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기이한 상봉

4

 

발없는 말이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교또에서 벌리는 조선사신의 활동소식은 인차 남해도 한끝에 위치한 가시노미네촌락까지 날아들군 했다.

고달픈 이국살이를 하는 사람들인지라 조국에서 온 사신행차에 대한 관심은 유별했다.

그중에서도 윤옥비의 심정은 남달랐다.

사신인 송운대사를 호위하는 성원들이 인격도 있고 무예도 뛰여난 젊은이들이라는 소문을 듣고 애를 태우던 옥비는 그들이 설을 맞으며 마상재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더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조선사신일행을 찾아가 만나 그속에 실지로 홍창해가 있는지를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아울러 조선사신한테 이곳에 끌려와 노예살이를 강요당하는 조선사람들에 대해 알려주고 구원을 청하기로 작정했다.

(그건 물론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 일을 내가 맡아하자. 나 하나 죽더라도 고역에 지쳐 쓰러져가는 도자기터의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살려내야 한다.)

비장한 결심을 품은 옥비는 적당한 기회에 도자기터주인인 곤도를 찾아가 만났다.

《작은주인님, 쇤네가 교또에 다녀올수 있게 도와주소이다.》

《교또엔 웨 가려나?》

곤도는 아닌밤중에 웬 홍두깨냔듯 덜퉁스레 까박을 붙였다.

《조선중들의 마상재가 보고싶어 그러나이다.》

《마상재구경이라? 허니 도회지바람을 쐬고싶단 말이지.》

이렇게 제잡담하며 앞지르는 온통 털투성이인 곤도의 턱살과 가슴언저리가 히물거리기 시작했다. 상전인 요시하찌로부터 옥비만 돌려세우면 료미 2천석을 더 올려주겠다는 언약을 받은 그는 이 기회에 옥비를 잘 얼리여 마음을 돌려먹게 한다면 자기가 크게 횡재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곤도는 제 손에 행운의 가지가 잡힌김에 아예 줄기까지 잡아당겨 뿌리들춤을 해치우려고 든장질을 해댔다.

《아사꼬가 한가지 약속만 하면 그 요구를 들어줄수 있소.》

《어떤 약속 말이오이까?》

《교또바람을 쏘인 후 다이묘댁에 머리얹고 들어앉겠다는 약속 말이요.》

옥비는 후날엔 어떻게 되든간에 당장은 교또로 가고볼판이라 주저없이 대답을 주었다.

《어마, 그런 말이야 내인들이 쑥스러워 어떻게 홀홀히 하겠나이까. 마음이 우러나도록 해주면 절로 다 이루어질 일인데.》

옥비의 나긋해지는 태도에 곤도는 입이 귀밑까지 헤벌어졌다.

《좋을시고. 가서 마상재구경을 하자구. 교또에도 가고 시집도 가고, 헤헤.》

곤도는 장농을 뒤져 제 녀편네가 입으려고 지어놓았던 새 기모노를 한벌 꺼내놓았다.

《옷은 갈아입고 가야 하오, 내 체면을 봐서라도.》

《그렇게 하겠나이다. 그런데 저… 래일 아침 사람들이 모두 일하러나간 다음 조용히 떠났으면 하나이다.》

이튿날 늦은아침 곤도는 외말을 메운 마차를 옥비네 집앞에 가져다 대였다.

옥비는 밤새 빨아 말리워 다린 윤로인의 두루마기와 적삼을 차곡차곡 개여 아래목에 놓은 다음 로인이 늘쌍 누워자던 그곳을 향해 차붓이 허리숙여 작별인사를 했다.

《할아버님이 아시면 저를 붙잡겠기에 이렇게 알리지 않고 떠나나이다. 내 한생의 기둥인 랑군님을 찾고 또한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치욕스러운 이국살이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이 길을 가니 욕하지 마소이다. 내 만약 잘못되면 넋이라도 살아 할아버님곁으로 돌아올테니 기다려주소이다.》

옥비는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며 조선치마저고리우에 알룩달룩한 비단기모노를 껴입었다.

문고리를 걸고 뜨락에 내려서는 옥비를 본 곤도는 황홀한 그의 모습에 눈이 부시여 머룽머룽해져서 혀만 쯧쯧 찼다.

《아사꼬한텐 어울리지 않는 옷이 없구만. 역시 그대는 귀족의 마나님감이요.》

옥비는 그자의 노죽이 역스러웠으나 큰일을 생각하여 내색을 금했다.

대마직천으로 유개를 촌스럽게 해씌운 마차는 방울소리를 기분좋게 울리며 동구를 벗어났다.

곤도는 로자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련속 역마를 갈아대며 길을 다그쳤다.

하여 대엿새만에 장장 천여리의 길을 축내고 교또에 도착했다.

인총이 번다한 도읍의 안거리에 정작 들어서고보니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막연했다.

려염집로파들이 행인들의 주머니를 털어내기 위해 세운 가게점들이 어깨를 비비며 들어앉은 거리초입구에서 마차를 세우고 한동안 생각을 굴리던 곤도는 제 상전인 요시하찌가 들어있음직한 객관을 찾아 어방대고 마차를 성안중심부로 몰아가는데 앞에서 비단차일로 화려하게 장식된 유개마차 한대가 달려왔다.

가또와 요시하찌가 탄 마차였다.

가또와 요시하찌는 조선사신일행이 머무르는 객관에 가서 유정을 만나고오는 길이였다.

가또는 차를 마시며 유정이와 한담을 몇마디 건늬던 끝에 우리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심심풀이삼아 장기나 한판 두지 않겠는가며 슬쩍 한마디 내비쳤다.

그의 제의를 유정이 헌거로이 수응하니 둘사이에는 그전에 전쟁시기 서생포에서 강화담판을 하던 때처럼 장기경기가 벌어졌다.

물론 일본장기였다.

량쪽의 일행이 주변에 빙 둘러서서 지켜보는 속에서 둘이 마주앉아 장기판에 말쪽들을 배렬할 때 가또가 능글거리며 물었다.

《맨숭하니 그냥은 못하는거고 무슨 내기를 할가요?》

《아무 내기나 합시다.》

《그럼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이 무엇을 요구하면 들어주기로 합시다.》

그렇게 되여 다섯번을 겨루었는데 유정이가 2패 3승으로 이겼다.

그로서는 뜻밖이였다. 사신의 체면때문에 가또의 요구에 응하긴 하면서도 차마 자기가 이기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왜냐면 임진조국전쟁때 왜장들과 강화담판을 성과적으로 치르기 위해 그 준비로 일본장기를 배우고 몇번 놀았을뿐이고 이후로는 지금까지 전혀 쪽을 만져보지 못했기때문이다. 허나 가또야 본토에 웅거한 일본인으로서 늘쌍 일본장기를 놀아온자가 아닌가?! 유정은 엉큼하기 그지없는 가또가 조선사신을 들뜨게 만들어 속을 뽑으려고 우야 2 대 3으로 져주었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했다.

《자, 약속대로 경기에서 이긴 승장이 어서 아무거나 요구하소이다.》

유정은 자기의 승리를 진짜로 믿는듯이 일부러 웃으면서 되려 가또에게 엇걸이를 했다.

《군장이 오늘 나를 만나러온 목적을 묻는바이니 솔직히 말하오.》

가또는 제 의도하던대로 화제가 번져지자 은근히 기뻐하며 직발 들이찔렀다.

《내가 온건 다름이 아니라 명색이 불가의 중이라는 승장이 왜서 일개국의 사신으로 천거되여 본국에 건너왔는가를 알고싶어서요.》

유정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 능구렝이같은 작자한테 언질을 잡히겠기에 한순간 심사숙고하다가 이럴 때는 맞받아나가는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쑥 내밀어쳤다.

《쇼궁한테 물어보면 말해줄거웨다.》

단도직입적인 그 대답이 가또를 저으기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맹금의 눈처럼 독음이 서린 사납게 치째진 눈을 지그시 감고 울뚝거리는 심기를 눅잦히다가 눈을 번쩍 뜨고 껄껄 웃었다.

《허허, 손바닥으로 눈가리고 아웅할 내기로군.》

이러고는 제 직감을 그대로 내비쳤다.

《까놓고 말해 승장이 힘든 걸음을 한거야 우리 일본의 내정과 병력상태를 내탐하며 일본군이 예전처럼 조선을 침범할 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를 가늠하기 위해서겠지요?》

이미 오래전인 임진조국전쟁때에 벌써 가또와 여러차례 만나 회담을 해오는 과정에 그가 능갈치고 사납고 통짜배기라는것을 잘 알고있는 유정은 자기도 툭 빠개놓고 말해치우려다가 외교란 그렇게 감정만을 가지고 하는게 아니고 때에 따라서는 시치미를 뻑 따고 바람벽도 문이라고 우기는 경우가 있기에 천연스럽게 돌려치우고말았다.

《쇼궁께서 량국이 서로 화의하고 통상교류를 하자고 조선사절단을 청했고 조선왕도 그에 응해 사신행차를 띄웠으니 우리도 일언이페지하고 그런줄로 알면 마땅할것이외다.》

그러고는 상반신을 편안히 젖히고 앉아 뜨거운 차를 훌훌 불어 마시면서 길다란 수염발을 슬슬 내리쓸었다.

말한 본전도 못 찾고 객적어져서 마른기침을 험험 깇던 가또는 일부러 느긋한 태도를 지어보였다.

《작게는 승장과 내가 화의를 하고 크게는 일본과 조선이 화의를 하면 아마 력사의 한페지에 금문자가 아로새겨질거요.》

《그럼 군장과 내가 서로 합심하여 금문자를 새겨봅시다.》

그러루한 대화가 한동안 이어진 끝에 둘은 한바탕 싸우다가 떨어진 사람들처럼 실뚱해서 헤여졌다.

가또는 속에는 여물어맺힌 대추씨같은것을 품고 겉으로는 푸수한 떡호박인체 하는 금강산 중을 아예 까밝혀놓으려다가 실패한것이 분해 말에서 떨어진 기마병마냥 침울해가지고 요시하찌와 함께 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다.

분주스럽게 땅바닥을 박차며 오르내리는 말발통만 찌글써해서 굽어보는 가또의 기색을 살피던 요시하찌가 갑자기 살기를 풍겼다.

《아무래도 안되겠소이다. 폭력으로 길들여야지.》

《길들인다고? 허허, 그가 길들여 쓰는 야생말이나 같은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게 차라리 탁…》

《자꾸 조급해 그러지 말게. 만사엔 다 때가 있는거니.》

그들을 실은 마차가 한창 대통로를 달리는데 갑자기 요시하찌가 말을 세우라고 마부한테 호령을 했다.

마차가 채 멎어서기도 전에 요시하찌는 후닥닥 길가운데로 뛰쳐내렸다.

마주오던 마차가 요시하찌앞에서 급작스레 멈춰섰다.

시골냄새가 풍기는 그 마차안에서 토종수말처럼 암팡지게 생긴 중년사내가 팔매질에 튕긴 돌덩이마냥 훌떡 뛰쳐나왔다. 요시하찌의 부하인 곤도였다.

《맙시사!- 지금 막 도노사마의 거처지를 찾아가던 길인데요.》

《이 자식아-》

요시하찌는 당황하여 제 부하의 말구멍을 급급히 막아치우며 뒤를 살폈다.

진짜 도노가 눈이 시퍼래서 지켜보는 앞에서 분수에 지나치게 도노사마로 불리운것이 난처했던것이다.

가또가 아무런 낌새도 못 챈듯 덤덤해서 먼 산쪽만 내다보고있는것을 보고서야 그는 안심이 되여 곤도한테로 돌아섰다.

《나살이나 건사한게 어째 이리두 주책머리없이 놀아대는거냐? 웬 허깨비바람이 동해 예까지 나타났어?》

《옥상이 드디여…》

제김에 흥분하여 두팔을 쩍 벌리며 떠들던 곤도는 상전의 엄한 눈총을 줘맞고는 질끔 움츠러들었다.

아사꼬라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져 마차안을 들여다보던 요시하찌는 알룩달룩한 기모노차림을 한 윤옥비가 얌전하게 앉아있는것을 띄여보고는 어마지두 놀랐다.

《아니, 아사꼬가 대체 어찌된 일이요?》

의아해하는 요시하찌한테 곤도가 귀속말로 전후사연을 아뢰이였다.

눈살이 찌그렁해서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한참 생각을 굴리던 요시하찌가 불시에 희색을 지으며 곤도의 어깨를 쳤다.

《요로시- 새 부인한테 교또구경이랑 조선마상재구경이랑 실컷 시켜라.》

한편 가또를 돌려보내고난 유정은 홀로 무거운 생각에 잠겼다.

그는 본토에 건너와 가또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자기의 가장 큰 적수이며 조선사신행차의 제일 말짼 방해군이 될것이라는것을 간파했었다. 오늘 또 가또와 상대하고나니 자칫하다가는 그자때문에 자기는 물론 사신일행이 헤여날수 없는 위험에 처할수도 있다는 섬찍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심중해서 그 대책안을 물색했다.

유정은 적을 적으로 견제하는 책략을 쓰기로 작정했다. 도꾸가와가 현재 조선사신의 환심을 사서 어떻게 하나 조선과의 통상교류를 실현하려고 하므로 그자의 유화책략에 놀아나는척 하면서 막부의 군권을 역리용하면 얼마든지 지방장관에 불과한 《도자마》들의 손발을 얽어맬 가능성이 있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