 무엇이나 요구하는대로 다 드리겠으니 어서 기탄없이 말씀하시외다.》
그러자 녀의승은 자기는 금도 비단도 쌀도 땅도 소용치 않는 사람이라면서 흔연스럽게 사례를 마다하더니 의외의 청을 하나 드리는것이였다.
《소승이 교또행을 하도록 도와주사이다.》
《교또엘 가자면 이제 여기서 또 바다를 건느어 천리가까운 거리를 보행해야 하는데 그 멀고 험한 행차는 어째 하시려오?》
요시또모는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의혹에 휩싸인채 신중해서 술잔만 매만지던 그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흉물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엇찔렀다.
《교또에 가있는 조선사신을 만나뵙고싶은게구려. 혹시 그 수염풍성한 도승과 절친한 관계가 아니시오?》
그러자 녀의승은 쌀쌀한 기색을 짓더니 잔꾀에 능갈치고 속통이 얕은 왜인도주가 그 말을 두번다시 입에 담지 못하도록 눈총을 쏘는것이였다.
바로 그러할무렵에 그들 두사람에게 우연히 발이 맞아떨어지는 일이 생기였다.
조선사신행차를 맞이하느라 교또에 내려와있는 도꾸가와 쇼궁과 동행하던 귀공자가 원인모를 병에 걸려 중태에 빠졌으니 각 지방 태수들과 고을의 다이묘들은 신통력있는 명의를 선출하여 시급히 상궁시키라는 막부의 령이 내렸던것이다.
파발이 공문으로 날라온 그 령장을 접수한 날 요시또모는 속으로 환성을 질렀다. 이미 저승문턱을 넘어섰던 병자도 되끌어내여 부활시키는 신령스러운 조선의 녀의승을 교또에 데려가면 한편으로는 은인의 간청을 풀어주어 좋을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귀공자의 병을 고쳐주어 쇼궁의 환심을 살수가 있었기때문이다. 이야말로 한팔매질에 두마리의 새를 잡기가 아닌가. 일거량득이라, 흠. 요시또모는 속이 한껏 흥떠나 벙글거렸다. 드넓은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메우지 못한다고 요시또모는 조선사신행차때처럼 또 고부라지게 리득을 보고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던것이다.
그러면서 요시또모가 단지 우려한것은 자기가 불시에 조선의 계집중을 데리고 쇼궁앞에 나타나면 쇼궁의 노염을 사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여사모사로 타산을 굴려보던 요시또모는 이 용한 조선녀의승을 일본 녀중으로 가장시켜 데려가기로 작정했다.
송희령은 이튿날 여느때없이 희뿌듯한 심정에 젖어 하루를 흘려보내고 저녁을 맞았다.
도주의 특별한 당부에 의해 관가곡물로 차려들여온 찰기장밥과 참대순절임같은 특식을 입달게 먹고난 희령은 등잔을 켜놓고 앉아 희푸른 달빛에 시흥을 실으며 5언절구를 몇수 적어나갔다.
밤이 이슥해질무렵이였다.
건너방의 왜중들은 어디 말돌이를 나갔는지 조용하던 밖에서 별안간 투닥투닥 급하게 내옮기는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요전날 면식을 익힌 객관의 부엌어멈이 사색이 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의스님, 큰일났소이다. 놈들이 지금 막…》
《?!》
《관사동자아치노릇을 하는 내 조카애가 좀전에 파수장놈과 봉행놈이 의스님을 살해할 작당을 하는걸 엿듣구 와 알려줬사와요.》
그 말에 희령은 어안이 벙벙해지며 까닭을 물었다.
《그것들이 아무런 언턱도 없이 왜 불시에 난당질을 하려드는거요?》
《언턱으로 말하문사 제딴의 앙심때문이지유. 봉행의 동생되는 놈이 임진왜란때 어느 한 왜장의 하급장수로 출동하여 조선을 침범했었는데 성주산성에서 바로 의스님이 지어준 초약을 먹고 독살됐다더군요. 파수장놈이 그때 통역으로 따라다니며 봤다는거웨다.》
《…》
송희령은 십여년전 전쟁이 한창이던 때 성주읍의 산성에서 불쌍한 민생들을 마구 해치던 왜군장수와 나라와 백성을 저버린 성주현감을 독약을 먹여 처단한 일이 번개치듯 떠올랐다.
그제서야 영문을 안 그는 소름이 쳐졌다. 이래서 세상이 넓고도 좁다는가부다 하는 생각에 기가 막 찼다.
서로 한을 품은 량자가 원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셈이 됐은즉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 막다른 운명의 외나무다리를 과연 넘지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가?
《의스님, 사람이 급한 대목에선 삼십륙계 줄행랑이 상책이라던데 시자 당장은 몸을 피함이 좋을듯 하웨다.》
이러며 밖으로 잡아끄는 부엌어멈의 손을 가볍게 뿌리친 희령은 쓸쓸히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개개의 인명은 운수가 하늘에 달렸는지라 하늘이 내리는 화와 벌은 피할길이 없다우. 옛적에 소승이 저지른 독살은 비록 살생의 범주에 속하긴 하오만 부처님의 뜻을 거스르고 또 원한이 구천에 사무치는 그러한 속된 죄가 아니오니 스스로가 질겁하여 자승자박할거야 없지요.》
《금시 살기가 코등에 미쳐왔는데두 천연두 하시외다. 내원, 기가 막혀서.》
겁기와 안타까움에 절어가지고 어찌할바를 몰라하는 부엌어멈을 얼추 몇마디 말로 안심시켜 내보내고난 희령은 기연가미연가하는 심사에 휘묻힌채 종이장에 문맥이 튀는 글자만 그냥 휘갈겨썼다.
자정을 앞두었을 때 밖에서 누군가가 담장을 뛰여넘는 인기척이 나더니 이어 발자국소리가 가만가만 울리다가 미닫이살창문이 드르륵 제껴지는것이였다. 달빛에 날이 번쩍거리는 긴 환도를 틀어쥔 어둑서니 같은 괴한이 방안으로 뛰여들었다.
《보살의 탈을 쓴 마귀승, 네년이 그렇듯 살차고 요사스러운 마녀인줄은 몰랐었구나.》
시야에 어렴풋이 안겨드는 체구와 목소리를 가려보니 아까 어멈이 급스레 선통을 해준 봉행이였다.
《소국의 일개 관원으로서 례의와 처신을 중히 해야 할대신 막사람처럼 밤중에 살인쟁기까지 들고 연약한 아녀자의 처소에 불문돌입을 하니 이 무슨 해괴한 망동이시오?》
희령이가 서리발같은 기상이 돼가지고 엄하게 꾸짖자 봉행은 제켠에서 코웃음을 쳐댔다.
《난 망동이 아니라 정당한 보복을 하러 왔다. 조선에 가 원통하게 죽은 내 동생의 한을 풀려고 왔단 말이다.》
케가 글렀음을 직감한 희령은 붓대를 내던지고는 몸자세를 바로하며 당당히 틀고앉았다.
《가소롭도다. 봉행이 한을 풀건 아무것도 없다. 당신의 동생이 비명에 횡사한건 조선을 침략해와 무고한 생령을 해치고 방화와 강탈을 일삼았기에 부처님의 벌을 받은거다. 한즉 그건 마땅스러운 징벌이였다.》
《닥쳐라, 이년. 내 동생은 우리 섬나라 사람들이 권세와 재부를 늘여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기 위한 대업실현에 나섰던거다. 그러한 용장을 독살하고 대업실현을 방해한 네년을 절대로 용서할수가 없다.》
이렇게 씹어뇌까린 봉행이 환도를 번쩍 추켜들었다.
희령은 눈섭 한오리 까딱않고 한본새로 앉아 뙤창밖의 어둠에 덮인 먼 하늘가만 우러르며 탄식했다.
아, 송운대사님을 따라 내 나라의 성업을 위하려던 소박한 념원마저도 못 이루고 이렇게 가고마는구나. 사람이 세상에 한번 태여났다가 이슬처럼 생명이 꺼짐은 세상법칙이고 례상사이건만 이거야 너무도 억울하지 않는가? 내 저승귀신이 돼서도 기어코 섬나라 아수라들을 멸살시킬테다. 아, 도련님. 사랑하는 응규도련님! 부디 옥체만강하시여 나라와 민중을 번성케 할 그 성업 꼭 성취하시와요. 불민한 소녀 이 험난한 왜땅에 도련님을 둔채 먼저 가나이다. 저승에 가서도 도련님과 그리고 조선사신일행의 명복을 빌고 또 빌겠어요. 아아, 보고싶은 나의 도련님.
비애의 눈물이 희령의 두볼을 축축히 적시였다.
그는 장히 칼을 받아 조선승려들의 정의로운 모습과 송죽같은 절개를 시위할 각오로 심신을 가다듬었다.
봉행의 칼날이 막 허공을 내리썰려는 찰나였다.
밖에서 널대문이 와지끈 뚝 부서져나가더니 재차 《그만두라-》 하고 웨쳐대는 고함소리가 날아들었다.
도주의 목비린 악청이였다.
그 고함소리의 임자를 제먼저 가려들은 봉행이 한순간 흠칫 놀라며 칼을 거두는데 출입문이 벌컥 제껴지더니 성이 잔뜩 난 요시또모가 황급히 뛰쳐들어왔다.
《칙쇼, 개자식-》
다짜고짜로 봉행의 상판부터 지끈 후려치고난 요시또모는 단숨을 헉헉 내뿜다가 그의 손에서 환도를 나꾸챘다.
녀의승의 교또행차를 막부에 통고하느라 나고야에 건너갔던 요시또모는 속히 그를 상궁시키라는 답령을 받아가지고 사기가 나서 방금 돌아왔었다. 배에서 내려 판사부터 들렸다가 어느 충실한 부하로부터 봉행이 제 동생의 복수를 하려고 조선녀의승을 죽이러 갔다는 급보를 받고는 허겁지겁 달려온것이다.
《등신같은 놈, 네가 도대체 뭐길래 언감생심 막부의 시책을 파탄시키려드느냐?》
《도노사마, 소신의 원한을 아룁건대 저 요살찬 년은…》
《야로-》
화가 독같이 난 요시또모는 봉행을 당장 죽여치을 잡도리로 손에 든 환도를 홱 빗그으며 그자의 불거진 배허벅에 갖다댔다.
그때 송희령이가 총망히 요시또모를 제지시켰다.
《불도승의 처소에서 살생이 저질러짐은 잘된 처사가 아니옵니다.》
그러자 요시또모는 환도를 뜨락에다 홱 내던지더니 뒤따라온 가병대장에게 성깔사납게 호령하는것이였다.
《이놈을 끌어다가 광속에 처넣어라. 작위와 록미를 회수하고 관노로 전락시켜 뼈즙을 말려야겠다.》
《하잇.》
가병대장이 제꺽 봉행을 오라지워가지고 엉뎅이를 걷어차며 관사옥으로 끌고갔다.
방안에 둘이 남았을 때 요시또모는 희령이앞에 연방 되똑하게 생긴 이마를 갑삭거리며 량해를 구했다.
《부하기갈을 잘못한탓에 이런 불상사가 빚어졌으니 실로 은인인 의승을 대할 면목이 없소다. 금후론 통제를 강화하여 불미스런 난사가 없게 할터이니 안심을 하소.》
《…》
희령은 왜놈들이 겉으로는 각각나름이여도 봉행이나 도주나 다 속통은 시꺼멓게 같은 한족속이라는 감정으로 해 말없이 씁쓸한 표정만을 지어보였을뿐이다.
그러다가 요시또모의 입에서 《본토행이 허락됐으니 날을 가려 출발하옵소다.》라는 말이 튀여나오자 한줄금의 엷은 미소를 눈가에 그리였다.
이틀밤을 더 묵고 사흘째되던 날 바람세 좋은 중낮때에 송희령과 그를 호행하는 쯔시마도주일행이 탄 큰 돛배 한척이 포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