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기이한 상봉
7
해가 중천에 솟기도 전에 구경군들이 조선사신수행원들이 마상재를 벌릴 장소로 정해진 후시미성안의 넓은 공지로 몰려들었다.
성안거리는 마상재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외뿔모와 비단도포차림을 한 하급관리들이 중심좌석에 우르르 몰켜서서 붐비는데 이쪽저쪽에선 평민남정들이 주먹만 한 상투를 서로 부벼대며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밀치닥질을 해댄다. 한쪽에서는 또 베개통 비슷한것을 잔등에 짊어진 녀인들이 애교를 피우다가 어떤 사내의 신발뒤축에 발잔등을 밟히우고는 새까맣게 물들여진 이발을 드러내며 새된 비명소리를 지르면서도 그냥 앞쪽으로 헤쳐나가는가 하면 어떤 곳에서는 아이들이 막대기를 휘두르며 돌아치다가 어른들한테 귀뺨을 얻어맞고서도 그냥 좋다고 까륵거리면서 장난질을 쳐댄다.
윤옥비를 실은 곤도의 마차는 그 복새통을 헤가르며 힘들게 성안으로 들어갔다.
곤도는 구경군들이 그닥 붐비지 않는 공지 뒤구석쪽에 마차를 세우고 말을 풀었다.
부채살같은 해살이 하늘공간에 가득차며 날씨가 어지간히 더워졌을 때 별안간 소음이 잦아들면서 장내가 조용해졌다.
교자를 탄 쇼궁이 수하 대관들과
위치좋은 자리에 옥좌를 올리고 비단차일을 친 귀빈석으로 오르는 쇼궁일행의 뒤에서는 조선사신들이 젊은 수행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위풍있게 걸어오고있었다.
당상관인듯 도리옥을 붙인 장년기의 점잖은 대관과 나이지숙한 비단가사차림의 중이였다.
반백의 긴 수염발을 미풍에 나붓기며 활기있게 걷는 조선중의 풍채가 비할바없이 름름스럽고 용모가 준수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윽고 가마에서 내린 쇼궁은 일시에 읍례를 표하는 왜인들한테 손을 흔들어 위세를 표하고나서 조선사신들과 나란히 귀빈석에 들어앉았다.
그러해서 정숙이 깃드는가싶던 장내에 갑자기 탄성이 물결쳤다.
《재인들이다! 조선재인들이 나타났다-》
《야, 저 말들을 좀 봐라! 기딱차게 멋있구나!》
《어디 말뿐이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멋있소.》
말을 탄 두 젊은이가 공연장소에 들어서고있었다. 허리며 다리가 늘씬하게 잘생긴 말들은 가죽안장과 황금띠와 비단실로 황홀하게 치장되였고 사람들도 차림새가 기막힐 정도로 멋있었다. 한사람은 홍색더그레와 황색바지를 입고 다른 한사람은 청색더그레와 자색바지를 입었는데 둘 다 이목구비가 미끈하고 몸매가 쭉 빠졌었다. 거기다 허리에는 광조대를 띠고 머리에는 상모달린 전립을 쓰니 사람들이 명랑하고 날파람있어보였다.
앞에서 말을 몰아오는 기골이 억센 홍색더그레차림의 기마수가 별로 낯익어 유심히 바라보던 옥비는 《아!-》 하고 신음을 지르며 굳어졌다. 옥비의 가슴깊이에 정다운 모습으로 간직되여있는 련인이였기때문이다.
옥비는 홍창해의 건장한 체구를 얼없이 바라보다가 눈앞이 휭 도는 바람에 허공을 그러안았다.
《아사꼬, 왜 그러오?》
곤도가 휘청거리는 옥비를 마차밑에서 잽싸게 부축해주었다.
옥비는 그제야 마차둘레에서 낯선 사무라이들 여럿이 자기를 지키고있는것을 알아보았다.
옥비의 놀라난 가슴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관람자들한테 야릇한 미소를 뿌리며 넓고 둥근 재주구간을 천천히 몇바퀴 돌고난 기마수들이 드디여 황홀경을 펼치기 시작했다.
말구종인듯 방금 말고삐들을 잡고온 씨름군처럼 체격이 실한 젊은이가 공지가운데 나와서서 기다란 가죽채찍으로 허공을 서너번 쩍- 쩍- 후리치자 앞발을 공중 쳐들고 오호홍- 하고 호용을 지르고난 말들이 불시에 네굽을 안고 내달렸다.
말 뒤꼬리에서 말을 따라 한동안 반달음치던 두 기마수는 별안간에 땅바닥을 박차고 말잔등에 휙- 새매처럼 날아올랐다. 그렇게 올라서는 안장에 앉는것이 아니라 곧바로 말잔등을 짚고 우뚝 섰다.
《이랴, 쩌- 쩌-》
《말구종》이 승벽이 살아나 더 세차게 채찍을 휘둘렀다.
그러자 말은 기력을 다해 내달렸다.
말이 미친듯이 둥그런 공지를 두어바퀴 돌았을 때 우뚝 서있던 기마수들이 말고삐를 약간 늦추면서 별안간 몸을 공중으로 훌쩍 솟구쳐올랐다. 잔등이 가벼워지자 말들은 씽하니 속력을 냈다. 기마수들은 공중에 뜬 몸을 달리는 말의 속도에 맞추어 휙- 휙- 두어번 공중전회를 하더니 사뿐히 말잔등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인차 마상재의 두번째 종목에로 넘어갔다. 말등넘나들기였다. 기마수들은 안장앞쪽의 말목언저리를 두손으로 틀어잡으며 팔굽을 고임과 동시에 몸을 뒤로 쭉 펴서 말등에 길게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달리는 말의 왼쪽으로 휙 넘어갔다. 그쪽에서도 발이 땅바닥에 닿을락말락하는 순간 또 몸을 솟구쳐 다시 오른쪽으로 넘어갔다. 마상재에서 일명 《좌우칠보》라고 부르는 그 동작을 여러번 련달아 진행하고난 기마수들은 쉴새없이 세번째 기교를 펼치였다.
냅다 달리는 말우에서 꺼꾸로 벌떡 선것이다.
《쩌- 쩌-》
《말구종》은 사정보지 않고 더 세차게 말들을 때려몰았다.
공중으로 쳐들렸던 기마수들의 다리가 휘청거리더니 두팔에 실렸던 몸이 픽 돌아갔다.
그들이 허궁 땅에 나떨어지는가 하여 구경군들은 손에 땀을 쥐였다.
그런데 기마수들은 말옆구리에 몸자세를 꼿꼿이 편채 가붙더니 어느새 배밑을 빠져나와 반대쪽옆구리에 말머리와 반대로 누워 팔을 뻗쳐 땅바닥의 모래를 움켜쥐였다가 뿌렸다. 《마협장신》의 한대목이였다.
옥비는 활랑거리는 가슴을 움켜안고 기마수들의 날렵한 거동을 묵묵히 살피고있는 풍채좋은 조선사신을 홀린듯이 바라보았다. 그가 옛날에 내강마을에서 자기를 구원해준 금강산 유점사의 주지님이란걸 알아보는 순간 가슴이 찡 저려들었다.
(어제날엔 승병대를 이끌고 원쑤치는 싸움에서 용맹을 떨치시더니 오늘은 또 년로하신 몸으로 멀고 험한 바다건너의 살벌한 왜땅에까지 와 조선민족의 기개를 떨치시는구나. )
이런 생각으로 해 옥비는 눈굽이 뜨거워났다. 이제 조선사신인 송운대사를 만나 모든 사연을 아뢰이면 가시노미네촌락의 가시울타리안에 갇혀 고역살이를 하는 조선사람들을 구원해줄것이라는 믿음과 신심이 생겼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였다.
그러다가 옥비는 기마수들이 련줄 펼쳐대는 동작이 너무도 아짜아짜하여 한줌으로 졸아드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들의 움직임을 눈뿌리 뽑히도록 지켜보았다.
말잔등에 올라앉아 잠시 숨을 돌리면서 공지를 한바퀴 돌고난 기마수들이 다시금 무슨 재주를 부리려는지 두발을 등자에 건채 몸을 잔뜩 뒤로 젖히였다.
길게 누운 그들의 머리는 말엉치아래쪽에서 흔들거렸다.
그들이 온몸을 의지한 발에 실오리처럼 걸린 등자가 당장 끊어지며 전립쓴 머리들이 땅바닥에 나딩구는것만 같아 옥비는 《앗-》 하고 비명을
지르며 눈을 꽉 감았다. 그가 한참만에야 눈을 떠보니 네굽을 안고 경쾌하게 달리는 말의 갈기와 꼬리 그리고 기수의 상모댕기가 뒤로 일직선으로
뻗치면서 개선
《잘한다, 잘해!》
흥분한 사람들이 와- 와- 환성을 올리면서 좋아라 법석 끓어댔다. 녀자들은 손벽을 짜락짜락 쳐대면서 젊고 날래고 끌끌한 조선기마수들을
탐내여 군침을 흘리였고 사내들은 자기네도 말타고 달리는 환각에 사로잡혀 엉치를 연방 들썩이면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귀빈석에 점잖게
앉아있던 대관들과
《거참, 하늘귀신도 울고갈 신기한 재주요! 조선사람들의 기마술이 간단치 않소다.》
도꾸가와도 저으기 감탄하며 옆에 앉은 유정에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오직 한사람 가또곁에 앉은 요시하찌만이 찌뿌둥히 흐려진 상통을 외로 틀고앉아 입술만 질근질근 씹고있었다.
그는 지금 밸이 뒤틀리는걸 겨우 참는중이였다.
보름전 조선사신일행이 마상재를 준비하겠다면서 쇼궁에게 준마를 요구했을 때 쇼궁은 가또한테 그것을 해결해주라는 령을 내렸었고 그 령을 요시하찌가 제 상전을 대신하여 집행했었다. 헌데 요시하찌는 북변에 나가있는 같은 《도자마》계렬의 다이묘에게 별도로 부탁하여 혹가이도에서 잡아온 날래고 사나운 야생말을 두필 얻어왔었다. 그랬었는데 조선사신호행원들이 일본의 소문난 맹장들도 다루기 힘들어하는 그 야생말들을 며칠새에 준마로 길들여가지고 보란듯이 그 잔등우에서 신비한 기마재주까지 펼쳐대질 않는가? 조선무사들을 골탕먹이자던노릇이 오히려 호랑이겨드랑이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되고말았으니 그야말로 속통이 터져버릴 일이였다.
제 부하의 올꼬이는 내심을 이미 들여다본 가또는 《궁냥이 협소하기란. 그런 얕은 수는 저 사람들한테 통하지 않는다는걸 알라구.》 하고 질책을 나직하게 내뱉으며 눈을 흘겼다.
요시하찌의 뒤틀리는 심사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조선무사들의 기마재주는 그냥 이어졌다.
둘이 쌍마재주를 끝내고 대기석으로 들어가 물을 마시고 땀을 씻으며 한동안 휴식을 하더니 청색더그레가 혼자 말을 몰고나와 단마재주를 부렸다. 얼굴이 곱살하고 클사한 키에 몸집이 날씬한 그는 달리는 말잔등우에서 잰내비처럼 홀짝홀짝 날뛰면서 별의별 동작을 다 해보였다.
구경군들의 혀를 한발이나 빼놓고 그가 들어가자 이번엔 홍색더그레가 혼자 두필의 말을 다 끌고나와 쌍마재주를 펼치기 시작했다. 몸매가 미출한 그가 말들을 나란히 뛰우면서 그우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몸을 눕혔다세웠다하는 동작들은 확실히 단기필마로 하는것보다 폭이 넓고 씨원하며 장쾌하였다. 두필의 말발굽밑에서 이는 뽀얀 먼지속으로 달리는 말잔등우에 우뚝 섰다가는 말배때기밑에 순식간에 숨어들고 또 이 말에서 저 말에로 비호같이 날아다니다가는 두필의 말잔등을 척 가로타고 눕기도 하는 기마수의 민첩하고 활달한 동작은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중을 미칠듯이 흔들어놓았다.
그러해서 경탄의 웨침소리가 사처에서 폭포치듯 쏟아졌다.
옥비는 눈물이 글썽해서 홍창해의 장한 모습과 놀라운 마상재를 취한듯이 지켜보다가 펄쩍 놀랐다.
(내가 이러고있으면 어쩐단 말인가. )
《잘한다!- 잘한다!-》
흥분한 사람들이 다시금 와- 와- 환성을 터쳐올리면서 법석 끓어댈 때 옥비는 살그머니 마차에서 내렸다.
그를 지키던 곤도도 사무라이들도 구경하는데만 정신을 팔고있느라 옥비가 자리를 뜨는것을 모르고있었다.
옥비는 오구작작 붐비는 왜인들을 밀어치우면서 조선사신이 있는 곳에로 향했다.
사신이 앉아있는 상좌를 삼사십보쯤 앞두었는데 누군가의 우악진 손이 옥비의 뒤덜미를 잡아챘다.
곤도였다.
《아사꼬, 어딜 가?-》
그러는것을 뿌리치고 옥비는 드립다 내달렸다.
그러자 이번엔 여러놈이 옥비를 따라와 붙들었다.
《놔라- 난 조선사신한테로 가고싶다. 조선사신을 만나겠단 말이다.》
옥비는 놈들을 꼬집고 물어뜯으면서 악을 써댔다.
그랬으나 곤도와 사무라이들은 사정을 보지 않고 옥비를 휘걷어잡아 마차를 세워놓은 곳으로 끌고갔다.
사신석에 앉아있던 유정은 주변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소동을 느끼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어떤 놈팽이들이 젊은 녀자 하나를 개끌듯이 질질 끌어다가 마차안에 올려던지는것이 눈에 띄였다.
유정은 정체불명의 괴한들한테 안 끌려가겠다고 발버둥질을 치는 녀자의 기모노안에서 희뜩 드러났던 조선치마저고리를 보았고 발음이 정확한 조선말소리도 들었다.
《난 조선사신을 만나…》
(?!…)
이상한 예감이 가슴 한끝을 스치여 유정은 그곳에 가보려고 엉거주춤이 일어나다가 곁에 앉은 도꾸가와가 뭐라고 말을 시키는통에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수하사무라이들을 거느리고 쇼궁신변호위를 위해 공지주변에서 경계파수를 서던 히까리도 무슨 소동이 일어났는가 해 마차쪽으로 칼을 뽑아들고 뛰쳐갔다.
다나까가 제 부하놈들과 함께 어떤 젊은 미녀를 하나 풍친 마차안에 걷어넣고있었다.
히까리는 대뜸 눈꼬리를 곤두세우며 다나까를 힐책했다.
《고꾸또- 쇼궁사마를 모신 장소에서 웬 새빠진 망동이야?》
흠칠 놀라나며 뒤를 돌아보던 다나까는 자기네를 단속하는 막부군의 장수가 옛친구인 히까리임을 알고는 안심을 하는것이였다.
《오늘밤 도노사마께 섬겨바칠 계집이네.》
막부의 중앙군이 둔을 친 관내에서 별 시시부런 일을 가지고 소란을 피우는 지방장관의 가병들을 되게 혼찌검내려던 히까리는 다나까와의 옛우의를 생각해 참고 주먹을 거두었다.
히까리가 다나까한테 쇼궁의 노염을 사기 전에 냉큼 사라지라는 말을 내뱉고 그 자리를 뜨려는데 마차 풍막안에서 젊은 녀자의 조선말소리가 간단히 새여나왔다.
《난 조선사신한테… 우리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풍막문을 들춰보려던 히까리는 다나까가 존귀한 막부군초장이 촌것들 일에 삐치면 몸값이 떨어진다며 등을 떠미는 바람에 할수없이 돌아서고말았다.
마상재구경도 마저 못하고 요시하찌한테서 썩어빠지도록 쌍욕만 처먹은 곤도는 말을 때려몰아 황망히 교또를 떠났다.
그는 교외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길에 들어섰을 때에야 채찍질을 멈추고 후- 몰숨을 내그었다.
《요, 앙큼한 년때문에 나만 모가지없는 귀신이 될번 했구나.》
곤도는 말고삐를 마차채에 걸어놓고 뒤로 돌아앉았다. 놈은 두손목과 두발목을 결박한 끈을 풀어버리려고 모지름을 쓰며 자기를 증오의 눈길로 쏘아보는 옥비를 흘겨보면서 밸풀이를 해댔다.
《암여우같은 년, 네년이 조선사신한테 가붙어 제 나라로 도망치자고 깜찍한 계책을 꾸몄댔지? 에쌍, 료미 이천석을 탐내다가 도노사마의 신망만 잃고 녀편네 새 옷까지 버렸구나.》
곤도는 옥비가 입고있는 너덜너덜 째진 기모노가 아까와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그러는데 안저고리앞섶까지 헤쳐지며 녀자의 하얀 젖가슴이 희끗 드러났다.
어이크먼사- 곤도는 닁큼 놀라나며 손을 얼른 거두었다. 그찰나 요시하찌의 성칼진 상통이 눈앞에 살아나며 등골이 오싹해졌던것이다.
상전의 후실감을 건드렸다가는 칼에 목이 잘린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려든 곤도는 황황히 손을 털고 뒤돌아앉았다.
허나 그것도 한순간이다. 견물생심이라고 미녀의 매출한 다리살이며 봉싯한 가슴팍이며 앵두알같은 입술이며 예쁜 눈매며 하는것들이 자꾸만 시야에서 얼른거리면서 천하절색의 녀자를 제 품안에 걷어넣고 기껏 주무르고싶은 정욕이 치받쳐올라 참을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모가지가 잘리울 땐 잘리우더라도 당장은 절세가인의 맛을 좀 봐야겠다. 뭐 다이묘만이 미녀를 끼고 잘 팔자이고 이 곤도는 한뉘 비루먹은 하늘소처럼 여위고 못생긴 계집이나 줴만질 천비소생이라더냐? 도노사마도 쟁기달은 사내고 나도 쟁기달은 사낸데 뭘 어쨌단 말인가.
곤도는 은근히 악심이 북받치여 저 혼자 쑹얼대며 재차 옥비쪽으로 돌아앉았다. 젊은 녀자의 싱그러운 향취가 풍겨오고 가을무우처럼 미끈한 형체가 눈뿌리를 쑤셔대여 불시에 몸이 달아오르고 피가 끓어번진 곤도는 더이상 자제를 못했다. 자고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아무리 권세가 푸르딩딩한 상전일지언정 현재는 차츰 더 멀어지는 교또에 있다나니 그에 대한 두려움마저도 다 잊어버린채 어벌뚝지 크게도 흉측한짓을 저지르려 했다.
《흥, 다이묘의 품에 안기기 전에 이 가시라사마가 먼저 거시기를 해야겠다.》
곤도는 일을 치르는데 거치장스럽지 않도록 옥비의 다리를 결박했던 새끼줄을 끊어던졌다. 그리고는 제절로 흥분되여 몸을 덜덜 떨면서 바지괴춤을 풀었다.
바지를 훌렁 벗어내린 곤도는 옥비의 속옷을 활 끄당겨올리고 무작정 그의 몸우에 덥석 올라탔다.
그러는 곤도의 배때기를 옥비가 발로 콱 걷어찼다.
《욱-》
곤도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벌렁 자빠졌다.
《요, 앙큼한 년이…》
이발을 사려물고 뛰쳐일어난 곤도가 다시금 옥비를 덮쳤다.
옥비는 손목을 묶이운 두팔로 그자의 면상을 후려치다가는 입으로 털부숭이턱살을 죽어라 하고 물어뜯었다.
한창 생사결단의 힘내기가 벌어지는 속에 누군가의 발길질에 채워 풍막이 떨어져나갔다.
찬바람이 확 쓸어들었다.
하나는 끌어안으려 하고 다른 하나는 밀어버리려고 하며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던 두사람은 마차꽁무니로 밀려났다.
자칫하면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지게 된 위험을 느낀 곤도가 질겁하여 소리쳤다.
《이년아, 이러단 너도 나도 다 죽는다.》
(그래, 나도 죽고 너도 죽자. )
옥비는 마지막기력을 다해 곤도놈의 모가지를 끌어안으며 내달리는 마차밖으로 몸을 던졌다.
악!-
무엇이 와지끈 부서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옥비는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