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운명의 쪽배

2

 

한낮이 기울무렵 목에는 념주를 걸고 잔등에는 바랑을 둘러멘 두 삭발중이 승례문을 지나 한성안에 들어섰다.

반백의 턱수염을 가슴노리까지 길다랗게 드리우고 암갈색장삼겉에 가사를 걸친 왕년의 중은 유정이고 역시 장삼차림을 한 보기 좋은 키에 거동이 날파람있는 젊은 중은 계명이다.

전란의 흔적을 털어버리며 한창 번성해지고있는 도성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두릿두릿 살피던 계명이가 제 스님에게 이곳저곳을 손짓하면서 왜란때는 어드랬는데 지금은 어떻다거니 하며 철부지애들처럼 들까불었다.

했으나 유정은 덤덤해서 걸음발만 다그치였다.

그는 사실 계명이처럼 사사로움에 빠져들 겨를이 없을 정도로 심중이 착잡한 상태였다.

유정은 수년전에 왜란이 끝난 후에도 승군을 해산하지 않고 예전처럼 그냥 거느리면서 남해변방의 중요한 산성들을 수축보강하는 일을 해오다가 오랜 세월 한지에서 숙식을 소흘히 한탓으로 종내 신체가 병약해져 할수없이 금강산으로 되들어가 치료를 받아왔었다.

그러던중에 금강산 유점사에 급작스레 들이닥친 도감영의 공방비장으로부터 한시바삐 산을 내려 상경하라는 국왕의 어명을 전달받았다.

그날에야 유정은 비로소 자기에게 차례진 중대한 일거리에 대해 알았으나 서둘러 도감영으로 내려가 조정에서 하경한 선전관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유정은 외따른 암자에 혼자 들어박혀 속으로 만리장성을 쌓았다헐었다 하면서 불원간에 자신이 택해야 할 운명의 길을 심중해서 가려보았다. 그는 용약 나라위한 일에 나서고싶었으나 정작 행동으로 옮기자니 자연히 서슴어지였다. 살인악마들이 절치부심을 하면서 보복의 칼을 벼리고있는 날바다너머의 적국에로 건너가 그야말로 후원이 없는 외로운 싸움을 벌리다가 제 한목숨을 잃는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으나 자기가 이제는 전쟁때보다 나이도 들고 육체도 피페해진데다가 또 이제 싸움을 벌릴 곳이 전혀 생소하고 험악한 왜땅인지라 미약한 힘과 재주를 가지고 나섰다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사를 그르칠가봐 은근히 걱정이 됐던것이다. 그러느라니 유정은 저절로 아, 이 나라에 그리도 사람이 없단 말인가? 조정의 기틀이고 지반인 사모쓰고 국록을 타먹는 문무백관들은 다 뭣들 하고 산속에 들어누운 이 년로하고 병약한 삭발중에게 막중한 나라일을 떠맡긴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며 심정이 허무해졌다. 유정이가 끼식을 번지며 장탄수심속에 절어있던 어느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반가운 객이 그를 찾아 금강산에 나타났었다.

《총섭님께 문안드리옵니다.》

관골이 두드러지고 허우대가 큰 그 젊은 중이 자기를 전쟁때의 군직으로 불러주는 바람에 어정쩡해졌던 유정은 그가 임진조국전쟁때 이미 면식을 익힌 서산대사의 호위병이였던 칠범이라는것을 알고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는데 서산대사의 안부부터 전하고난 칠범이 까닭없이 심각해지더니 유정의 눈치를 살피면서 한참 어름거리다가 품속에서 흰 명주천에 싼 물건 하나를 꺼내놓았다. 그는 손바닥절반만 한 크기의 그 꾸레미를 유정에게 내드리며 서산대사님이 보내는것이라고 별로 정색해서 말하는것이였다.

유정은 영문을 몰라 의아해졌다가 꾸레미를 조심스레 받아 흰 명주천을 풀었다. 그러자 푸르청청하고 생생 원기가 도는 소나무잎 세개가 드러났다.

《어느 인줄을 통해 왜국과의 일로 인하여 총섭님께 들씌워진 과중한 부담과 심뇌를 알게 되신 로스님께선 일각이 급한 때이니 총섭님이 하루바삐 왜국행을 단행하라고 령하셨소이다. 그러시면서 총섭님이 왜땅에서 간난신고를 치르며 힘이 진하거나 생각이 번잡해질 때마다 솔잎을 꺼내보면서 그 소나무가 뿌리를 내린 조국산천과 그 땅을 가꾸며 살아가는 백성들을 생각하면 힘이 생기고 궁리가 트일거라고 하셨소이다.》

칠범이가 목갈린 소리로 뇌이는 그 말은 유정의 가슴을 쩡- 울리였다. 모진 설한풍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푸르싱싱 억세인 기상을 떨쳐온 내 나라의 락락장송! 하오니 스님께서는 이 불민한 제자에게 애국의 넋을 심어주는것으로써 드세찬 채찍질을 하셨구나.

유정이 심히 가책을 받는데 칠범이 덧기름을 치듯이 재차 뇌였다.

《서산대사님께선 소승이 총섭님을 호위하며 왜국에 다녀오라고 출산시켰소이다.》

왜국행차가 오죽 중했으면 스님께서 제 시중들던 제자중까지 내보냈으랴 하는 느낌이 유정의 심금을 울렸다.

유정은 스승에 대한 가슴쩌릿한 감회에 잠겨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나라의 운명과 관련되는 중대사를 놓고 우유부단하던 자신을 뒤늦게나마 뉘우치며 채심을 한 유정은 이튿날 아침 칠범에게 도중밥꾸레미를 안겨주며 그를 묘향산으로 되돌려보냈다.

《가서 로환이 심해져 림종에 처한 서산대사님을 돌보게. 그래야 내가 맘놓고 왜국행을 할게 아닌가.》

그런 후 조국의 한쪼각 모습인 솔잎을 명주천에 정히 감싸 가슴에 깊숙이 품안고서 조정걸음을 하게 된것이다.

그들 두사람이 한성안에 초간히 조정이 림시로 거처한 대궐을 바라고 종종걸음쳐 행인이 번다한 종로 저자거리를 지나는데 누데기옷을 걸친 류랑아 두엇이 쪽박을 들고 다가들더니 먹을것을 빌었다.

예닐곱살이 됐을 사내애와 열서넛에 났을 계집애인데 기아와 병마에 어찌나 시달림을 당했는지 몰골이며 행색이 말이 아니였다.

《스님, 쉰밥이 있으면 좀 주어요.》

숨이 당장 끊어질듯 가랑가랑 잦아드는 소리로 뇌이며 뼈가 앙상한 손을 내여미는 계집애를 눈아프게 여겨보던 유정은 심정이 측은해져 《원, 애두… 하필이면 사람이 못 먹는 쉰밥을 찾는거냐?》 하고 뇌이며 그 애의 헝클어진 때투성이머리를 어루쓸었다.

《너흰 집이 어디메고 부모들은 무얼하냐?》

《우린 집도 부모도 없나이다.》

《?!》

《울아빠엄만 전란때 왜놈들의 총에 맞아 잘못됐고 집도 불타버렸나이다.》

《어허참, 일두.》

유정이 기가 막혀 탄식을 하는데 계명은 또 저대로 자기가 고아가 되여 류랑걸식을 하던 옛적의 일이 떠올라 눈물이 그렁해져서 어린 사내애를 끄당겨안고는 제 잔등에 띠였던 바랑을 풀어 그안에서 도중밥을 꺼내주었다.

애들은 얼마나 허기에 시달렸는지 밥을 받아들기 바쁘게 렴치생각도 못하고 정신없이 먹어댔다.

둘이서 주먹밥 네덩이를 눈깜짝할새에 없애치우고나서야 미안한감이 들었던지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연연해져 물러났다.

그러는 애들한테 유정이 마음이 안 놓여 끈끈히 따져물었다.

《늬들 밤엔 어디서 거처를 하느냐?》

《뒤골목의 혼자 사는 할만네 움막에 드나이다.》

《그 할머닌 어째 혼자 사느냐?》

《할만네 젊은 엄만 왜놈들한테 붙들려 어디론가 끌려가고 아부지와 애들은 왜놈들이 칼탕쳐 죽였대요.》

《음…그참 일이 안됐구나. 그래 이 성안에 너희네처럼 왜놈들한테 부모와 집을 잃고 떠돌이하는 애들이 몇이나 되냐?》

《이곳 종로에만 해도 이렇게, 이렇게 있사와요.》

계집애는 두손의 열손가락을 두번씩이나 폈다가 구부렸다.

도성안에까지 류랑아들이 그렇게 퍼졌으니 이 나라의 방방곡곡을 헤아리면 불쌍한 고아들이 참으로 셀수없이 많으리라는 생각에 기가 막히여 땅이 꺼지도록 몰숨을 내뿜던 유정은 계명에게 눈짓하여 왜국행차에 로자로 쓰려고 가지고떠난 은냥을 한덩어리 꺼내주게 했다.

《가지고 가서 그 애들이랑 다같이 당혜도 사신고 새 의복도 사입고 수수떡도 사먹거라.》

유정은 고맙다며 다북머리를 연방 수그리는 애들의 여윈 어깨를 다독여준 후 무거운 걸음을 이어나갔다. 아파나는 가슴을 달래이며 걷노라니 수년전 임진왜란때의 참혹한 광경들이 연줄연줄 시야에 되살아올랐다. 왜놈들이 저지른 불길에 무참하게 타버리던 이 나라 산천과 관사들과 살림집들이 그리고 놈들의 칼에 맞아 피흘리며 쓰러지던 형형색색의 백성들이 금시의 일이런듯 생생히 떠오르며 흉중을 끓어번지게 했다.

유정은 자연히 격노하여 이발을 갈다가 내가 벌써 그 수난의 력사를 잊다니?! 왜놈들한테 나라가 침략당하고 백성이 살륙당하고 임금이 유린당하던 그 일을 잊고 살면야 사람이 아니지 하며 주먹을 후두두 떨었다. 그러느라니 오래전의 어느날엔가 자기를 앞에 끓어 앉혀놓고 하던 서산대사의 엄한 훈계가 귀가에 되살아 울렸다.

《사람은 사람이여서 사람인것이 아니라 사람다와야 사람인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면 작게는 저를 낳아준 부모를 잊지 말아야 하고 크게는 제가 나서자란 고향과 나라를 버리지 말아야 하고 필요한 경우엔 혈육과 동족을 위해 죽을줄도 알아야 하니라. 내가 너에게 다년간에 걸쳐 불도와 무예를 최고의 경지로 오르도록 채찍질하는것은 네가 그러한 리치대로 인생을 바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얼마나 지당한 가르침이였는가! 스님의 의지를 따라 내 왜나라에 건너가 불구대천의 원쑤놈들이 우리 조선에 들씌운 죄악에 대한 값을 단단히 받아내리라. 다시는 왜놈들이 내 나라를 침범하여 원한의 상처를 남기지 못하게 할테다.

이런 억척지심을 굳게 다지며 유정은 씽씽 걸음발을 다그쳤다.

한편 내시관으로부터 금강산의 중 유정이 대궐에 나타나 알현을 청한다는 사실을 통고받은 선조왕은 괘씸한 감정이 울컥 동했으나 제발로 스스로 찾아든 사람을 포박하는것은 상감으로서의 체면에도 맞지 않거니와 또한 시급하게 해결해야 될 나라의 막중대사를 맡길 재목은 아무래도 그밖에 없는지라 선입감을 애써 누르고 상면에 순순히 응하여 그를 편전으로 불러들이였다.

《상감마마의 어지를 경원시한 죄 죽어 마땅한줄로 아옵니다.》

몹시 조심스러워하는 거동으로 편전에 들어와 수염발이 휘늘어진 얼굴을 푹 수그리며 처벌을 달게 받을 자세를 취하는 기골장대한 중을 덤덤해서 일별하던 선조왕은 부지불식간에 그가 임진왜란때에 나라위해 세운 산같은 공적이 상기되여 그에 대한 측은지심이 살아나 대범하게 웃어넘기였다.

《승이야 원래 담기가 가히 큰 무장이니 리해할만 한 실책이로다. 장차로는 단단히 채심하고 나라위한 일에 분골쇄신하기를 바라노라. 승을 조선사신으로 봉하니 부디 충의를 다할지어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진심으로 사죄를 하고 삭발머리를 반쯤 쳐드는 유정을 다행스러운 심정으로 굽어보던 선조왕은 일각이 급한지라 그 자리에서 도승지를 호출하여 이미전에 작성해두었던 국서를 인수하도록 하였다.

도승지가 국서(대장지에 조선왕이 일본에 화친의지를 알리는 자필이 씌여지고 임금의 옥새가 찍혀진 국가적인 문서)를 지닐 본인인 유정에게 확인시키고 참대통안에 넣어 봉인을 한 다음 정중히 넘겨주었다.

나라의 운명이 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 국서를 후두둑 뛰는 손으로 삼가 받아드는 유정을 룡상에 웅크리고앉아 애절한 기대와 념원이 실린 눈으로 지켜보던 선조왕이 당부하듯이 신칙을 했다.

《길이 험난하고 생명이 위태롭긴 하지만 대마도까지만이라도 갔다오오. 과인이 승을 왜국에 보내는건 부디 왜인들과 화친을 맺으라는건 아니요. 횡포한 왜인들을 얼리면서 겸사해서 왜국의 실태와 동향을 내탐하고 그동안에 시간벌이를 하여 방비책이나 세우자는거요.》

시간벌이나 하자고?! 유정은 상감의 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희뜩 수염발을 흩날렸다.

순식간에 태도가 달라지는 유정의 거동을 지그시 주시하던 선조왕이 느직하게 오금을 박았다.

《왜인들이란 원래 본성이 야살찬자들이니 지나치게 과격하게 놀아 그들을 자극하여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게 하진 말고 유화하게 상대를 하여 아무쪼록 뒤탈이 없게끔 조처를 잘하오.》

《알았소옵니다.》

유정은 합장을 한채 상체를 깊숙이 수그리며 씨원스럽게 대답을 개여올렸으나 속으로는 선조왕의 소심성과 견결치 못한 립장이 마음에 안 들어 의견이 생겼다. 그랬으나 차마 내색은 할수가 없어 올꼴리는 심사를 애써 가누어잡으며 정중히 읍을 하고는 어전에서 물러나려고 했다.

그때 선조왕은 그를 제지시키더니 내시관에게 세 정승을 급히 불러 오게 한 후 조정의 거두인 그들과 한참 신중하게 무슨 의논을 하고나서 도승지에게 새로운 어명을 내리는것이였다.

《비록 왜국행차이긴 하나 나라의 체면을 생각지 않을수가 없다. 세속밖의 삭발중을 사신으로 이국에 보냄은 전례에 없는 일이니 조정의 대관 하나를 동행시켜 형식상이나마 명분을 세워야겠다.》

그렇게 되여 례조의 손문욱참의가 사신행차의 정사로 임명되였고 유정은 부사신의 직함을 지니였다.

하지만 왕이나 조정대신들이 실지로 기대를 걸고 신임을 한 사람은 부사신인 유정이였다.

그렇게 되여 임진왜란후 처음으로 탐적사일행이 왜국에 건너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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